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학고재 산문선 16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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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것의 아름다움의 본질은?

우리 문화재의 진가는 어디에 있을까? 고려청자 연화문 매병, 고려와 조선을 잇는 청화백자, 임진왜란 후 일본인 극찬한 다완 등 오늘날 그 가치를 매기가가 어려울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 우리 문화유물에 깃들어 있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단지, 오랜 시간을 견뎌온 사람의 창작물이기에 주목받는 이유도 분명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 창작물에 담긴 정신으로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명품을 만들어낸 우리 민족의 삶과 그들로부터 만들어진 창작물은 분리되어 생각해서는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일찍이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며 그 진가를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던 혜곡 최순우(1916~1981) 선생의 중심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고 보인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우리 문화재가 담고 있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최순우 선생이 아름다움으로 우리 것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이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글을 모아 엮어 낸 책이다. 최순우 선생이 아름다움에 주목하며 그런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생각하여 밝히고 있다. 최순우 선생이 주목한 우리 것의 아름다움은 특별한 무엇이나, 특정한 사물에 깃들어 있는 공통된 아름다움이다. ‘달 그림자 노니는 영창, 먼 산 바라보는 굴뚝, 서리 찬 밤의 화로, 가냘픈 연두빛 무순, 가을비에 촉촉이 젖은 낙엽의 스산함등이 그것이다.

 

최순우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20여년이 지났고 이 책이 출간 된지도 10여년이 훌쩍 넘었다. 이는 시간이 지난 이야기에기에 자칫 고리타분하거나 시대성이 뒤떨어질 수도 있음을 염려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기우임을 밝히고자 한다. 본질적 내용에 있어서 오히려 이 시기에 우리가 심사숙고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싶다.

 

위에서 최순우가 주목했던 아름다움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속에서 누구나 공감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아름다움 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이기에 문화재 역시 필연적으로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본다.

 

"첫눈에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이나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봐야 하는 근시안적인 신경질이 없으며, 거칠고 성글어 보여도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시원하고 대범하면서 담담하고 조촐하다"

 

최순우 선생의 우리 것에 대한 이야기다.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의 조형미를 벗어나거나 억지로 헤치는 것을 삼갔던 우리 민족의 성정이 그들이 만들어낸 창작물에 고스란히 담겼을 것이다. 이는 또한 그들의 창작물이 어떤 곳에 놓고 보고 즐기려는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으로 만들어졌으며 그렇게 일상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라 믿는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그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성정이 바로 아름다움의 근본이기에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아름다움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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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한 손에 쥐고

솔솔 부치면

 

 

겸재(謙齋) 정선(鄭敾), 금강내산도, 조선 18세기 중반, 종이에 수묵

 

부채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 겸제 정선이 그린 금강산그림이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 바위사이를 불어오는 바람이 부채에 담겨 더운 여름을 나기에 안성맞춤이 아닐까 싶다. 금강산을 사랑하는 마음에 더위를 이겨낼 부채와의 정묘한 결합으로 선조들의 마음씀씀이를 알 수 있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이런 부채는 피서의 도구뿐 아니라 선비들의 소지품으로도 애용하였기에 그 속에 금강산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 돋보인다.

 

오주석의 눈에 든 이 그림은맨 처음 눈에 띄는 산 둘은 유난히 먹빛이 짙다.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하늘 반 땅 반이다가 점차 올라가면서 산은 가파르고 하늘은 가까워져 급기야 최정상 비로봉에 이르자 하늘이 머리에 닿겠다. 메다꽂듯 내리찍은 암봉의 필획들은 빠르고 예리하고 각지고 중첩되니, 봉우리마다 변화무쌍 하나도 같은 모습이 없다. 또 어떤 곳은 붓 두 자루를 한꺼번에 쥐고 그었는데 짙고 옅은 농담의 변주가 절묘하다. 골짝 사이로 아스라이 먼 곳에 절집이 어른거린다. 이렇게 절경을 빚어내는 솜씨는 조물주에게나 비길 수 있으리라.”

 

금강산에 우리민족에게 어떤 의미일까? 수많은 선비들이 직접 금강산을 다녀와서 유산기를 남겼고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유산기를 읽으며 금강산을 그리워했다. 특히, 화가들이 남긴 금강산 그림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금강산을 향한 열망을 담아내 주는 역할을 톡톡해 했다. 정조 임금도 금강산에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김홍도를 시켜 그림으로 그려오게 하여 감상하며 금강산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

 

수려한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은 한민족의 자랑이요 국토애의 원천이다. 온 겨레가 이 산을 너무나 사랑하고 외경했기로 산 이름도 철따라 달라진다.”금강산(金剛山), 봉래산(蓬萊山), 풍악산(楓岳山), 개골산(皆骨山)이 그것이다.

 

금강산을 그린 그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정선은 이 금강전도 외에도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에 들어있는 금강산내총도, 단발령망금강, 장안사, 불정대, 벽하담, 백천동장, 옹천, 고성문암관일출, 해산정, 총석정, 삼일포, 시중대를 비롯하여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에는 피금정, 단발령망금강, 정양사, 불정대 망십이폭, 백천교 출산도, 삼일포도, 옹천도, 총석정도 등이 있다.

 

겸재(謙齋) 정선(鄭敾)은 영조 때의 화원으로 조선시대 화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 우리나라 회화사에 있어 가장 큰 업적은 우리나라 산천을 소재로 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완성하고 성행시켰다는 것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을 따랐던 일군의 화가를 정선파라고 부른다.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연꽃 한 송이가 탐스럽게 피었다.”정선의 금강내산도를 해설하는 오주석의 눈에 이 그림은 연꽃으로 보였다. 그린이 정선의 마음과 보는 이 오주석의 마음이 만나 한 송이 연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순간이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책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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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처럼 서러워서 작은숲 에세이 4
김성동 지음 / 작은숲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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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지난 시간의 기록인 역사는 철저하게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다. 승자의 기록이 역사라는 말이 이를 증명한다. 당대 승리한 자의 시각에서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실을 축소, 삭제, 은폐, 왜곡 등의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기록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록을 만들고 남기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보는 역사 기록이기에 이를 볼 때는 엄격한 시각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역사를 보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그 해석은 천지차로 달라질 수밖에 없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중심에 두고 바라봐야 정당한 역사해석이 될까?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의 중심이 시대정신과 맥을 같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시대정신이란 결국 무엇이 옳은가의 문제와 결부되는 것이기에 당시에도 옳고 역사를 해석하는 시점에서도 올바른 것, 바로 의()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의 의()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도리를 일컬어 말한다. 그 속에는 나라와 나라, 집단과 집단 간, 개인과 개인 간의 의리 뿐 아니라 스스로 세운 자신의 뜻을 지켜나가는 것 역시 중요한 항목으로 포함된다. 그렇기에 안으로나 밖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그 모든 것의 기준을 세움에 있어 바로 인간의 도리를 우선에 두었던 것이다. 이 의()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의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역사로 기억하는 많은 것들이 과연 올바른 기준에 근거한 선택과 해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어왔던 많은 것들이 사실과는 어긋난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될 때마다 알 수 없는 울분이 치밀어 오른다.

 

이 책 김성동의 염불(念佛)처럼 서러워서도 같은 울분을 느끼게 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김성동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가족사를 언급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거나 축소,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는 일들을 오늘의 주제로 불러오고 있다. 김성동은 오늘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며 우리의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역사에 주목한 것이다. 바로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그래서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라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어른의 가르침을 담은 이야기로 읽힌다.

 

김성동이 주목한 역사로는 패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륙백제, 궁예, 묘청, 신돈, 이징옥, 김개남, 김백선, 최서해 남로당 등이 그 대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패배자라는 것이다. 기존 역사서에서와는 다른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철저히 승리자의 시각에서 지워지고 왜곡된 기록으로 남은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알지 못하여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를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부끄러울 수도 있는 과거를 올바로 청산하지 못한 점을 들고 있다. 청산해야 할 과거는 조선조 말 탐관오리와 아전배 친일파 미제국주의 세계 지배 전략인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친미파 오늘의 수구 기득권층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렇게 청산해야할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것으로부터 많은 부분에서 덜미를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에서 무엇을 올바로 극복할 것인가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백 명의 피지도 못한 목숨을 바다에 수장시키고도 그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입에도 올리는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발길이 붙잡힌 것을 개탄한다.

 

기존 역사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역사를 김성동은 주목하며 그 사람들의 면면을 다시 밝힘으로써 패배자라는 이름으로 역사에서 밀려난 우리 선조들이 이루고자 하였던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던지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다가 어떻게 그리고 왜 쓰러지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의 진실만큼은 알아야 하는 것이 자손 된 도리라는 것이다.

 

하여,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사라지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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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오주석 지음 / 월간미술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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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읽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살아가다 보면 이 말은 여러 가지 일에서 너무도 쉽게 확인된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관심 있는 그림 한 점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 속에 담긴 사람의 진솔한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리 쉬운 게 아니라면 것을 그림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자 한다면 그 분야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 자신 마음 속 울림과 어우러졌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에게 이런 생각을 확인하는 기회가 있었다. 예전부터 그림에 관심이 있었고 특히, 우리 그림이 주는 묘한 매력에 빠져 관련 서적을 하나 둘 모으다 보니 겹쳐지는 저자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 사람이 오주석이다. 오주석이라는 사람의 우리 그림에 대한 독특하고 감칠 맛 나는 그림 읽기를 보면서 그의 가슴이 얼마나 넓고 깊었을지 상상해 보곤 했다. 그의 우리 것, 우리 그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탐구정신과 책임감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다. 그 마음이 보여 그의 글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오주석(吳柱錫)은 지금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동양사학을 고고미술사학을 공부한 그는 조선시대의 그림과 단원 김홍도에 대한 독보적인 연구와 해설을 내 놓았다. 그는 학교 강단에선 학자로써 머물지 않고 자신의 연구 성과를 보다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다. 49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유작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이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에는 조선시대의 그림이 중심이다. 누구나 알만한 한번쯤은 보거나 들었을 우리 옛 그림 27점을 그 만의 시각으로 해설하고 있다. 그가 선정한 그림에는 김홍도, 신윤복, 강세황, 김정희, 이인문, 정선, 강희안, 김명국 등 조선시대를 주름잡았던 당당한 화가들의 그림이 담겼다. 이러한 그림을 해석한다는 것은 워낙 유명한 그림이기에 전공자로써 부담스러운 점이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화가와 그림을 해설한 기존 학자와 전공자들의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주석의 그림 읽기는 전공자의 박식함이나 전문성을 넘어선 무엇이 있다. 그는 전공자로써의 전문지식에 우리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가슴으로 읽는 따스함으로 그림을 읽어주고 있다. 그림을 읽어간다는 것은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시작한 그의 그림 읽기는 그림 속 무엇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마음과 그 그림을 읽는 독자의 마음이 하나로 만나는 지점을 찾아내 감동을 바탕으로 하는 소통의 기회를 안겨주는 것이다. ‘감상은 영혼의 떨림으로 느끼는 행위인 만큼 마음 비우기가 중요하다’고 한 이유를 알만하다.

오주석은 ‘우리 옛 그림 안에는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인 까닭이 들어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우리그림 하나 대기가 힘들다’는 현실의 안타까움이 들어 있다. 그의 가슴과 눈을 통해 발견하는 우리 그림 매력이 한 층 더 살아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知者 不如樂之者)’는 말의 진가를 그의 그림 읽기에서 확인한다.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우리 그림에서 발견한 감동을 모든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던 마음이 너무도 쉽게 발견되기에 생전에 좋아했던 화가 김홍도의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 : 차고 맑은 가을, 성근 숲, 달이 뜬다.’을 읽어주는 오주석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은 그림을 읽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의 모범답안 같다. 그림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오주석의 그 마음을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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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는

경치대로

대단했어도

나는

여전히

나일 뿐

 

 

강세황의 송도기행첩 중 영통동구도(靈通洞口圖)

조선 1757, 종이에 수묵담채

 

18세기 중반 조선의 그림일하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눈에 익은 산수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그림이다. 하지만, 표암 강세황이 평안도 개풍군 오관산 영통동으로 들어가는 길을 그린 작품이다. 민둥산에 커다란 바위가 제각기 자리를 잡고 그 사이로 난 산길을 말 타고 가는 사람이 화가 강세황으로 보인다. 거대한 산과 큰 바위 사이 보일 듯 말 듯 한 크기로 그려졌지만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은 이 말구종과 말을 탄 사람에 있다.

 

왼쪽 상단의 강세황이 쓴 화제를 보면

"영통사 계곡 가에 어지럽게 흩어진 바위들은 정말 굉장해서 크기가 집채만큼씩하며 시퍼런 이끼로 덮여 있다. 처음 대했을 때 눈이 다 휘둥그레졌으니, 전하는 말로는 저 아래 연못에서 용이 나왔다고 하지만 믿을 만한 말은 못된다. 그러나 그 주변 웅장한 구경거리는 참으로 보기 드문 것이다."

 

지극히 단순화 시킨 산과 바위의 모습이 오히려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기존 옛그림의 산수화와는 다른 느낌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산과 바위를 채색한 느낌이 새롭고 더욱 사람의 크기를 자세히 보아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그렸다. 자연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일수도 있지만 영통동구의 느낌이 화가 강세황에게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가는 놀랄 것 다 놀라면서도 제 정신만은 끝내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맑고 낙천적인 기분이 편안하게 작품 전체에 녹아 있다. 구성은 단순하며 바위의 세부 표현 역시 아주 간결하다. 특히 이 그림은 유별나게 개성적이고 이채로워서 비슷한 예를 다른 그림에서 찾아낼 수 없다.”

 

오주석은 그의 책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에서 영통동구도에 대해 한 말이다. 강세황이 활동하던 당시에 이미 서양화법이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강세황의 송도기행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경산수화는 조선 후기의 유행한 화풍이다. 기존 중국의 화풍을 그대로 답습하던 것에서 조선 산수의 실경을 바탕으로 화가가 추구하는 정신세계를 담는 것을 말하고 있다. 겸제 정선의 경우 남종화법을 토대로 하여 새로운 화격을 이룩하고 전통 실경산수화의 면모를 일신하여 새로운 진경산수화의 정형을 수립하였다. 진경산수화 작품으로 정선의 금강전도’, ‘인왕제색도를 비롯하여, 강희언의 인왕산도’, 강세황의 송도기행명승도첩’, 김홍도의 사군첩등이 있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책 속의 그림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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