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한담 법정 스님 전집 5
법정 지음 / 샘터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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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산방한담(山房閑談)]. 말 그대로 산 속에 있는 방 속에서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다는 의미다.
 
<아름다운 마무리>에 이어 법정스님의 두 번째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서점에 나온 스님의 책 중에서 초창기에 발간된 책이다.
스님은 1970년대 후반 조계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佛日庵)이란 암자를 지어 홀로 20년을 정진하셨는데 이 책은 불일암에서 썼던 글들을 모아 발간한 책이다.
특히, 1978년 ~1983년까지 신문과 잡지의 고정칼럼에 내보냈던 글을 주로 모았다.
1983년 5월에 초판을 발행하였는데, 2001년 20여년 만에 개정판을 내신 것이다.
(그 당시는 스님이 말하시는대로 "암울했던 시절"이었고 "우리가 숨도 크게 쉬지 못하면서 겪어온" 시대였다.)
 
이 책에는 자연 속의 산천초목과 작은 동물들, 흐르는 물과 자갈을 벗으로 삼아 그들로부터 하나하나 배우는 스님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불교의 경전 속에 들어있는 석가모니의 말씀과 그리슈나무르티 등의 성인들의 글과 말을 빌려 지구상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신다.
스님은 불교 경전이 어떻다고 교리가 어떠하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이 이승의 고통에서 헤어나고 성불하기 위해 ’출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땅의 사람들, 민중들, 백성들, 민족들이 처해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 말씀의 방향이 도를 이야기하거나 부처를 이야기하거나 종교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방향잃은 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종교인이 취해야 할 태도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한다.
삶의 구석구석, 생활 한가지씩, 마음가짐 하나하나, 정책과 제도 하나하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고 노력하고 변화시키려 하는지 이야기하실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 전에 하신 이야기임에도 문장 한 줄, 글 한 묶움이 묵직한 바위처럼 내 마음 속에 깊숙히 자리잡는다.
나의 생각과 태도, 관점과 방식, 노력과 행동에 채찍질이 느껴진다.
’자기다운 얼굴을 가꾸어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자기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얼굴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가리켜 ’이력서’라고 한다고...
’뒷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그리고 뒷모습을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 이유는 앞모습은 허상이고 뒷모습이야말로 실상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수행은 없는 것을 보태는 일이 아니고 텅 비우는 노력이다.’
그 이유는 텅 비우기만 하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두루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가는 수행’이라고...
 
스님은 고전과 경전, 훌륭한 문학과 예술이 왜 인류에게 중요한 것이고 어떻게 현대 인류의 삶에 방향을 제시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한국의 학살’,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七不衰法(일곱 가지 쇠망하지 않는 가르침)’, 마하마트 간디의 자서전, 원오(圓梧) 극근(克勤)의 어록 ’생야전기현(生也全機現), 사야전기현(死也全機現)’, [선종사(禪宗史)], [육조단경(六祖壇經)], [광장], 사마천의 [사기(史記)], 크리슈나무르티의 [삶의 진실에 대하여], [삼국유사], [법구경(法句經)], [숫타니파타], 토머스 머튼 신부의 [관상 기도]와 [칠층산(七層山)], [일야현자경(一夜賢者經)], 서산대사 휴정의 [선가귀감(禪家龜鑑)], [장로게(長老偈)], [四分律(사분율)], [천수경], [금강경], [열반경], 장승업의 ’고사세동도(高士洗棟圖)’, 빅터 프랭클의 [인간의 의미 탐구], 버스카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생야전기현(生也全機現), 사야전기현(死也全機現) : 삶에 철저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 같은 걸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죽음에 당해서는 조금도 생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된다.
 
대장경 중 < 일야현자경(一夜賢者經) >

과거를 따라가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가버린 것은 버려진 것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현재의 일을
이모저모로 자세히 살펴
흔들리거나 움직임 없이
그것을 잘 알고 익히라. 

오늘 할 일을 부지런히 행하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진실로 저 염라왕의 무리들과
싸움이 없는 날 없거늘
밤낮으로 게으름을 모르고
이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
그를 일러 참으로 일야현자
고요한 분 성자라 한다. 

지나가버린 것을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는 것을 동경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히 살고 있을때,
그 안색은 생기에 넘쳐 맑아진다.
오지 않은 것을 탐내어 구하고 

지나간 과거사를 슬퍼할 때
어리석은 사람은 그 때문에
꺾인 갈대처럼 시든다. 
 
책 속에 [옛 절을 찾아서]란 챕터를 보면 8개의 절에 대한 사연과 설명이 나타난다.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 운문사, 쌍계사, 화엄사, 대흥사, 직지사...
나도 건축과라는 대학 전공 출신이라고 20년 전쯤에 ’사찰기행’ 모임에 참석하여 여러 절을 둘러보았다.
대학에 재입학하여 건축계획과 설계, 고건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 책도 좀 읽어보고 두서없이 수 십, 수 백장의 사진도 찍어대던 때였다.
운문사와 화엄사는 그 때 돌아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이 이야기하는 그런 절의 이력이나 구체적인 경험이 없었고 ’관광’처럼 스쳐 지나갔기에 내 뇌와 가슴 속에는 그다지 남아있지 않다.
최근 올 겨울이 지나고 나면 선배와 함께 다시 그 절을 찾아 우리의 기억과 깨달음을 얻어보기로 했다.

스님 말씀이 "제정신을 차리고 살려면 무엇보다도 정신을 집중하고 몰입하는 일이 필요하다. 구개신기산(口開神氣散) 설동시비생(舌動是非生), 입을 열면 신기로운 기운이 흩어지고 혀를 함부로 놀리면 시비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올 한 해 내가 명심하고자 하는 문구다.
 
* 책 속의 문장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람을 대하거나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것은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알아버린 대상에서는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기 어렵다.
아무개 하면 자신의 인식 속에 들어아 이미 굳어버린 그렇고 그런 존재로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건 얼마나 그릇된 오해인가..
사람이나 사물은 끝없이 형성되고 변모하는 것인데.... .(p.17)

집에서 몸만 빠져나온 것을 가리켜 출가라고 할 수는 없다.
온갖 집착과 모순과 갈등과 타성의 집에서도 미련없이 빈손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p.66)  

佛, 法, 僧울 삼보(三寶)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삼보 사찰이 있는데 통도사와 해인사와 송광사를 가리킨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불보사찰이라 하고,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설법을 판각한 대장경판이 봉안되어 있어 법보사찰이라 하며,
송광사는 부처님의 추가제자인 고승 대덕이 가장 많이 배출 되었다고 해서 승보사찰이라고 부르게 된것이다.(p.80)
중생이 어려운 재난을 당해 갖은 핍박을 당할지라도 관세음보살의 묘지력이 세상의 고통을 구한다.
묘지력이란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지혜와 사랑이다.
그러면, 관세음보살이란 누구인가?
지혜와 사랑을 구현하고 있는 현장의 사람, 바로 그들이다. (p.87)
 
현대의 우리들에겐 자기 언어가 없다.
날마다 우리들 귓가에 대고 호소하고 설득하는 정치인이나 경제인 또는 연예인들이 뱉어버린 말을 걸르지도 않고 그대로 입에 담고 있다.
이 일 저 일에 팔리면서 쫓기느라 자기 나름대로 생각할 여유가 없다.
자기 사유(思惟)를 거치지 않으니 자기 언어를 지닐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신을 집중하려면 우선 불필요한 말을 안 해야 한다.
’구개신기산(口開神氣散) 설동시비생(舌動是非生)’, 입을 열면 신기로운 기운이 흩어지고 혀를 함부로 놀리면 시비를 일으킨다. (p.129)
 
에리히 프롬 왈 "생활궤도가 불쾌하고 음울한 자들, 육신은 살아 있으나 정신은 죽어있는 자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껄이고 있는 자들, 생각하지도 않고 상투적인 의견을 주장하고 있는 자들은 나쁜 친구이고 피해야 한다."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 속에 이런 요소가 있다면 나 또한 나쁜 친구다. (p.131)
 
일을 할 바에야 유쾌하게 하자. 그래야 능률도 오르고 피로도 덜하고 살아있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중략)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요, 일이 의무일 때 인생은 지옥이다.(중략)
진실한 내가 움직이고 있을 때는, ’나’를 잊어야 한다. 즉, 무아의 경지요, 창조적인 망각의 상태다.(중략)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일에 구애받지 안는 무애의 경지. 이런 때 일에나 삶에 그릇된 실수란 있을 수 없다.(p.135)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장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p.143)
 
사람은 순간순간 목숨을 소모하면서 살아간다. 기분 나쁜 표현이지만, 묘지나 화장터 쪽에서 보면 순간순간 죽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순간순간 사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일을 할 줄 알아야 하듯이 쉬고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이 여가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문제는 곧 삶의 질을 결정 짓는다.(중략)
우리가 못사는 것은 경제적인 빈곤에만 그 원인이 있지 않다. 살 줄을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p.149)
 
[금강경] 중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은 모두가 허망한 것.
그러니 제상과 비상, 즉 현상과 본질을 함께 볼 수 있다면 비로소 우주의 실상을 바로 보게 될 거라는 뜻이다.
표현을 달리하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바로 인식하려면 드러난 단면만 보지 말고 그 배후까지도 함께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p.272)
 
사람을 본질적으로 감화시키는 것은 그럴듯한 말에 있지 않고 몸소 움직여 보이는 행동에 있다.
좋은 말을 한다는 것과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p.283)
 
일장일단. 무슨 일에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선이 있으면 그 그늘에 악도 있게 마련이다.
흔히 우리들은 좋은 쪽만 취하고 좋지 않은 쪽은 모른 체하거나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고 이기적이다.
대가 없이 거저 받아 쓸 수 있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그건 작건 간에 값을 치르지 않고 공짜로 지하거나 누릴 수는 없다. (p.288)
 
길을 떠나는 것은 새삼스레 구경거리를 찾아서가 아니다.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관계의 울타리에서 떠나봄으로써 자신의 실체를 보다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낯선 고장의 인정이나 풍물을 통해 가려진 내면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p.291)

텅 빈 속에서.. 
우리는 한평생을 두고 수많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계절이 내린 고마운 뜻을 몇번이나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수 있었던가. 
어디 계절만이겠는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날에 대해서 또는 순간순간에 대해서 그 의미를 
몇 번이나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돌아오는 봄과 여름과 가을, 겨울을 우리는 기약할수 없다. (p.337)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그가 하는 행위에 의해 인간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비인간으로 타락할 수도 있다.
오로지 인간다운 행위에 의해서 거듭거듭 인간으로 형성되어 간다.
그러면 인간다운 행위는 무엇일까? 우선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타인과 함께 나누어 가져야 ’이웃’이 될 수 있고, 인간적인 관계가 이루어진다.
사람은 독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관계를 통해서만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들의 삶이 곧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관계에 의존해서 존재하고 우리들의 관계는 인간을 심화시킨다. (p.343) 

 [ 2010년 1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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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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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책...
 
이 책은 지난 7월에 법정스님의 저서 < 내가 사랑하는 책들 >에 소개된 책 50권 중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오래된 미래>, <무탄트 메시지>, <성장을 멈춰라>에 이어 여섯 번째로 읽은 책이다.(과선배가 선물해 준 책...^^) 
 
2002년 프랑스 파리의 서점가에서는 독특한 책 한 권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가 행복의 참된 의미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는 소설로,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파리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였다.
늘 불안한 심리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어떤 심리학적 설명보다 한 편의 이야기가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환자들을 진료하며 얻은 경험과 생각들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결과는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수많은 프랑스 독자들이 를로르의 소설에 매료당했고,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등 12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각 나라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물질적인 풍요에서 정신적인 만족이 행복의 일반적인 기준이 되어가는 시대에 이 책은 현대인의 복잡한 심리의 핵심을 짚어내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 줄거리 -
’꾸뻬’라는 이름의 한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그는 파리 중심가 한복판에 진료실을 갖고 있었고,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쓰고 다니는 원형의 작은 안경은 그를 매우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했으며, 무엇인가에 심사숙고할 때마다 습관처럼 만지작거리는 짧은 콧수염은 은근한 신뢰감을 심어주었다.
세상 어느 곳보다 풍요로우면서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은 이 도시에서 그는 의사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며, 능력과 미모를 겸비한 애인도 있었다.
그의 진료실은 언제나 상담을 원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친절하면서도 자극적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를 찾는 여자,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주장하는 남자, 사랑의 상처를 입어 더 이상 미래를 내다볼 수 없게 된 점성가…….
어느 날 ’꾸뻬’ 씨는 자신 역시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음의 병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떤 치료로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꾸뻬’ 씨는 진료실 문을 닫고 전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알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환자들을 치료할 행복의 비밀을 찾아서....
 
주인공이 여행 중에 배운 행복에 대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8. 불행은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10.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12.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13.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15.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6. 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17.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18.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19.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21.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22. 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23.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저자가 ’행복’에 대해 특별한 학문적인 접근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람들의 삶과 고민, 자신의 관점에서 느끼는 바를 정리하였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쉽게 공감이 가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중심이 없이 나열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누군가 ’행복’하기를 원할 때, 다양한 방식과 방법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2011년 12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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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법정 스님 전집 7
법정 지음 / 샘터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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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름다운 마무리>와 <산방한담>에 이어 법정스님의 저서를 세 번째로 읽었다.
이 책도 서점에 나온 스님의 책 중에서 초창기(1993년~1996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아래와 같은 스님의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새가 깃들지 않은 숲을 생각해보라.
그건 이미 살아 있는 숲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생기와 그 화음을 대할 수 없을 때,
인간의 삶 또한 크게 병든 거나 다름이 없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스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리들 각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적 현상의 그림자'라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세상의 상태라는 것...
'우리 시대(근대 이후)에 이르러 물질적인 풍요만을 추구한 나머지 인간의 심성과 생활환경이 말할 수 없이 황폐화 된 것은, 누구의 탓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 저지른 재앙이다.
흙과 물과 나무와 공기와 햇빛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이 그와 같은 고마운 자연을 끊임없이 허물고 더럽힌다.'고...
 
예전 같은 경우, 큰스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면 으레 동양적인 철학으로서 '그런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이제는 그 말들이 구체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예를 들어, 나 뿐 아니라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돈에 대한 생각, 차에 대한 생각, 아이들이나 어른들에 대한 태도, 생활질서, 쓰레기 버리기, 물적인 욕심과 낭비, 편리함만의 추구, 단기간의 이익추구, 사회와 이웃에 대한 무관심 들이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과 태도들이 결과적으로 무모한 권력에 눈이 먼 정권과 정치인이 나타나도록 하고 전사회와 계층이 황금만능주의에 물들게 되고 도로에 차가 넘치고 차도를 중심으로 하는 도로교통체계가 수립되고 아이들을 입시교육에 내몰고 어른들을 무시하고 방치하고 시내 곳곳에 쓰레기가 넘쳐나고 책보다 게임이 대중화되고 무궁화열차가 사라지는 대신 KTX 밖에 탈 수가 없고 한 쪽은 흥청망청, 다른 쪽은 밥먹기도 벅찬 삶이 존재하고 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판을 치게 하는 뿌리가 되었다.
이명박과 같은 대통령을, 안상수와 같은 국회의원, 공정택같은 교육감, 땅투기 선수인 장관 후보, 4대강 망치기 등등...
이 모든 말도 안되는 현실이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자문해 본다.
 
스님 말씀대로 일찍이 동양의 신앙은 산하 대지를 신성한 존재로 여겨 귀의의 대상으로 삼았었다. 그래서 인간과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서양의 백인들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환경의 지배를 추구했다. 그 결과 과잉 소비와 포식 사회를 이루어 오늘날과 같은 온갖 질병과 환경 위기를 불러들인 것이다.
삶의 원천을 망각한 채 도시화와 산업화로 줄달음치면서 날로 인간의 설자리가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새삼스럽게 삶의 질을 문제 삼을 만큼, 그 동안 우리들이 추구했던 그 풍요가 한낱 허구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현재와 같은 우리들의 잘못된 생각과 생활 습관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지구는 황량한 사막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봄이 와도 꽃이 피어나지 않고 새들도 찾아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생물인 인간도 살아갈 수 없다.
 
제레미 리프킨이 <엔트로피>나 <수소혁명>, <육식의 종말>, <유러피안 드림>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법정스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서구적인 언어와 표현으로 변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리프킨이 작년에 <공감의 시대>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대한 정립을 시도해보지만 그다지 여의치 않았던 것은, 동양적인 철학과 사고방식이 부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스님처럼 모든 인연을 끊고 홀로 산속에 들어가 자연과 벗하며 자연 속에서 살아갈 자신은 없다.
하지만, 스님의 말씀처럼 작은 부분에서부터 점차 소유와 소비를 줄이고 육식과 포식을 줄이고 자연과 벗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담배가 제일 문제...ㅋ)
 
또, 스님은 '무엇을 읽을 것인가'에서 나의 독서 태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하신다.
'우리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값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스님은 음악에 대해, 존재에 대해, 종교에 대해, 책에 대해, 직업에 대해,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안내한다.
 
* 책 속의 문장
- 좋은 음악은 무디어지거나 녹슬기 쉬운 인간의 감성을 맑고 투명하게 다스려준다.(p.32)
-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지, 그리고 순간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는 저마다 자신이 선택해야 할 삶의 과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들 가자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독창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단 하나뿐인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자기 자신답게 사는 일이 긴요하다. 개체의 삶은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삶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p.34)
- 우리는 굳어진 고정관념 때문에 기왕에 알려진 것만을 받아들일 뿐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부족하다.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맑은 눈으로 찬찬히 살펴보면 아름다운 생명의 신비가 바로 우리 곁에 수없이 깔려 있다.(p.64)
 
- '양관 화상 良寬和尙'의 시
  욕심이 없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구하는 바 있으면 만사가 궁하다
  담백한 나물밥으로 주림을 달래고
  누더기로써 겨우 몸을 가린다
  홀로 살면서 노루 사슴으로 벗하고
  아이들과 어울려 노래하고 논다
  바위 아래 샘물로 귀를 씻고
  산마루의 소나무로 뜻을 삼는다.(p.66)
 
- 관세음觀世音이란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 다시 말해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임이다. 바깥 소리가 자기 내면의 소리와 하나가 되도록 자극하게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침내 귀가 활짝 열린다.(p.79)
- 절이나 교회에 종교가 있다고 잘못 알지 말아라. 어떤 종교든지 일단 조직화되고 제도화되면 종교 본래의 길에서 벗어나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 그때 그 종교는 더 이상 신이나 진리로 가는 길이 아니라 독선과 아집에 대한 변명이 되어 버린다. 종교의 틀 속에 갇힌 사람들은 어떤 의식이나 상징을 종교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종교가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고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신은, 부처와 진리는 이런 곳에는 없다.(p.82)
- 무엇이든지 많이 알려고 하지 말라. 책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 성인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종교적인 이론은 공허한 것이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진정한 앎이 될 수 없다. 남한테서 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겪은 것이 아니고, 내가 알아차린 것이 아니다. 남이 겪어 말해 놓은 것을 내가 알은체할 뿐이다. 진정한 앎이란 내가 몸소 체험한 것, 이것만이 참으로 내 것이 될 수 있고 나를 형성한다.(p.84)
- 공부가 됐건 일이 됐건 전적으로 하라. 어중간한 것은 사람을 퇴보시킨다. 하다가 그만두지 말라. 안 한 것만 못하다.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한 무슨 일이든지 전력을 기울여 하라. 그때 자기 안에서 어떤 변혁이 일어난다. 그 변혁의 과정에서 참된 자기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p85)
 
- 분수 밖의 욕구인 탐욕은 목마른 허욕일 뿐 근원적으로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본래 내 것이란 없는 법이니까. 어떤 개인의 소유라 할지라도 크게 보면 이 우주의 선물이다. 개인의 소유란 그 사람이 한 때 맡아 가지고 관리하는 것이다.(p.130)
- 우리가 행복하고 보다 뜻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 것인지, 그때 그때 자신의 분수와 처지에서 냉정하게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불필요한 것들에서 벗어나 소유를 최소한의 것으로 제한하는 것은 정신생활을 보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요체다. 자신의 분수를 망각한 채 소유에 마음이 빼앗기면 눈이 흐려져 인간적인 마음이 움트기 어렵다.(p.132)
- 어떤 직종에서 무슨 일에 종사하건 간에 자신이 하는 일을 낱낱이 지켜보고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는 것이 곧 명상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안팎으로 냉철하게 살펴보면 된다.(p.139)
- 꽃은 단순히 눈요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곱고 향기롭고 부드러운 우리 이웃이다.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과 조화를, 거칠고 메말라가는 우리 인간에게 끝없이 열어 보이면서 깨우쳐 주는 고마운 존재다.(p.143)
 
- 아이들은 텅 빈 물통이 아니라 하나의 씨앗, 한 개의 도토리다. 어떤 식물학자나 정원사도 도토리에게 참나무가 되는 방법을 말해 줄 수는 없다. 그 작은 씨앗 속에서 거대한 참나무로 자라서 수백 년을 살고 수백만 개의 도토리와 나뭇잎과 줄기를 만들어 낼 그런 힘이 들어있다.(p.163)

- 자연은 부처나 예수, 모하메드나 간디보다 더 위대한 스승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자연의 제자이기 때문이다.(p.163)
- 꿀벌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면서 어느 꽃에도 해를 입히지 않고 조금씩 꿀을 모은다. 그러나 사람들은 땅에서 무엇을 얻어내려고 할 때, 계속해서 빼앗기만 하여 그것이 소진되고 고갈되어 자원이 끝장날 때까지 간다. 우리는 꿀벌한테서 조금만 얻어 오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p.163)

- 삶에는 이유도 해석도 붙일 수 없다. 삶은 그저 살아야 할 것, 경험해야 할 것, 그리고 누려야 할 것들로 채워진다. 부질없는 생각으로 소중하고 신비로운 삶을 낭비하지 말 일이다. 머리로 따지는 생각을 버리고 전 존재로 뛰어들어 살아갈 일이다. 묵은 것과 굳어진 것에서 거듭거듭 떨치고 일어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을 통해서 자신을 새롭게 이끌어내고 형성해갈 수 있다.(p.174)
- 작은 것과 적은 것이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답고 고맙다.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아름답게 여길 줄 알며, 또한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 데서 맑은 기쁨이 솟는다.(p.196)
-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그 아이는 부모의 것이 아니다. 그럴 만한 인연이 있어 그 부모를 거쳐서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동물이건 식물이건 간에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신성한 우주다.(p.202)
 
- <삼국유사> 5권에는 혜통 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혜통이 출가하기 전 세속에 있을 때, 그의 집은 남산 서쪽 기슭인 은냇골 어귀에 있었다.
어느 날 집 근처 시냇가에서 수달 한 마리를 잡게 되었다.
고기는 끓여서 먹고 그 뼈는 뜰가에 버렸다.
이튿날 아침 뜰가에 나가 보니 그 뼈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기고 자세히 살펴보니 웬 핏자국이 띄엄띄엄 나 있었다.
그 핏자국을 따라가 보니 전날 수달을 잡았던 그 근처 보금자리에 수달의 뼈가 고스란히 다섯 마리 새끼를 안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그는 크게 놀랐다.
자신의 행동을 자책한 끝에 그는 마침내 속세를 등지고 출가 수행자의 길로 떠났다."(p.204)
이것은 지극한 모성애와 영혼의 작용을 의미하는 이야기라 한다.
 
- 인간끼리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 천한 직업은 없다. 다 필요에 의해서 벌어진 일들이기 때문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천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웃과 사회에 덕이 되는 것은 좋은 직업이고, 해독을 끼치는 것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천하게 만든다.(p.244)

- 자기 자신이 참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그 일을 통해 삶의 기쁨과 보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을 마지못해 생활의 한 방편으로 하고 있다면, 그의 삶은 날로 생기를 잃어갈 것이다.(p.245)
-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미 우리 곁을 떠나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들은 다른 이름으로 어디선가 그답게 존재하고 있다고 눈 밝은 현자들은 말한다.(p.251)
-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든 것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 마음이다. 내 마음이 악한 일에 머물면 그것이 곧 지옥을 만들고, 내 마음이 착한 일에 머물면 그것이 곧 천국을 만든다.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그렇게 지어서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이라 한다.(p.264)

- 마하마트 간디가 말했다.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우리의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p.296)
- 힌두교 성전인 <우파니샤드>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 "인간의 욕망이 바로 그의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욕망이 다름아닌 그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의지가 곧 그의 행위이며, 그의 행위가 곧 그가 받게 될 결과물이다. 극섯이 좋은 것이든,나쁜 것이든"(p.304)
- 현재 우리가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한 생각이나 입에 담는 말, 그리고 몸으로 하는 행동은 지금 한때로 그치지 않고 이 다음의 나를 형성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 삶은 내가 선택하고 결단한 의지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 누가 대신해서 해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수밖에 없지요.(p.307)
- 삶을 충만케 하는 길이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넘어서서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이 독자적인 사유와 행동을 쌓아감으로써, 사람은 그 사람만이 지니고 누릴 수 있는 독창적인 존재가 된다.(p.321)

[ 2011년 1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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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작년 7월 법정스님의 저서 < 내가 사랑하는 책들 >에 소개된 책 50권 중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오래된 미래>, <무탄트 메시지>, <성장을 멈춰라>, <꾸뻬씨의 행복여행>에 이어 일곱 번째로 읽은 책이다. 
 
이 책은 20세기 초 프랑스 프로방스의 고산지대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에 둔 글이다.
처음 이 글이 발표된 것은 1953년(미국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처음...)이며, 그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13개 언어로 옮겨져 전세계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일으키며 시청되고 있다.
영화제목은 책과 같은 [나무를 심은 사람]이며, 주인공의 거룩한 삶에 큰 감명을 받은 세계적인 화가 프레데릭 바크가 그리고 캐나다 국영방송국(CBC)이 제작을 맡아 나오게 되었다.
(저자인 장 지오노 역시 엘제아르 부피에의 묵묵한 노력과 그 결과에 감동을 받아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나게 된다...)
 
옮긴이는 이 책이 전세계 독자들에게 공감을 받는 이유를 이 조그만 책이 ’깊은 문학적 향기’와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한다.
전세계에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가 지구 전체를 뒤엎기 시작한 19세기 이래 3세기에 걸쳐 인류의 현실은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 패권주의와 종교근본주의의 어두운 먹구름이 덮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이 작품은 이기주의를 버리고 자기의 이익이 아니라 자연과 다른 사람을 위해, 공동의 선을 위해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일하는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불굴의 정신과 실천이 이 땅에 기적같은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 메시지는 인류에게 자연을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다.
 
작품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 -> 새로운 숲의 탄생 -> 수자원의 회복 -> 자연으로의 사람들의 복귀 -> 희망과 행복의 부활"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추악한 다른 측면과 대조를 이룬다.
인간의 이기심과 무절제한 탐욕, 앞날을 조금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 나무를 마구 베는 자연파괴,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살육하는 두 차례의 전쟁의 모습...
 
이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의 문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주고 있는 현대를 위한 한 편의 탁월한 ’우화’이기도 하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독자들은 한 인간이 만들어낸 기적에 관한 이 이야기를 읽고 큰 감동과 용기를 느낄 것이다.

그리하여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의 지구를 살리는 과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신음하는 자연을 구하기 위해 저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나 하나의 노력으로 무엇이 변할까?"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우리 각자가 회의하고 포기하면서 자연파괴와 과소비, 빈부격차와 인간소외를 모르는 척 하게되면 그 결과는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참혹하게 다가올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그마한 노력들이 한 데 모여서 큰 강을 이루고 바다로 향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순수한 품성과 자신의 강한 의지, 그리고 끈질긴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고 고결한 인품으로 평가받고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음을 배웠다.
 
나도 올 해부터는 매년 반드시 나무 한 그루씩을 심어야겠다...^^ 

[ 2011년 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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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편지 - 개정판
법정 지음 / 이레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 암자를 지어 20년을 산 뒤 강원도 산골에 화전민이 살던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셨다. 불일암에서 사신 지 오래되었고 글과 여러 지인들을 통해 거처가 알려지심에 따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임암에 찾아와 스님의 수행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강원도 산골로 옮기신 후부터 쓰시던 글을 정리하여 발간한 것이다.
 
책의 내용은 스님이 직접 쓰신 서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여기 모은 이 글들은 산골의 오두막에서 홀로 지내며 그때 그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내 삶의 뜨락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 스스럼없이 열어보인 것이다.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 서니 헤치고 왔던 길이 잎이 져버린 숲길처럼 휑하니 내다보인다.
나는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다시 묵은 허물을 벗는다.
이 책을 대하는 이마다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얻었으면 한다."
 
1.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시계도 없고 라디오도 들을 수 없다. 비로소 시간 밖에서 살 수 있게 됐다. 배가 고파야만 끼니를 챙기고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온 후에라야 잠자리에 든다. 자연의 흐름을 따라 먹고 자고 움직이니 마음이 넉넉해지고 태평해진다.(p.22)"
 
첫 번째 장에서는 새로운 오두막에서 살아가기 위해 흙방을 만드시고 불일암과 달리 시계와 전기, 전화를 없애신 후 자연을 벗삼아, 자연과 함께 지내면서 자연의 일부가 되는 삶을 통해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던지신다.
문명과 습관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강요하는 소유욕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각 개인이 스스로를 자각하는데 있어 가장 절실한 것이라며...
 
2.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직업이 있다. 그런데 그 일이 참으로 좋아서 하는 직업인이 얼마나 될까?
대개는 그 일이 좋아서, 그리고 하고 싶었던 일어어사가 아니라, 수입과 생활의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에 애착도 지니지 않고 책임감도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일가 사람이 겉도는 불성실한 직업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일을 하지만 그 일에 흥미가 없으면 일가 사람은 하나가 될 수 없다.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를 가지고 책임을 느낄 때 사람은 그가 하는 일을 통해서 인간이 되어간다.(p.75) (중략...)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 그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라. 그래서 당신의 인생을 환하게 꽃피우라.(p.77)"
 
사람이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에 몰입하게 되면, 스님의 말씀처럼 '일과 하나가 되는 것' 이전에 스스로의 하루하루가 신날 것이다.
 
작년에 유명한 모 소설가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읽는 내내 책 제목처럼 같이 지루했다. 세인들은 모두 그 소설가가 '성공'한 사람이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 스스로가 어느 정도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해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일 수도 있고 마케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소설가도 힘들고 어렵게 글을 써내고 세인들에게 인정받았음에도 다시 '하고싶지 않은 일'이 되버렸을 수도 있고...
 
나 역시 지금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3. 안으로 귀 기울이기
"우리는 말하기 전에 주의깊게 생각하는 습관부터 길러야 한다. 말하는 것보다는 귀 기울여 듣는 데 익숙해야 한다. 말의 충동에 놀아나지 않고 안으로 곰곰이 돌이켜 생각하면, 그 안에 지혜와 평안이 있음을 그때마다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말을 아끼려면 될 수 있는 한 타인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두고 아무 생각 없이 무책임하게 제삼자에 대해서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나쁜 버릇이고 악덕이다.
거듭 말하는 바이지만, 당신가 나 인간 개개인이 변화하지 않고는 세상은 결코 변화될 수 없다.
현재의 이 사회와 세상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사회가 우리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어떤 틀 속에 밀어놓고, 또 그 틀은 사회라는 구조 속으로 우리를 밀어붙인다.(p.117)"
 
이 이야기 속에는 단순하지만 깊고 넓은 스님의 기본적인 세계관과 철학이 엿보인다.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 자연과 사회와 인간이 모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가 다시 인간을 만들어 간다는 것, 마치 '뫼비우스의 띠'나 <여섯 개의 수>에 나오는 '오우라보루스'처럼 인과관계가 이루어지고 만물이 영향을 끼친다는 것...
어찌보면 '윤회'와도 같은 이 사슬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한 사람, 한 사람부터 시작해야 한다.
 
결국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이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 묻게 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스님은 지금의 자신을 안으로 살피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절실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4. 눈고장에서 또 한 번의 겨울을 나다.
"스님은 강원도 그 산골에서 혼자서 무슨 재미로 사세요?"라고 누가 물어보자 스님은 "시냇물 길어다 차 달여 마시는 재미로 살지요."라고 대꾸했다고 한다.(p.184)
 
우리는 이미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도시에 살고 있어 잘 모르지만, 자연은 봄은 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자신의 멋과 풍류를 보여준다고 한다.
나무와 풀, 산짐승과 물소리, 바람과 햇볕, 달빛과 눈빛... 그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
 
5. 새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다.
"밤에는 동해바다 일대에 오징어잡이 배들의 집어등이 장관을 이룬다. 어족들은 눈부신 등불을 보고 무슨 잔치인가 싶어 몰려들었다가 잡혀 한 생애를 마친다. 등불에 속는 것이 어찌 고기떼 뿐이랴. 밤의 수상한 불빛에, 과장된 그 불빛에 속지 말아야 한다.(p.258)"

스님의 거처는 대외비다. 강원도 산골에 몇 년간 살다가 바닷가 가까운 곳으로 내려왔다.
연로하셔서 '영하 20도의 그 팽팽한 긴장감'이 이젠 만만치 않아 잠시 피한한 것이다.

이 책 속의 스님의 에세이들은 단순한 은둔자의 감상이 아니다.
몸은 홀로 있지만 인간과 자연과 사회에 대한 명민한 통찰이며, 스님이 추구하는 도의 일부다.
그리고 스님은 중생들로부터 배우고 얻는 것들에 대한 댓사로서, 마땅한 도리로서, 중생들의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행동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섣불리 탈출을 결행할 수 없는 도시인들에겐 크나큰 위안이요 자극일 수 밖에 없다.   
 

<아름다운 마무리>와 <산방한담>,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 이어 법정스님의 저서를 네 번째로 읽었다. 이 책은 서점에 나온 스님의 저서 중에서 초기인 1998~1999년에 쓰신 글들이다. 

[ 2011년 2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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