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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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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는 어떤 직장인의 통화 내용...
"잘 사냐구? 나야 잘 살고 싶지만, 이렇게 치열한 사회(경쟁)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겠냐? 직장 다니랴 가족들 챙기랴 친구 만나랴 바쁘기만 하고, 무슨 일을 해도 재미가 없어(권태). 스트레스 풀려고 어제는 친구 만나서 화끈하게 놀았는데(자극) 오늘은 견디기가 더 어렵고 짜증이 나네(피로). 안 그래도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글쎄 오늘 나보다 실력이 한참 딸리는 직장 동료가 대박을 터뜨렸다고 기세가 등등하지 않겠어?(질투) 보란 듯이 내 앞에서 부장님한테 칭찬 받은 이야기는 하던데, 혹시 부장님 앞에서 날 깍아내린 건 아닌지 몰라(피해의식). 난 왜 이렇게 안 풀리나 몰라. 어렸을 때 부모님 말씀 안 듣고 뺀질뺀질 놀았던 벌을 받나 봐. 요즘도 친구들 만나서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 얼굴을 못 보겠다니까.(죄의식) 서른이 한 참 넘었는데도 결혼 안 하고 비실거리는 자식 보는 어머니 속이 오죽하겠니. 난 결혼하기 싫은데, 독신으로 살면 남들이 괴팍한 성격이라 그렇다고 욕 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여론에 대한 두려움)..."
 
이 책은 작년 7월 법정스님의 저서 < 내가 사랑하는 책들 >에 소개된 책 50권 중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에서 <끝없는 여정>까지 여덟 권에 이어 아홉 번째로 읽은 책이다. 러셀이 이 책을 처음 출간한 것은 1930년, 그가 58세 되던 해였다.
 
즉, 지금으로부터 무려 80년 전에 처음 세상에 나온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 긴 세월을 뛰어넘어 21세기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깨달음과 울림을 전해준다. 그리고 러셀의 이야기는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씨의 행복여행>에서 꾸뻬씨가 지적한 ’행복의 비결’과 비슷하며, 두 가지 모두 법정스님의 말씀에 맞닿아 있다.
 
법정스님이 러셀의 저서 중에서 이 책을 추천도서 목록에 포함시킨 이유는 러셀이 이 책을 통하여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대지와 통해야 하고 온갖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데서 싹터온다고 말한다. 이는 스님이 <버리고 떠나기>에서 "욕망을 채워 가는 삶은 결코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가치 있는 삶이란 의미를 채우는 삶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러셀의 불안의 원인과 행복의 정복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이야기는 결국 스님의 ’욕망’과 ’가치있는 삶’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 되는 것 같다. 
 
사춘기 때에는 삶을 증오하여 늘 자살할 생각을 품고 있다가 수학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자살 충동을 피할 수 있었다는 러셀은 당대에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석학 중의 한 사람으로 분석철학의 창시자라 불리웠음에도 학자나 특정한 지식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썼다. 러셀은 "불행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력하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일부만이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거기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기(p.09)"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서 말한다. 그는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책과 같이 ’행복을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
 
러셀은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 또는 행복이 사람들 곁은 떠난 이유를 9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1930년 당시 서구 상황에서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가 80년이 지난 현재에도 비슷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영원히 풀기힘든 인간의 고독과 불완전함을 느끼게 되고 종교적인 단어인 ’고역’과 ’고행’이 떠오른다. 그 9가지는 1장 각 단락의 소제목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각각 자기 안에 갇힌 사람, 이유 없이 불행한 사람, 경쟁의 철학에 오염된 사람, 인생의 끝 권태, 걱정의 심리학, 질투의 함정, 불합리한 죄의식, 모두가 나만 미워해, 세상과 맞지 않는 젊은이다.
 
그리고 러셀은 사람들이 행복으로 가기위한 길을 역시 2장의 소제목으로 달았는데, 이는 각각 인간이 느끼는 행복, 열정이 행복을 만든다, 사랑의 기쁨, 좋은 부모가 되려면, 일하는 사람이 더 불행하다, 폭 넓은 관심 튼튼한 인생, 노력과 체념 사이, 나는 행복한 존재 등 8가지로 되어 있다.

러셀이 이야기하는 불행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알랭 드 보통의 <불안>과 비슷하고 행복을 '쟁취'하는 방법도 <불안>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1930년 러셀이 지적한 불행의 원인과 행복의 정복방안이 21세기 한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부분적으로 적용이 곤란한 단락이나 구절이 있음에도(특히, 종교적인 죄의식 등) 러셀의 지적은 현재에도 타당하다고 본다. 더욱이, 러셀이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 사회적, 제도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최근 평균적인 30~40대가 대학까지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거나 자영업(전문직 포함)을 영위하고 있고 사회적인 분위기가 개인들을 더 험하게 몰아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개인적, 가족적인 차원에서 불행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러셀의 생각을 살펴 보는 데 있어서는 조금 주의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불행의 원인과 정복 방안을 모두 모두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하여 다루었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을 발간하기 전에 이미 <결혼과 도덕 Marriage and Morals(1929)>, <정치 사상 Political Ideals(1917)> 및 <사회 개조의 원리 Principles of Social Reconstruction(1916)> 등에서 사회적, 제도적인 불행의 원인과 처방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이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겪는 여러 가지 불행은 일부분은 사회제도에, 일부분은 개인적인 심리에 그 원인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심리도 사회제도의 산물이다.(P.15)"고 지적하고 있다. 이 구절을 놓친 후 책을 계속 이어서 읽다 보면 저자가 불행의 원인과 책임을 너무도 개인에게만 묻는다고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러셀이 사회 제도를 떠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불행과 행복을 다뤘다고 밝혔음에도 이 책이 크게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객관적이니 현실 때문일 것이다. 사회와 제도를 떠난 현대인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러셀과 같은 대학자나 종교인, 성인, 철학자가 아닌 이상 사회와 제도를 떠나 개인적으로 행복을 정복하기 위하여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즉, 러셀은 독자를 ’일반인’으로 삼아 글을 썼으나 일부 지식인 정도가 이 책을 이해하고 동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내가 ’버트런드 러셀’ 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이 책에 대해 조금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고 따라서 당연하게도 내가 기대가 컸던 만큼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그 만큼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러셀의 다른 작품을 마저 읽고나서야 러셀에 대한 실망이 존경으로 돌아설 것 같다...^^ 
 
[ 2011년 3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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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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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산골에는 / 산울림 영감이 / 바위에 앉아 / 나같이 이나 잡고 / 홀로 살더라." 
 
2003년 서울 길상사와 '맑고 향기롭게' 관련 직책과 업무에서도 모두 떠나고 난 후, 스님은 강원도 오두막에 온전히 칩거한다. 수행자로서의 자신의 삶과 정진에 집중하시면서 우주와 자연의 진리를 거듭 탐색하신 것... 
 
스님은 이 책에서 '홀로 사는 삶'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활과 생각을 펼쳐보인다. 특히 홀로 사는 사람은 남은 세월이 다할 때까지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함을 역설하신다. 꽃처럼 피어나는 것이 젊음만은 아니며, 나이를 먹을수록 한결같이 삶을 가꾸고 관리하면서 새롭게 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으로서는 이러한 새로움이 생활 뿐 아니라 자신의 말과 글도 마찬가지로 새롭게 나타나야 함을 의미한다.
 
홀로 산다는 것이 스님처럼 수도자나 수행자만의 삶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부부나 형제, 가족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각자 혼자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스스로가 온전하게 홀로 사는 삶이 가능할 때만이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순간, 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매일매일 삶을 돌아고 낡은 생각과 관행에서 벗어나야만이 어제와 다른 오늘, 그리고 오늘과 다른 내일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엄청난 쓰나미로 인해 수 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 십만명이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거기에 더하여 원자력발전소가 차례로 문제가 되면서 '체르노빌'의 악몽이 재현되는 상황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것 말고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일본이 군사 제국주의자로 한반도를 침탈하여 무고한 생명과 자산을 앗아갔고 전후에도 재일 조선인을 차별해 왔다는 사실은 잠시 접어두고 슬픔에 잠겨있는 일본인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손길을 내미는 것이 진정한 인간성일 것이다. 그리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라고 자부해왔음에도 지구의 작은 몸부림에도 그렇게 커다란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음을 볼 때,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일본에 덮친 쓰나미의 위력과 피해를 보면서 20세기 이후 지구상에서 확대일로에 있는 현대문명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기문명의 전지구적인 확대와 소비의 확대가 가져온 것이 원자력 발전이고 얼핏 간편하고 효율적으로 보이는 원자력 발전소는 인류에게 잠재적인 원자폭탄인 셈이고 자연의 변동에 무기력할 뿐이다. 더 크고 더 많고 더 빠르고 더 높은 것이 반드시 인류에게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아니 후손들까지 고려하여 오랜 기간을 내다볼 때, 더 크고 많고 빠르고 높은 것은 결국 미래의 자원을 현재로 앞당기는 것이고 쓰레기와 비극과 폐해를 미래로 떠넘기는 것이 될 것이다.
 
여러 권 스님의 저서를 읽었는데 이 책은 배움과 깨달음이 다른 책만큼은 되지 않았다. 이런 느낌은 아마도 여러 권의 책에 비슷한 스님의 생활과 생각, 철학과 말씀이 담겨있기 때문에 내가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고 거칠고 힘든 사부대중의 삶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스님의 생활이 못마땅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스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 위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이 가치있는 삶이라면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스님이 말하는 홀로 있다는 말의 의미는 외떨어져 혼자 사는 단순한 의미만은 아니다. 홀로 있음의 진정한 의미를 이야기하면서 스님은 명상가 토마스 머튼의 말을 인용한다. 즉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인간은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 홀로 있다는 것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순수하며 자유롭고,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당당하게 있는 것이다. 결국 홀로 있다는 말은 개체의 사회성을 내포한다. 또한 인간은 본래 전체적인 존재임을 강조하며,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 존재할 때 그의 삶에도 생기와 탄력과 건강함이 생긴다고 알려준다. 결국 홀로 사는 즐거움도 여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내가 스님처럼 홀로 사는 즐거움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즐거움보다 고독함과 게으름이 더 많다...^^
 
 <아름다운 마무리>와 <산방한담>,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오두막 편지>, <산에는 꽃이 피네>, <서있는 사람들>,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에 이어 아홉 번째 법정스님의 저서를 읽었다. 이 책은 <오두막 편지> 이후 2004년까지 스님의 삶과 생활, 그리고 생각을 모은 것이다.
 
[ 2011년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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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 一期一會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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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학 동기와 후배들을 만난 저녁 자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책을 많이 읽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 뭐하겠나 싶어서... 그것은 저녁 자리에서 벌어진, 아니 내가 뱉어낸 두 가지 말들 때문이다. 하나는 동기와 함께 다른 친구에 대해 험담을 한 것이고 또 하나는 모임의 이야기가 음담패설로 흐를 때 그것을 다시 진지하거나 건강한 이야기로 유도하지 못하고 동참한 것이다. 올해부터는 온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건강한 이야기를 나누고 격려하고 서로 도와주고 희망을 나누고 싶었는데 그 결심이 흐트러져 버렸다. 한 마디의 말, 한 번의 몸짓에서부터 다시금 나를 돌아보고 경계해야 한다고 다짐해 본다.
 

이 책은 생전에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출간한 책이자 최초로 스님이 대중과 학인을 상대로 직접 하신 말씀을 모은 법문집이다. 길상사의 정기법회 법문, 여름안거와 겨울안거 결제 및 헤제 법문, 부처님 오신날 법문과 창건법회 법문 등이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스님의 법문은 대부분 길상사에서 이루어졌지만 때로는 명동성당, 뉴욕 맨하탄, 세종문화회관, 청도 운문사와 원불교 대강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책 속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는 "삶에서 가장 신비한 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생애 단 한 번 뿐인 인연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일기일회一期一會]이고 50년 넘게 수행자로서 살아오신 스님의 마지막 가르침일 것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가 살아야 하는가? 나는 진정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법정 스님은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그 자체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스님은 헛된 말과 관성적인 삶이 스모그처럼 퍼져있는 시대에 말과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온 이의 진정성이 담긴 가르침을 맑은 울림처럼 담아냈다. 각 법문의 서두에는 그날의 계절과 시간이 담겨있어 때로 작은 절마당에 고즈넉하니 앉아 스님의 가르침을 듣는 기분에 젖기도 한다. 
 
[2008년 11월 12일 겨울안거 결제일 법문 : 추울 때는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더위가 되라] 스님은 "만약 미국을 비롯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경제 불황 없이 한결같이 고도성장으로만 치닫는다면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물으신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도 이것은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것이다. 서구에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래 이제 250년 정도... 그 기간 동안 유럽과 미국, 일본과 한국, 최근의 BRICs 국가들... 대략 20여개국 정도가 그 짧은 기간 동안 마치 굶주린 돼지처럼 지구의 숲과 산, 물과 자원을 고갈시켜 온갖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생태적 재앙이 이어지고 있는데 앞으로 또 수 많은 국가들이 그 대열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피에르 라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이반 일리히, 버트런드 러셀, 쓰지 신이치...  그들의 이야기처럼 "성장을 멈춰라"라고 힘차게 외치고 싶다. 내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멈출 것인지, 멈춘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먼저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열중하는 문제 중 하나다.
 
[2008년 8월 15일 여름안거 해제일 법문 : 중노릇하면서 빚만 많이 졌다] 2007년 겨울 대통령 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면서 스님은 "경제 살리기만 외쳐도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로 뽑아 주는 그런 세태 아닙니까?"라고 한탄하면서 구호만 가지고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그런 헛된 구호만 가지고 경제를 살리고 죽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번 주 중에 MB정부가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를 탈락시키면서 영남지역 정치권과 '가진자'들이 흥분하고 있다. 박근혜는 특유의 방식으로 '주장과 분위기를 짱 본 후'에 대선 공약을 지키라는, 전형적인 '기회주의' 속성을 보여준다. '영남권 신공항' 문제는 기회주의나 대선 공약의 문제가 아니다. 나 역시 다른 모든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떠나서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한국의 정치권은 그동안 대통령이나 지자체장, 그리고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아무런 경제적, 사회적 실익이 없는 공항을 수도 없이 건설하여 국민의 세금을 낭비했고 운영비를 지금도 낭비하고 있다. 이 판국에 무슨 '영남권 신공항'이란 말인가? 그것을 주장하는 자들은 무지와 탐욕을 가득찬 모리배에 불과하다...
 
[2008년 5월 12일 부처님 오시날 법문 : 하루 낮 하루 밤에 만 번 죽고 만 번 산다] 스님은 2008년 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파동', 그리고 조류독감으로 6천만 마리나 생매장한 닭과 오리에 대해 '업'과 '자비'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국가와 기업과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돈에 눈이 어두워 '초식동물인 소에게 같은 소의 뼈와 내장을 사료로 먹이기 때문에' 소가 미쳐 버린 것이고 다닥다닥 붙은 인조 감옥 양계장 안에서 사료를 먹이는 조류들이 집단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현상을 개탄한다. 그러한 인간들의 동물에 대한 죄는 반드시 '업'이 되어 인간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 이러한 시대에 인간 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심을 일으켜야 함을 지적한다. 
 
[2008년 4월 20일 봄 정기법회 법문 : 생명 자체가 하나의 기적] MB정부가 은밀히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것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끔직한 재앙이며, 이 국토가 오랜 역사 속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영혼이고 살이고 뼈이기에 어떤 정책과 권력으로도 이 땅을 망신창이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기 때문에 무모한 자연파괴는 반드시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것도 아무런 죄가 없는 후손들에게...
 
[2006년 10월 15일 가을 정기법회 법문 :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다음에 먹는다] 당시 크게 사회문제화 되었던 '한미FTA'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나 언론의 선전과는 달리 철저하게 미국 기업과 투자자를 위한 협정이며, 미국만을 위한 보호주의라고.. 한국의 무역 개방정도가 70%가 넘어서고 있는 판국에 개방정도가 20% 밖에 되지 않는 미국을 위해 나머지 분야를 모두 개방하고 나면 수출 산업과 기업 일부는 성장할 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산업부분이 취약해지고 실업과 빈부격차가 확대될 것을 예상한다. 특히, 농업이 죽게 되면 곡식 뿐 아니라 생태적인 관리가 불가능해짐을 역설하시면서 "경제가 튼튼하려면 기초산업인 농업이 뿌리내려야 한다"는 경제관을 제시한다.
 
[2004년 4월 18일 봄 정기법회 법문 :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면 신도 우리를 용서한다]에서 스님은 [법구경]의 법문을 예시하면서 용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온 세상의 사람들 중에서 허물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시면서 "함부로 남을 꾸짖거나 흉을 봐서는 안된다. 허물을 감싸 주고 덮어 주는 용서는 사람을 승화시킨다. 용서는 마음 속에 사랑과 이해의 통로를 열어 준다"고 강조한다. 선의의 충고와 꾸짖는 것은 다르다는 것...  
 
* 책 속의 문장
-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일기일회, 한 번의 기회, 한 번의 만남입니다. 이 고마움을 세상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p.54)
 
- 살 만큼 살다가 세상과 작별하게 될 때 무엇이 남는가? 홀로 있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평소에 지은 업을 가지고 간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든 평소에 지은 업만 그림자처럼 따라간다. 하루하루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말과 행위를 하는가가 곧 다음의 나를 형성한다.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스스로가 다음 생의 자신을 만들고 있다.(p.173~174)

-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한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매 순간 마음을 맑히는 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한숨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마음을 맑히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 한순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한순간이 바로 생과 사의 갈림길입니다. (p.317)
 
[ 2011년 4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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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라이프 -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
쓰지 신이치 지음, 김향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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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빈둥거리기, 반세계화, 슬로 푸드, 잡일, 안심, 슬로 보디, 스몰, 새로운 빈곤, 인디언 타임, 언플러그, 기다림, 슬로 러브, 지금 여기, 있는 것 찾기, 슬로 머니, 머물기, 비폭력, 슬로 비지니스, 친환경주택, 컬처 크리에이티브, 놀기, 에코 투어리즘, 슬로 카페, 씨앗, 슬로 워터, 생명 지역, 딥 에콜로지, 쉬기, 흙, 에코 이코노미, 빠빠라기, 원주민 달력, 슬로 폴리틱스, 신체 시간, 페어 트레이드, 뺄셈의 발상, 촛불......  이 많은 단어들이 의미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저자는 돈, 효율, 경쟁, 경제성장 같은 것을 우선시하는 사회에서 살면서 사람들이 당연한 즐거움, 아름다움, 편안함 등으로부터 멀어졌다고 말한다. 돈, 효율, 경쟁, 경제성장은 결국 ’패스트 라이프’를 의미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삶에서 즐거움, 아름다움, 편안함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 반대인 ’슬로 라이프’로 바꾸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지구상에는 ’패스트 라이프’에 저항하는 다양한 개념과 주체들이 존재한다. ’단순한 삶’, ’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문화창조자들’, ’작은것이 아름답다’, ’슬로푸드’, ’반세계화’, ’지속 가능한 개발’...  저자는 그러한 개념과 주체를 담아내면서 자신의 경험과 활동을 토대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슬로 라이프’다. ’슬로 라이프’를 규정하는 여러 키워드가 바로 위에서 열거한 단어들인 셈이다.
 
- 걷기 : 슬로 라이프의 첫 걸음은 산책을 되찾는 일이다.
- 방랑 : 진정한 풍요를 위해 물질과 돈에 의지하지 말자.
- 게으름 : 생각해 보자. 누구를 위한 근면인지...
- 슬로디자인 : 입고 먹고 사는 일 모두를 다시 디자인하기..
- 슬로 푸드 :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먹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 잡일 : 잡스러움을 허용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다.
- 슬로 러브 : 사랑이란 본디 시간을 포함하는 일이다.
- 슬로 머니 : 왜곡된 경제를 바로잡기 우해서는 ’또 하나의 돈’이 필요하다.
- 슬로 워터 : 우리는 지구의 물을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 슬로 타운 : 속도를 늦추면 눈앞의 풍경이 달라 보인다.
- 있는 것 찾기 : 없는 것을 애달파하는 대신 있는 것을 찾자.
- 딥 에콜로지 :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생물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 머물기 :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함께 사는 일은 점점 더 멀어진다.
- 인디언 타임 : 중요한 건 시계가 아니라 상황과 형편에 따른 배려다.
- 슬로 폴리틱스 : 속전속결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 놀기 : 헛되기 때문에 비로소 충실해지는 것...
- 언플러그 : 시스템에서 플러그를 뽑고 공동체에 플러그하기..
- 자전거 :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누가 이겼을까?
- 잡곡 : 맛도 좋고 영양도 좋고 환경에도 좋은...
- 슬로 비지니스 : 바쁘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잘 팔린다.
- 에코 투어리즘 : 여행지의 시간을 나의 시간으로 파괴하지 않기...
- 페어 트레이드 : ’남과 북’이, 시골과 도시가, 자연과 인간이 공정한 무역...
- 슬로 카페 : 차 마시고 수다 떨며 세상에 느리게 딴지 걸기...
- 슬로 섹스 : 그 넓고도 깊은 몸의 쾌락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 빈둥거리기 :경쟁 바깥에 있는 참된 자신의 ’거처’를 발견해 내자.
- 쉬기 :  목적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 촛불 : 가끔식은 어둠을 아름답게 되찾아 보자.
- 나무늘보 : 우리가 나무늘보에게서 배워야 한다.
 
수 십개의 키워드와 그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많은 계기와 기회가 주변에 널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키워드는 다른 키워드와 연관될 수 밖에 없고 하나의 키워드로부터 출발하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척할 수 있다는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어떤 키워드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독자들이 느껴보고 시도해볼 수 있는 많은 방식과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정리한 셈이다.
 
’패스트 라이프’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자주, 그리고 습관적으로 일상 언어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잘 생각해보자. 한국인이 제일 많이 쓰는 표현이 바로 "빨리빨리"이지 않은가? 이 "빨리빨리"는 한국인과 자주 접하는 모든 국내,해외외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빨리빨리"가 결국 한국에게, 그리고 한국인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일부 경제성장이라는 숫자와 부를 가져다 주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외형적인 숫자와 부를 얻는 대신에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 그 소중한 것들은 바로 아름다움, 연대의식, 동질감, 우정, 사랑, 아름다움, 여유, 행복, 건강... 그런 면에서 우리 한국인들이야말로 ’슬로 라이프’에 대해 일본인들보다, 아니 어느 외국인들보다 더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일본에 대해 몇 가지 새롭고 신선한 점을 알게 되었다. 저자도 그렇지만, 일본에는 한국보다 생태운동과 환경운동, 반세계화운동, 지역자립운동과 같은 비주류 운동이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학계와 전문가, 활동가와 연구자, 문학가와 예술가, 심지어 정치가들까지 폭 넓은 인력과 조직이 가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가 오래되고 뛰어난 전문가가 많은 만큼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많았다. 저자만 보더라도 1990년에 에콰도르의 나무늘보를 보호하기 위한 [나무늘보 친구들]이라는 국제적인 NGO를 결성하여 활동해오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일본의 지식인 일부와 전문가들의 선구적인 모습에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만명의 인명피해와 250조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가져온 쓰나미에 대한 일본 정부와 기업의 부실한 태도 및 대처방식과 더불어 일본 국민들과 시민단체들이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대한 지원과 협조가 부족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끼끼도 한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의 경우에도 뉴올리온즈 허리케인 피해 당시 수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신속하게 피해현장에 도착하여 조직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워나 피해지역의 복구에 도움을 주는 것에 비하여 일본 국민의 무기력한 모습은 생태환경 활동가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것 같다.
 
그리고 저자에게 조금 아쉬운 것은 이 책 속에 "왜 슬로 라이프가 되어야 하는가?", "왜 소박하고 단순하고 느린 삶이 필요한가?"에 대한 체계적인, 정형화된 정리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키워드와 그 키워드에 대한 설명과 필요성이 열거되어 있기는 하지만, 포괄적으로 사람이 왜 ’슬로 라이프’로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부족하다. 본래 인간의 존재가 ’슬로 라이프’인데 과학기술이나 인간의 욕망이 인간에게 잘못된 길을 유도한 것인지, ’슬로 라이프’야 말로 자연적이고 인간다운 삶이기 때문에 원래대로 복귀해야 하는 것인지, ’슬로 라이프’를 통해서만이 인류와 지구의 영속적인 생존과 순환을 보장하는 것인지... 아무래도 독자들이 다양한 키워드와 저자의 활동을 종합하여 스스로 ’슬로 라이프’의 배경과 이유, 목적을 찾아내는 것이 저자의 취지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책은, 법정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하는 책들>에 소개된 책 50권 중 작년 7월부터 읽기 시작한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에서 <행복의 정복>까지 아홉 권에 이어 이번에 열 번째로 읽은 것이다.
 
* 책 속의 문장
- 현대사회는 공포로 가득차 있다. 국가 권력은 그 공포를 능숙하게 다루어서 국민을 컨트롤하고 있다. 그리고 미디어는 그러한 공포를 선동하고 한층 더 부풀려진 그 공포 위에 날로 번성한다. (p.77) 
- 지구 온난화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가스 배출 속도가 그것을 동화, 흡수하는 지구의 느긋한 속도보다 빨라럿 생긴 이상 현상이다. 즉, 인간은 경제 시간에 끌려다니다가 결국 탄소 순환이라는 생태계 기반에 구멍을 내어 버린 것이다.(p.103) 
- 우리가 정치에 대해 느끼는 무력감 중 하나는 우리가 너무 바쁘다는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러미스의 지적처럼 "짬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p.166)
 

* 책 속의 책 & 영화 :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윌리엄 맥도너 <요람에서 요람으로>, 조지 리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나오미 클라인 <No Logo>, 조제 보베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카를로 페트리니 <슬로 푸드>, 이반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성장을 멈춰라>, 파울로 프레이리 <희망의 교육학>, 데이비드 스즈키 <즐거운 생태학 교실>, 다니엘 퀸 <고릴라 이스라엘>, 더글러스 스미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들은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마이클 무어 <볼링 포 콜롬바인>, 폴 호켄 <비지니스 생태학>, 버나드 리테어 <돈, 그 영혼의 진실>, 반다나 시바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 <물 전쟁>, <위대한 전환>, 월드워치연구소 <지구환경보고서 2004>, 모토하시 세이이치 <알렉세이와 샘>, 가와구치 요시카즈 <신비한 밭에 서서>, 투이아비 <빠빠라기>, 모토카와 다쓰오 <시간으로 보는 생물 이야기>, 마하마트 간디 <간디 자서전>, 노암 촘스키 <패권인가 생존인가>, 미하일 엔데 <모모>, 요한 호이징아 <호모 루덴스>, 로제 카이유와 <놀이와 인간>, 레스터 브라운 <에코 이코노미>, <플랜 B - 파산하는 지구를 구하는 생태경제학>, 존 로빈스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웬델 베리 <희망의 뿌리>
 
[ 2011년 3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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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떠나기 법정 스님 전집 2
법정(法頂) 스님 지음 / 샘터사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마무리>와 <산방한담>,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오두막 편지>, <산에는 꽃이 피네>, <서있는 사람들>, <무소유>에 이어 여덟 번째 법정스님의 저서를 읽었다. 이 책은 1992년 초판이 발행되었고 법정스님이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쓴 글을 모은 것이다. 1992년은 스님이 홀연히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오두막에 기거하시기 시작한 때이다.
 
이 책에는 눈을 뜰 때마다 새롭게 다가서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비롯해 명예와 편안함을 버리고 혼자서 살아가는 구도자의 청빈한 삶이 잘 드러나 있다. 시종일관 욕심을 버리고 떠나라는 가르침과 사람은 혼자일 때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진실되게 만날 수 있다는 스님의 참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특히 강원도 오두막에서 나무, 새, 바람, 달, 들짐승을 벗삼아 사는 구도자의 속깊은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스님의 생애는 책의 제목처럼 몇 차례의 [버리고 떠나기]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출가()다. 외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책 읽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했던 청년은 1954년 싸락눈이 내리던 날 홀연히 집을 나서 머리를 깎았다. 평소 흠모했던 등대지기의 꿈을 접고 ‘진리의 빛’을 찾아 나선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세속적 욕망을 버리는 대신 그는 진리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었다.
 
두 번째는 1975년 10월 1일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 불일암()으로 들어간 일이다. 글 잘 쓰고 의식 있는 40대 초반의 촉망받는 중진 스님이었던 그는 “시국 비판이나 하며 글재주만 부리다가는 중노릇 제대로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한 칸 암자에서 혼자 밥 짓고 밭을 매며 17년을 지내면서 <무소유>, <산방한담()>, <텅 빈 충만> 등 10여 권의 산문집을 펴냈다. 승속()의 명예를 과감히 떨쳐 버린 덕분에 사색의 자유와 자연과의 교감을 얻게 된 것이다.

세 번째는 1992년 4월 19일 강원도 산골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오두막으로 다시 거처를 옮긴 일이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산중 암자에 방문객이 늘어나고 글 빚도 지게 되면서 수행에 지장을 받게 되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지인들은 물론 몇 안 되는 상좌조차 아직 스님의 거처를 몰랐다. 스님이 “누군가 내 거처를 알게 되면 나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큰스님’으로 불리며 절 집의 높은 자리에 앉는 대신 자신만의 수행 공간과 절대 고독의 희열을 얻게 된 것이다.

네 번째는 2003년 12월 21일 한 여신도가 오랜 간청 끝에 스님에게 시주한 서울 성북동 길상사의 창건 6주년 기념 법회에서 회주(·절의 원로 스님) 자리를 미련 없이 내놓은 일이다. 주지 한 번 맡지 않았던 스님이 떠밀리다시피 맡았던 자리였다. 하지만 차츰 틀이 잡혀 가자 “수행에는 정년이 없으나 직위에는 반드시 정년이 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주저 없이 실천한 것이다. 많은 이가 아쉬워했지만 스님은 큰 짐을 벗어던진 듯 편안한 모습이었다. 스님은 이날 법회 후 차 한 잔을 따라 주며 “때가 되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육신을 벗어버리고 싶다”고 지나치듯 말했다. 법정 스님이라면 능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이후 봄가을 두 차례만 길상사에서 공식 법회를 열 뿐이었다.
 
이 책 속에는 중생들의 삶과 애환을 달래지 못하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발언이 몇 가지 들어있다.
[화전민의 오두막에서]는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병'에 걸리지 않은 부드럽고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나의 휴식 시간]에서는 어려서부터 책벌레였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휴식 시간은 좋은 책을 읽는 시간임을 이야기한다. 그 중에는 다이호우잉의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 <닥터 노먼 베쑨>,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 리처드 바크의 <소울 메이트>,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 등을 소개한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괴테의 <파우스트>의 주인공 메피스토텔레스의 말을 통해 책의 함정을 경계한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의 나무는 푸르다."
 
그리고, [개울가에서]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서로가 창조적인 노력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오고가며 만나는 친구관계에 대해 충고한다. 무가치한 일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소중한 삶을 쓰레기더미에 내던져버리는 거나 다름이 없다고...
[입시에 낙방당한 부모님들에게]는 교육히 참으로 해야 할 일은 그럴듯한 직업을 얻도록 준비싴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과정을 이해하도록 도와 무엇인 진리이고 삶의 진실인지 스스로 찾아내도록 거드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무엇이 전쟁을 일으키는가]에서는 1991년 걸프전쟁을 바라보면서 종교간의 갈등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들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것이다. (중략) 종교가 생기고 나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이 있고 나서 그 사람이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문화현상 중의 하나가 종교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통일을 생각하며]에서는 조금 의외의 이야기도 나와 있다. 1989년 평양을 방문한 전대협 임수경씨가 평양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석상에서 "김일성 1인 독재의 우상화와 남조선 해방의 허구적 논리를 위대한 주체사상이라고 떠받"들었다는 것. 생소한 이야기라 인터넷을 한참 뒤져보았는데도 평양에서 진행된 2차례의 기자회견 관련 기사에서는 비슷한 내용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정부측 인사나 보수 언론 등에서 확대 포장한 내용을 들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관련 내용을 못찾은 것인지...
 
[아직 끝나지 않은 출가]에서는 1975년 인혁당 사건 이야기가 나온다. 스님은 당시 박정희 군사독재자가 인혁당 관련자 8명을 사형은 선고한 다음 날에 죽여버린 사건이 반정부 인사들이 인혁당 사건을 정치적인 조작극이라고 몰아붙인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크게 자책하셨다고... 스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출가 수행자가 마음 속에 적개심과 증오심을 품는 것에 대해 되돌아보고 자신이 무엇 때문에 출가하였는지 다시 헤아리기 위해 불일암에 들어가셨다.
 
* 책 속의 문장 : 
- 세상에 거저 되는 일도 없지만 공것 또한 절대로 없다. 그만한 보상을 치르지 않고는 그 어떤 결과도 가져올 수 없다. 안이한 직업적인 중 노릇이 편한 것 같지만, 거기에는 곰팡이균처럼 부패와 타락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니 편하고 한가함을 즐길 게 아니라 독사를 피하듯 멀리 해야 한다. 특히 수행자를 병들게 하는 것은 이 편하고 한가한 안일임을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그러므로 차지하고 채우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침체되고 묵은 과거의 늪에 갇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차지하고 채웠다가도 한 생각 돌이켜 미련없이 선뜻 버리고 비우는 것은 새로운 삶으로 열리는 통로다
  
[ 2011년 2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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