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 마젤란펭귄과 철부지 교사의 우연한 동거
톰 미첼 지음,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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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후안 살바도르는 펭귄이다. 암율하고 불안한 시절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매료시킨 펭귄이다. 테러 조직이 미쳐 날뛰고 여기저기서 폭력적인 시위가 일어나는 가운데 금방이라도 무정부 상태로 치달을 듯 위태로웠던 친 페론 정권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 펭귄이다. 당시의 자유, 기회, 사상 등의 개념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젊은 여행지였던 나와 죽음의 바다에서 우여곡절 끝에 구조된 씩씩한 펭귄 후안 살바도르는 더없이 행복한 우정을 나눴다. - '프롤로그' 중에서

 

 

반려동물과 우정을 나누다

 

저자 톰 미첼은 교사이자 화가다. 영국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악어 세 마리를 키웠을 정도로 시골인 마을에서 자랐다. 그 덕분에 동물과 새, 식물에 대한 애정이 깊다. 어릴 때부터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척들이 보내준 편지를 보며 먼 나라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다는 이유로 20대 초반에 아르헨티나에서 기숙학교 교사로 생활한 바 있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 당시 혼란과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암울하고 불안한 시절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웃음과 위안을 선사한 펭귄이 있었다. 이 책은 영국인 청년의 집 테라스에 살게 된 펭귄과의 특별한 우정이 담긴 실화다. 하얀 넥타이에 검은색 연미복, 새까맣고 반짝이는 눈동자, 실룩거리는 두툼한 엉덩이, 뒤뚱뒤뚱 걷는 짧은 다리, 호기심 어린 얼굴을 가진 '후안'은 키가 어른 무릎 높이만한 마젤란펭귄이다.

 

톰의 집 테라스에 사는 후안은 학교 제일의 스타다. 녹조 낀 수영장에서 함께 수영하고 아이들과 계단 빨리 내려가기 시합을 하거나, 럭비팀의 마스코트가 되어 응원도 하면서 아이들은 후안의 열렬한 팬이 된다. 학교 선생님들의 귀여운 술친구가 되고, 세탁실 아주머니의 든든한 지원자도 되어준다. 또한 근심에 쌓인 사람에게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뛰어난 고민상담가다. 학교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한 소년의 수영 코치가 되어 그의 삶에 큰 변화를 선사하기도 한다.

 

 

 

 

펭귄을 구하다

 

눈에 충격적이고 비통한 광경이 들어왔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움직임이 없는 검은색 물체였다. 처음엔 얼마 되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마치 검은 색 카펫을 깔아놓은 듯 까만 사체들이 해변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검은 기름을 뒤집어쓴 펭귄들이 해안을 따라 끝도 없이 길게 누워 있었다.

 

문명이라는 얼굴은 이같은 민낯을 드러낸다. 정말 무섭고, 잔인하고, 끔찍한 모습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이런 일들을 자행할지 암담하기만 하다. 소위 '죽음의 띠'로 불리는 기름 유출 사고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다. 그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죽어나가는 개체만 달라질 뿐이다.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로 한국에서도 얼마나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기름 띠를 벗겨내려고 노력했던가.

 

스물세 살의 영국 청년 톰은 우루과이 해안의 휴양도시 푼타델에스테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이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그는 죽은 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가 영 거북스러워 일부러 걸음을 재촉하다가 시야 한편에서 언뜻 미약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에 그는 걸음을 멈추고 움직임이 느껴지는 곳을 주시했다. 착각이 아니었다. 대견하게도 펭귄 한 마리가 살아 있었다. 온통 죽음뿐인 그곳에서 유일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단 하나의 생명이었다.

 

온 몸에 타르를 뒤집어쓴 채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몸을 깨긋하게 씻어준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위협을 느끼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펭귄에게 그물을 던져 포획한 다음 그는 자신의 숙소로 데리고 갔다. 지난 40년 동안 펭귄의 개체 수가 80퍼센트 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심각할 정도의 감소 이유는 환경오염과 무분별한 포획 때문이다. 결국 그 주범은 우리 인간들이다.

 

처음엔 완강하게 거부하던 몸짓이 얌전해졌다. 자신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몸에 묻은 기름을 제거해주려는 것임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는 목욕통 물을 비우고 다시 따뜻한 물을 채웠다. 세제를 부어도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 덕분에 온몸 구석구석을 씻길 수 있었다. 이젠 목욕통에서 똑바로 일어서서 목욕에 적극 협조했다. 한 시간 정도 씻기고 나니 펭귄의 형체가 드러났다.

 

그는 아르헨티나에 신입교사로 일을 해야 하기에 휴양지를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야만 했다. 문제는 펭귄의 처리였다. 아파트에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고 생각 끝에 다시 바다에 풀어주기로 했다. 이게 펭귄에게도 자유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펭귄 또한 동족과 함께 있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사용한 욕실 용품을 채우기 위해 욕조에 펭귄을 둔 채 그는 장을 보러 갔다. 돌아와보니 욕조에 있던 펭귄이 폴짝폴짝 뛰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펭귄의 작은 두 눈이 반짝였다. "어디 갔다 이제 와! 한참 기다렸잖아. 도대체 날 여기에 두고 어디서 뭘 하다 온 거야?"라는 눈치였다. 마치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녀석은 그를 반기고 있었다.

젖은 모래 위에 펭귄을 놓아주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신나게 바다로 풍덩 뛰어드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웬걸 펭귄은 곧장 그에게로 달려오는 게 아닌가. 이번엔 바위 위에 올려두고는 살펴보았다. 잠시 후 파도가 밀려왔고 녀석이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눈 앞에 버둥거리는 녀석이 보였다. 이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결국 펭귄은 그에게 돌아오고 말았다.  이젠 하는 수 없이 아르헨티나로 데려갈 수밖에 없다.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톰은 커다란 가방 속에 펭귄을 넣고 종이봉투로 머리를 가린 채 몬테비데오행 버스에 오른다. 도중에 펭귄의 배설물 냄새 때문에 버스에서 황급히 내리고, 가방 속 존재를 눈치 챈 구두닦이 소년에게 팁을 두둑이 줘야 했다. 배를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도착했더니 세관을 통과해야 하는 엄청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국경을 넘어 학교로 돌아온 톰이 자기 방 테라스에 펭귄의 방을 만들어주면서 유쾌한 동거 생활이 시작된다.

 

이 책은 실화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톰의 테라스에 사는 펭귄 '후안'은 학교에서 제일 가는 스타가 된다. 럭비팀의 마스코트가 되어 응원도 하고, 아이들과 녹조 낀 수영장에서 함께 수영을 하며 학교에서 소외되었던 한 소년의 수영 코치가 되어 그의 삶에 큰 변화를 선물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계단 빨리 내려가기 시합도 하면서 아이들을 자신의 열렬한 팬으로 만든다.

 

또 세탁실 아주머니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고, 학교 선생님들의 귀여운 술친구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근심에 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줌으로써 '고민상담가'로서의 뛰어난 면목을 보이기도 한다. 개그 같은 얘기지만 아무튼 후안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당연히 펭귄과 인간 사이에 대화란 없다. 오직 느낌과 몸짓으로 나누는 바디랭귀지 뿐이다. 그럼에도 펭귄 후안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한다는 게 일견 감동적인 이야기이면서 한편으론 그만큼 우리들이 상호 간의 대화가 부족하고 정을 나누지 못하고 있는 슬픈 자화상으로 비춰진다. 사람 대신 애완견을 선택한 우리들에게 뭔지 모를 화두를 던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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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용기 -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청춘 사용법
혼자 걷는 고양이 지음, 김미경 옮김 / 다온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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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주 평범한 대학에서 지극히 평범한 분야를 전공했습니다. 평범한 대학에 갔으니까 당녀히 평범하기 짝이 어없는 인생을 살거하고 생각했죠. 그러다 책 한 권을 보게 되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환경에서 쉬지 않고 노력해서 눈부신 인생을 살게 되는 내용이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대학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인생을 좌우하는 건 그 사람의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그때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어요. 그렇게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죠.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어떤 내일을 원하는가?

 

책은 평범했던 저자가 거둔 비범한 성장의 기록이자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청춘들의 고민에 대한 답장이다. 자신의 경험뿐만 아니라, 수많은 청춘들이 고백한 고민을 책을 통해 공유하도록 해준다. 즉 입시를 망쳐서 희망이 없다는 학생부터, 번번이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취준생, 반복되는 업무에 지쳐 꿈마저 잃은 직장인, 꿈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할 만큼 넉넉하지 않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현실적인 충고를 한다.

 

책의 저자 자오싱趙星은 현재 오길비(Ogilvy) PR에서 근무 중이다. '혼자 걷는 고양이'라는 블로거로 활동하며 올린 직장 생활과 성찰을 담은 청춘 일기가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으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중국의 차세대 오피니언 리더로 주목받으며, 시나닷컴에서 진로상담 전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옳은가(?)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옳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뭘까? 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저자도 "일이 아니라, 취미가 내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일은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마음이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취미를 본업으로 삼는다면 정말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왜 계속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집착할까? 도피하고 싶어서다.

 

우리는 늘 하는 일이 즐겁지 않고, 원치 않는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의 소리를 따르자"라는 말로 자신을 격려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현실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환상에 빠지고 원망을 쏟아낸다. 사실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는 마음의 소리란, 가만히 앉아서 공짜로 얻는 떡을 말한다. 세계일주를 할 정도로 돈이 많기를 바라지만, 욕먹어 가며 돈을 버는 건 자신이 바라는 삶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현실에서 도피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라는 환상을 품는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둔다 어쩐다, 힘들다고 몸부림치면서 지금 사는 세상은 본인이 바라던 세상이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그렇게 몇 번 난리를 치고 나면, 인생이 더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밖에는 달라질 게 없다.

 

 

"당신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환경을 탓하는 시간도 아깝다

 

현재 자신이 처한 환경이 진흙탕 같아서 벗어나고 싶다는 고민을 토로하는 편지를 저자는 많이 받는 편이다. 또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학교에 합격해서 부모님께 죄송하다거나, 월급은 적은데 일이 너무 고달파 그만두고 싶다면서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하면 탈피할 수 있는지 알려달라는 식이다.  

진흙탕 같은 환경은 뭘까? 동료의 아이큐가 떨어지고 사회적 지위가 낮기 때문에? 학교 건물이 별로고 선생님 수준이 롤 모델로 삼을 만큼 높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진흙탕이라고 말하는 건가? 도대체 어떤 환경에 데려다 놓아야 자기 미래에 자신감을 가질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남을 원망할 때 마찬가지로 우리도 누군가에겐 원망의 대상일 수 있다. 지금 환경이 별로고 주변 사람들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불평할 때, 우리도 남들 눈에 수준 낮은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정말로 역경에 부딪혔거나 진심으로 흙탕물 같은 환경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여기저기 묻고 징징거릴 여유조차 없다. "할 일이 없어서 원망이나 하고 있는 거야. 할 일이 있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겠어"라고 대꾸해주고 싶다. 이 말은 저자의 친구가 한 말이다. 항상 이를 기억해 두고 저자도 원망이 생길라치면 바로 이 말을 스스로에게 한다.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만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좋아질 수 있다"

 

 

너무 많이 바라는 게 아닐까(?)

 

삶은 전부 주지 않는다. 특히 당신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대학에서 막 졸업한 친구들이 바빠 죽겠다고 푸념할 때가 있다. 사람도 만나고, 놀러도 다니고, 푹 쉬고, 잠도 많이 자고, 잘 먹어서 피부도 윤기나게 가꾸고 싶다. 또, 일을 잘해서 돈도 많이 벌고 실력도 키우고 싶다. 그렇게 다 하려니 시간이 너무 부족한데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균형을 이룰래야 이룰 수가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닌가? 미친 듯이 노력해야 남들 눈에 여유 있어 보인다. 그리고 세상엔 공짜도 없고 헛된 고생도 없다. 진짜 소중한 일에 더 마음을 쓰고 더 꾸준히 하라. 어떤 노력을 했고 얼마나 꾸준히 했는지는 바로 눈에 보이는 법이다.

 

신은 공평하다. 얻은 게 있다면 다른 걸 조금 손해봐도 무방하다. 하나를 얻으면 곧 큰 시련이 닥칠 거다. 로또 복권에 1등 당첨된 사람이 아내와 이혼하고 결국엔 모든 재산 다 날리고 길거리 노숙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있듯이 말이다. 신이 무엇을 주셨는지 따지지 말고 자신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먼저 생각하라. 만약에 서른 살 전에 전부 얻었다면, 앞으로 좋은 일이 별로 없겠거니 생각해라.

 

 

어디든, 어떤 상황이든, 나다운 내가 최고라고 믿어라. 넘지 못할 산도, 극복하지 못 할 어려움도 없다. 어려움을 딛고 돌아보면 깨닫게 될 거다. 그 모두가 그저 지나가는 바람과 같았음을.

 

 

내가 잠든 사이, 누군가는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하나만 꾸준히 할 수 있느냐고, 어떻게 하면 환골탈태할 수 있느냐고, 어떻게 하면 인생의 새로운 장을 펼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어떤 일을 정말 하고 싶다면 이런 질문도 하지 마라. 질문자는 그냥 누워서, 자면서, 간식을 먹을면서, 드라마를 보면서 힘 하나 안 들이고 멋진 인생을 살 방법이 알고 싶은 거 아닌가?

 

"내가 잠든 사이, 누군가는 노력하고 있다"

 

군 입대하기 전, 대학 1학년 1학기 때 곧 입대를 앞 둔 나는 청춘과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동기들과 자주 어울리며 실컷 놀았다. 놀이에 심취하다 보니 중간고사 일정이 잡힌 줄도 몰랐다. 당시 나는 수유리 시장 인근에서 친한 동기와 하숙방을 같이 사용했지만, 사실 초급행원의 부당한 처우에 불만을 갖고 대학입시를 준비해 늦게 입학했기에 동기들에 비해 나이 많은 1학년이었다.

 

당시 상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교정책이 바뀌면서 상고는 인문계 학교와는 교과목이 영 딴판이었다. 즉 주판, 상업부기, 상업영어, 상품학 등 배우는 과목들이 대학입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루는 하숙방 동기가 크게 코를 골며 자는 통에 잠이 깨어 일어난 나는 '어떻게 공부해서 입학한 대학인데 놀기만 할 것인가?'란 생각이 미치자 정신이 번쩍들었다. 그때부터 중간고사 준비를 했다. 낮엔 동기들과 어율려 놀더라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공부를 계속했다. 결국 성적 장학생이 되었다. 나중에 하숙방 동기가 새벽에 일어나 공부한 사실을 알고 나를 '독종'이라고 불렀다.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

 

젊은이들은 다분히 충동적이다. 충동은 분노로 변하고 분노로 인해 침착함을 잃는다. 최근 몇 년간 물가는 올랐지만 월급은 늘 제자리다. 게다가 업무 스트레스는 커지고, 슬프고 분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냥 있다가는 사고를 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퇴사를 결심하고 과감하게 사직서를 제출한다.

 

"이제 이 몸은 그만 물러가겠다고 전해라"

 

이 순간만큼은 패기 넘치는 모습과 영웅적인 자태 때문에 부러움의 시선이 막 날라온다. 하지만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잠간은 늘어지게 쉴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요즈음 같은 불경기에 다른 직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최근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연말 상여금 때문에 사장과 트러블이 생겼는데 이게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않자 블만이 점점 커져서 1월말에 사직서를 던졌다. 평소 작은 회사라 과중한 업무에다 낮은 처우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던터라 언젠가는 그만 둘 것이란 생각은 늘 있었다. 그런데, 설연휴 때 식사를 함께하며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아무런 대책 없이 사직을 결행했다는 거다. 가족의 안정된 생활을 염두에 둔다면 이는 용기가 아니라 사실 만용이었다.

 

이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해선 안 된다. 나중에 뭘 한 건지 충분히 고민한 끝에 그만둬야 한다. 대부분 당장의 무거운 짐과 우울함을 견디지 못해 허둥지둥 퇴사하고 만다. 하지만 행복은 짤다. 반면에 공황 상태는 길다. 왜냐하면 나갈 돈은 계속 생기는데, 들어오는 수입이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다른 직장이나 생업을 정한 다음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

 

 

꿈은 고독이라는 시험을 치뤄야 한다

 

우리들이 가는 길에 대해 만인의 동의를 받기는 어렵다. 어떻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지지를 해주겠는가 말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우리의 그런 길을 심하게 몰아붙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냉혹한 현실이 두렵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앞서 나가려고 삼삼오오 뭉치려고 한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이렇게 타인의 지지와 격려를 받아야만 용기가 난다면 절대로 멀리 갈 수가 없다.

 

길은 전부 미래로 통한다. 여기서 어디까지 가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어려움을 하나씩 극복하고 나중에 돌아보면, 그 당시 세찬 비바람처럼 느껴졌던 문제가 그저 가랑비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그 가랑비를 맞으면 우리들의 내면은 더욱 강건해진다. 자신의 주변 반응이나 타인의 시선에 맞추려고 전전긍긍한다면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무조건 믿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가족과 친구들이 옆에서 힘껏 박수쳐야지만 꿈을 이룰 수 있다면, 그건 꿈이 아니라 허영심을 위해 쇼를 하는 것이다.

 

 

10년 뒤, 나의 모습은(?)

 

우리는 시간과 함께 성장한다. 천방지축이었던 젊은이가 어느 날 차, 집, 돈, 부인이나 남편, 자식이 있는 사회인이 된다. 인생의 모습이나 행동에 옳고 그름이 없다. 모두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어떤 것이 자기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어디에 살고, 어디에 다녀서가 아니라 아울러 똑같은 날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해 어떤 꿈과 희망을 갖고서 얼마나 많은 땀을 쏟느냐에 따라 우리의 일상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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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방관의 기도
오영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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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방관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떨어지는 출동 지령,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들, 흩어지는 생명들 가운데 구해낼 수 있었 던 그 작고 어린아이. 소방관이 아니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순간들을 나는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참혹한 현실 속에서 또 한 기적과도 같은 희망을 발견해내기에 삶의 아름다움을 누구 보다 절실하게 실감하는 일이다. 오직 타인의 손을 잡아주기 위 한 일을 사명으로 삼는 삶. 그리고 소방관들은, 수많은 현장의 크고 작은 위험에 스스로 뛰어드는 날들 속에서 그 자신마저 불살라지는 희생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먼저 간 선배들의 영웅적인 희생에 존경을 표한다

 

살려내지 못한 이는 누구였던가, 1분 1초만 더 빨랐더라면. 실 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간절히 기도했고, 너무도 자주 반복되는 좌절과 절망 속에 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모든 순간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가슴속 깊은 상흔으로 남았지만, 위험에 처한 누군가의 손을 잡고 구해낼 수 있던 어느 날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사명에 최선을 다했기에 또 한 번의 감격 적인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저자 오영환은 대한민국 소방관이다. 부산 의무소방대원을 거쳐 서울소방에 임용된 뒤 도심 119구조대원과 산악구조대원, 그리고 구급대원으로서 오직 현장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사람을 구하지 못한 날엔 좌절감에 남몰래 혼자 울었고 꽉 막힌 도로에서 구급차가 꼼짝 못할 땐 조여드는 심장에 괴로워했다. 죽을힘으로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꺼져가던 생명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뜨거운 화염 속에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내가 늘 깨어 살필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 <어느 소방관의 기도> 중에서

 

위의 시詩는 1958년 미국의 한 소방관이 현장에서 아이들을 끝끝내 구출해내지 못한 어느 날 써내려 간 것으로, 국내에서도 인기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한 유명 대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다. 또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주소서'라는 글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절망은 아직 나의 몫이 아니다

 

시내 곳곳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응급 환자들은 더러는 살고 대개는 죽었다. 죽음은 늘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었고, 그곳엔 어김없이 슬픔이 따랐지만 일일이 그 슬픔에 젖어버릴 순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의식적으로라도 익숙해져야만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낮과 밤의 시간 동안 수많은 생사의 갈림길을 향해 다가가야 하는 소방서의 구급대원으로서, 그 모든 개별적인 슬픔에 동화同化되어서는 아마도 그 어두운 중량감을 이겨낼 수 없을 터였다. 물론 주관적인 체험을 객관적인 시야로 바라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익숙해졌다고 믿던 그 어느 날에라도,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슬픔은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너질 수 없다' 

 

 

 

 

 

 

 

왜 이런 날에도 사고가(?)

 

오늘은 설날, 우리 팀은 전원 근무중이었다. 새벽 네 시가 넘은 시각, 광나루길로 출동이다. 현장은 녹다만 눈더미와 시커먼 매연이 뒤엉켜 지저분했다. 운전석에 앉은 남성의 상체는 찌그러진 차량 하부에 깔려 있었다. 창문 쪽으로 고인 피 웅덩이가 조금씩 퍼져 나간다. 차석 주임님이 깨진 유리창 틈으로 요구조자요구조자의 몸을 만져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부대장님은 지휘대장님에게 다가가 고개를 저었다. '즉사 추정'

 

깨끗한 정장 차림의 남자의 신원은 지갑 속의 신분증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86년생, 스물여섯, 저자와는 불과 두 살 차이.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거주지는 지방의 한 오피스텔로 적혀 있었다. 차량 뒷 창문 너머로 떨어져 있는 금빛 상자가 보였다. 다시 보니 보자기에 곱게 싸여 있는 나무 상자였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교대를 마치고, 퇴근길에 정종을 나눠 마셨다. 토끼 같은 딸들이 기다리는 부대장님은 먼저 일어서며 나에게 술을 한 사발 더 따라주었다. 차석 주임님은 형수님이 아들을 데리고 고향에 갔다며 쓸쓸히 말했다. 일찍 취한 나는 지난 크리스마스 저녁에도 트럭에 깔린 아저씨를 꺼내지 않았었냐며 왜 이런 날에도 사고가 일어나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선배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런 날뿐 아니라 저런 날에도, 또 다른 날에도 사고는 언제나 늘 항상, 시시때때로 나는 거라고 말했다. 

 

 

 

구조대원은 절대 포기하는 거 아니다

 

부산 해운대 수상구조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무전기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즉시 13망 열한 시 방향 2차 부표로 이동!" 즉시 제트스키를 몰고 나아갔다. 거리를 좁혀갈 때 저 멀리, 전방 십여 미터 앞 수면에서 위태로운 그림자를 발견했다. 2차 부표를 넘어선 지점에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희미한 몸부림이 보였다. 레스큐 튜브를 옆구리에 끼고 입수했다.  

 

깊은 수심 속에서 버둥거리는 저자의 손에 너무나 강력하고도 간절한 손길이 와서 닿았다. 그가 먼저 잡은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 어떤 간절한 힘이 수압을 뚫고 그의 손을 강하게 붙들고 있었다. 마주 잡은 손을 꽉 잡고 힘차게 핀을 차며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아…… 이럴 수가.

 

너무도 작은 여자아이였다. 열 살 정도나 되었을까. 동그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눈이 풀려 있었다. 소리칠 힘이나 의지는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의식조차 혼미해 보였다. 그러나 아이의 조그만 손은 진정 놀랄 정도의 강한 힘으로 나의 손을 간절히 부여잡고 있었다.

 

서둘러 레스큐 튜브를 아이의 겨드랑이 아래에 두르고 양 끝을 연결했다. 작은 몸이 행여 빠져버릴까 튜브에 달린 슬링으로 한 번 더 둘러 묶었다. 그 와중에도 파도는 쉴 새 없이 밀려들었고, 그는 숨을 깊게 한 번 들이마시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바르르 떨리는 아이의 몸이 차가웠다. 조그만 손을 다시 한 번 단단히 움켜쥐었다.


"괜찮아. 아저씨가 구해줄게"

 

 

 

희망은 숱한 절망 속에서 피어난다

 

삼각산구급대, 의료진은 동맥혈 검사를 위해 환자의 사타구니에 거대한 주삿바늘을 꽂아 넣었다. 멈췄던 심장이 처음으로 다시 뛰고 있음을 목격했다. 최후의 호흡이 꺼져가던 한 노인을, 죽음의 문턱에서 그의 가족과 이웃 그리고 그의 일상이 있는 이 세상으로 다시금 데려다 놓을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눈이 화끈거린다. 흔들리는 시야가 당황스럽다. 마스크 아래 이를 꽉 깨물어본다. 누가 볼까 서둘러 화장실로 가며 손을 펼쳐 관자놀이를 눌러야 했다. 나는 세면대에 고개를 처박고서 눈물을 틀었다. 모든 긴장이 쏟아져 내린 자리에 따뜻한 무언가가 가득히 차올랐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살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소방공무원의 인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소방공무원의 인권 실태는 참혹했다.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이 수면 장애를 앓고 있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를 앓고 있었다. 공항 장애를 얻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있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병률은 일반인보다 무려 10배나 높았다.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도 7%가량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묵묵히 일했다.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마땅히 준비되어야 할 것들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자부심 하나로 땀 흘려 일했다. 하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고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서 강조하는 것도 잠시뿐, 개선책은 너무나 더디기만 하다. 사람들도 세상도 당장 보이지 않는 것은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다.

 

소방관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떠올린다.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 손 내밀어 주는 사람. 그 든든하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내 삶도 충분히 가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 하나로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 달음질 끝에서, 절망해야 하는 순간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구급대원에게 욕설을 내뱉는 사람을 마주할 때, 소방관은 심부름 센터가 아님을 설명해야 할 때, 목숨 걸고 현장으로 나가면서도 충분한 장비와 인력을 지원받지 못할 때, 수시로 발생하는 소방관의 부상과 순직 소식이 들려올 때. 나는 생각한다. 언제쯤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지는 날이 과연 오는 걸까. 열악한 처우를 동정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소방관의 열악한 환경은 곧 국민 자신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것만 알아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우리는 늘 달린다

 

깊은 물 아래 가라앉은 어린아이의 손을 마주 잡을 수 있었던 날. 멈추었던 한 노인의 심장이 내 손끝에서 다시 뛰던 날. 걷고, 숨을 쉬고, 밥을 먹던 날.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 아래 꺼져가는 마지막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해선 안 되는 이들이 소방관 이기에 우리는 몇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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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떠나, 안도현처럼
안도현 지음 / 별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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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까지 72개국을 방문했고 앞으로 100개국을 방문하는 것이 목표다. 이 책을 통해 좋은 학벌과 유망한 미래가 있는 사람은 물론 힘들고 갑갑한 청춘에게 도전과 변화에 대한 메세지를 주고 싶다. 막막함에 갇힌 청춘에게 "당신을 불안하게 만든 세상, 시스템과 환경에 속지 않도록 눈을 크게 뜨고 깨어 있으라"는 말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 '프롤로그' 중에서

 

 

세상을 다 보고 판단하자

 

책의 저자 안도현은 시인 안도현과 동명이인同名異人이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인도에서 컴퓨터를, 한국에 돌아와서는 부동산, 교육학 등을 공부한 그는 돈 한 푼 없이 떠난 미국 유학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오른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귀국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그냥 돌아오기에는 아쉬워 50일 동안 자동차로 4만 km를 달리며 미국 48개 주를 횡단했다. 현지인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미국 경제와 비즈니스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얻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안도현 시인을 만났다는 그는 내신 꼴등으로 대학에 6번이나 떨어져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강원도 무전횡단을 하면서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72개국 320개 도시를 방문한 '지구별 개척자'가 되어 비행기만 300번을 넘게 탔고, 공무원, 대기업, 외국계 기업까지 열군데 회사를 다녔다. 경영, 컴퓨터, 중국어 등을 거쳐 교육학 박사 수료를 했고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프랑스 기업의 매장 오픈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CNN 보고에 따르면 한국은 2014년 기준으로 매일 40명씩 자살하는 나라다. 낙오되거나 소외받은 이들이 더 이상 살아갈 이유와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의 경쟁 그리고 치열한 취업 후에는 더 열렬한 경쟁이 계속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뿐이다. 저자도 이런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그는 우리들에게 "죽지 마라. 절대로"를 외친다. 노르웨이의 피요르드를 보거나, 미국 그랜드캐년에서 번지점프를 하거나, 팔라우 심해에서 만타가오리를 만져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죽지 말라고 말이다.

 

 

 

 

 

 

 

 

산에서 잠들면 쉽게 죽을 수 있어

 

대학에 4번이나 실패한 저자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처럼 세상에 쓸모없는 벌레가 되어 있었다. 매번 실패만 하는 낙오자 인생,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미안하고 창피해서 누구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네 번째 도전하던 날에는 잠을 제대로 못 자고 감기까지 걸려서 수능시험을 망쳐버렸다.

 

 

 

'나 같은 놈은 죽어버려야 해'

 

 

 

 끊임없는 열등감과 패배의식은 내 심장을 조이고, 계속되는 실패는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했다. 궤도에서 어긋나버린 기차가 되어 다시는 남들처럼 멋진 미래나 인생을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선홍색 피를 보니 세상이 하얘지고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면 으레 죽은 마누라를 부르며 울먹이던 고시원 주인아저씨가 보였다.

 

 

 

그래 죽더라도 불상한 고시원 할아버지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바깥에 나가서 죽자라는 생각이 들자 피가 가득한 세숫물을 화장실에 버리고 힘을 다해 바닥 청소를 깨긋하게 마치고 고시원 방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비목>이란 가곡을 듣는 순간, 최적의 장소는 강원도 산골, 눈 덮인 산속에서 잠들면 쉽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그길로 상봉역에서 신철원행 버스를 탔다.

 

 

 

 

 

 

Do not be afraid to learn

 

 

 

군대를 마치고 수능시험을 봤지만 또 실패했다. IMF 이후 아버지의 사업도 크게 기울어 집안에서 웃음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주립대를 향해 한 달 생활비만 달랑 들고 용감하게 난생처음 외국행 비행기를 탔다. 아칸소 주립대학 기숙사에 밤늦게 도착했다. 퀴퀴한 냄새, 알 수 없는 연기, 그리고 난잡한 낙서들.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스웨덴계 이민자 후손 댄을 만났다.  

 

 

 

"나는 영어도 못하고, 돈도 없고, 머리도 좋지 않고, 실력도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어떻게 하면 그 모든 것을 개선할 수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나는 "배우면 할 수 있지 않냐?"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럼 왜 배우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모르는 분야를 배우는 게 두려웠다"고 말했다.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Do not be afraid to learn)!"

 

 

 

그는 영어는 방법만 알면 잘할 수 있고, 돈 버는 방법은 직접 벌어보면 되고, 지능은 꾸준히 계발하면 되고, 실력 또한 늘릴 수 있다고 했다. 먼저 영어를 잘하는 방법으로 빠르게 책을 훑어보고 다시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며 핵심을 파악하는, 일명 '사진촬영독서법'을 가르쳐주었다. 일단 명사를 색칠하면서 책 한 권을 끝낸다. 그리고 반복해서 눈으로 사진 찍듯 이미지를 기억하는 연습인데 차츰 영어 독서 속도가 빨라졌다.

 

 

 

 

 

 

나바호족과 함께 춤을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은 총기, 강간, 마약이 매우 성행해 강간당하는 여성들이 많고 심지어 태어난 아이의 아버지를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북미대륙의 원주민들을 집단사육하듯 이곳으로 몰아넣고 문명에서 멀어지게 한 미국의 인디언 레저베이션은 한마디로 인권사각지대였다.

 

 

 

모든 나바호 원주민들에게는 연금이 주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공부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러다 보니 글을 읽지 못해 법과 사회시스템, 즉 운전면허와 각종 자격을 취득하지 않아 결국 범법자가 되어 연금이 정지되고 결국 생계를 위해 쉽게 범죄에 노출되는 악순환이다. 또한 독립을 요구하며 강하게 저항하는 이들은 모두 자살이나 사고 등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이 전사의 후예들은 뿔테 안경을 쓰고 금발머리의 신을 경배하며 살거나 결국 술과 마약에 찌들어 눈에 초점을 잃고 무법천지의 마을을 헤매고 있었다. 이들을 보면서 약한 민족이 어떻게 강자에게 지배당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지를 알게 됐다.

 

 

 

 

 

 

지갑을 도난당해도 당황하지 말 것

 

 

 

리시케시에서 강고트리로 이동했다. 갠지스 강의 원류인 신성한 곳에서 많은 인도인들이 회색빛 강물을 마시며 종교의식을 드리고 있는 게 보였다. 강고트리 빙하로 향할 때 엄청난 폭우로 길이 단절되어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다. 계곡물은 삽시간에 불어나고 산사태로 인해 그는 고립되고 말았다.

 

 

 

방수커버 없는 배낭은 완전군장 이상으로 무거워져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그는 비에 젖은 옷, 짐, 신발 등을 모조리 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며칠을 계속 하산해야만 했다. 피곤에 지쳐서 걷다 보니 어디에서 지갑이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추위에다 감기까지 정신이 혼미해짐에 따라 그는 신의 뜻에 몸을 맡겼다.

 

 

 

'어차피 죽으려 했던 목숨, 될 대로 되라'

 

 

 

우연히 만난 이스라엘 여행자와 동행하며 신세를 지고, 하르드와르에 도착해선 배낭여행을 온 일본인 관광객과 친해져 함께 이동했다. 길에서 모르는 인도인의 차를 얻어 타고 델리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돈이 없을 때는 현지에서 친구를 사귀어서 도움을 받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우린 일 안 해도 먹고 살아

 

 

 

그는 동남아시아 지도를 펼치고 싱가포르에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원을 그렸다.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부르나이, 필리핀, 홍콩, 마카오, 중국 광저우,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다시 말레이지아, 싱가포르 이렇게 13개국을 돌고 귀환하는 일정을 세웠다. 기간은 30일.

 

 

 

과거 여국의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지아는 말레이 부족과 중국인, 인도인 등이 공존하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주요 상권은 화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마화공회馬華公會라는 끈끈한 화교 연합체를 결성해 말레이지아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말레이지아 전통 민속촌을 방문해 원주민의 생활과 독침 쏘는 법을 배운 후 차를 타고 브루나이로 향했다.

 

 

 

막대한 석유자원으로 독립한 브루나이는 검문소의 공무원 복장부터 달랐다. 이슬람 사원과 궁전은 온통 황금으로 치장되었고 국민들은 의료, 연금, 교육 등을 무상으로 제공받으면서 편안하게 살고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해변에서 낚시하던 청년과 친해져 그와 함께 테마파크에 가게 됐다. 관람객은 18명, 직원은 무려 100명이 넘었다.

 

 

 

"우리는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아"

 

 

 

이 청년은 무직자였다. 경쟁이 적고 교육과 연금 등의 복지가 잘되어 있으니 낚시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저자는 브루나이에 취업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시 보트를 타고 말레이지아로 넘어와 코타키나발루를 거쳐 필리핀 행 배를 탔다. 말레이지아의 끝인 산다칸에서 필리핀의 잠봉가까지 배로 꼬박 이틀이 걸렸다.

 

 

 

 

 

 

 

 

 

진짜 시장조사는 발품과 인터뷰

 

 

 

삼성물산 알제리 지점장을 통해 직원들을 소개받고 저자는 알제리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항상 바쁘게 미팅을 시작하는 한국인과는 달리 알제리에 대한 정치, 경제, 문화, 역사에 대한 네 시간의 강연을 요청하자 현지 직원은 몇 번이나 물었다.

 

 

 

"진짜 알제리를 알고 싶나요? 아니면 외국인이 알고 싶은 알제리를 말해줄까요?"

 

 

 

한국 역시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과 실제 한국의 역사가 지배세력과 그 후손들에 의해서 달라지는 것을 알기에 저자는 그에게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한 사실을 요청했다. "그럼, 진짜 알제리를 말해줄게요"라고 말하곤 자신의 가족사부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알제리대학교 교수였으나 강의 중 테러로 학생들이 죽자 지방으로 이사가 조용히 지낸다고 했다. 장기 계엄령이 발령된 알제리는 침묵과 복종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이다

 

 

 

저자는 언젠가 100개국을 방문할 것이고 도전과 진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도전을 향한 모든 과정을 즐기며 손자들에게 밤새도록 이야깃거리를 들려주는 노년 또한 즐길 것이다. 떠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걷지 않으면 도착할 수 없다. 바로 눈앞에 있는 한 발자국을 가다 보면 어느새 그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언젠가 내려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 걸어가는 당신의 모든 발걸음은 행복이고 축복이다.

 

지치고 힘들어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이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절대로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에서 희생당하지 마라. 세상을 향해 떠나고 도전하면서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인생의 실패자였고 크게 나은 점은 없지만,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한 남자가 당신에게 외친다. "그래 떠나, 안도현처럼!"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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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 메이커 - 세상을 전복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변화의 창조자들
이나리 지음 / 와이즈베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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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평생 직장이라는 에스컬레이터는 없다. 부몬님 세대의 성공 방정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리드 호드먼의 말마따나 나 자신이라는 스타트업을 경영해야 한다. 시장의 변화를 읽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합리적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제야말로 한 번쯤 남만의 승부를 걸어볼 만한 때가 된 것이다. 단, 체인지 메이커여야 한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창업가 정신을 찾아가는 여행

 

'기회를 포착해, 난관과 역경을 뚫고, 혁신적 사고와 행동으로, 새 가치를 창출하는 것'

 

책의 저자 이나리가 정의한 '창업가 정신'이다. 그녀는 

 

 

 

 

 

 

 

 

 

그들은 '무엇을 아느냐' 보다는 '누구를 아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때로는 엄청난 비난과 갈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변화를 위한 새로운 질서를 정립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며 가끔 '미친 결정'을 내리기도 하지만 합리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시장의 변화를 읽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세상을 바꾸어 나간다. 

 

 

 

 

 

드롭박스의 드루 휴스턴

 

드롭박스의 젊은 창업자 드루 휴스턴은 실리콘밸리의 진정한 '록 스타'로 인정받는다. 이 회사는 2014년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해 골드먼삭스, 세쿼이어캐피털 등 유수 투자자들로부터 총 2억5000만 달러를 유치했다. 기업 가치는 무려 100억 달러. 최대 주주인 그의 자산도 1조3000억원대로 불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 회사가 기업공개를 할 경우 트위터의 가치를 가뿐히 제압하는 '잭팟'을 터뜨리라 예상한다. 

 

무엇보다 드롭박스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세일즈포스닷컴처럼 '플랫폼'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수많은 파트너를 제안으로 끌어들여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 중인 것이다. 꿈이 큰 휴스턴은 이미 수 차례의 강력한 M&A 유혹을 이겨냈다. 제안자 중에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도 있었다.

도대체 드롭박스가 뭐길래? 이는 쉽게 말해 각종 파일을 PC는 물론 스마트폰, 태블릿 등 인터넷으로 연결된 온갖 기기에서 자유롭게 넣고 빼고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다. 어떤 기기에서든 사진이나 문서를 '드롭박스' 폴더에 집어넣으면 연결된 모든 기기로 순식간에 업로드 된다. 여러 사람이 한 계정에 접속해 실시간 공동작업을 할 수도 있다.

 

USB 메모리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으며, 이메일이나 포털 사이트에 로그인해 파일을 올리고 내리는 수고도 할 필요 없다. 2기가바이트의 저장 공간을 무료 제공하고, 윈도부터 안드로이드까지 거의 모든 운영체제를 지원한다. 현재 2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세계 최대의 파일 공유 서비스다.

 



그가 밟아온 길은 21세기 성공 창업자의 교과서만 같다. 하버드대 출신 엔지니어 아버지와 도서관 사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보스턴 근교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5살 때 어린이용 IBM 컴퓨터를 선물받은 것을 계기로 프로그래밍에 빠져들었고, 열두 살 때 게임을 하던 중 발견한 버그를 제작사에 알려 임시 직원에 발탁되기도 했다.

 

공부를 잘해 SAT 1600점 만점으로 MIT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도 오직 관심은 프로그래밍과 창업이었다. 주말이면 관련 서적을 수북이 쌓아놓고 읽는 것은 물론 저학년 때부터 이런저런 창업에 도전했지만 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몇몇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자기만의 비전을 찾아 헤맸다.

 

어느 날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을 찾은 그는 작업 내용이 담긴 USB메모리를 가져오지 않은 걸 깨달았다. 낭패감에 휩싸인 중 갑자기 '각종 파일을 간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드롭박스 홈페이지를 보면 그가 '보스턴 기차역에서 (드롭박스 소프트웨어의) 코드 첫 줄을 썼다'고 설명한다.


 

드디어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은 그는 2007년 실리콘밸리로 이주한다. 이어 세계 최초이자 최고 수준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Y콤비네이터'(YC)에 도전한다. 당시 그가 YC의 액셀러레이팅(보육) 대상이 되기 위해 제출한 지원서 내용은 그 패기와 통찰력, 간결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로 인해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됐다.

 

지원서를 살펴보면 그가 당시 이미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인터넷 기기가 우리 일상은 물론 업무 영역 전반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미 여러 파일 공유 서비스가 출시됐으나 일반인도 쉽게 접근하고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제품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의 문제의식과 해법은 YC의 인정을 받아 철저한 멘토링은 물론 적지 않은 투자까지 받게 된다. 대신 YC의 요구와 그 자신의 필요에 따라 공동 창업자를 물색한다. 이란 난민 가정에서 태어난 MIT 후배 아라시 페르도시였다. 이 후배는 고작 6개월 남겨놓은 대학 졸업을 포기하고 실리콘 밸리로 달려온다. 그는 현재도 드롭박스 최고기술책임자CTO다.

드롭박스가 처음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은 건 아니었다. 초기 고객 물색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일껏 투자받은 돈을 온라인 광고비로 허비하던 중 휴스턴은 색다른 방식을 고안한다. 유머러스한 코멘트와 함께 시제품을 홍보하는 동영상을 찍어 얼리어답터들이 자주 가는 사이트에 올린 것이다. 이를 통해 들어온 사용자 피드백을 반영해 제품을 개선한 뒤 또 후속 비디오를 올렸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행해 시제품을 만들고 시장 반응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 이른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의 모범 사례라 할 만하다.

이후 드롭박스는 뛰어난 기능과 편리한 사용자환경 디자인, 무료와 유료로 이원화된 요금 설계, 빠른 동기화 속도와 안정성, 사용자가 또 다른 사용자를 추천하면 양측에 무료 데이터를 추가 제공하는 마케팅, 외부 개발자나 기업들이 관련 서비스를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 정책 등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2013년 휴스턴은 MIT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다. 핵심 메시지는 세 가지였다. 첫째, 테니스 공을 쫓아 목줄이 끊길 지경으로 달려가는 강아지처럼 꿈에 집중하라. 둘째, 삶을 완벽하게 만들려 하지 말고 재미있게 만들어라. 셋째, "1분만 생각해 보라. 당신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5명의 사람(circle of 5)은 누구인가?" 이 중 세 번째 메세지는 무척 인상적이다. 

그는 재능 또는 노력만큼이나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이냐가 중요하며, 그것이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실제 곁에 함께 있진 않더라도 꿈꾸며 닮고 싶어하는 사람 또한 '당신의 인맥'이라고 강조했다. 나의 서클은 누구이며, 누구를 롤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인가. 이번 주말을 바쳐서라도 고민해 볼 만한 주제인 듯하다.

 

 

창업자의 스승, 폴 그레이엄

 

스타트업은 신생기업을 뜻한다. 엑셀러레이터는 초기 자금, 멘토링, 네트워크 등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육성 시스템이다. 이 단계를 잘 마치면 벤처캐피털, 즉 창업투자사의 본격적인 투자 대상이 된다. 이후 성공적인 기업 경영으로 증권시장에 상장되거나 높은 가치로 인수합병이 될 때 이를 엑시트라고 부른다.

 

와이컴비네이터YC는 세계 최초의 엑셀러레이터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역사는 YC를 중심으로 전후前後가 나뉜다. 2005년에 설입된 YC는 30개국, 7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탄생시켰다. 이중에서 생존한 성공 기업들의 평균 기업가치는 이미 약 580억 원(2012년 초 기준)을 넘어섰다. 앞서 살펴본 드롭박스의 기업가치는 2015년 6월 기준 약 11조 5천억 원에 달한다. 세계적인 IT잡지 <와이어드>는 YC를 '스타트업 신병 훈련소'라고 명명했다.

 

 

 

창업자 폴 그레이엄은 학창 시절 학교 공부를 경멸하고 또래들과 어울리길 거부했던 전형적인 '너드nerd'였다. 그는 코넬대학교 철학과에 입학, 작가의 꿈을 가졌지만 이후 방향을 바꿔 하버드 대학원에서 컴퓨터 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명문 로드아일랜드스쿨오브디자인에서 정식으로 미술 교육까지 받았다.

 

1995년, 그는 친구와 비아웹이라는 세계 최초의 웹 기반 애플리케이션 회사를 설립했다. 3년 뒤 야후는 이 회사를 4,960만 달러에 인수했다. 지금의 '야후 스토어'다. 이후 그는 새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창안, 스팸 필터링 원천 기술의 개발 등 전설적인 해커의 반열에 올랐다.

 

"창업에 대한 일장 연설을 하고 난 뒤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다 '나도 엔젤이 없었다면 스타트업을 못했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YC를 시작했다" - 폴 그레이엄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다. '성공적 스타트업을 만들려면 좋은 사람들과 시작하고, 고객이 정말 원하는 것을 만들며, 돈을 최대한 아껴 쓰라'는 것이다. 아이디어란 실상 그리 중요치 않으며, 강박적이리 만큼 무섭게 일하는 파트너를 구하고, 첫 번째 서비스를 무조건 빨리 내놓아야 한다는 조언도 곁들인다. 공동창업자 간 지분 분배엔 '모두가 약간씩 박한 대우를 받는 느낌이 들 정도가 적당하다' 식의 현실적 가이드라인도 제시한다. 무엇보다 스타트업은 '40년 할 일을 4년에 몰아 하는 만큼의' 엄청난 노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세상의 부富를 창출하는 데 이보다 더 빠르고 좋은 길은 없음을 강조한다.

 



이런 생각에 따라 그해 여름 그레이엄은 비아웹의 옛 동료, 훗날 아내가 된 제시카 리빙스턴과 함께 YC를 설립한다. 비아웹 매각 등을 통해 번 돈을 재투자한 것이다. 이어 액셀러레이팅의 표준이 된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될성부른 예비창업자를 뽑아 한 팀(1~4명)당 1만4000~2만 달러의 초기 자금을 자원하고, 3개월간 집중적인 멘토링과 기술·경영 조언을 제공한다. 대가로 약 6%의 지분을 받는다. 13주 차에는 유력 투자자들을 초대해 데모 데이를 갖는다. 이런 스타트업 스쿨을 매년 두 차례 진행한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게 매주 화요일 저녁 열리는 '만찬Dinner'이다. 지난 3월 미국 출장 중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뷰에 있는 YC를 찾았다. 현장에서 만난 YC 멤버는 "실리콘밸리의 유력 투자자와 멘토들이 참여하는 만찬이야말로 YC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유명해도 YC 특유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이 자리에 초대받을 수 없다. 만찬에서의 대화를 밖으로 전하지 않는 것도 불문율이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저녁 늦도록 새 아이디어와 투자에 대해 토론하고 조언을 주고받는다. 그야말로 실리콘밸리 네트워크의 결정판이다.

미국의 벤처투자자이자 블로거인 프레드 윌슨은 "그레이엄은 아이들(창업자들)에게 돈만 주는 게 아니라 방법론과 가치체계까지 알려 준다. YC는 그저 투자회사가 아니라 컬트이며, 그레이엄은 그 교주"라고 평한다. 한국에서도 요즘 액셀러레이팅, 멘토링 붐이 일고 있다. 무늬만 그럴싸할 뿐 프로페셔널과는 거리가 먼 프로그램들이 많다. 결국 답은 그레이엄처럼 성공한 창업 선배가 자신이 일군 부富로 후배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는 것이다. 본엔젤스, K큐브, 프라이머, K스타트업, 패스트트랙아시아 같은 국내 대표 액셀러레이터들의 활약을 고대한다.

 

 

 

실리콘밸리 생태계 디자이너, 마이클 모리츠

 

 

 

 

 

 

'2014년 세계 산업계 최고의 사건'을 꼽는다면 아마도 알리바바그룹의 뉴욕 증시 상장일 것이다. 그해 9월 상장 이후 50여 일 만에 알리바바의 주가는 50퍼센트 가량 올랐다. 연말 시가총액은 우리 돈으로 310조 원을 돌파했다. 덕분에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중국 최고 부자가 됐다. 최대 투자자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역시 일생일대의 성취를 이루었다. 이 가운데 뒤에서 가만히 웃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미국 실리콘 밸리 벤처투자사 세쿼이아 캐피털마이클 모리츠 회장이다.

 

 

 
모리츠는 알리바바가 상장되기 전에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몇 년 전 조용히 이 회사에 투자했다. 알리바바의 기업공개는 인터넷 산업의 전 지구적 진화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세쿼이아)는 십이삼 년 전부터 중국에 거대한 기술 기업 가치가 형성되리라는 것을 예견했다. 향후 30여 년간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하려면 중국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ICT(정보통 신기술) 업계 리더 중 그의 이야기를 흘려듣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리츠는 1990년대 이후 실리콘밸리 창업 생태계를 사실상 디자인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투자한 기업 리스트를 살펴보자. 구글, 야후, 페이팔, 시스코, 유튜브, 링크드인, 자포스, 왓츠앱, 드롭박스, 스트라이프 등. 그는 이 회사들의 초기 투자자이자 이사회 멤버였고, 강력한 후견인이자 헌신적인 멘토였다. 그가 직접 투자하지 않았지만 세쿼이아의 주요 포트폴리오에는 애플, 오라클, 에어비앤비 등의 회사들에도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그는 2015년에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버블이 붕괴될 조짐을 보인다고 말했다. 참고로 쿠팡이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세쿼이아로부터 2014년 1억 달러를 유치한 적이 있다.

 

 

풀뿌리 소비자운동, 브루스 크라우더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의 랭커셔 주는 산업사나 노동운동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산업혁명의 진원지이자 기계파괴운동(러다이트 운동)으로 대표되는 근대 노동운동의 발원지이며, 세계 최초 협동조합인 '로치데일 조합' 탄생지이자 임기 내내 노동집단과 격렬히 대립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런 랭커셔에는 2000년대 이후 다른 듯 같은 또 하나의 의미가 덧붙여졌다. '공정무역의 메카'다.

공정무역이란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같은 개발도상국 생산자들과의 공정한 거래를 통해 해당 지역 농민과 노동자들의 삶에 긍정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도모함을 말한다. 대개 환경친화적 농산물이나 제품을 직거래하는 소비자운동의 형태를 띤다. 핵심 정신은 '자선이 아니라 정의'라는 홍보 문구로 요약된다. 일상생활에서 공정무역 인증마크가 부여된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제3세계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가자는 것이다.

이 공정무역 운동이 지구촌 곳곳으로 퍼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이 바로 랭커셔 주의 소읍 가스탕이다. 2001년 이 곳은 세계 최초의 '공정무역 마을'이 됐다. 이를 계기로 세계 30여 개국 총 2,224개(2015년 8월 기준)의 공정무역 마을이 생겨났다. 영국은 공정무역의 선진국으로 거듭났다.

 

 

 

마을의 창시자는 브루스 크라우더다. 가스탕이 공정무역운동의 상징이자 롤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이름 없는 평범한 시골마을이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특별한 점 하나 없다는 바로 그 평범함이 오히려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의지와 헌신만 있다면 세계 어느 곳의 어떤 공동체도 공정무역 마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크라우더 공저 <공정무역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중에서).

 

실제 공정무역 마을 운동은 '풀뿌리 소비자운동' 혹은 '풀뿌리 시민혁명'의 세계적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창의적 활동가들의 끈질긴 헌신이 지역민들의 열정을 끌어내는 데 성공할 경우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역민의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 연대를 통해 인류의 공동선共同善 실현에 기여한다.

크라우더는 리버풀대에서 수의학을 전공한 수의사다. 그는 대학 졸업 직전인 1984년, 영국의 세계적 구호단체인 옥스팜 활동가가 된다. 92년 결혼과 함께 가스탕에 정착해 동물병원을 여는 한편, 옥스팜 가스탕 지부를 설립한다. 이어 가스탕에 공정무역을 정착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그는 가스탕이 공정무역의 진원지가 되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갖췄다고 봤다. 랭커셔 주처럼 산업화와 노동운동의 최전선에서 역사적 분투를 해온 영국 공업지역 사람들에게 '공정한 노동에 대한 공정한 대가'라는 공정무역의 모토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언론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시의회나 종교단체들 또한 시큰둥했다. 크라우더는 극심한 좌절과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돌파구는 꿈결에 찾아왔다. 어느 날 밤 크라우더는 잠을 자다 불현듯 공정무역 마을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혹 잊을세라 펜과 종이를 찾아 이를 기록했다. 핵심은 개발도상국 생산자들과 가스탕 농민들 간의 공감대 형성이었다.

2000년 3월 '공정무역을 위한 2주간' 행사 때 크라우더와 옥스팜 동료들은 지역사회 각 분야 대표들을 식사에 초대했다. 테이블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은 공정무역 상품과 가스탕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것이었다. 그는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에게 공정 가격을 지불하자는 공정무역 운동이 정당한 가격을 받고자 애쓰는 가스탕 농민들의 노력과 같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 같은 이벤트를 기획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참석자들은 공정무역 운동에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가정 또는 직장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하겠다는 서명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가스탕 시는 2011년 마을 중심부에 공정무역마을국제센터(FIG)를 열었다. 세계 각지로부터 몰려오는 사회활동가와 관광객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크라우더를 비롯한 몇몇 활동가들의 지칠 줄 모르는 의지와 행동력이 지역민 전체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것이다. 크라우더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뒤에도 여전히 가스탕에 살며 지역 봉사자이자 파트타임 수의사로 활동 중이다.

 

흔히 정부는 물론 각종 단체에서는 변화의 동력을 조직 정비나 예산 확보에서 찾는다. 하지만 가스탕의 성공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결국 진정한 힘은 사람, 그리고 연대에서 나온다. 사회 변화를 주도하려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이 열정과 창의성, 네트워킹 능력인 이유다.

 

 

세상은 누가 바꾸는가?

 

저자는 서문에서 이 질문에 대해 "사업가"라고 답한다. 책에 등장하는 43명의 체인지 메이커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놀라운 혁신으로 이전에는 없던 뭔가를 창조해낸 사람들이다. 창업가도 있고, 엔지니어나 과학자, 그리고 사회혁신가도 있다. 이들 모두에겐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기업가정신의 주요 요소 혹은 성공 창업의 필수 덕목이라해도 무방할 것 같다.

 

책을 통해 자신의 체인지 메이킹 역량을 가늠해 보자. 특히 창업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 중인 사람, 오랜 직장생활 끝에 독립을 꿈꾸는 사람, 비록 작지만 자신의 일을 시작해 보려는 사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은 사람 등이라면 유익한 팁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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