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것은 뭘까?

시대의 사명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 인류의 운명을 바꿀 특별한 업적을 남긴 사람, 국제평화기구와 같은 단체를 통해 인류애 실천하는 사람,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 자신의 안위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사람 등 사람들의 삶을 몇 마디 말로 규정할 수는 없다. 모두가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고 본다면 이를 구분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 차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잘 산다는 것에 대한 규정 역시 대단히 어려운 문제라고 본다.

 

 

각자의 상대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잘 산다는 일반적인 규정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개인들의 삶을 구분하는 출발점이 된다. 보통의 경우 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보여주었던 행적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 의해 평가되고 규정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역사적 인물들을 평가하는 일이나 동시대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나 동일 선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동 시대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기에 역사 속의 인물들을 통해 그러한 부담감을 줄이면서도 사람의 tkaf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연암고전연구회에서 발간한 ‘선비의 길 원칙과 현실, 그리고 시대정신’을 중심으로 역사인물을 평가한 ‘나의 길을 가련다’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스물 네 명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이 될 것인가를 유추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들은 보한재 신숙주, 사숙재 강희맹, 매월당 김시습, 화담 서경덕, 면앙정 송순,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북창 정렴, 사암 박순, 송암 권호문, 내암 정인홍, 율곡 이이, 송강 정철, 손곡 이달, 백호 임제, 어우당 유몽인, 교산 허균, 서포 김만중, 성호 이익, 청담 이중환, 연암 박지원, 청장관 이덕무, 다산 정약용, 매천 황현 등 대단한 인물들이다.

 

 

스물 네 명의 사람들을 그들의 삶을 통해 특징지을 수 있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그 기준으로 그 사람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그 키워드로는 처세(處世), 명예(名譽), 절개(節介), 격물치지(格物致知), 무욕(無慾), 겸양(謙讓), 경의(敬義), 겸허(謙虛), 염퇴(恬退), 관물(觀物), 충의(忠義), 언로(言路), 트라우마(Trauma), 고절(孤絶), 풍류(風流), 기간(奇簡), 진보(進步), 어머니(母), 실학(實學), 명당(明堂), 초탈(超脫), 탐독(耽讀), 민본(民本), 사기(士氣) 등이다. 이는 선비로 통칭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을 가르는 기준으로 삼을 만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자신의 삶의 화두로 삼을만한 주제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준은 물론 옛사람들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에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에도 적용할 수 있어 ‘나의 길을 가련다’라는 책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책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후대의 다양한 평가를 모두 살핀다. 처세(處世)로 신숙주를 보는 것이나 진보(進步)로 허균을 탐독(耽讀)으로 이덕무를 보는 것 등은 익숙한데 초탈(超脫)로 박지원을 트라우마(Trauma)로 정철을 살핀다는 것은 의외다.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니 보지 못했던 그 사람의 다른 측면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나의 길을 가련다’는 시대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지는 사람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반영하고 있어 나름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고도 보인다.

 

 

온전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잘 산 사람일까? 살아생전의 평가는 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의 이해요구가 더 크게 반영되지만 죽은 뒤의 평가는 그 사람을 통해 얻고자 하는 다른 이해요구가 반영된다. 이렇듯 한 사람에 대해 올바른 평가란 애초에 무리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먼저 산 사람들의 삶을 통해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삶의 교훈은 분명하게 얻을 수 있다. 대부분 분명한 정치적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기에 현대의 정치가들과 비교하여 이들을 통해 분명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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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마주치다 - 옛 시와 옛 그림, 그리고 꽃, 2014 세종도서 선정 도서
기태완 지음 / 푸른지식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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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꽃, 시와 그림이 사람과 만나는 행복

수수꽃다리, 박태기나무, 목서, 수국, 파초, 작약, 나팔꽃, 맨드라미, 국화, 회화나무, 봉선화, 천리향, 이팝나무, 앵두나무, 무화과, 매화, 사과, 복숭아, 자두, 목련, 포도... 도시에 살다 한적한 시골마을로 삶의 근거지를 옮기고 나서 마당 한쪽 화단과 심기 시작한 꽃과 나무들이다. 잠자는 공간과 서재를 빼고도 제법 널찍한 공간이 있어 좋아하는 꽃과 나무들로 채워가는 중이다. 삶의 근거지를 시골로 옮기고자 했던 결정적 요인은 넉넉한 마음으로 자연과 벗하며 살고자 하는 것이 크지만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 역시 평소 꽃과 나무들에 관심이 많아 늘 자연에 주목했던 것이 그 배경이었다고 본다.

 

이사하고 나서부터 어디를 가든 눈에 띄는 꽃이나 나무를 보면 어떻게 하면 분양받을 수 있는지 씨앗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궁리하게 된다. 물론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내 집에 있는 꽃이나 나무를 분양하며 함께 나눠가지는 즐거움이 이렇게 큰 느낌인지 알아가는 것 역시 생각하지 못했던 즐거움 중 하나가 된다. 이사하고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와 제철에 제 모양과 색, 향기로 보답해 주는 꽃들을 바라보며 다가올 봄을 미리 기약해 보는 것도 놓치기 싫은 행복이다.

 

이런 내 마음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책, ‘꽃, 마주치다’를 만나는 동안 책 속에 나오는 꽃과 내 집에서 자라는 꽃이 나주앉아 대화라도 나누는 것처럼 다정함이 함께한다. 기태완의 ‘꽃, 마주치다’는 옛 시와 옛 그림 그리고 꽃과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다. 옛 시와 옛 그림 속에 등장하는 꽃과 나무들의 이야기를 저자 기태완의 경험을 살려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옛 시와 옛 그림은 중국의 이야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역사 속에 등장하는 관련된 주인공들을 불러내 현재의 주인공으로 살려내 마주 대하게 만든다. 눈을 돌리면 금방이라도 마주칠 것만 같은 현장감이 살아 있다.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꽃들이 언제부터 우리 곁에 있었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가 원산지가 아닌 꽃들이 대부분이기에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 곁에 와서 지금까지 함께 숨 쉬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선 문외한이다. 이런 궁금증을 저자는 옛 문인들의 글과 그림 속에서 찾아내고 이를 꽃에 주목하여 당시 사람들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따라가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점들까지 알려주고 있어 평소 궁금증을 해결하는데도 유용하다. 꽃과 인연 맺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시와 그림이 꽃이 담고 있는 이미지와 연결되어 지금 우리가 보는 꽃과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바로 우리 역사와 맥을 함께한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 문학, 인물, 그림 등을 통해 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꽃과 나무, 특별히 주목해야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주목하는 것도 아니다.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더라도 누군가의 눈에는 들어오는 꽃과 나무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어느 날 갑자기 꽃과 나무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시나 그림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턴가 알 수 없지만 눈이 가고 마음이 머물며 그 시간동안 함께하는 자연스러움이 있을 때 비로써 꽃과 시, 그림이 마음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마당 한쪽에는 이런 저런 인연으로 내 집에 온 국화가 제철을 만났다. 그 국화를 보며 인연 맺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꽃보다 사람이 먼저이기 때문일 것이다. 꽃으로 인연 맺은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 꽃이 주는 선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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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
진옥섭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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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지켜낸 명인열전

꿈, 희망, 도대체 이것들은 뭘까? 너무 뻔한 물음이라서 어쩜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어느 언저리에서라도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는 늘 함께할 수 있기에 위안 삼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지나온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삶의 마지막 자리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후대들에게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정답이 없는 삶만큼 이 물음 또한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누군가의 삶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을 대신하여 꿈과 희망이라는 긍정의 힘을 배우고 그 힘에 의지해 살아갈 수 있다.

 

보통 꿈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일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그러한 꿈은 상대적 계념에 불과할 뿐이다. 삶이 어떤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비추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믿고 의지한 가치관이 의미 있을 때 어쩌면 그런 사람들만이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진짜 꿈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그런 사람들의 삶을 추적한 한 사람이 있다. 전통예술 연출가라는 진옥섭이 그다. 연극과 탈춤을 통해 전통과 인연 맺은 후로 줄곧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사람으로 보인다. 하여 그가 찾아낸 각 방면의 사람들의 면면이 이 책 ‘노름마치’의 자자인 진옥섭에게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노름마치’는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로 ‘그가 나와서 한판 놀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 결국 판을 맺어야 하는데, 이때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칭하는 말이‘노름마치’라는 것이다. 저자가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고 무대를 만들어 대중들 앞에 세워왔다. 1993년부터 시작하여 최근 2013년까지의 소식이 담겼다. 이제는 소리나 영상만을 남기고 먼 세상으로 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도 있다. 저자 진옥섭이 발품을 팔아 찾아낸 ‘노름마치’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 이것은 사라져가는 전통을 흐름을 거슬러 되 쫒아가는 일이 된다.

 

예기(藝妓), 남무(男舞), 득음(得音), 유랑(流浪), 강신(降神), 풍류(風流) 이 속에 어쩌면 전통의 거의 모든 부분이 포함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각 부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명인들의 이야기이기에 전통예술의 인적흐름을 이 한 권에 담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녀, 무당, 광대 등으로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선택할 길이라기보다는 몸이 먼저 알고 따르니 어쩔 수 없이 삶을 송두리째 내맡긴 경우도 많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그에 걸맞는 사회적 인식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그 업을 놓지 못한 것은 아닐까?

 

장금도, 유금선, 심화영, 문장원, 하용부, 김덕명, 정광수, 한승호, 한애순, 김운태, 공옥진, 강준섭, 김유감, 이상순, 김금화, 이윤석, 정영만, 김수악 대부분 낯선 사람들이다. 하지만 저자 진옥섭이 ‘노름마치’로 찾아 만난 사람들이다. 이 책을 통해 만나는 그들의 삶이 진한 향기를 전해준다. 이들뿐 아니라 이들과 함께 해온 우리시대 전통 파수꾼들의 이야기를 만난다.

 

깊어가는 가을, 도처에서 문화예술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놓치지 않고 참여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만 하지만 이내 잊혀지고 만다. 여기에 등장하는 노름마치들 역시 시간이 흐르며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몸의 언어는 시대에 걸맞는 모습으로 이어져 우리의 전통을 만들어 왔듯이 앞으로도 그들 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지속될 것임은 의심치 않는다.

 

다시 꿈,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시간이라는 사슬에 묶여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남긴 진한 흔적은 이제 전통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가슴에 먹빛으로 새겨져 다시 사람들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화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았다. 무엇이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 속에 자리 잡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노름마치’들의 삶을 통해 재현되리라는 믿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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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빛깔 - 여성동아 문우회 소설집
권혜수 외 지음 / 예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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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의 다양함을 맞이한다

햇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차가워진 날씨만큼 햇볕이 드는 곳을 찾아 몸을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간인 것이다. 그 햇볕이 선사하는 빛깔은 보는 곳에 따라 사간에 따라 달리 보인다. 꼭 이맘때면 유달리 그 빛깔이 더 반가운 것은 아직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서일까? 이 계절 오후의 빛깔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런 가을빛을 담고자 한 것일까? 여성 소설가 16인의 스며드는 이야기를 담았다는‘오후의 빛깔’은 그렇게 각기 다른 빛깔을 담아 놓은 단편 소설집이다. 더욱 어쩌면 오후의 빛깔이 담고 있는 이미지의 다양함 만큼이나 나름대로의 고유한 인상으로 다가서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는 점이 가을빛이 주는 묘한 이미지와도 연결되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여성 문인의 산실이라는 ‘여성동아 문우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이다. ‘여성동아 문우회’는 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1~3년에 한 번씩 회원들의 작품을 모은 소설집을 펴내고 있는데 이 소설집 ‘오후의 빛깔’이 그 작품집이다.

 

‘오후의 빛깔’에 작품이 실린 작가로는 김경해. 이경숙, 한수경, 이근미, 장정옥, 조혜경, 권혜수, 조양희, 유춘강, 송은일, 유덕희, 박재희, 우애령, 김정희, 김설원, 류서재 등 16인이다. 이미 작품으로 익숙한 작가들도 있지만 낯선 사람들도 있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기회가 될 듯하다. 이들의 작품을 눈뜨는 파랑, 노래하는 빨강, 잠드는 하양으로 구분하여 엮었다. 각기 가을날의 오후 빛깔만큼이나 다양한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또 공유할 비슷함이 있어 그 빛깔을 파랑, 빨강, 하양으로 구분하여 묶었다. 그 속에는 여성 작가의 눈으로 본 세상살이의 갖가지 모양이 그려진다. 여성의 시각, 여성의 특유한 섬세함으로 잡아낸 사람들의 일상이 지금 당장 우리들의 모습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유춘강의 ‘꽃이 붉다고 한들’에서 조선시대 허균이 현실로 인연을 찾아온다는 설정, 조양희의 ‘캠던가의 재봉틀’에서 자신의 존재 이전의 무엇을 담고 있다는 것, 이근미의 ‘푸른, 그 새벽’에서 맺지 못한 인연에 대한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기다림 등이 주목된다.

 

‘오후의 빛깔’, 지금 딱 이 계절에 어울리는 빛깔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하다. 소설집이라는 특성이 친숙한 작가보다는 낯선 작가와의 만남에서 그 빛깔의 선명함이 더욱 빛을 발한다. 바로 이렇게 또 작가를 알아가는 맛이 있어 우연한 만남에서 필연으로 다가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가을빛의 다양함이 이럴까? ‘나른하지만 날카롭고, 고요하지만 흔들리는 오후의 빛깔’이라는 소설집에 대한 설명이 마치 가을날 오후 빛깔을 그려놓은 말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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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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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도 죽지도 않고

혹자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을 바랄지도 모른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치곤 그러한 삶을 반기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왜 그럴까? 유한한 목숨을 아쉬워하며 천년이라도 살 것처럼 날뛰는 사람들조차 막상 늙지도 죽지도 않고 살아간다면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과언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말이다. 불생불멸하는 것은 없다. 생명 있는 존재는 언제나 그 끝을 향해 질주하는 것이다. 하여, 짧은 삶에 대해 애착을 가지게 되며 살아있을 때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늙지도 죽지도 않고’를 가정한다면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김대현의 ‘홍도’를 통해 그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홍도는 동현이라는 영화감독이 비행기 안에서 433살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한 여인 ‘홍도’를 만나면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기축옥사’의 중니공인 정여립에 관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는 동현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시나리오에 관심을 보이는 홍도와 헬싱키 반타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 비행기 안에서 8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가 중심이다.

 

'1580년생이시면 올해로 433살'이라는 홍도의 이야기는 잘 꾸며낸 이야기꾼의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임진왜란, 일본 생활, 천주교박해 등을 겪고 진주만, 암스테르담, 핀란드 등으로 이어지는 홍도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점점 그 속에 빠져드는 명현의 마음은 혼란스럽다. 여인 홍도가 살아온 시간 433년은 어떻게 보면 ‘살아온’ 것이 아니라 ‘살아진’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짧은 것이 시간이지만 홍도에게 시간은 언제나 넉넉하다. 그러기에 그녀는 주체적으로 살아간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저절로 살아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끝이 보장 되지 않은 삶이 주는 또 다른 무게감에 눌려 보낸 시간으로 보인다. 그것은 죽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막무가내 식으로 살아온 시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만 본다면 그저 그런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홍도’에게는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이름 지어준 ‘자치기’라는 사람과 신분을 훔쳤던 원수의 딸 정주옹주와 아버지다. 홍도를 이들을 만나 자신의 사랑을 실현한다. 혹시 환생하여 다시 만날지도 모를 그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어쩜 홍도에게 주어진 죽지 않은 시간은 아닐까?

 

‘역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역사에 대한 심오한 장악력’이라는 혼불문학상 심사평 중 하나다. 기축옥사에서 임진왜란과 천주교박해에 이르는 과정이 숨 가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대단한 흡입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홍도의 일상을 그려가는 과정이 다음에는 어떤 장면이 그려질지 마음이 앞서가는 것도 있다. 그렇더라도 홍도의 여정에는 개연성이 짙어 무엇인가 빠진 듯 한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무엇이 빠졌을까? ‘늙지도 죽지도 않고’라는 시간 속에 노출된 한 사람의 진정성이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그려진 것은 아닌가 싶다. ‘늙지도 죽지도 않고’에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그런 숙명 속에 살아가는 사람에게 피하지 못할 숙제가 아닐까?

 

‘늙지도 죽지도 않고’살아가는 주인공에게 독자인 내가 기대하는 것은 그런 숙명을 자신의 삶 속에 어떻게 실현해가는 가에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허전함이 있다. 인천공항에서 내려 헤어질 시점에서 동현이라는 사람이 환생한 ‘자치기’라는 설정의 다소 억지스러움이 어쩌면 이 소설의 한계는 아닐까? 사랑 하나로 ‘늙지도 죽지도 않고’를 그려내기에 허전함이 있어 보인다. 소설은 작가의 손을 떠난 시점부터 독자의 몫이라면 독자인 한 사람으로 주목하는 것을 스스로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 좋은 화두를 삼을 수 있게 해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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