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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평점 :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쳐야 미친다는 제목 자체가 무척 강렬하다. 20여년 전, 책이 세상에 나왔을때 무척이나 이끼를 얻은 것도 제목의 강렬함 때문이다. 오래된 책장속에서 잠들어 있던 책을 꺼내들었다. 그때는 미처 읽지 못한 책을 읽으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책은 총 3장으로 되어 있다. 1장 '벽에 들린 사람들'이 바로 불광불급(不狂不及)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만나보자.
1장에는 가슴 시리도록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굶어 죽은 천재 천문학자 김영, 책읽는 바보 간서치 이덕무, 탁월한 실력을 갖추었으나 서얼의 한계에 신음한 박제가, 답안지 대필가로 살다가 유배간 노긍 등등. 하나같이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실력자들이다. 신분과 세도가의 장벽 속에 능력을 펴지 못한 이들을 위한 한편의 추모곡과 같은 글이 1장에 모여 있다.
이들 중에서도 나의 가슴에 깊이 박히어 떠나지 않는 두인물이 있다. 바로 굶어 죽은 천재 천문학자 김영과, 책읽는 바보 간서치 이덕무이다.
김영은 독학으로 최고의 천문학자가 되었다.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과거를 보지 않고 역관(曆官)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세는 시기 질투의 대상이었다. 정조가 죽자 그는 관직에서 쫓겨났다. 그들이 그를 관직에서 쫓아낼 수는 있어도 그의 능력을 쫓아낼 수는 없었다. 천문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때는 그에게 해결을 부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시기 질투가 시작된다. 면전에서 욕하고 주먹질도 했다.
김영의 안타까움을 읽으며, 초등학교 시절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선생님께 칭찬을 받으면 또래들은 나를 괴롭혔다. 아침일찍 학교에가서 문제집을 풀어도 답보고 풀이를 한다고 시비를 걸었다. 문제를 풀고 답을 맞춰보는 것은 누구나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책을 좋아해서 남보다 아는 것이 많고 수업시간에 정답을 맞춰 칭찬을 받아도 또래들은 시비를 걸었다. 주먹질까지 당하고 욕질을 당한 김영의 모습은 너무도 낯설지 않다. 김영을 질투했던 무뢰배들과 나를 질투했던 또래들도 낯설지 않다.
간서치라는 말은 책만읽는 멍청이라는 뜻이다. 팟캐스트 '직장인의 책읽기'에 손님으로 등장하는 간서치님이 자신의 필명을 '간서치'라했는지를 이제야 알았다. 간서치는 이덕무의 별명이다. 가난 때문에 누이와 어머리를 폐병으로 저세상으로 보냈다. 추운 겨울 책으로 우풍을 막고, 이불위에 책을 펼쳐 놓아 한기를 막았다. 동상으로 손이 퉁퉁 부우면서도 책을 읽는 책바보였다. 그가 정조를 만났기에 서른 아홉이 되어서야 규장각 검서관이 될 수 있었다. 서얼이라 능력이 있어도 출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만 읽은 간서치는 정조라는 성군을 만나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가난과 투쟁하며 책을 읽은 그의 삶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이덕무의 모습에서 진정한 독서가의 모습을 보았다.
김영은 정조를 떠나보내고 능력을 펼칠 수 없었으며, 이덕무는 정조를 만났기에 능력을 쳘필 수 있었다.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천리마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천리마는 보통말 속에서 늙어 간다고 말한 한유말이 생각난다. 탁월한 안목을 가진 리더 정조가 없었다면 이들은 보통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며 한세상을 살았을 것이다.
2장과 3장은 조선시대 유명한 문필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정약용이 수종사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이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경기도에서 근무할 때 자주 갔던 수종사에 내가 좋아하는 정약용의 발자취가 숨어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다. 150여년의 시간을 두고 수종사에 나와 정약용이 발자취를 남겼다. 그와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이들을 추억하며 책을 내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