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메를 이끄는 7인의 사무라이
황의웅 지음 / 시공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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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재 일본 아니메를 이끌고 있는 7인의 감독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읽는 것보다는 보는 것을 중심으로한 비주얼 도서를 지향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감독에 대한 소개와 작품들을 시각적으로 형상화시켜, 어떤 작품을 볼 것인가를 고민하는 애니광들에게 좋은 안내를 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작가가 만드는 아니메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이고, 2부는 7인의 아니메 작가에 대한 본격적이 소개, 그리고 3부는 마니아 스크랩-아니메의 신 모리야스지의 세계 이다. 몸통 부분인 2부가 이 책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1부와 3부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구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쨋든 이 책은 미야자키 하야오부터 안노 히데아키 까지 중요 아니메 감독과 특징을 해부하고 있다.
 

하나, 내가 있는 한 아니메는 두려울 것이 없다; <미래소년 코난>, <나우시카>,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의 미야자키 하야오.
둘,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영상이 좋다; <추억은 방울 방울>, <평성 너구리 전쟁 폼포코>, <빨강머리 앤>의 다카하타 이사오.
셋, 원작과 다른 나만의 색을 물들인다; <내일의 조>, <보물섬>,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데자키 오사무.
넷, 언제나 삐딱한 사고로 언제나 삐딱하게 만든다; <우르세이 야츠라>, <기동경찰 페트레이버>, <과학닌자대 가차맨>,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 
다섯, 미지의 공상세계를 위해 끝없이 절규한다; <아키라>, <노인Z>, <메모리즈>, <스프리건>의 오토모 가츠히로.
여섯, 관객이 즐거워하지 않는 작품은 필요가 없다; <신세기 SF렌즈맨>, <마계도시 신주쿠>, <쥬베이 풍첩>, <벰파이어 헌터D>의 카와지리 요시아키.
일곱,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미쳐라! 그리고 창작하라!; <톱을 노려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안노 히데야키.

 

굉장한 볼 거리와 작품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어 매우 유용하게 볼 수 있는 책이다. 감독 중심으로 애니를 보는 분들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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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나우시카를 읽는다 -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이나바 신이치로 지음, 정윤아 옮김 / 미컴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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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된 아니메 작품 비평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출세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인문학적 시각으로 분석한 탁월한 저서. '유토피아란 무엇인가'란 부제를 달고 있다.  

고교생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애니를 전공으로 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필히 읽어야 할 책이다.  

학부 1,2학년 학생들에게는 애니를 심도있게 보고 읽을 수 있는 시각을 일깨워 주는 책.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핵심적 사상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에게 강추하는 책.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인 박정배씨가 이 책을 추천한 추천사로 이 책의 가치를 대신하려고 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만만치 않다. 만화와 애니 모두 높은 인문학적 이해가 필요한 고급스러운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우시카>는 읽기의 어려움과 더불어 곱씹는 재미를 동시에 제공한다. 경제학 교수 이면서 개인과 공동체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저자가 <나우시카>에서 받은 충격을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으로 풀어쓴 이 글은 그래서 텍스트보다 더욱 꼼꼼한 독해를 요한다. 그러나 이제 애니나 만화가 인문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만큼의 깊이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기도 하다."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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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말하기 시작할 때 랜덤소설선 10
정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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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을 편 순간부터 4시간 여 동안 꼼짝 않고 정정희의 최근작을 읽어낸 것이다. 내가 정정희의 소설을 끝까지 읽다니....정정희는 나에게 극복할 수 없는 작가였다. 그녀의 작품들은 항상 나에게 거부감을 주어 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읽으려고 노력해봤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반도 못 읽고 덮어 버렸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문체 운운할 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그녀의 작품들은 나에게 거슬리는 뭔가가 있었다. 콕 집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 뭔가가.  문학엔 문외한 이지만 정정희의 작품들은 솔직히 어설퍼 보였다. 일명 대가들이라는 작가에 비해서. 대표작이라는 <오렌지>가 그랬고 <토마토>그 그랬으며 <연애>도 <언니>도 모두 그랬다.  

신간이 나오면 언제나 구해 보는 작가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나로 하여금 작품을 끝까지 읽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정희의 신작이 나오면 봐야 직성이 풀린다. 이번 것은 어떻게 나를 실망시킬지 확인하는 안티 팬이라 해야 할까.  

그래도 안티는 아니다. 정정희는 내가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본 첫 여성작가 이기에. 이 작품도 솔직히 별 기대도 안하고 펼쳐 든 것이다. 그런데 정정희는 드디어 5번째 접하는 작품 만에 나의 선입견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작품도 한 결 붇럽고 무난해졌다고나 할까. 

 정정희는 기묘한 사랑의 삼각관계를 갖고 찾아왔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있었다. 두 여자에 한 남자. 45세의 어머니와 20살의 딸. 그리고 딸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30이 안돼 보이는 청년 ‘옆’.  

두 모녀의 사랑과 청년의 사랑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한 여자의 죽음 앞에서 남아있는 서로 다른 남녀는 추억을 함께 공유한다. 그것은 사랑의 상실을 의미하는 슬픔이었다. 모텔에서 옆과 옆이 사랑하는 죽어가는 그녀와의 섹스는 슬프고도 기묘하면서 가슴 아픈 사랑의 행위였다. 지금까지 그 어떤 소설 속에서도 그런 사랑의 행위는 본적이 없었다.(읽은 책이 일천하여 이런 사랑을 첨 접해 봤다) 바로 그런 옆의 사랑이었기에, 혈연적 사랑보다 배타적 사랑이 더 사무친 그림으로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사랑의 강도는 함께 한 시간에 비례하는 건 아닌 거 같다. 상식적으로 옆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딸 미나가 더 슬프고 더 그리워해야 마땅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옆이 훨씬 더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사랑하던 사람이 죽으면 그렇게 되는 건가...

 죽음에는 1인칭 죽음, 2인칭 죽음, 3인칭 죽음이 있다고 한다. 1인칭 죽음은 내가 죽는 것이다. 아무 느낌도 아무 생각도 있을 수 없다. 3인칭 죽음은 아무개가 죽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혹은 내가 약간은 아는, 그러나 내 삶과는 무관한 아무개의 죽음. 신문 부음 난에, 또는 이러저런 사고로 죽는 아무개가 죽는 것이다. 약간 놀랄 수는 있어도 곧 잊혀 진다.  

문제는 2인칭의 죽음이다. 나와 같이 많은 시간을 공유한 사람들의 죽음. 2인칭 죽음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상실감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내 속에 함께한 그가 죽는 것이요, 그 속에 함께 있던 내가 죽는 것이기에.  

이 소설은 바로 2인칭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미나를 보면 죽은 그녀의 생각이 나서 행복하다는 옆. 너를 보면 네 죽은 동생이 생각나서 살수가 없으니 집에서 나갈 것을 요구하는 옆의 어머니. 옆의 동생이 죽고 나서 두 달 후에 갑자기 천식으로 생을 마감한 옆의 아버지. 옆의 태권도 동기였고 옆의 동생이 죽은 것은 바로 자기의 이기적인 사랑 때문이라고 말하는 옛 연인 유리 등. 책은 그들 2인칭 죽음에 대한 추억으로 빼곡히 차 있다. 마치 빛바랜 그들의 앨범 사진을 보는 듯.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3류 통속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 전에 끝나서 제목도 생각나지 않았던 드라마였는데, 주인공이 김미숙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젊은이가 중년여성을 사랑하고, 그 여성이 나중에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그런 내용. 이 책도 옆과 이마 엄마와의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전반부만 하더라도 그냥 그렇고 그런 사랑타령 같았다.

  

그런데, 내 경험상 정정희는 그렇게 쉽게 쓰는 작가가 절대 아니었다. 항상 내게 거부감을 잔뜩 주어 읽기 거북하게 만들었던 정정희였다. 내용은 무난했으나 솔직히 제목이 거슬린 건 사실이었다. <사랑이 말하기 시작할 때>라니... ‘사랑이 시작될 때’라든가 ‘사랑을 시작할 때’라면 문제의식도 없었겠다.  

하지만 정정희는 명확히 책 타이틀을  ‘사랑이 말하기 시작할 때’라고 했다. 일상에서 누구도 이렇게 표현하지 않는다. ‘사랑이 시작할 때’라는 건 가능해도 ‘사랑이 말한다’고는 잘 표현하지 않는다. 말하는 주체는 언제나 사람이어야 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말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의미를 가진 소리언어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추상적이라면 사랑, 정의 , 자유 등도 동등하게 그 자리에 들어가서 제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하나의 언명으로서~. 정의가 말하기 시작할 때, 자유가 말하기 시작할 때...역시 어색하다. 사람이 와야 한다. ‘연인이 말하기 시작할 때’, ‘철이가 말하기 시작할 때’, ‘옆이 말하기 시작할 때’. 이래야 자연스럽다.  

그런데 정정희는 무지막지하게도 사랑을 바로 그 주체의 자리에 넣어버린 것이다. 왜 그렇게 표현 했을까. 다시 생각하고 한 번 더 읽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 읽고 나서야 약간은 이해가 갔다. 정정희는 이 작품에서 아마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담고 있었다. 그 사람을 떠나보내는 두 남녀의 감정의 추이를 그려가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살아가야하기에, 슬픔을 극복하고 살아가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사랑이기에 사랑을 주체의 사리에 넣은 건 아닐까.

 사랑하던 사람의 기억을 잃어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 사람이 살아생전 보았던 것, 입었던 것, 그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사물을 그 사람 사후에 보는 건 또 어떤 괴로움일까. 그러한 사물로부터 그 사람을 잊게 되는 건, 아니, 그런 것을 보고 그 사람 생각에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 건 얼마만의 시간이 걸리는 걸까.  

이 소설은 이런 물음들을 끊임없이 생각나게 한다. 사랑했던 사람과 같이 한 추억을 잊는다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평생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무의식중에 어떤 걸 하거나 보거나 들을 때 보낸 사람과의 한 때가 엊그제처럼 생생히 떠오르지만 더 이상 슬프지 않을 때(그리움에도 눈물이 말라버리는 한계점이 있을 때) 사랑은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들과 남편의 죽음을 극복하고 아쿠아로빅을 배우러 다니지만 남편에 대한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있는 옆의 어머니. 아들 옆과 쌈밥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는 어버지가 쌈싸먹는 것을 좋아했다고 문뜩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기억은 있되 슬프지 않은 것. 그것을 우리는 슬픔을 극복했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이후 옆의 어머니는 아버지 회사의 공백을 그의 부하 직원이 차지했을 때, 바로 그 부하 직원과 사랑에 빠지면서 결국 그 사람과 재혼한다. 옆이 중국집에서 일할 때 중국집 주인 여자가 혼자 있기 시작할 때 주방장은 남몰래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미나의 엄마가 죽은 직후에도 미나는 옆에게 그냥 그녀의 딸이었다. 미나에게도 옆은 그냥 그녀 엄마의 연인이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가고 그녀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둘은 자기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채워간다.  

그녀 사후 1년. 슬픔이 무뎌지고 눈물이 마를 때 쯤 사랑은 말하기 시작했다. 옆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먼저 간 그녀의 추억을 간직하고 슬퍼하지만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을 때, 바로 그때 사랑은 말하기 시작한다.  

소설 속에서는 진행형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결국 옆과 미나는 그들의 사랑을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옆의 어머니가 재혼한 것처럼, 그들도 사랑할 것이다. 옆과 미나의 남자친구 가운데 흔들리는 미나의 심정이 바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흔히들 사랑 후에 남는 게 무엇이냐고 묻곤한다. 이 소설은 거기에 명확히 답한다. 사랑 후에는 그 사랑에 대한 화석화된 추억만 남을 뿐이라고. 그 추억이 남아있는 삶에 흔적을 남기는 아픔이라고. 그 아픔이 무뎌지고 슬픔의 눈물이 말라갈 때 드디어 사랑은 말하기 시작한다고.

 정정희는 그저 그런 통속소설이 되었어야 할 작품을 묵직하게 바꾸어 놓는 데 성공했다.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 이후, 그 슬픔의 과정을 밀도 있게 보여주면서 미나 엄마 사후, 옆 동생 사후 미나와 옆 그리고 유리가 보여주는 남아 있는 자의 삶의 방식을 통해 '당신은 자신 있는가‘라고 묻고 있었다.(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보였다)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죽은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와 두부는 소설 속 곳곳에 등장한다. 바로 내 어머니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소설 속에서 옆과  미나는 그렇게도 그들이  공유한 여자의 커피를 함께 마셨는데, 나는 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커피향기조차 들여 마실 수 없을 거 같다. 커피와 두부를 먹는 순간마다 내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기에.

 나는 비관적 생각을 가끔 한다. 내 어머니가 죽은 그 다음 날 나도 저 높은 곳에서 땅으로 나의 몸을 던지는 그런...그 슬픔과 그 격정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 지 너무도 난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슬픔을 조금씩 극복하고 있었다.  

정정희의 이번 소설이 나를 감동시킨 건 바로 그 점에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올 그날을, 내가 극복할 수 없다고 여기는 바로 그 문제를 정정희는 아주 훌륭하게 두 주인공을 통해 형상화시키고 있었다.

 문학평론가 황도경은 이 소설을 ‘소리에 대한 소설’, ‘향기에 대한 소설’, ‘위치에 대한 소설’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은 ‘의미에 대한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은 절대 동일선 상에 놓을 수 없다. 하지만 연인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 속에서 이질적인 사랑의 의미는 다른 의미의 사랑으로 융합되어 확장되고 있었다. 죽음과 슬픔을 통과한 사랑은 어떤 의미로 살아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는지 사랑은 의미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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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메가 보고 싶다
박인하 외 3명 / 교보문고(교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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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 나온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제패니메이션]의 일본어)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서이자, 비평서.   

이전에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책은 있었지만 일본 아니메에 대한 안내서는 이 책이 처음이다. (이후 여러 애니와 아니메를 분석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거의 모든 아니메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60-70년대 우리나라에 소개된 걸작 아니메부터 최근의 에반겔리온 까지.  

이 책은 4명의 만화, 애니 전문가들에 의해 씌여졌다. 성대 국문과 석사출신의 만화평론가 박인하, 컴퓨터 그래픽프로듀서 윤영복, 만화웹진 코믹스 전문기자 최유정, 하이텔 건담 소모임 "범검사"에서 활동중인 신수현씨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이 책에서 두 가지 정도의 목적을 세웠다. 하나는 진정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이 살아남기 위해 왜곡되지 않은 아니메의 개론적 정보 제공을 통해 우리보다 앞서있는 일본의 애니에 대한 노하우를 벤치마킹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우리의 유년시절을 지배했던(그리고 지금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본 아니메에 대한 편견과 왜곡을 걷어내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리고 저자들은 방대한 일본 아니메를 통해 삶에 대해, 자연과 우주, 사랑과 우정, 정의와 용기에 대한 보편적 메시지를 이야기 한다.  

"적어도 우리에게 있어 애니는 거대한 부가가치이기 이전에 우리를 사람의 삶 속으로 인도한 바다와 숲과 같은 것이다."(본문 중에서)  

데츠카 오사무, 60-70년대의 TV아이메, 로봇 메카닉물, 소녀에서 여신까지 실로 다양한 작품이 진열되어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부록으로 인터넷 아니메 투어와 건담에 관한 역사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올 컬러판. 
 

참고로, 이 책은 오래 전에 나와서 현재 절판된 상태이지만 서울의 꽤 큰 서점에 가면 아직도 만나볼 수 있다. 비평서라고 하기엔 좀 모자라고 체계적인 입문서라고 하기엔 부족하긴 하지만 출간된 연도를 참고해서 보면 그 나름대로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진짜 아니메 소개서는 출간 당시 이 책이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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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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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 에시이집을 읽었습니다. <남자>를 읽은 직후 읽었더랬습니다~ 

두 작품 모두 단어를 중심으로 한 단상을 모은 매우 주관적인 에세이집입니다.

아직 유미리 소설들은 읽지 못했지만 유미리가 어떤 사람인지 2권의 책을 읽으니 확연히 알겠더군요.  

적나라한 자기얘기였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흘러가는 단어를 잡아 자기식으로 푸는 이야기속에서 유미리는 참 불행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재일한국인2세로서...그녀가 겪어야 했던 아픔들이 단어속에 절절히 맺혀있더군요. 어찌보면 미치지 않은것만으로도 다행일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유미리의 여러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더군요. 머랄까...정신과 치료를 요한다고 해야할까...하여간 적대심을 안으로 삭이고 글을 쓰는 작가가 돼서 그런거 봅니다.

하지만 자기식의 단어 정의...멋진 언어의 유희가 좋았더랬습니다.  

상처입은 영혼의 언어가 어떤 것인지 오롯이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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