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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존 몰리뉴 지음, 최일붕 옮김 / 책갈피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러한 갈등을 푸는 길은 오직 하나,

노동자들이 착취의 효과에 맞서는 싸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산수단을 손에 넣고 노동력 판매를 끝장냄으로써 아예 착취의 싹을 도려내는 것뿐이다. 


1. 요약 。。。。。。。                      

 

     책 제목에 나온 것처럼 ‘도대체 사회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의 형식으로 쓰인 책이다. 저자인 존 몰리뉴는 실제로 영국 사회주의노동당의 당원이며, 자신이 신봉하고 있는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매우 강렬한 필치로 설명을 해 나간다.

      제 1장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2장에서는 사회주의에 이르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서의 ‘혁명’의 불가피성에 관한 설명을 한다. 나머지 장들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사항들에 대해 교정을 시도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2. 감상평 。。。。。。。                     

  
     생각보다 강력한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어서 약간 뜨끔했다. 사실 처음 책을 선택한 이유는 사회주의도 제법 타당한 면이 있음을 완곡하게 설명하는 책으로 생각했었다.

 

     저자의 현실 인식은 ‘모든 문제의 근원은 자본주의라는 악이다’라는 명제에 근거한다. 사실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 자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이미 우리도 피부로 느끼고 있는 바이니, 저자의 주장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갖고, 없는 사람은 더 많이 잃어버리도록 만드는 것이 소위 ‘완전자유시장경제’의 가장 큰 폐단이 아닌가. 경제 공황으로 인해 값이 폭락한 멀쩡한 목화를 창고에 쌓아두다 못해 모두 불태우면서까지 값을 올리려고 했던 대자본가들의 눈에는 당장 입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 따위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담 스미스 식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시장경제라는 환상이 더 이상 타당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로 인해 ‘자본주의라는 제도 자체가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생각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 놓으면 뭐하나, 인간의 욕심이 그것을 자신에게만 유리한 무엇으로 만들어버릴 텐데. 저자는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는 사회주의국가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였다면서 사회주의라는 제도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탈린 같은 인간이 사회주의 치하의 국가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그 제도의 허점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물론 저자는 전세계적인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간단히 반론을 펼지 모른다. 하지만 인류 역사 언제, 단 하나의 사상이 전 세계를 지배했던 시기가 있었던가? 그런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는 것이 사회주의라면, 그것은 너무나 이상적인, 아니 몽환적인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혁명을 위한 폭력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제체제와 다른 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제거해버려야 한다는 식이다. 이래서야 비싼 집 가진 사람에게 세금 좀 더 걷겠다고 말하는 정부더러 빨갱이니, 좌파정권이니 하는 식으로 욕설을 해대는 우리나라의 모 정당이나 수구언론들과 무엇이 다른가. 둘 다 철저하게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만 든다.


     물론 누구나 자신이 믿는 바를 주장할 수 있고, 그것에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누구도 비난할 무엇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그래서 다른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생각을 신봉하고 있다. 

 

 

     사회주의라는 체제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히 그 사상도 당대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제시되었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타당성도 인정받고 있기에 오늘날 세계의 많은 국가가 자본주의 요소에 사회주의 요소를 첨가한 ‘수정자본주의’를 근본 정책으로 택하고 있는 것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자체를 극단적으로 신봉할 때 나타났던 많은 문제들과 유사한 것들이 사회주의를 극단으로 이끌고 갔을 때도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어나갈 수록 더욱 강하게 든다.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책의 문장들은 참 깔끔하게 쓰였다. 일차적으로는 번역자와 저자 모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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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반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혁명적 부는 창의적인 기업가들과 사회, 문화, 교육 부문의 기업가들에게

수많은 기회와 새로운 삶의 궤적을 제시해 줄 것이다.

또한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극심한 빈곤에 대한

참신한 해결책도 던져 줄 것이다.

그러나 이 희망적인 미래로의 초대장에는 한 가지 중요한 경고가 담겨 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위험이 산술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 요약 。。。。。。。                      

 

     저자는 새로운 시대에 나타날, 아니 이미 나타나고 있는 ‘혁명적 부’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고 이 책을 썼다. 인류가 이제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엄청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 인류가 당하고 있는 큰 어려운 가운데 하나인 빈곤과 결핍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말한다고 잔뜩 바람을 잡고 있기에, 이 책을 진지한 마음으로 손에 든 독자라면 다음 내용이 기대가 되어 견딜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이어서 이 혁명적 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심층기반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2장) 저자가 말하는 혁명적 부의 심층기반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식. 이어지는 장들(3-5장)에서는 이 각각의 심층기반들이 어떤 식으로 작용해 부를 창출해 내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미래 사회의 경제 형태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들(프로슈머와 데카당스)을 설명한 뒤(6-7장), 이것들이 가져올 미래의 모습을 예상한다.(8장)

 

     저자가 보는 미래의 모습은 너무나 낙관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혁명적 부로 말미암아 지난 시대의 발전 양상이 그러했듯, 미래에도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9장) 이 모든 것들이 가져올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말하면서(10장) 책을 마친다.

 

 

 

. 감상평 。。。。。。。                    

 

     언제나처럼 앨빈 토플러의 책은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위압감이 있다. 무엇보다도 너무 두껍다. 늘 마음은 있지만 섣불리 읽기를 시작하지는 못하고 있다가, 지난 겨울방학을 맞아 알라딘에서 ‘이 주의 서평’에 뽑혀서 받은 적립금으로 확 구입해버렸다. 방학 동안 한 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에서였지만, 웬걸.. 방학 내내 겉장조차 넘겨보지 못하다가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야 읽기 시작했고, 여름방학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드디어 다 읽어냈다.

 

     책은 분량만이 이 책을 읽기 어렵게 느끼도록 만드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무엇보다 저자의 책이 주로 ‘경제’라는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나처럼 경제와는 아주 거리가 먼 전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역시 괜한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처음 가지고 있던 어려움은 금새 사라져버린다. 저자는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을 매우 작은 단위로 잘라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을 자주 놓쳐버리게 만드는 수 페이지짜리 문장 따위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또, 저자의 글쓰는 방식도 신문에 실려 있는 칼럼 수준의 평이한 문체를 즐겨 사용하고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다.(이 점에 관해서는 어쩌면 번역자에게도 감사를 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책의 주요 개념이자,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몇 가지 개념들은 ‘(시간과 공간의) 비동시성’, ‘프로슈머’라는 개념, 그리고 ‘지식’의 특성과 작용에 관한 새로운 조망들이다. 많은 요소들이 서로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현대에서, 그 각각의 요소들이 정확한 시간이나 장소에서 만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비동시성의 개념은 오늘날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의 원인을 설명하는 주요 개념이다. 프로슈머는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방법으로는 측정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생산력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의 무보수 생산활동을 가리키는 말로, 이어지는 지식의 개념과 연결될 때 혁명적 부의 근본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시대의 흐름을 살피면서 구조를 읽어내고,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을 찾아내는 저자의 예리한 관찰력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저자는 인류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그것은 진보를 향한 역사였다고 진단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 흐름은 앞으로도 영원무궁토록 계속될 것이다. 비록 여러 가지 위험에 대한 경고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과거에도 있었던 것들이고, 사람들은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지 않았던가? 저자는 매우 낙관론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고, 이는 과학적 합리주의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점은 거의 전적으로 논리적 추론이라기보다는 저자의 믿음에 근거한 주장이다. 물론 소위 ‘미래학’이라는 분야 자체의 특성이 ‘예측’에 근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의 믿음이 개입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저자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은 매우 강한 확신과 함께 제시된다. 이런 면에 있어서 저자의 생각은 과학이 인류를 유토피아로 이끌 것이라고 믿었던 근대의 이상주의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부 창출 구조가 인류를 유토피아로 이끌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정도. 여기에 저자 특유의 애국심이 더해지면서 미국이 선도하는 혁명적 부가 만들어낼 유토피아를 찬양하는 데까지 이른다. 바로 이런 점이 저자의 주장을 신나게 따라가다가도 그 의견에 완전히 동의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저자는 현실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 매우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저자가 분석해 놓은 도구들은 매우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의 중요성을 상당부분 간과하고 있으며, 대부분을 물질적인 것들로 설명하고 있다.(이런 유물론적인 면에 있어서는 마르크스주의나 현대의 과학만능주의는 동일한 기반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저자의 예측에 매우 큰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 전체는 언제나 논리적으로 합당한 결론을 따라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현명한 독자라면 유물론에 근거한 이런 낙관론을 주의하면서 저자의 주요한 고찰들을 지혜롭게 이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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