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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와 트럼프 이펙트: 대격변 예고
콜리 황 지음, 이철 옮김 / 경이로움 / 2025년 4월
평점 :
TSMC는 다수의 거대 기술 기업들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균형 잡힌 수급 시스템이 붕괴되어 글로벌 산업 혼란이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엔비디아,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구글, 메타와 같은 미국의 기술 기업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가치는 ‘누가 게임의 규칙을 정하느냐’에 있습니다. - '서문' 중에서

책의 저자 콜리 황은 IT 전문 언론기업인 디지타임즈의 창업자이자 40년 경력의 글로벌 ICT 산업 분석가이다. 대만의 씽크탱크인 MIC의 주임을 역임했으며, 대만 경제부, 타이베이시 정부, 이란현 정부 등의 정책 고문과 대련회, 타오위안 공항, 항공발전화, 외국무역협화 등의 기관 이사를 역임했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대격변의 예고, 반도체 100년 여정이란 주제로 다섯 개 장에 걸쳐 바람은 불고 비는 내린다, AI와 소요유, 선택된 나라, 중국굴기에서 동승서강까지, 반도체와 대만의 미래 등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제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먼저 TSMC의 생산능력을 살펴보자. 2024년까지 TSMC는 13개의 12인치 웨이퍼 팹, 9개의 6인치 및 8인치 팹을 보유하게 된다. 이에 더하여 OSAT 기능을 갖출 공장 5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전 세계에 최소 10개의 신규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 공장들은 다양한 공정 요구 사항을 가진 528개 고객사에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모든 이들을 위한 파운드리가 되겠습니다”가 TSMC의 모토이다. 이에 7만 6천명의 TSMC 직원들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킴으로써 업계에 무해한 파트너임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TSMC는 약 1만 명의 R&D 직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매출의 8%를 R&D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2024년 매출 비중에서 컴퓨터, 통신, 자동차 관련 매출은 대부분 제자리 걸음을 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AIoT는 7~9% 성장하고 첨단 제조 공정을 사용하는 AI 가속기는 최대 2.5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TSMC의 매출은 900억 달러(2023년, 693억 달러)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매출총이익률은 53%, 순이익률은 40%에 가까운 수준이다. TSMC의 요구를 충족하는 장비, 소프트웨어 또는 지식 서비스 하청업체가 되는 것은 회사의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TSMC의 대외 영향력은 TSMC의 선도적 입지를 가속화하고 확장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한국의 유망 중소기업들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아웃소싱업체로 등록되면 회사의 미래성장이 담보된다는 논리와 동일한 맥락이다.
저자는 1985년 한국 전담 산업 연구원으로서 대만에 부임한 이후 40년에 걸쳐 한국 전자 산업의 발전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해 왔다. 이 기간 동안 오명, 배순훈, 진대제 등 세 명의 한국 과학기술부 장관들과 수차례 만났으며, 삼성의 고위 임원진인 이준우, 진대제, 그리고 경계현 사장이 대만을 방문할 때마다 비공식적인 교류 자리를 유지했다.
대만과 한국의 산업 발전 경험은 서로에게 벤치마킹의 기회를 제공해 왔다. 특히 1993년 삼성이 추진한 '신경영' 계획을 중심축으로, 글로벌 브랜드 구축과 핵심 기술 역량 확보에 집중하는 시차적時差的 발전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한국 전자 산업은 지난 30년 동안 경제적으로 번영해 왔다. 이러한 발전 과정은 오늘날 대만-한국 간 경제 및 무역 관계에 새로운 협력 기회를 창출하는 기반이 되었다.
2024년 대만의 대외 무역 구조에서 주목할 만한 중요한 변화는 한국이 처음으로 대만의 무역 흑자 국가로 전환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러한 무역 구조의 변화는 대만이 SK하이닉스와 삼성 같은 한국 기업들로부터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를 대량으로 수입하여 이를 서버, AI 가속기 등의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조립한 후 미국, 유럽 등 제3국 시장으로 수출하는 복잡한 가치사슬 구조에 기인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산업과 첨단 정보 전자 산업의 본질적 차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전통 산업이 대체로 제로섬 게임의 성격을 띠며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관계가 단순한 상하 선형 구조를 형성하는 반면, 정보 전자 산업은 교차 매트릭스 관계를 바탕으로 한 복잡한 생태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이러한 생태계의 상호의존성과 시너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업과 국가가 긍극적인 승자가 될 수 있다.
세계 5대 국제 항공화물 공항인 홍콩, 인천, 푸동, 타오위안, 나리타 공항이 모두 대만 인근 동중국해에 위치해 있으며, 전 세계 해상 교통량의 48%가 대만 주변 해역인 서태평양을 통과한다는 사실은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동서양의 문화와 무역 교류의 중심지로 발전한 대만, 전 세계 첨단 칩, 서버, 노트북의 80% 이상이 대만 제조업체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전원 공급 장치, 커넥터, 인쇄 회로 기판, 전자 회로 등 IT 산업의 모든 분야에서 대만 기업인들은 뛰어난 기술력과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같은 대만의 현위치는 우연이 아닌 필요에 의한 선택과 노력, 그리고 지정학적 압력의 결과물이다. 1965년 미국의 원조가 종료되었을 당시,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은 248달러에 불과했으며, 연간 5천만 달러의 외환 부족은 국가 경제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대만 정부는 대만 중앙에 위치한 가오슝 가공수출구를 설립하여 새로운 경제 발전의 돌파구를 모색했다. 대만 전자 산업의 초창기에는 일본 기업과 미국 기업이 인재 양성의 요람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1971년에 화타이 일렉트로닉스와 델타 일렉트록닉스가 각각 설립되었고, 잇따라 1974년에 컴퓨터 회사인 폭스콘과 미탁이 설립되었다.
1970년대는 대만에 다중적 위기가 닥친 시기였다. 미국의 원조 중단과 함께 대만은 유엔에서 탈퇴하고 일본, 미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으며 두 차례의 석유 파동으로 국민 경제는 심각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1974년 반도체 산업을 개발해야 한다는 혁신적인 제안에 부응한 대만 정부의 지원에 따라 후팅화胡定華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반도체 기술과 경영을 배우려고 미국으로 파견되었다. 이 팀의 구성원들이 이후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의 창립자가 되었던 것이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익히 알려진대로 대만계 미국인으로 "AI가 소프트웨어를 지배하고,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하드웨어 제조의 근본적 가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TSMC가 주도하는 대만의 반도체 제조 산업은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광과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인이 선도적으로 AI 세계를 펼치지 못한 것이 못내 유감이란 생각이 든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젠슨 황의 입장에선 같은 값이면 붉은 치마라는 판단하에 TSMC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므로, 삼성전자가 이를 극복하려면 TSMC보다 압도적으로 기술력 우위의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으며, 이는 피할 수없는 숙명인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거대한 무역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대만 기업들이 중국 내의 생산 공장(기지)들을 중국업자에게 매각하고 AI와 생산-판매 동기화라는 새로운 시대를 수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2019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분쟁을 촉발한 이후 서구 진영에 속한 대만은 산업 전략을 근본적으로 조정하면서, 더 많은 대만 기업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해 새로운 스마트 제조 생태계의 상호 연동 및 다각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중국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살펴보자. 중국은 주변국들에 독자적으로 정한 게임의 규칙을 무조건 수용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지만, 정작 중국 자신은 보편적인 국제 규범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 대변인이 “중국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지만 모든 것은 반드시 객관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라고 신중하게 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중국의 이중적 태도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 공산당 정권은 주변 이웃 국가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일본 정부는 대만해협에서 무력 충돌 사건이 갑자기 발발할 경우를 대비해 자국민들의 피난 비상 계획을 시뮬레이션했으며, 특히 오키나와 주민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혹한 상황이 재차 반복될 것을 걱정하며 심지어 대만해협 유사시를 대비한 특수 대피소까지 건설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이럴진대 대만 국민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자본 시장에서 전 세계 준비 통화의 62%는 미국 달러이다. 위안화는 2% 미만(그나마 중국인구가 워낙 많음에 기인한 결과로 보임)으로 유로화의 10분의 1, 영국 파운드와 일본 엔화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를 익히 알고 있는 중국 공산당 정부는 원유 수입량이 많다는 이유를 내세워 위안화로 결제 가능하게 만들고자 사우디 아라비아와 밀착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중국은 산유국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디지털 화폐와 전자 거래를 통해 자국 통화의 양상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디지털 화폐는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위안화가 디지털화되면 중국은 위안화의 흐름을 추적하여 중국인들이 자유롭게 해외로 돈을 밀반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새로 취임한 트럼프 행정부는 필연적으로 미국 달러를 무기로 사용할 것이며, 미국 달러를 포기하는 국가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압력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비록 TSMC가 높은 전세계 시장점유율을 유지할지라도 트럼프 정부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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