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비밀, 그때 그 사람 명화의, 그때 그 사람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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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저는 입수 가능한 각국의 자료를 최대한 끌어모은 뒤 이를 재구성해 여러 화가의 삶을 이야기의 형태로 정리해왔습니다. 마치 화석을 토대로 생전 그 생물의 모습을 재구성하는 것처럼요. 갈수록 그 작업은 어려워졌습니다. 자료가 충분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화가의 이야기를 돌아보는 건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예술도 사람의 일. 한 개인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작품과 화풍, 시대, 나아가 인간 전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성수영은 연세대 신방과를 졸업, 한국경제신문 사회부와 경제부를 거쳐 문화부에서 미술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연재중인 <성수영의 그 때 그 사람들>은 구독자수가 7만 5천명을 넘기며 압도적 1위를 기록중인 문화예술 분야 최고의 인기 칼럼으로 손꼽힌다.


총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된 책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본 화가들, 여성과 모성 사이에서 꿈을 쟁취한 화가들, 삶과 죽음의 만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화가들, 그림에서 굴곡진 인생의 답을 찾고자 한 화가들 등을 주제로 다루면서 각 파트별 6명 화가, 총 24명의 화가들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앙리 마티스(1869~1954년)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는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거장이다. 그럼에도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마타스의 고향 마을 사람들도 그랬다. 1990년, 한 미술사학자가 마티스의 고향을 찾았을 때 고향의 젊은이들은 마티스의 이름조차 잘 몰랐다고 한다. 


더구나 마을 노인들은 한술 더 떴다. “마티스, 그 멍청이 말이군요. 우리 마을에서 유명한 바보였습니다. 어르신들은 마티스를 ‘세 번 실패한 패배자’라고 불렀어요. 아버지 가게도 물려받지 못했고, 공부에도 실패했고, 화가가 돼서도 실패했으니까요. 어린 아이들도 마티스보다는 더 그림을 잘 그릴걸요.” 


이에 미술사학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세계 최고 거장이라는 타이틀과 고향 마을에서의 ‘세 번 실패한 패배자’라는 모욕적인 별명. 이런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마티스는 왜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았고, 고향 마을 사람들은 왜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사진, 춤)


마티스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이지 않았고 그저 평범한 좀 허약한 소년이었다. 아버지는 프랑스 북부 시골 마을에서 씨앗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페인트 가게의 점원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장남인 마티스가 당연히 가게를 물려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위경련과 복통, 탈장 증상을 보이는 아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저 "저렇게 허약해서야 씨앗 자루를 짊어지고 배달할 수가 없으므로 아무 쓸모짝도 없어 보이니 가게도 못 물려주겠다"고 생각했었다. 한마디로 아버지 눈 밖에 난 아들이었다.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마티스는 화가가 될 거라곤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요구대로 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기로 일했지만 그의 마음 속엔 스트레스와 울화가 계속 쌓여만 갔다. 1890년, 21살 때 탈장이 악화되어 거의 1년간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갑자기 그에게 구원의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미술 도구 상자를 전하며 그림이라도 그리면서 기분 전환을 하라고 말했다. 드디어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림 물감을 손에 쥔 순간, 이게 바로 내 삶이 될 거라고 직감했던 것이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아버지에게 화가가 되겠다고 하자 '굶어 죽을 거'라고 그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20대 내내 마티스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그림 스타일은 평범했고 작품도 잘 팔리지 않았기에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건강도 나빠졌다. 그림을 그만둘까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의 곁엔 돕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1892년에 만나 아내가 된 아멜리에가 가장 큰 도움을 주었다. 마침내 서른여섯 살이 된 1905년 마티스의 색채가 폭발했다. 자신만의 화풍으로 눈에 보이는 색이 아닌 쓰고 싶은 색으로 캔버스에 칠하기 시작했다.


부유한 수집가들이 마티스의 작품을 사들인 덕분에 마타스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점차 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대중들의 눈에 그의 그림이 익숙해졌고 나아가 작품 속 색채들의 묘한 조화와 매력, 신선함이 점차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사진)


마티스 사후에 지역 신문들은 "우리 마을에 거장 마티스가 있었다"는 특집 기사를 실었고, 관광 코스인 '마티스 루트'가 만들어졌으며, 마티스 아버지의 씨앗 가게를 사들여 '마티스 하우스'로 새롭게 개장했다. 마을 사람들은 진심으로 마티스를 자랑스러워했고, 그의 작품에서 감동을 느꼈다.     

메리 카사트(1845~1926년)


이 도서의 책표지에 실린 그림을 그린 화가가 바로 메리 카사트다. 그녀는 미국 화가로 판화 제작자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대부분 생활을 했으며, 에드가 드가를 만나 친분을 쌓으며 이후 인상파 화가들과 함게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 그녀의 작품 대부분은 여성들의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일상 생활을 담고 있다. 


올케와 시누이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나쁜 이유는 두 사람의 삶과 가치관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올케는 전형적인 현모양처로 명문가 출신답게 뛰어난 내조로 남편의 성공을 도왔으며 네 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며 훌륭한 가정을 꾸렸다.


반면에 시누이는 비혼을 택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정착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시누이의 이름은 메리 카사트, 미국 출생이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인상주의 화가였다. 올케의 이름은 로이스 뷰캐넌, 미국 15대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의 조카였다.


카사트의 예술적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로이스와 조카들의 그림을 그리면서 '어머니와 아이'라는 소재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붓끝은 전보다 더 부드럽고 색채는 더 따뜻해졌다. 이는 훗날 카사트를 대표하는 그림 주제와 화풍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미혼이자 미출산 여성이 어머니와 아이를 그리는 게 이상하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마술사가美術史家이자 카사트 연구자인 낸시 매튜스는 "드가는 발레를 하는 무용수와 매춘부를 주로 그렸지만, 드가가 그 일을 직접 해본 건 아니지 않은가. 화가는 자신이 관심 있어 하고 친숙한 주제를 그릴 뿐이다."라고 평하면서 카사트를 감쌌다.   


(사진)


카사트는 가정을 꾸리기보다 직업을 선택했다. 로이스는 그 반대였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정반대였던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때로는 질투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카사트는 그렇게 로이스를 바라보며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삶에 완벽한 정답 따윈 없으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완벽한 행복은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페르디난트 호들러(1853~1918년)


스위스 베른에서 가난한 목수인 아버지와 농장 일꾼인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호들러는 어릴 적부터 죽음은 그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 모두 병으로 잃고 홀로 세상에 남겨졌으니 말이다.


나이 일곱 때 아버지와 두 형제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열네 살 때는 밭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쓰러져 세상을 하직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작은 수레 위에 놓인 어머니의 관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죽음은 항상 우리 가족 곁에 있었다.


호들러가 자주 그렸던 주제는 역시나 죽음. 호들러가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사실은 알프스산맥의 아름다운 풍경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30대 후반이 되도록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 호들러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자신보다 스무 살 연하인 발렌틴 고데-다렐이었다. 전 남편과 이혼 후 제네바에서 생계 목적으로 모델 일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그녀를 만난 호들러는 발렌틴의 교양과 현명함, 강인한 성격과 아름다움에 반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발렌틴의 몸에서 자궁암이 발견되었다. 20세기 초반의 의학으론 암은 불치의 병이었다. 그녀의 몸에 암은 이미 여러 곳으로 전이되어 있었다. 두 번에 걸친 수술과 당시로선 최신 기술이었던 방사선 치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급속히 쇠약해졌다.



(사진, 병상의 발렌틴)


호들러는 홀린 듯이 발렌틴이 죽어가는 모습을 기록했다. 곧 사라질 그녀의 존재를 자신의 곁에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가 남긴 그림 수는 유화와 스케치를 비롯해 총 200점 이상. 죽어가는 과정을 이토록 끊임없이 여러 번 묘사한 화가는 전무후무였다. 그러면서 호들러는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삶은 죽음이 있기에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토머스 로런스(1769~1830년)


영국의 초상화 화가이자 왕립 아카데미의 4대 회장이다. 그의 아버지는 여관 주인이었으며 그림 영재였던 그는 열살 때부터 파스텔 그림을 그려 가족을 부양했다. 1790년 왕실 의뢰를 받아 샬롯 여왕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유화 화가로서 명성을 다졌다.


“언니, 약속해. 내가 약혼했던 그 남자와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언니와 그 남자가 이어지는 걸 생각하면….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가족들과 성직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동생이 남기는 마지막 소원. 이런 분위기에서 언니는 “사실 그 뜻이 아니었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수녀는 말했다. “손을 내미세요. 절대 그의 아내가 되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언니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고 맹세하고 말았다. 그리고 동생은 몇 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띤 채로. 이들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후 남겨진 언니와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그 남자는 바로 토머스 로런스였다. 


(사진)


꼬마 천재의 뛰어난 실력과 명성 덕분에 한 달 동안 버는 돈이 지금 돈으로 치자면 1천만 원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여관은 망해가고 있었다. 결국 로런스 가족은 여관업을 그만두고 귀족들의 휴양도시인 바스로 떠났다. 이곳을 찾는 영국 상류층 휴양객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유명 인사들은 어린 로런스를 매우 아꼈다. 


로런스가 17살이 되던 1786년, 그의 아버지는 런던으로 이주를 결정했다. 성인이 된 로런스는 잘생긴 외모를 자랑했다. 게다가 교양도 뛰어나고 운동까지 잘해서 어딜 가나 인기 만점이었지만 겸손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런던에서의 그의 명성과 수입은 꾸준히 상승했다.


1789년, 마침내 로런스는 스무 살의 나이로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왕립 아카데미 전시에서 올해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으며 슈퍼스타로 부상했다. 명성보다도 더 영광스러웠던 것은 비로소 왕실 화가가 된 사실이었다. 마침내 그의 성공 시대가 활짝 열린 셈이었다.


그러나 로런스가 벌어들인 많은 돈 대부분은 그의 아버지가 사업을 한다면서 말아먹는 통에 빚을 갚는 데 이용되었다. 이렇게 그의 아버지는 번번이 로런스의 발목을 잡는 사람이었다. 23세이던 1792년엔 왕립 아카데미 전시회 출품작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는 아들과 상의 없이 로런스가 최근 전시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광고를 냈던 것이다. 그 뒷수습은 로런스 몫이었다.


1797년 로런스 부모는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이때 로런스의 나이는 28세였다. 부모님이 살던 큰 집을 팔고 이사를 갔다. 새로 옮긴 동네에 여배우 세라 시돈스가 살고 있었다. 사실 로런스가 세라를 처음 만났던 장소는 바스였다. 15년 전 13살인 로런스가 27살인 세라의 초상화를 그렸던 것이다. 그런데, 세라에겐 두 딸이 있었다. 큰딸 샐리와 작은딸 마리아였다. 각각 22살, 18살이었다.


처음 로런스와 사랑에 빠진 이는 언니 샐리였다. 같은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다가 사랑에 빠졌다. 이에 로런스는 세라를 찾아가 "따님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고의 사윗감은 분명하지만, 로런스 아버지가 남긴 빚이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빚을 다 갚고 오라"고 말했다. 


이후 상황은 동생 마리아가 끼어들면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마리아는 자신이 원하는 걸 모두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언니의 남자친구를 자신이 갖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마리아의 건강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1798년 마리아가 죽은 뒤 샐리와 로런스는 다시 이어지지 못했다. 1803년 언니도 동생처럼 폐병으로 죽고 말았다. 두 자매가 동시에 사랑한 화가의 슬픈 초상화인 셈이다.


#그림이야기 #명화의비밀그때그사람 #성수영 #한경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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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뚝딱 도시락 레시피 100 - 일주일 2만 원으로 만드는 초간단 1단 도시락
서혜란 지음 / 청림Life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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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제가 유튜브에 올린 도시락 중 인기 있었던 메뉴를 추려서 목적별로 나누어 담았는데요, 모든 영상은 실제 출근하는 날 아침에 만들었던 과정을 그대로 촬영했다가 주말에 편집해서 올린 것들이랍니다. 처음 도시락을 싸려는 분이나 매일 먹는 도시락에 변화를 주고 싶은 분들 모두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서혜란은 16년 차 직장인이자 도시락 콘텐츠로 유튜브를 운영 중인 유튜버이다. ‘계란으로 만드는 일주일 도시락’, ‘천 원 도시락’ 등의 콘텐츠가 인기를 끌며 도시락 전문 유튜버로 자리매김했다. 먹기 간편한 메뉴들로만 구성하고, 한 그릇 도시락을 만든다는 장점이 있다. 


총 네 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그대로 따라하는 20분 도시락, 한 가지 재료로 일주일 간편 도시락, 활용성 좋은 주먹밥 김밥 샌드위치, 스페셜 도시락 등의 카테고리 속에 모두 100가지 레시피를 담고 있다. 준비부터 완성까지 20분 안에 완성할 수 있는 레시피들을 소개하고 있다.


단호박 크림치즈 샌드위치


재료는 단호박 4백 그램, 소금빵 2개, 크림치즈 50 그램, 루꼴라 2 그램, 마요네즈와 물 적당량을 준비하고, 또 소스로는 요플레 2 스푼과 알룰로스 2 스푼도 준비한다. 재료 준비가 되었다면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한다.


먼저 단호박의 씨를 뺀 다음 썰어서 전자레인지용 용기에 담아서 물을 조금 붓고 12분간 찐다. 찐 단호박에 준비한 소스를 넣고 으깬다. 소금빵 가운데를 가른 뒤 마요네즈를 바르는데, 그 양은 기호에 따라 조절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루꼴라를 올려 준비한 단호박 무스와 크림치즈를 잘 펴서 바르면 완성이다. 


(사진)


여름 샐러드


오이 125 그램, 방울토마토 170 그램, 냉동 새우 120 그램, 삶은 병아리콩 55 그램을 재료로 준비한고, 올리브유 3 스푼, 레몬즙 1 스푼, 알룰로스 반 스푼, 소금과 후추 약간 등도 즌비한 후 요리에 들어간다.


오이는 길게 4등분하여 가운데 씨 부분을 제거한 후 깍뚝 썰고, 방울토마토는 반으로 자른다. 냉동 새우는 뜨거운 물에 데친 후 찬물에 행구어 식혀서 물기를 제거한다. 준비한 채소와 새우, 병아리콩을 볼에 담아 소스를 투입해 버무린 후 간을 맞추면 된다.


(사진)


데리야키 치킨 소보로 덮밥


닭다리살 3백 그램, 부추 15 그램, 생강 15 그램, 계란 3개등을 재료로 준비하고, 양념으론 소금 1꼬집, 후추와 깨 약간, 요리유 적당량을 또 소스로는 간장 2스푼 반, 설탕 1스푼, 미림 4스푼을 준비한다.


부추는 송송 썰고, 생강은 채 썬다. 볼에 생강채와 소스 재료를 모두 넣고 잘 섞는다. 볼에 계란을 깨서 넣고 소금을 뿌린다. 팬에 요리유를 두르고 계란물을 부어서 스크램블한다. 완성된 스크램블은 그릇에 담아 둔다.


팬에 요리유를 두르고 후추를 골고루 뿌려 가면 닭다리살을 굽는다. 노릇노릇해지면 한 입 크기로 자르고 준비한 소스를 부어서 국물이 자작할 정도로 졸인다. 도시락통에 밥을 담고 그 위에 닭다리살, 부추, 계란 스크램블을 차례로 올려서 완성한다.


(사진) 


감자 치즈 크로켓


재료로는 감자 480 그램, 모차렐라치즈 50 그램, 김 1장, 계란 2개를 준비한 후, 양념은 부침가루 빵가루와 요리유 적당량에다 속재료 양념은 우유 1스푼, 소금 5꼬집, 후추 약간을 준비하면 된다.


감자를 적당한 크기로 툭툭 썰어서 전자레인지 용기에 담아 10분 간 돌린다. 계란은 잘 풀어서 계란물을 만들어 둔다. 잘 익은 감자에 속재료 양념을 넣고 으깬다. 으깬 감자를 손가락 길이 크기로 동그렇게 편 후, 그 위에 모차렐라치즈를 올리고 둥글 넙적하게 빚는다.


김을 길게 잘라서 크로켓에 띠처럼 두른 후, 부침가루, 계란물, 빵가루 순서대로 묻혀서 튀김옷을 입힌다. 팬에 요리유를 넉넉히 두르고 중강불에서 앞뒤 모두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요리가 완성되었다.


(사진)


땅콩버터 토스트


재료 준비는 식빵 4장과 바나나 1개, 그리고 양념은 땅콩버터 2스푼, 딸기잼 2스푼, 그리고 버터 40 그램을 준비한다.


먼저 바바나를 어슷 썬다. 팬에 버터를 두르고 식빵을 앞뒤로 노릇하게 굽는다. 구운 삭빵 2장에 땅콩버터를 골고루 펴서 바른 다음, 식빵에 바나나를 올린다. 다른 쪽 식빵 2장엔 딸기잼을 발라서 덮은 뒤 테두리를 잘라서 도시락에 담으면 완성이다.


(사진)


닭다리살 대파 덮밥


재료는 닭다리살 350 그램, 대파 150 그램, 계란 1개를 준비하고, 양념으로는 간장 2스푼, 미림 3스푼, 설탕 반 스푼, 올리고당 반 스푼, 후추 2꼬집 등을 준비한다.


간장, 미림, 설탕을 섞어서 소스를 만들고, 마른 팬에 닭다리살을 노릇하게 구워서 80% 정도 익으면 대파를 한 입 크기로 잘라서 같이 굽는다. 닭다리살이 거의 다 익으면 대파 사이즈로 잘라 준다. 잘 구워진 대파를 먼저 꺼낸 후 닭다리살에 소스를 붓고 올리고당과 후추를 넣어서 졸여 준다.


도시락에 대파와 닭다리살을 담고, 계란 노른자를 올려 먹는다. 


(사진) 


이젠 도시락 생활을 즐겨보자


갈수록 물가가 상승함에 따라 식당의 가격표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인들은 도시락을 준비하고픈 욕구가 전보다 더 강해진다. 그동안 '요리 솜씨가 없다', '요리를 잘 못한다' 등의 이유로 사무실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던 분들에게 초간단 도시락 레시피를 권하고 싶다. 


#요리 #일주일뚝딱도시락레시피100 #서혜란 #뚝딱뚝딱계란씨 #도시락전문유튜버 #청림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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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쉽게 성공하는 인스타그램 마케팅
황규진 지음 / 원앤원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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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퍼스널 브랜딩을 꿈꾸는 사람, 매일 고객을 마주하는 자영업자, 브랜드의 존재감을 카우고 싶은 대표,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무언가를 바꾸고 싶은 사람을 위해 썼다. 현장에서 부딪히며 쌓인 경험, 수많은 실패 속에서 길어올린 전략, 알고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쌓아온 감각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담았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황규진은 2010년에 스마트폰과 함께 세상에 나온 인스타그램을 누구보다 먼저 시작했다. 딸이 출생한 해, 아이 사진을 올리던 평범한 개인 계정이 어느새 '서울을 대표하는 계정'이 되었고, @seoul_korea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전세계인들과 서울의 매력을 나누고 있다.

총 5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성공적인 인스타그램 마케팅 사례, 인스타그램 쉽게 시작하가, 특별한 인스타그램 마케팅 시작하기, 성공으로 이어지는 좋은 콘텐츠 만들기, 성공을 부르는 인스타그램 실험실 등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을 제시한다. 

인스타그램 마케팅 사례

신세계백화점은 2024년 크라스마스 시즌을 맞아 창의적인 인스타그램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스토리텔링과 소비자 참여를 중심으로 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신세계백화점은 '산타클로스가 신세계 인스타그램 계정을 해캉했다'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이를 시작했다.

기존 게시물을 모두 삭제하고 산타클로스가 계정을 장악한 듯한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서툰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한 사타는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다양한 게시물을 잇달아 올렸다. 예를 들면, 인생네컷 촬영, 순댓국과 소주를 즐기는 모습, 지하철 탑승 등의 일상 에피소드였다.

이후 12월 1일,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이란 티저 영상 속에 산타가 교통사고를 당해 중화자실에 입원하게 되는 새로운 전개를 맞이했다. 새로운 산타는 유명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였다. 카리나는 크리스마스 선물 배달을 책임지겠다며 어린이들은 걱정말라는 메시지와 함께 신세계백화점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공유하며 필로워들과 소통했다. 

마케팅 성공 배경   

스토리텔링과 소비자 참여 유도~ 스토리의 다음 전개를 기대
인플루언서와의 협업~ 카리나의 등장과 MZ들의 관심 집중
플랫폼 특성 최적화~ 릴스, 스토리, 게시물를 통한 소통과 참여유도

인스타그램 시작하기

릴스Reels~ 짧은 동영상 중심의 콘텐츠
스토리Story~ 24시간 후 자동으로 사라지는 콘텐츠
AI 추천 알고리즘~ 사용자 활동 데이터 분석, 맞춤형 피드 제공
DM 업그레이드~ 비즈니스 계정의 DM 기능 강화(자동 응답, 챗봇) 

인스타그램 계정은 개인 계정과 프로페셔널 계정으로 분류된다. 프로페셔널 계정은 비즈니스 계정과 크리에이터 계정으로 세분화되며 계정 유형에 따라 제공되는 기능이 다르다. 이는 계정을 운영하는 목적에 따라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게시물 예약 기능은 프로페셔널 계정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며, 개인 계정에서는 이를 사용할 수 없다. 비즈니스 계정 & 크리에이터 계정은 인스타그램 앱 내 ‘고급 설정’에서 게시물 예약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 페이스북 크리에이터 스튜디오를 통해 예약 게시물을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제품 태그, 콜라보 게시물, 홍보 게시물, 기부 캠페인 등의 기능은 예약된 콘텐츠에는 적용할 수 없다.


(사진, 비즈니스 계정 vs 크리에이터 계정)

인스타그램 운영의 핵심

콘텐츠의 질을 유지하면서 일관성 있는 업로드 전략을 지속할 것
팔로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진정한 관계를 구축할 것
라이브 방송과 스토리를 활용해 실시간 소통을 강화할 것

인스타그램 마케팅 시작하기

임스타그램 마케잉을 위해선 벤치마킹이 필수적이다. 이는 성공으로 이끄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의 ㄱ서을 흉내내는 게 아니라 나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고 이를 콘텐츠에 녹여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검증된 콘텐츠의 벤치마킹을 톤해 나만의 색깔로 콘텐츠를 표현하는 전략이 일요하다. 


(사진, 관심 큰 콘텐트 더 많이 보는 방법)

좋은 콘텐츠 만들기

인스타그램에서 글쓰기는 콘텐츠의 가치를 높여주고, 팔로워들과의 소통을 강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자 무기인 셈이다. 특히 첫 문장은 팔로워의 시선을 사로잡는 후킹 역할을 한다. 즉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스크롤을 멈추고 읽게 할 수도 있고, 그냥 통과하게 만들기도 한다.

첫 문장은 후킹 역할을 한다. 후킹이란 사용자의 스크롤을 멈추게 만들 만큼 눈에 띄고 흥미로운 글의 첫 문장을 의미한다. 좋은 후킹은 팔로워가 글을 끝까지 읽게 만들고, 댓글과 좋아요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여준다. 특히 충격적인 사실, 강렬한 질문, 공감을 유도하는 문구를 첫 문장에 배치하면 후킹 효과가 극대화된다. 

예시

"90%가 모르는 비밀!"
"이 실수를 당신도 하고 있나요?"
"이 방업으로 매출이 2배가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 실험실

팔로워 늘리기 프로그램은 인위적으로 팔로워 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물론 단기간에 팔로워 수를 급격히 증가시킬 수 있지만 부작용 또는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된다. 인위적으로 늘어난 팔로워는 가짜 계정일 확률이 높다. 이로 인해 좋아요, 댓글, 공유 등이 현저히 낮아지며, 아는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인스타그램에서 상위노출을 위한 가장 강력한 요소는 '댓글 + 맞댓글'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사용자 간의 상호작용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아요' 수보다는 사용자가 콘텐츠에 더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신호기 상위노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경제경영 #마케팅 #아무나쉽게성공하는 #인스타그램마케팅 #황규진 #원앤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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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 철학자의 삶에서 배우는 유쾌한 철학 이야기
김헌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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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바깥으로 향하던 지성의 눈을 인간 안으로 돌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공동체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그렇게 하려면 어떤 덕이 필요한가?' 그야말로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인 인문학으로서의 철학을 하며 삶의 방식에 관해 진지한 탐구를 한 셈이지요.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김헌은 인간다움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인문학자로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철학을 "인간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학문으로 정의하고, 구체적 모습을 그리스 철학자의 삶에서 찾는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분화구 속으로 뛰어들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독주 한 잔 등 철학을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서양철학사를 풀어 나가는 방식으로 철학자의 삶 자체와 그 속에서 이루어진 철학적 사유를 함께 살펴본다.  


분화구 속으로 뛰어들다


최초의 철학자인 탈레스는 세상 모든 것이 하나의 원리로 움직이고 사람도 그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살아 있으나 죽으나 큰 차이가 없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듣던 사람이 “그렇다면 당신은 왜 죽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탈레스는 “죽든 살든 큰 차이가 없는데, 굳이 죽음을 재촉하거나 일부러 삶을 떠날 필요가 없지 않은가”라고 대답했다.

서양철학은 크게 두 갈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헤라클레이토스에 뿌리를 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변한다는 ‘변화의 철학’이고, 또 하나는 파르메니데스에 뿌리를 둔, 어떤 것도 변하지 않으며 존재와 본질은 영원하다는 ‘본질의 철학’이다. 그 후 그리스 사람들은 이 두 주장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를 고민하면서 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스 문명을 서구 문명의 뿌리라고 말하는 것도 상당 부분은 페리클레스 덕분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아테네를 패권국가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지성인과 예술가들을 중용하며 아테네를 문화적으로 융성하게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원론자인 아낙사고라스와의 만남이다. 아낙사고라스가 멀리 클라조메나이에서, 페르시아 군인으로 그리스에 왔고, 전쟁이 끝난 후에 아테네에 잔류했을 때,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곁에 두었던 사람이 페리클레스였다. 그 덕분에 아테네는 철학적으로 큰 자산을 얻게 된 것이다.84

원자론을 주장했던 데모크리토스는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그리스 북동부 트라케 연안의 압데라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내기보다 고향을 떠나 세상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압데라에서 동쪽으로 소아시아와 페르시아제국은 물론, 바빌로니아를 지나 인도까지 갔고,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이집트까지 두루 돌아다녔는데, 이집트에서는 약 5년간 머물렀다고 한다. 그는 세상을 여행하면서 최고의 지식인과 현자를 만났고, 좋은 책과 자료를 모으는 데에 큰돈을 썼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


우리는 흔히 소피스트를 '말재주꾼'으로 떠올린다. '궤변론자'라는 번역이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이런 편견에 사로잡히면 객관적이고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 본래 그리스어로 소피스트는 '지혜로운 것을 아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피스트들이 철학자와는 달리 수업료를 받았기에 '지식 장사꾼'이란 편견이 생긴 것이다.


소피스트가 수사학, 즉 연설의 기술, 설득의 기술을 가르치고 수업료를 받는 것이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이지만 소피스트들이 수사학을 가르치면서, ‘나에게 오면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라고 선전했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죄를 짓고도 법정에서 말을 잘해서, 배심원들을 설득해 무죄가 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바로 그들이 가르치겠다는 수사학이었다.


아테네 서쪽 항구 페이라이에우스에서 살았던 부호 케팔로스의 집에 초청받은 소크라테스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묻자 사람들은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반문에 막혀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소피스트 철학자인 트라쉬마코스가 못 참겠다는 듯이 나서서, 단도직입적으로 아주 도발적인 주장을 던졌다. “제가 한마디로 딱 잘라 정의해 드리지요. 정의는 강자의 이익입니다.”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기원전 432년에 소크라테스와 함께 포티다이아 전투에 참가했던 알키비아데스의 말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그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남들보다 참을성이 뛰어났다고 평했다. 젊은 시절엔 아버지처럼 석공石工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포티다이아전투에 중무장 보병으로 참가한 소크라테스는 혹한의 겨울 날씨에도 평상복 차림으로 군영 밖으로 나가 활보했다고 한다. 맨발로 얼음 위를 걸으면서도 양기죽에 담요로 몸을 감싸고 두꺼운 신발을 신은 남들보다도 더 빨리 더 오래 걸어 다녔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체력이다. 이러니 두 아내를 데리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ㅎㅎ


(사진, 소크라테스와 두 아내)


이 전투가 기폭제가 되어 벌어진 펠로폰네소스전쟁(가원전 431~기원전 404년)에도 소크라테스는 적어도 세 번의 전투에 참전했다고 한다. 이 엄청난 그리스 내전에 마흔다섯 살의 나이로 델리온전투(기원전 424년)에 참전했는데, 이 전투에서 아테네는 스파르타 동맹국이었던 보이오티아군과 싸웠지만 패했다.


이 전투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제자 크세노픈이 말에서 떨어졌을 때,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크세노픈을 부축하고 끝까지 구했다고 한다. 전세가 불리해 아테네군이 퇴각할 때 소크라테스는 전열을 이탈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적과 싸웠다고 한다. 동료들이 안전하게 회군할 수 있도록 가장 후방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강력하게 저항하며 경계를 철저히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는 근육질의 전사가 아니었다. 작은 키에 배불뚝이였고, 대머리에 들창코였다. 아마도 그리스신화에서 디오니소스 신을 따르는 술주정뱅이 실레노스의 모습과 비슷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크라테스의 교육 방법을 산파술이라 부른다. 그 이유는 산파가 임산부의 태에 있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듯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이와 마찬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소크라테스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흔히 교육을 선생님이 가진 정보나 지식을 학생들의 머리에 주입하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소크라테스는 학생들이 이미 가진 지식과 정보를 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죽어서 천상으로 가려면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혜와 용기, 절제의 미덕을 균형 있게 갖춘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이며, 정의로운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 사람은 긴가민가했다. 세상에 떵떵거리며 위세당당하게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법을 밥 먹듯 저지르면서 돈과 권력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소크라테스는 고발당하고 재판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제자들로부터 권유받은 탈옥을 거부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죽음이 영혼의 해방이었던 셈이다. 즉 죽음으로 몸을 빠져나간 영혼이 공중에 흩어져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영혼은 단단하고 순수하며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자신을 닮은 순수한 존재들만 있는 이데아의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독주 한 잔

퓌론(기원전 360~기원전 270년)은 흔히 회의주의懷疑主義 철학자라고 불린다. 무엇이든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일단 의심부터 해서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안다고 하는 것조차도 의심한다. 제논과 에피쿠로스가 확실한 존재론을 바탕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가치 있는 삶인지를 적극적으로 제시했다면, 퓌론은 마치 그들에게 “당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요? 당신들 말대로 했다가 그게 아니라면, 그대들은 어떻게 책임을 질 건가요? 당신들이 믿고 따르며 행동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 일단 판단을 중지하고 모든 것을 회의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금욕주의적 생활 태도를 지키던 제논은 큰 병치레를 하지 않고 아흔여덟 살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매우 충격적이다. 평소처럼 제논은 스토아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오다가 뭔가에 걸려 넘어져 발가락이 부러졌다. 그러자 그는 비극작품의 한 구절을 인용, 크게 소리를 질렀다. “간다. 운명이여, 왜 나를 소리쳐 부르는가?”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에피쿠로스의 말년은 병 때문에 고통이 심했다. 아마도 요도에 돌이 박혀 방광결석이나 요로폐색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죽기 직전 2주 동안 고통에 시달이다가 따뜻한 물을 받아놓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독한 포도주 한 잔을 마신 뒤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철학이야기 #전쟁터로간소크라테스 #김헌 #북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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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천문학 수업 - 블랙홀부터 암흑 물질까지, 코페르니쿠스부터 허블까지, 인류 최대의 질문에 답하는 교양 천문학 드디어 시리즈 8
캐럴린 콜린스 피터슨 지음, 이강환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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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천문학 수업>은 광활하고 머나먼 우주를 마치 우리가 어릴 적 침실 천장에 붙여두었던 야광별 스티커처럼 가깝고 친근하게 만들어주는 천문학 안내서다. 천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별을 바라보며 품는 모든 질문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응답이 될 테니까.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의 '추천사'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캐럴린 콜린스 피터슨은 미국 천문학회와 과학작가협회 정회원으로 천문학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평생을 바쳐온 과학 커뮤니케이터이다.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했으며 대기우주물리학연구소 허블우주망원경 고다드 고해상도 분광기팀에서 8년간 혜성을 연구했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가장 먼저 만나는 우주 태양계, 태양계 너머의 광활하고 놀라운 세상, 천문학의 흐름을 바꾸고 놀라운 업적을 남긴 인물들, 우주를 떠다니는 망원경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천문학의 내일 등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가장 먼저 만나는 우주, 태양계


우주와 우리의 DNA는 연결되어 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빅뱅의 순간을 거쳐 넓은 우주가 형성되고 별이 서로 충돌하고 생성되고 파괴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원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모두 별에서 온 '별의 아이'인 것이다.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단위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거리 단위와는 다르다. 그만큼 은하와 우주는 우리의 상상이 미치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고 방대하기 때문이다. 한때 불교 경전을 읽을 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파한 삼천대천 세계를 신뢰하기 어려웠지만 그 먼 옛날 부처님께서는 우주를 그렇게 볼 수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천문단위~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평균 거리(약 1억 4960만km)

광년~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이동하는 거리

파섹~ 1파섹은 약 3.26광년


(사진, 행성行星) 


금성에선 장기간 화산 활동으로 지층에 새로운 암석이 퇴적되었으나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분화구가 남아 있다. 일부 학자들은 형성 초기엔 금성이 습하고 온난해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했다고 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를 겪으며 불모지로 변했다. 


가장 유력한 학설은 태양이 열에너지를 내뿜기 시작하면서 금성이 가열되었다는 설로, 금성의 바다는 끓어올랐고 모든 수증기가 증발해 우주로 빠져나갔을 때부터 이산화탄소 대기와 황산 구름만이 남아 금성의 표면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초로 연구했다는 혜성은 궤도를 따라 먼 거리를 이동한다. 어떤 혜성은 태양계의 아주 먼 곳에서부터 지구를 향해 날아오며, 때때로 강력한 중력이 작용해 오르트 구름의 안정된 궤도에서 혜성의 핵을 밀어내면 혜성이 탄생한다. 


(사진, 카이퍼대와 오르트 구름)


이 얼음과 먼지 덩어리는 카이퍼대의 가까운 이웃 천체나 해왕성과 근접하며 움직이기도 한다. 행성들의 중력은 혜성의 궤도나 주기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히 강력하다. 특히 목성과 토성의 경우 강력한 중력으로 종종 혜성의 궤도를 단축시키기도 한다.


밤하늘을 수놓는 유성, 즉 별똥별은 작은 먼지와 암석조각이다. 대부분 태양 주위를 돌던 혜성에서 떨어져나온 먼지와 얼음으로 만들어진다. 지구의 궤도가 혜성의 잔해와 교차하는 순간 유성이 대기로 쏟아지는 현상이 생기는데, 이를 '유성우'라 한다.


(사진, 매년 관측할 수 있는 유성우) 


태양계 너머의 놀라운 세상


별을 천문학 용어로 표현하자면 '항성恒星'이다. 태양은 태양계의 유일한 항성이다. 그런데, 태양계를 벗어나 더 넓은 우주로 시선을 돌리면 최소 수천억 개의 항성이 있다. 즉 은하를 기준으로 본다면 태양도 수없이 많은 항성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삼천 개의 대천大天 셰계가 있다는 부처님의 설법이 충분히 이해된다.


항성은 별과 별 서이 '성간星間'에서 태어난다. 구체적으로는 기체의 먼지가 밀집한 성간 구름, 특히 수소가 분자 상태로 존재하는 거대 분자 구름에서 탄생한다. 분자 구름이 어떤 계기로 수축을 시작하면 밀도가 높아지고, 밀도가 높아진 분자들은 여러 덩어리로 분열되아 각자 수축한다. 수축이 계속되면 각 덩어리들은 저마다 다시 분열한다. 중심 온도가 400만 도를 넝머가면 핵융합이 시작되어 항성이 탄생한다. 


약 45억 년 전, 분자 구름의 일부였던 작은 구름이 홀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 구름에는 다른 항성이 소멸하며 흩어져나온 물질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원소 중 일부는 적어도 한 번, 아니면 여러 차례의 거대한 폭발에서 발생했다. 수소 분자 구름의 중력이 붕괴하자 곧 태양이 탄생했다. 


천문학자들은 주변의 노화된 별에서 나오는 강한 항성풍이나 폭발로 인한 충격파가 갓 태어난 작은 항성 태양을 회전시키고 주변 파편과 뭉쳐지게 했다고 본다. 어쨌든 항성은 핵융합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뜨거워졌을 때 탄생하는 것이다.

천문학에선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일반 물질을 '바리온 물질'이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우주 전체에서 바리온 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5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95퍼센트는 바로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암흑 물질이 무엇인지는 아직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암흑 물질이 보이지도 않는데 천문학자들은 어떻게 그 존재를 알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3년,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에서 ‘코마’라는 은하단을 연구하던 스위스 천체물리학자 프리츠 츠비키는 은하단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눈에 보이는 은하의 중력만으로는 은하단이 그렇게 빠르게 공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감지되지 않는 더 많은 질량과 끌어당기는 힘이 은하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에 츠비키는 관측되지 않는 물질의 존재가 잇으며, 이를 '암흑 물질'이라 명명했던 것이다.

놀라운 업적을 남긴 인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물체의 움직임도 계산하고 연구를 계속했다. 운동의 3법칙은 고전 역학의 기초이자 물리학의 밑바탕을 다져주는 중요한 법칙이다. 즉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그리고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그것이다.


오늘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기초 교육 과정으로 다루는 뉴턴의 운동 법칙은 당시엔 무척이나 획기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였었다. 뉴턴 이후의 학자들은 이 운동 법칙을 활용해 점차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 분야의 다른 이론을 발전시켰다.


(사진, 질문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허셜은 태양 광선을 피해 주변보다 차가운 영역인 흑점을 안전하게 관측할 방법을 연구했다. 그는 붉은 필터를 사용한 태양 광선 실험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 필터를 통과한 빛을 분광기에 비추어 보니 빛이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열이 느껴졌고, 온도계로 이 ‘보이지 않는’ 빛이 꽤 따뜻하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이 빛은 스펙트럼의 붉은 빛 너머에 위치했기에 ‘적외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천문학의 내일


우주생물학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극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미생물’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수중 화산 폭발이 일어나고 수압이 높은 심해에서도 살아남는 미생물이 있다. 물이 극도로 부족하거나 기온이 몹시 낮은 곳에 서식하는 아주 작은 생물도 있다. 심해 깊은 곳, 메탄 얼음 퇴적물에 파묻혀 살아가는 단순한 구조의 벌레 같은 신비로운 생명체도 있다. 이렇게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는 어쩌면 태양계 어딘가의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생명체가 탄생해 번성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준다.


행성과학은 기본적으로 지구의 환경을 연구하는 지구과학과 유사하다. 대턍계의 여덟 행성은 암석 행성(지구형)과 거대 가스 행성(목성형)으로 나뉜다. 행성과학은 이들 행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특히 그 '지표면'을 분석해서 탐구한다.


(사진, 아폴로 17호의 월석月石 채취)


우리들의 고향은 바로 별이다


학창시절 여름 방학 때 마당 한가운데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관측하던 때가 떠오르면서 별자리에 얽힌 지식을 배울 수 있으리란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나의 예상은 많이 빗나갔다. 책의 저자는 블랙홀, 암흑 물질, 태양계, 별의 탄생 등 해박한 천문학 지식을 우리들에게 가르치며,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음을 기억하라며 책을 끝맺는다. 천문학이 궁금한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과학 #교양천문학 #드디어만나는천문학수업 #캐럴린콜린스피터슨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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