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드혼 농장 이야기
핀드혼 공동체 지음, 조하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 부제 : 자연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 참여자 : 피터 캐디(Peter Caddy), 아일린 캐디(Eileen Caddy), 도로시 매클린(Dorothy Maclean), 오길비 크롬비(R. Ogilvie Crombie), 데이비드 스팽글러(David Spangler)
 
이 책은 법정스님이 <내가 사랑한 책들>에 소개한 도서 중에서 류시화씨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 이어 12번째로 읽은 것이다.
 
영국은 여러가지로 참 특이한 나라이고 독특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은 18세기 들어 지구 상에서 가장 빠르게 산업혁명을 일으켜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그 힘을 기반으로 대영제국의 깃발을 앞세워 옆 나라 아일랜드부터 저 멀리 중국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체제를 구축하여 200여년 이상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이룩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와 민중들을 착취하고 학살했다.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제국주의가 쇠퇴함에 따라 미국 제국주의에 밀려났음에도 아직도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다.
영국은 정치적으로 표적인 입헌군주제 체제이고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의회민주주의와 대중투표제를 도입했다. 자본주의가 상대적으로 빨랐기 때문에 그 만큼 영국 민중들의 삶이 고통스러웠다. 2008년 봄 한국의 광장을 환하게 밝혔던 ’촛불’의 원인이 된 ’광우병’ 역시 영국에서 처음 발견, 전파되었다. 지난 5월 12일 [나눔문화]에서 진행된 [평화나눔아카데미] 7번째 강연 ’잃어버린 마을, 살고 싶은 도시를 찾아서(김성균 )’에서 소개되었던 ’토트니스(Totnes)’는 ’광우병’ 사태로 철저하게 파괴되고 버림받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자본주의가 심화되었던 만큼 자본주의에 대한 반항과 대안을 위한 노력도 오랫동안 시도되어 왔다. 현대 과학기술 문명과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폭력적이고 자멸적인 폐해에 대항한 환경운동과 생태주의, 반문명 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책은 1960년대 중반 영국 스코틀랜드 북부지방에서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농업, 새로운 경제,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10여년 만에 스코틀랜드 북부 지방의 바람이 거세고 메마른 모래 언덕에 놀랍도록 경이로운 식물과 꽃, 나무,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토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죽어 있었고 무용지물인데다, 어떤 화학비료도 일체 사용하지 않고 그 모든 생명체는 자랐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었고 선언했던 자연조건에서 이룩한 결과라는 점은 그 자체로 ’기적’에 가까웠다.
이 책은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피터 캐디와 그의 동료들이 자연의 영(nature sprit)과 데바(deva 선한 영)들과 어떻게 접촉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 * [핀드혼 공동체]란? -----------------------
핀드혼 공동체는 1962년, 전인(全人)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삶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찾으려는 시도로 출발하였으며 이 시도가 일구어낸 성과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스코틀랜드 북동쪽에 있는 한 이동식 주택 마을에서 피터 캐디, 에일린 캐디, 도로시 매클린이 함께 시작한 이 공동체는 지금은 커다란 교육 센터가 되었으며, 매년 세계 각국에서 1만 4천 명이 넘는 방문자들이 찾아와 일정 기간 거주하며 인성 및 영적 수련을 받는다.
지금은 공동체가 확장되어서 재단으로까지 발전했지만 공동체의 설립 초기에는 스코틀랜드의 핀드혼 만에 있는 척박한 모래땅 위에 세운 아름다운 농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후 1980년대부터는 자연과의 협력이라는 연속선상에서 에코빌리지 프로젝트(Ecovillage Project)의 개발에 참여해 왔다. 에코빌리지란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자연과 동반자적 관계 속에서 일해 나가는 동시에 인간과 사회의 요구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www.findhorn.org) ----------------------
 
1962년 11월 피터 캐디와 아일린 캐디를 포함한 6인은 스코틀랜드 북부 핀드혼 만에 있는 황량한 캐러밴 파크에 도착했다. 아일린의 내면의 안내자로부터 인도되어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고자 한 것이다. 캐러밴 파크는 모래와 자갈만이 잡초와 뒤섞여 있는 척박한 토양이었다. 그들은 적은 면적의 밭에 씨앗을 뿌리고 화학비료 없이 자연 속에서 퇴비를 만들고 나무재를 만들어 밭을 갈았다. 처음 그들이 척박한 토양에 도전할 때 여러가지로 많은 운이 따랐다.
그들은 매일매일 일하는 가운데서도 틈틈히 명상을 하고 아일린과 도로시는 내면의 신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 적었다. 메시지는 그들의 내적인 발전에 대한 조언 뿐 아니라 섭취해야 할 음식이나 농사활동에 대해서도 조언해주었다. 도로시는 농장일을 시작한 2개월 만에 명상 중에 직접 식물계의 데바, 스위트피 데바와 접촉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 이후로도 계속 그렇게  완전히 전통적인 방식과 영적인 힘들의 도움을 받아 농장일을 해나갔다.
 
농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2년 후 농장은 생명으로 흘러넘쳤다. 데바와 자연령들의 도움으로 작물들은 놀라운 생명력으로 양과 질에서 풍성환 결과를 나타냈다. 양배추의 무게가 기존 보다 10배 이상 나가기도 했다.
이런 수확을 거두어들인 것은 유기농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자연에 대한 관점부터가 그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었다. 이들은 자연을 협력자로 생각한다. 자연을 대상화하거나 도구로써 함부로 이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연을, 지구에 또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주체로 보는 것이다.
1966년 핀드혼 농장에 합류한 R. 오길비 크롬비는 오컬트적인 지식에 심취해 있었다. 과거에 자연신 판(Pan)과 수 차례 접촉하 그는 핀드혼 농장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자신이 함께해야 함을 즉시 느꼈다.
10년도 더 지난 1975년 핀드혼은 170개의 강력한 공동체로 성장했다. 지금은 핀드혼 재단으로 성장하여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데바와 모든 생명을 느끼고 이해하며 소통하는 친환경적이자 영적인 교육 센터로 자리매김했다.
 
핀드혼 공동체의 주역인 저자들은 이 책에서 핀드혼 농장의 성공을 ’자연과 인간 사이의 협력을 통한 실험의 성공’으로 설명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유기농법을 따르고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식물과 그 안에 내재한 신성과의 의식적인 교감을 발전시키는데 주력한다. 그들은 씨았을 뿌리고 퇴비와 영향을 공급하고 가지치기를 하는 등 농장일의 전과정에서 식물을 영혼을 가진 생명체로 대한다. 항상 식물들과 대화를 하고 농장일을 해나가는 단계에서 항상 식물들에게 먼저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 그들은 잡초와 해충이 생명체로서 존재를 인정하고 농장일에 필요한 조치를 해나가는데 있어 과학기술이나 물리력이 아닌 상대와의 대화와 여건을 조성함을 우선 생각한다.
 
이 책은 핀드혼 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데바, 엘리멘탈(자연령), 인간 모두가 동일한 우주적 과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구는 생명과 영으로 충만해 있다. 인간은 지구를 살아가는 하나의 유기체이고 데바, 자연령과 형제들이다. 인간은 데바, 자연령들과 협력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이 드러나게 하고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도움을 받는 것이다.
핀드혼 공동체의 성공과 발전은 그러한 새로운 관점과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다. 그 과정을 통해 핀드혼이 탄생했고 진화해가고 있다.
 
20세기 서구 문명의 질주하는 성장은 끝없는 자연의 위기, 토양 침식의 위기, 화학비료의 남용, 유전자 식물의 위험, 환경과 생태계 파괴를 가져왔다. 그 뿐만 아니다. 질주하고 있는 서구 문명은 전세계에서 인류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고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고 적대적으로 대립하도록 만들었다. 인간의 정신과 영혼은 황폐해졌다. 핀드혼 공동체의 모습은 21세기 인류가 비참한 미래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 [나눔문화 평화아카데미]의 강연 중에서...------------------- 

잃어버린 마을, 살고싶은 도시를 찾아서

글쓴이 | 김성균 조회수 466 2011.05.16 22:52 (http://www.nanum.com/site/161425 )

“도시에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요?” 
답답한 도시에서 벗어나 좀 더 인간답게, 좀 더 자연을 덜 해치며 사는 방법은 없을까요? 
많은 도시인들이 고민하는 문제인데요. 
평화나눔아카데미 일곱 번째 강의에서는 
도시 속에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온 김성균 박사를 만났습니다.  
우리가 마을을 잃어 버린 이유, 살고 싶은 도시들이 사라진 이유. 
김성균 박사의 강의로 만나 보시겠습니다

’도시’국가의 역설

도시는 인간의 편의를 위한 기능과 시설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처음 출발했지만 
언젠가부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는 풍요보다 병과 불안이 짙어지고만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 국토가 도시화 되어버린 지금도 여전히 도시를 늘려가려는 계획들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높은 빌딩’, ’꽉 찬 자동차’, ’넓은 도로’. 이렇게 세 단어만으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모두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네 골목골목마다 마트가 들어서면서 지역 상권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고,
숨이 막힐 듯한 고층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여기저기 늘어서 있죠.
가까운 곳을 가더라도 차를 이용해서 갈 수 밖에 없고,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지글거리는 열기, 무기력하고 답답한 일상이 뒤섞이면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삶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분들이 해마다 늘어가고 있습니다."

"2008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도시화율은 90.5 %입니다. 
전국 240개의 기초자치단체가 거의 다 도시화가 되어 버린 형편인데요,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온통 수도권 중심으로 편재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지방 행정가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수도권과의 접근성을 좋게 만들까’ 뿐입니다.
과거엔 춘천을 가려고 청량리 역 앞에서 마음을 설레고 그랬지만 이젠 쾌속열차로 한 방이면 도착하지요.
지금 한국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도시’국가의 모습으로 가고 있습니다." 
 
땅과 공간을 바라보는 그릇된 철학

옳은 방향이 아닌데도 여전히 그 방향으로 계속 갈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은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지금 우리의 도시는 땅과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김성균 박사는 단호히 꼬집습니다.
고유한 전통의 마을을 잃어버린 것도, 살고 싶은 도시를 잃어버린 것도 모두 
’개발’과 ’부동산’의 관점에서만 땅과 공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요.
 
"본디 마을 동 ’洞’자에는 ’함께 한 우물의 물을 나눠 마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동사무소’, ’삼청동’ 할 때 쓰는 이 글자 안엔 이미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또한 요즘 ’풍수지리’라고 하면 ’수맥’, ’조상 묏자리’ 등을 떠올리면서 느낌상 좀 좋지 않게 다가오지만
사실 그것은 ’바람과 물과 땅과 마을, 그리고 그 이치에 관한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전하는 개념입니다.
사람이 한 장소에 살아가면서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주변의 관계를 모두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길’에 대한 관점도 그렇습니다. ’4차선, 8차선 도로’ ’몇 미터 구간’ 등은 좀 삭막하지 않습니까.
우리 선조들은 ’어귀길, 아귀, 안길, 샛길, 골목’등 굉장히 공간적이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표현했지요."

"도시계획으로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당시부터 참 의문이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를 설계한다는 분들이 끝까지 ’사람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거에요. 
도로 8차선 기법이 어떻고, 빌딩의 측량이 어떻고 이런 이야기들만 하고 마는 것이 무척 답답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학과가 한술 더 떠 ’부동산 도시 및 지역개발학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더라고요. (웃음)
우리는 지금까지 토건의 꿈을 과감히 떨친 역대 어느 정부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민주정부 시절 조차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대거 양성하면서 부동산 신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지요.
지금 이 정부는 땅 가지고 하는 것도 모자라니까 결국 물에 까지 손을 대는 형국인 겁니다.
’삶이 진행되는 공간’, ’역사가 축적되는 장’으로서의 땅에 대한 개념은 철저하게 상실되는 가운데
성장형 도시로서의 가치만 우선시하는 토건 문화가 무서운 속도로 작은 마을 단위까지 번져가고 있습니다." 

진정한 삶터의 모습을 실현하는 공동체 모델, 토트네스(Totnes)

10년 넘게 국내 외 생태마을 곳곳을 누비며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연구해 온 
김성균 박사는 ’행복 실험실’이라고까지 불리며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고, 이웃과 우정을 나누며 사는 모습을 바람직하게 실천해나가고 있는 
영국의 공동체 마을, 토트네스(Totnes)의 사례를 전합니다. 
 
"토트네스(Totnes)가 위치한 영국 서남부 지역은 원래 산업화의 중심지이자 거점이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최악의 광우병 사태를 경험하고 나서 이 지역은 활력을 모두 잃어버렸죠.
주민들은 ’지금까지 물리적이고 경제적인 장소로만 마을과 지역이 살아왔는데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마을 교회에서 다 같이 모여 본 영화 한편
(<The End of Surburbia>)이 이 마을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주민들과 학생, 교수들이 모여 ’지속성’, ’지역화’, ’건전한 풍요’ 이 세가지 컨셉을 가지고 
지역에 관한 전혀 새로운 로드맵을 짜나가게 됩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토트네스 파운드’입니다. 마을에서 직접 발행을 해서 쓰는 지역화폐인데요,
지역 경제가 건강해지려면 최소한 72시간 정도는 자본이 지역 안에서 순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프렌차이즈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면 그게 불가능해 집니다.
정확히 48시간 안에 맥도날드 사장님 주머니 안에 로열티가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지요.
토트네스 사람들은 모든 거대 기업들이 지역을 그런 방식으로 작동시킨다는 속성을 알아챘고, 
최대한 지역 내에서 자본을 순환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던 것입니다."

"토트네스 사람들의 원칙은 ’지역 생산물의 18% 이상은 외부로 유통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역 안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법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 있는 자산과 가치를 최대한 축적하려고 하는 것이죠.
다양한 동아리 모임과 스터디 그룹도 활발한데요, 그 중 ’헬스&소울’이라는 모임이 인상 깊었습니다.
시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잘 먹고 잘 노는 모임인데요^^ 휴식을 통해 영혼의 깊은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죠.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진정한 삶터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깝고 작은 것으로 시작하는, 도시의 ’가능한 변화들’

이쯤이면 궁금함은 더해집니다. 
당장에 도시를 벗어나 시골생활을 시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답답하기만 한 이 도시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지. 
그래서 우리들의 질문은 ‘도시에서도 인간답게 살 수 없을까?’로 이어졌는데요. 
김성균 박사는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가능한 작지만 큰 변화의 시작을 제안합니다.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산다는 게 정말 어렵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가능한 것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에서는 숙박시설에 가면 있는 조그만 크기의 냉장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차도 여러 명이서 한 대를 구입해서 키를 여러 개 만들어 돌아가며 이용하고 있구요, 
인스턴트 음식은 사 먹지를 않고 있습니다.
봉지 식품이 필요하지 않으니 대형마트를 보다 가급적 동네 재래시장을 이용하게 되더라고요."

"요즘처럼 거대한 아파트에 사는 환경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요,
동네 주민 분들과 한 분씩 관계 맺기를 시작하면 그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걸 느끼시게 됩니다.
11층 아주머니하고는 제 아내보다 제가 더 먼저 친해졌어요. (좌중 웃음) 
경비원 아저씨,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와 걸터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요,
가끔 날씨 좋은 날에 모여서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답사나 MT를 떠나기도 합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너무 큰 것을 생각하기 보다 할 수 있는 최소한이 무엇인가 생각하시면 
이런 도시에서도 대안적인 방향의 실천들을 조금씩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2011년 6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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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공식 한국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지난 7월에 법정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하는 책들>에 소개된 책 50권 중에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과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책이다.   

’라다크’는 어떤 곳인가?
라다크는 ’라 다그스 La Dags’라는 티베트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 뜻은 ’산길의 땅’이라 한다. 히말라야 산맥의 북쪽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거대한 산맥의 그늘에 쌓여 있는 고원지대에 있다.
고도 1만 피트(3,050m)의 고원지대인 이곳에서 1년 중 작물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은 4개월에 불과하다. 대부분 농가 1가구당 5에이커(20,000m²) 정도의 경작지를 가지고 보리, 밀, 콩, 순무를 경작한다.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북부 인도의 몽족과 긹트의 다드족이 처음 이 지역에 거주하였고 기원전 500년 경에 티베트에서 이주해온 몽고 유목민들과 합류하면서 거주민들이 형성되었다.
종교와 문화적인 면에서 티베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종종 ’리틀 티베트’라 불리운다.

  
p.53 농가 1가구당 대개 5에이커 정도의 경작지를 가지고 있는데 여유가 있는 가구는 10에이커 정도를 경작하기도 한다. 적정한 경작지 면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일할 수 있는 가족의 수이다. 대략 한 사람당 1에이커 정도가 그 적정 면적인데 이곳 농부들에게 그 이상의 땅은 소용이 없다. 기본적으로 이곳 사람들은 경작하지 못 하는 농지를 소유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이것은 라다크 사람들이 농지를 재는 단위에 잘 반영되어 있는데 이들은 밭의 면적을 잴 때 그 밭을 가는 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 ’하루치’ 혹은 ’이틀치’라는 식의 단위를 사용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20세기부터 서구를 중심으로 전세계 수십억 인구가 치닫고 있는 글로벌 경제가 인류에게 결코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GNP와  GDP로 수치경제를 지향하는 글로벌 경제는 행복 대신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것을 소비지향적인 획일성 문화로 대체함으로써 건강한 정체성의 근본을 훼손시킨다는 것을 온몸으로 겪은 저자는 라다크의 사례를 통하여 고발하게 된다.
저자는 처음 경제개방에 따른 변화에 혼란스러워 하다가 뒤늦게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고 라다크를 ’수치’가 아닌 행복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전통을 되살리고 지역에 맞도록 과학을 이용하여 ’지역중심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의 1부, ’전통에 관하여’는
1975년 언어학자인 저자가 라다크 방언의 연구를 위해 라다크 마을을 방문하여, 자신이 살아왔던 서구세계와는 다른 가치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평화롭고 지혜로운 모습을 그리고 있다.
2부, ’변화에 관하여’는
1975년 인도 정부의 개방정책에 따라 개방된 라다크 전통문화의 수도 레(Leh)가 외국 관광객들이 가지고 들어온 서구 문화와 가치관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3부, ’미래를 향하여’는
저자가 라다크 사회의 회복을 위해 설립한 국제 민간기구인 ‘에콜로지및문화를위한국제협회(ISEC)’의 구체적인 활동과 ‘라다크 프로젝트 (Ladakh Project)’에 대한 소개와 활동 상황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서구식의 소모를 전제로 하는 개발의 폐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그들 토양에 맞는 새로운 가치의 정립과 발전을 이루어나가도록 설득하고 있다. 


 


인도정부가 라다크 지역을 외부에 개방하기 전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긍정적인 자존감이 높았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마을 단위로 자급자족하였고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항상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았고 조상 대대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였다.
"미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사람들이 먹는 것은 돌로 빻아 만든 통밀 빵이에요. 우리 전통 빵하고 비슷한 것인데 그게 흰 빵보다 훨씬 더 비싸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천연재료로 집을 짓고 있어요. 우리처럼 말이에요. 보통 가난한 사람들이 콘크리트로 만든 집에서 살지요. 또 ’100퍼센트 천연섬유’나 ’순모’라는 표시가 있는 옷을 입는게 유행이에요. 가난한 사람들은 폴리에스테르 섬유로 만든 옷을 입어요."
그곳에서 가장 심한 욕설은 ’숀 찬 schon chan’이라고 하는데, 이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순수한 지역에 자본주의가 침범해 들어오면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되어 버린 것이다. 
인구가 급증하고 그에 따라 도시화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불필요했던 화폐와 용품이 들어오고 영화와 서구음악이 들어왔다. 이 모든 것들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서구지향적인 의식을 주입하였고 라다크인으로서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빼앗아갔다.
관광과 외부 농산물, 서구식 교육과 물품들은 지역의 자급자족 체계를 무너뜨리고 일하는 사람들을 도시로 내몰았다. 그들은 고향의 넉넉한 품에서 도시의 좁고 더러운 주거지역에서 생필품을 위한 노동자로 전락해간다.
 
이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단호하다.
"문화적 다양성을 부흥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불필요한 무역을 줄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납세자들이 낸 세금은 운송망을 확충하는 데 쓰이고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역을 위한 무역을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다. 우리는 우유에서 사과 그리고 가구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상품들을 대륙을 가로질러 실어 나르고 있지만 그 상품들은 대부분 현지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정말 해야 하는 일은 지역의 경제를 더욱 강화하고 다양화해야 하는 것이다. 운송비용의 감축을 통해 우리는 쓰레기와 오염을 줄이고 농민의 위상을 개선시키고 공동체의 유대를 일거에 강화할 것이다."(p.323) 
 
라다크 지역과 라다크인의 삶이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그들의 변화과정 역시 한반도의 역사와는 크게 다르다.
하지만 지리상, 역사상 과정이 다름에도 둘 사이에는 ’전통문화와 공동체의 해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라다크에서 배울수 있는건 삶 자체에 대한 생각들이다.
한사회 복지의 진정한 지표는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국민총행복’ 이라는 부탄 국왕의 말을 되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무작정 주어진 삶, 남들이 살아가는 인생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인생’과 ’행복’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닥치게 된다.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 책은 작은 실마리를 준다...









* 지난 8월에 EBS ’테마기행’에서 방영한 [오래된 미래, 라다크] 4부작을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짧게 감상해 보았다.
저자와 달리 그냥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라다크 지역에 머물렀기 때문에 제작진들은 라다크 지역의 진정한 문화와 삶을 담아내지 못하고 그저 ’한국과 다른’, ’독특한 지역과 사람들’이라는 메시지 밖에 전달하지 못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기획하면서 분명 저자의 책을 읽었을 텐데도 방송국과 제작진들은 그저 ’시청각 자료’를 만드는데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4편 내내 감탄과 소감 밖에 들리지 않는다.















[ 2010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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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트 메시지 -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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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일 파티와 축하노래 등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들은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나서 물었다.
'왜 그렇게 하죠? 축하란 무엇인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하는 건데, 나이를 먹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나이를 먹는데는 아무런 노력이 들지 않아요. 나이는 그냥 저절로 먹는 겁니다.'
내가 물었다.
'나이 먹는 걸 축하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무엇을 축하하죠?'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나아지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수 있습니다.'라고..."

지구상 어떤 인간종족 집단 중에 가장 자연친화적이고 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그것도 지구 환경 중에서 가장 거칠고 험난한 사막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배우고 알았던 인류 역사와는 다른 전개과정, 다른 역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치 우주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다우주’가 존재하는 것처럼 그들이 살아온 지구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우주였다. 
 
이 책은 지난 7월에 법정스님의 저서 < 내가 사랑하는 책들 >에 소개된 책 50권 중에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오래된 미래>에 이어 네 번째로 읽은 책이다.  
 
책의 제목인 ’무탄트’는 원주민들이 저자를 부를 때 사용한 이름이었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라는 뜻이고 어떤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서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자연에 도전하고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과 조화되지 못하는 서구인들이 돌연변이일 수 밖에 없다.
 
책 속에 나와있는 참사람 부족의 생활, 그리고 저자의 경험은 일반적인 내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텔레파시, 음악치료, 후각과 청각, 점술가의 예언 등... 
그럼에도 단적으로 그럴 가능성마저 없다고 내치지는 못하겠다.
내가 그럴 정도로 강력하고 깊은 경험과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류의 진화과정에 따라 인간도 적지 않은 신체능력이 발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미국과 비슷한 호주라는 국가의 역사와 호주 주류인들에 대한 강한 편견도 생겼다.
영국에서 변화가 불가능한 죄수들과 교도관들이 정착한 땅...
그들은 수 만년 전부터 호주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살륙하고 학대하고 착취하면서 호주땅을 장악하여 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이제 와서 그 원래 주인들을 살려보겠다고 개화시키겠다고 선심을 쓰고 있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오두막 편지>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생명의 잔치’에 동참하지 못하는 돌연변이 문명인의 삶을 이렇게 질타하셨다.
"문명인들이라고 자처하는 현재의 우리들 삶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자연의 방식이 아닌,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요즘 같은 지구 환경의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올바른 이해는 책이나 선생으로부터 얻어듣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의 느낌이나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온전한 삶은 방식이고, 우리 자신과 우리 둘레의 수많은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의 신성한 의무이기도 하다.
오만과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분수를 알지 않고는 인간은 지구 최후의 동물로서 스스로 멸종되고 말 것이라는 우울한 생각이 드는 요즘의 현실이다."
  
어떤 기독교인은 자신의 서평 및 추천란에 쓴 글이 있다.
"이 부족들의 삶은 내 인식의 생각을 초월해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그들은 우리보다 구원의 삶에 더 깊이 참여하고 조상 대대로 누리고 왔다는 느낌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보다 그들에게 구원이 더 가까이 더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신 분은 일단 일독을 권해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나누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목차와 각 챕터의 주제...
1. 초대받은 손님
  - 훗날에야 나는 물건이나 자신이 가진 관념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 시험에 통과하다.
  - 모든 일은 필요한 때 일어나도록 되어 있다. 당신은 이 여행을 경험해야만 한다. 당신은 바로 이 일을 경험하기 위해 태어났다.
3. 신발이 필요없는 사람들
  - 우린 지금 당신의 발한테 미한다하고 말하고 있다. 당신이 두 발에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의 발에게 어서 빨리 나아서 튼튼해지라고 부탁하고 있다.
4. 지구 반대편으로의 여행
  - 당신이 이곳에 온 것은 운명적인 일이다. 이곳엔 당신가ㅗ 연결된 사람이 있다. 그 약속은 당신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루어졌다.
5. 원주민은 사람이 아니다.
  - 당신은 원주민들을 잘 모른다. 그들은 원시적이고 폭력적이고 미개인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개종시키려고 오랜 세월을 허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6. 사막에서 보낸 하루
  - 그들이 나를 부를 때 사용한 이름은 무탄트였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라는 뜻이고 어떤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서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7. 참사람 부족
  - 그들은 대자연을 향해 먹을 걸 요청했고 그것이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조금도 버리지 않았으며, 그러면 언제나 그것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그것을 받았다.
8.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 참사람 부족이 텔레파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조금이든 많이든 결코 남을 속이지 않았다.
9. 몸 청소
  - 이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저마다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 일시적인 변덕이나 부적합한 일, 우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10. 보석의 가치
  - 저녁에 참사람 부족의 처녀는 꽃목걸이를 땅에 내려놓아 어머니 대지에게로 돌려보냈다. 꽃은 이미 자신의 존재 이유를 충분히 실현했던 것이다. 처녀는 꽃에 깊이 감사했고 그날 많은 사람들로붜 받은 찬사를 마음 깊이 간직했다.
11. 더 나아지는 걸 축하하는 사람들
  - 우리는 생일이 아니라 나아지는 걸 축하한다. 작년보다 올해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만이 알 수 있다.
12.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다.
  - 그들의 배설물에선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나느 문명 세계에서 50년이나 음식을 먹고 살았기 때문에 몸을 해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13. 진정한 치료
  - 참사람 부족은 아무나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육체는 높은 차원의 의식이 개인의 의식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믿었다.
14. 배움을 주는 것들
  - 인간이 버림의 의미를 배우기라 무척 어려운 일이다. 새것을 받아들인 빈 공간이 없으면 새것이 들어올 수 없다.
15. 조화를 이룰 줄 아는 사람들
  - 참사람 부족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대가들이었다. 그들은 우주 만물을 이용하지마, 어느 것 하나 어지럽히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날 줄 알았다.
16. 세상이 중심
  -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이 존재의 어떤 차원에서 그것과 같은 장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단지 자기 수행과 표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17. 음악 치료
  - 그들은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도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으며, 원하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18. 꿈을 붙잡는 사람
  -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꿈의 세계에도 존재할 수있고 일어날 수 있다. 모든 해답은 거기에 있다.
19. 희한한 저녁 식사
  - 사냥꾼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낙타무리르 ㄹ관찰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형제로 여기는 딩고의 사냥 방법을 이용해 무리 중에서 가장 약한 녀석을 잡기로 결정했다.
20. 행복을 전하는 사람
  - 사람이 숨을 쉬고 있다고 해서 다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숨을 쉰다는 것은 아직 땅에 묻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숨을 쉬지만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이 많다.
21. 길잡이가 되다.
  - 우리 모두가 하나이며,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되어 살고 있다고 그들이 말했지만 나는 관찰자일 뿐이었다. 나는 늘 나 자신을 그들과 따로 떼어 놓고 있었다.
22. 신성한 동굴에 들어가다.
  - 이것들은 신이 최초로 창조한 사람들이며 유일하게 진실한 참사람 부족이 지구상에 남긴 것이다. 우리 부족의 유물들은 무탄트들이 다 빼앗아 갔다.
23. 꿈의 시대
  - 신의 부족인 우리 참사람 부족은 곧 지구르 ㄹ떠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가장 젊은 사람이 죽으면, 그것이 곧 부족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24. 그림으로 기록한 역사
  - 참사람 부족의 지혜는 나를 끊임없이 놀라게 했다. 만일 그들이 세계의 지도자가 된다면, 우리의 인간 관계는 얼마나 많이 달라질 것인가!
25. 참사람 부족의 일원이 되다.
 -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참사람 부족은 무탄트들과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26. 생일이 아니면서도 행복한 날
  - 이곳에 남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나는 이들과 함께 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보낸 멋진 날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27. 모든 것이 비에 떠내려가다
  - 신이 보시기에 내가 아직도 물건에 지나친 애착을 갖고 그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주기 때문에 그것들을 가져가 버렸다고 그들은 말했다. 나는 깨달았다. 소중한 것은 물건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28. 내가 원하던 삶
 - 그날 밤, 캄캄한 사막에서 나는 세계가 살아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마침내 두려움을 이겼음을 깨달았다. 마침내 원하던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29. 작별
  - 우리는 무탄트들이 너무 늦기 전에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그들이 지구를 파괴하고 서로 헤치는 것을 어서 빨리 중단하기 바란다.
30. 해피 엔딩
  - 시간이 시작된 이래, 참사람 부족은 자신들이 우주와 하나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는 진실하고, 정직하고, 평화로운 종족이었다.


 
저자와 같은 기회가 나에게 닥칠 경우, 또는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내가 그녀처럼 그런 기회를 받아들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과정을 이겨낼 수 있을 지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없다.(당시 그녀의 나이는 나보다 많은 50살이었다.)
물론, 닥쳐봐야 할겠지만...  

 * 책에 대한 세계적인 비난과 오해와 저자의 입장
- 이 책에 대해 전세계적으로 출판계와 언론에서 혼란이 조성되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다.
- 인터파크 서평 중에는 2007년 10월에 ’밝혀진 한 편의 사기극’이란 제목의 글이 아마존닷컴 독자코메트란을 인용하고 인터넷 주소와 함께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주장이 올라와 있다.
- 출판사인 ’정신세계사’ 자유게시판에는 2008년 중에 여러명의 독자들이 항간의 소문에 대해 해명하라는 게시글과 함게 2008년 6월 번역자인 류시화를 통해 저자 말로 모건이 밝인 입장에 대한 글이 올라와 있다.   

- 글 속에서 저자는 1996년 이후 지속적으로 그러한 모략과 협박을 받아왔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독자들께,
제 이름은 말로 모건입니다. 저는 호주 원주민들의 문화에 관한 책을 두 권 썼습니다. 제 두 번째 책 ‘Message From Forever’(한국판 제목 참사람 부족의 메시지)는 한 원주민 부족장인 부르남부르남과 일곱 명의 다른 부족 장로들의 요청에 의해 써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이가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소위 ‘잃어버린 세대’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1920년에서 1940년 사이에 호주 백인들의 법에 따라 어릴 때 부모에게서 떨어져 수용시설에서 길러졌습니다. 이것은 두 쌍둥이의 이야기이고 등장인물들은 그룹멤버들이 공유했던 인생경험의 혼합물입니다. 나는 부르남부르남에게 내 도움을 받아 직접 책을 쓰라고 권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긴 하지만 그것이 저명한 저자가 쓴 것이 아니면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첫 번째 책 ‘Mutant Message from Downunder무탄트 메시지’ 덕분에 저명한 저자가 되어 있었지요.
이 첫 번째 책은 여러분도 인터넷을 통해 아시듯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 문제가 제기된지도 15년이 지났습니다. 인터넷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다른 대륙의 다른 나라 사이에서 일단 제시된 정보를 억지로 바로잡는다는 것은 법원의 명령에 의해서도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호주의 한 미술전시관 주인에게서 출발했습니다. 그는 원주민과 유럽인의 혼혈인 남자로서 그 어느 쪽 인종에도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아 보였는데 내가 그 책으로 1600만 달러를 받았다는 루머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 루머는 너무나 과장된 것이라서 어떤 출판사도 신참 작가에게 1600만은 고사하고 100만 달러도 주기가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연락해서 자신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내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나는 그런 적이 결코 없는데도 내가 그 책이 실화라는 말을 철회했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넷에서 악의적인 공격을 하는 그룹의 이름은 둠바퉁 원주민 코퍼레이션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초기의 호주 정착민들이 원주민들의 전통적 점 그림(dot art)을 보고 바보 그림(DUMB ART THING)이라고 부를 때 쓰던 말입니다.
나의 책은 사막에서 이 영감적인 사람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을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한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리바이쓰 청바지를 입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백인들의 말을 쓰며 서양식으로 사는 도시의 원주민들과는 더 이상 공통점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3,4 세대 이전부터 연방정부로부터 자신들의 언어와 전통과 믿음을 버리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자신을 참사람이라 부르는 내가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서 지금은 백인과 흑인들로 구성된 정부당국으로부터 피해 다닙니다. 정부는 모든 시민들에게 출생과 사망 신고를 하게하고 모든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게 하고 믿을 수 없는 독한 예방주사를 맞게 하고 어머니인 땅을 파괴하고 더럽히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서 사회생활을 하도록 강요합니다.
나는 독자들이 개인적으로 저자인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걱정을 오래 전에 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나에게 날아오는 글과 전화들은 긍정적인 코멘트가 부정적인 말보다 백대 일 정도로 압도적임을 보여줍니다. 나는 내가 쓴 낱낱의 말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하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롭고 영적인 영혼들이 이 시대의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가 힘들다면 이 책을 그저 재미삼아 읽어보시라고 권하겠습니다. 부르남부르남은 죽던 날까지 나의 신실하고 참된 친구였습니다. 그는 심각한 위협으로부터 어린 아들과 아내를 지키기 위해 나와 함께 강연여행 다니기를 포기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자기 부족의 오랜 영적 지혜를 퍼뜨리는 대사로서 세계를 여행할 것인지, 아니면 가족의 안전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을 때 가슴에 상처를 받아서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Dear Reader: My name is Marlo Morgan. I am the author of two books about Australian Aboriginal Culture. My second book entitled [Message From Forever] (HERE NAMU YOU MAY HAVE TO INSERT THE TITLE YOU GAVE THE BOOK IN KOREA) was written at the request of a Aboriginal Tribal Leader named Burnum Burnum and seven other Aboriginal elders, all of us about the same age. They were all members of what is referred to as the Lost Generation. All were taken from their parents as babies and raised in institutions as was the law of White Australia during the 1920’s thru the 1940’s. It is the story of twins, and the characters are a composite of the life experiences shared by the group members. I asked Burnum Burnum to write the book himself with my assistance but the group felt no one would buy it unless it had a well known author and they wanted their story told to the world. I am a well known author as a result of my first book, [Mutant Message from Downunder] (AGAIN NAMU I DON’T KNOW WHAT YOUR TITLE IS).
This first book came under attack as you will see on the Internet, with submissions now dated fifteen years ago. And any reader who knows about the Internet realizes it is impossible to force correction of information once submitted, even with a legal court order, when two different countries on two continents are involved. The problem started with the owner of an art gallery in Australia, a man part Aboriginal, part Caucasian, whom doesn’t seem to be happy with either race, and who believed a rumor that I had been paid sixteen million dollars for my book. The rumor is so exaggerated that any publishing company would pay a first time writer even one million, let alone sixteen million dollars, but he contacted me and said if I didn’t pay him the money he would make my life miserable. He also claims that I retracted my statement that the book is factual, which I have never done. The name that appears on the vicious attack Internet submission is Dumbartung Aboriginal Corp. It unfortunately is the word used by the early white settlers in Australia who looked at the traditional dot art painting of the Aboriginal people and referred to as the natives DUMB ART THING.
My book is as accurate as I could possible remember the details of the time I spent with this inspirational group of people in the desert. They no longer had anything in common with many of the Aboriginal people living in the urban cities, who have adapted the western wear called Levi’s, drink alcohol, smoke cigarettes and speak the white man’s tongue. People forced by the federal government to abandon their language and traditions and beliefs three to four generations ago. The humans I met who called themselves Real People, were outcasts in their own country, hiding from the authorities who are now both black and white skin people, who demanded all citizens register births and deaths, send every child to school, get questionable toxic health vaccines, and join acceptable society by living a life style that pollutes and destroys mother earth.
I long ago quit being concerned with what my readers think of me, the author, personally. However my daily correspondence shows me, the positive comments out weight the negative remarks, one hundred to one. I stand by every word I have written, but if someone finds it too difficult to believe such beautiful, peaceful, spiritual souls could possible exist on planet earth in our times, then I suggest you read this book as entertainment. Burnum Burnum remained a true and loyal friend to me until the day he died. He gave up traveling and lecturing with me to protect his wife and young son from serious threats. I personally believe he died of a broken heart when he was forced to choose between our Ambassador Tour around the world, promoting the ancient spiritual truths of his people and the safety of his family. "

  

[ 2010년 11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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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나에게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인식은 일찍이 신석기~청동시 시대에 아시아에서 얼어붙은 북해 바다를 넘어 이주해간 사람들, 유럽의 이주자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자신의 땅 거북이섬(아메리카)에서 쫒겨난 사람들,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어 자급자족한 원시공동체 정도에 그쳤다.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구의 책과 영화, TV 드라마 등 서구문화는 아메리카의 역사를 잘 모르는 우리들에게 '아메리카 인디언'은 '머리가죽'이나 '귀'를 잘라서 보관하는 흉폭한, 짐승같은 종족, 문화와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미개인이라고 주입시켜 왔다.
 
나 역시 어려서부터 [O.K 목장의 결투]류의 서부영화나 각종 오디오, 비디오물을 통해 그렇게 '의식화' 되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 내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과 사실, 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고 유럽의 역사나 미국의 역사가 피로 점철된 정복과 만행의 역사임을 알아가면서도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지는 못했다. 영화 <늑대와 춤을>을 본 후에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라스트 모히컨]을 10번 이상 보면서도 '서유럽 이민자들이 아메리카를 지옥으로 만들었다'라거나 '좋은 인디언도 있고 나쁜 인디언도 있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책은 나의 뇌 세포와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많은 선입관과 불확실한 생각들을 서서히 깨트려 주었다. 내가 어설프게 알고 있었던 상황은 대부분 서유럽과 미국 정치가들과 지식인들이 조작하여 퍼트린 거짓에 불과했고 원주민, 즉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지구상 어느 종족이나 민족보다 뛰어난 정신문명과 사회제도, 도덕과 문화를 이룩하면서 살고 있었다. 아메리카의 학살과 수탈을 거쳐 이룩한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문명'은 그들 스스로 '반문명'과 '비문명'을 감추기 위한 허세와 선전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역사에서 가정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리석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유럽 이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메리카 원주민이 이주민들을 쫒아낼 수 있었다면, 서유럽 제국들이 원주민들의 문화와 제도를 받아들이거나 보호했다면 인류 역사는 지금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원 전 수 천년 전부터 20세기까지 동서양의 인류역사가 보여준 착취와 학살, 탐욕과 폭력, 전쟁과 정복, 계급과 노예, 빈곤과 부패, 거짓된 종교와 정치, 과잉생산과 자연파괴, 소외 등으로 점철되었다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그와 정반대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준다.
 
그들의 정신과 문화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중 일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제목은 "어떻게 공기를 사고 판단 말인가"...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는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린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의 기억과 가슴속에서는 모두가 신성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인디언 연설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수콰미쉬족과 두와미쉬족의 대표인 시애틀 추장의 연설이다. 이 연설은 1854년 미국 땅을 점령한 백인들이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을 강요된 보호구역으로 밀어 넣기 위해 시애틀의 '퓨젓 사운드'에 도착했을 때 행해진 것으로, 세계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케 해준다.(미국의 도시 이름인 시애틀 Seattle은 시애틀 추장의 원래 이름인 씨앨트 Sealthe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미국의 지명과 인명 중에는 원주민의 언어에서 따온 것들이 많다.) 그들에게 세계/자연이란 사고 팔거나 혹은 소유하는 대상이 아닌 함께 하는 존재였다. 
 
이처럼 이 책에는 인디언 추장들의 이러한 연설문 41편과 저자 해설과 어록 그리고 100여 점의 사진 등이 실려 있는데, 그들의 연설은 매우 단순한 반면 호소력 또한 강하다. 모두 몇 백년 전의 글들이지만 오히려 오늘날에 더욱 절실한 말들이기도 하다. 시애틀 추장, 조셉 추장, 앉은 소, 구르는 천둥, 빨간 윗도리, 검은 새, 열 마리 곰...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운 위대한 인디언 전사들이다. 그들의 연설은 단순하면서도 매우 시적일 뿐만 아니라, 문명인임을 자랑했던 당시 백인들, 그리고 몇백년이 지난 지금에 사는 우리들의 위선에 찬 삶과 공허한 정신세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또한 41편의 연설문 속에는 자신들의 세계와 생명의 근원인 대지가 여지없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던 인디언들의 슬픔과 지혜, 그리고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종말이 그대로 녹아 있어, 읽는 이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준다.
 
저자 류시화 시인이 15년 동안 매년 미국으로 날아가 도서관에 잠자고 있던 수백 점의 자료를 뒤져가며 완성한 920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인디언의 역사책이자 '대지는 곧 어머니'라는 그들의 믿음체계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대지를 갈아엎은 오만한 문명들에 내쫓겨 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인류의 희망이 그 만큼 멀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먼저, 사실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신세계를 찾아 떠나온 이주자들이 처음부터 북아메리카 대륙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대륙에 이방인으로 표류하다 '도착'한 것이다. 거북이섬 아메리카에는 유럽만큼 오래 전부터 또 다른 인류가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학자들은 처음 서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무렵 수 천개의 부족으로 나누어진 50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서유럽 국가들의 학살과 전염병으로 1910년에는 그 수가 22여 만명으로 줄어들었다.
1620년 12월 21일, 왐파노그족 마을 폴리머스 해안으로 유럽에서 떠내려온 '메이플라워호'가 떠내려 왔다. 배 안에는 120명의 승객(청교도)이 발 디딜 틈도 없이 타고 있었다. 4개월간 배 안에서 살다가 절반이 죽었고 남은 일부 사람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식량과 약초, 주거지와 경작지를 나누어주는 덕택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월등한 성능을 갖춘 무기와 군대가 아니라 인디언들이 면역력을 채 키우지 못한 전염병, 속임수와 거짓 덕분이었다.
운디드니 대학살(Wounded Knee Massacre) : 1890년 12월 29일 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던 제7기병대 500여명은 수족을 무장해제하던 중 1명의 수족 용사가 칼을 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격을 가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 200명 이상의 수족을 죽이는 대량 학살을 감행했다.
이 이외에도 책 속에는 1500년대 이후 북아메리카 및 중남미 아메리카에서 실제로 일어난 많은 일화와 사건들이 속속들이 들어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유럽인, 미국인들이 거짓을 일삼고 금과 피에 굶주렸는지,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이 고통을 당해왔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과 철학과 종교를 알았고 배웠다.
그들은 자연을 존중했다. 동물과 식물은 위대한 정령이 주신 선물이며, 인간은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인간에게 음식과 옷이 되어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약초를 캘 때도 먼저 그 약초의 추장인 그 지역의 가장 큰 약초에게 선물을 바치고 허락을 구했다. 만일 부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지역을 떠났다. 허락을 받는다 해도, 처음 발견하는 일곱 개의 약초는 손대지 않았다. 약초들이 계속 번성하고 다음 세대가 그것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신과 곧바로 얼굴을 맞대고 살았다. 그들에게는 자신들과 영적인 세계 사이에 따로 성직자가 필요 없었다. 누구나 홀로, 그리고 침묵 속에서 신과 만났다. 신이 주는 계시는 오직 그 사람 자신만이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각자 신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또한 누구도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믿음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음식은 신성한 것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 것은 죄악이다.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탐욕은 사람을 망치는 것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난 인디언은 모카신을 신고 물가로 걸어나간다. 그곳에서 맑고 시원한 물 한 웅큼을 얼굴에 뿌리거나 물 속에 몸 전체를 담근다. 몸을 씻고 난 후 밝아오는 새벽을 향해 똑바로 서서 지평선 위로 춤추며 떠오르는 태양에게 말없이 기도한다.
그들엑 침묵은 위대한 신비 그 자체이다. 성스런 침묵은 신의 목소리이다. 침묵의 열매는 자신을 다스리는 힘, 진정한 용기와 인내, 위엄, 그리고 존경심이다. 침묵은 인격의 받침돌이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강한 자기 존중과 함께, 가족과 부족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절제된 생활에 대한 훈련을 받는다.
그들은 소유에 칩착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믿는다. 물질적인 길을 뒤쫒으면 머지않아 영혼이 중심을 잃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자비심의 미덕을 가르치고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남에게 주도록 가르침을 받으며, 그래서 일찍부터 주는 것을 기쁨을 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세계관은 한마디로 '미타쿠예 오야신'으로 정의할 수 있다.
"미타쿠예 오야신", 이것은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또는 모두가 나의 친척이다’라는 뜻의 다코타 족 인디언들 인사말이다. 매우 간결하면서도 심오하게 우주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고 있는 말로서, 인디언들의 정신과 삶의 방식을 한마디로 잘 나타내주는 가장 핵심적인 말이다. 몇 글자밖에 안 되는 짧은 단어 속에는 생명 가진 모든 존재가 다 담겨 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인디언들의 그 인사말 속에 포함되어 있다.
 
[ 연설문 목록 ]
- 어떻게 공기를 사고판단 말인가 : 시애틀 추장
- 이 대지 위에서 우리는 행복했다 : 빨간 윗도리
-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 : 시애틀 추장
- 미타쿠예 오야신 : 오히예사
-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 : 오히예사의 삼촌
- 고귀한 붉은 얼굴의 연설 : 조셉 추장
- 평원에서 생을 마치다 : 열 마리 곰
- 내 앞에 아름다움, 내 뒤에 아름다움 : 상처 입은 가슴
- 말하는 지팡이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추장
- 이 대지가 존재하는 한 : 테쿰세
-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 텐스콰타와
- 대지를 사랑한 것이 죄인가 : 검은 매
- 콜럼부스의 악수 : 쳐다보는 말
- 말과 침묵 : 서 있는 곰
- 우리는 가난하지만 자유롭다 : 앉은 소
- 당신들은 결코 만족할 줄 모른다 : 메테아
- 나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나비에 대한 인디언들의 이야기
- 나는 왜 거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가 : 어느 인디언 여자
- 이름으로 가득한 세상 : 느린 거북
- 우리는 언제나 이곳에 있어 왔다 : 샤리타리쉬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붉은 구름
- 자유롭게 방랑하다가 죽으리라 : 사탄타
- 겨울 눈으로부터 여름 꽃에게로 : 구르는 천둥
- 시간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제임스 페이티아모
- 부족의 어른이 말한다 : 방랑하는 늑대
- 나는 왜 이교도인가 : 붉은 새
- 내가 흘린 눈물만 모아도 가뭄은 없다 : 후아니타 센테노
- 나는 노래를 불렀다, 인디언의 노래를 : 단 조지 추장
- 집으로 가는 길 : 파란 독수리 깃털들
- 좋은 약은 병 속에 담겨 있지 않다 : 미친 곰
- 기억하라, 이 세상에 있는 신성한 것들을 : 토머스 반야시아
- 마음과 영혼과 육체 : 비키 다우니
- 나는 인디언이지 캐나다 인이 아니다 : 홀로 서 있는 늑대
- 꽃가루를 뿌리면 비가 내렸다 : 아사 바즈호누다
- 인디언들이 아메리카에 전하는 메시지 : 이로쿼이 인디언 선언문
- 아메리카는 언제 재발견될 것인가 : 브루키 크레이그
- 여기 치유의 힘이 있으니 : 라모나 베네트
- 야생이란 없다, 다만 자유가 있을 뿐 : 오렌 리온스
- 독수리의 여행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인디언
- 아메리카 인디언 도덕률 : 인터트라이벌 타임스
- 인디언 남자들의 일곱 가지 철학 : 아메리카 원주민 남자들 모임
- 인디언 달력 : 열두 번의 행복한 달들
- 인디언 이름 : '빗속을 걷다'와 '상처 입은 가슴 
 
연설문 모두가 하나 같이 가슴을 울리고 전율을 느끼게 한다. 오히려 문자와 문장이 말과 연설을 방해하는 듯 하다. 그들의 삶과 문화는 세계 어느 민족이나 종족보다 더 위대하고 심오하다. 우주는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한 질문과 의문들에 대한 대답과 깨우침이 들어 있다. 세계화와 빈부격차, 전쟁과 학살, 기후변화와 자연파괴 등 현대 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와 해답의 열쇠가 인디언의 삶과 세계관에 담겨 있는 것 같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품안으로 돌아가는 진정한 현자들인 얼굴 붉은 사람들(아메리카 원주민)은 우리에게 문명인 아니 인간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의 근본과 삶의 교훈을 가르쳐 준다. 또한 우리가 진정 누구이며 무엇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이번 생에 왔는지, 이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도 주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오랜 침묵의 목소리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오래된 지혜의 목소리, 대지의 그 소리 없는 목소리는 몇백 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우리 삶의 자연성을 회복시켜 줄 귀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머리 맡에 두고 두고 자주 읽고 싶다...^^
 
* 인디언 언어의 뿌리 : 미네소타 - 하늘에 비친 물 / 토론토 - 만남의 장소, 토론 장소 / 나이아가라 - 천둥처럼 구르는 물 / 마이애미 - 학처럼 우는 자들 / 아이오와 - 졸린 친구들 / 오타와 - 물물교환하는 자들 /
 
* 책 속의 문장 :
- 형제여! 신은 당신과 나 모두를 만들었지만 우리 둘 사이에 큰 차이를 두었다. 얼굴도 다르게 만들고 관습도 다르게 만들었다. 당신들에게는 기술 문명을 주었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에 대한 눈을 틔워 주지 않았다. 형제여! 우리가 우리 아버지들의 삶의 방식을 따를 때 위대한 정령이 더 기뻐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축복을 받았으며, 사냥할 힘과 기운을 받아 왔다. 위대한 정령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다. 배가 고플 때 우리는 사냥감으로 가득한 숲을 발견할 수 있었고, 목이 마를 때면 주위 어디에나 흐르고 있는 순결한 시냇물과 샘물들로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지쳤을 때는 나뭇잎사귀들이 우리의 잠자리가 되어 주었다. 밤이 되면 만족스런 기분으로 휴식했고, 아침에는 위대한 정령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어났다. 팔다리에는 힘이 솟고, 가슴에는 즐거움이 넘쳤으며, 언제나 축복과 행복을 느꼈다. 그 어떤 사나운 욕심도 우리의 평화와 행복을 방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위대한 정령이 얼굴 흰 자식들보다 우리 얼굴 붉은 자식들을 보면서 더 기뻐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분은 당신들보다 우리에게 몇 배의 축복을 더 내려 주셨다. 우리에게 평화와 풍요를 주었다.
형제여, 우리가 이 지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라. 우리를 더 이상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 우리는 지금 숫자가 적고 약하지만, 우리 아버지들의 삶의 방식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는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우리는 당신에게 악수를 청하는 바이다. 그리고 당신의 형제들에게로 돌아가는 여행길에 위대한 정령께서 당신을 잘 보호해 주실 것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 빨간 윗도리(사고예와타)
 
[ 2011년 5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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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 법정 스님이 추천하는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할 50권
문학의숲 편집부 엮음 / 문학의숲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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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책에 대한 내 생각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있어 ’책’이란 필요할 때, 필요한 책을 찾아 읽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초중고 12년과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는 교과서와 읽고 싶을 때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집어들거나 동아리나 학회의 세미나에 ’필요’해서 읽었다. (그래도 <레미제라블>, <죄와벌>, <제인에어>, <그리스,로마신화>, <탈무드>, <전쟁과평화> 등 웬만한 청소년용 고전을 읽은 기억은 있음...ㅎㅎ) 가끔은 주변에서 추천하거나 서점에 들렀다가 눈에 띄는 책을 고르는 정도... 사회에 나와 회사를 다니거나 회사를 차려 경영이란 것을 했을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즉, 나에게 ’책’은 40년 넘게 ’필요’나 ’선택’ 이상은 아니었다. 역으로 매사에 어떤 일이나 상황을 대할 때마다 먼저 책을 집어드는 주변의 몇몇을 접할 때에는 ’책지상주의’라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나에게 있어 현실에 나서는 여러가지 일과 상황은 내가 직접 뛰어들어야 구체적이든, 감각적이든 파악이 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중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마도 나에게 근본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이 아로새겨진 1985년~1994년의 10여년 동안 ’느낌’과 ’행동’보다 ’이성’과 ’논리’를 앞세웠던 태도들에 대한 반동이었으리라 생각한다.(역으로 책 읽고 세미나하고 깊게 파고들기 싫은 공대생의 기질도 한 몫 했을 것이고...ㅋ) 
 
아무튼, 그렇게 책과 약간 거리를 두었던 세월이 40년 넘게 흘러갔다. 2003년부터 5년간 사업을 한답시고 좌충우돌 전쟁같은 시간을 보낸 후, 나는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그리고 경제에 대해 궁금증만 가득 안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지나간 삶과 나의 언행, 겪어본 과정을 되새겨보고 궁금증을 나름대로 풀어보기 위해 고민하던 차에 여행을 떠나면서 들고간 몇 권의 책이 나를 ’책 읽기’로 잡아주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여러가지를 잊어버리기 위해, 그리고 중고교 시절 한 때 꿈꾸었던 수학과 자연과학을 다시 들여다보기 위해 책을 집어들었다. 책에 대한 특별한 목적과 방향이 없었기 때문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수학과 자연과학 뿐 아니라 경제, 문학, 인문, 사회까지 책의 범위는 넓어져갔다. 그렇게 2008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혼자 있을 때에도, 잠시 짬이 났을 때에도, 일을 하는 틈과 틈 사이에 시간 나는 대로 책에 몰두했다.
 
어느 정도 책을 읽으면서 ’책읽기’가 말 그대로 ’생활화’되고 어렴풋이 장기간의 독서 방향이 잡히고 그동안의 책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고 있던 때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지금은이 책을 만났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특별한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반반이다.
 
이 책을 통해 책읽기에 대해 다시금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읽어야 할 책에 대해,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 귀중한 도움을 받았다.
 
법정스님은 이 책을 통해 마치 나를 앞에 세워두고 혼찌검을 내듯이 말하신다. "우리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값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스님은 ’책에 읽히지 말고 책을 읽으라"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책을 읽는 분명한 방향과 책 읽기를 통한 궁극적인 방향을 알려주신다. "세상에 나도는 책이 다 양서일 수는 없다. 두 번 읽을 가치도 없는 책이 세상에는 얼마나 쌓여 가고 있는가. 삶을 충만하게 하는 길이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넘어서 어디에도 의존함이 벗이 독자적인 사유유와 행동을 쌓아 감으로써 사람은 그 사람만이 지니고 누릴 수 있는 독창적인 존재가 된다."
 
[ 법정스님이 사랑하고 추천한 책 목록 ] 
* 아래 50권 중 내가 먼저 읽은 책은 빈센트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 밖에 없었다.
1~5번까지는 이 책을 알고나서 읽기 시작한 것들이다.
참고로 5번부터 50번까지의 46권의 책은 과선배인 돈룡형이 후배의 ’수양’을 위해 협찬해 주시기로 했다. (선배님! 감솨합니다.!!!)
 
1. 새로운 형식의 삶에 대한 실험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 ’간소하게 사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삶이다.
    복잡한 것은 비본질적이다. 단순하고 간소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신을 좁은 틀 속에 가두고 서로 닮으려고만 한다.
    어째서 따로따로 떨어져 자기 자신다운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가.
    소로우처럼 각자 스스로 한 사람의 당당한 인간이 될 수는 없는가."
     

2. 인간과 땅의 아름다움에 바침 - 장 피에르와 라셀 카르티에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공급해주는 대지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보호하는 일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지적 능력이 지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주어졌음을 깨달아야 한다.’
   

3.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건가요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 "스스로 반문해야 한다.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과연 행복한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지위나 재산의 소유에 있지 않고 내가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에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핵심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의 사람됨이다."
     

4. 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
  : "올바른 이해는 책이나 선생으로부터 얻어듣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의 느낌이나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온전한 삶의 방식이고, 우리 자신과 우리 둘레의 수많은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의 신성한 의무이기도 하다."
     

5. 포기하는 즐거움을 누리라 - 이반 일리히 [성장을 멈춰라]
  :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것은 돈, 권력, 집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다.
     그 사람이 돈과 재산을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마음을 지니고 그 마음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에 따라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먼저 넉넉한 마음의 그릇부터 준비해야 한다.
     마음의 그릇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덕이다. 덕을 나누는 일이다."
    

6.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 - 프랑수아 를로르 [꾸뻬 씨의 행복 여행]
: "사람들이 불행을 느끼는 것은 행복을 목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간다. 그러나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다."
- 꾸뻬씨가 찾은 행복의 비결
 첫번째 :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
 두번째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세번째 :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
 네번째 : 내가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
 다섯번째 :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여섯번째 :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
 일곱번째 :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7. 자신과 나무와 신을 만나게 해 준 고독 -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 20세기 초 프랑스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쓰여진 책...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자연을 위해, 사람들을 위해 수 십년 간 묵묵하게 나무를 심은 사람이 있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 지방은 황폐해 있던 산과 언덕이 삼림과 동물로 가득해지고 결국 떠났던 사람들마저 돌아오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그 어느 누구보다도 고결한 성품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8. 한 걸음씩 천천히 소박하게 꿀을 모으듯 - 사티쉬 쿠마르 [끝없는 여정]
: 26세의 나이에 어느 날 신문에 난 기사 - 90세의 나이에 핵무기 반대시위를 한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이야기 - 를 읽고 친구와 함께 2년 반동안 인도의 뉴델리를 출발하여 모스크바, 파리, 런던, 워싱턴으로 평화를 전하는 세계 여행을 떠난 사람이다. 그것도 돈도 없이 두 발로 걸어서...
그는 그 뒤에도 인도에서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격월간 녹색잡지 [소생 Resurgence]를 발간하고 대안학교의 모범이 된 [하트랜드 작은학교]를 세웠다. 녹색 출판사 그린북스를 운영하고 세계적인 생태교육 기관 [슈마허 대학]을 설립했다.
사람들은 그를 '살아있는 간디', '녹색운동의 큰 스승', '걸어다니는 녹색 혁명가'라고 부르지만, 그 자신은 스스로를 '지구의 순례자'로 부른다. 그의 삶 자체가 끝없는 만남과 탐구로 가득한 순례이고 그 여정에서 수많은 스승과 지혜들을 만나 자양분을 흡수하고 그 자신 역시 다른 이들의 삶에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9.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 -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 행복이 우리를 떠난 이유는 권태에 대한 두려움, 경쟁, 과도한 염세주의적 태도, 질투, 불합리한 죄의식, 자기 안에 갇힌 삶, 죄의식과 피해망상, 여론에 대한 두려움 등이다.
하지만 러셀은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능력이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10. 나무늘보에게서 배워야 할 몇 가지 것들 -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11. 기억하라, 이 세상에 있는 신성한 것들을 -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12. 신은 인간을 가꾸고, 인간은 농장을 가꾼다 - 핀드혼 공동체 [핀드혼 농장 이야기]

13. 모든 사람은 베풀 것을 가지고 있다 - 칼린디 [비노바 바베]

14. 이대로 더 바랄 것이 없는 삶 - 야마오 산세이 [여기에 사는 즐거움]

15. 나는 걷고 싶다 -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16. 아프더라도 한데 어울려서 -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17. 신에게로 가는 길 춤추며 가라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18. 한쪽의 여유는 다른 한쪽의 궁핍을 채울 수 없는가 -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19. 마른 강에 그물을 던지지 마라 - 장 프랑수아 르벨·마티유 리카르 [승려와 철학자]

20. 당신은 내일로부터 몇 킬로미터인가? - 이레이그루크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21.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 후쿠오카 마사노부 [짚 한 오라기의 혁명]

22. 큰의사 노먼 베쑨 - 테드 알렌·시드니 고든 [닥터 노먼 베쑨]

23. 풀 한 포기, 나락 한 알, 돌멩이 한 개의 우주 -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24. 삶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 아베 피에르 [단순한 기쁨]

25. 두 발에 자연을 담아, 침묵 속에 인간을 담아 - 존 프란시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26. 가을매의 눈으로 살아가라 -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7.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 식물의 비밀 - 피터 톰킨스·크리스토퍼 버드 [식물의 정신세계]

28. 우리 두 사람이 함께 -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29. 축복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 레이첼 나오미 레멘 [할아버지의 기도]

30.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 - E.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31. 바람과 모래와 별 그리고 인간 -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32.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33.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34. 나무는 자연이 쓰는 시 - 조안 말루프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35. 용서는 가장 큰 수행 - 달라이 라마·빅터 챈 [용서]

36. 테제베와 단봉낙타 - 무사 앗사리드 [사막별 여행자]

37. 꽃에게서 들으라 - 김태정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 가지]

38.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39.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성은 유한하다 - 개릿 하딘 [공유지의 비극]

40. 세상을 등져 세상을 사랑하다 - 허균 [숨어 사는 즐거움]

41.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 - 디완 챤드 아히르 [암베드카르]

42. 바깥의 가난보다 안의 빈곤을 경계하라 - 엠마뉘엘 수녀 [풍요로운 가난]

43. 내 안에 잠든 부처를 깨우라 - 와타나베 쇼코 [불타 석가모니]

44. 자연으로 일구어 낸 상상력의 토피아 - 앨런 와이즈먼 [가비오따쓰]

45. 작은 행성을 위한 식사법 -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46. 결론을 내렸다, 나를 지배하는 열정에 따라 살기로 -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47.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 - 격월간지 [녹색평론]

48. 내일의 세계를 구하는 것은 바로 당신과 나 - 제인 구달 [희망의 이유]

49. 내 안의 ‘인류’로부터의 자유 - 에크하르트 톨레 [NOW―행성의 미래를 상상하
는 사람들에게]

50. 어디를 펼쳐도 열정이 넘치는 책 -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나는 이 계절에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술술 읽히는 책 말고, 읽다가 자꾸만 덮이는 그런 책을 골라 읽을 것이다.
좋은 책이란 물론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 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 한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이게 하고 안이해지는 내 일상을 깨우쳐 준다.
그와 같은 책은 지식이나 문자로 쓰인 게 아니라 우주의 입김 같은 것에 의해 쓰였을 것 같다.
그런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좋은 친구를 만나 즐거운 때처럼 시간 밖에서 온전히 쉴 수 있다."   

이 책은 지난 7월 말경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말씀을 뒤늦게나마 책으로 듣기 위해 <아름다운 마무리>와 함께 마련했다.
당시 <아름다운 마무리>만 먼저 읽고 스님이 추천하신 책 50권을 모두 읽은 후 이 책을 통해 되새겨보려 했다가 아무래도 순서가 바뀐 것 같아 이제야 모두 읽은 것이다.

이 서평은 앞으로 빠르면 6개월, 늦으면 1년 후에 완성될 예정...ㅎ 

[ 2010년 12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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