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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7
제러미 시프먼 지음, 김형수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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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이었다
소설책을 주로 읽는 사람들에게 인문학 책은 다소 어렵다고도 한다. 관심과 취향이 다름에서 오는 차이일 것이다. 이 차이는 간혹 공감과 소통에 장애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모두 사람들의 삶에 주목한다는 차원에서는 동일할 것이다. 나에게 이런 차이를 느끼게 만드는 분야가 있다.  

대중음악을 즐겨 듣고 우리 음악인 국악의 선율과 음색에 매료되지만 여전히 낫선 분야가 클래식음악이다. 자주 접하지 못하다보니 클래식이 주는 그만의 감동과 소통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접근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클래식 음악에서도 따스한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 비발디의 사계다. 아이의 태교음악으로 밤마다 듣다보니 익숙하게 되었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내겐 낫선 음악이며 음악가들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이라는 책을 읽는 동안 부록으로 담긴 음반을 들으며 뭐라 표현하기는 힘든 알 수 없는 공감이 있었다. 책이 전해주는 차이콥스키라는 작곡가의 음악과 삶에 대해 알 수 있었기에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본다면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일 것이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는 러시아 출생으로 다소 안정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법률을 전공하기 위해 법률학교에 진학하지만 음악에 대한 꿈으로 음악학교로 옮겨 본격적인 수업을 받았다. 이후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작곡가로 성장 수많은 곡을 남겨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로 기억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차이콥스키의 삶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음악을 시작한 성장기에서 음악가로 성장하는 시기 그리고 성공하는 과정에서 겪는 애환, 마지막 죽음에 이르는 생애를 구분하여 섬세하게 그의 삶을 그려가고 있다. 또한 피아노 음악, 극음악, 관현악, 실내악, 가곡 등 그의 음악적 범주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음악의 세계를 해설해주는 꼭지가 생애를 살피는 중간 중간 포함되어 있어 차이콥스키의 생애와 음악을 이해하는데 한층 도움이 된다.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 이 둘을 구분하여 마음이 가는 순서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책에 첨부된 CD음반은 책으로만 이해할 때와는 분명하게 다른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이해하고 삶을 알아 가는데 확실한 도움이 되며 부록에 실린 차이콥스키가 살던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음악, 음악용어, 연표 등은 저자가 차이콥스키를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얼마나 성의를 다했는지 알게 하는 부분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가는 길에서 우뚝 선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은 분명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차이콥스키 역시 주변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대한 남다른 특성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것이 돌아가긴 했지만 결국 음악가의 길로 이끈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생활인으로써는 무능에 가까운 차이콥스키에게는 편지로만 유지된 음악사 사상 가장 기이한 사랑이라 불리는 ‘나데츠카 폰 메크 부인’과 16년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독특한 사랑이 있었다. 차이콥스키 음악에서 빠질 수 없는 지대한 영향을 남긴 사람이다. 

 이 책으로 인해 위대한 명곡을 남기고 살아생전 그 영광을 누렸지만 불분명한 이유로 죽음이 맞이했던 차이콥스키를 온전히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 덕분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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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후애사전
이나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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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청춘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답다
나이 들어감이 흉이 되지 않는 사회가 가능할까? 우리나라 현실을 볼 때 지극히 관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남자의 자격에 등장하는 지극한 나이의 사람들이 얼굴에 홍조를 띄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다. 5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즐겁게 하는 모습도 좋아 보이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며 그들의 삶에서 그동안 빠져 있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 삶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에 무척이나 흥미롭다. 사회에서 보면 뒤쳐진 처지에 있을 수밖에 없는 그들이 그렇게 흥분하며 좋아하고 웃는 모습은 낫선 풍경이지만 곧 나도 그런 사람들처럼 나이 들어가고 있기에 흘려보낼 일 만은 아니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사람들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으로부터 밀려나는 시기와 겹쳐 대두된 것이 아닌가 한다. 정신없이 일에 묻혀,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내면의 요구를 무시하고 살아왔던 지난 시간이 때론 허무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바로 그 시점이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내면의 요구가 대두된 시기엔 이미 사회에서 밀려나고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시기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것 역시 현실적인 문제이다. 이것은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문제로 제기될 정도로 우리사회는 이미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이 바로 ‘오십후애사전’이다. 

이 책의 저자 이나미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임상심리학자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우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스스로 경험한 일상에서 얻은 교훈을 중심으로 나이 50이 가지는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생물학적 수명이 연정되며 나이에 대한 의미도 점점 확장되어온 현실을 반영하며 나이 오십에 인생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온갖 책무만 짊어진 채 앞만 보고 떠밀리듯 달려온 사람들이고 본다. 어느 세대보다 불안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정년, 신체적 노화, 경제적 문제, 부모와 자식 등 산적한 현실의 무게를 내려놓지 못하는 세대로 점점 커지는 심리적인 불안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불안정, 육체의 노화, 사회적 소외, 부부문제, 성과 사랑 등 나이 들어가며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며 반론을 제시하는 저자의 글은 동서양의 고전에 나타나는 삶의 지혜와 지금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당면 과제를 적절하게 조합하여 방법을 제시한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나이 오십이 주는 의미는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엔 부족할지 모르지만 생각을 달리하여 자신을 직시한다면 앞으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출발시기로 그만한 조건도 없다는 것이다. 닥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며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면 젊은 나이에는 결코 보고 느끼지 못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넉넉함을 보고 느끼며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듯 나이 오십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나이 오십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것은 곧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조건에서 욕심과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따라 살아간다면 청춘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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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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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음을 찾을 수 있는 건축가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아가 들어가며 귀향이나 농촌생활을 꿈꾼다. 그러한 경향성은 전원생활이라는 이름으로 한때 사회적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지만 귀향이나 귀촌을 생각하는 감성과 현실의 차이로 인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제 안정된 것같이 보인다. 우여곡절을 거쳐 전원에 안착한 사람들은 전원생활을 꿈꾸지만 꿈보다 많은 벽에 가로막혀 좌절하기 일쑤다. 그렇기에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소중한 일상이 많은 도움이 되곤 한다.  

나 또한 대도시 인근 농촌마을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로 힘들었다. 그때 인근에 먼저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방문하면서 생각과는 달리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새로 지은 집 때문이었다. 한옥으로 집을 근사하게 지어 살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집은 사람이 편안하게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본래의 의미가 있기에 사람 위에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마을에 들어선 10여 채의 한옥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여 주눅 들게 할 만큼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구경하는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면 그곳에 살아갈 사람들은 어떨까?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은 감성적으로 자연에 가까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가 변하고 삶의 방식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의식주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감성의 작용은 남아 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과 인간의 경계에서 이 둘을 구분하고 나누는 작업을 하면서도 조화를 이뤄가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짓는 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의해서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바로 인간과 자연의 경계지점인 건축물에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을 도입 성공한 건축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본 출신이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축가 안도다다오가 자신의 건축철학을 완성해준 것은 바로 ‘여행’이었다고 고백하며 그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건축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안도다다오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기 전 트럭 운전수였으며 심지어 프로 격투기 선수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일본이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이후 1965년부터 1992년까지 세계 각지를 도는 여행길에서 열린 가슴으로 만났던 건축물, 그림, 조각, 음악 등 모든 창작활동에 포함되는 영역과의 만남을 기록하였다. 그 여행은 베트남의 마지막 응우옌 왕조의 왕궁에서 출발하여 건축에 관심을 갖고 주목한 르 코르뷔제가 태어난 파리로, 바로셀로나, 밀라노, 로마 등 유럽의 문화 예술을 접하고 대륙을 넘어 미국 그리고 러시아와 동서양 문화가 만나는 이스탄불 등 수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건축은 벽에 의해 공간을 획득한다. 벽으로 둘러침으로써 건축의 안과 밖을 구분하며 외부를 공격하고 내부를 방어하는 힘을 갖는다. 하지만, 내가 만드는 벽은 그런 힘을 갖으면서도 동시에 자연을 받아들여 인간의 마음을 감싸 안은 벽이길 바란다.” 

23살이라는 청년의 파리행 도전은 그렇게 거장 건축가를 만들었다. 자신을 낳아준 아시아 일본의 정서를 바탕을 전 세계 예술가들의 창조를 향한 마음을 거름삼아 자연과 인간의 경계에 서 있는 건축물을 만들지만 이 둘을 나누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안도다다오만의 독특한 건축철학으로 성장하게 되었음을 이 책을 통해 보여준다. 특히, 이 책 도시방황은 건축가의 눈에 비친 건축물에 국한 된 것이 아인 예술가들의 예술품에서 숨겨진 무엇을 읽어내는 그만의 독특한 감성이 묻어 있어 건축가로써가 아닌 인간 안도다다오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어판의 출간을 위해 새로 집필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그의 애정에 어울리는 책의 구성도 볼만하지만 한편으로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일정한 흐름을 이어가면서도 각기 다른 편집은 안도다다오의 건축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도다다오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의 여행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건축물이나 그가 본 예술 창작품들의 사진이 내용과 어울린다면 그의 건축철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의 건축물이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는 것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고뇌, 인간과 자연의 교감,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이 그의 건축물로 나타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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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을 훔치다
몽우 조셉킴(Joseph Kim)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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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훔치고 싶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은 다양한 통로가 있다. 직접 그를 대면하며 경험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일 테지만 때론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간접적인 통로로 보는 것도 있다. 무엇이 한 사람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인지 모호하긴 하지만 다양한 통로를 통해 두루 살펴야 한 사람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따라 배우며 그 사람의 정신을 훔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이중섭을 훔치다’ 이 책은 한 화가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이중섭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누군가를 훔치고 싶을 정도로 강한 느낌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에 그런 간절함이 어떨지 상상만으로 그치지만 저자 몽우 김영진의 그러한 갈망이 이중섭이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라면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몽우라는 사람의 눈과 마음에 들어온 이중섭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중섭(1916~1956)’이라고 하면 미술시장에서 수 십 억 원에 달하는 경매가를 기록한 화가, 조금 남다른 삶을 살았던 화가, 가족과 떨어져 살며 가족을 그리워했던 화가 등으로 기억된다. 이런 단편적인 사실을 넘어 화가 이중섭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뉴스에서 전하는 수준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병약한 몸으로 남들과는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저자 몽우는 아버지가 사온 ‘대향이중섭화집’에서 이중섭과 처음 만나게 된다. 강한 끌림으로 이후 이중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 영향을 받아 그림에 빠져든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훔치고 싶다’는 말은 몽우가 이중섭의 그림을 보고 그의 그림을 훔치고 싶을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았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러기에 이후 저자의 행보는 이중섭의 그림을 닥치는 대로 따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중섭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이중섭 그림 복원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중섭의 그림을 직접 대할 기회를 가졌다. 이 기회는 그가 사랑한 이중섭의 삶과 그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은 몽우라는 화가가 해한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편협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이중섭 평전 못지않은 상세한 내용과 당시 상시 상황 등을 묘사하는 저자의 깊은 배려는 이중섭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올바로 이중섭의 삶과 예술 세계를 알게 하는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소, 닭, 비둘기, 까마귀, 어린아이는 군동화와 은지화 등 이중섭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들이다. 이중섭이 이러한 것들에 주목한 이유가 뭘까? 그런 그림 소재들이 담고 있는 내면의 소리는 무엇일까? 등에 답하는 과정으로 그려지는 이중섭에 그림에 대한 탐구과정은 화가 이중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그림과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저자 몽우가 이중섭에게서 훔치고 싶은 것의 내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저자의 이중섭에 대한 기본 시각은 세 가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특한 화풍을 이룩한 화가 이중섭, 아내와 자식을 사랑한 가장 그리고 민족의 암울한 시기를 극복하고자 애쓰는 민족적 시각이 그것이다. 이렇게 이중섭을 살피는 과정에서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상황이 빠짐없이 살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여, 광기어린 천재화가라고 불리는 이중섭에 대해 그런 광기의 모습 이면에 숨어 있는 진정한 이중섭의 마음을 찾아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보여 진다. 

“이중섭의 그림은 내 정신을 온통 빼앗아 가버릴 정도로 한때 내 삶을 마비시켰다. 나는 스스로를 불태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의 치열한 정신을 흠모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가장 불안정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극한의 예술적 열정으로 걸작을 만들어낸 그를 존경했다” 

저자가 화가 이중섭에게 이토록 강한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과 이중섭의 삶에서 공통된 무엇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겉모습은 다를지라도 지극히 외로웠을 두 사람의 영혼이 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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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
김용만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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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새로운 길을 연 진정한 태왕
전환기(轉換期)라는 시점이 있다.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시기를 의미한다. 이러한 시기에는 질적인 변화를 담보하는 변화가 있다. 영웅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새로운 길을 여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 영웅으로 인해 전환기의 변화가 질적인 성장을 담보하여 새로운 시대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서 전환기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 나라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고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는 나라도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한사람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질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내부의 힘이 준비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리라. 

한국사에서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되는 사람 가운데 오늘날 유독 주목받는 사람이 고구려의 ‘광개토태왕(374∼412)이다. 담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구려 19대 왕으로 22년간 재위하는 동안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로 기억된다. 일반인들이 가장 쉽게 접하는 텔레비전 인기 드라마 덕분에 더욱 익숙한 이름이다. 

‘광개토태왕’이 오늘날 들어 유독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또한 우리는 ‘광개토대왕’에서 이제 ‘광개토태왕’으로 위상을 달리하며 익숙한 이름으로 등장한 광개토태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요청에 의해 한 사람의 업적이 달리 평가되고 위상을 높혀 재모명하고 있는 것이리라. 광개토태왕이 우리에게 등장하는 시기는 그리 멀지 않다.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광개토태왕릉비’가 알려지고 일본에서 연구한 결과가 1905년 황성신문의 ‘광개토태왕릉비문’ 내용 보도, 단재 신채호 등의 연구 등 국내에 민족적 지식인들에 의해 신문에 발표된 후부터이니 그리 오래된 시간은 아니다. 

이 책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은 바로 그 ‘광개토태왕릉비’의 주인인 광개토태왕에 대해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지만 그의 참모습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시 되는 시점에서 시의적절하다고 할만하다. 우선, 저자는 그의 호칭에 대한 정리를 하고 있다. 대왕이 아닌 태왕으로 불러야 할 역사적 근거를 찾고 올바른 호칭으로 불러야 함은 지극히 정당한 일일 것이다. 이는 당시 국제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고구려의 위상이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태왕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왕 가운데 왕이며, 제국을 다스리는 최고 지배자다. 고구려 제국의 ‘태왕’은 광개토태왕뿐 아니라 고구려왕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이었다고 본다. 

광개토태왕은 즉위할 때부터 해결해야할 과제을 안고 있었다. 선대 임금들이 후연과 백제에 의 영토를 빼앗기고 임금의 시신을 탈취 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상황에 의해 이를 올바로 극복하지 못했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첫 번째 임무가 되었음은 자명하다. 광개토태왕이 정복군주로써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내적 힘을 비축한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이 내치에 힘을 쓴 결과를 토대로 시각을 외부 정복에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시각으로 당시 국내외 정치정세와 힘의 역학관계를 살피고 있다. 거란, 후연, 백제, 신라, 왜 등과의 관계에서 취하고 버려야할 것이 무엇이며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알고 움직였기에 가능한 그의 행보였다. 그가 이룩한 업적은 흔히 알고 있는 영토확장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알게 한다. 영토확장은 면적의 확보만이 아니라 백성들이 늘어나는 것이며 전쟁에서 승리로 인한 물적 자원의 확충 그리고 여러 문화를 흡수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변화의 시점을 열었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역사를 바라볼 때 어떤 잣대로 보느냐에 따라 판이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전재하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얼마나 부응했는지 여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광개토태왕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전환기 고구려의 상황에 부응하며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 후대 왕에게 그 업적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그의 역할에 주목하여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광개토태왕이 태왕으로 불러져야할 이유, 정복군주라는 단순 평가가 아닌 새로운 길을 연 영웅, 백제와 신라에 미친 영향이 이후 한국사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등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할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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