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우리시대의 성인’이라는 표현을 별로 반기지 않았다. ’성인’이라는 표현 자체도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4대 성인이라고 명명되는 예수, 석가모니, 마호메트, 공자 등이 대부분 인류에게 종교와 사상을 가져다 주었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더불어 그 종교가 도그마가 되어 수 많은 살륙과 학살(특히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유교)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백과사전에서 ’성인’에 대한 정의는 "인격과 식견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인물’이라고 되어있다.
성인 자체로는 후세의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존경받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일생을 살았을 것이다.
다만, 그 ’성인’들의 가르침이 후세의 추종자들에게 도그마가 되어 왜곡되고 비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좋게 해석해본다.
 
법정스님 역시 우리나라에서 ’성인’ 또는 ’스승’으로 인정받는 분이다.
일찍이 젊어서 진리를 찾아 길을 나섰다가 삭발을 하고 출가를 했고 일반적인 승려들의 여정과는 달리 수행을 위해서 34년간(송광사 불일암에서 17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17년)을 홀로 정진하셨다.
불가의 가르침을 솔선수범하신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바, 돌아가시는 날까지 책과 자연, 그리고 차 한 잔을 행복으로 삼으신 분이셨다.
 
하지만 스님은 불가의 경전이나 석가모니의 '말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진리를 찾아 스스로를 단련하고 참선하고 깨우치는 것이 진정한 불법이고 '도'라고 생각하시면서 평생을 '탐구'와 '정진'의 자세로 살다가 입적하셨다. 
스님의 삶과 가르침이라면,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널리 인간과 자연을 이롭게 할까??
 
이 책은 스님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엮어낸 책이다.
지난 3월 길상사에서 스님이 돌아가시고 다비식이 거행되는 동안, 그리고 그 분의 유언으로 출간서적들이 절판되었다는 소식을 언론에서 접하면서 언젠가 스님의 생각과 사상을 배우는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해 왔다.
지난 5월 다른 책을 구입하면서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문득 무언가에 이끌려 스님의 책을 고르게 되었다.
 
이 책에서 스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책 제목과 같은 소 단원의 글 안에 담겨있다.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여기에서 ’마무리’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마무리’의 의미와 똑 같지는 않지만 얼핏 생각해보면 ’마무리’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스님의 말씀이 맞다는 생각도 든다.
-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이 해야 할 도리와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
-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는 것.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숙시켜 주었음을 긍정하는 것.
-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
-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
- 내려놓음
- 비움
-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하는 것
-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아는 것
-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
- 자연과 대지, 태양과 강, 나무와 풀을 돌아보고 내 안의 자연을 되찾는 것
-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와 지는 것
-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향기와 맛과 빛깔을 조용히 음미하는 것
- 단순해지는 것
-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그렇다면 나는 그렇다면 과연 그때그때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 있는가...
내가 살아온 삶에 감사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지금이 바로 그 때’라 함은 무엇인가...
나는 용서하고 이해하고 자비를 베푸는가...
나를 얽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은 무엇인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자연을 생각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하는가...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가...
늘 배우고 익히고 탐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선배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일희일비’한다고 핀잔을 듣고 비난을 들어온 지 어언 수십년...
’일희일비’하지 않고 무던하고 일관된 삶을 살아갈 철학이 나에게 있는지... 언제나 중심을 잡으려는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업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누가 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고 나는 그들의 고통을 어떻게 치유해주어야 하는지...
무엇이 이 자리에서의 최선이고 나를 얽매는 구속과 생각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더 늦지않게 깨달음을 얻을 수는 있는지...
 
그러면서 다짐해 본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끝없이 읽고 배우는 것이리라.
스님의 말씀처럼 고전과 경전과 참다운 책을 늘 가까이 끼고서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그리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베푸는 것이리라.
언제든 버릴 수 있고 떠날 수 있도록 나를 구속하지 않고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고...
자연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고 자연에서 배우고...  

모두가 한 번 태어나서 불꽃같은 삶을 살아간다. 

숨쉬면서 지내는 동안 어떻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도 그 만큼 더 중요한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를 되돌아 보고 오늘의 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꼭 한 번씩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 2010년 7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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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는 즐거움 - 시인으로 농부로 구도자로 섬 생활 25년
야마오 산세이 지음, 이반 옮김 / 도솔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법정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한 책들]에 소개되어 있는 50여권 중 [비노바 베베]에 이어 14번째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96년 7월 호부터 98년 6월 호까지 만 2년에 걸쳐서 일본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아웃도어>에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꿈과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수필이자 철학책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들어 인류는 미래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다. 18세기부터 전지구의 구석구석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산업화'와 '경쟁지상주의', '물신주의'와 '과학만능주의'가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산업생산양식과 신자유주의, 물신주의와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앞이 안 보일 때, 우리는 무엇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앞으로의 인류의 문명은 앞으로는 반드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방향은 이제까지처럼 개인과 개인이 대립하며 문명과 자연이 상반하는 전개가 아니라 문명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새로운 발전이어야 한다. 산업에서든 문화에서든 삶의 방식에서든 자연을 약탈하고 거기에 폐기물을 돌리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위기에 처한 인류가 추구해야 할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영성과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신애니미즘'을 제시한다. 자연의 안쪽으로 더 깊게 뿌리를 뻗는 새로운 인간 문명을 찾고,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는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석기시대 문명의 풍요로움을 되찾자고 주장한다. 그는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람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환경 문제나 현대 문명과 정치 문제를 해결해 가기 위한 지침으로 "지구 크기로 생각하며, 지역에서 행동한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이야기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문구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 다국적 기업 뿐 아니라 삼성이나 현대 등 한국식 다국적 기업, 즉 재벌들이 내세우는 구호다. 하지만 그 구호는 상품과 서비스를 지구 곳곳에 팔아먹기 위해 다국적 기업이 내세우는 '마케팅 전략'이 아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가증스럽게도 새로운 미래를 향한 다짐까지도 '이익 극대화'를 위해 차용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사는 이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는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을 물건으로 간주하며 착취해 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생명지역주의bio-regionalism’와 상통하고 있다. 






 
 



 
 



 
 



 
 



 

------ * 야마오 산세이는 누구인가? -----------

야마오 산세이는193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후반부터 ‘부족’이란 이름으로 현대문명에 대항하여 원시 부족민들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기를 꿈꾸는 대안 문화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1973년 가족과 함께 1년간 네팔과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였고, 1975년부터 도쿄에 호빗토 마을이란 이름의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참여하였다. 1977년에 온 가족이 일본 남쪽의 작은 섬인 야쿠 섬의 한 마을로 이사하였다. 이곳에서 버려진 마을을 다시 세우며, 그곳의 산과 바다, 그리고 그 안의 모든 목숨붙이를 스승으로 삼아 한없이 자기를 초극해 가려는 구도자로서의 삶을 사는 한편 농사일 틈틈이 시와 글을 쓰는 문필 활동을 하며 살다가 2001년 8월에 그의 영혼의 별인 ‘오리온의 세 별’로 돌아갔다. 지은 책으로는 <성스러운 노인> 게리 스나이더와의 대담집 <하나로 이어진 성스런 지구>, <여기에 사는 즐거움>, <애니미즘이라는 희망>, <물이 흐른다>, 시집 <비파잎 모자아래서>등이 있다. ----------
 
 
이 책은 21개의 짧은 수필을 엮어낸 것이다.
각 수필의 제목은, "조몬 삼나무 앞에 서다 / 석기문화를 즐기다 / 야생 사슴과 함께 사는 길 / 바다가 차려 주는 풍요로운 밥상 /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 아웃도어 라이프 / 서부 숲길 / 땔감 구하기가 주는 즐거움 / 토란 / 우수 / 숲은 바다의 연인 / 지구 크기로 생각한다 / 천사백만 년이라는 시간 / 내 별 내 나무 내 바위 / 햇살이 아프다 / 물의 길 / 아난다처럼 울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 내 집 짓기의 즐거움 /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다 / 끝없는 여행"이다.


야마오 산세이는 1977년부터 일본 규수 섬의 가고시마 현 아래에 위치해 있는 '야쿠 섬'으로 이사했다.
그는 야쿠 섬에 살면서 하루 중 반나절은 농사일을 하고, 나머지 반나절은 명상하고 연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한다.
그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화학비료 대신에 음식 쓰레기, 똥오줌, 나뭇재를 밭에 낸다. 잡초는 베어 낸 다음 그대로 밭에 덮는다. 잡초는 끝도 없이 나지만, 그는 잡초를 미워하지 않고 잡초는 베어서 땅에 덮으면 마침내 비료가 되기 때문에 밭에 잡초가 무성해 있으면 실은 비료가 무성해 있는 셈이라고 한다.
그의 밭은 좋게 말하면 자연농법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 일도 안 하고 내버려 놓은 밭 같다. 때로 작물 주위의 풀을 낫으로 벤 다음 벤 풀을 작물 주위에 덮어 주는 일 이외는 하지 않는다. 목욕탕 아궁이에서 생기는 나뭇재를 퍼다 뿌리는 일 외에는 비료도 하지 않는다. 나날이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차례대로 밭에 파묻어 가는 정도의 일밖에는 하지 않는다. 이것을 그는 ‘풀 두고 가꾸기’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저자 가족의 생활양식은 그보다 150여년 전 앞서 자연 속의 삶을 실천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모습, 농부철학자였던 50여년 전 프랑스의 피에르 라비, 영국의 '핀드혼 공동체'를 떠오르게 한다.(물론, 실상은 조금 다르다. 저자는 전기도 끌어다 쓰고 자동차도 이용하기 때문에 엄밀하게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동물들과 이웃하여 공생하면서 살고 있다. 야쿠 섬에서는 사슴과 원숭이의 피해가 심하다. 그냥 두면 과일과 야채는 모두 그들의 차지가 돼 버린다. 사람들은 그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전기 철책을 치지만 그는 버려진 그물을 이용하거나 사슴과 원숭이가 손을 대지 않는 토란, 아스파라거스, 자소와 같은 작물을 택해 그들과의 공생을 꾀한다. 왜냐하면 지구의 주민은 단지 인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의 생물과 무생물의 상호 연쇄 속에서 인류의 생명은 존재하고, 따라서 거기에 우리가 속해 있다. 인간이 아무리 인류 문명과 문화를 뽐내며 독립된 개인임을 자랑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인 점을 내세워도 그 생명의 본질은 물과 빛에 속하고, 흙과 공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푸른 풀들은 우리의 생명의 조상이자 고향이고, 그리고 지금 여기서 함께 살며 기쁨을 맛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형제자매이기도 하다.
이런 저자의 생각은 마치 제임스 러브룩의 '가이아'를 연상케 한다. 저자는 이론상으로 존재하는 '가이아'적 삶을 현실에 맞도록 야쿠 섬에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석기문화, 혹은 석기시대라고 하면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문화는 현대에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문화다. 석기문화란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문화이기 때문에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들의 삶 속에서 더욱 소중하게 취급되어야 하고 되찾아야 문화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야외 활동인 등산, 폭포 오르기, 강 따라 내려가기, 다이빙, 캠프, 낚시, 자전거 여행 등이 모두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그 바탕에는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강한 충동이 감춰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그 충동을 석기시대 충동 혹은 생명의 직접 충동이라 부르고 있다. 
석기시대 사람들에게 그 시대가 풍요로운 시대였는지 어땠는지는 물론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의 시대에 그 시절의 문화가 풍요로움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 그는 여기서 ‘석기시대 충동’이라는 말로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램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 집중할 것’ 이 둘이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한 어떤 일을 해도 그 작업은 한없이 즐겁다. 그는 그런 작업을 통해 생의 근원적인 충동(석기시대 충동), 곧 생명의 충족감과 내밀함을 손에 넣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야마오 산세이는 무기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 소속돼 있음과 동시에 지역에 소속돼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지구 즉 지역, 지역 즉 지구’라고 말한다. 지구의 주민은 단지 인간만이 아니다. 무기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 소속돼 있음과 동시에 지역에 소속돼 있다. 우리는 카메라의 눈이나 상상력을 통해서밖에 지구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이 지역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직접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지구 문제는 개의치 않다는 관점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 지구 전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 야마오 산세이가 말하는 가미란 무엇인가?
야마오 산세이에게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가미다. 가미란 무엇인가? 선한 것으로 나타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고, 사랑스러운 것, 행복한 것, 고요한 것, 영원한 것, 진실한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모두 신이자 신의 숨결이다. 그러나 교회나 사원 안에 있는 신과 구별하기 위해 삼라만상으로서 나타나는 오래되고도 새로운 신을 가미라고 표현한다.
이 가미는 지배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고 조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신과는 다르다. 하지만 소중하게 취급되고 존경을 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이제까지의 신과 같다. 가미란 우리를 초월해 있으며 우리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것, 깊고 강한 에너지를 주는 것의 별명이다. 그러므로 좋은 기운을 가져다 주고, 깊고 강한 에너지를 가져다 주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가미라 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연인이 가장 리얼한 가미일지도 모른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아이가 가미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만물은 절로 가미가 될 소질을 가지고 있다. 가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나서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풀이든, 나무이든, 바위나 돌이든, 바다이든, 사람이든, 곤충이든 그는 그것을 가미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것이 진정으로 산다는 것이다.
가미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그것은 분명 자연 또는 가미에 가 닿게 되고 거꾸로 자연 혹은 가미는 무엇인가를 찾아가다 보면 그것은 반드시 나에 이른다고 그는 말한다.
 
야마오 산세이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혹은 생명이 없다고 여겨지고 있는 암석이나 강이나 우주 그 자체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안쪽에는 영성, 혹은 영혼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 깃들어 있다고 하며, 우리는 모두 친화력으로 자기 자신의 영성과 깊이 이어져 있음과 동시에 자기 외의 수많은 나와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친화력이 발동하면 행복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처럼, 산에 대해서나 강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친화력으로 깊이 하나로 맺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제멋대로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뻐기고 있지만 돌도 또한 영장류이고, 풀이나 나비도, 원숭이나 사슴 또한 영장류이다. 그는 이와 같은 사상을 신애니미즘이라 부르며, 자연 환경을 어떻게 지키고 되살릴 것인가가 최대의 화두가 된 현대 문명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희망으로 신애니미즘을 제시하고 있다. 


 
법정스님은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이 책에는 그가 일생을 걸고 일관되게 꿈꾸며 바라 왔던 평화로운 세계를 조용하게 그리고 깊게 실천해 가기 위한 방법이 쓰여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의 아내의 글을 빌려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란 '여기에 사는 슬픔'이자 '여기에 사는 괴로움'인 동시에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자 그것들을 넘어서 '모든 것은 즐거움'이라고 하는 삶에 대한 찬가"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비록 지금 당장 보따리를 싸고서 야마오 산세이의 가족처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야마오 산세이의 삶과 글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거창한 무슨무슨 '주의'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가슴 속에 품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절대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이고 인간이 '인류'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햇빛과 물, 공기와 나무, 풀과 동물, 물고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 모든 존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소와 입자, 의미와 정령이 한데 어우러져 지구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나만을 위한 삶, 우리만을 위한 삶, 인간만을 위한 삶은 오히려 머지않아 나와 우리, 인류를 해치게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인류가 없는 원시시대의 지구 생태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경쟁 위주가 아닌 공생 위주'의 삶만이 그 해답일 것이다. 

[ 2011년 8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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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소로의 무소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전행선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7월에 법정스님이 즐겨 읽으시면서 사람들에게 추천한 책을 모은 <내가 사랑하는 책들>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50권이 넘는 ’추천도서’에 대한 스님의 느낌을 읽고서 추천도서를 읽는 것이 여의치 않아, 스님의 서평 한 개에 맞추어 한 권씩 읽기로 작정했다.
스님이 추천하신 책이 50권이 넘기 때문에 추천도서만 읽는다 하더라도 책 읽는 기간이 거의 1년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몇 년이 걸리더라도 틈틈히 한 권씩 추천도서를 읽고 싶어 도전해본다.
그 분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미천한 내가 잘 읽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첫 번째 추천도서인 ’월든_Walden’이다.
’월든’은 저자가 태어난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지역에 자리한 호수의 이름이다.
 
스님은 이 책을 통해 아래와 같이 ’무소유’와 ’당당한 인간의 삶’을 보았다.
"내가 영향을 받은 것은 마하마트 간디와 소로우의 간소한 삶일 것이다.
간소하게 사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삶이다. 복잡한 것은 비본질적이다. 단순하고 간소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신을 좁은 틀 속에 가두고 서로 닮으려고만 한다.
어째서 따로따로 떨어져 자기 자신다운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가.
소로우처럼 각자 스스로 한 사람의 당당한 인간이 될 수는 없는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의 저서 <월든>이 성경처럼 널리 읽혔다는 사실은 그의 현존을 말해 준다.
그의 글과 주장은 지금도 정신세계에 널리 빛을 발하고 있다."
스님은 직접 ’월든’ 호숫가를 두 차례나 방문하셨다 한다.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목수, 측량기사를 거쳐 아버지의 연필공장 일을 돕다가 미국의 70번째 독립기념일인 1845년 7월 4일, 손수레에  단촐한 짐을 싣고 월든 숲으로 들어간다.
그는 몇 달에 걸쳐 손수 지은 방 한 칸짜리 미완성 오두막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들여놓고서 삶의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그 곳을 영구 거주지로 정해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아주 적은 돈으로도 독립성을 유지했다.
본질적으로 그는 자신의 삶 자체를 중요한 경력으로 만들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엄격한 원칙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고 이것이 그의 글 다수의 주제였다.
이 책은 그가 에머슨이 소유하고 있던 월든 호숫가 땅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1845년부터 1847년까지 그곳에서 보낸 2년 2개월 2일 동안의 생활을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여행 서적을 좋아하고 또 몇 권을 저술한 바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때까지 미국 책들이 접근한 적이 없는 인간 내면의 개척을 통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의 금욕적인 생활처럼 매우 소박한 이 작품은 좋은 삶이라는 고전적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세기의 총체적인 미국 경험, 즉 변방 개척지에서의 생활을 재현하고 있다.

저자는 왜 이런 모험을 시작했을까?
그 당시 미국사람들과 서구사람들의 물질에 대한 욕망은 끝을 몰랐고 그들은 점차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집의 노예, 재산의 노예, 일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저자는 자급자족하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고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되길 원했다.
그는 스스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최대한의 여가를 즐겼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당신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고...

그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미국과 서구일대를 휩쓸던 시대에 일, 명예, 돈과 통념의 노예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혁명적인 인물이었다.
’노동’과 ’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무이고 목표이자 행복으로 혁명과도 같이 퍼져가던 시대에 그의 혁명은 개인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으나 그 당시 단단히 뿌리박혀 있던 사회 통념을 뒤흔드는 또 다른 혁명이었다.
경쟁 속에서 부지런히 일해 이겨야만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이라 생각한 일반적인 통념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자연 속에서의 삶을 읽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책 속의 글은 다소 지루하고 선언적이다.
하지만, 저자가 책 속의 글을 저술하던 때가 19세기 중반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저자의 생각이 당시의 시대상황을 뛰어넘고 21세기까지 관통할 수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저자의 생각에 얼마나 가슴 깊은 곳에서 동의할 수 있을까...


[ 2010년 9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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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바 바베 역사 인물 찾기 12
칼린디 지음, 김문호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법정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한 책들]에 소개되어 있는 50여권을 올해 중에 다 읽는 것이 년초 목표였는데 여의치가 않다. 이 책은 소개된 책 50여권 중 13번째 책으로, 칼린디가 쓴 현대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인 비노바 바베의 인물전(평전)이다. 비노바는 자신의 생애에 관하여 이야기를 꺼리고 또 자서전을 집필하는 것을 거부하였지만, 친밀한 협력자이자 제자였던 칼린디는 비노바의 이야기를 모아 그의 생애와 회고와 기억들을 엮어냈다.  
 
비노바는 세계적인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회개혁자이며, 동시에 20세기에 마하마트 간디, 사티쉬 쿠마르와 함께 인도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 천년 동안 전세계인들에게 정신적, 종교적 영감과 철학을 제시했던 부처, 예수, 마호메트와 마찬가지로 태어나고 성장한 장소와 관계없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정신적, 종교적 영감과 철학을 제공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비노바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어쩔 수 없이 현대사회의 가족, 교육, 사회, 문화, 그리고 개인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가족 내에서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말과 행동, 영성과 신념, 삶과 지향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된다. 근현대 교육제도와 학교의 모습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 비노바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인도의 기존 학교와 대학이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하인들’을 훈련시키는 커다란 공장에 불과하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21세기 전세계 학교와 대학은 당시 인도의 그것과 크게 다를까?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을 키우는 교육제도가 한국을 비롯한 OECD 국가들 중 얼마나 될까? 비노바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간으로서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실천했다.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최소한의 의식주를 누려야한다는 데 뜻을 세우고 신의 뜻에 살기로 마음먹은 후로 비노나는 스스로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동시에 바깥에 있는 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실천하기 시작한다. 비노바는 ’토지헌납운동(부단)’을 시작으로 ’모든 사람이 베풀 것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베풀어야 한다’고 설득하면서 인도 전역에서 20년 넘게 사람들과 만났던 것이다. 비노바는 힘들고 나약하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부당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개혁하는데 참여하지 않는 어떤 종교도 ’신의 참 뜻’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수 많은 종교를 접하고 경전들을 연구하였으나 결국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은 ’돕고 함께 나누고 정신적인 충만’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스스로 실천해 나간 것이다.

 
내가 처음 비노바에 대한 글을 읽은 것은 사티쉬 쿠마르의 자서전 <끝없는 여정>에서였다. 1960년대에 인도에서 영국, 미국, 일본까지 직접 걸어서 핵무기 없는 세상과 평화를 전파했던 쿠마르는 1955년부터 1962년까지 비노바의 ’토지헌납운동’에 참여한 바 있었다. 
비노바는 법정스님만큼 내가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사상가이자 실천가이자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인류의 스승이라 할 수 있다.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 평생에 걸쳐 지켜온 무소유의 삶, 늘 책을 읽고 공부하는 자세, 어려운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 불의와 부정의에 대한 단호한 배격, 정치와 권력과 조직에 대한 태생적인 거부... 이 모든 비노바의 생애는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무엇을 잘못하고 살아온 것인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깨닫게 해주고 있다. 부끄러운 삶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비노바의 말 한 마디, 그 정신과 실천을 내가 잊지 않는 한 나를 끝없이 깨우치고 채찍질할 것이다. 

인류의 정신과 미래를 제시하는 위인들의 삶과 정신에는 늘 공통점이 있다. 비노바는 ’무소유’와 ’자신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정진’이라는 측면에서 법정스님의 생애(법정의 [무소유]와 [아름다운 마무리])와 비슷하다. 간디와 함께한 ’비폭력저항(샤티야그라하)’의 정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박홍규 교수 역 [시민의 불복종]), 마틴 루터 킹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 학교제도에 대한 비노바의 태도는 이반 일리히의 [학교없는 사회]와 동일하며 태양과 달, 공기와 물, 숲과 땅이 오로지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으며 인류와 생명체 전체가 함께 누려야할 소중한 존재라는 비노바의 정신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정신(류시화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과 통하는 것이다. 
비노바는 스스로 가장 크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샹카라’와 ’즈나나데바’와 ’간디’라고 하였지만... ’샹카라’는 철학자로서 그가 건설한 수도원들의 후대의 우두머리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상카라차리야 1세라고 한다. ’즈나나데바’는 위대한 시인이자 성자였던 ’마라티’를 말한다. 
 
--------------- * 칼린디는 누구인가? -----------------------------
칼린디는 비노바 바베의 제자였다. 칼린디는 1960년에 비노바를 만났다. 바로다 대학교에서 사회복지 석사학위를 받은 직후의 일이었다. 비노바와 절친한 사이가 된 칼린디는 그의 강연과 대화를 꼼꼼히 기록하였으며, 언론 출판 관계에서 그의 대변인 역할을 하였다. 1964년 비노바가 힌두어 월간지 <마이트리>를 시작하자 그녀는 편집장을 맡아 오랫동안 그 일을 이어갔다. 그녀는 비노바가 파우나르에 창설한 ’아쉬람 브라마비디야 만디르’의 회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영문판 원본은 원래 1985년에 <마이트리>의 특집편집본으로 출판되었다. -----------------------
 
이 책은 서문과 맺음말, 그리고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비노바 자신이 쓴 자서전이 아닌 칼린디가 쓴 평전이지만, 책의 내용은 ’1인칭’으로 다루고 있다.
[시작하면서]에는 비노바의 인생에 대한 태도와 사상을 정리한다. 문장 하나 하나는 평생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과 진리 속에서 실천한 그의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랑과 사상만큼 강한 힘을 가진 것은 없다’, ’나는 매순간 변하는 사람이다’, ’나는 브라만으로 태어났으나, 자발적으로 그 카스트와 결별하였다.’, ’나는 이념들을 가지고 있으나 고정되어 굳어버린 견해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모두가 나의 친족이요 나도 그들의 친족이다.’, ’나는 어떤 문제를 보면 그 문제 깊숙이 뚫고 들어가 그 근원까지 파악하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 문제가 아무리 큰 것일지라도 결국 그것은 인간의 문제이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지성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한 사히의 삶과 개인의 삶 안에 있는 모든 종류의 문제들을 찾아내고, 그 문제들을 비록력으로 극복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나 자신에 대해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만났던 행운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나는 외적인 형편들이 너무나 순탄하였다는 것을 회상하게 된다.’,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행운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가 느끼고 있듯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이다.’ (p.30~37)
 
제1부. [야생마와 같던 청년시절 (1895~1916)]에는 비노바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까지의 삶이 서술되어 있다. 그는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의 콩간 지역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냈다. 비노바는 카스트 계급 중 가장 높은 ’브라만’ 계급이었고 그의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돌아다니기와 책읽기가 취미였다. 그렇지만 그의 삶과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은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서였다. 
지주였던 그의 할아버지는 힌두교의 독실한 신자였으며 규칙적으로 서약을 하고 단식을 하였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릴 때마다 비노바를 참석토록 하였다. 비노바는 자신이 정신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면 할아버지로부터 연유한 것이라고 말한다.
비노바는 어머니에 대해 말할 때, "나의 정신을 형성함에 있어서 어머니가 했던 역할에 버금갈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는 위대한 신앙인으로서 매일의 일상 속에서 진심으로 기도하고 감사함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비노바가 매일 식사하기 전에 툴시 나무에 물을 주게하고 음식을 따로 떼어 동물들에게 베풀 수 있도록 하는 등 그가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고 비노바는 그것을 가장 큰 선물로 기억한다. "우리는 먼저 베풀고 나중에 먹어야 하는 법이란다."(p.63) "우리가 무엇인데 누가 받을 만한 사람이고 누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 판단한단 말이냐?"(p.66)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먹을 음식의 양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단다. 그러니까 오래 살려거든 적게 먹도록 해라"(p.86)
과학자이자 요가 수행자였던 비노바의 아버지는 비노바에게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고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공경하며 이웃을 돕는 것을 가르쳤고 비노바가 잘못한 것들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들이 열여섯이 되면 그를 친구로 대해야 한다."(p.84 이 말은 전설적인 현인 마누가 지은 책 [마누스므리티]에 들어있다. )
비노바는 열 살 때 브라마차리야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고 스물 한 살에 집을 떠났다. 그는 길을 떠나기 가지고 있던 모든 자격증들을 불살랐고 어머니에게 자신은 ’월급 받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제2부. [멍에를 받아들이다 (1917~1950)] 비노바는 출가했을 때 벵갈과 히말라야에 끌렸으나 출가한 이후 간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간디의 ’사티야그라하 아쉬람’에 찾아갔다. 그는 간디에게서 히말라야의 ’평화’와 벵갈의 ’혁명적인 정신’을 모두 발견했던 것이다. 비노바는 아쉬람에서 정치적 자유와 정신적인 발전을 하나의 동일하고 동시적인 목표로 삼는 간디를 발견하고 기뻐했다. 비노바는 ’카르마-요가’ 즉 영적인 행동의 길의 의미에 대해 배웠다. 그것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었고 비노바는 그것에 매혹되어 평생 간디를 스승으로 삼았다.
간디의 비폭력은 내적인 비폭력이었으며 정신의 폭력은 공개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나쁜 것이었다. 그 내적인 비폭력은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간디의 아쉬람의 목적은 "세계 전체의 복지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우리 나라를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서약을 받아들인다." 서약은 열 한개로 진실, 비폭력, 절도 금지, 극기, 육체적 노동 등이었으며 비노바는 그 서약을 평생토록 지켜나갔다.
간디는 비노바를 인도의 지도자로 인정했고 1940년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제안하면서 그를 대표자로 선정했다. 
 

비노바는 간디를 정신적, 실천적인 스승으로 삼은 후 30년 동안 교육과 건설활동에 투신했고 그 활동의 근거가 되어야 할 원칙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는 가르치고 공부하고 성찰하는 일 등을 하였지만, ’사티야그라하’ 이외의 정치적인 활동에는 거의 가담하지 않았다. 그는 ’사티야그라하’ 운동을 통해 평생 3회에 걸쳐 7년간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그는 "내가 진정한 아쉬람 생활을 경험한 것은 감옥 안에서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감옥 안에서도 성찰과 정진, 봉사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비노바는 아쉬람에서 처음 옷감 짜는 일을 배운 후 인도 사람들이 옷감짜는 일로 삶에서 독립을 이룰 수 있도록 연구하고 물레를 개발하고 실험하고 보급하였다. 도한 마을 봉사활동을 거듭하면서 카스트 제도의 가장 낮은 계급인 ’하리잔’들과 하나가 되고 그들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인도 사회에서 가장 낮게 인정받는 일, 즉 똥 치우는 일, 가죽일, 천을 짜는 일을 했다. 그는 그러한 일을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는 것이 ’사람들의 정신상태를 바꾸어 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3부. [멍에를 지다 (1951~1969)]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1948년 간디가 암살당한 후, 비노바는 "우리는 이미 정치적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이제 보다 더 철저하고 훨씬 더 어려운 과제에 착수할 때가 되었다. 그 과제는 바로 사회적 경제적 혁명이다. 옛 방식들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p.227)라고 생각했다. 
1948년 인도의 중앙 행정부와 지역 행정부는 토지를 하리잔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치다가 포기했다. 1951년 3월 도보로 여행을 시작한 비노바는 사르보다야 대회를 끝내고 4월 우타르 프라데시 주를 여행하면서 포참찰리 마을에 도착한다. 그가 토지를 필요로 하는 하리잔들과 토지 소유자들과 면담하면서 설득하는 중에 지주인 ’쉬리 라마찬드라 레디’가 하리잔들이 필요한 토지를 헌납했다. 이로써 비노바의 ’토지헌납(부단)운동’이 시작된다. 비노바는 다음과 같은 말로 지주들을 설득했다. "모든 인간은 공기와 물과 햇빛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땅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한 개인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땅을 차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가 땅을 내놓을 때는 그 스스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놓아야 한다."(p.249) 그는 지주들에게 ’헌납 토지 = 1/ (아들의 수 + 1)’의 토지를 헌납하기를 요구했다. 
1951년부터 1969년까지 20년간 비노바는 지지자들과 함께 인도 전역을 걸어 다니면서 지주들에게 토지를 헌납하도록 설득하였고 하리잔들이 헌납받은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면서 공동체 마을이 자립적으로 운영되도록 이끌었다. 그는 20년 동안 무려 인도 국토면적의 1.33%인 400만 에이커(16.7만km2 = 50억 평)의 스코틀랜드 국토와 맞먹는 땅을 헌납받을 수 있었다.(남한 국토면적 10만km2) 그는 그 과정에서도 공부하기, 가르치기, 공동체 만들기, 하리잔 돕기,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비노바는 마을들이 스스로 자치를 해나갈 수 있도록 1957년부터 ’토지헌납운동’과 더불어 ’평화군(산티 세나)’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는 인구 오천 명당 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1958년부터는 ’삼팟티-단(재산의 육분의 일)’을 헌납하는 운동을 병행했고 1961년부터는 ’비가-카타(20분의 1)’ 운동도 시작한다. 비노바는 그 과정에서 아쉬람 여섯 개를 창설하고 수 많은 마을에 마을 자치가 이루어지도록 사람들을 교육하고 조직하였다. 그는 인도의 "가장 큰 과제를 인간 사회 전체를 비폭력의 사회로 만들어내는 일, 바꾸어 말하자면 비폭력적이고 강하고 자립적이며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두려움과 증오로부터 벗어난 그런 사회를 만들어내는 일이다."(p.353)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는 영적인 삶을 위해 기도, 침묵, 명상, 정신을 뛰어넘는 일, 선한 것을 공경함, 애정을 기르는 것, 식사 제어하기, 두려움의 정복, 빵을 위한 노동,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를 강조했다. 
 
제4부 [멍에를 벗고서 (1970~1982)] 비노바는 1969년 토지헌납운동과 아쉬람 건설, 교육과 조직화를 마지막으로 몇 년간의 준비 끝에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자신의 남은 삶을 성찰하고 정진하기 위해 외적 행위로부터의 자유, 책으로부터의 자유, 가르치는 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했다. 그는 여행도 포기하고 기도와 명상을 하며 내적인 삶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맺는 말] 1982년 건강이 악화된 비노바는 의사와 병원의 치료를 거부하고 80일 간의 단식 끝에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쇠약하고 지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이 온전하며 그의 얼굴은 영적인 광채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p.456) 
 

비노바는 평생 동안 인도의 정신적 전승에 대한 연구는 물론, 세계의 큰 종교들의 거록한 전승에 대한 연구에 정진하였다. 그의 사회적 활동은 그러한 연구에 기초한 것이었다. 비노바가 태어난 지 백 년 만에 빛을 보게 된 이 회고록은 흔들림 없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비폭력을 실천하고 영성을 추구하며 사랑의 힘을 간직해온 한 위대한 인물의 내적인 삶과 위적인 삶을 두루 밝혀준다. 그의 사상과 생애는 인도 전역에서 수 많은 제자들과 민중들에 의하여 전파되었고 칼린디와 같은 외부 협력자들을 통해 전세계에 전파되었다. 알게 모르게 간디와 비노바의 사상이 현대의 지성인들과 학자들,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쳐 현대사회가 비폭력과 저항을 통해 ’파괴와 붕괴’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간디는 1947년 비폭력 저항운동을 통해 인도의 독립을 이끌어내면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이자 성자로 거듭났다. 독립 당시 종교적인 갈등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는 것은 간디도 막지 못했다. 1947년 동파키스탄으로 존재하던 방글라데시는 인도군의 무력개입으로 1972년 독립하였다. 간디와 비노바의 사상과 실천은 독립 이후 인도에서 자주, 자립, 협동, 비폭력 등으로 이어졌다. 비노바는 인도 정부에 의존하기 이전에 민중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마을자치와 공동체운동, 토지헌납운동을 전개했고 정치권과 모든 인도 국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비노바의 사상과 실천이 국가적인 정책으로, 국민 전체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물론, 아직 인도에 많은 자치와 자립마을이 남아있고 비노바와 같은 사상가들의 정신과 실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비노바의 사상이 인도 내부에 뿌리깊게 퍼지지는 못했다. 기존 종교의 모습은 ’카스트 제도’의 모습으로 남아 있고 어느 순간 ’대량생산, 대량소비’와 ’황금만능주의’가 새로운 종교로 인도를 잠식하고 있는 것 같다.
인도는 1980년대까지 간디와 그의 제자인 네루의 철학과 정책을 유지했으나 민중들의 삶을 개선시키는데 실패했다. 1990년대 들어 인도 정부는 자본주의 경제방식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면서 인도의 전체 GDP는 늘려가고 있으나 하층 민중들의 삶이 개선되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으면서 가난한 방글라데시의 현실이 독립이나 무력분쟁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비노바의 사상과 생애가 그 이후 인도와 세계의 지성과 민중들에게 어떤 지침을 주었고 삶을 안내했는지 알고 싶다...
 
* 책 속의 책 : [바가바드기타], [우파니샤드], [마누스므리티], [요가-사트라], [즈나네스와리], [베다], [신약성서], [코란], [법구경], [담마파다], [자푸지], [나마고샤]
 
[ 2011년 6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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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멈춰라! - 자율적 공생을 위한 도구, 이반 일리치 전집 4
이반 일리히 지음, 이한 옮김 / 미토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과학과 기술이 만든 문제는 한 단계 심오한 과학과 더 나은 기술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유행처럼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잘못된 관리를 해결하는 법은 더 적극적이고 더 많은 양의 관리라고 여긴다. 이는 마치 오염된 강을 치료하는 길은 더 비싸고 강력한 청정합성세제를 사용하는데 있다고 결론 짓는 것과 같다.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쌓고 더 많은 과학과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현재의 문제를 억누르려고 하는 것은 그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없이 그저 가속페달만 밟으면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이 책은 법정스님의 저서 < 내가 사랑하는 책들 >에 소개된 책 50권 중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오래된 미래>, <무탄트 메시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읽은 책이다.

저자가 처음 이 책을 발간한 시기는 1973년이다. 아직 소련과 동구권 체제가 무너진 시기도 아니었고 신자유주의가 도래하기도 10년 이상 남아있던 시기에 산업생산양식과 성장의 폐해에 대해 일갈하고 정치적 전환을 주장한 저자는 인류역사의 선각자이자 사상가라 인정받을 만 하다. 특히 학교와 의료, 수송, 에너지에 대한 그의 통찰력 넘치는 분석과 비판은 세대를 뛰어넘는 시기임에도 우리에게 여전히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법정스님께서 추천하셨으리라...
 
먼저, 출판사 서평을 읽어보자...
1949년, 미국의 대통령으로 재선된 트루먼은 취임 연설에서 “미국에는 새로운 정책”이 있다고 선언했다. 이 새로운 정책이란 다름 아닌, 미개발의 나라들에 대해 기술적 & 경제적 원조를 실시하고 투자를 확대한다는 것이었다(여기에는 당연히 한국도 포함).
이 연설에서는 향후 산업생산양식을 이끌어갈 중요한 단어가 사용됐는데, 바로 ‘미개발 국가(under-development country)’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이전에는 백과사전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미개발국가’, ‘근대화’는 금새 경제학과 사회학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로 정착됐다. 발전경제학이나 발전사회학이 대학의 정규과목이 된 것도 이 무렵이다.
트루먼의 취임 연설 이후 ‘개발’은 미국과 미국의 원조를 받는 제3세계의 국정지표 그리고 급기야 유엔의 정책이 되었다. 

‘발전’과 ‘성장’은 구래의 지반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단어가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단어다. 마치 요즘 사용하고 있는 세계화가 그런 것처럼…
더욱 흥미로운 건 소련의 스탈린 역시 비슷한 시기에 자국민들을 ‘개발’의 바다로 노저어 가게 했다는 것이다. ‘개발’ 혹은 ‘성장’은 이때부터 신화가 되어버렸다. 누구도 ‘성장’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러시아의 예에서 보듯이 성장보다는 분배의 정의를 요구하는 자들조차 ‘성장’을 부정하지 못했다. 이처럼 ‘경제발전’에 대한 사고방식에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측면을 찾아볼 수 없다.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 민족주의자나 파시스트 그리고 나치나 레닌주의자 혹은 스탈린주의자들 역시 ‘성장’이라는 코드를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식대로 ‘성장’은 모든 가치를 뛰어넘는 선(善)인가? 이건 뜬금 없는 질문이 아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장과 분배의 논쟁 역시 ‘성장’이라는 코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부와 주류경제학자 그리고 재야 간의 대결구도로 형성되었던 성장과 분배의 논쟁은 이제 급기야 제도권 안으로까지 진입했다. 하지만 이 논쟁구도 역시 ‘성장’을 배제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성장’의 가치를 추구하던 세력뿐 아니라 소위 진보진영 역시 ‘진보적 경제발전론’이나 ‘분배를 통한 성장’을 주장하며 ‘성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일리히는 명쾌히 주장한다. “성장을 멈춰라!”
 
40여년 전에 경고했음에도 우리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성장’만을 위해 질주해온 미국과 유럽, 일본과 한국,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대부분의 지구상 국가들에서 지금 나타나는 모습은 어떠한가? 과연 ’학교’가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진정한 ’배움’을 줄 수 있는가? 과연 ’병원’이 우리에게 건강과 치유력을 제공하는가? 과연 자동차와 비행기가 우리에게 시간적, 공간적, 정신적, 육체적 여유와 시간을 제공하는가?
 
저자는 봉건시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교육과 건강, 통행과 에너지라는 미명하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산업생산양식이 ’학교’와 ’병원’과 ’수송’을 상품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교육과 건강, 통행과 에너지를 산업생산양식으로 탈바꿈시켰는지 알려준다.
 
산업생산양식은 ’교육’이라 불리는 상품을 제조해내면서 처음으로 완전히 합리화 되었으며, 교육은 과학적 마술이 창조한 환경에 맞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탄생시키는 연금술적 과정을 추구하게 되었다. ’교육’이라는 상품과 ’학교’라는 제도는 서로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배움을 학교교육으로 재정의해버린 후 사람들에게 학교를 필수적인 것으로 보이게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가난의 고통에 더하여 교육을 받지 않은 자에 대한 차별까지 겪게 만들었다는 것... 사람들이 지식의 수준을 정의하고 측정하는 학교의 권위를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들은 적절한 건강 수준이나 수송 수준에 대해서도 해당 분야의 제도기관의 권위를 쉽게 더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저자는 의료의 경우, 1913년을 하나의 분수령으로 본다. 그때부터 환자들은 구체적으로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해주는 의대 졸업자를 만날 확률이 반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의학이 병과 치료를 ’정의’하게 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의사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기준으로 치료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기를 전후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물은 정화되었고 유아 사망율은 낮춰질 수 있었고 쥐를 통제하여 역병을 물리치고 매독균을 현미경으로 보고 살바르산으로 매독을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사망율과 발병율의 눈부신 감소는 위생, 농업시장, 그리고 삶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 변화 덕분에 일어난 것이며, 이들 변화 중 일부는 의학이 발견해낸 사실에 건축토목기사가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생겼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사가 직접 개입하여 나타난 변화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드물다라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치료를 위한 도구가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의료전문가들은 그 도구를 자신들만 독점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에 소요되는 훈련기간은 더욱 길어져만 갔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급기야는 모든 사람들이 의사를 더 의존하게 되었다. 

저자는 의사들에 의해 생긴 질병 중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은 바로, 의사들이 환자에게 더 나은 건강을 안겨주는 척하는 허풍이라고 단언한다. 엄청난 돈이 의학적 치료에 의해 생긴, 샐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손해를 메우기 위해서 사용되었고 의료가 병을 고쳐서 얻은 이득은, 의료가 새로이 아프게 만든 사람들의 비용에 비하면 난장이만큼이나 작아보인다고... 물론, 내가 보기에 이런 흐름은 의료 뿐 아니라 교육, 법률, 과학, 건설, 회계 등 과학과 기술을 통해 새롭게 정의된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될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내가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고 접근방식이었다. 우리사회는 저자가 비판하는 산업생산양식과 제도들을 기초로 하여 헌법과 법률, 제도와 정책, 규범과 문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적지않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산업생산양식의 발전과 장악에 따라 인류가 위협받게 되는 여섯 가지 경로를 규명한다.
1) 과잉성장은 인간이 진화해온 환경의 물리적 기본구조에 대한 권리를 위협한다.
2) 산업화는 공생적인 일을 할 권리를 위협한다.
3)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인간을 과잉 프로그래밍하는 일은 인간의 창조적인 상상력을 죽인다.
4) 새로운 생산성 수준은 참여정치의 권리를 위협한다.
5) 기존의 신화, 도덕, 판단을 참고할 수 있는 권리를 위협한다.
6) 강제적이지만 인공적으로 실현된 만족을 주는 수단이 불러일으키는, 만연된 좌절은 보다 미묘한 위협을 구성한다.
 
그리고 저자는 산업생산양식을 가져온 ’도구’를 재정의하면서 지나치게 효율적인 도구가 물리적 환경과 인간이 맺는 관계를 촉진하는 일에 적용되면 결국 인간과 자연의 균형을 파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 파괴의 모습은 ’생태계의 파괴’, ’근본적인 독점’, ’과잉계획’, ’양극화’, ’노후화’, ’좌절’이다. 이 모든 저자의 주장과 예상은 30년이 지난 후 인류에게 본 모습을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어느 날 숲의 나무를 잘라내고 그곳을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흔히 ‘발전’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장소에 전혀 다른 것을 설치하는 것. 그것을 보고 우리는 숲의 ‘발전’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 그는 이 책에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무한 성장하는 산업사회의 생산방식 대신 자율적, 공동적 도구 사용과 인간의 자율적 행위의 상호교환을 중심으로 하는 공생의 사회를 주창하고 있다. 그는 공생공락 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 시, 자전거, 도서관 - 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성장에 반대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 최소한도로만 통제하는 도구를 사용하여 가장 자율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질 때 우리는 공생적(Conviviality)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7년 전의 저자의 비판과 대안을 인류사회는 거부하였다. 물론, 역자(이훈)의 말대로 저자가 제시한 세 가지 방안(과학의 탈신화화, 언어의 재발견, 법 절차의 회복)는 실천적이기 보다 상징적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균형’과 ’도구의 한계를 정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생산양식이 인류사회를 지배하게 된 기간은 300년 가까이된다. 그렇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기간 역시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일이 한 걸음씩 이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성장의 한계’나 ’도구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 인류에게 출발점이 될 것이고 새로운 관점과 대안에 대한 계기로 주어질 것이다. 그 ’균형’을 위해서는 아주 자그마한 구멍 만들기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산업생산양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근본에서부터 인류사회에 공론화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 책 속의 문장
- 공유된 배움과 개인간의 비판적 상호작용을 높은 수준으로 진작시키려는 사회는 교육산업의 성장에 한계를 설정해야만 한다.(p.09)
- 대단히 현대적이면서도 산업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미래사회에 대한 이론을 정식화하기 위해서는 자연적 규모와 한계르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오직 이 한계 안에서만 기계가 노예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기계 자체가 새로운 노예주가 된다.(p.12)
- 1970년 미국의학협회 총회에서 회장은 신생아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고 증명될 때까지는 모든 신생아를 환자로 간주하도록 소아과 의사들에게 권고하였다.(p.22)

- 정보를 저장하고 지식을 쌓아나가고 더 많은 과학을 도입함으로써 현재의 문제를 억누르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가속화를 통해 위기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p.28)
- ’공생’이라는 단어는 사람들 사이의 그리고 사람과 환경 사이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상호작용을 뜻한다. 공생이란 개인의 자유가 사람들 간의 상호 의존성으로 실현된 것이며, 그 자체로서 하나의 윤리적 가치이기도 하다.(p.33)
-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현재의 제도를 뒤집어 엎어 산업적 도구를 공생적 도구로 대체하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p.33)

- 대안적 정치질서는 모든 사람들이 각각 그들 자신의 미래를 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가진다. 그러한 정치는 생존, 정의, 그리고 일의 자율성이라는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도구의 사용범위를 제한할 것이다.(p.34)
- 에너지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람들끼리 의존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만, 사람들 스스로 절제의 즐거움과 검소의 해방감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p.35)

- 나는 ’도구’라는 용어를 드릴, 전화기, 빗자루, 건축자재와 같은 단순한 기재에서부터, 자동차와 발전소같은 거대한 기계, 콘플레이크나 전류와 같은 유형의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같은 생산적 기관, 그리고 교육, 건강, 지식, 결정과 같은 무형의 상품을 생산하는 기관까지 포함시키는 넓은 뜻으로 쓴다.(p.45)

- 공생적 사회에 근본이 되는 것은 조작적 제도와 중독적 재화나 서비스를 전부 다 제거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욕구를 생산하고 그 충족을 위해 전문화된 도구와 자아실현 능력을 보충하고 발현시키는 도구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49)
- 치유될 수 있는 대부분의 질병은 오늘날 평범한 사람들이 처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어한다. 왜냐하면 의료가 지닌 의례가 너무 복잡해서 그 기본적 과정이 단순하다는 사실을 숨기기 때문이다.(p.64)
- 나이별로 학년이 나뉘어진 채 이루어지는, 일생을 결정짓는 특권을 따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강제적인 경쟁은, 평등을 진작시키기는 커녕, 남보다 빨리 시작하거나, 더 건강하거나, 교실 밖의 자원이 더 많은 사람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p.74)

- ’근본적인 독점’이란, 하나의 브랜드가 지배하는 상태가 아니라 한 가지 유형의 생산물이 지배하는 상태다. 근본적인 독점은 산업생산의 과정이 절실한 필요의 충족에 대한 배타적인 통제를 행사하며 비산업적인 활동을 경쟁에서 축출하는 상태다.(p.90)
- 현대 의료의 근본적인 독점은 아픈 사람이 의사가 처방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 상태다.(p.91)
- 근본적인 독점은 강제적 소비를 부과함으로써 개인의 자율성을 제약한다.(p.92)

- 보건전문가의 통제 아래 쓰이는 돈이 더 늘어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환자의 역할, 스스로는 아프다 말다를 결정할 권한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주어지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조작됨을 뜻한다.(p.93)

- 도로, 학교, 병원으로 온통 뒤덮인 사회에서 독점으로부터 보호받는 일은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사회에서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은 기능이 감퇴되고 단순한 대안마저도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 밖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필요한 행동이 마비되어 왔기 때문이다. 독점이 물리적 세계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행동의 범위까지도 결정할 때 독점을 제거하는 것은 힘들다. 근본적인 독점은 일반적으로 너무 늦었을 때 발견된다.(p.96)
- 제어되지 않는 산업화는 가난을 근대화한다. 가난의 수준이 높아지고 부자와 빈자의 간극이 커진다. 이 두 측면은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괴적인 양극화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p.114)

- 개인은 각자가 소유한 물건의 영수증이 얼마나 철 지난 것인가에 따라 사회적 등급이 매겨진다. ... 경제가 대규모로 생산물을 새로 고안하고 기존 기본 상품 묶음을 노후화시키는 과정 위에 건설된 곳은 어디에서나, 가장 최신의 서비스와 재화에 대한 접근권을 가진 자는 특권층뿐이다. (p.122)
- 재화와 도구를 정기적으로 혁신하게 되면, 무엇이든 새롭기만 하면 더 나은 것이라는 신념을 낳게 된다. 이 신념은 현대 세계관의 핵심적인 부분이 되었다.(p.123)
- 공동체가 과학에 대한 과잉확신을 가질 때, 사람들은 성장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일을 전문가에게 맡겨버린다. ... 그러나, 폐쇄적인 전문가 집단이 전문적 지식을 추구하는 일에 자기제약을 가하리라고 신뢰할 수 없다.(p.142)

- 산업화된 국가의 언어는 창조적인 작업과 인간노동의 결실을 산업의 산출물로 파악한다. 의식의 물질화는 서구 언어에 반영되어 있다. ... 명사로 이루어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have) 일(work)이라는 식으로 소유권적 표현을 쓴다. ... 그들은 지식, 이동성, 심지어 감성과 건강까지도 획득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일뿐만 아니라 사랑도 가진다.(have sex) p.145 

 [ 2010년 11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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