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 이별 영이별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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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영이별 영이별]정순왕후의 단종애사~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시절, 권력에 눈먼 사악한 왕족들이 바글거리던 시대가 조선의 6대왕인 단종부터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에 이르기까지가 아닐까. 물론 성종은 빼고 말이다. 삼촌이 조카의 자리를 탐하고, 무오사화, 갑자사화가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한데…….

이 책은 그 살벌한 얼음판 위에서 마음 졸여야 했던 비운의 왕비인 정순왕후 혼의 넋두리다.

소설의 형식은 독특하다. 49제를 의미하듯 49에서 시작해서 0으로 끝을 맺는다.

불교의 장례의례인 49제를 뜻하는 의미다. 49제는 극락왕생을 염불하는 ,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원하는 천도제의 일종이다.

 

소설의 흐름도 죽어서 혼백이 된 정순왕후가 자신의 삶과 사랑, 구중궁월의 피비린내 나는 기막힌 역사들을 기억하며 읊조리는 독백형식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생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정인, 단종 곁으로 간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억울함과 한을 삭이지 못하여 이곳으로도 갈 수 없고 저곳으로도 가지 못하는 정처 없는 원혼으로 지내신다면, 아아, 나는 또다시 당신을 찾아 구름과 바람결을 헤쳐 가는 수밖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겠지요. 우리는 오랜 겁을 거듭하여 부부 연으로 맺어진 사이니까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정인이니까요. 기다리세요. 당신. 내가 곧 갑니다. 더는 외롭고 씁쓸하지 않으실 거예요.(책에서)

 

세조로 인해 폐위가 되고 유배를 떠난 단종.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송씨. 이런 기막힌 운명이 어디 있을까.

15살에 혼인해서 18살에 지아비를 잃고 82살에 세상과 하직한 단종의 여인.

남편을 잃고, 홀로 65년의 긴 세월을 어떻게 버텨낸 삶은 허허롭기 까지 했을 텐데…….

 

그녀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은 정업원이다.

정업원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민왕의 후비 안씨의 거처이자 절이었던 곳이다. 이후 지아비를 잃은 왕실 여인네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된 곳이다.

자식 없는 후궁들과 왕실의 과부들을 위해 세워진 절로 서늘한 냉방이라는데…….

 

비구니였고, 뒷방 늙은이였고, 날품팔이꾼이었고, 걸인이기까지 했던 여인인 정순왕후. 한때는 화려한 중전의 자리에서 위엄을 보였을 송씨. 그녀가 본 세상살이는 어땠을까. 인생무상을 느끼지 않았을까.

 

정순왕후는 단종을 유배 보내고 기묘년의 피바람, 무오년의 난리를 거치며 모진 목숨을 연명하게 된다. 그러다 뒤늦게 정종과 경혜공주 사이에 난 아들 미수를 양아들로 받아들이며 어미로서의 모성을 느끼며 감격해 한다. 불임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시간이었을 텐데…….

성종이 왕위에 오르고 나서야 정순왕후의 복권은 이루어지게 되고.

연산군의 학정에 시달리다 정변에 성공한 신하들은 진성대군(중종)을 왕으로 앉히게 된다. 중종의 비인 장경왕후의 외로움과 산후 죽음까지 보면서 생이별의 고통, 지아비의 사랑 못 받는 설움을 자신의 고통과 비교하기도 한다.

 

변변치 못한 몰골에 궤란쩍게도, 나 역시 속으로만 가만히 신씨와 나의 처지를 견주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살아 생이별한 신씨가 더 편찮을까, 죽어 영이별한 내가 보다 나을까. (책에서)

이 소설은 정순왕후 송씨의 입으로 전해 듣는 파란만장한 왕실여인의 비망록이다. 슬픈 정인을 위한 비통의 위령제다.

살얼음판 위를, 칼 날 위를 살아왔던 한 여인의 길고 긴 파란의 여정을 노래한 망부가다. 역사 속에 숨어 있던 왕실 여인들을 향한 작가가 드리는 49제가 아닐까.

 

처음에는 낯선 형식에 읽기가 힘들었다. 역사소설의 맛은 대화체의 쫄깃함과 속도감 있게 읽히는 긴박감인데……. 대화체가 독백의 형식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걸린 소설이다.

낯선 형식의 역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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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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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자매]메일을 통해 위로 받고 치유하는 이야기

 

도토리 자매, 홈페이지 안에서만 존재하는 자매다.

사연을 보내고 메일을 보내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답장을 해준다는데…….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네트워크의 끈끈한 힘은 그 어떤 힘보다 위력적일 텐데…….

더구나 혼자만의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 외로운 이들에게는 따뜻한 소통도구일 텐데…….

언니인 돈코, 동생인 구리코를 결합한 돈구리는 도토리라는 뜻이다.

일찍 부모를 여읜 자매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홈페이지를 운영하기로 한다.

그리고 메일을 받으면 답장을 하는 일을 시작한다.

아는 사람이 아닌 모르는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을 때 딱 좋은 존재가 되어 주는 것, 만만하게 이것저것 의논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외롭거나 친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홈페이지다.

단, 메일은 너무 밝지 않게, 너무 어둡지 않게, 너무 우울하지 않게, 너무 길지 않게, 너무 튀지 않게,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쓰는 것이다. 그저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 이야기들을 나누는 정도다.

 

도토리 자매의 부모님은 어릴 적에 사고로 돌아 가셨다. 아침 조깅 중에 생선회를 운반하는 트럭에 치여서 황당하게 돌아가셨기에 한동안 생선회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삼촌 집에 얹혀살다가 삼촌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이모 집으로 옮겨 더부살이를 하게 된다.

이모 집에서 언니가 가출하는 일이 발생하자 자매는 친 할아버지 집에서 할아버지의 병수발을 맡게 된다. 할아버지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돌아가시자 자매는 상실감과 불안감에 더욱 우울해지는데…….

할아버지를 간병한 대가로 집과 유산을 물려받게 되자 둘의 재능을 살려 무료로 메일 보내기와 답장하기를 시작하게 된다. 두서없는 대화, 부담 없는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기로 한다.

자신들이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돈과 사랑을 하느님에게 돌려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호러 영화를 좋아하고 외향적인 언니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사람들을 만나고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예민하고 내성적인 동생은 집에서 칩거 중이다. 반은둔형 외톨이라고 할까.

집 밖에 잘 나가지도 않기에 집에서 하는 요리는 오락이 되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는 슈퍼나들이는 대담한 용기를 낸 외출이 된다.

 

두 사람은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애를 쓰는 한편, 자신의 아픔과 경험을 바탕으로 메일에 대한 소소한 답장을 해나간다.

메일의 내용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사연들이다.

남편을 잃은 어느 아내의 사연, 환자가 있어서 가족여행을 못 간다며 답답하다는 사연 등…….

언니는 남자친구의 고향인 한국여행을 하면서 상처를 치유해 가고, 동생은 첫사랑 무기를 꿈속에서 만나면서 상처를 치유해간다. 그리고 집에만 있던 동생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삶의 무게를 덜어내게 되고…….

 

가령 여행을 하지 않는 대라도, 여행을 하듯 사는 삶이로군. 그런 생각을 했다.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이, 꿈과 현실이 뒤섞여, 가끔 맞닿거나 떨어지는 광활한 바닷속을.

도토리 자매는 오늘도 헤쳐 나간다. 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책에서)

어릴 적 부모님의 죽음, 친척집을 떠돌며 유랑하던 불안감이 이들을 우울하게 했을까.

상처 입은 영혼들의 서로 함께하며 햇빛 속으로 걸어가는 이야기다.

자신의 속마음과 만나면서 구름을 걷어내고 안개를 헤쳐 나오는 이야기다.

외로운 이들에게 친구가 될 수 있는 이런 홈페이지가 어딘가에 있겠지. 라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인터넷의 발달, 이동통신의 진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일상의 답답함을 메일을 매개로 해서 담담하게 그려가는 이야기다. 위로와 치유의 소설이다.

한국여행, 삼계탕, 김치, 한류 이야기들이 읽는 맛을 더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그의 에세이인 <인생을 만들다>를 읽은 적은 있지만. 편안하고 따뜻한 작가의 문체가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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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 유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22
루이즈 보스.마크 에드워즈 지음, 김창규 옮김 / 북로드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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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캐치 유어 데스]사이코 과학자의 광기가 몰고 온 판도라 바이러스의 공포......

 

아마존 소설, 전자책 부문 1위!

캐치 유어 데스.

 

장면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다.

스릴러의 긴장감과 로맨스의 설레고 짜릿함과 소설의 문학성까지 갖춘 이야기가 기대 이상이다.

사이코 과학자의 광기와 집착이 부를  전염병의 실체.

 소름돋을 정도로 공포스러운데......

케이트는 아들 잭을 데리고 영국으로 도망쳐 왔다.

그곳에서 첫사랑 스티븐을 닮은 남자를 우연히 보게 된다. 그는 스티븐의 쌍둥이 형인 폴이었고 인터넷 보안업자라는데……. 그는 스티븐이 남긴 편지를 케이트에게 건네준다.

 

-케이트 말이 맞았다고 말해줘. 그리고 용서해달라고 말해줘.

스티븐이 하려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16년 전의 기억을 상실한 케이트는 폴과 함께 수수께끼를 풀고자 옛 감기연구소와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그녀를 쫓는 남자들이 있었으니. 결별 상태인 남편과 전 감기연구소 잡부인 존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그녀의 뒤를 추격하는데…….

 

감기바이러스 연구소는 레너드 아저씨의 소개로 잠시 일하게 된 곳이다.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 하버드 연구원으로 가게 되었기에 경험삼아 시작한 일이 그녀 인생을 바꾸게 할 줄이야…….

케이트의 부모님은 아프리카에서 바이러스연구를 하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돌아가신 분들이다. 그런 케이트에게 바이러스 연구는 운명이었을까.

 

어느 날 감기 연구소에 의문의 화재가 발생하게 되고 첫사랑 스티븐과 룸메이트 새러를 잃게 된다. 그리고 그 당시의 기억을 몽땅 잊은 채 케이트는 버넌 교수와 결혼했고 지금은 그에게서 도망치려고 하고 있다.

유령이 된 남자, 지금은 잊은 남자인 스티븐을 닮은 쌍둥이 형 폴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숨 고를 새도 없이 남편이 그녀의 뒤를 쫓고, 전 감기연구소 직원 존마저 위협적으로 쫓아오고…….

레너드의 부인 베인브리지가 건네 준 기밀문서에는 케이트의 기억을 삭제토록 한 재조정 처리가 기록되어 있다.

해킹의 전력으로 감옥경험이 있는 폴은 경찰의 도움을 받지 말라는데......

 

바이러스를 퍼뜨려 인류를 위협하려는 감기 연구소 소장 건트의 목적은 무엇일까. 명예일까, 부일까, 아니면 세상에 대한 지배욕일까.

건트의 지하 연구소에서 만난 노인이 죽은 줄 알았던 스티븐임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더욱 충격에 빠지는데......

스티븐이 세상과 등지며 바이러스 연구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존이 케이트에 집착하는 이유는 상사인 건트의 명령뿐인 걸까.

동생을 빼다 박은 듯 한 폴과 케이트의 사랑은 계속될 수 있을까.

 

AG-769는 영리한 속임수를 썼다. 바이러스를 감싼 단백질 덕분에 숙주 세포의 면역 반응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건트는 판도라 바이러스가 그런 동작을 흉내 낼 수 있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치사율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마침내 판도라 바이러스가 완성된 것이다. 판도라는 완벽했다.(책에서)

 

책에서는 세상의 모든 바이러스들이 나와 있다. 건트 박사가 바이러스 수집광이었으니까.

파필로마 바이러스, 헤르페스 바이러스, HIV바이러스, 사스, 에볼라, 마르부르크, 돼지독감, 조류독감, 스페인독감…….

인간의 면역체계와 전염병 전이의 섬뜩함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각종 바이러스와 전염병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집착과 광기가 극에 달하는 경우 일어날 파괴력이  소름돋게 한다.

욕망과 집착, 광기와 애증이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기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소설이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반전과 반전이 계속되는 긴박감은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실제 영화로도 만나고 싶을 정도다.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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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올빼미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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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올빼미]천년 넘게 운문만 존재하던 페르시아 문학계, 최초의 산문 소설!

 

저자인 사데그 헤다야트(1903~1951)는 이란의 귀족 가문, 페르시아 시인의 후예, 시인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태생부터가 문학적인 그는 국가 장학생이 되어 유럽 유학을 떠났다. 엔지니어링과 건축학을 공부했지만 그를 끌어들인 건 문학이었다. 세계문학과 유럽 문학에 전념하게 되면서 프란츠 카프카, 에드거 앨런 포,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등에서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테헤란으로 돌아왔지만 정치적인 상황에 실망해 인도로 갔고 그곳에서 <눈먼 올빼미>를 출간하게 된다.

삶에는 서서히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이 상처의 고통이 어떤 것인가 타인에게 이해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책에서)

 

주인공은 페르시아의 변두리 마을의 어둡고 칙칙한 어느 골방에 사는 골방필통 뚜껑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광기와 제정신 사이의 중간 지대에 갇힌 고독자이다.

 

어느 날, 방 안의 환기구를 통해 우연히 바깥에 있는 한 여인을 보면서 관능과 절망과 영감을 얻게 된 화가.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에 인도 탁발승처럼 생긴 구부정한 노인에게 긴 검은 옷을 입은 처녀가 나팔꽃 한 송이를 건네는 장면은 꿈속일까. 그들 사이에 놓인 작은 실개천은 신화적이기까지 느껴진다. 꿈처럼, 전설적인 여인과 노인의 환영이 반복되면서 욕망과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드디어 여인은 화가를 찾아오게 되고 화가의 방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노인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고대 도시의 유적지에 매장하게 된다.

 

 노인 역시 주인공의 도 다른 자아일까. 화가의 먼 미래일까.

삶과 죽음, 부활의 혼수상태에서 드러내는 마음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작가의 필체가 아름답게 흐른다.

 

조금 전 내가 경험한 기분 좋으면서도 공포스러운 떨림의 파문이 아직도 느껴졌다. 그 순간부터 내 삶의 흐름이 바뀌었다.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 이 세상사람 같지 않은 그녀를 한 번 일별한 것만으로도 그녀의 존재가 내 안에 각인되었다.(책에서)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는 두 눈이 휑한 올빼미 형상이었다. 그런 자신의 자아인 그림자와 삶의 고독, 욕망과 절망, 불안과 꿈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자신의 생각이든, 현실과 전혀 다른 상상이든 올빼미 형상의 그림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유일한 친구이자 또 다른 자아이다. 그는 또 다른 자신의 자아에게 자신의 생각을 그림 그리듯 자세하게 털어놓고 있는데…….

 

어느 날, 밤의 얼굴을 한 눈먼 올빼미가 검은 날개를 펴고 내 집 지붕 위에 내려와 있었다. 한낮이었다. 태양이 머리 위에 떠 있었지만, 그 검은 날개가 나의 의식을 뒤덮어 나는 아무 빛도 볼 수 없었다. 눈을 뜨고 태양을 바라본다. 나 지신이 눈먼 올빼미가 되어 있었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어둠이 있었나 놀랄 정도로 그 심연이 깊다. (책에서)

 

타인과의 두꺼운 벽, 두려운 심연을 발견한 화가는 침묵이 최선임을 알고 자신의 자아와 조우하기 시작하는데…….

어둠조차 볼 수 없을 때 보게 되는 삶의 이면에는 각자의 진실이 숨어 있을까.

누구나 천 개의 얼굴을 가지고 얼굴을 끊임없이 바꾼다지만 우린 그런 가면조차 인식하지 못하는데…….

작가가 내면과 현실을 통찰하는 모습이 분명, 우울하고 극단적이며 어둡고 칙칙하다.

하지만 사회를 꿰뚫는 시선, 내면의 불안과 욕망과 마주하는 섬세한 필치는 역시 수작이다.

 

<눈먼 올빼미>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 풍경을 상징적이고 반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 안의 그림 안의 그림처럼. 어둡고 슬프고 광기가 어려 있지만, 아름다운 소설이다. -류시화

 

조국의 정치적, 종교적인 상황이 작가를 염세주의로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모욕적인 비판이 예술적 비판을 대체하는 것에 좌절감을 느꼈다는데…….

더 절망하고 더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된 그는 삶에 지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에 필적하는 현대 이란의 대표 소설이라고 한다. '페르시아어로 써진 가장 중요한 문학 작품 중 하나'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년 넘게 운문만 존재하던 페르시아 문학계에 등장한 최초의 산문 소설이다.

20여 개 국에서 출간되었으나 '읽으면 자살하게 된다.'는 우려 때문에 독서 금지된 작품이라는데……. 이란에서는 아직까지 금서이다.

한국에서도 최초의 번역본이다.

 

읽으면 자살하게 된다는 문구 때문에 소설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읽게 되는 소설이다.

긴장하며 장막을 치고 읽어야 하나, 감정이입해서 읽어야 하나를 고민하며 읽게 된 소설이다. 이런 고민, 정말 처음이다.

고백하건데, 분명히 마음의 벽을 치고 읽었다. 혹시나 깊은 우울과 깊은 절망에 빠져 들까 봐 말이다. 불안과 공포의 감정 속에서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게 되려나 싶어서 말이다.

분명 감정 묘사나, 심리 묘사가 예리하고 섬세한 것은 맞지만 작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서 빨려서 읽은 것은 아니다.

아편이나 마약, 술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특효약이 필요한 아픔을 난 아직 몰라서 일까.

지금은 작가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에.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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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 Movie Tie-in 펭귄클래식 139
솔로몬 노섭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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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노예의 삶을 직접 경험한 생생 노예 기록!

 

 

흑인 노예들의 삶을 다룬 작품인 <뿌리>,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은 적이 있다.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잔학상이 너무나 끔찍해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작품들이다.

 

 

 

노예 12년.

이 작품은 노예의 삶을 직접 경험한 노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장 진솔한 문학작품이 아닐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 어떤 소설보다 노예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을 테니까.

 

 

 

이미 영화로 <노예 12년>을 보았기에 소설로도 읽고 싶었다. 영화의 각색으로 사실이 왜곡되기도 하기에 노예의 진실에 더 가깝게 가고 싶었다고 할까.

책을 읽으면서 소설의 내용이 영화와 진배없기에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며 생생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는데…….

 

 

 

 

 

자유인이었다는 솔로몬 노섭의 기구한 인생과 노예제도의 잔인함을 알리려 애쓴 활동들을 읽으면서 깊은 슬픔과 진한 감동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사람의 운명이 한순간에 바뀔 수 있음을, 찰나의 순간에 달라질 수 있음을, 우연이 운명일 수 있음을, 운명이 의지와 상관없이 기구할 수 있음을, 시절이 흑인에게 불리했던 때의 우연과 운명을 생각해 본 시간이다.

 

 

 

 

솔로몬 노섭은 어떻게 해서 노예가 되었을까.

1808년 노예 제도가 폐지된 뉴욕 주 미네르바에서 태어난 노섭은 태생부터 자유인이었다.

그는 결혼을 하고 세 아이의 아버지로, 바이올린 연주자로 행복하고 성실하게 살았다. 1841년 일자리를 찾으러 워싱턴에 갔다가 노예상인에게 납치된다. 그리고 노예 학대로 악명 높다던 루이지애나 주 농장에서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장장 12년의 세월동안 가축처럼 대우 받으며 말이다.

탈출의 기회를 엿보았던 그는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다가 캐나다 출신의 목수 배스와의 만남은 그에게 기회가 된다.

 

 

 

 

배스도 내 간절한 호소에 감동을 받았는지, 지금껏 누군가의 인생에 이렇게 깊은 관심을 가진 적은 처음이라며 우정을 다짐했다. (중략) 자신은 내가 자유를 되찾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이고, 국가의 수치라 할 수 있는 노예 제도에 맞서 끝까지 싸우고 싶다고 했다.(책에서)

 

 

 

영화에서는 브래드 피트가 배스 역으로 나온다. 마지막에 짧게 나오는 역이었지만 강렬하게 기억될 정도로 이 순간은 극적이었는데…….

 

배스 같이 자신의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노섭의 운명은 또 어디로 흘러갔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드디어 노섭은 1853년 극적으로 구조된다. 보안관과 변호사가 와서 확인하는 과정은 정말 살 떨리는 순간이 아닐까. 초조하고 긴박한 순간,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는데…….

더 감동적인 건 자유인 신분이 된 솔로몬 노섭은 자신의 남부 노예 실상을 생생히 담아 <노예 12년>을 발표했고 이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다. 노예가 직접 쓴 체험담을 백인들은 상상이라도 했을까.

 

 

 

노섭은 자신의 12년 노예 경험담 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팔아넘긴 노예 상인들을 고소하게 되고, 노예 제도의 야만성과 잔혹함을 알리러 강연과 연설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탈주 노예들을 캐나다로 도피시키는 비밀 조직 '지하철도'에서 활동했다는 증언도 있다는데…….

그리고 1857년 노섭은 행방이 묘연해졌다는데…….

노예 상인들에게 납치되어 살해되었다는 일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이 소설과 비교되는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이 작품보다 한 해 먼저 출간되었고 소설의 배경 역시 노섭이 노예생활을 했던 곳 근처였으며 노예들의 비참함이 비슷하게 기술되어 있다고 한다. 원문의 것을 그대로 옮긴 삽화가 당시 상황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도 실제 솔로몬 노섭과 닮은 치웨텔 에지오포가 맡아서 실감을 더해줬는데......

두 작품 모두 노예 해방의 도화선이 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는데…….

흑인노예들의 삶을 다룬 소설들을 여러 권 읽기는 했지만 가장 잔인한 실상을, 가장 생생하게 육성 폭로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랜 세월동안 인간이 자유와 정의, 인간다움을 부르짖어 왔지만 그건 백인들이나, 서양인들, 일부 귀족층에 국한된 얘기였음을 생각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자유와 정의, 평화와 인간존중을 생각해 보게 된다.

우연과 운명, 탐욕과 양심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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