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難得糊塗 난득호도

청나라의 서예가 정판교는 총명하기는 어렵고 어수룩하게 보이기도 어렵지만(聰明難 糊塗難), 총명함을 잃지 않은 채 어리석게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고 하였다.

산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하늘의 구름처럼 가볍다. 그 한가로운 모습이 좋아서 찾아보지만 정작 속내는 따로 있다. 세상살이 온갖 욕심의 굴곡을 내달리며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경계코자 함이다. 그 방편으로 삼을만한 문장이라 여겨 옮겼다.

유월 건듯 부는 바람에 띠풀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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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꽃풀, 기다림을 알았을까.

몇년 전 한라산 기슭에서 처음 눈맞춤 한 후 같은 자리에서 거의 매년 보아오던 꽃을 내 뜰에서 마주한다.

네개의 꽃대가 올라오고도 한동안 꼼짝하지 않더니 어느날 부터 조금씩 달라짐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하얀색의 꽃이 보였다. 몽글몽글 피어오는 꽃이 기특하여 아침 저녁으로 눈맞춤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세심하게 관찰하고 정성을 기울인 것보다 더 큰 무엇을 전해주는 것, 야생에서 만나는 것과는 또다는 특별함이 있다.

한동안 실타래가 풀리듯 피어오르는 꽃 보는 내 마음도 몽글몽글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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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휴영 處陰以休影

처정이식적 處靜以息迹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가 쉬고

고요한데 머물러야 발자국이 쉰다

*장자 잡편 '어부'장에 나온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공자를 타이르는 내용이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림자影와 발자국迹은 열심히 뛸수록 더 따라붙는다.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가 쉬고, 고요한 데 머무러야만 발자국이 쉰다."

*휴일 높은 산에 올랐다. 그곳마저 사람들 북적이는 틈이 버거웠다. 일상에서도 급하게 굴면서 숲에 들어서 그것도 높은 곳까지 올라서도 호들갑떠는 모습들이 낯설다.

쉼, 방법이야 제 각각 일테지만 자연을 찾는 마음 한구석엔 동질감이 있을 것이라 멀리 눈길을 돌리나 발밑으로 눈길 두나 매한가지라고 억지를 부려본다.

1500m가 넘는 곳에도 계곡에 물이 세차다. 소리에 이끌려 베낭을 내려놓고 물가에 앉았다. 한쪽으로 밀려난 꽃잎이 주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마침 나뭇잎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꽃은 쉬고자 하나 그림자가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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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充實之謂美 충실지위미'

충실充實한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하고자 할 만한 것을 '선善'이라 하고, 선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신信'이라 하며, 선이 몸속에 가득 차서 실하게 된 것을 '미美'라 하고, 가득 차서 빛을 발함이 있는 것을 '대大'라 하며, 대의 상태가 되어 남을 변화시키는 것을 '성聖'이라 하고, 성스러우면서 알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맹자孟子 진심하盡心下편에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선善, 신信, 미美, 대大, 성聖, 신神"의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美은 무엇일까.

책을 손에서 놓치 않으나 문자에만 집착해 겨우 읽는 수준이고, 애써 발품 팔아 꽃을 보나 겨우 한 개체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가슴을 울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몰입하나 그 찰라에 머물뿐이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순하게 대상을 한정시켜서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 나를 맡긴다면 스스로에게 미안할 일이 아닐까.

마른 땅을 뚫고 솟아나는 죽순에서 지극한 아름다움을 본다. 시간과 때를 알아 뚫고 나오는 힘 속에 아름다움의 근원인 충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해 두해 발품 팔아 꽃을 보러다니다 보니 모든 꽃이 그 충실의 결과임을 알게 되었다.

애써서 다독여온 감정이 어느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은 스스로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한다. 쌓아온 시간에 수고로움의 부족을 개탄하지만 매번 스스로에게 지고 만다. 그렇더라도 다시 충실에 주목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이기는 힘도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충실充實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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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02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순 멋지네요.
 

오늘로 여름 시작이다. 매서운 겨울의 눈보라가 봄의 화려한 꽃향기를 준비했듯 나풀거렸던 봄향기로 맺은 열매는 이제 여름의 폭염으로 굵고 단단하게 영글어 갈 것이다.

미쳐 보내지 못한 봄의 속도 보다 성급한 여름은 이미 코앞에 당도해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짐작되는 변화보다 예측할 수 없이 당면해야하는 폭염 속 헉헉댈 하루하루가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숲 속을 걷거나, 숲 속에 서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숲이 전해준 위안을 꺼내보며 스스로를 다독일 일이다.

두 해 전 태백산 천제단 아래,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의 품에 들었다. 속을 내어주고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나무다. 다시 천년에 또 한번의 봄을 건너 여름을 기록할 나무의 품은 아늑했다. 처음 든 태백太白의 품이 어떠했는지를 기억하게 해 줄 나무이기에 곱게 모시고 왔다.

유월 첫날 그리고 여름의 시작, 시간에 벽을 세우거나 자를 수 없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다. 그렇더라도 풀린 매듭을 묶듯이 때론 흐르는 것을 가둘 필요가 있다. 물이 그렇고 마음이 그렇고 시간이 그렇다. 일부러 앞서거나 뒤따르지 말고 나란히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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