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에는 블랙 기업이라는 용어가 있다. 직원들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착취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회사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식의 사례는 크게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간호사들 사이의 태움이라는 악랄한 관습으로 수많은 저 연차 간호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모 회사에서는 여직원들을 성적 도구로 보는 듯한 인습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기도 한다.

 

     ​대한항공 창업주의 후손들이(그리고 여기에 회장의 부인까지 가세한) 하나같이 보여주는 수준 이하의 갑질들을 보며 사람들은 경악을 했었다. 재벌 3, 4세들이 보여주는 일탈을 넘어선 범죄들과 대기업들이 경영차원에서 저지르는 온갖 엉터리 행태들을 보면, 기업의 총수가 구속되었더니 오히려 주가가 올랐다는 우스운 뉴스도 이해가 된다.

 

     ​저자는 이 문제가 군대식 문화가 이식된 비민주적 기업운영 행태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건 단지 개인의 행복을 줄이는 정도를 넘어,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수준에까지 왔다(83)고 말한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에서 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이유도, 단지 연봉과 복지수준만 낮은 것이 아니라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직장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 최소한 직장 내에서 불합리한 일이 일어났을 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갖춰져야 한다.

 

     책에는 이를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담겨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역시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다. 특별한 법령을 제정할 필요도 없이 의지만 있다면 간단히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단다. 민간 기업에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정부와 공기업에서부터 시작하고, 정부와 거래가 이루어질 때 이 인증에 일종의 가산점을 부여하면 어느 정도 확산도 가능하다고 저자는 본다

 

     ​물론 이뿐 아니라 직장 민주주의를 위한 매뉴얼을 보급하고, 사실상 경영주에게 껄끄러운 직원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감사기능을 정상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기금들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의 제안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과연 대한민국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로비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느릿한 변화의 속도를 우리가 얼마큼이나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변화와 개혁의 기회를 외면하고 지금 이대로만을 고수한다면 결국엔 우리 모두가 공멸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열정 페이니 인턴이니, 비정규직이니, 파견직이니 하는 괴상한 명칭으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너무 많아졌고, 그런 대우를 받는 이들이 온갖 것들을 포기하고 절망하게 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와 인건비 쥐어짜기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기득권층들은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최소한 일하러 간 곳에서 일만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간단한 요구도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이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직전에 읽었던 저자의 또 다른 책(“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세상을 관조하는 듯했던 그 책의 논조와는 달리, 이 책에서는 다시 한 번 뭔가를 기대하고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같은 해에 반 년 정도의 차이를 두고 낸 책답지 않게(물론 이 책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요청을 받아 썼다고 한다). 다만 반년 먼저 나온 그 책을 보고 이 책을 보니, 저자의 목소리에서 약간 힘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이런 책은 고용인보다는 사용주, 경영자들이 읽어야겠지만, 늘 그렇듯 들어야 할 사람들은 자리에 없고, 안 들어도 되는 사람들만 앉아있지 않을까 싶다. 뭐 우리가 시작하는 일에서부터 바꿔나갈 수도 있는 거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오노 나나미의 국가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한성례 옮김 / 북스코리아(북리그)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다 말고 내던졌다.(물론 정말로 책을 던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빌린 책은 소중하게 보고 반납해야 한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해진 작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그녀의 국가관에 관한 이야기를 편하게 듣는 식으로 편집된 책인데, 실은 이 책을 위해 새로 쓴 글도 아니고, 일본의 어느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 형식의 칼럼들을 로마인 이야기의 일부 내용과 우리나라의 어느 잡지(신동아)와 했던 인터뷰 내용, 그리고 로마인 이야기속의 인용구들과 더해서 엮어낸 책. 이쯤 되면 사실상 창조된 수준이고,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그냥 앉아서 돈을 버는 셈이다.

 

 

     뭐 로마인 이야기에 관해 여러 말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 로마사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니, 또 나 역시 그 책들로 로마사에 대한 윤곽을 잡았으니 그 공은 인정해야 할 듯. 물론 종교 쪽(특히 기독교)만 넘어가면 갑자기 균형감을 잃고 욕을 퍼붓는 수준의 부족한 이해를 드러낸다는 점과, 태생이 일본인인지라 군국주의에 묘한 친화감을 드러내는 식의 불편함 등이 보이긴 했는데, 뭐 일단 당장은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었던 먼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를 다루는지라 그럭저럭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 딱 그런 국가관 부분만을 떼어서, 그것도 현대의 현실정치와 연결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그 체감이 훨씬 강해져버린다. 그래도 일본인답게, 일본의 정치현실에 대해서는 나름 옳은 인식을 보여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엘리트들은 예측 가능한 일에는 잘 대처하지만, 돌발 사태에 임기응변을 하는 데에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진단 같은 것들(83) 말이다

 

     그러나 물론 일본중심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감안하더라도, “아베는 너무 성실해서 문제라는 어이없는 안목이라든지(21), 정국 안정을 위해 아베 정권이 연임을 계속하는 것이 옳다는 태도라든지(25), 지도자는 인격에 문제가 있어도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나이브한 입장은 전형적인 수구파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모습이다.(평화헌법개정과 군대보유 찬동은 덤이다)

 

     일견 마키아벨리즘에 입각한 현실주의적 정치관, 국가관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냥 지식 좀 쌓은 고집쟁이의 생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우구스투스의 예를 들며, ‘도덕과 인품보다 사람들을 속이더라도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것이 정치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처럼 운운하지만, 사람들의 과연 도덕적 파산에 이른 지도자가 유능하다는 이유로 지지할 수 있을까? , 물론 아베의 장기집권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을 보면 그게 가능한 듯 싶기도 하지만, 그건 특별히 정치적 후진성을 벗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지난 세기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했고,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그건 침략이라고 불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까지 넘어가면(131), 이 사람이 익힌 역사는 철저하게 힘의 원리만을 숭배하는 우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2천 년 전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을 그대로 빗대 연결 짓는 것은 시대착오적 관점에 다름 아니다.

 

 

     그냥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라. 거기도 부족한 이해가 적지 않지만, 적어도 다른 괜찮은 이야기들이랑 섞여 좀 희석되긴 하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12-24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 이후로 우경화되는
모습에 그의 책을 끊게 되었습니다.

노란가방 2019-12-24 22:1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제 끊어야 할듯합니다 ㅎ
 
인류세 - 거대한 전환 앞에 선 인간과 지구 시스템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정서진 옮김 / 이상북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선 제목부터 설명해보자. 인류세란 인류에게 부과된 세금()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인류로 인해 시작된 새로운 지질학적 시기()를 말한다. 학창시절 생물학에서 ------라는 이름으로 생물들을 분류하는 기준을 외웠듯이, 지질학에서도 그 규모에 따라 ----누대의 순서로 지질학적 시대를 구분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 (, Epoch)'는 절보다는 조금 더 큰 지질학적 변화를 가리킨다.

 

     현재 우리는 홀로세(Holocene), 혹은 현세(Recent)를 살고 있는데, 저자를 비롯한 한 무리의 학자들은 우리가 이미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인 인류세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책의 상당 부분은 이 인류세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되고 있다. 그 이유는 제법 학식이 있는 학자들 가운데서도 이 용어의 정의에 대해 혼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자는 그런 잘못된 인식들과의 대조를 통해 좀 더 정확한 정의를 내린다.

 

     언뜻 최근 많이 언급되는 기상이변이나, 자연파괴 같은 용어들이 떠오르지만, 인류세란 단지 인간이 지구의 자연환경에 미친 큰 영향력 정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산업혁명 즈음의 급격한 화석연료 사용증가로 초래되었고, 지구 시스템 전반에 걸친 지대한 충격과 이로 인한 급격한 변화(책에는 균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를 가리키는 말이다.(‘인류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서구중심적이라고 바꾸려는 사람도 있고, 그냥 인간의 등장 자체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보는 관점이나 아예 인간 자체에 별다른 중요성을 두지 않는 학파들이쪽은 운동이라고 불러야겠지만도 있다. 누가 뭐 하나 주장하면 거기에서 틈을 찾아 자기 생각을 끼워 넣으려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듯)

 

 

     책의 나머지 부분은 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어떤 인문학적, 세계관적 함의를 지니는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된다. 이 관점은 인류가 지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 나아가 중심임을 주장함으로써, 인간의 행위성을 축소하려는 신유물론자 등의 주장의 반대편에 선다. , 인류세라는 거대한 이야기 안에 국지적인 다양한 요소들이 모두 포함된다는 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파편성을 되돌린다. 물론 이 개념은 인간이 지구를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사실 이 부분은 약간 지루하게 이어지는데다가, 앞서 나왔던 내용들도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다. 학계에 새로운 개념 하나를 도입하는 것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애초에 기대했던 내용과는 좀 다른 방향이었던지라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책을 읽기 전 내 기대는, 인류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들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나타났는지를 묘사하면서, 그 전망을 예측하는 식의 구성이었다)

 

 

     인류의 발자국이 지구의 시스템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주장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온다. 핵융합으로 인공태양을 만들고, 인공강우 실험까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은 과연 발전하고 있는 걸까. 심지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인류에게 지구 차원의 변화를 일으킬 힘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고(지구가 스스로 회복할 것이라는 식의 베리에이션도 꽤나 인기를 끄는 듯하다), 변화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까지 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우리는 대전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문제가 이렇게 (전 지구적으로) 커지면 그 대처방식도 달라져야 할 텐데, 이게 쉽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성서의 진단(8:22)이 문득 떠오른다. 온갖 이해관계가 뒤섞인 상황에서 인류는 과연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스케일 - 앞으로 100년을 지배할 탈규모의 경제학
헤먼트 타네자 외 지음, 김태훈 옮김 / 청림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는 경제와 사회동향에 대한 민감도가 보통 사람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것이다. 저자는 이제 규모의 경제를 구축해 비용을 줄이고 이익률을 높이는 과거의 패러다임은 점차 쇠퇴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점점 빠르게 발달하는 인공지능기술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규모에 의지해서 이전과 같은 식의 이윤을 얻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저자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지 않는 기업에는 아예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2부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 탈규모가 이루어질지를 예측하는 부분인데, 이 중 몇몇은 이미 실용화 단계에 이르기도 했다. 예컨대 발전분야에서는 대형 발전소가 아니라 각 가정 등의 소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해 사용하고 남은 것들을 되파는 형식의 양방향 전력이동이 가속화될 것이다. 의료분야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평균적인 수준의 효과를 내는 약 대신, 개별 환자들에게 맞는 약이 활발하게 시장에 나올 것이다

 

     20년을 배워 남은 평생 써 먹는 식의 교육이 해체되고, 평생 배우고 평생 일하는 모델이 일반화되면 각자에 필요한 내용을 각자의 수준에 따라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이 널리 보급될 것이다. 개인의 상황에 맞는 금융거래와 운용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일반화될 것이고, 개인을 위한 뉴스와 오락거리들이 만들어지고, 대중이 아닌 개인을 위한 제품들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미래에는 확실히 이런저런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미 대중이 중심이었던 지난 세기와는 다른 새로운 움직임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니까. 물론 이런 변화들이 모두에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단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던 이들만이 아니라 이전 시대에 익숙해져 새로운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뒤쳐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기술적 도약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도 있다. 광범위한 정보의 공개와 가공은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개인에게 맞춘 약은 충분한 검증을 거치기 어렵고 부작용의 위험도 있다. 여기에 개인 맞춤형으로 생산되는 제품이 늘어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소비를 초래해 환경에 위협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저자도 책 말미에 몇 가지 우려들을 제시하면서, 간단히 지켜야 할 규칙들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그게 뭐 어디 누가 규칙을 제안한다고 해서 잘 지켜지는 것일까. 어차피 탈규모화된 산업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를 것이고,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규제하기도 훨씬 더 어려워질 텐데 말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우리가 우려하고 저항한다고 해서 미뤄질 일이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으니까. 어떤 이들에게 이런 변화는 확실히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비단 이건 사업의 영역에만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듯하다. 다양한 영역에서 새롭게 발전하는 기술을 제대로 접목하지 못한다면, 힘은 힘대로 들고 결과를 결과대로 시원찮게 나오게 될 것이다

 

     ​탈규모화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갖출 필요가 없다. 어지간한 것은 모두 빌려서 사용할 수 있고, 중요한 건 그것을 잘 구축해 낼 수 있는 기능이다. 물론 탁월한 원천기술의 가치는 여전하겠지만, 그것도 적절한 수단을 동원해 사용할 수 있을 때에야 제대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관련 내용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다가올 변화에 관해 꽤나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는 책.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벨탑 공화국 -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인 바벨탑 공화국이란 무엇일까. 이런 상황을 초래한 정신에 관해 저자는 이렇게 정의한다.

 

바벨탑 멘털리티는 고성장 시대에 더 높은 곳을 향하여경쟁하면서 갖게 된 서열주의 이데올로기로, 낙오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심성이다.(p. 15)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런 바벨탑 멘털리티, 바벨탑 정신으로 살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 중심에는 수도권 집중과 부동산이라는 문제가 놓여 있다. 아파트 가격에 따라 서열이 결정되고, 이 과정에서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과 지방에 사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수탈을 당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질은 자연스러운 부작용이다. 이 저주받을 바벨탑에서는 조금이라도 윗층에 거주하는 이들은 아래층에 있는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지만 누구도 현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는 배경에는, 주택소유자의 70%가 가격상승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 기인한다. 누가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상황을 굳이 나서서 바꾸려 하겠는가. 심지어 지방민들 역시 여유가 있으면 수도권에 집과 땅을 사두는 상황이니 속으로는 이런 현실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방민들이 지방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

 

     물론 이건 단지 정의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토의 특정한 지역에 집중된 삶의 패턴은 필연적으로 나머지 지역의 황폐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엔 지방 소멸이 그 대표적인 결과물. 마치 사하라 사막이 점점 경계지역들을 삼키며 면적을 키우듯, 지방의 소멸은 최종적으로 수도권, 서울의 소멸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수많은 인용문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구성된 본문을 읽다보면 점점 암담한 느낌이 든다. 전 국민이 이 섬뜩한 줄 세우기 놀이의 어딘가에 서 있는데다가, 윗층에 있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은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중간 어디에 있는 이들은 그냥 현실에 눈을 감아 버리고 있다. 저 아래층에 있는 이들조차도, 시선이 위쪽으로만 고정되어 있어서 현실을 바꿀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그럼? 그냥 사는 수밖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이 책의 바벨탑을 옆으로 누여놓은 형태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꼬리칸에 살던 이들은 엔진실로 향하는 모험을 결행했지만, 현실 속 바벨탑의 아래층 사람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끝내기에는 영 꺼림직했는지, 저자는 나름의 해결책을 제안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도권 이외의 지방들을 살리는 정책인데, 앞서도 지적했듯 지방민들도 지방을 살리기를 원하지 않는 상황에선 지방분권도 그다지 좋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저자는 중앙대 교수인 마강래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지방을 큰 권역으로 재편하고, 그 거점이 되는 도시를 중심으로 집중하는, 압축도시의 형태가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는 가능하면 모여 살아야 편의시설이 충원되어 살만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논리. 물론 여기에도 꽤나 많은 난점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돌파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성경 속 바벨탑처럼, 언젠가 현실 속 바벨탑 역시 붕괴될 것이다. 경제의 영역에서 쌓기 시작했지만, 점차 정치, 사회 전반을 잠식하며 높이 올라가기 시작한 이 저주받을 경쟁은 어떻게 끝이 날까. 분명한 건 탑에 가까이에 서 있을수록 그것이 붕괴될 때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겨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갭 투자라는 이름의 투기가 유행했다. 전세가가 매매가에 거의 근접한 기형적인 상황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바로 전세로 내놓았다가 가격이 올라가면 팔아서 차익을 챙기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건 엄청난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투기였고, 주택가격이 오르지 않을 경우 고스란히 빚더미에 앉게 된다. 이런 엉터리 투기가 무슨 대단한 투자전략인양 온갖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유튜브 강의가 나도는 게 바벨탑 공화국의 현실이다

 

     지금은 그렇게 확장할 때가 아니라 밀착할 때라는 저자의 주장을 곱씹어 볼만 하다. 조금은 다르지만 우석훈의 책들에서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해결책이다. 성장률은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고, 성장에 기초한 확장정책은 실패할 것이다.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물론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해도,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예나 오늘이나 그대로 있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