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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샛길로 들어가고,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낮추고, 잠깐의 평화로운 순간을 위해 일찍 길을 나서며, 스치는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차를 멈추고, 지나온 길을 기꺼이 거슬러 올라가고, 신발을 벗고 냇가를 건너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길을 나서는 것, 무엇이든 시선이 머무는 순간 걸음을 멈춘다.

쉽지는 않지만 못할 것도 없는 것들이다. 세상을 조금 낯설게 보고자했던 이런 시도가 몸과 마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오늘도 그 멈추지 않을 길 위에 서 있다.

어제 같은 오늘이면 좋고, 오늘 같은 내일이길 소망한다. 이기심의 극치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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得有汝幸矣 득유여행의

너를 얻을 수 있어 큰 행운이도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강진 유배시절이 만난 제자 황상(黃裳, 1788~1863)에게 한 말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들어 문하에 들기를 주저하는 황상에게 다산은 삼근계三勤戒를 써주며 배움을 격려했다. 어느 날 제자 황상이 보내온 시 한편을 읽고서 다음과 같이 그 소회를 밝혔다.

“부쳐온 시는 약간 기세가 꺽이는 듯하지만 기발하고 힘이 있는 것이 내 기호에 꼭 맞는구나(頓座奇崛). 기쁨을 형언할 수가 없구나.” “아에 너에게 축하하는 말을 전하며 나 스스로에게도 축하하고 싶구나. 제자 중에 너를 얻을 수 있어 행운이도다.”

제자가 스승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리라.

이런 관계가 어찌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만 해당하겠는가. 벗과 벗, 자식과 부모, 연인. 부부ᆢ. 관계를 형성하는 모든 사이를 표현하는 최고의 말이라 여겨진다.

등치 큰 박새 아래 보일듯 말듯 자리를 잡은 천마괭이눈이다. 위세에 눌려 빛을 잃을만도 한데 오롯이 제 빛과 모양을 유지하며 스스로 존재한다. 격에 맞지 않다고 내칠법도 한데 자신의 그늘에 넉넉히 품었다.

물이 위에서 흐르듯 인정도 다르지 않다지만, 무엇이든 일방통행은 없다. 귀하게 대하면 귀하게 대접 받는다. 내 주변을 둘러볼 기회로 삼는다.

得有汝幸矣 득유여행의

너를 얻을 수 있어 큰 행운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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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에 초록을 더해가는 숲은 봄에서 여름으로 탈바꿈하느라 쉴틈이 없다. 뭇생명들을 품고 기르기 위해 숲은 짙어지고 깊어진다. 풀은 땅을 덮고 나뭇잎은 하늘을 가린다. 닫힌듯 열린 숲은 숨 쉴 틈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때를 보내고 있다.

온기를 담은 품으로 생명을 기르는 일이 숲만의 고유 영역은 아니다. 사람도 사람들의 숲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고유한 빛과 향기로 채워간다. 사람의 숲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거울로 삼고 제 길을 간다.

온기와 그늘로 생명을 품어주던 숲도 눈보라와 비바람으로 그 생명을 내치듯, 언제나 내 편으로 든든한 언덕일 것만 같던 사람들도 자신의 잇속을 챙기느라 너무도 쉽게 손바닥을 뒤집는 것이 사람의 숲이다. 이렇게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에서 풀과 나무의 숲이나 사람 숲은 서로 다르지 않다.

떨어진 노린재나무 꽃잎에게 제 품을 내어주었다. 생의 마지막이 이토록 편안하다면 다음 생을 꿈꾸어도 좋지 않을까.

스승의날이다. 풀 한포기, 새싹 하나, 떨어진 꽃잎ᆢ. 돌아보면 세상 만물 어느 것 하나 스승 아닌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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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꽃놀이 가서 얻었다. 노심초사 하는 마음으로 겨울을 나고 봄을 맞았다. 밖으로 내놓았던 화분에 어느날 불쑥 솟아오른 꽃대가 하도 반가워 다시 서재로 들여 놓았다.

조바심 내는 모습이 우습기도 해서 슬그머니 처마밑 밖으로 내다 놓았다. 아침 저녁 나고 들며 살피는 눈길에 애지중지 하는 모습에 실없이 웃기만 한다.

실꽃풀이다. 화분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으나 적절한 환경을 유지해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받아들인다.

꽃이 피는 날 조촐한 의례라도 치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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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그래왔고 어쩌면 지금도 '들이대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꽃도 사람도 자세히 봐야 이쁘듯, 기본은 거리를 좁혀 자세히 보는 것에 있다는 것을 핑개로 여기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가까이만 다가선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더 알고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들이대지만 경험이 쌓이면 이제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두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황이나 조건, 관계에 의해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함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상대와의 알맞은 눈맞춤에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들이대면서 확보된 감정이 거리를 둠이 필요하다는 이성과의 원만한 합의가 요구된다. 그렇게해서 확보된 거리로 인해 보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서로가 마주볼 수 있게 된다. 비로소 공존이 가능해진 것이다.

원하는 것만을 찾는 거리가 아니라 대상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볼 수 있는 '눈맞춤의 거리'를 찾아간다. 꽃을 찾아 눈맞춤하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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