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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淡 평담
어느날 반가운 이가 남도 나들이 길에 내가 거처하는 모월당에 들렀다.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관심사인 붓글씨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불쑥 내민 글씨다.
밤이 깊도록 창문에 걸어두고 글씨가 전하는 느낌과 그 뜻에 관한 담소가 이어졌다.

'고요하고 깨끗하여 산뜻하다'는 평담의 사전적 의미다. 이 글씨와 내가 잘 어울리겠다는 말에 선듯 받았다. 머리맡에 두고보며 담고 있는 뜻의 무게를 짐작하면서 몇날며칠을 두고 살피기를 거듭했다.

"평온하고 담백 충담(?淡)한 풍격적 특성을 일컫는 말로서 주로 풍격 용어로 많이 쓰인다. 평담은 평범하고 용렬해서 담담하기만 하고 깊은 맛이 없는 것과는 다르다. 사공도(司空圖. 837-908)는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에서 평담을 "따뜻한 바람과 같이, 옷깃에 푸근하게 스민다"고 노래하였다. 때문에 평담은 비교적 맑고 고아하며 편안하고 고요하며 한적한 정취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검색하여 찾아낸 뜻이 여기에 이르렀다. 글씨를 쓰고 나에게 전해준 이의 마음을 짐작은 할 수 있으나 그 뜻을 감당하기에 버거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곁에 두고서 일상의 '화두'로 삼아도 좋을 것이라 여겨 그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한다.

'평이하나 오래 보아도 물리지않는 물 같은 맛'

#글씨는_서예가_항백_박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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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슬픔은 그날로 끝났고 그날의 즐거움도 그날로 끝났다"

*문장 하나에 걸려넘어진다. 우연히 내게 온 오래된 책 머릿말에 담긴 문장이다. 정채봉 선생님의 "눈을 감고 보는 길"이다. 초판본이 2001년이니 20년을 건너와 손에 들어온 셈이고 다시 새로운 글로는 만나지 못할 일이기에 아주 특별한 인연이라 여긴다.

그동안 주목해 온 생각과 맥이 통하는 단어나 문장을 만나면 바짝 긴장하거나 반대로 한없이 풀어지는 기분을 경험한다. 최근에 만났던 서예가 박덕준의 글씨 '평담平淡'이 그랬고 이 문장에서 다시금 만났다.

"가슴에는 늘 파도 소리 같은 노래가 차 있었고 설혹 슬픔이 들어왔다가도 이내 개미끼리 박치기하는, 별것 아닌 웃음거리 한 번에 사라져 버리곤 했다."

바로 이어지는 문장이다. 바다를 처음 본 선상님에게 그것도 동해바다의 특별한 느낌을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이제 바다의 넓고 깊은 품에 안겨계실까?

어디서 차용한 것인지 내가 쓴 문장인지는 잊어버린 '어제 같은 오늘이면 좋고 오늘 같은 내일을 소망한다'와도 다르지 않다.

"그날의 슬픔은 그날로 끝났고 그날의 즐거움도 그날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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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牧丹은 화중왕花中王이요

모란牧丹은 화중왕花中王이요 향일화向日花는 충신忠臣이로다 연화蓮花는 군자君子요 행화杏花는 소인小人이라 국화菊花는 은일사隱逸士요 매화梅花는 한사寒士로다

박朴꽃은 노인老人이요 석죽화石竹花는 소년少年이라 규화葵花는 무당이요 해당화海棠花는 창기唱妓로다

이 중에 이화利梨花는 시객詩客이요 홍도紅桃 벽도碧桃 삼색도三色桃는 풍류랑風流郞 인가하노라

*조선사람 김수항(金壽長)이 지은 시조다. '해동가요'를 편찬했다. 지금도 여창가곡 편수대엽으로 불리운다.

꽃에 사람의 마음을 투영하여 이러니저러니 온갖 미사여구를 붙였다. 지금 시대와 사뭇 다른 마음이기도 하지만 달리보면 크게 다르지도 않다. 꽃을 보는 마음도 시대와 그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에 당연한 일이다.

모든 꽃은 제 각각 고유한 결과 향을 지녔다. 피는 시기와 모양, 자라는 환경은 각기 다르나 보는 이의 가슴에 향기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건넨다. 누리고 못 누리고는 오직 받는 이의 몫이지 꽃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름을 부르는 비가 내린다. 온 세상이 촉촉하게 젖었다. 하윤주의 노래로 함께 한다.

https://youtu.be/H7To3Hz_c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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嗛 마음에 맞을 겹

우연히 한자 한자를 들여다 본다. 마음에 맞을 겹이다. 평소 주목하고 있는 겹에 닿아있어 그 의미를 헤아려 본다. 겹은 거듭하여 포개진 상태를 일컫는다. 겹쳐지려면 겸손함으로부터 출발 한다. 겸손하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으니 더 깊은 공감을 불러온다. 통하여 겹에 이르러야 마음에 맞는다.

겹쳐져야 비로소 깊어진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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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봄도 끝자락이다. 매서운 겨울의 눈보라가 봄의 화려한 꽃향기를 준비했듯 나풀거렸던 봄향기로 맺은 열매는 이제 여름의 폭염으로 굵고 단단하게 영글어 갈 것이다.

미쳐 보내지 못한 봄의 속도 보다 성급한 여름은 이미 코앞에 당도해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짐작되는 변화보다 예측할 수 없이 당면해야하는 폭염 속 헉헉댈 하루하루가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그 숲 속을 걷거나, 숲 속에 서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숲이 전해준 위안을 꺼내보며 스스로를 다독일 일이다.

태백산 천제단 아래,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의 품에 들었다. 속을 내어주고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나무다. 다시 천년에 또 한번의 봄을 건너 여름을 기록할 나무의 품은 아늑했다. 처음 든 태백太白의 품이 어떠했는지를 기억하게 해 줄 나무이기에 곱게 모시고 왔다.

오월 그리고 봄의 끝자락, 시간에 벽을 세우거나 자를 수 없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다. 그렇더라도 풀린 것의 매듭을 묶듯이 때론 흐르는 것을 가둘 필요가 있다. 물이 그렇고 마음이 그렇고 시간이 그렇다. 일부러 앞서거나 뒤따르지 말고 나란히 걷자.

이별은 짧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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