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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도시 가이드
제프 마노 지음, 김주양 옮김 / 열림원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건축하면 당연히 건축가나 예술가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은 도둑을 주제로 건축과 도시를 다룬다. 왜냐하면 도둑이야말로 건축가나 설계가 못지 않고 건물과 도시에 대해 잘 알고 공부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도둑은 적어도 자기가 털고자 하는 건물의 구조와 설계 및 설비, 보안에 대해 빠삭하게 알아야 한다. 그것도 모자란다. 시간도 중요하다. 같은 경로로 들어가더라도 언제는 되고 언제는 안되기 때문이다. 도시에 대한 것도 중요하다. 절도에 성공했어도 도주에 실패한다면 모든건 물거품이니까. 그래서 건물 인근에 차를 대기는 적합한지. 도망갈 곳은 적당한지. 지하철이나 사람이 많은지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이 책은 이런 도둑의 입장에서 목표물인 건물과 도시를 조망한 책이다. 그래서 독특하고 재밌는 지점이 좀 있었다. 재밌는 관점은 도시 설계 자체가 도둑을 양산한다는 관점이다. 도둑입장에서는 분명 털기도 좋고 도망가기에도 좋은 도시란게 있다. 대표적인예가 LA다. LA는 미국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나중에 개발되었기에 광역도로망이 발달했다. 이는 도둑 입장에선 차를 갖고 와서 대고 절도를 한 후, 바로 도망가기에 매우 용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 일부 은행들은 매우 보안이 허술한 도로변에 위치에 도둑들에게 매우 좋은 먹이감이 되었다. 90년대 LA에서는 매일 45분마다 은행절도가 일어났다고 하니 정말 가관이 아닐수없다. 더 웃긴건 은행측의 대처다. 이 정도면 은행을 옮기거나 보안강화를 고심할만도 한데 면멸히 수지타산을 따지 은행측은 보안요원을 두어 보안을 강화하거나 옮기는 비용보다 절도가 싸다가 판단했다. 자신들의 보안 비용을 어쩌면 경찰, 즉, 일반 시민에 전가한 셈이다.

 또 다른 재밌는 개념은 포획주택이다. 범죄가 많고 나라가 넓어 검거율이 50%에 불과한 미국에서는 포획주택을 이용한 절도범 검거가 가능하다. 일종의 함정수산데 말이다. 포획주택은 우선 절도범의 프로파일링에서 시작한다. 녀석의 동선, 그리고 성향등을 면밀히 검토해 털만한 주택을 만든다. 이 주택은 정말 일반 주택과 똑같아서 절도범은 자신이 잡히고서도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고 한다. 절도범은 포획주택을 털면서 잡히기도 하고, 혹은 그 과정에서 집에 설치된 다양한 장치에 의해 증거를 다량 남기게 되어 결국 체포된다.

 재밌는(?)절도 사례들도 좀 있다. 한 일당은 수도관을 따라 수km의 땅굴을 파서 은행을 털었다. 그들은 사륜바이크를 이용했는데 긴거리를 이동하고, 훔친 물건을 다시 실어나르기 위함이었다. 절도범은 쓰레기통도 이용한다. 거대한 미국식 쓰레기통이 어느날 한 건물 옆에 등장한다. 이를 신경쓰는 경찰이나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쓰레기통안에는 쓰레기 대신 절도범 무리가 매일밤 등장한다. 그들은 쓰레기통에 붙은 건물 벽을 부시기 사작한다. 이 작업은 하루에 끝나는 경우도 있고 수주에 걸친 프로젝트가 되기도 한다. 파낸 흙벽들은 치밀하게 인근 수로로 모두 흘려보내 증거를 남기지 않곤 한다. 또한 건물에 싸인 쓰레기 더미도 절도의 도움이 된다. 그대로 올라간 옥상쪽으로 침입하는 것이다. 어떤 일당은 동료를 캐리나 커다란 박스로 위장해 이용하기도 한다. 한 고급 주택에 고급진 커다란 가구를 배달한다. 당황한 가족에겐 먼 해외의 친척이 유산으로 배송한거라고 한다. 미국은 이민자 국가니 조상중에 하나 그런사람이 있을 법도 하니 먹히나 보다. 하여튼 그 가구에 숨어있던 도둑은 밤에 나와 집을 턴다. 그리고 며칠후 일당이 다시와 택배배송이 잘못된거라고 말하며 가구와 동료 귀중품을 같이 가지고 나간다. 도둑들은 같은 구조를 가진 집들을 선호한다. 아마 미국의 도둑들은 한국에 오면 환호할 것이다. 같은 구주의 아파트 단지와 주택단지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얼마나 도망가기 힘든 나라인지를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을 것이다.(높은 인구밀도, CCTV, 좁고 꽉찬 도로때문이다.)

 이 책은 흥미롭지만 내용이 깊진 않다. 좀더 구조적이고 학문적인것도 기대했는데 사례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더운 여름밤에 가볍게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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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9-07-30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흥미로운 책이네요. 참지 못하고 주문했습니다...ㅎㅎ

닷슈 2019-07-30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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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어며 퇴근했다. 배캠은 참 오래된 프로그램인데, 대중에 영합하는 팝뿐 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팝을 틀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팝에 전반적으로 무지하고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어서 배캠은 내가 꼭 듣는 프로는 아니다. 그저 어쩌다 내가 방송시간대에 차에 자주 있는 편일 뿐이다.

  그래서 내겐 배캠의 매력은 그보단 자기 디스에 있는데 어쩌다 애청자가 "꼭 기다려서 듣느니 챙겨듣느니" 요런 말을 하면, 대개의 진행자들은 감사하면서 선물도 주곤 하는데, 배철수씨는 "뭐 꼭 그럴 필요 있나요? 다른 거 하세요" 라던가. "감사하지만 뭐 굳이 안그러셔도 되요," 등등 요런 반응인 것이다. 이게 제법 재밌다.

 하여튼 하려는 말은 며칠전 내가 차에 있던 시간에 배캠에 한 사진작가가 출연했다는 것이다. 역시 사진에 관심이 없어서(관심있는건 축구다!!) 그가 누군지 기억도 안나지만 그의 이야기만 기억이 난다. 그는 대충 90년대 중반쯤 한국에서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그래서 놀다가 단지 영화가 하고 싶어 당연히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본인이 합격한 대학이 여대였던 것.(이분도 대학도 어이가 없다) 당황한 영사는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영국으로 향하기로 한다. 여기서도 별 계획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기 시작한 그는 당연히 준비없는 유학이었기에 어학으로 고민한다. 거기에 외환위기가 닥쳐 집사정도 어려워지자 알바를 하기로 한다.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이 할만한 알바를 찾다 고심하니 한 신문에서 사진기사를 찾고 있었다. 그는 우여곡적끝에 이 알바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의외로 사진에 재주가 있었다. 자신의 사진이 영국4대 일간지중 하나였던 신문에 실리게 되고, 그는 더 높은 곳으로 가게된다. 그런데 입사시험에서 보는 것은 학력도, 어학점수도 여하의 스펙도 아니었다. 그저 니가 찍은 사진 몇장 갖고 오라는 게 다였다. 그렇게 그는 세계적인 사진 작가가 된다. 한국이었으면 과연 가능했을까

 내가 작년에 읽은 당선 합격 계급이다. 작년에 읽은 100권 정도의 책 중 나는 이 책을 일순위로 꼽았었다. 그건 이 책이 한국사회가 빠져있는 '신뢰도'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신뢰도에만 집중해 우리는 수능이나 고시를 신봉하고 서열화와 객관식 시험을 선호한다. 그리고 이 신뢰도 중시의 시험을 통과한 자들이 고위 공무원과 대기업 사원, 기자 심지어 작가가 된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공채나 기수란게 생기며 이는 곧 서열화를 만들어 의견의 조율을 어렵게 한다. 권위주의적이 되는 것이다.

 

같은 맥락의 책을 이번에 읽었는데 책은 '배움이 없는 학교 프레임을 바꿔라이다.

최근 교육계에서 가장 화두가 된 건 자사고 폐지 문제와 숙명여고 부정시험 사건이었다. 둘은 다른 문제 같지만 사실상 건드리는 부분은 같다. 바로 학교생활종합기록부 전형에 대한 공격, 즉 신뢰도 신화를 무너뜨리는 타당도에 대한 공격이다.

 우리나라는 오래도록 객관식 시험을 신봉해왔다. 이는 과거 순기능을 작용했는데 그럴만 했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상당히 많은 수의 교육받은 인력이 대거 필요했고 이들을 대규모로 선발할 필요가 있었다. 객관식 시험이 딱이었다. 거기에 조선왕조와 일제시대를 거치며 기존의 기득권 층이 무너져 내리면서 많은 일반 시민들이 이 객관식 시험을 통해 상류사회로 진입할 수 있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기회와 자리가 생겨났는데 여기엔 지연과 혈연, 그리고 학연이 자리했다. 때문에 지연과 혈연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연에 매달릴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 획득이 가능했던 학연은 매우 공정하고 타당한 것으로 한국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잡았다. 거기에 학창시절 학업에서 고생끝에 성공한 이들은 이러한 신화를 더욱 강화시켰고, 실패한 이들은 실패한 이대로 자신의 실패를 통해 어처구니 없게 이 제도를 더욱 강화시켰다. 아무리 다른 분야에서 성공했어도 가방끈 짧은 것은 평생의 컴플렉스로 자리잡고 이는 자식에게 대물림되어 강한 교육성공에 대한 투사를 낳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기득권층이 생겨났고, 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기득권층이 생겨나면서 소위 유명 학군과 이를 뒷받침 하는 학원가와 지역의 강한 지가 상승이 생겨났다. 돈이 없으면 학력을 사들이기 어려워지기 된 것이다. 거기에 4차산업혁명시대가 도래했다. 미래 시대엔 실제 무언가를 잘 하는 역량이 중시될 것이 자명했고, 교육부와 사회는 여기에 반응해 2015개정교육과정을 역량중심교육과정으로 만들어낸다. 여기선 과거처럼 하나의 변별력을 위한 시험에 통과하는 능력이나 암기 위주의 학습능력이 필요치 않다. 실제로 문제상황을 협력해 해결할 역량과 인성이 필요하며 사회의 다양한 변화에 적응할 능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학생은 과거의 암기능력에서 벗어나 다양한 교과를 접하고 이에 흥미를 같고 동아리나 다양한 활동을 해나가며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나가는 커리어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담아내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게 현행 학종부 전형인 것이다. 대학은 이 학종부 전형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를 다양하게 뽑아낼 수 있고, 실제 연구결과 수능으로 진학한 정시전형학생들보다 학종부를 통한 수시 전형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더욱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르게 반응한 지역은 소위 기득권을 확보한 계층이었다. 이들에겐 수능같은 신뢰도만을 중시하는 전형이 압도록으로 유리했다. 금력과 정보력으로 대비 빛 성적 순위 향상에서 일반계층보다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동안 자녀들을 이런 능력으로 뒷받침해 특목고나 자사고등으로 진학시켜왔다. 그리고 이는 성공으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학종부중심의 전형에선 그렇지 않다. 학교 혹은 교사마다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이는 사교육으로 대비가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초기엔 보다 다양한 교육과정과 활동을 하는 자사고나 특목고 학생들이 오히려 학종부에서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현재는 일반고 학생들이 보다 대학입학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학종부를 공격하는 것이다. 부정의혹과 고교에 대한 불신, 객관선에 대한 신화를 부풀려서 말이다. 우려스럽게도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심지어 교육계종사자들까지 아직도 객관식 시험과 이의 신화를 신봉한다. 너무나 오래 종속되어 왔기때문이다.

 하지만 학종부 형태의 시험은 말한 것처럼 미래사회를 대비할 역량을 가진  인재의 배출과 기득권 구조의 타파 그리고 학생 개개인에게 진정한 교육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야할 길이고 매우 중요하다. 거기에 서열 중심의 한국 사회의 구조에 균열을 내고 이를 통해 창의성있는 인재가 배출되고 민주주의가 완성되어 갈 것이며, 능력 있는 인재가 배출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바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고교는 이 학종부 전형에 아직 적응하거나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맞다. 때문에 아직 세상은 변하고 있는 않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우선 고교 교사들의 각성과 전문성을 강조한다. 학종부전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교사 하나하나가 자기만의 교육과정을 갖고 전문성을 신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도 중요하다. 학교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교과와 교육과정을 제공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학점제를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현제 단위제를 채택하고 있다. 단위제는 일정시간만 학업을 하면 교과를 이수한 것으로 인정하고 이 교과가 일정 단위가 쌓이면 졸업을 시켜주는 제도다. 공부못해도 시간만 때우면 학년이 올라가고 졸업하는 체제다. 반면 학점제는 타당도를 강조하는 성취기준 중심의 체제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과를 개설하고 이 교과는 사실 교과의 선을 넘어선 주제중심의 체제다. 지리, 역사, 생물이 아니라 앱을 활용한 상품개발 같은 형태인 것이다. 때문에 교육과정 재구성이 요구되고 학생의 동기를 유발하며 그들의 삶과 관련된다. 하여튼 학점제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주제 중심 교과를 선택하고, 이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성취기준에 도달해야 한다. 즉, 학력이 미달하면 이수가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학점이 일정수 쌓이면 졸업하게 되는게 바로 학점제인 것이다.

 학점제의 실현을 위해서는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다양한 활동을 위해 교실수가 지금보다 늘어나야 하며 당연히 교사수도 많이 충원되어야 한다. 교원전문성 신장을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즉,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제이기도 하다. 실제 우리나라의 많은 정책 집행과정에서 교육전문가는 중심에 서지 못하고 있으며 현장을 가장 잘아는 교사들은 그나마 그 안에도 못들어가고 있다. 거기에 항상 교육개혁은 정치권에서 후순위다. 그저 문제만 만들지 않으면 된다는 분위기다. 이런 것 부터가 문제인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란 뻔한 말이 있다. 하지만 뻔하기에 무엇보다 어려운 것일 수 있다. 신뢰도에서 벗어나 타당도로 향하고, 미래 사회에 대비하며, 학생 개개인이 행복하고 적응할 수 있는 교육에 힘을 실어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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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자치를 말하다 - 학생 중심으로 민주적인 학교문화 만들기 자치를 말하다
이민영.백원석.조성현 지음 / 에듀니티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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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은 학생자치지만 사실 자치와 인권, 평화, 축제의 4개의 장으로 만든 책이다. 4가지가 모두 바로 서면 학생자치가 진정으로 일어나니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3명의 중등교사가 자신의 사례를 말해주는데 사립학교 선생님도 있어서 독특했다.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은 사립에 의존하고 있지만 사립학교 선생님이 교육에 관해 책을 쓰는 경우는 이상하게도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의 이야기가 주여서 초등이나 혹은 유아학교에서는 적용하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시사점은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자치에서는 학생들이 그야말로 스스로 학교를 운영해나가는 장면들이 나온다. 처음 아이들이 엉망이어서 선생님이 많이 관여하지만 죽이 되든 밥이되든 아이들에게 맡기고 이를 통해 성장시키는 점이 좋았다. 학생회에 적지 않은 예산과 발언이 실행되는 점을 보여주어 힘을 실어주는 점이 중요한듯 하다.

 인권부분에선 중등이다 보니 학생 복장 및 머리카락 문제, 그리고 등교시 생활지도 문제가 등장한다. 인권에 민감한 이 책의 선생님들은 발령 초기에 3D 업무인 생활지도를 맡고 교문을 지키곤 했다. 사명감에 그리고 관리자에게 칭찬을 듣기도 해 열심히도 했지만 모든 아이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 짓을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인사하기 시작한다. 깍듯이. 이상해하던 아이들은 하나둘 인사를 주고 받는다. 보다 못한 교장은 교사를 지적하려 했지만 인사이후 줄어든 학교폭력 통계를 보며 뭔가를 감지한다.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과거 학교다닐 때 어디에나 있었던 학생주임을 무척 싫어하곤 했다. 그 때 그분들도 이런 외로움을 느끼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는 학생뿐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평화부분은 요즘 교육계의 화두인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응보적 정의를 외치며 바란다. 흉악한 범죄자에게 중벌이 내려지길 원하고 학생이라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는 처벌하길 원한다. 동의한다. 범죄의 수준에 이른 학생은 형사처벌해야한다. 하지만 그정도 수위가 아닌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아이들을 다루는게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가해자를 회복시키는 생활교육을 통해 다시 올바른 아이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엔 담임교사 뿐만 아니라 학부모, 교장, 심지어 지역사회의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한다. 마을이 같이 키운 아이가 잘못되기는 힘든 법이다.

 마지막은 축제다. 사실 이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다. 학생을 중심으로 다양한 축제를 이뤄낸 예들이 나온다. 학생회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부분도 있었다. 첫 작품이 수상까지 해 학교의 전통으로 자리잡는다. 어떤 학교의 학생회에서는 축제에 아이들이 연예인을 부르고 싶어한다. 돈이 없으니 될리 만무하고 교육적 효과도 없다고 교사는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원했다. 그래서 맡겨보니 아이들은 출연대신 방송국에 마냥 쳐들어가고 들이대서 자기네 학교 축제를 축하하는 연예인의 인터뷰를 따왔다. 이게 출연 못지 않은 환호성을 불러냈다. 그게 전통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데 연예계환경도 변하다보니 이젠 기획사에 접근해야 한다고 한다. 이 학교 대단한게 얼마전엔 엑소의 인터뷰도 따냈다고 한다. 엑소가 축하해주는 학교 축제라니.

 자치와 인권, 평화, 축제에 대해서 쉽고 깊게 느끼며 볼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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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불신 -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현상의 이면
홍섭근 지음 / 테크빌교육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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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 나라의 시민으로서 공권력의 무능을 탓한다. 치안이 불안하면 경찰의 탓을, 판결이 엉망이면 사법부 탓을, 정치가 엉망이면 정치인 탓을 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교육도 엉망이기에 교사와 학교 탓을 한다. 해당분야에 무능함이 있다면 그건 그 부분의 구성원 문제이기도 하며 또한 구조적 문제일 수 도 있다. 교육의 실패는 무엇 때문일까?

 정답은 아마도 둘다 일 것이다. 교사와 그들을 둘러싼 교육계의 구조 둘다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의 시민들은 주로 교사를 탓한다. 다른 분야에 비해 교육계에 대한 비판에서 구조탓을 하는 것은 좀처럼 보질 못했다. 왜 일까? 아마도 우리가 모두 자라나면서 잘못된 교사를 한번쯤은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한번 쯤 부당한 대우를 당했고, 언어폭력을 당했으며, 신체폭력을 경험하고, 혹은 성폭력에 비리도 보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외환 위기 이후 전체적으로 어려워진 고용시장에서 교사들이 공직이기에 예전의 위치를 지킬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 내 자식이 교육에서 실패한 경험때문 일 것이다.

 그런데 이중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잘못된 교사에 대한 추억은 온당치 못한 면이 있다. 위에 언급한 우리가 한번쯤 경험한 나쁜 교사는 사실 70-90년대 근무한 교사로 교직 정년이 62세인걸 감안하면 2-30년이 지난지금 대부분 끝물이거나 정년퇴임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지금 만나고 비판하는 교사들을 우리와 같은 피해자들이 자라나 교사가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교직은 오랜 자정노력과 김영란 법등으로 촌지나 각종 비리로부터 상당히 투명해졌으며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각종 폭력도 거의 사라졌다. 물론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거기에 교대의 입학 점수는 1등급이 아니면 노려볼 수 없을 정도이며 중등교사의 임용고시 경쟁률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단순 점수로만 따지면 역대최고, 혹은 지구상 최고의 학력집단을 교육계에 투입한 셈인데. 그 효과를 좀체 체감할수 없는 것이다. 그 원인을 따지고 오늘날 교사가 이처럼 불신 집단이 된 것에 대해 다룬게 이 책이다. 설이 길었지만 본론을 따져보자.

 

 교사 권리는 없고 의무만 무한한 집단

 사실 한국사회에서 교사만큼 사회적 위치가 급변한 집단도 찾기 힘들다. 시골 마을에 교사가 발령나면 지역 유지가 나와 맞절하며 감사와 존경을 표하던 시절에서 지금은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앞에서 선생의 욕을 대놓고 하는 시점이 왔다. 이는 민원이 중시되며 일어난 일이다. 과거 군과 관이 중시되는 독재, 권위주의 정권에서 사람들은 관과 군에 시달려 왔다. 문민정부 들어 이것을 해체하고자 군관민을 민관군으로 격을 바꾸었고, 이 때부터 관에서는 민원을 최우선시하게 되었다. 이는 현재의 학교도 마찬가지여서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학부모의 민원이다.

 민원을 우선시 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와 복지를 증진시키는 좋은 점이 있었지만 현재는 부작용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합리적이지 못한 사유나 근거없는 민원, 악의성 민원을 공공기관이나 학교에서 거부하지 못함으써 소모적 소송에 시달리거나 업무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할 정도의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예로 한 아이가 주말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격분한 학부모는 분노의 배출구로 학교의 교통지도를 문제삼았고, 학교와 교사가 아이의 교통지도를 잘 하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취지로 소송을 걸어 패소할때까지 무려 3년간 학교와 교사를 괴롭혔다. 아마 해당 학교의 교장과 담임교사는 3년간 제대로 업무와 교육을 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며 이는 필시 다른 아이들에 대한 피해로 이어졌을 것이다.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하여튼 현재 법원의 판결 경향과 사회적 시선은 사실상 학교와 교사에 아이들에 대한 무한 책임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 책임을 주로 교육이 아닌 주로 안전이나 다른 부분에서 따진다는 것이다. 어떤 학부모도 아이가 성적이 부진하거나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희안하게 이건 자기들 책임이라고 제대로 생각한다. 오히려 학교에서 다치거나 폭력사건이 일어나거나 하는 일에 격분한다. 이상한 일이다.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보육시설이거나 안전보장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와 교사는 이 분야의 전문기관이 아니기에 이 부분에 취약하다. 사실 한국만큼 아이의 모든 안전과 보호에 학교에 무한책임을 묻는 곳은 없다.

 이처럼 학교와 교사에 대한 교육외적인 부분에 대한 무한 책임의 요구는 교육의 저하를 불러온다. 다소 어처구니 없게도 교육과 안전은 반비례한다. 안전과 그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요구할수록 교사와 학교는 교육활동에서 극도로 위축되며 면피성 문서 작성과 메뉴얼에 집착한다. 이는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사회와 정부는 이런 요구를 하면서도 인력 충원과 지원은 없고 업무만 주기에 결국 교육에 투입될 자원이 소모된다. 이는 공교육의 저하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일부 학부모의 태도도 상당히 문제다. 시장에도 블랙컨슈머가 있는 것처럼 학교에도 블랙학부모가 있다. 이들은 학교나 교사가 민원의 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감정배출구나 하수구로 이용한다. 갖은 트집으로 악의성 민원을 걸고, 담임교체를 요구한다. 문제는 교육기관이 이를 합리적으로 대응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학교는 대표성이 전혀 없는 이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흔들리느라 에너지를 소모하고 이 역시 다른 학생들에 대한 피해로 이어진다. 학교의 관리자 역시 보신주의로 어처구니 없는 학부모의 민원에 담임교사를 사과시키거나 오히려 학부모의 편을 들어 문제를 진화시키려 한다. 당연히 이런 학교와 교장 교감의 태도는 블랙학부모의 강화제로 작용한다. 남을 괴롭힐 수 있는 권력의 맛을 보게 되는 것이다.

 

개선 방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교사가 우선 정신을 차릴 것을 종용한다.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교육법을 알고, 전문성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집단이기에 교사는 이 부분에 취약하다. 그리고 교사들로 하여금 집단적으로 교육정책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다른 어떤 분야와도 다르게 교육계의 최상위에는 교사가 없다. 경찰청의 최상위에도, 소방재청의 최상위에도 경찰과 소방관이 있음에도 말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교육계의 최상위에는 행정관료와 교수들이 있다. 마치 경찰청의 최상위에 다른 일반 행정직과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있는 격이다. 이렇다 보니 교육부와 상급기관에서 양산하는 정책이 현장과 동떨어져 교육성이 떨어지고 무리한 요구가 된다. 지난 수십년간 하향식 교육정책은 수백조의 예산을 써오고도 어느 것 하나 성공한 바 없다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그리고 교사 집단의 세분화도 요구한다. 이미 한국은 인구와 감소화로 과밀학급이니 콩나물 교실은 옛말이 되었다. 인구감소로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OECD대비 교사 1인당 학생수가 선진권으로 접어든 것이다. 이는 갈수로 심화 될 것이 뻔하다. 때문에 교사의 증원없이도 교사들의 세분화가 가능하다. 모두 수업하는 교사에서 생활전문교사, 수업교사, 교무기획으로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로 세분화 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외국에서는 교사는 수업만 하며 생활지도는 관리자나 전문상당교사나 경찰관이, 안전은 다른 기관에서 책임져준다. 이 같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향후 잉여가 생길 교사집단을 세분화 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수업보다는 행정업무를, 그리고 아이들을 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교사가 있기에 이 같은 분업화는 생각보다 성공적일 수 도 있다.

 학부모의 변화도 요구된다. 학교와 교사를 자신의 감정 배출구이자 하수구로 이용하는 것을 멈추고 교육3주체의 하나로서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건이 벌어지면 가해자의 학부모는 처벌에 불만을 느끼고 소송을 걸기만 할 뿐 가장 책무자임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교사 집단에 대한 비판서처럼 여겨졌지만 실상은 대변서나 발전서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물론 비판도 강하게 하는 면이 있다. 이것은 저자가 지금 학교교육의 실패와 원인을 결국은 교사보다는 그들이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와 정부에서 찾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학부모나 교사, 일반 시민이라도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추천한다.

 

공교육, 교사불신, 홍섭근, 혁신학교,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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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미래 - 디지털 시대,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관한 모든 것
존 카우치.제이슨 타운 지음, 김영선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빨간 머리 앤을 보면 길버트와 앤이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배경이지만 주목할 것은 학교다. 각자 칠판이 있고 선생님은 전체강의보다는 학생 각자를 가르친다. 지금보다 훨씬 오래전이지만 지금은 이상적으로 여기는 개별화 교육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학교는 원래 이랬다고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무르익으며 과학적 관리론으로 유명한 타일러가 나온다. 그는 숙련공이 많은 권한을 누리고 게으름을 피며 자본가와 맞먹는게 보기 싫었다. 그래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업무 단계를 쪼개어 철저한 분업이론을 제시한다. 그리고 단위시간내에 생산성으로 노동자를 평가하고 급여를 주기 시작했다.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만들던 요리장인이 더이상 필요없어지만 요리에 요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햄버거를 만들게 된 것.

 이 과학적 관리론은 교육에도 영향을 미쳐 저임금의 분업이 가능한 노동자를 요구했고, 이에 학교는 평균을 상정하고 전체를 강의하는 형태로 변환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제목이 공부의 미래임에도 현재에도 교육에서 오래된 개념인 개별화를 강조한다. 더불어 맥락있는 학습과정에의 능동적 참여와 사회적 실천, 그리고 미래기술과 공부가 결합되어야 함이 이 책의 주장이다.

 학습은 사실찾기와 암기. 이해로 이루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모두 중요한데, 최근 기술발달로 사실찾기와 암기는 과거에 비해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남은 건 이해인데 이해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요 실제 맥락에서 이를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학습은 사실 자체를 아는게 아니라 그 사실을 어떻게 활용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 지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학습을 위해 적절한 공간을 강조한다. 먼저 쏜다이크의 공간 개념을 갖고 온다. 쏜다이크는 3가지 공간을 제시했는데 모닥불 공간, 물웅덩이 공간, 동굴형 공간이다. 모닥불 공간은 전체학습의 형태로 모닥불을 피우고 족장이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과 비슷한 공간이다. 일제식 책상배열보다는 원형이 좀더 낫다고 주장한다. 물웅덩이 공간은 협력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학교교육에서 가장 약한 공간으로 교실이든 도서관이든 학교 어느 공간이든 협력이 일어날만한 공간배치는 극히 적다. 동굴형 공간은 혼자시간을 보내며 조사검토 및 생각계획을 하고 학습한 것을 되새기는 곳이다. 저자가 제시한 4번째 공간은 산꼭대기 학습형 공간이다. 배운 것을 실제로 해보는 공간으로 실제 배운 것을 이해하고 활용하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목표를 향하기에 산꼭대기형이다.

 공간 다음은 학습형태인 도전기반 학습을 제시한다. 도전기반 학습은 학생들과 관련성이 있으면서도 학생의 동기를 유발하는 수단으로써 개인 및 집단으로 하여금 도전을 제기하도록 하는 탐구기반 학습이다. 교육계에서 유명한 프로젝트 학습과 매우 비슷하지만 몇가지 차이가 있다. 바로 사회적 실행이 이루어진 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도전인 셈인데 기술을 강조해서 학습자가 단순한 콘텐츠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나 창작자가 되도록 하는게 목표다.

 마지막으로 이런 적절한 공간과 학습형태가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것이 중요한다. 그래서 제안한게 21세기 형 ABC 다. A는 acess 접근으로 뛰어난 교사와 훌륭한 학교, 혁신적인 기술에 학생이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B는 build로 학습한 내용이나 사회적 실천을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메이커 공방이나 메이커 운동 자체가 이 것이다. 마지막 C는 코딩으로 코딩교육을 말한다. 코딩 교육은 미래 인공지능과 로봇때문에 그 자체로 중요하기도 하지만 논리성과 합리성, 비판적 사고를 말하는 컴퓨팅 사고를 갖출 수 있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모두가 수학자가 되기 위해 수학을 배우는 것이 아닌것처럼 말이다.

 책은 미래 교육을 강조하지만 그 바탕의 원리는 과거 오래전 존 듀이를 비롯한 진보적 교육학자들이 말하는 논지를 따라가는 느낌이다. 물론 현대는 기술의 시대이기에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교육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저자 자체도 뛰어난 교사를 넘어서는 교육기술은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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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7-16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육에서 선생님의 중요성은 여전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

닷슈 2019-07-16 22:16   좋아요 1 | URL
적극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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