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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1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83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2006년 12월
평점 :
일시품절
한나 아렌트를 처음 소개한 사람은 철학자 강신주이다. 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아렌트의 철학을 들려주었을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담'을 읽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나의 인생책이 되었다. 생각하고 항상 주인으로 살아야한다는 진리를 깨닫게해준 책이다. 그리고 그녀의 대표작을 읽고 싶었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아렌트 철학의 바탕이 되는 책이다. 더욱이 '전체주의'는 역사를 전공한 나에게 친근한 주제가 아니던가! 쉽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었던 것 처럼 이 책도 쉽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다. '전체주의의 기원' 1권을 간신히 읽었다.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는 것은 그녀의 깊은 사유를 흡수하는 고된 작업이다. 아렌트의 탁월한 통찰력에 감탄하면서도 그녀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사실에 한숨을 쉬기도 했다.
'전체주의의 기원' 1권을 읽는 것이 어려운 또다른 이유는 불친절한 번역 때문이다.
"이 새로운 경향이 반유대주의에서 직접 탄생한 곳은 독일 밖에 없다."-137쪽
이 문장은 비문이다. 무엇을 말하려고 이렇게 번역했는지 알 수 없다. '반유대주주의라는 새로운 경향이 직접 탄생한 곳은 독일 밖에 없다.'라고 의역해야하지 않을까? 번역자가 독자를 배려하는 사람이라면 직역보다는 적절한 의역을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번역자는 독자에 대해서 친절한 해설을 제대로 해주지도 않았다. 430쪽에 등장하는 "독일의 슈퇴커운동"이라는 단어는 인터넷을 찾아봐도 정보가 없다. 이러한 어려운 단어를 친절히 독자를 위해서 친절히 해설을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번역자가 단어의 뜻을 모른다면 전공자에게 문의하여 해설을 달아주는 친전함을 보여주었어야했다. 제발 2권에서는 친절한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전체주의의 기원' 1권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과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유시민 작가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서 드레퓌스 사건을 알았다.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지식은 한동안 그 시절 읽었던 내용을 벗어나지 않았다. 드레퓌스에 대한 정보나 그 시절 유대인들의 동향에 대한 서술이 없었기에 이에 대해서는 나의 상상으로 메꾸었다. 그런데, 드레퓌스 가족은 반유대주의를 채택함으로써 프랑스 사회에 동화하려 했던 부류에 해당하며, 당시 프랑스의 로스차일드가로 대표되는 유대인들은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가 떠들썩하던 그시기에 단결하지도 연대하지도,못했으며,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프랑스 사회에 동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단결을 잘하며 4차에 걸친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유대인의 단결 때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러한 단결력을 보인것은 근현대 시기에 반유대주의에 의해서 단련되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거꾸로 생각하자면 그들이 단결하지 못했기에 나라가 멸망하고서 2천년 동안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드레퓌스가 사면을 받아들이고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현재의 선이견을 가지고 과거를 유추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실감했다.
드레퓌스 사건이 프랑스와 유대인에게 의미없는 사건은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반유대주의가 프랑스에서 결코 대량학살로 끝나지 않은 것은 '시인이나 소설가의 예리하고 열정적인 힘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양심있는 지식인이 반유대주의에 대응했기에 프랑스는 유대인과 인류에게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용기있게 자신의 소신을 말하고, 불의에 대응하는 지식인이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러한 지식인이 되려 노력하고 있는지 반문해 본다.
둘째, 유대인에 대한 음모론은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류이 페르디낭 셀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843년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전쟁의 원인이었으며,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상호 적대감을 선동함으로써 양국의 파멸을 기도했다고 주장했다."
'화폐전쟁'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 책의 내용은 금본위제도를 무너뜨리고 미국 경제를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활동하고 있고 그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유대인이 세계의 금융과 경제를 주무르며 정부를 뒤에서 움직이는 그림자정부라는 주장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책의 오류를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화폐전쟁'이라는 책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런데, '화폐전쟁'에 나오는 음모론이 일찍이 몇백년 전에도 있었던 음모론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유대인에 얽힌 음모론은 사라지지 않고 아직까지 많은 사람의 입을 오르내리고 있는 것일까? 과거에는 금융을 지배하는 유대인에 대한 부러움과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유대인의 힘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금융과 언론, 예술계를 장악한 것이 유대인이다. 유대인의 로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의 대 중동 정책의 핵심은 친이스라엘 정책이다. 그러니, 초강대국 미국을 움직이는 유대인의 힘이 얼마나 두렵겠는가!
셋째, 우리 사회를 반추해보았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 1 곳곳에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하였다.
"신으로 하여금 단 하나의 민족, 즉 자신의 민족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종교의 왜곡이 종족 민족주의이기 때문이다."-450쪽
한나 아렌트는 유대교의 종족 민족주의를 직시하고 있다. 종족 민족주의는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에서도 나타난다. 자신의 민족을 선택받은 민족으로, 우월한 민족으로 보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상력과 희망이 만들어낸 신기루일 뿐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호모사피엔스의 후손이다. 신이 호모 사피엔스 중에서 특정 부류만 특별히 이뻐할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주장이다. 마찬가지이다. '환단고기'를 비롯한 각종 위서에서 우리민족을 대단한 민족으로 서술하고 있다. 위서는 있을 수 있으나, 그 위서를 맹신한다면 우리는 독일의 나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테러를 안전하게 자행할 수 있으려면 이데올로기는 반드시 다수를, 심지어 대다수를 지지자로 확보해야만한다."-89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지위를 잃은 모든 계급은 결국 자신의 폭민조직을 통합하고 확립한다."-214쪽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법꾸라지들이 있다. 그리고 그 법꾸라지가 권력을 잡고 수호하기 위해서 언론을 활용해서 사실을 호도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조국교수 가족에게는 매섭게 조그만 티끌도 침소봉대하더니, 법꾸라지들의 죄에 대해서는 눈감아버린다. 그리고 이들의 호위부대가 있다. 태극기를 들고 저돌적으로 상대방에게 폭언을 알삼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나이어 사회적 지위를 잃은 노인들을 통합하여 자신의 전위부대로 만들었다.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 1 에서 묘사하고 있는 유럽의 상황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는 매력적인 정치철학자이다. 그녀의 통찰력에 감탄을 하며 그녀를 알고자 그녀의 저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그녀와 데이트하기에는 그녀에 대한 이해가 너무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체주의의 기원 2'는 이번 겨울 방학때 읽어야겠다. 그 전에, 한나 아렌트의 정치 철학에 대한 대중서적들을 읽으며 그녀의 사상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아야겠다. 이번 겨울에는 '전체주의의 기원 2'를 읽으며 그녀와 멋진 데이트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