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구한 일본인 달걀이 걸어 간다 : 베델과 후세 2
이영현 지음 / 하우넥스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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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구한 일본인/이영현/하우넥스트]베델과 후세2 , 이번에 독도문제를 파헤치다!

 

퓨전 역사소설이라고 할까. 역사와 상상, 현실이 가미된 소설이다.

달걀이 걸어간다-베델과 후세 1편에 이은 2편이다. 2편에서는 일본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인정 과정이 나와 있다. 동아시아의 화약고인 독도가 평화의 성지로 바뀐 이유엔 베델과 후세 재단의 활약이 컸다. 책에서는 독도가 한국 땅임을 논리적으로 보여준다.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명쾌한 논리를 펼친다.

1편이 베델과 후세라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그린 소설이라면 2편은 순수창작소설이다.

첫 장면은 일본에 있는 한국 대사관 앞에서 우익 성향의 일본인들이 벌이는 데모로 시작한다. 이들은 일본의 땅인 다케시마를 한국이 불법 점유하지 말고 당장 일본에게 반환하라며 시위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국회의원들은 울릉도와 다케시마를 방문해서 항의하겠다고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들의 입국을 거부해버린다.

 

독도의 영유권에 대해 한국과 일본 간의 입장 차이가 거세질 즈음 베델-후세 재단의 후세 와 만철도 독도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며 자료를 모으게 된다.

베델-후세 재단은 조선을 위해 헌신했던 영국인 기자 토머스 베델과 일본인 인권 변호사 후세 다츠지의 뜻을 기려 세워진 재단이다.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

1904년 영국 크로니클 지의 특파원으로 러일전쟁 취재차 조선에 파견된 그는 해임된다. 해임된 이후 그는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인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세운다. 그리고 주필 박은식, 집필진 신채호, 장지연, 안창호들과 함께 조선의 실상을 알리며 항일 사상을 고취시키게 된다.

그는 신문을 통해 일제에 억압받는 조선인의 실상, 을사보호조약의 무효, 명성왕후 시해사건, 항일무장 투쟁, 헤이그 특사 파견 보도, 국채보상 운동 등을 국내외에 알렸다. 1907년, 1908년 벌금형과 금고형을 받게 되면서 심장병을 얻었고, 결국 그는 37세의 나이에 조선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금 그는 마포 양화진 외인 묘지에 잠들어 있다. 조선을 위해 헌신하며 했던 조선인을 구하려 했던 양심적인 언론인이었다.

 

일본인 인권 변호사인 후세 다츠지(1880-1953).

평등과 인도주의적 신념으로 일본 내 하층민의 권리보호에 노력을 기울였고 조선과 대만 등 식민지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변론해 준 변호사다. 조국인 일본의 침략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한국인과 대만인들의 인권을 위해 변론해 준 인권 변호사다.

1919년 2.8 독립선언으로 조선 유학생들이 잡혀가자 조선 유학생들을 변론했고 1920년대 의열단 사건과 관련한 변호를 했으며 일본의 조선 토지 수탈과 관련한 조사를 위해 조선을 방문하기도 했다.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자행한 조선인 학살사건을 비판하기도 했다. 1946년에는 '조선건국 헌법초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역사학을 공부한 후세 강사의 절망은 일본이 강제징용에 대한 죄책감과 보상대책이 없다는 거였다. 심지어 지금 일본은 한국의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것을 교과서에 게재하고 있을 정도다. 종군위안부와 강제 징용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는 보상 특별법은 부결이 된 상태다.

그럴수록 후세와 만철, 수전, 빌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사실적으로, 논리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모아 토론하게 된다. 많은 일본인들이 사실을 알고 더 이상 역사 왜곡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들은 조사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일본의 조선에 대한 탐욕이 이미 1876년에 체결된 강화도조약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1965년 한국과 일본 간의 조약에는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 과거에 대한 보상 문제가 들어 있다. 하지만 일본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의정서는 비준되지 않았기에 조약으로서의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우월적 입장에서 제시했던 의정서에도 독도에 대한 조항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그때까지도 일본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인정했다는 말이다.

 

더구나 수전을 통해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61년 9월 8일) 내용은 더욱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하여 한국에 관한 모든 권리,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제 2장 영토 제 2조)

 

당초 초안에 일본이 독도도 포기한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마지막 서명하는 최종 조약에는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왜 빠졌을까. 초안대로 서명했다면 지금처럼 일본이 억지를 부리지 못했을 텐데…….

 

그 당시에는 일본이 절대적인 우위였다. 폐허가 된 한국에 비해 일본은 1950년 한국전쟁을 기반으로 급격하게 성장했을 때니까. 그런 일본이 좋은 기회를 내버려 두고 이제와서야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이 전쟁터였던 1950년 대 일본의 경제는 엄청나게 성장했으니까. 한국전쟁으로 경제 특수를 누렸던 일본은 그 자금으로 1964년에 도쿄 올림픽까지 개최할 수 있었으니까. 6.25전쟁으로 일본은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를 편성할 수 있었고 군사력도 키우기도 했는데......

 

다행히 베델과-후세 재단의 일본인 회원이 증가하면서 만장일치로 독도문제를 재단공식활동으로 채택하게 된다. 이미 모아왔던 독도가 한국 고유영토라는 근거 자료들을 알리고 공유하게 된다.

하지만 보수우익 세력들의 규탄집회는 더욱 거세지고 급기야 일본과 한국이 독도 앞에 대치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소설에서는 일본인이 독도에서 독도가 한국의 땅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밝히게 된다.

그가 제시하는 지도에는 6.25전쟁 당시 일본이 한국에  일본군 부대를 보낸 곳이 나와 있다.  한국의 공산화를 막는 것은 일본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의미도 되었기에 구부대 파병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군대를 파견한 곳은 독도가 아닌 인천과 원산이었다고 한다. 형식적이나마 군대를 독도에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약 독도가 자신의 땅이었다면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일본 땅이 아님을 스스로 인지한 결과라는 것이다. 우세한 입장임에도 독도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그들 스스로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일본인 스스로 독도가 한국의 땅임을 증언하는 모습이 유쾌 상쾌 통쾌한 소설이다. 실제로 그런 날이 올까.

 

소설에서는 1편과 2편의 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1편에서 영현이 지하철에서 구해준 일본인이 2편에서는 한국을 위해 정의의 사신으로 등장한다.

 

독도가 한국 땅임을 말하는 법적인 자료, 일본인들의 모순된 행동을 반박하는 자료들이 있어 유익한 소설이다. 학생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달걀이 걸어간다.'는 말은 에티오피아 속담이라고 한다. 달걀은 걸을 수 없지만 병아리가 되고 닭이 되면 걷게 된다는 뜻이다. 모든 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누군가의 작은 시작이 나중에는 큰 결실을 맺게 된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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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같은 목소리
이자벨라 트루머 지음, 이지혜 옮김 / 여운(주)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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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같은 목소리/이자벨라 트루머/여운]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상실 과정을 그린 소설!

 

생명연장의 꿈을 꾸던 인류, 백세건강이 축복이 아닌 재앙이라는 말이 나돈다. 아프면서 백세를 산다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백세를 산다면, 그렇게 산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다. 백세건강이 쉽지 않다는 건 사실이니까.

예전엔 노망이라고 했던 치매. 치매의 종류는 다양한 모양이다. 그 중에서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원발성 퇴행성 치매의 한 유형이라고 한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전체 치매 질환자의 60~70%에 이른다고 한다.

 

뇌 기능의 퇴행인 치매의 증상은 다양하다고 한다. 치매의 주된 특징은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능력을 점점 상실한다는 것이다. 건망증, 기억력 상실에서 시작해 집중력이 떨어지고,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공간 감각도 떨어진다. 그리고 실어증까지 발생한다.

 

치매 말기에는 거의 모든 기능이 상실한다. 치매가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2차적 질환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치매에 걸리면 감염 등에 의한 2차적 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평소 하던 행동이나 게임을 집중해서 하면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책은 지그프리트 그람바흐가 자신의 치매 진행 과정을 기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아버지의 입장이 되서 그 심리상태를 따라 가보는 이야기다.

 

처음에 주인공은 건망증인 것처럼 숨긴다. 그래서 가족들은 아무도 치매임을 눈치 채지 못한다.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황당하고 두려웠을까. 때로는 그런 상황이 부끄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할 텐데.

 

여든 살 생일을 맞은 지그프리트는 생일잔치를 벌인다. 딸 바바라, 아들 미하엘, 아내, 시장, 친구들이 축하하러 와 있다.

말이 어눌해진 지그프리트를 대신해 아내가 자신을 소개한다. 돈은 없었지만 먹을 것이 풍부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전쟁이 발발해서 17세의 어린 나이에 벨기에 전선에 투입된 이야기,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던 이야기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아내가 대신한다.

 

아내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도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사람들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상한 일이다.

목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그림자 같은 목소리'다.

(본문에서)

 

점점 지그프리트에게는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다음에 뭘 해야 할 지, 조금 전에 무슨 말을 들었는지 더 이상 생각이 안 난다.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녀의 목소리조차 웅웅거린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림자 같이 실체를 모르는 말 뿐이다. 잃어버리는 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탓일까. 하지만 도무지 주의를 기울이거나 몰두할 수 없다. 정신을 바짝 차려도 되지 않는다. 모든 게 예전 같지가 않다.

그는 사람들이 와서 아는 체를 할 때가 가장 두렵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며 반가워 하다가 다들 안 된 표정을 짓는다. 아내가 심부름을 시키면 기억을 되살리느라 힘이 든다. 내가 뭘 가지러 온 건지, 뭘 가져 가야할 지 당혹스럽다.

 

오늘 점심 메뉴는 뭐요? 오늘 점심 메뉴는 뭐요? 오늘 점심 메뉴는 뭐요?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지그프리트는 점점 아내와 친구들의 눈치 보기가 부담스럽다. 조심할 것도 많아졌지만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 지,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도 자주 잊어버린다. 예전처럼 빠르게 생각할 수도 없고 몸도 빠르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예전에 잘하던 춤추기도 깜박 잊고 산다. 서류 정리, 세금 고지서도 이젠 자주 깜빡 잊어버린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억을 더듬을수록 머리가 어질하고 눈앞이 흐려진다. 그럴 땐 공기 들이마시기도 힘들다. 숨이 가빠진다. 눕고 싶다.

지그프리트는 점점 기억하려니 몸이 아프고 경련이 인다. 나중엔 신체적 기능, 언어적 기능마저 상실해 간다. 행동은 더 느려지고 발음은 점점 외계어가 되어간다.

딸이 치매를 앓는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쓴 특이한 소설이다. 남의 심리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지만 알츠하이머 환자의 입장에서 심리파악이 될까. 그래서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읽을수록 환자의 입장에 동화되다보니 마음이 묵직해졌다. 가정을 위해, 사회를 위해, 자신을 위해 살았던 한 평생이 기억상실과 언어상실, 신체기능 상실로 마무리가 되어서 슬펐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다면 어렵다고들 한다. 그래서 요양병원에 맡기기도 하고 요양원으로 보내기도 한다. 기억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환자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사노라면 많은 기억을 해야 한다. 기억 하느라 지치는 일생이다. 얼마나 진저리 쳤으면 잊어버리고 싶은 걸까. 생의 막바지에 잃어버리고 싶은 기억,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은 무엇일까.

묵직해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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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나 1997 - 상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용감한자매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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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나 1997/용감한자매/네오픽션]응답하라 1997, 좀 놀아본 언니들 버전!

 

좀 놀아본 언니들의 온몸 뜨거워지는 고백!

왕년의 클럽 '줄리아나' 나이트클럽!

<위기의 주부들>보다 위태롭고.

<섹스 앤 더 시티>보다 발칙하다!

 

띠지에 있는 문구들이 몹시 섹시 찬란해서 기대보단 반감이 들었던 책이다. 더구나 이대 나온 오 자매는 이십대 나이트클럽 생활도 즐겼고 20년 후 착실한 아내가 되어 잘 살고 있다는 후문? 이라는 문구에서는 거센 반발까지 일었다. 그렇고 그런 흥밋거리만 늘어놓는 아줌마들의 반란이라고 생각해서 천천히 읽으리라 다짐하며 구석에 밀쳐두기까지 했다. 처음 몇 장을 넘기면서도 많이 놀아본 언니들의 그저 그런 불륜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반전이다.

이야기는 송지연에게 방송국 작가의 섭외전화로 시작한다. TV <책하고 놀자>프로그램에서 재즈가수 제니퍼가 <줄리아나 1997>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줄리아나 1997>은 송지연이 20대에 쓴 소설이었다. 이대 나온 오 자매의 호화찬란한 '나이트클럽 줄리아나' 죽순이 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었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문학 좋아하던 시절에 탄생한 책이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작가의 꿈은 멀어져 버린 지연이었다.

 

지연은 그렇게 방송을 한 뒤 이번에는 프로그램 폐지라면서 신년회 겸 마지막 회식 자리를 초대받게 된다. 유명한 소설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라고 기대하며 나갔는데 그곳에서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당신을 어디서 봤을까요?

나 정말 본 적 없어요?

 

호기심에 이유가 없고 끌림에 원인이 없는 게 아니다. 대개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 불륜에도 인과관계가 있지 않을까. 이십대의 어느 순간을 기억하는 남자와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 이들의 운명은 20년을 거스를 정도로 질긴 것일까.

 

업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남성패션잡지 편집장 진수현과의 만남은 지연의 호기심을 끌고 만 것이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으면 운명이라고 했던가. 둘의 대화는 마가 뜬 적도 없고 포인트를 놓치지도 않았으며 말이 겹치지도 않았다. 이미 기혼인 두 남녀 사이에 전기가 통한 것이다.

 

지연은 방송출연을 계기로 삶의 활력을 얻으면서 다시 소설을 쓰게 되면서 이십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더구나 마법에 걸리듯 대화가 매끄럽게 통하는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통해도 되는 건가, 이렇게 통할 수도 있는 건가.

 

지연은 방송 출연이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생기가 살아나고 느려지던 삶이 빠르게 움직여 간다. 인생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얼마나 있을까. 인생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남자, 선수 같은 수현의 출현에 지연은 당황하면서도 빨려들게 된 것이다. 적당한 매너와 적당한 대담함의 비율이 선수의 수준을 가늠한다면 수현은 선수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누구나 아픈 사연은 있는 법이다.

지연은 남편의 투자실패, 남편의 외도, 시어머니의 우울증으로 외롭고 힘든 시절을 겪으면서 한 번의 불륜을 저지른 적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글을 쓰고 살림도 챙기고 부업으로 자아실현까지 하는 바람직한 유부녀의 모습에 스스로도 뿌듯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남자의 등장은 삶을 달콤하게 하기도 하고 삶의 전율도 안겨 주기도 하고, 삶의 불안을 안기기도 하는데……. 엄마의 자리를 지킬 것이냐, 운명을 따를 것이냐.

 

'트렌디' 편집장 진수현은 특유의 유머와 장난기로 태생적인 외로움을 철저히 감출 수 있는 남자다. 어린 시절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일본인 양부를 얻게 되었지만 포근한 가정이 그리운 남자다. 양부에게 쫓겨 한국으로 오면서 잡지사 기자가 된 것이다. 가정이 그리운 수현은 약점을 보이기 싫어하는 결벽증을 가진 잡지사 오너의 딸과 결혼을 하면서 재벌가의 사위가 되었다. 하지만 그에겐 아무도 모르는 그리움이 감춰져 있었다.

떨떠름하게 펼쳤던 책이다. 하지만 40대 유부녀의 섹스라이프, 진부한 일상,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에 대한 보복 같은 일탈, 상처를 안은 영혼들의 끌림, 줄리아나 오 자매와 진수현의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묘한 매력을 준다. 더운 여름을 잊게 하는 마력이 있는 소설이다. 읽는 재미가 있다.

 

 여자를 기억하는 남자와 남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미스터리처럼 흘러간다. 진부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 같은 이야기다. 응답하라, 1997! 줄리아나클럽에서 출첵하던 언니들의 버전이다.

 

세월이 흘러도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영원할 것이다. 따분한 일상에 청량감을 주기도 할 것이다. 모든 끌림에는 이유가 있다. 모든 호기심에는 이유가 있다. 누구에게나 아픔도 있고 그리움도 있다. 뭐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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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온 첫 번째 전화
미치 앨봄 지음, 윤정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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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온 첫 번째 전화]죽음이 끝나지 않은 사람들…….

 

지금은 첨단과학의 시대다. 생전에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모습을 녹화하고 사진을 많이 찍어두었더라면, 언제라도 꺼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실제론 죽은 이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가 없다. 사랑했던 이의 과거 흔적들이 남겨져 있지만 현재 그의 웃음소리가 그립고, 그녀의 격려의 말이 그리울 것이다. 만약 천국에서 전화벨이 울린다면, 직접 죽은 이와 통화를 하게 된다면…….

 

이 소설은 가상의 공간인 콜드워터에서 천국의 전화벨이 울리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죽음이 끝나지 않은, 기적을 꿈꾸는 이야기다.

-엄마야……. 네게 할 말이 있는데.

-아빠? 로비예요. 난 행복해요, 아빠. 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아셨죠?

-다이앤 언니가 전화했어요.

-나는 여기 잘 있단다.

 

어느 날 작은 마을 콜드워터에서는 죽었던 사람, 사랑하던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전쟁터에 나가 죽은 아들, 병원에서 죽은 아내, 알츠하이머로 고통 받다가 죽은 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모두 천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공통된 메시지를 담은 내용이었다. 갑작스런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 이들은 기적의 천국 전화를 주변에 전하게 된다.

 

기적의 천국 전화에 대한 이야기가 콜드워터에 퍼져가면서 모두들 천국 전화에 대한 기대감이 번져 간다. 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는 아이, 천국 전화를 받고 싶다고 찾아오는 방문객들도 찾아오고……. 그리고 마을은 방송사의 관심을 받게 되는데…….

 

끝이 끝이 아닌 이야기, 죽음으로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 전혀 예상 밖의 반전을 가져오고…….

자신의 실수에 대한 미안함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한 번만 더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위해 전화조작 했다는 편지를 받게 되는데…….여덟 개의 목소리와 타이밍과 다른 세부적인 것들을 맞춰서 전화조작을 했다는데…….

전화와 관련된 기적의 이야기가 황당하게 끝나지만 현실감 있는 결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해서 한 번 더 그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실제로 들을 수 있다면 그런 상상만으로도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전화를 발명한 벨의 이야기도 덤으로 들어 있는 소설이다. 문명의 이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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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영원히 계속되리
김태연 지음 / 시간여행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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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영원히 계속되리]이제는 수학소설이다!

 

독특하다. 수학적 논제, 수학의 정리를 소설로 다루었다니. 과연 참신하다. 평소 수학소설을 읽고 싶었다. 능력이 된다면 수학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러던 중 본격수학소설을 만났다. 불교와 접목한 수학소설이라고 할까.

-정사각형(⌧)을 홀 수 개의 삼각형으로 나누어 각 삼각형들의 면적을 같게 할 수 있겠느냐?

-다른 도형에 비해 삼각형, 삼각법, 삼각함수에 왜 공식이 많은 줄 아는가?

- 왜 5차원 이상의 모든 유클리드 공간에서는 정다포체(polytope)가 단 3개만 존재하지?

-열세 개의 콩을 늘어뜨려서 좌우 모양이 같게, 반듯한 직사각형을 만들어볼래?

-이승과 저승 사이의 교환법칙이 성립할까? (책에서)

 

삼각산 도사의 이력이 대단하다. 해방 전 연희전문 수물과, 경도제대 수학과, 해방 후 김일성대 수학과를 1년도 채 다니지 않았던 이유는 더 배울 게 없다는 것이 전부였다니.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에서 영일의 양부인 한초선사는 10년동안 묵언수행 후 '이것이 답이다.'라며 손가락으로 23571을 나타내며 그대로 열반에 들었다니…….

 

모든 이야기가 수학과 관련된 문제풀이, 난제풀이로 채워진 소설이다. 수학적 상상력, 수학에 대한 고민, 수학의 즐거움을 아는 이들이 생각해 봤을 문제들이다.

 

한초선사가 내 준 화두엔 ⅟18 의 순환마디가 왜 012345679일까 이다. 순환마디에 8이 빠진 것이 팔상전과 관련 있을까. 순환소수, 순환마디의 규칙은 무엇일까. 무한의 수 세계에서 어떤 규칙을 찾는다면 우주의 법칙을 알 수 있을까.

선조들은 짝수는 여성, 홀수는 남성의 특징이 있다고 보았다는 이야기, 11이나 13 같은 낭수 (郎數, prime number)를 일본이 명치유신 때 소수(素數)라고 번역했다는 대목에서는 수학적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를 준다. 소수출현빈도와 성인출현 빈도수가 비례한다는 추측은 수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참매미는 알에서부터 성충이 될 때까지의 유충기가 5년이다. 다른 매미들도 7년, 13년, 17년 주기로 나타난다고 한다. (책에서)

 

매미들의 소수본능, 데이지 꽃에 나타나는 소수들, 모두가 신기한 자연속의 수학 이야기다.

1을 4개 써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큰 수는 무엇일까. 4살짜리 영일이 맞추는 문제면서 한초의 양자가 되고……. 8살의 서여수의 1에 대한 이야기는 농담 같고 멍청한 물음이지만 대단히 철학적이다. 긴 1, 짧은 1 사이에 무수히 많은 1이 존재 하다니……. 1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여수는 수학천재일까.

 

무한, 유한을 알려면 그 방면에 한계를 드러낸 철학이나 종교의 힘 대신 수학의 힘을 빌려. 가령 제타함수부터 공부하는 게 지름길이야. 제타함수가 무한을 유한으로 바꾸는 마법의 지팡이니까.(책에서)

 

소수가 어떤 규칙으로 분포해 있는지를 밝히는 리만 가설의 단골손님인데…….

 

-예로부터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인간의 모든 삶에 5란 수가 깊게 스며있다고 보았다. 오행이니 오덕이니 오경이니 오복이니 하는 것들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다. 전통적으로 5는 상서롭고 길한 수였다.

-귀거래사'로 유명한 도연명이 왜 집에 다섯 그루 수양버들을 심었을까.

-정신분석학자 융이 자연적 인간의 수로 5를 간주한 이유가 과연 과학적일까.(책에서)

5와 55에 관한 스승의 메모들…….

 

오각형의 한 내각이 108도인 것과 108 번뇌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황금비를 가진 완전한 도형 오각형이지만 한 평면을 채우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불완전함도 발견하게 된다.

 

시간 같은 선, 공간 같은 면, 다뉴세문경, 한초55주기, 억수종, 일물파, 숫자 피라미드, 손가락을 태우고 자르며 하는 단지고행, 동양수학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독립운동가 이상설 열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수학교과서 <산술신서>를 편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양수학의 고전들인 <구장산경>, <한산서>, <제승낭수>, <해도산경>, <수술기유>…….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수학의 문제, 난제, 수학 정리 등을 화두로 삼고 소설로 만들었다니, 대단하다. 종교적인 수학, 수학으로 화두를 삼고 수학으로 선문답하는 모습이 피타고라스학파 같은 느낌도 든다. 열린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가 수의 무한성을 의미한다는 생각도 들고…….청소년을 위한 쉽게 쓴 수학소설도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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