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조선시대 시행된 '과거科擧'에서 임금이 출제한 전시展試 '책문策問'과 응시자의 답안 '대책對策'을 다뤘다. 과거란 관리를 채용하기 위한 공개경쟁 시험으로, 유교 문화권인 중국, 한국, 베트남에서 거행했다.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한국에는 고려 광종 때 도입되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김준태는 철학박사로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을 거쳐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와 <경기일보>의 필진으로 활동했으며, <동아비즈니스리뷰>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왕의 공부>, <조선의 부자들> 등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18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태종, 세종, 연산군, 중종,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숙종, 정조, 철종 등 열한 분의 조선 왕들이 과거장에서 변계량, 신숙주, 강희맹, 이목, 이자, 권벌, 김구, 송겸, 김의정, 양사언, 조희일, 임숙영, 정두경, 오달제, 권이진, 정약용, 김윤식 등 열일곱 명의 응시자에게 묻는 책문策問과 이에 대한 대책對策을 다루고 있다.
당우唐虞와 삼대三代의 치세 요인
1407년, 태종 7년에 하급 관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시重試에서 태종은 “당우와 삼대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치세를 이룩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당우는 요, 순 임금을 뜻하고 삼대는 하, 상(은), 주 왕조를 뜻한다. 태종의 질문은 옛날 성군聖君들은 어떻게 그처럼 어진 정치를 펼칠 수 있었는지, 지금 그러한 정치를 본받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한 것이다. 이에 대한 변계량의 답변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마음에 근본을 두고, 나라를 다스리는 법은 때에 알맞아야 합니다. 도리가 마음에 근본을 두지 않으면 정치하는 근원을 만들 수 없고, 법이 때에 알맞게 제정되지 않으면 좋은 정치를 이룩하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마음을 보존해 치도治道를 창출하고 때를 따라 치법治法을 수립하는 요체는 중도中道를 견지하는 데 있으니, 중도를 견지하는 요령은 정일精一 외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인재 선발 제도
연산군은 “듣건대, 인재는 국가의 이기利器라고 한다. 예로부터 제왕이 훌륭한 정치를 이룰 적에 인재를 얻는 걸 급선무로 삼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전제하고 조선이 다양한 선발 방식을 도입하고 있는데도 인재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어진 인재가 등용되어 나무가 무성하듯 울창하게 세상을 위해 쓰이고 국가의 다스림을 도울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이야기해보라고 요구했다. 연산군 1년에 열린 문과 증광시增廣試에서 장원을 차지한 이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이 바라건대, 전하께서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얻은 실제를 미뤄 교화를 밝혀 사람의 마음을 바루고 바뤄서 인재를 기르십시오. 인재가 끊임없이 배출되어 집집마다 가득하면, 전하께서 인재를 선발하시는 건 마치 부유한 집에서 물건을 취하는 것과 같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아니함이 없을 것입니다. 어찌 인재가 부족하다는 게 근심거리가 되겠습니까? 전하께서 인재를 얻는 걸 물으셨는데 신이 인재를 기르는 것으로 구구하게 대답한 건 이 때문입니다.
마치 동문서답 같은 대책을 내놓은 이유는 인재 선발을 위한 완벽한 방법은 애당초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며 이에 이목은 인재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면 인재가 끊임없이 배출될 것이고 자연히 인재 선발 제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동될 것이라며 오히려 '인재 육성'을 강조했다.
시종일관할 수 있었던 이유
1507년, 중종 2년에 시행된 증광시에서 당 태종과 현종도 처음엔 정치를 잘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일관성이 없었음을 지적한 중종은 우리가 시종일관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삼대三代의 위대한 성군들은 어떻게 시종일관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권벌의 답변이다.
예로부터 임금이라면 시작과 끝을 잘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시경>에서 말한 것처럼, 처음에는 잘했더라도 마지막까지 잘하는 건 아닙니다. 일찍이 공자께서 “붙잡으면 보존할 수 있으나 놓치면 없어지고,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마음을 붙잡고 놓치는 게 한결같지 않은데, 선과 악의 구분이 여기에서 결정됩니다. 시작을 잘하는 건 마음을 붙잡았기 때문이고, 마지막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건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간직했느냐 잃어버렸느냐에 따라 선악이 관계되니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선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이 마음을 간직해 조금도 소홀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공부의 네 가지 조목
1602년, 선조 35년에 열린 별시別試에서의 두 번째 질문인 “공부에는 네 가지 조목이 있으니 바로 존양存養, 성찰省察, 치지致知, 역행力行이다. 그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볼 수 있는가?”라고 묻자 이에 대해 조희일의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옛날 학자들은 반드시 자신이 처한 상태에서 순차적으로 공력을 쌓으며 나아갔지, 갑자기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어려운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학문하는 데는 네 가지 조목이 있고, 그 넷에는 단계가 있고 차례가 있습니다. 공부할 때는 먼저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학문하는 계제이자, 도를 향해 나가는 표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홀로 있을 때를 삼가고 절제함으로써 내면을 심히 엄숙하게 하고, 밖으로 표출하는 언행을 살펴 몸가짐을 심히 정중하게 해야 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걸 더욱 깊이 궁구해 파고들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학문 정진을 그만둬선 안 됩니다. 또한 선한 일을 봤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하니, 내가 행한 게 충분하다고 여겨 선행을 그만둬선 안 됩니다. 학문의 본원으로부터 일상의 자잘한 일들까지 모두 갖추고, 내면과 외면을 모두 닦아 독실하게 실천해 밝게 빛내야 합니다. (중략) 학문을 구하는 방도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를 먼저 알고, 차례로 실천해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항산恒産이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1694년, 숙종 20년에 시행된 별시 문과에서 숙종은 자신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시의時宜', 즉 지금의 실정에 알맞는 조치를 시행코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성과가 없다는 탄식을 하며 원칙을 지키지 못해 그런 것인지, 아니면 현실에 맞게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지를 질문하자 권이진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백성을 보호하겠다면서도 항산을 마련해주지 않아 집집마다 지아비가 아내와 자식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 살길을 찾아 떠돌고 있습니다. 토지를 측량하는 건 경계를 바로잡고자 함인데 부호의 토지 겸병이 더욱 불어났습니다. 체납한 세금을 탕감해 은혜를 베풀고자 했으나 서민들의 집에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대동법을 밝혀 세금을 덜어주고자 하나 관청들은 창고가 비었다고 아우성칩니다. (중략) 불을 태우면 연기가 나고 물이 흐르면 흙이 젖는 법이니, 일을 하고도 공이 없거나 복무해 수고했는데도 효과가 없는 일은 없습니다. 한데 전하께서 하신 일에 공효가 없음이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된 일이겠습니까?
효율적인 인사제도
1790년(정조 14년) 규장각에서 학문을 연마하던 초계문신(37세 이하의 당하관을 말함)을 대상으로 치른 시험에서 정조는 “한나라와 당나라 때는 한 직무만 맡아 평생을 마친 사람이 많았으니, 관청을 설치하고 직책을 분담시킨 정신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으나 요즘 우리나라의 풍속은 이와 반대다.”라고 한탄하며 대책을 물었다. 이에 대한 정약용의 답변은 이러했다.
그는 “농정관을 자주 바꾸므로 세입이 얼마나 많고 경비가 얼마나 적은지 알지 못하며, 병조를 자주 바꾸므로 병사의 일 중에 무엇을 먼저 처리해야 하고 무관 중에 누가 쓸 만한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전임 관리에게서 결정된 재판이 후임 관리에게서 번복되는 건 형조가 자주 바뀌기 때문으로 옥송에 원망이 많고, 규례에 어두운 건 예조가 자주 바뀌기 때문으로 의례를 고증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책문은 기출문제집이다
책문과 대책엔 각 시대의 현안과 해결방안을 담고 있다. 해결 대책엔 응시자의 철학과 역사 인식, 현실 분석이 집약되어 있다. 배경이 되는 시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개인의 사유가 정치, 경제, 문화, 행정, 복지 등 다양한 영역과 만나 확장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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