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평민열전 - 평민의 눈으로 바라본 또다른 조선
허경진 지음 / 알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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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주역으로 눈을 돌려야

왕조시대의 역사를 조망할 때 주목하는 계층은 단연 왕과 그 권력의 중심에 선 사람들로 사대부들이다. 이들에 의해 정치가 운용되는 시대이고 문자로 기록된 역사를 중심으로 살피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반면, 현실 정치와 문자사용에서도 소외된 계층이면서 사회 밑바닥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한 사람들은 철저히 소외되어 왔다. 왕권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이해는 동전의 한 면 만을 부각시켜 온전한 역사 이해에 걸림돌로 작용하여왔지만 이면의 모습에 대해 주목하는 것 또한 배재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역사로부터 소외되었던 계층의 사람들이 사회의 변화와 자신들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점차 사회 각 분야에서 중심인물로 등장한 시대가 19세기 조선 후기에 와서야 가능해졌다. 그들은 낮은 지위의 벼슬에 머물거나 사대부 양반들이 기피하는 부류의 직업을 가졌지만 자신만의 능력을 발휘하여 양반 사대부를 아우르는 중심인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들을 역사에서 올바로 평가하기 위한 노력은 최근에 들어서야 시도되엇고 그것도 지극히 한정된 분야에서 이뤄져왔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의 한계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지각 있는 역사학자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새롭게 발굴되어 독자들과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무척이나 환영할 만한 흐름이라 여겨진다. 양반의 아닌 평민의 눈으로 바라본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허경진의 조선 평민 열전도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반갑기만 한 책이다. , 그림, 서예, 의료, 역관, 천문학, 출판 분야에서 활동했던 사람들과 사람의 성격에서 따라 의협이나 충렬, 장인, 효열 등으로 110명에 달하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이들 사람들에 대해 오늘날의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본 것이 아니다. 조선 후기 활동했던 당시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것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인용한 책으로는 평민 출신의 화가 조희룡이 1844년에 지은 호산외기와 아전 출신 유재건이 1862년에 엮은 이향견문록그리고 그들의 친구였던 시인 이경민이 1866년에 엮은 희조질사에 올라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선별하여 이 책에 실었다. 이들 책은 전()이라는 형태로 평민들의 진솔한 삶을 보여주다

 

편역자 허경진이 이들 책에서 주목한 사람들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책의 유통에 헌신했던 조신선, 사람의 치료에만 매달렸던 백광현, 서당의 교재를 출판한 장혼을 비롯한 조선 후기 평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역사로부터도 외면당해왔다. 그들을 현시대로 불러와 역사의 한 축에 대한 그동안의 소외를 만회하려는 출발점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남다르게 살았던 평민들은 이들 외에도 무척 많았을 것이다. 종이책이라는 한계 속에서 가능하면 많은 분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으려 했다는 편역자 허경진의 말은 이처럼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어야만 그간의 반쪽 역사를 온전한 역사로 복원하는 시각에서 분명 의미 있는 출발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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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한 고전 한 줄
윤태근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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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근본을 돌아보게 하는 동양고전

도무지 풀리지 않은 의문 중 하나가 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성찰의 결과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용하다는 것이다.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달에 비추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자기성찰의 결과는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동양사상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제자백가들의 사상논쟁에서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을 비롯한 사회, 정치의 문제를 바라보는 내용에서는 본질적으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때론 후퇴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실의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현재의 문제점 해결을 위해 수천 년 전의 사람들이 이야기 했던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하기까지 한다. 인간의 사고능력은 이미 그때 완성된 것일까? 그렇더라도 수천 년 전에 이미 사고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놓은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하는 것은 또한 무엇 때문일까? 수천 년 전에 회자된 고전이 현대사회에서도 그대로 유용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현실은 현실이기에 인정한다고 치자. 하여, 다시 고전이 문장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찾고 미래를 희망으로 맞이하기 위해서 다시 고전을 만나야 한다. 동양 고전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인 약 2500년 전에 활동했던 제자백가의 사상이 주류를 이루며 그 중에서도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순자, 한비자 등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이들의 삶의 기록인 동시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으로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대학 등에 담겨 있고 동양고전이라고 하면 이들을 말하고 있다.

 

이 책 윤태근의 청춘을 위한 고전 한줄은 바로 그러한 동양고전에서 현대에서도 유용한 문장을 선별하고 그에 대한 해석을 붙여 자자 자신이 현대인들의 삶의 풍속도에 맞춰 짧은 해설을 곁들인 책이다. 중심 대상은 청춘으로 그들이 학문연구나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에서 겪게 되는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제공하고자 발간된 책이다.

 

小嘗苦曰苦 多嘗苦曰苦(소상고왈고 다상고왈감)

쓴 것을 조금 맛본 사람은 쓰다고 하고, 쓴 것을 많이 맛본 사람은 달다고 한다.(묵자. 비공상 제17)

 

현대인들이 정치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표현하는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적절한 문장이 아닌가 한다. 작은 잘못이나 상처에는 크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국민들의 생활전반을 규정하고 근본을 흔드는 커다란 정치적 요소에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아마도 이 문장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이 책에는 자신이 처한 일상이나 사회적 현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봐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할 때 필요한 문장들로 나열되어 있다.

 

동양고전이 동서양을 넘어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지라도 한자라는 문자로 기록된 것이기에 현대인들이 접하기란 쉽지 않은 환경이다. 이를 감안하여 원문을 싣고 그에 대한 해설을 바탕으로 간략한 해설을 곁들인 이 책이 주는 실용성이 부가된다고 보인다. 천춘을 대상으로 한 발간의도에 충실하게 원문에 대한 해설이 어렵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포켓북처럼 크기가 작은 책이기에 휴대하며 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 삽인된 그림에 대한 출처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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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강흥수 지음 / 북향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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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정신을 빼면 조광조는 없다

이상과 현실은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속내는 따로 있는 듯하다. 개혁정신에 대한 반대이며 현실 안주에 머무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정치는 진보와 보수라는 양대 진영에서 각기 제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정치로 보기는 힘들다. 진보세력이 그만큼 미약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현실에서 정치개혁은 이상과 현실에서 현실의 문제에 주목하는 사람들의 이해요구의 방향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야당도 여당도 한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로 본다면 현실정치의 답답함은 조금 이해가 갈만도 하다.

 

이러한 우리 정치현실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 500년 전 조선을 개혁코자 목숨바쳤던 조광조가 그 사람이다. 조광조는 천인무간(天人無間:하늘과 사람은 하나다)이라는 개혁 철학을 바탕으로, 무너져 가는 조선을 구하고자 몸부림치던 혁명가다.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 이상과 현실에서 이상을 실현하고 싶은 열망의 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나물에 그 밥 꼴인 현 정치인들 속에서는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을 찾지 못하는 현실이 오랜 시간이 지난 사람을 현실로 불러온다.

 

강흥수 역사 장편소설 조광조에는 한마다로 조광조는 없다. 개혁정치의 표상으로 조광조를 그려간다면 중심에 조광조의 개혁정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중종반정 이후 조선 정치의 한계 속에서 조광조에 대한 주목은 여느 정치가와 비슷하게 그려진다. 중종의 신뢰에서 급부상하고 다시 중종의 관심에서 벗어나면서 몰락했지만 그의 정치행보를 그려가는 이 소설에서는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사람만 바뀌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다른 관점으로 주목해야할 시선을 흩트리는 말이다. 세상을 이루는 중심이 사람이기에 사람이 바뀌면 세상은 바뀐다.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중심에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세상을 정치제도나 사회구조로만 이해한다면 편협한 시각이다. 이 소설이 개혁의 조광조가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시각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렇다고 조광조가 모든 부분에서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 기술도 필요하다. 완급조절이나 선후문제 등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광조의 과감한 추진력은 혁명가 그것으로 봐야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둘 세상을 바꿔나갈 수 없는 시대적 한계에서 일시에 현실을 뒤엎을 과감함을 혁명 그것으로 보고 싶다.

 

현 정부의 국가개조론이 대두되며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질을 벗어나 곁가지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마치 본질을 바꾸는 것으로 오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이 무엇을 희망하는지를 외면한다면 결국엔 그들의 이해요구를 실현시키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부와 정치인들의 행보는 정치의 중심에 국민이 있는지 없는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주고 있다. 정치가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지, 정치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현실정치의 시금석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것이 조광조를 주목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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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진설 - 근황 인문학 수프 시리즈 6
양선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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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실은 작고 가벼운 이야기에 있다

누군가는 SNS가 또 다른 세상이라고 한다. 내가 사는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말이겠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현실과 SNS를 구별하고자 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과연 이 둘은 그렇게 구별하여야 할 만큼 다른 세상일까? 물론 익명이나 대면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는 구별이 될 수도 있지만 페이스북과 같이 자신의 얼굴을 내걸고 소통하는 것으로 본다면 특별히 구별하는 것이 유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비롯한 카카오스토리와 같은 SNS 공간에서 서로의 삶을 보며 공감하고 소통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의 활용은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세계임이 분명하다. 일상과 SNS를 넘나들며 소통의 기회를 만들고 그 속에서 인간관계를 확장하며 그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 인간의 삶에 분명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사람들의 삶이 일상이 이뤄지는 시공간에 한정된 것을 무한으로 확장하고 있는 SNS 공간은 이제 우리들의 삶의 구체적인 현장인 셈이다.

 

페이스북의 내 페친으로는 시인, 소설가, 동화작가 등 대부분은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올리다보니 조금은 부담스러운 만남이 있다. 이런 문학인이 내게 친구신청을 하게 되면 우선 내가 그 사람의 책을 페이스북에 올렸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부담스럽다. 인문학 수프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 소가진설의 소설가 양선규도 그런 만남이었다. 아직 구체적 소통은 없지만 그의 책에 대한 느낌을 올리려고 생각하니 생기는 부담감이다. 그렇지만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 각기 자신의 시각으로 작품을 만나는 것이기에 독자의 몫을 다하면 될 것이다.

 

양선규의 소가진설(小家珍設)(근황)’은 인문학 수프 시리즈 장졸우교(藏拙于巧)(소설), 용회이명(用晦而明)(영화), 이굴위신(以屈爲伸)(고전), 우청우탁(寓淸于濁)(문식), 감언이설(甘言利說)(시속)에 이은 여섯 번째 책이다. 소설을 구성하는 다양한 플릇에 대해 소설가인 작가가 자신의 일상을 통해 소설과 사람들의 삶의 연관성과 그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양선규는 소설 쓰기는작고 가벼운 이야기생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라고 했다. 이번 책 소가진설(小家珍設)은 지난 책에서 미흡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에 더하여 보다 내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자신의 성장과정, 아이들, 영화이야기, 이웃과의 사귐, 페이스북 활동에서 얻은 지혜 등을 통해 얻은 지극히 사소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삶, 인생, 사회적 관계 등으로 사고를 확장시켜가며 독자들을 자신의 내면의 성찰로 안내한다. 다소 사족같은 이야기가 불쑥불쑥 끼어들어 미소를 자아내게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겪게 되는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끌어간다.

 

생의 진실을 밝히는작고 가벼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삶의 진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커다란 계기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덜 주목하게 되고 일상으로 겪다보니 지나치기 일쑤다. 하지만, 이런 작고 가벼운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소다. 작고 가벼운 이야기에 주목할 때 비로소 우리들의 삶은 훨씬 더 풍부해 질 것이다. 그동안 지나쳐온 자신의 삶에서 이제 이런 작고 가벼운 이야기에 주목해 보자. 반복되는 작고 가벼운 이야기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큰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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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오주석이 사랑한 우리그림

 

미술사학자 오주석은 나의 스승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그가 우리그림을 해설한 책을 통해서다. 이미 작고한 사람이기에 만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어갈수록 만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해졌다. 마음과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여, 이른바 사숙이라는 관계를 혼자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저 혼자 좋아하는 것으로 그의 이름으로 발간한 모든 종류의 책을 구해 읽고 모아두었다. 내 책장 가장 가까운 곳에 소중히 보관 중이며 자주 꺼내 본다.

 

오주석(吳柱錫)은 열정적으로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미술사학자다. 단원 김홍도와 조선시대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한 미술사학자라는 평가 받는 그는 한국 전통미술의 대중화에 앞장선 사람이다. 아쉽게도 2005249세로 생일 마쳤다. 오주석은 그림뿐 아니라 음악도 사랑한 사람이다. 클래식 기타를 능숙하게 연주하는가 하면 피아노, 첼로에 우리 악기 거문고까지 연주하며 삶의 깊이를 더하고자 열정적으로 살아간 사람이다.

 

오주석은 우리 옛 그림 안에는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인 까닭이 들어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우리그림 하나 대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전국을 돌며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강연을 해왔다. 그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知者 不如樂之者)"는 옛말을 인용하며, "감상은 영혼의 떨림으로 느끼는 행위인 만큼 마음 비우기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2004년 가을 다시 그를 배워간다는 마음으로 그를 아끼던 사람들에 의해 사후에 발간된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그림속에 담긴 그림이야기를 다시 만나고 싶다. 오주석의 이야기가 중심일 것이다. 그가 해설한 그림 이야기를 통해 우리 옛 그림을 만나며 느꼈던 내 이야기를 조금 더할 뿐이다. 이 가을이 깊어가는 동안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은 한없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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