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거부자들 - 잘못된 정보는 어떻게 백신 공포를 만들어내는가
조나단 M. 버만 지음, 전방욱 옮김 / 이상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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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제목에 이끌려서 손에 든 책이다코로나19가 2년 째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백신이야말로 우리를 이 상황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백신 거부를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정신 나간 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도대체 그들은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책은 백신 거부의 역사가 어제 오늘에 시작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그건 18세기 말 백신이라는 도구가 최초로 등장했을 때와 거의 시간을 같이하고 있었다그들(백신거부자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침해그리고 (흥미롭게도당대의 과학지식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백신을 거부했다사실 그도 그럴 것이초기 백신접종은 위생적으로 충분히 보장되지 못한 상태에서새로운 감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다만 이런 거부가 조직적으로 나타나게 된 데에는 정부의 백신접종 의무화(강제화조치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방역을 위한 지침이었지만앞서 언급한 의심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된 백신의무화 조치는 심리적 반발을 불러올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


예컨대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는천연두가 전염성이 없으며장 질환으로 인해 피가 탁해지는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주변에도 백신을 거부할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물론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그를 믿고 따르던 많은 사람들을 죽어가게 만들었지만여기엔 당시 인도를 억압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인도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간디의 예는 백신 거부가 엄밀한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좀 다른 이유도덕적이고정치적인 동기에서도 기인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의 주요한 동기는 금전적 이익인데이건 최근의 예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1990년대 이래로 오랫동안 퍼져온 가짜뉴스가 하나 있다바로 백신이 아이들의 자폐증을 유도한다는 헛소문이다여기엔 함량 미달의 수준 낮은 논문들자료의 왜곡구체적인 실험이나 연구조사의 부재언론의 자극적인 기사 남발 등 오늘날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문제점들이 개입되어 있었다.


이와 관련된 최초의 논문을 작성한 앤드류 웨이크필드의 본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알 수 없다그러나 드러난 사실만 보면그는 자신의 연구 설계 자체가 허술하고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어떤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애초의 주장을 고수하고 있으며바로 그 때문에 그의 주장을 신뢰하는 많은 이들의 지갑을 여는 데는 확실히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가 뭐래도 최근의 코로나 대처에서우리 정부는 꽤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검사 한 번 하는 데 수 십 만원을 내야 하는 옆 나라 일본과도애초에 검사결과나 수치 자체를 의심하게 되는 중국과도 차이가 있다그런데 우리 언론과 야당의 발언만 보면우리나라의 상황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안 좋은 것만 같다덕분에 백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방역조치가 방해받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언론은 클릭질 장사로 돈을 벌기 위해서야당은 정부를 공격해 정권을 잡기 위해서 벌인 위험천만한 불장난이었다.

 


책 후반에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하나 실려 있다백신을 거부하는 부모들은 좋은 부모가 되는 데 깊은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그들은 대개 대학교육을 받았고중산층이며다수의 육아 책을 읽고 있다스스로를 애착이나 자연육아에 관심이 있는 깐깐한 부모라고 생각한다는 부분이다마치 사이비 종교나 사상적 확신범처럼 굴고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많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오늘날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데 더 어려움을 느낀다때문에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옳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도그들은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자신의 믿음을 입증할 어구들을 몇 개 금세 골라올 수 있다.


책 말미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해법은좋은 이웃으로서 본을 보여주는 것이다나와 비슷한 환경에서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하는 이웃들이 백신 접종의 안전성과 접종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임을 삶으로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는 건데조금은 느려 보이는 방법이지만뭐 어쩌겠나증거를 들이밀어도 고집을 부린다면.

 


흥미로운 주제지만저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배열하고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데 조금 약점을 보인다좀 아쉬운 부분인데덕분의 책의 내용일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좀 더 좋은 편집자를 만났다면 어땠을까그래도 이 주제에 관해 다양한 정보들을 읽을 수 있었던그리고 필요한 사람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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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burning 2022-01-05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백신접종이후 사망자 1,500여명과 위중증 등 수많은 사례의 부작용 보고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노란가방 2022-01-05 08:39   좋아요 0 | URL
우선 관련된 소문은 대체로 거짓이라고 봅니다. ˝백신 접종 이후 사망자˝라는 말이 ˝백신 때문에 죽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논리적 비약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둘은 같지 않거든요. 오늘 죽은 사람 중 70%가 아침에 밥을 먹었다고 해서 죽음의 원인이 밥이었던 건 아니니까요.

이 부분은 과학적 검증의 영역이어야 하고, 실제로 백신접종과 인과성이 인정되는 건 한 손으로 꼽을 정도고, 직접적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케이스를 모두 합쳐도 30건이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위중증과 관련해서는.. 백신접종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최소 3~4배는 그 수가 더 늘었을 거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구요)

부작용에 관해서는.. 모든 약이나 백신이 그런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있는데 당연히 부작용의 위험도 있죠. 하지만 부작용이 생길 위험보다 약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효능이 훨씬 크고 명백하다면 먹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저는 백신 강제접종은 반대합니다(그건 위에서 소개해 드린 이 책의 저자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다행이 아직까지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 단계까지는 가지 않고 있지요.

이빛터 2022-01-05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봄날 2022-02-03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신주의보˝.˝백신의 덫˝. ˝의약에서 독약으로˝라는 책들을 추천합니다. 소문들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그때가서 말씀하시길. 과학적 검증이니 인과관계여부등 모두 잘 나와있으니 꼭 읽어보세요. 모르면서 안다는 착각이 제일 위험하니까요.

노란가방 2022-02-03 21:03   좋아요 0 | URL
네. 마지막 말씀에는 십분 공감합니다. 지구는 평평하고, 미국은 달에 가지 않았고.. 뭐 그런 내용도 과학으로 포장해서 남발되는 세상이니까요.

서로가 각자가 믿고 싶은 바를 담고 있는 책을 가지고 나와서 자기 말만 하고 들어가기만 한다면, 아마 지적 세계에서 확실성이란 도무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게 최소한의 성실한 동료들에 의한 상호검증이겠죠. 그렇게 과학은 오류를 수정해 가며 조금씩 발전해 나갑니다. 이걸 믿지 못하면 우리는 어떤 약도 먹을 수 없을 테구요.

황우석 사태 기억하시나 모르겠습니다. 이 상호검증을 피해나가는 사기를 시도했으나, 결국 바로 그 동료들의 검증으로 인해 발각되었죠. 학계는 꽤나 살벌한 면이 있어서 자신과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성과를 부정하기 위해 경쟁심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이 정확한 과학적 규칙을 지키기만 했다면 오히려 그런 행위가 옹호되기도 하구요.

백신은 그런 상호검증을 통과한 과학적인 매커니즘입니다. 백신에 관한 음모론이 학계에서 거론할 가치조차 두지 않는 이유는 이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구요.
 
코로나 인문학 - 인간 욕망에서 사회 시스템까지 뉴노멀을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선
안치용 지음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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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쓴 지도 1년이 훨씬 지나버렸다대규모 전염병으로 인한 집단 격리와 셧다운국지적이고 세계적인 이동의 중단이 동시에 일어났고그렇게 사람과 물건의 이동과 운반이 어려워지면서 경제에도 문제가 생겼다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못해서 (비대면 수업을 이어오긴 했으나대규모의 학력저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도 하니이번 문제의 여파는 제법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힐지도 모르겠다.


     문제가 복잡할 때는 좀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문제가 하나씩 터질 때마다 급조된 해결책을 내어놓는 식으로는 누더기밖에 만들 수 없으니까그리고 이런 사회 경제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보는 데는 인문학적 관점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전염병을 역사와 문화사회적 배경 안에서 읽어내는 것이다이 책이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쓰였다.

 


     저자는 우선 역사적 관점에서 전염병을 이해해보고자 시도한다중세의 흑사병이 어떻게 사회체제를 변화시켰는지근대 초입에서 일어난 마르세유 흑사병이 일어난 원인을 추적함으로써대규모 전염병이 갖는 힘과 인간의 탐욕이 사태를 어떻게 악화시키는지를 한 눈에 읽어낸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도 아니고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예시도 아니다과거는 늘 반복되지도 않지만그렇다고 내일의 사건이 어제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대신 우리는 역사를 읽어가며 어떤 일이 벌어질 때 어떤 것들이 계기가 되고문제가 확산되도록 만들었던 실책이 무엇이고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역사적 관점을 지닐 수는 없기에, 21세기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잡겠다고 알코올을 들이마시는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고도시의 방역망을 뚫어 마르세유 흑사병이 퍼지게 만든 탐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애써 쌓아 놓은 방역 전선을 여기저기에서 뚫고 있다.

 


     책의 2부는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 오늘날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일들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코로나 팬데믹 초기부터 여러 나라들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시위들이 일어났었다여기에는 어떤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있었을까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격리와 고립된 자아라는 근대의 자아상을 비교하는 글도 있고대규모 재난이 일어났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이 취약계층이라는 지적팬데믹 못지않게 큰 문제를 일으키는 인포데믹이라는 재앙이 끼치는 결과들 등등.


     물론 이런 고찰들이 당장의 코로나 사태를 해소하는 데 무슨 직접적인 해결책을 알려주지는 않겠지만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문제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는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뉴스에는 이런 것들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대부분은 개인적 경험이나 선동적인 어구들에 휘둘리며 대책 없는 불평만 남발하곤 한다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그런 대부분에게 돌아온다는 것.


     코로나는 산불이다작은 불이야 중구난방 어떻게든 물만 뿌리면 금세 꺼질 수 있지만거대한 산불은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에모두가 큰 그림을 보며 힘을 합치든지아니면 최소한 큰 그림을 보고 있는 지시자에게 협력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이걸 방해하면 누가 피해를 볼지 자명하다책에도 언급되어 있는사회의 약한 고리가 먼저 끊어지고결국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될 것.

 


     책의 후반부 몇 개 장은코로나 상황 이후를 조망하는 장들이다매일 엄청나게 발생하는 일회용 마스크 쓰레기 이야기로 시작해기후위기까지 이어지는 장과바이러스의 전 세계로의 급속한 확산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인 세계화 문제그리고 비대면 시대에 최적화되고 있는 산업형태의 미래까지.


     단순히 보건과 방역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훨씬 더 거대한 구조 안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특히 마지막 장의 제목은 “‘콘택트’ 없는 언택트는 디스토피아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있는데편리해지고 있다는 생각만 할 수 있는 언택트 산업의 불편함에 대해서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었다다만 결론이 조금 얼버무려진 듯한 느낌은 있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금세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다이제 어느 정도 코로나 상황도 그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이게 정말 이라고 쉽게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어느 식으로든 이 문제는 우리에게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테니까.


     치료제 정도의 기능을 해야 할 언론이팬데믹 상황에서 오히려 변이 바이러스처럼 굴고 있다는 책 속의 한 구절이 인상적이다그런 언론에 놀아나는 사람들이 늘수록사회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적어도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책 한두 권 정도는 찾아 읽었으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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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애슐리 도슨 지음, 추선영 옮김 / 두번째테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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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하루에도 100여 종의 생명체가 멸종되고 있다고 말한다이게 정확한 수치일까 의심부터 든다일 년이면 36,500종의 생물이 멸종된다는 얘기고, 10년이면 어림잡아 36만 종이 멸종된다는 말이다이런 속도로 멸종하면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종이 곧 사라지는 건 아닐까?


     그러면 지구상에 총 몇 종의 생물이 있을까찾아보니 보고된 것만 150만 종이라고 한다그러면 정말 큰 일 아닌가? 5년 후에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이 사라진다는 말이니까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라아직 발견(보고)되지 않은 게 최소 1000만 종에서 많게는 1억 종까지 있을 거라는 추정이다그러면 지구상의 모든 종이 멸종할 때까지 최소 300년에서 3천 년 정도가 걸린다물론 지금처럼 하루에 100종씩 멸종을 계속하고새로운 종이 만들어지지(분류되거나 발견되지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이 별 거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하루에 100종이라니... 그래도 엄청난 수가 아닌가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이 든다그렇게 많은 수가 멸종하는데왜 우리는 그걸 실감하지 못할까.


     첫 번째 가능한 이론은 멸종되는 생물이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만 살고 있다는 것이다오늘날처럼 전 세계가 이어져있고정보가 공개되는 시대에 좀처럼 가능할 것 같지 않다또 하나의 이론이 있어야 하는데그 이라는 게 매우 미시적인 구분으로애초에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환경에만 적응 가능했던 소규모 무리혹은 매우 작은 특징으로 나뉘는 학문적 성격의 구분이었다는 설명이다.


     아마도 진실은 두 번째 이론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매일 100종이 넘게 멸종된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확실히 위기감을 안겨주지만그 말을 들었을 대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런 그림과 실제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런 좁은 범위에 사는 적은 수의 개체 종들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다만 만약 앞서 한 추정이 옳다면그 적은 수의 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복잡하거나(각각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하니최소한 하루에 100개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아주 단순하다(지금부터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를 모두 중단하면 된다).


     그러나 어느 쪽에 생각하는 일에 비해실천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1년에 36만 개 종을 보호하는 계획을 실현하는 건 너무 복잡해 보이고(이 정도로 민감한 종들이라면 하나를 보호하기 위한 어느 행동으로 인해 다른 둘이 멸종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당장에 우리의 삶을 중단하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저자는 내가 보기에 이 두 번째 방법을 만지작거리는 것 같다책은 이 대규모 멸종의 원인으로 인간을문명을제국을그리고 나중엔 자본주의를 지목한다지나치게 단순한 도식이 실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반영하는지도 모르겠고문제의 원인을 이렇게 지목하면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진다.


     당장에 문명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고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급격한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통해 지금 누리고 있는 많은 문명의 이기를 포기해야 한다당연히 이 계획에 얼마나 동참할지 모르겠다우리가 자동차를스마트폰을인터넷망을 포기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하는 환경정의를 추구하는 광범위한 반자본주의 운동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인지는 의심스럽다환경을 파괴하는 북반구의 선진국들이 재정을 내서 남반구에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결론부에 위치해 있지만어떻게 그 재정을 분배할 것이고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을지어떻게 선진국들로부터 그 재원을 얻어낼지는 불분명하다당장에 저개발국가들에서 코로나로 매일 수만 명씩 쓰러져 죽어가지만 선진국들은 백신을 독점한 채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 게 현실 아닌가.


     심지어 그렇게 해도 앞서 말한 하루 100종의 멸종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사실 멸종되어가는 100종에 관한 이야기는 책의 중후반으로 가면 더 이상 등장하지도 않는다.(저자도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 이야기를 이 리뷰 초반에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대책이 있어야 비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너무 큰 이야기도식적이기만 한 구조비판에 매몰되다보면 외곬만 보이게 되고타협과 협상의 여지가 사라진다당연히 실제적 문제해결로부터도 멀어질 테고그리고 환경정의를 추구하는 광범위한 반자본주의 운동이란 듣기만 해도 좀 무시무시하지 않은가이 반자본주의 운동이 하루에 몇 개의 종의 멸종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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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만만해지는 책 - 한 번 배우고 평생 써먹는 숫자 감각 기르기
브라이언 W. 커니핸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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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숫자에 약하다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물론 그 중에서도 나는 좀 중증이라서한 공간에 몇 명쯤 와 있는지내 방 책장 하나에 책이 몇 권이나 꽂혀 있는지우리 집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대충이라도’ 말을 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커니핸은 나처럼 숫자에 어두운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우선 저자는 어려워 보인다고 해서 숫자를 외면하면 안 된다고 충고한다대체로 숫자들은 우리에게 뭔가를 팔아먹거나우리가 특정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잘못된 숫자혹은 숫자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우리에게 결과적으로 큰 손해가 될 수 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대략적인 계산만 할 줄 알아도 숫자의 세계에서 큰 손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이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어림수와 간단한 사칙연산을 통해서 계산을 직접 해보라고 권한다물론 필요할 때마다 정확한 수치를 찾아보거나 할 수도 있지만, 10~20% 정도의 오차를 내는 어림계산만 있어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 큰 문제는 피해갈 수 있다는 것.


     책은 숫자가 어려워지지 않게 만드는 다양한 팁을 제공해 준다지나치게 큰 숫자를 대할 때는 피부에 와 닿는 좀 더 작은 단위로 쪼개서 생각해 보고부피와 길이넓이를 나타내는 단위들을 정확하게 구분하고(이건 제곱세제곱으로 숫자가 늘어날 수 있으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 통계나 그래프를 읽을 때는 기준점이나 단위수치의 왜곡이 일어나지 않는지 살펴야 하고.

 


     조금은 뻔해 보이는 이야기들이긴 하지만워낙에 숫자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얼치기 기자들이 널려있는 시대에한 번쯤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이야기들이다정확한 인과관계나 규모에 대한 이해 없이 누군가가 과장을 섞어혹은 왜곡해 전달하는 말만 듣고 견해를 갖기 일쑤인 정보과잉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메모지 한 장을 펴놓고 간단한 계산을 하는 연습부터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미국식 숫자 셈법 자체가 꽤 혼동하기 쉽겠구나 하는 점이었다밀리언(million)과 빌리언(billion), 트릴리언(trillion) 같은 단위들은 각각 천 배씩의 차이를 내는 단위인데꽤나 유명한 신문이나 잡지들에서도 이를 혼동해 엄청난 오보를 내는 실 예가 수두룩하다반면 만 배씩의 차이를 내는 억경 같은 단위를 사용하는 우리들은 이 정도의 착오는 좀 적지 않나 싶기도 하고.(이게 우리 기자들이 특별히 계산에 밝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막연한 인상비평과 가짜뉴스에 우르르 휩쓸리는 일이 잦은 오늘날이런 기본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좀 더 귀하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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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상상력 -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시대, 정치란 무엇인가
김병권 지음 / 이상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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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의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우리나라 진보정치세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짚어보는 책이다. 1장과 2장은 각각 디지털 플랫폼 경제와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탄소중립 정책을 살펴보는 실제적인 주제를 다루는 장이고, 3장과 4장은 좀 더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플랫폼 사업과 관련된 노동자들의 상황을 분석하는 1장이 가장 인상적이다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수준으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편의성어차피 남는 시간남는 공간남는 차량 등을 나누면서 자원절약도 실천할 수 있다는 등등 좋은 이야기들로 포장되어 있지만실제로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실태는 그리 좋지 못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플랫폼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기업의 인력 운용형태가 기존에 법으로 규제를 받고 있던 기업들과 다르기에즉 법의 사각지대에서 장사를 하고 있기에 벌어지는 문제다그렇다면 저자의 말처럼얼른 새로운 기업형태에 맞는 노동관계법을 제정하면 될 일인데기득권 정당들은 좀처럼 이런 문제에 앞장서 나서지 않는다어떤 형태든 내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면 노동이라고 인정하면 될 일을 말이다.


     1장 후반부의 블록체인을 이용한 가상화폐 문제를 다루는 부분도 흥미롭다분권적이이라서 중앙의 힘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기술로 홍보되었던 블록체인과 가상화폐가 실제 운용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앙집권적이라는 지적은 새롭다.


     비트코인의 전 세계 채굴양의 90%를 상위 10대 업체가 독점하고 있고그 중 3개의 중국업체가 50%를 점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0.0001%의 블록을 형성해 거래처리를 할 때까지 99.9999%의 사용자들은 기다려야 하고그 소수가 어떤 사람의 트래젝션을 처리해 줄지는 전적으로 그들 마음이라는 부분도 그렇고결국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전 세계적인 투기판만 열렸을 뿐실제로 우리 삶을 변화시킬 만한 내용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기후 위기에 대한 해법을 설명하는 중 이런 내용이 있다저자는 미래 공상 영화에 나온 것처럼 어마어마한 기계들과 빽빽한 철골 건물지상을 넘어 하늘까지 뒤덮은 자동차와 비행기의 모습은 상상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그런 미래는 지금보다 수십 배의 에너지와 자원이 없으면 구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결국 화석연료의 사용을 중단하고 태양열 등의 친자연적 에너지를 사용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저자 역시 인정하듯이런 에너지는 그 효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화려한 미래는커녕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수준의 편의성도 보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결국 끝없는 팽창을 추구하는 현재의 생산활동을 절제하고노동시간조차 단축하면서(주 15시간 노동제좀 더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느슨한 사회를 꿈꾸는 듯하다.


     문제는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하는 점이 아닐까 싶은데... 과연 인류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편리함을 기꺼이 내어놓고 친환경적 삶을 따라 살려고 할까당장 스마트폰과 인터넷자가용을 포기할 수 있을까이런 상황에서 어떤 정치세력이 이 일에 앞장서서 실현할 수 있을지.


     그리고 책에는 언급되지 않지만그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적지 않은 에너지와태양열 패널 폐기물 같은 문제들이 확실하게 해결되지 않는 한어떤 것도 근본적으로 친환경적이지는 못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진보세력이 나아가야 할 철학적사상적 미래를 설명하는 책의 후반부는 확실히 집중도가 떨어진다.(이 책을 받은 장혜영 의원이 목차와 1장을 보고 답을 했던 이유가 이거였을까몇 페이지 되지 않는 지면에 하나의 사상을 담아낸다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니고그렇다고 설명이 흥미롭지도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당과 제1야당이 모두 기득권에 사로잡혀 있다는 레토릭은 지겹게 반복되어온 내용이고그럼 진보정당은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현재의 제도권 안에서 관철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론은 잘 보이지 않는다심지어 저자는 점진적’ 변화를 넘어서는 대개혁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말이다.


     여기에 진보라는 그릇에 담아내려고 하는 재료가 너무 많다는 생각도 사라지지 않는다. “노동조합실업자들불안정 노동자들여성주의자들생태주의자들반제국주의자들사회민주주의자들민주적 사회주의자들까지 모두 포괄하는게 진보의 미래인가. LGTB와 기후위기청년문제는 진보의 미래에서 같은 무게를 가지는 걸까애초에 섞이지 않는 이질적인 생각들이 그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진보의 열차의 같은 칸에 끼워 넣어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이들 사이에는 철학적 충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정치적 진보 섹터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이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을 나름 잘 담아낸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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