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樂, 그림을 품다
이효분 지음 / 궁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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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악 - 하늘, 땅, 인간의 조화를 담았다
악기마다 자신만의 특정한 음을 내는 것이 그 악기가 존재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자신만의 소리를 내지만 다른 소리와 어울려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꼭 각기 다른 개성을 지낸 사람들이 어울려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과 흡사한 모습이다. 우리들의 삶과 닮아 있어 음악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리라. 

대금 소리의 매력에 빠져 배우기 시작한지 벌써 4년째 들어섰다.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 시간을 채워가는 것이 버겁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 어려운 악기를 왜 배우며 고생하느냐고. 악기를 배우는 것이 쉬웠다면 벌써 그만뒀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 태, 황, 남, 임 음 하나하나를 낼 수 있는 시간동안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혼자만의 행복이 있었기에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 사이 무대에도 올라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이 우리 음악이며 우리 악기다.  

‘우리 악, 그림을 품다’는 그런 나의 고충을 풀어주기에 안성맞춤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이효분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전수교육조교다. "어떻게 하면 우리음악을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에 우리 악(樂)을 설명하는 길로 미술과 음악의 만남을 주선하고자 한 것이다. 

어찌된 것인지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 것에 대해 홀대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이런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 음악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단소를 배운다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단소 음을 어떻게 소리 내는지, 어떤 방법으로 배우는지 물어보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소리를 들었다. 선생님이 인터넷에서 단소 악기의 소리 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이트를 찾아 그것을 보여주고 독같이 해보라고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선생님은 단소의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우리 음악을 대하는 정규 교과과정이라면 어쩜 우리 음악을 홀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이러한 현실은 초등학생에 머물지 않는다. 위로 올라가면 그러한 현상은 더 심할 것이다. 대금과 퉁소를 구분하지 못하고 가야금이 몇 줄인지도 모르니 우리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떻게 생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현실은 반영하고 있다. 하여, 우리 음악, 악기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 음악의 기본이 되는 사항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나아가 우리 음악과 악기에 바탕이 되는 여민락(與民樂),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나눈다는 정신이 어떻게 우리 음악에 나타나는지 알려준다. 저자는 이렇게 우리 음악과 어우러지는 것으로 고흐의 해바라기, 페르 탕기의 초상과 김홍도를 비롯해 우리 조상들의 삶의 정신이 담긴 그림, 도자기, 석굴암 조각상, 보자기에 속에 담긴 음악적 요소를 이끌어 내어 우리 음악의 음률로 그 정서를 풀어내고 있다.  

겨우 궁, 상, 각, 치, 우만 외우고 있는 처지에서 우리 음악의 12음율, 장단 등에 대한 해설은 익숙하지 않아서 잘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가 많다. 하지만, 음양의 조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소리를 담고 있는 우리 악기, 우리 음악의 깊숙한 내면을 알아가는 흥미로움이 더 크다. 특히, 김홍도의 '무동'과 신윤복의 '미인도'를 우리 음악의 풍류와 엮고 가야금 소리에 김정희의 '세한도'를 얹어 설명하는 부분에 와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 것에 녹아 있는 우리 음악의 기본 정신이 살아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확인되는 것이 아닐까? 

세이이음(世異異音)하고 음이이정(音異異政)이라. 세상이 다르면 음이 달라지고, 음이 다르면 정치가 달라진다는 말이라고 한다. 세상이 달라졌기에 음이 달라진다는 것과 음이 다르면 정치가 달라진다는 점을 들어 오늘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정치의 모습을 찾아보고 있다. 저자는 세종대왕이 여민락을 만들어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나누고자 했다는 시대와는 분명 달라진 세상이지만 그 속에 흐르는 기본 정신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방자치제 이후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것과 우리를 이어주는 노력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각종 축제와 다양한 열린 음악회는 사람들의 정서를 아우르기에 부족함이 있더라도 지속적으로 문화를 만나고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에 기대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한 공간 속에 우리 음악이 자리하고 있어 우리 것에 대해 더 잘 알고 즐길 수 있어 반갑기만 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접하게 될 우리 음악은 분명 달라진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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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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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삶을 긍정으로 바꾸는 힘
문학 작품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문학과 친숙한 분위기를 만들어 오지 못한 경험이 문학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전동호회’라는 토론 모임에 참여하면서 문학 작품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계기로 인해 문학 작품을 접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사람들이 살아오며 느끼고 만들어 왔던 그 모든 것들이 역사와 문학작품 속에 녹아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게기가 바로 문학을 접하면서부터가 아닌가 한다. 세상 거의 모든 것이 그렇지만 문학에는 사람이 중심에 있다. 

사람에 대해서 작가에 따라 표현 방법이 다르지만 중심 되는 문학의 주제는 단연코 사랑, 고통, 연민, 죽음, 열정 등이 아닐까 한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며 만들어 내는 이야기며 삶이기 때문이다. ‘종이여자’, ‘구해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등으로 국내 팬들을 다소 확보하고 있는 기욤 뮈소 역시 바로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나는 사랑 이야기가 없는 작품을 상상할 수 없다. 사실 인간의 행동은 사랑 혹은 사랑의 결핍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따라서 사랑이라는 독특한 감정을 기술하는 것은 작가인 나에게 일종의 도전인 셈이다.” 

그의 작품 ‘사랑하기 때문에’는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아픔과 좌절의 경험이 사회적인 성공이나 부의 축적과는 무관하게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삶을 규정한다. 이러한 경험은 나이,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개인의 삶 깊숙이 존재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에는 네 명의 사람들과 그들이 가슴 깊이 간직한 상처들에 관해 심도있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딸을 잃어버리고 절망하며 노숙자로 전락한 아버지 마크, 우연한 교통사고로 아이를 죽인 후 자신의 삶을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억만장자 상속녀 앨리슨, 엄마의 죽음에 대한 자책으로 오직 복수를 꿈꾸는 에비와 마크의 친구이자 의사이며 살인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커너. 이 네 명이 ‘사랑하기 때문에’의 핵심 인물들이다. 이들은 현재 또는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다. 네 사람의 중심에 성장과정에서 아픈 경험을 극복하고 주목받는 성공한 의사인 커너가 있다. 커너를 중심으로 얽힌 이들 사이의 삶을 파헤쳐가는 흐름이다.  

이 작품은 상처를 안고 현실의 벽과 부딪치며 살아가지만 결국엔 이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가해자와 피해자, 상처를 입힌 자와 상처받은 자들은 서로 화해와 용서를 통해 삶을 어둠 속으로 이끄는 상처를 극복해간다. 이렇게 삶의 반전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은 ‘사랑’이고 할 수 있다. 딸, 엄마, 친구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설정이다. 이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감정의 굴곡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할 것인지가 핵심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 전개의 치밀함,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마술 같은 구성,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기욤 뮈소의 문학작품이 가지는 장점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작품마다 등장하는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절대자의 존재 또한 흥미로운 장치다. 이 작품 ‘사랑하기 때문에’ 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존재다. 하지만 그 존재는 인간의 자율의지를 무시하고 정해진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자율의지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 작품의 이야기 흐름에 빈곳이 보인다. 제법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 같았던 FBI 요원의 존재가 후반부에가면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다. 그러한 점이 허전함으로 남아 전반적인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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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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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랑이 답이다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이룰 수 있는 꿈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꿈도 꿀 수 있다. 또한 꿈을 가지고 있다는 자기위안을 삼고자 하는 꿈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꿈이든 사람에게 위안과 희망을 줄 수 있기에 꿈인지도 모른다. 살아가다보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는 시기가 청춘이다. 

청춘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질 것이지만 그 청춘은 만만치 않다. 청춘시절 누구하나 상처와 절망을 겪게 된다. 청춘시절 겪는 상처와 절망에 굴복하여 이후 삶을 질곡으로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그 청춘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도 분명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꿈을 이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동안 내내 가슴 밑바닥에 자리하며 어쩌지 못하는 자신만의 상처로 남아 이후 삶을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기욤 뮈소의 ‘구해줘’는 이렇듯 청춘시절의 상처와 절망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랑스에서 브로드웨이 진출을 목표로 미국에 건너온 줄리에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지만 여의치 않아 결국 그 꿈을 접고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빈민가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의사로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자기 찾아온 아내의 자살로 충격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샘 갤러웨이는 병원에서 일에 빠져 살아간다. 

이 둘은 타임스퀘어 부근 길에서 우연한 만남을 하게 된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둘은 점점 서로에게 매료당하지만 거짓말로 시작된 둘은 서로를 가슴에 담고 헤어지지만 줄리에트의 적극적인 행동에 의해 꿈같은 하루 밤을 보내고 서로에게 운명적인 사람임을 확인한다. 프랑스로 돌아가길 한 줄리에트와 공황에서 어색한 이별을 하지만 그것이 이 두 사람의 운명에 가르는 일이 된다. 줄리에트가 타기로 한 프랑스행 비행기는 사고를 당해 추락하지만 출발 직전 비행기에서 내린 줄리에트는 비행기 폭파관련 자로 연행된다. 이 둘 사이에 한 경찰관이 끼어들며 정해진 운명은 거스를 수 없음을 말하며 죽음의 사자임을 밝힌다. 겨우 만난 운명적인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에게 이를 바꿀 힘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는 있기 마련이다. 그 상처로 인해 지금 현재의 자신은 규정되기 마련이다. 현재를 규정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다 포함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그 상처를 극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그 마음의 무게를 벗어낼 수 있는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서로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구해줘’는 가슴에 담아둔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이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박한 외침이다. 그 외침은 특정한 대상이 있기도 하지만 때론 스스로에게 하는 어쩔 수없는 울림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구체적인 성찰을 하게 만들고 있다. 운명에 대한 믿음의 여부를 떠나 인간의 자율의지가 할 수 있는 역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율의지 중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사랑’이 아닌가 한다. 이 작품 속 두 주인공도 정해진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새로운 삶을 가꿔가는 핵심이 바로 서로를 향한 사랑이다. 이는 인간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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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온한 선비다 - 세상과 다른 꿈을 꾼 조선의 사상가들 틈새 한국사 1
이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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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다른 꿈이 세상을 바꾼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승자들의 이해요구에 부합하는 시각만이 대부분 정사로 사회의 주류를 이룬 사람들에 의해 남겨진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권력을 가진 세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님을 알려준다. 왕이 백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듯 승자 역시 패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그들의 삶이었다. 

 흔히들 지금의 시대를 보며 ‘일등만 기억하는 시대’라고들 한다. 일등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당연히 우리 사회의 주류로 편입되기 쉽다. 주류가 되기 위해 그들이 벌이는 노력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되지만 주류만이 전부인양 하는 것은 주류가 주류일 수 있게 하는 비주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이는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주류가 주목받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류만이 모든 것이라는 사회에서 비주류에 대한 관심이 때론 주류를 뛰어 넘는 시대정신을 말해주기도 한다. 역사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지만 당당하게 주류로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주목한 점은 오늘날의 일등만을 기억하는 시대성에 비추어 보아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 그것이라고 봅니다. 

‘나는 불온한 선비다’는 책은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 자신만의 독특한 삶 속에서 상당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당시나 후대 사람들에게 그리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상과 다른 꿈을 꾼 조선의 사상가들’이라는 부제처럼 동시대를 살면서도 그 시대의 불합리한 요소나 시대를 앞서가는 사상으로 다른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책이다. 

‘광인’ 김시습, ‘비범한 보통인’ 서경덕, ‘반주자학자’ 박세당, ‘양명학자’ 정제두, ‘시골 서생’ 이익, ‘과학사상가’ 홍대용, ‘천주교인’ 이벽, ‘역사에서 사라진’ 유수원, ‘경험주의자’ 최한기 저자가 주목하는 조선의 비주류 사상가들이다. 이들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는 각각의 사상가들에 대한 기존의 익숙한 시각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들의 삶을 고찰한 결과 특징지을 수 있는 낱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낱말들이 내포한 의미를 중심으로 살핀다면 저자가 왜? 세상과 다른 꿈을 꾸었다고 표현했는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불온한 선비다’에서 살피고 있는 아홉 명의 사람들 중 관심을 끄는 사람으로는 ‘천주교인’ 이벽과 ‘경험주의자’ 최한기다. 한국 천주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이벽이라고 볼 수 있다. 천주교라는 종교적 입장에서 이벽을 살폈다면 관심정도가 덜했겠지만 이벽을 조선을 이끌었던 사상인 유학에 정통한 학자에서 유학의 도리를 벗어난 천주교의 길로 걸어간 사람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새롭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최한기는 일반인들 사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최한기는 조선말 누구보다 뛰어난 업적을 남긴 학자였다. 이 사람을 재조명한 것 역시 주목된다. 

‘누구나 삶의 주인공이고자 한다. 그러나 누구라도 타인의 삶속에서는 주체일 수 없다. 주체인 나에 비해 주체가 아닌 나는 어떤 면에서든 한층 격하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저자의 이벽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도중에 한 표현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살피고 있는 사람들의 삶뿐 만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주류 또는 비주류에 대한 구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책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비주류로 표현되는 그 비주류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무엇을 담아내고 싶었는가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과 그들의 삶을 통해 오늘의 우리들이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현대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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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박제가 지음, 이익성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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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기본 정신을 배우다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모두가 옳다고 할 때 그르다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이 그 의미 속에 포함된다면 우리 역사에서 그러한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하지만, 같은 의미일지라도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당리당략에 의한 말이라면 숨은 뜻을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가까운 조선의 역사에서 당당하게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들이 유독 많았던 시기가 영조, 정조 때로 보인다. 인진왜란의 혼란을 일정정도 극복하고 오랜 파쟁도 영조의 탕평책으로 인해 누그러졌던 때가 바로 흔희들 문예부흥기로 이야기하는 그때이다. 특히, 정조왕의 개혁적 정책에 힘입은 세력이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북학파(北學派)가 활동하던 시기다. 북학파의 중심에는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이 있었다. 북학이라는 말은 맹자에서 “진량은 초나라 사람이다. 그는 북쪽으로 유학하여 북방의 학자들도 그보다 나은 사람은 없었다”라는 구절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들 중 초정 박제가(1750~1805)는 박지원과 함께 북학파의 거장으로 두드러진 활동을 펼쳤다. 1778년 사은사 채제공의 수행원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후 ‘북학의’를 지었다. 박제가는 누구보다 급진적인 정책을 제시하며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본받아 생산 기술을 향상시키고, 통상무역을 통하여 이용후생을 실현’할 것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저서로는 ‘정유집’, ‘북학의’, ‘정유시고’, ‘명농초고’ 등이 있다. 이 책은 박제가가 저술한 ‘북학의’를 을유문화사가 원문을 번역하여 1971년 발행한 것을 30여년이 지난 후 새롭게 발간한 개정판이다. 

북학의는 크게 내편, 외편, 진북학의로 세편을 구성되어 있다. 내편은 수레, 성, 벽돌, 궁실, 도로, 교량, 목축 등 서른아홉 가지 사항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외편에는 밭, 거름, 농업, 잠업, 과거론, 재부론, 군사론, 장례, 절강 상선과 통상하는 문제 등 열여섯 가지 박제가의 진솔한 사상이 담겨 있다. 진북학의는 박제가가 영평현령으로 있을 때 정도의 왕지에 의해 내, 외편에서 농사와 관련된 항목을 뽑아 여기에 수리, 지리, 모내기, 농기구 등 항목을 추가하여 다시 작성한 것이다. 

북학의를 통해 본 박제가의 글은 진솔하고 담백하다. 주장하는 바에 대해 자세한 사항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지만 고루하거나 군더더기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조선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철저히 실용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모습이 돋보인다. 또한 청나라의 문물을 보고 쓴 것이지만 당시 동북아 삼국인 청나라, 조선, 일본의 현실을 비교분석하고 있는 점이 더 철저한 실학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인다. 

‘말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할 말이 많을 것이다’고 한 것은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조선의 현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무작정 청나라의 문물을 따라가자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의 글 내면에는 바로 조선 백성들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고 그러한 현실을 극복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급진적인 사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역사에서 가정은 불필요한 것이지만 그렇기에 가정을 통해서라도 달라진 현실을 기대하고 싶은 것이 사람 아닌가 싶다. 만약 박제가의 이러한 선진적인 사상이 받아들여졌다면 무척 다른 역사를 만들어 왔을 것이라는 점에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시대를 뛰어 넘는 급진적인 사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면 역사의 진보는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박제가의 개혁사상은 학문이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오늘날 인문학의 여러 우려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저히 현실을 기반으로 둘 때 그 의의를 살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박제가가 현시대를 보면 어떨까? 그가 그토록 바랐던 물질적인 혁신은 그가 상상하는 것을 뛰어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이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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