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시대를 건너와 나의 시간을 두드리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조용한 통로가 됩니다. 그런 순간들을 글로 쓰면 더 깊이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림 앞에 선 나의 감정과 시간을 솔직하게 꺼내어 담는 그 과정 속에서 과거의 그리움, 현재의 치열함 또 미래의 간절함을 경험합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가제본 책표지)
지금 읽고 있는 도서 <그림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는 곧 출간 예정인 책의 가제본이다. 향후 출간될 때 책의 제목이 바뀔 수도 있고 본문의 내용 또한 변경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 에세이를 다루는데 공저자는 엄민정, 이소희, 임리나, 정민이, 최수안 등 다섯 분의 작가들이 참여했으며, '그림 앞에서 마주한 삶과 글쓰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총 여섯 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프리다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클림트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고흐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밀레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우리 그림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나의 미술관 이야기 등에 관해 다섯 분의 작가들이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프리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그린다"
- 프리다 칼로(1907~1954)
임리나 작가는 "프리다는 디에고를 많이 의지했지요?"라고 안진옥 갤러리 반디트라소 대표에게 물었다. 소아마비를 앓았고 교통사고를 당해 온전히 못한 몸 상태 때문에 남편인 디에고를 떠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요. 프리다는 강한 여자였어요"였다.

(사진, 부러진 기둥)
열여덟 살에 큰 사고를 당해 허리와 다리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여자가 강하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프리다의 작품을 마주하고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프리다는 자신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많이 그렸을 정도로 강한 여성이었다. 좀처럼 바람기를 못 버렸던 화가이자 남편인 디에고와는 결국 결별했다.
클림트
"나에 대해 뭔가 알고 싶은 사람은
내 그림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작품 <아델레의 초상>(1907년)를 그린 클림트는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황금기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 그림 속의 주인공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예술 후원자이자 자신만의 지적 세계를 가진 여성이었다. 그림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당시의 여성을 억누르던 프레임을 깨뜨리는 과감한 선언이었다. 즉 금박과 모자이크, 눈동자 문양은 여성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감춰야만 했던 여성들의 욕망을 빛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

(사진, 아델레 초상)
아델레는 클림트에게 "나는 그저 아름답게만 그려지는 대상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알려진다. 이런 그녀의 사유思惟 흔적이 작품 속에 녹아있는 셈이다. 금빛은 부富의 상징이 아닌 존재存在의 증거였다. 나 또한 이 그림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음이 부끄러워진다
고흐
"예술은 삶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1888년 여름, 고흐는 아를에서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고흐는 삶의 끝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기차여행에 비유했다. 그에게 죽음은 삶이란 기차의 脫線이 아니라, 별로 돌아가는 여정, 歸還이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도착하게 될 마지막역일지라도 두렵기보다는 오히려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으로 보였던 것 같다.

(사진,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우리가 타라스콩이나 루앙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듯,
별에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타야 해.
나이가 들어 맞이하는 평온한 죽음은,
별가지 걸어가는 길이란다"
당시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을 여러 작품 속에 담은 이유가 이렇게 철학적인 사유를 담고 있었다니 위대한 화가는 철학가이기도 하다.

(사진, 별이 빛나는 밤)
예로부터 고대인들도 별을 신의 계시라 여겨 점성술과 별자리를 기록했었다. 또 그리스인들에게 별은 오리온, 카시오페이오(카시오페아)와 같은 비悲劇이 펼쳐지는 신화의 무대였다. 한국의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견우와 직녀 설화도 은하수를 건너지 못해 영원히 기다려야 하는 간절한 사랑을 상징한다. 아무튼 인간에게 별이란 죽어서 돌아가는 귀향처인 셈이다.
밀레
"제가 아는 가장 즐거운 일은 숲이나 경작지에서
느끼는 평화, 고요함입니다"
-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
밀레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富農의 장남이었다. 종교심 깊은 할머니 밑에서 자라 신앙적 사유가 깊었고, 뛰어난 실력 덕분에 주변의 도움으로 공부를 이어갔다. 에콜 데 보자르를 중퇴한 뒤에는 초상화가로 활동했으나, 생계가 어려워 신화화와 역사화를 그리던 시기를 거쳤다.

(사진, 만종)
바르비종에 정착한 뒤부터 그는 농부의 삶을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 농부의 일상을 그리는 것은 당시 부르주아 계층이 선호하지 않는 주제였기에 사회적 비판도 받았지만, 그는 끝내 붓을 거두지 않았다. 농촌의 삶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그의 작품 전반을 따뜻하게 물들였다.
작가 엄민정은 밀레가 그린 그림을 처음 접했던 장소가 동네 이발소였다. 어릴 적 살았던 동네 가게의 유리창 너머로 보였던 명화 복사본으로 <만종>이나 <이삭 줍는 사람들> 등이었다. 이는 가게 벽면에 걸린 인테리어 소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가장 공감하는 밀레의 작품은 따로 있었다.

(사진, 뜨개질 수업)
1860년 작 <뜨개질 수업>이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앉아 뜨개질을 배우는 장면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엿보게 한다.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 단정한 살림살이, 집중하는 아이의 표정 등이 마치 한 폭의 기도처럼 다가옴을 느꼈다. 코랄빛 스웨터를 입은 엄마의 손끝엔 사랑이, 바늘을 잡은 아이의 눈빛엔 배움의 기쁨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래서 밀레의 그림은 작가에게 "삶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예술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 그림
"얼레빗 참빗 품고 가도 제 복이 있으먼 잘산다"
- 속담

(사진, 어변성룡도)
이 장면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과거시험 합격을 기원하며 서재에 걸어두던 <어변성룡도>다. 폭포를 뛰어넘은 잉어가 용으로 변한다는 상징에서 '등용문登龍門'이란 말이 유래했는데, 그림 속에 '간절히 바라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민화는 조선 시대 백성들에게 어쩌면 판타지 영화나 웹툰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논밭에서 일하고, 장터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한 민초들이 방 안에 걸린 그림 앞에 앉아서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듯하다. 잉어가 용이 되고, 호랑이가 웃고, 포도송이처럼 복이 넘치는 그림은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처럼 민화엔 염원이 담겨 있다.
어변성룡도~ 도전과 성취
모란도~ 부귀와 영화榮華
포도도~ 자손 번창
호작도~ 복을 불러들이는 바람

(사진, 포도도)
민화 속 그림의 붉은 색은 복福을, 푸른색은 성장과 발전을 뜻했다. 최근 '케데헌' 열풍으로 용산에 위치한 중앙박물관이 외국인 방문객으로 문전성시였다는 소식이 방송을 탔다. 호작도 속 호랑이를 '더피'라는 이름의 굿즈로 선보이며 '솔드아웃'이라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굿즈의 인기가 앞으로는 민화 복제본까지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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