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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

막연함이 아니라 확신이다. 든든한 믿음이 있기에 느긋함을 포함한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먼 길 돌아오게 되더라도 꼭 온다는 믿음으로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 이때의 기다림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의 다짐이다.

이 확고한 믿음 없이 상사화는 어찌 그 긴 시간을 견디며 매미는 땅속의 시간에도 내일을 꿈꾸고 민들레는 갓털은 어찌 바람에 그 운명을 맞기겠는가?

이러한 믿음은 의지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심장 박동이 가르쳐준 본래의 마음자리에 근거한다. 머리의 해석보다 더 근본자리인 가슴의 울림으로부터 출발한다.

금강초롱, 긴 시간을 기다렸고 먼길을 달려와 첫눈맞춤을 한다. 짧은 눈맞춤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를 아우르는 시간이다.

미소는 어제나 내일이 아닌 오늘의 몫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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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슬蕭瑟바람을 기다린다. 볕의 기세가 한풀 꺾여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은 이미 대숲을 건너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아침 기온이 전해주는 소식에 조금은 더 깊어져야 한낯의 볕이 반가울 때라지만 간혹 쏟아지는 소나기가 까실한 공기를 불러오니 문턱은 넘어선 것으로 본다.

할일없다는 듯 대숲을 걷다가 혹 챙기지 못한 내 흔적이라도 있을까 싶어 돌아본 자리에 발걸음이 붙잡혔다. 한동안 허공에 걸려 한들거리는 댓잎하고 눈맞춤하였더니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흔들리는 나를 댓잎이 가져가버렸다.

소슬바람을 기다리는 내 마음이 저 허공에 걸린 댓잎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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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우문愚問에 현답을 기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저 묵묵히 바라다 볼 뿐이다.

마주하는 눈에 담긴 뜻情이 가득하다. 만든이의 마음이나 뜰에 들인이의 마음에 보는 이의 마음이 더하여 온기가 스며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천개의 향나무, 열개의 목서가 특유의 향기로 울타리를 만들었으니 情이 새록새록 깊어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염화시중의 미소가 번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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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人賦嶺花 위인부령화

毋將一紅字 무장일홍자
泛稱滿眼花 범칭만안화
花鬚有多少 화수유다소
細心一看過 세심일간과

고개 위의 꽃

‘홍(紅)’자 한 글자만을 가지고
널리 눈에 가득 찬 꽃을 일컫지 말라
꽃 수염도 많고 적음이 있으니
세심하게 하나하나 살펴보게나

*조선 사람 박제가(朴齊家 1750~1815)의 시 爲人賦嶺花 위인부령화다. 실학자이자 문인. 호는 초정楚亭. 본관은 밀양이다.

붉은 빛을 띤 꽃을 보면 쉽사리 붉은 꽃이라고만 말한다. 그렇지만 그 붉은 빛깔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붉기의 정도, 꽃잎의 모양과 꽃술의 생김새, 서로의 조화로움 등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자세히 보면 분명 남들과는 다른 무엇을 보게 된다. 그렇게 만난 꽃은 내 마음에 비로소 꽃으로 피어나 특유의 향기를 발한다.

석회질 성분이 많은 바위에 피는 병아리풀이다. 전체 크기도 작아 꽃은 눈을 크게 떠야 겨우 보일 정도다. 이 작은 꽃에도 갖출 건 다 갖추고 있고 더욱 선명한 색까지 품고 있다. 스스로를 돋보여 스스로의 가치를 더 빛내고 있는 것이다.

볕의 까실함이 좋은 휴일 오후, 섬진강에서 한가로움을 누리며 지난 여름 마음에 품은 꽃을 꺼내 들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제 각기 가을로 질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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莫笞牛行 막태우행

소를 매질하지 마라, 소는 불쌍하니
아무리 네 소지만 꼭 때려야 되느냐?
소가 네게 무엇을 저버렸다고
걸핏하면 소를 꾸짖는 거냐
무거운 짐 지고 만 리 길을 다녀
네 어깨 뻐근함을 대신해 주고
숨을 헐떡이며 넓은 밭을 갈아
너의 배를 불려준다
이만해도 네게 주는 게 많은데
너는 또 걸핏하면 올라타는구나
너는 피리 불며 희희낙락하다가도
소가 힘들어 천천히 가면
꾸물댄다고 또 꾸짖어 대며
몇 번이고 매질을 하지
소질 매질하지 마라, 소는 불쌍하니
하루아침에 소가 죽는다면 넌들 살 수 있겠느냐?
소 치는 아이야 넌 참 어리석다
소의 몸이 무쇠가 아닌데 어찌 배겨 내겠느냐?

*고려사람 이규보 시 막태우행이다. 농경사회에서 소의 존재가 어떨지는 짐작되는 바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을 넘어선 무엇을 본다.

그림은 김홍도의 기우취적이다. 예로부터 우리음악에 쓰이는 악기 중 가로로 부는 것을 적笛이라 쓰는 저라 읽었다. 이규보의 막태우행에 등장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이긴 하지만 소 등에 올라 이 악기를 부는 모습을 상상만으로도 운치 있어 보인다.

땡볕의 여름날 내리는 소나기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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