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어책은 10월 마이페이퍼에 당선(!) 되어 받은 적립금 2만원으로 구입한 책이다. 

이달의 당선작에 선택되기는 언감생심. 그랬는데, 그래도 서재 본격 시작한 첫 해에 

이런 좋은 일도 일어나서, 감사히 적립금을 장학금처럼; 잘 쓰기로 하고 궁리하다가 이 책 선택. 


나는 그가 쓴 그 언어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저자들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번역이 아무리 좋다 해도 번역으로는, 로버트 훌롯-켄터가 자기가 했던 <미학이론> 영어번역에 대해 했던 말, 


"코 대신 당근을, 눈 대신 전구를, 수염 대신 깃털을, 써야 했던 번역이었다. 멀리 석양 속에 앉아 있으면 살아 있는 듯 보이겠지만, 툭 치면 쓰러질 허수아비 번역이다" : 이 점 기억하면서 읽어야 하는 저자들. 울프의 <파도> 같은 책, 조이스의 Ulysses 같은 책들. 이들이 "원어로가 아니면 사실 이해불가"의 한쪽 극단이면, 다른 극단에 ("어느 언어로든 사실 상관없음")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분들이 있는 건가. 이렇게 구분하고 보니, 이 구분에서 윗점은 "사실"에 찍어야 하나. "사실"은 여기서 무슨 뜻인가. "(이해의 가상이 있지만) 실은" "(물론 크게 상관 있지만 그래도) 결국" 이런 의미인가. 그래서 이 둘은 실은 그리 서로 멀리 있는 게 아니게 되는 건가. 


바슐라르의 경우엔 

영어로만 읽을 때엔 이 분도 번역불가에 속하실 거라든가 

훌롯-켄터의 위의 말을 기억해야 하는 때 많지 않고, 아니 거의 없을 것 같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도 없고 

그의 개성, 스타일 그대로 다 역문에도 담겨 있다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러다가 불어 공부를 시작하고 불어 원문들도 보기 시작하면, 조금 놀라면서 다시 보게 되는 지점들이 많고... 역시 인문학의 기초는 (토대는, 반쯤은, 어쩌면 거의 전부가) 언어, 언어능력이구나.. 같은 생각이 아마도 들 듯. 내 경우엔 그랬다. 불어 실력이 그토록 짧음에도 알아보이던, 불어 세계와 영어 세계의 차이. 때로, (작든 크든, 말바꿈으로는) 이어줄 수 없는 차이. 





이 니체 책은 29쪽까지 해독. 

불어사전의 16년 단어장에 16년이 가기 전에 1천단어 넘게 입력하기, 이 목표도 있고 

니체 철학에 대한 논의를 (확신할 수 없지만, 새롭다고 여겨지는 주장도 가끔 있었고) 보는 재미도 있긴 해서 

조금씩 꾸준히 페이지가 넘겨지긴 한다. 외국어 공부는, 천천히 궁리하며 읽기... 이러지 않을 수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 자체, 역시 인문학적인 무엇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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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건 사야해. 수납 공간 없는 가방에다 

지갑에 립밤에(립밤 넣는 작은 주머니는 있다), 볼펜과 열쇠

(쓰고 보니 많지 않는데, 왜 매일 하나씩 어디다 놓고 다니는 거냐)

던져 넣고 다니지 말아야겠다 이걸 사서. 이걸 사야만 그럴 수 있겠다. 


알라딘 크리스마스 굿즈 쿠키맨 빨간 파우치를 사기 위해 

주문한 책들은:  



















이연주 시전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 시집이 전에 집에 있었고 꽤 자주 읽었다. "가족 사진" 이 시가 특히 놀라웠던 시집.

특히 저 밑줄 친 구절.  


"바람난 에미가 도망치고 애비가 땅을 치고 울고


애비가 섯다판에서 날을 세고

그 애비의 아이가 

애비를 찾아 섯다판 방문을 두드리고


본드 마신 누이가 찢어진 속옷을 뒤집어 입고

지하상가 쓰레기장 옆에서 

면도날로 팔목을 긋고


세살난 막내가 절룩, 절룩 자라가고

에미 애비와 누이의 일들을 거침없이 이해하고


오늘,

밤마다 도시가 하나씩 함몰되고, 나는

등불에서

등심지를 싹둑, 싹둑 잘라내고"


김중식의 "공중변소에서"에

"나는 요즘 참을 수 없는 일이 없고 

심지어 그 말까지 참을 수 있는 

어른이다." : 이 구절도 좋지만, 이연주의 저 구절은 정말, 지금 검색해 다시 보면서도 새삼 감탄. 


밀의 <자유론>은 파우치 사은품. 7천원 상당. 

"영국인들이나 행복을 원한다." 니체는 독일 다음으로 영국을 우습게 여겼던 것 같지만 

(어떤 영국인들은 알수록 우스울 것 ;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조지 엘리엇, 밀, 이런 분들이 

거인이 아니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을 리가. 하여튼...... 궁금하다. 실제로 어떤 얘기들이 있을지. 


루카치의 <영혼과 형식>. 

아도르노가 "형식으로서의 에세이"에서 꽤 방대하게, 게다가 깊이 존경하면서, 참조하고 인용하는 책이 이 책일 것이다. 인용되는 어떤 문장들은 기가 막히다. 깊고 날카롭고 강하게 (하여튼 좋은 방향으로 모두), 느끼고 생각했던 사람이 쓸 문장들. 이었다고 기억함. 그러니 이 책도, 실물을 모셔두어야. 


스토아 학파. 에피큐로스 학파. 

"우리 삶의 역경은, 우리 삶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아니고 

그 사건들에 우리가 주는 해석들이다." : 이게 스토아 학파 입장인가, 에피큐로스 학파 입장인가. 

저런 문장을 In Our Time 어느 에피소드에서 인용하는 (저 둘 중 하나의 입장이긴 하다) 걸 들었는데 

전부터 알고 싶긴 했지만, 저 문장에 이어 크리스마스 굿즈 쿠키맨 파우치가 지금이 바로 그럴 때라고 순간 나를 자극함. 저런 문장도, 저렇게 달랑 인용하면 밋밋하고 납작해만 보이겠지만 출전과 배경을 알수록 더 풍요, 심오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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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칼라일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의 결혼을 놓고 누군가 "두 사람이 결혼한 건 잘된 일이다. 

이 세계에서 네 사람이 비참할 수도 있었는데, 두 사람만 비참하다"고 했다고 Writer's Almanac에서 전해 들음. 


어떤 사람들이었길래 저런 말을 들어야 하나 모르지만 

혹시 밉거나 싫은 결혼한 사람이 있다면 (부부 두 사람을 다 알면 더), 저 말을 기억하고 

잠시 위안을 얻을 수도 있겠다. 





그 토마스 칼라일은 어떤 말로 유명한가 

구글 검색 해보았더니, 거의 전부가 하나마나한 말. 

석사 시절 교수가 내게 해준 말, 내가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거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그렇긴 한데 "자긍심, 자신감은 성취에서 온다"나 

"압력이 없이 금강석이 생기겠는가" 이런 말들이 작더라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듯. 

어쨌든, 성취는 정말 중요하다는 것. 가까이의 누구라도,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성취를 할 수 있게끔 

돕고 격려하는 일. 그런 일을 할 수 있어야겠다는 것. 그리고 그러려면 나부터가 여러 성취를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등에 대해 잠시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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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12-0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o pain, no gain 만 말할줄 알았는데, 덤으로 알아가네요. No pressure, no diamonds. 출처와 함께! ^^
성취에 대한 말씀도 공감합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명심하면 좋을 말씀이지요.

몰리 2016-12-08 12:11   좋아요 0 | URL
no pain, no gain 이 말도 칼라일이 출전인가 보네요.
누군가가 no pain, no pain...... 그래서 굉장히 웃겼던 기억이 납니다.
(no pain, no pain. 이게 훨씬 더 진리! 이고요). 계산이나 견제 없이 강하고 순수하게 격려하는 힘.
그 힘 갖고 쓸 수 있도록, 나의 성취를..... (ㅋㅋㅋㅋㅋㅋㅋ;;) 도와 주세요 : 이런 심정 기도라도 하고 싶어지기도 해요.

몰리 2016-12-08 13:24   좋아요 0 | URL
아 No pressure, no diamonds와 비교하셨던 거였네요. ;;;;;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가를 치른다. 

그리고 그보다 더, 그들이 스스로 되게끔 허락한 그것에 대가를 치른다. 

그 대가는 아주 단순하게 치러진다. 그들이 살게 되는 삶의 형태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말도 여러 저명인들에 의하여 여러 번 변주됐을 듯. 

오래전 이 말 처음 들었을 때, 아니 무슨 당연하지 않나. 생각이 삶이고 삶이 곧 생각이지 않아? 

같은 덜떨어진 반응 했었다. 이게 언뜻 보기보다, 무시무시한 진실이 있는 말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나. 


오늘 수업에서

"올해 내 삶을 가치있게 했던 것들" 주제로 얘길 해보았다. (<도리언 그레이> 읽고 나서 우디 앨런 Manhattan과 

함께, Why is life worth living? 주제로 했던 토론의 변형....) 회화 전공 남학생이 "예술가로 산다는 건, 된다는 건 

단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게 아니라 감각이나 실력이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그와 함께 똑똑해야 해요. 내겐 

그게 없어서, 계속 포기했던 한 해인데..."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나는 "똑똑해야" 이 말 들으면서 바로 하이라이트. 바로 윗점. 

그 똑똑함엔, 제임스 볼드윈의 위의 말이 전하고자 하는 "네가 너에게 되게끔 허락하는 그것에 네가 치를 대가" 

이런 걸 아는 바로 그 (그 방향의) 지성도 포함되지 않나. 정신의 어떤 강인함..... 정도로밖엔 지금 표현 못하겠. 

물론 그와 함께, 마티스나 피카소, 샤갈 등등이 그들의 문장으로도 보여준 똑똑함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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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6-12-13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인용하신 말이 무시무시한 말이라는 데 동감합니다. 결국 우리의 삶으로 값을 치르는 것이군요. 우리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요. 뭔가 파우스트적인 냄새도 나네요. 젊음이 지나고 나서야 이런 각성이 찾아옵니다. 하긴 젊어서 이런 것을 알았다면 애늙은이 같은 삶을 살았을 것도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이런 진실을 아는 것이 좋을까요, 모르는 것이 좋을까요? ...

몰리 2016-12-14 10:49   좋아요 1 | URL
전에도 많이 생각해보던 주제라서 (알고 시작하는 게 좋을까, 살다가 알아가는 게 좋을까)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예전엔 명확히 ‘이게 답이다..‘ 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답없다‘ 하게 되네요.

그런데 제임스 볼드윈이 전해 주는 진실 정도는
누구나 일찌감치 (심지어 어린이도;) 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삶을 잘못 살 수도 있다는 것. 잘 사는 삶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삶도 있다는 것.
좋은 삶과 나쁜 삶, 있다는 것. 좋은 삶은 기쁨, 축복이지만 나쁜 삶은 고통일 수 있다는 것.

바슐라르 책들에 여러 번 등장하는 구절 (˝잘못 살았던 삶의 무게˝ ˝잘못 소모했던 열정들˝) 생각하게 됩니다. 바슐라르는 무척 고상한; 고차원적 얘길 하시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시는 바슐라르 포함해서 ˝좋은 삶˝을 깊이 탐구했던 사람들을, 진지하고 진심으로 논의하는 풍토....;;;; 그런 게 있어야겠단 생각도 듭니다.
 




대학원에서 ta할 때

킹 목사의 저 말에서 justice에 괄호치고 괄호를 채울 말 묻는 퀴즈 문제를 냈었다. 

그러니까 두 괄호에 다 justice 넣으면 되는 문장. 


(Justice) too long delayed is (justice) denied. 


이걸 어떤 놈이 


(Sex) too long delayed is (love) denied. 라 답 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근데 진실은 진실 아님? 그 나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문화에서는. 등등의 단서를 달면? 

미국에서 초등, 중등학교 다니는 아이라면 킹 목사의 말을 모를 수 없고 누구든 일찌감치 

킹 목사의 말과 함께 저 말도 듣고 배우고 말하고인 것일 거라 짐작한다. 


섹스의 연기는 사랑의 부정. 

섹스의 미룸은 사랑의 부정. 음. 우리말로는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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