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식)과 좋은 삶(사람)의 연결에 동원할 수 있는 얘기로 

좋은 것을 원하는 힘, 이것은 인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생겨나고 유지된다. : 이것 어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오늘의 만보를 채우기 위해 나가 걷다가 생각했다. 

수전 손택이 말하는 "타락 = 냉소와 피상성", 그 타락이 일어나는 건 

좋은 것을 원하는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때, 좋음을 알아보는 힘도 사라져갈 때 

일어나는 일 아닌가. 아도르노가 위의 인용에서 말하는 "strength"가 이런 힘일 것이라 여겨봄. 

(그가 말하는 "stupidity"는, 플로베르가 행복의 필수요건으로 꼽는 stupidity가 아닐 것이다. 아도르노는 정말 

여러 곳에서, 이 시대 기준으로 멍청함이지만 이 시대의 소금인 멍청함...... 칭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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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에서 짧은 작문 질문으로 쓰는 "내가 시민 시험을 출제한다면?"

은 실은 Entitled Opinions에서 소로우가 주제였을 때 로버트 해리슨이 하던 말에서 착안한 것이다. 

나는 가끔 우리의 이 공화국이 가져야 마땅한 시민은 누구라도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한 시민 시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험이 있다면 반드시 출제되어여할 사람이 소로우다. <월든>의 몇 문단, <시민불복종>의 

몇 문단은 암송하도록 해도 좋겠다... : 대략 이런 말을 한다. 이보다 더 세련된 말들이었는데, 정확히 옮기기 위해 찾아서 다시 들어보려면 Entitled Opinions에는 에피소드도 너무 많고 소로우로 검색한다 해도 찾아지지 않을 수도 있겠고. 


먼저 수업에서 토론 질문으로 쓰고 시험 문제로 내는데 

질문의 취지를 설명할 때 어려움 겪는다. 해리슨의 취지는 그대로 가져오지만 (공화국의 이상에 걸맞을 시민) 

거기서 조금 확장하기도 해서, '이 지식은 모두가 알 가치가 있는 지식이다' '이건 너무 좋고, 나만 알 수 없다' 

같은 지식이 있다면, 그런 것도 출제 가능하다고 상상하자. 아니면 '이걸 알면 사람이 반드시 더 좋은 사람이 된다'

고 말할 수 있는 지식은 없는가. 그렇게 생각하게도 되는 무엇이 있다면, 그런 것. 진지하게 접근해도 좋지만, 장난치듯 접근해도 좋다. 


거의 반드시 반발이 있게 되는 지점은, 지식과 좋은 삶(사람)의 연결. 

지식이 사람을 좋게 만드나요? 지식과 좋은 사람 사이에 관련 없는 것 같아요. : 이 방향으로. 


이거 정말 사실 무궁무진하게 탐구할 수 있는 주제 아닌가. 

좋은 삶, 좋은 사람은 반드시 지식으로부터. 이걸 가장 강력히 주장하고 옹호하는 책으로 

<미니마 모랄리아> 꼽고 싶다. 저학년 영어과목에서 <미니마 모랄리아>를 예로 들며 이 편에 서고 

옹호하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게 애석함. 


그런데 어쨌든 이 주제로 얘기해 보면, 좋은 흥미로운 답들도 많이 나온다. 

시민은 고립된 삶을 살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인간은 변화 성장하기 때문에

당신은 일상에서 얼마나 대화하는가, 어떤 대화를 하는가... 에 관한 질문이 출제되면 좋겠다. 이런 답을 

어제 들었는데, 말들이 (그 의미가) 확장되고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인식'의 본질에 대한 얘기 같아지고 

인식과 삶의 연결이 바로 일어나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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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플로베르 생일이었다고 Writer's Almanac이 전해 주었다. 

이 팟캐스트는, 일관되게 그러진 않지만, 중요하거나 애호하는 (아마도. 그렇다고 짐작하는) 작가에게 

5분 길이 내에서 줄 수 있는 최대 시간을 주는 경향이 있다. 보통은 언급하는 한 작가당 길어야 2-30초 두세 문장.  

그러나 특별한 작가라서 길어지면 거의 2분, 3분까지. 그 분량 안에서 그 작가의 짧은 전기는 물론이고 작품 세계의 의의와 사후 명성의 현황까지 전해줄 때가 있다. 


플로베르에게도 적지 않은 시간을 줌. 

그의 일물일어주의에 대하여: "플로베르는 연인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난 잘못 선택한 한 단어 때문에 고심하는 일은 많아도, 잘 쓴 한 문단을 놓고 기뻐하는 일은 드물어. I brood more over an ill-suited word than I rejoice over a well-proportioned paragraph." 


헨리 제임스가, 그의 상투어 혐오에 대하여: "플로베르가 평생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공포. 그것은 클리셰의 공포였다. 클리셰, 스테레오타입, 흔히 말해지는 방식에 따라 말해지는, 흔히 말해지는 일들. 그가 보기에, 오직 신선함만이 시험에 통과했다. The horror that haunted Flaubert all his life was the horror of the cliche, the stereotype, the things usually said in the way there were usually said. Nothing in Flaubert's view could pass muster but freshness." 


창작에 대하여, 플로베르 자신이 남긴 말로는: "인생에서 규칙적이고 질서있어야 해. 그래야 작품에서 격렬하고 독창적일 수 있어. Be regular and orderly in your life so that you may be violent and original in your work." 그런가 하면, "행복"에 대해서: "멍청하고 이기적이고 건강할 것. 이것이 행복의 세 요건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멍청함이 빠진다면, 모두 허사다. To be stupid, selfish and to have good health are the three requirements for happiness, though, if stupidity is lacking, all is lost." 


"위대한 문학의 전부가 인간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실망인가에 대한 것이다" : 위에 이미지 옮겨 온 

보네것의 문장 보고, 그런가? 했다. 아예 주제가 명백히, 인생이 얼마나 실망인가인 작품이라면 <마담 보바리>와 <변신>이 있나? 그런데 정말 위대한 문학의 "모두가" 인생이 얼마나 실망인가 들려주는 거라 할 수 있나? 인생에, 인간에 (그들이 준 기쁨에) 바친 찬가인데 위대한 문학은 없나? 


어쨌든, 상투어 혐오주의자는 그 자체로 그것만으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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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틸리히의 인격이 가졌던, 전례 없고 진정 독특한 면모가 있습니다. 

내가 그 아닌 다른 누구에서도 본 적 없는 열려 있음, 열려 있는 정신이 그것입니다. 

다름 아니라 그의 이런 면모가 비판을 자극했음을, 그리고 다름 아니라 내가 그 지점에서 그를 비판하기도 했음을 

나는 온전히 자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기회를 빌어, 틸리히의 그 자유 정신이 견고하게 지속될 가치의 한 모범을 세웠다고 말하겠습니다. 그건, 지적 체험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하겠다는, 거의 무한했던 그의 자발성 -- 이 점에서 그의 동급일 그 누구도 나는 알지 못합니다 -- 에 그의 진정 평화로운 기질과 개인적 처신에서 최강의 단호함이 결합되어 있었던 덕분입니다.  



아도르노가 틸리히를 추모하는 그 세 페이지의 놀라운 문장들에서 

이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그래서 지금 (많은 한숨과 함께.....) 옮겨 보았는데 

존경의 대상을 세밀하게 기억함. 이것도 우리에겐 사실 익숙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마지막 문장은 영어로는 이렇다: This is because his almost boundless willingness to entertain every intellectual experience -- and I know of no one who could equal him in this respect -- combined a genuinely irenic temperament with the greatest resoluteness in his personal conduct. 


열려 있음, 열려 있는 정신. openness, open-mindedness. 이 구절도 

영어로 말할 때, 더 강한 의미 갖는다고 생각한다. 정말 "한국어와 정신의 삶" 이거 누가 제대로 

탐구해야 하, 하지 않겠어요. 


지적 체험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자세. 

이게 어떤 것인지, 생각해볼 가치 있지 않나. 

울프는 "생각해 보니, 나는 단 한 번도 심심했던(지겨웠던) 적이 없다" 이런 문장을 아마 일기에서 쓰기도 했다. 

I think I was never bored. 끔찍하게 민감한 정신이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게, 민감한 정신이어서만이 

아니라 (혹은, 민감한 정신이라 함은) "지적 체험" 이것을 향한 무한한 자발성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 


Boredom is rage spread thin. 틸리히의 이 말이 전하는 진실을 생각하기 전 울프와 "I was never bored"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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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사무실 컴퓨터에 

사진 프로그램은 알씨인데 

이걸로 사진 축소가, 축소 & 저장을 해도 되지 않는다. 가로 350 정도가 눈에 부담없는 크기던데 

그렇게 줄이지 못하고 위의 크기로. 


토일. 굉장히 힘들게 (써야할 문장도 많고, 오류도 많고) 채점을 끝낸 퀴즈 시험지를 집에 두고 옴. 

채점 끝내고 돌려줄 때의 즐거움이 있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결과가 수중으로 들어오는 확실함을 

알면서 학생들에게도 그런 게 있을 텐데, 하도 정신이 없어서 채점 끝난 다음 클립으로 묶어둔 그 뭉치들 

책상 구석으로 밀어두고 그냥 나온 것이다. 


어쨌든 채점은 끝냈지만 점수 입력은 학교 와서 수업 전에 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 시간이 넉넉히 빔. 그래서 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재질 합니다. 


아래 포스트에 쓴 

수업 중 아도르노의 틸리히 이야기. 

거기서 아도르노가 그런 얘기도 한다. "틸리히가 얼마나 비범한 인간이었나는 그의 글로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그를 실제로 알았던 사람들은, 그 점 모를 수 없었다...." 아도르노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면 

이거 교묘한 모욕... 인지 모른다는 의심 들만도 한 말. 어쨌든 틸리히는 어떤 말로 유명한가 구글 찾아보니 

찾아서 지금 본 거의 전부가, 놀랍지 않다. 그냥 그렇다. "사랑의 최초 의무, 그것은 듣는 것이다." 이 말도. 


그러나 그가 저런 문장 쓴 게 다가 아니고 

실제로 언제나 저 의무를 실천하는 사람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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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6-12-1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신 글을 보며 항상 느끼지만 정말 좋은 선생님이신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 대학 다닐 때 영어수업을 들어보긴 했지만 말씀하시는 그런 피드백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었는데요. 뭐 너무 옛날 일이긴 하지만요. 아무리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교육도 발전하고 있는 것 맞는 거지요?

몰리 2016-12-12 19:55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 주셔서 (아이고;) 감사합니다.
무엇이든 글로 적으면 (사실을 적어도, 심지어 덜 적을 때도) 미화되는 효과가 있어서
제가 좋은 선생으로 보일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애는 많이 쓰지만 사실 많이 부족한데요. 언제나, ‘다음 수업부터는... ㅜㅜ‘ 이러며 문 열고 나오는 형편.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도 발전하고 있는 것.. 이라고 쓰신 걸 보니
한국의 학생들에게도 (지금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도) 무슨 과목이든 최고의 선생에게 배울 권리가 있다, 내가 그런 선생이 되어야 해. : 자주 하는 이 생각을 다시 진지하게 해보게 되는데, 이런 얘긴 적으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렇게도 반드시 표시해 두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