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구판절판


인간은 살아 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산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독서는 인간에게 동반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자리는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자리도,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어떤 명쾌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삶과 인간 사이에 촘촘한 그물망 하나를 은밀히 공모하여 얽어놓을 뿐이다. 그 작고 은밀한 얼개들은 삶의 비극적인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살아간다는 것의 역설적인 행복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만큼이나 불가사의 하다. 그러니 아무도 우리에게 책과의 내밀한 관계에 대해 보고서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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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나라의 병아리 마법사
복거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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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이 '성장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내 걸고 쓴 <숨은 나라의 병아리 마법사>.

어느 알라디너의 서재에서 사보긴 좀 아까운 소설이란 소릴 들었고, 그래서 빌려봤다.

사실, 난 작가들에게 관대한 편이다.

그 어떤 종류의 책도 나에게 별3개 이하를 받은건 없었다.

리뷰 쓰는것도 이리 어려운데 몇 백쪽에 달하는 글이야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다고 생각하기에...

하지만, <병아리 마법사>는 읽는 내내 욕이 나왔다.

왜?

작가가 말한 작품 의도가 거슬렸기 때문일까?

작가는 말했다.

이 소설은,

성장소설,

한국형 판타지,

십 대를 건너기 위한, 징검다리 같은 소설이라고.

하지만,

어느 부분에 주인공의 내면적인 성장이 드러나는지.....

용이 나오고, 마법을 쓰는 것으로 판타지라 분류할 수 있는 것인지...

도대체 어디에 '어른들을 통해 바라본 세계의 실상, 뜻하지 않게 말려든 전쟁에서 느낀 참상과 그로 인한 깨달음, 아이에서 어른이 되게 한 그 밖의 숱한 경험(그중에는 사랑도 포함되어 있다) 등 탄탄한 구조 속에 풍부한 스토리가 녹아들어 있는 이 책은 비단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이 손에 들어도 단숨에 읽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는 건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왜 내 눈엔 안 보이는 걸까?

시력이 나빠서? 시야가 좁아서? 편협한 사고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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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6-2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거일 씨에게 더이상 비전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로밋 2005-06-3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비전이 없어서 일까요? 너무 실망해서 <비명을 찾아서>를 다시 꺼내 들었답니다. 저걸 읽으면 좀 달라보일까 싶어서요. -_-;;
 
대한민국 학교대사전 - 이것이 학교다
학교대사전 편찬위원회 엮음 / 이레 / 2005년 3월
절판


<구지가>
반장반장
피자현야
약불현야
번작이끽야

반장아 반장아
패자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34쪽

<문감도>
시 제1호
13개의 문제가 종이를 질주하오
(종이는 시커먼 갱지가 적당하오)

제1의 문제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 문제도 무섭다고 그리오.
.
.
제13의 문제는 무서운 문제와 무서워하는 학생과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 중에 1교시 언어영역의 문제가 무서운 문제라도 좋소.
그 중에 2교시 수리영역의 문제가 무서운 문제라도 좋소
그 중에 재수생이 무서워하는 문제라도 좋소
그 중에 장수생이 무서워하는 문제라도 좋소
(종이는 뚫린 종이라도 적당하오)
13개의 문제가 종이로 질주하지 아니하면 더욱 좋소
-74쪽

<처용가>
서울 밝은 달 아래
밤 드리 노니다가
들어와 책상보니
성적표가 와 있구나
구십 점은 내것이나
사십 점은 뉘것인가
본디 내 것이었다마는
점수가 낮은 걸 어찌하리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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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절대 내 마음 몰라
파트릭 코뱅 지음, 김이소 옮김 / 달리 / 2005년 4월
절판


아빠가 성냥불을 켜자 아빠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다. 마치 뭔가가 번쩍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니까 아빠가 입에 문 담배 끝에서 불꽃이 타고 있는데도 더 어두웠다. 그럴 때면 나는 몽상에 빠져든다.
나는 이런 몽상의 순간이 정말 좋다. 수많은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카우보이, 알록달록한 색깔, 음악, 방콕에서 코끼리 떼에 둘러싸여 있는 아빠와 나.-28쪽

"떠나기 전에 생각을 못 했어"
아빠는 빙그레 웃더니 자닌 아줌마를 바라보았다.
'커피 한 잔씩 할까?"
아줌마가 그러자고 했다. 나는 정말 기뻤다. 이런 것이 바로 세심한 배려이다. 나는 아빠의 이런 배려를 높이 평가한다. 우리 아빠는 "차 세워. 저 녀석이 오줌 누고 싶대"하는 사람들하고는 다르다. 아빠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커피 한 잔씩 할까?"하지 않는가. 내게 오줌을 누게 하려고 그런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이 얼마나 세심한 배려인가.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건 정말 좋다. 태양은 빛나고 우리는 시골에 간다. 야호, 정말 신난다. 인생은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 그런데 차는 언제 세우는 것일까?-34쪽

전체적으로 보면 내 인생은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집을 떠났을 때가 제일 힘들었는데, 그것은 엄마가 집에 없어서라기보다는 건물 관리 아줌마와 옆집 아줌마들이 나를 볼 때마다 짓는 얼굴 표정 때문이었다. 아줌마들은 마치 내가 홍역이라도 앓는 것처럼 나를 측은하게 여겼다. 사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엄마하고 있을 때보다 아빠하고 있을 때가 더 편했다.
물론 엄마 없이 지내는 게 늘 그렇게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엄마는 이미 집을 떠났다. 이게 현실이다.-103쪽

"너 사과를 먹는 거냐, 아니면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는거냐?"
정ㅁ라 잔인한 사람이다. 이렇게 중간에서 다 깨 버리니까 아빠와 함께 있으면 꿈도 맘대로 꿀 수 없다.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아빠는 그 말에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열한 살짜리는 생각할 권리도 없다고 여기는 건가.-150쪽

아빠에게는 정말 안된 일이다. 하지만 나도 이제 더 이상 포기할 수 없다. 일단 한다고 했으니 반드시 할 것이다. 이건 확실하다.
꽃을 갖다 놓을까?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내게는 온통 암흑뿐일 텐데 꽃이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이람.
하지만 내가 암흑에 있게 될지 어쩔지도 알 수가 없다. 잠을 자는 동안을 암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색깔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틀 뒤면 아무것도 아닌 것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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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절판


고상하고 견딜 만한 것은 책과 와인 병에 쌓인 먼지 뿐이다. 살짝 펼쳐진 책 사이에 코를 쑤셔 박기 전에 살짝 불어 먼지를 제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69쪽

플레이아드의 저자들에게 소중한 그 '전작'시스템에는 독성이 있다. 물론, 한 작품, 한 작가를 이해하거나 모방 작품을 써 보는 데 그보다 더 편리한 것은 없다. 손톱으로 이를 으깨 죽이는 저열한 쾌감을 느끼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애호 작가들의 강박 관념, 나약함, 게으름, 요령, 술책을 하나하나 꼽아보는데 그보다 더 유용한 것은 없다. 독자들은 그들의 결점을 절친한 친구의 앙증맞은 괴벽처럼 좋아한다. 작가는 친근한 사람이 된다. 아주 가까운.-105쪽

책의 경우에는 수없이 많은 접근 방법과 선택 동기가 있다. 작가, 나라, 만남, 장르, 정황, 판형, 순간적인 기분, 계절, 집 등등. 수없이 많은 것들. 모든 것이 구실이 된다. 관계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121쪽

독서에 관한 한, 시민이라고 모두 평등하지 않고 남녀 간에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맛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소화가 잘 안 되는 책이 있고, 배부른 독자가 있는가 하면 굶주린 독자가 있다. 식욕은 기질뿐만 아니라 계절, 상홍, 장소, 주변장식, 고요, 잡음, 결핍, 풍부, 사랑, 증오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기분과 마음의 움직임, 정신적, 신체적 요동을 좇아간다. -213쪽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아이 때문에 걱정하는 부모에게 페냑의 <소설처럼>에 한번 빠져보라고 적극 권한다. 특히 그들 서재에 아이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아직 고추에털도 안 난 녀석이 어딜 감히!"라는 모욕적인 말로 그들을 쫓아내라고. 그렇게 해도 책에 흠뻑 취하는 방식으로 반항하지 않는 아이는 진정한 반항아, 호기심도 없는 아둔한 녀석, 혹은 자극해봤자 씨도 안 먹히는 철학자다.-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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