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어제 받은 책. 표지를 열고 "해설"로 가면, 이런 문장들로 시작한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자연 재난, 혹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듣는다면
우리가 묻고 싶을 종류의 질문들을 강제한다. 어떻게? 왜? 근거는? 그 근거가 설명불가인 이유는?
그는 미국의 오리지널이었다 (He was an American original). 그에게 주어진 79년 세월 동안 윌리엄스는
적어도 두 개의 삶을, 광적인 열기(강도) 속에 살았다. 40년간 그는 의사 -- 산과와 소아과 -- 였고 뉴저지, 러더포드의
작은 산업 도시에서 개업했다. 그 자신의 계산으로 백오십만 명의 환자를 보았고, 2천명의 아기를 받았다. 이건 1910년에서 1951년 사이의 세월인데, 병원에 자동응답 서비스가 도입되기 전의 일, 주식투자도 하는 의사들이 많아지기 전의 일이다. 윌리엄스는 노예처럼 의업에 종사했다. 그 일로 그는 큰 돈을 벌지도 못했고 특별히 높은 지위에 오르지도 못했다. 대신, 그 일이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가치의 너머에 있는 다른 삶, 예술의 삶을 주었다."
누가 또 그랬나는 얼른 생각나지 않지만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같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미국식 금욕, 근면, 정신의 세계가 있는 것 같음. 언제나 어디선가 누군가는, 생업엔 생업대로 그러나 다른 소명에도 헌신함. 혹은 어쨌든 속임수 없이 꾸준히, 자기 길을 감. 그러는 사람들이 비율이; 우리보다 높은 것 같다.
막 맥주 마시면서 올해 시작한 서재질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맥주는 사왔고, 마시기 시작함. 나에게 서재질은... 휴식같은 친구.
"내 좋은 여자친구는 가끔씩 나를 보면 얘길해달라 졸라대고는 하지. 남자들만의 우정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궁금하다며 말해 달라지. 그런 때 난 가만히 혼자서 웃고 있다가..." 이 가사, 좀 헷갈리지 않았나?
그래서 휴식같은 친구가 여자친구야 남자친구야. 남사친 쪽이 분명하긴 한데, 왜 남사친을 찬미해?
왜 여자친구에게? : 이런 혼란이 이 노래 나온 당시 들을 때 있었다.
미국 있던 시절 좋아했던 안주 중엔 땅콩, 특히 버지니아주 특산 엑스트라-라지 땅콩 있었다.
처음 알았을 때, 오오 땅콩이 엑스트라 라지래. 막 대추만한 거 아냐? 엄청난 기대 하며 찾음. 그 정도는 아닌데
분명 보통 땅콩보다 비범하게 크긴 했다. 땅콩의 그, 목 메이는 느꺼움이 증폭됨. 지금은 살찐다고 땅콩류 잘 먹지
않지만, 땅콩 안주로 맥주 먹던 그 시절의 어떤 시간이 그리워질 때도 먹지 않지만, 이미지 검색해 보았다. 저런 것.
그 시절이 그리워질 때 이유 중에 좀 이상한 이유도 있는데, 정비된 체제.. 를 향한 갈망. 그것은 '권력의 사유화'가
차단되는 체제. 대학원 안에서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기억하게 되는 그것. 힘있는 개인의 횡포, 이것이 아주 작게만
그것도 드물게 가끔 일어나지 늘 예상하며 수시로 감수할 준비 하고 있을 무엇이 전혀 아니었다 같은. 좋은 제도가 있어야
그래야만 그나마 간신히, 인간의 악을 억누르고 선을 장려할 수 있다. 같은 생각 하고 앉아있게 된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