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파리 위드러브 - From Paris with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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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영화를 검색하는 와중에 누가 재밌다는 말을 해서 <서틴>과 같이 봤다. 

근데, 두 영화에 모두 존 트라볼타가 나와서 좀 짜증났다. 

<프롬 파리 위드 러브>에는 이녀석이 주인공으로 나온다..ㅎ 것두 아주 터프하게~ 

흐음~ 뭐, 나름 재밌게 봤지만, 이걸 극장에서 봤다면 돈 아까와했을 영화다.. 

러닝 타임은 짧고 반전도 없으며, 매우 진부한 내용으로 일관한다는 거.. 

사건의 개연성도 없어 보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만했던 것은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때문이다. 

그가 주연으로 열연한 미드 <튜더스2>를 너무도 재밌게 봐서 그런지, 영화에 그가 나와서 넘 반가웠고(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봤다) 존 트라볼타 보다는 그의 연기를 보는 것이 내내 즐거 웠다.  

키도 그리 크지 않은 넘이 어찌 그리도 수트가 잘어울리는지.. 

오락영화의 정석을 충실히 따르는 진부한 영화지만 그래도 두 캐릭터의 힘이 영화를 볼만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무료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분이라면 강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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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자마자 서점으로 직행했다.. 

드디어 휴가.. 2주간의 긴~ 휴가..휴가 기간에 읽을 책을 사기 위해 반디 문고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월드컵과 회사일이 겹쳐서 6월과 7월에 책을 거의 못읽어, 평소 찜해 놨던 책을 데리러 갔다. 

물론 알라딘에서 찜해뒀던 책을 구입하고 바우만의 <지성의 근본주의>를 도서상품권으로 사기 위해 갔는데...아뿔싸 품절..ㅜㅜ 그래서 할 수 없이 산 책이 리카도의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와 김영사의 하룻밤지식여행 시리즈인 <데리다>였다. 도서상품권과 반디문고 적립금으로 공짜로 데리고 왔다..ㅎㅎ 

참고로, 알라딘에서 구입한 책은 3권.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 

하인리히 창클의 <과학의 사기꾼> 

필립 볼의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책을 거의 읽지 못해서 인지 사오자 마자 <데 리다>를 읽고 있는데, 정말 재밌게 술술 읽힌다. 역시 하룻밤 지식시리즈는 쉽고도 유익하다..ㅎ 

그나저나 방바닥에는 읽다가 만 책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빨랑 읽어야 하는데, 30페이지를 넘지기 못하고 있다.  

복거일의 <국제화 시대의 민족어>는 마지막 10여장 남았는데, 읽기가 너무 싫어 팽게쳐 놨고, 한스 콘의 <민족주의 시대>는 40페이지에서 멈춰져 있다. 

앙리 바르뷔스의 소설 <지옥>은 24페이지에서 정지되어 주인공은 계속 방에 갖혀만 있다. 

최정규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은 총 17장 중에서 4장만 골라서 읽은 상태다. 아, 빨리 다 읽어야 하는데... 

제랄드 프랭스의 <서사학>도 제4장 서사물의 독서만 읽은 상태로 <교양>책에 눌려 있다. 

다카하시 쇼이치로의 <이성의 한계>는 월드컵 하기 직전에 딱 반을 읽었는데 여전히 고대로다.. 

한스 켈젠의 <민주정치와 철학, 종교, 경제>는 서론만 읽은 상태다..하~ 

아마도 오늘 데려온 5권의 책을 빨리 독파하지 않는 이상 위의 읽다가 널부러진 책들은 다시 집어들기 힘들 것 같다.. 

부디 휴가 기간에 모두 완독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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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언싱커블]

1

일반 스릴러 영화를 보려고 영화를 선택했다. 스릴러물이라서 폭탄 테러에 대한 범인과 FBI의 숨막히는 지략 대결을 기대 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1시간 여 동안 루즈하게 전개되는 양상에, ‘이건 뭐지?’를 되뇌이면서 영화를 꺼버리고 싶은 충동을 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끝에 기막힌 반전이 있다는 영화 카피만 믿고 그냥 꾸역꾸역 플레이 시간을 늘려 갔다. 1시간이 가고 영화 플레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수록, 나는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딕이 올라가는 시점이 되자 매우 심기가 불편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랄까. 영화는 고문의 정당성을 대놓고 묻고 있었다.

“과연 고문은 어떠한 경우에도 행해져서는 안 돼는 것인가? 그리고 윤리적으로 정당화 되는 고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인가?”

영화 <언싱커블>은 이 물음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너무 원색적이다.  윤리학 영역에서 오랫동안 쟁점화 되어온 ‘고문의 정당화’에 대해서 관객의 주관적 생각을 묻고 있다. ‘그래, 윤리적 사고는 좋은데, 너라면 어떻게 생각하냐?’고.


2

고문은 인간에게 물리적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 자백을 받아내는 전통적인 처벌 수단이다. 이러한 고문은 인류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이런 유구한 처벌 수단이 근대 헌법국가 단계에 오면서 심각한 반대에 부딪쳤다. 근대 헌법국가 시대에 가장 중요한 권리로 대두된 것이 천부인권 사상에 바탕을 둔 인간 존엄권이다. 생명권과 더불어 인간 존엄권은 시민의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입헌주의 국가들 대부분은 국민이 고문을 받지 아니할 권리를 헌법적 차원에서 명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우리 헌법도 예외는 아니어서 헌법 12조에 이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근대 이후 고문은 공식적 처벌 수단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주된 이유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권리를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처벌이기 때문.

그래서 고문은 일반적으로 정당하지 않으며 범법행위로 간주된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가하는 행위는 이제 가장 비윤리적인 행위인 동시에 헌법에 위배되는 범죄행위이다.

헌데, 이러한 고문 행위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정당화 되는 상황이 존재한다. <언싱커블>에서 보여지는 하나의 상황이 이를 예시한다.


3

'스티븐 아더 영거(전직 폭탄 전문가)'라는 이슬람계 미국 시민이 미국의 주요 도시에 핵폭탄을 몰래 설치한 후, 동영상 까지 찍어 자신의 행위를 당국에 알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스스로 체포된다.

핵폭탄이 터지기까지는 5일의 시간밖에는 없다. 핵폭탄의 위치를 찾기 위해 정보부는 한시적 조직을 만든다. 영거를 기밀이 유지되는 곳에 가두고 특수부대 장교, 고문 전문가 H (헨리 험프리스) 그리고 FBI 특수요원(브로디)으로 팀이 구성된다. 그리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폭탄의 위치를 자백받으라는 명령을 하달 받는다.

방법을 동원해도 소득이 없자 정부는 고문전문가인 H를 투입한다. 하지만 영거는 온갖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동원되는 갖가지 고문이 여과없이 영화를 통해 보여진다.

손가락 자르기, 칼로 성기에 상처내기, 손톱과 이빨에 상처주기, 얼굴에 비닐봉지 덮어씌우기, 물고문, 전기고문 등등.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고문 기술이 H에 의해 시행되지만 끝내 영거는 폭탄의 위치를 말하지 않는다. 고문 당하는 것을 즐기기까지 한다.

H는 영거에게 휘둘린다. 고문전문가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는 영거. 모든 고문 수단을 다 동원해도 영거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드디어 H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다. 이 비장의 카드로 H는 영거의 결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지금까지의 온갖 고문은 견뎌냈지만 이 히든카드 앞에서는 자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H는 확신했다. 바로 영거 앞에서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을 고문하고, 그 고문당하는 모습을 영거가 보는 것이다. (결국 H의 이 확신은 결실을 맺어 영거는 일단 자백하고 자살한다)

한편 H에 의해 선택된 조력자인 FBI 특수요원 브로디는 갈등한다. 영화에서 그녀의 심경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H는 영거의 입을 열게하는 방법은 오로지 고문밖에 없다고 하지만  브로디는 계속 고문만은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고문을 제외하고 할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해 봤지만 영거에게 놀림만 당하는 그녀는 드디어 고문에 묵시적 동의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고문은 부당한 것이라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항상 밖에 있다. 그녀가 괴로운 것은 영거의 부인과 자식들이 아무 죄가 없고 단지 고문을 받아내기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도 고문만이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가 H의 고문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고문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결과적으로 그녀의 고고한 윤리관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셈이 된다.



여기서 놓치지 말하야 할 것은 고문을 반대하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고문을 지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이 있다는 점이다. 난감한 상황이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

영화는 이 상황을 대놓고 들이댄다. 한 사람 또는 죄 없는 몇 사람에 대한 고문을 거부함으로써 미국 시민 수백만명을 죽이는 폭탄테러가 일어나도록 방치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이것은 자신의 윤리적인 욕심으로 인한 일종의 도덕적 방종이 아닐까?

더러운 행동을 하지 않아 자신의 윤리적 고결함은 지킬 수 있겠지만, 그런 그의 결정으로 인해 무고한 수백만명의 목숨들이 희생된다. H가 결국 최후의 고문 수단으로 택한 영거의 두 자식에게 가하는 고문을 인정할 수 있다면, 고문 필요성에 대한 근거는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모든 고문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인권유린 이라고 보는 인권운동가들에게는 이런 입장이 일종의 윤리적 도전이 된다. 영화에서는 FBI 특수요원 브로디가 인권운동가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운동가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고문을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무고한 생명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입장은 단호하지만 결국 수 많은 생명들이 희생된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윤리적 원칙을 고수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은 없다.

솔직히 영화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한 사람의 생명보다 많은 사람의 생명이 더 중하다는 공리주의 입장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딜레마 상황에 부딪쳐 갈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의 입장에서 논의를 출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윤리 문제에서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은 지극히 높은 위치에 있다. 인간 윤리에서 칸트의 정언명령은 견고 하고 절대적이며, 인간이면 누구나 따라야할 규범윤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윤리학의 오랜 딜레마적 상황인 특수한 경우 칸트의 윤리법칙을 지킨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영화의 상황은 그러한 딜레마 상황 중 하나의 사례이다. 이 지점에 오면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이 힘을 잃고 공리주의적 윤리설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칸트의 윤리설 입장에서 고문의 정당성을 찾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영화 속에서 결국 브로디로 대변되는 인원옹호론자들이 승리하지만 하나의 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지켜지는 보편적 윤리법칙이 과연 정당한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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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갑니다 2012-09-29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윤리적으로 동의하지않지만 할수 밖에없는... 딜레마군요.. 소수보다 다수가 중요하다는 논리에 저는 아직도 명확한 답을할수없는것 같습니다.. 과연 1명보다 수백만명의 목숨이 소중한걸까요? 때에 따라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것이 맞는 것일까요? 글쎄요... 그 '소수'안에 제가 포함 되있지만 않다면 그것이 맞다고 하는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답변일까요..
 

회사에서 워크샵을 갔다가 방금왔습니다... 

말이 워크샵이지 회사의 XX부장이 물놀이를 하도 좋아해서 워크샵을 가장한 물놀이 야유회가 됐다는~ 

금욜날 아침에 출발한것도 첨 있는 일..ㅎㅎ 

여튼 청평에서 모든 물놀이 기구를 타봤습니다.. 

사진기를 개인적으로 들고가지 못해서 좀 아쉬웠습니다.. 

웨이크보드, 제트스키, 플라이피쉬, 땅콩, 바나나보트 그리고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한 개를 더 탔습니다..다행히 비도 안와서 시간이 허락되는 한 계속 탔죠..무척재밌더군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줄창 물에서만 있었네요..ㅎㅎ 

안가보신 분들...휴가때 한 번쯤 가셔서 수상레져를 즐기는 것도 괜찮은 거 같습니다. 

가격은 하나 타는데 세일해서 3만원 정도 되더군요..제트스키와 번지점프는 5만원이었던거 같았다는..제트스키 타니 비싼거 탔다고 무쟈게 XX부장이 타박하더군요..ㅎ 제트스키가 젤 재밌습니다..ㅎㅎ 

개인적으로 워터파크에 가서 노느니, 청평이나 가평가서 수상레져를 즐기는 편이 더 나은 거 같아욤~ 여튼 회사덕분에 재밌게 잘 타고 왔군요^^ 

근데, 온 몸이 뻐근하고 하프다는..ㅎㅎ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경영지원실 핵심인력인 XX부장이 자기들 부서끼리만 놀러가자는 계획이 모 부서 아무게 상무한테 들켜서 우리부서도 가자, 우리 부서도 가자...해가지고 회사차원의 워크샵 일정이 잡혔다는 군요..ㅎㅎ 근데, 이상하게 워크샵이면 다른 회사들은 내년 사업계획구상이나 프리젠테이션 발표등을 하는데,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워크샵이면 무조건 놀고 먹는 거로 고착화되는 거 같습니다..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몰겠습니다만...여튼 술많이 먹는 거 빼놓고는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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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틴 - Kat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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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카틴 숲 학살 사건을 영화한 기록영화. 

1939년 8월 23일 소련의 비야체슬라프 몰로토프와 독일의 요하임 폰 리벤트로프 외상이 모스크바에서 독소불가침 조약을 체결한다. 

이를 계기로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는데, 무장해제 당한 폴란드 군에 대해서 사병은 독일이 장교는 소련이 포로를 관리하게 된다. 

독일군 점령 지역에서는 대학을 폐교하고 교수들까지 강제노동에 동원한다. 소련군 점령지역에서는 소련이 동구를 공산화하는 계획이 스탈린에 의해 진행되어 간다.  

그 일환으로 소련은 폴란드 엘리트 장교 22000명을 카틴 숲에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당시 소련은 포로에 대한 처우를 정한 제네바 협정에 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만행이 가능했다. 

1943년 4월 13일 독일의 비밀경찰에 의해 발견된 시신에 의해 이 학살 사건은 만천하에 공개 됐는데, 정작 폴란드에서는 점령군 소련 때문에 비밀에 붙쳐진 사건이다. 

이 사건이 놀라운 점은 스탈린이 폴란드 독립을 100년간 막고자 폴란드 군에서 독립의 근간이 될 만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의 씨를 말리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장군을 비롯한 정예 장교들은 무참하게 학살당한다. 포박되어 뒤에서 두개골을 향해 권총 세례를 받는 처참한 학살 장면이 여과 없이 영화를 통해 보여진다. 

자신들의 만행이 독일에 의해 공개되자 소련은 조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그 책임을 독일에 떠 넘기고 폴란드에서 카틴에 대한 발언을 금지한다. 폴란드인 누구를 막론하고 카틴에 대해 말하면 그 즉시 소련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가 감금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영화는 그대로 전달한다. 사건의 전말을 전혀 모르던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이 영화 한 편은 카틴 숲 학살 사건이 어떤 의미인지 리얼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한다. 

22000명의 장교와 그 가족들까지 학살되는 와중에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안나와 그 가족은 어렵게 살아남았다. 창기병 연대장 안제이가 포로 생활에서부터 처형에 이르기 까지 적은 수첩이 유품으로 발견되면서 소련의 만행은 구체화되고 영화의 토대가 되어졌다.  

소련에 의해 처형된 장교 가족들의 애환이 얽히면서 영화는 이 사건이 폴란드에게 얼마나 큰 아픔이었는지 전달한다. 카틴 숲에서 자신의 동생을 잃은 고등학교 교장이 소련에 항전할 것이라는 딸의 말에 조국 폴란드는 100년간 독립 할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말 속에 이 상실감이 잘 나타나 있다. 

정말 우연치 않게 25일날 KBS에서 본 영화인데, 축구 중계 이후에 봐서 앞 부분을 놓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충격적이었다. 다시 보고 싶어서 영화를 구해서 어제 다시 봤다. 역시 충격적이었고, 조국 폴란드의 아픈 실상을 생생하게 알게 된 영화였다.  

생생한 당시 필름을 영화에 삽입해 카틴 숲 사건의 의미를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이 영화는 최고의 기록영화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 4월 10일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과 관료들이 카틴 숲을 방문하려다가 사망한 것은 이 가슴아픈 폴란드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카틴 숲 사건이 뭔지 모르시는 분들에게 강추한다. 보면서 일제시대 우리나라에서 행한 일제의 만행이 생각나 폴란드의 애환이 가슴깊게 다가 왔다. 조국 폴란드의 재건을 보지 못하고 스탈린의 욕심에 개죽음을 당한 폴란드 엘리트 장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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