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받은 조지 스타이너의 책 After Babel,
번역에 관한 책이란 것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열어 보니 세 개의 에피그래프가 있는데 하나가 하이데거.
출전의 제목은 독어 제목으로만 주고 있어서 정확히 어떤 뜻인지 영어로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됐는지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Dichterisch Wohnet der Mensch. "인간은 시적으로 거주한다?" "인간의 시적 거처?"
어쨌든 에피그래프로 인용된 대목은 이런 얘길 하고 있다:
인간은 마치 자신이 언어를 만들고 언어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는데, 실은 언제나 언어가 인간의 주인이다. 이 지배 관계가 역전될 때, 인간은 기이한 억지에 빠진다. 이때 언어는 표현의 수단이 된다. 표현일 때, 언어는 한낱 인상으로, 활자에 불과한 무엇으로 타락하는 경향이 있다. 언어가 인상과 활자에 불과할 때라도, 인간은 자기 언어에 유의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유의한다 해도, 언어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진정한 지배 관계의 혼란과 역전으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한다. 왜냐, 진정 말하는 것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말할 때, 인간은 그 자신 언어에 반응할 수 있는 한에서, 그 자신 언어와 만날 수 있는 한에서만 말한다. 인간은, 언어가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을, 자신에게 보내는 동의를 들을 수 있는 한에서만 말한다.
나중 찾아보려다 지금 막 찾아봤더니
위의 제목은 영어로는 Poetically Man Dwells로 번역되고 위의 책에 실렸다.
음 이 책을 갖고 있다는 건 안비밀.... 이렇게 한 번 말해보고 싶어진다. ------- 어쨌든
한 30%쯤 이해되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가 여기서 무엇인가 중대한 얘길 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느끼면서
특히 밑줄 친 대목은 만인이 모여 돌아가며 각자 코멘터리를 내놓는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어 번역이 되었나 모르겠지만 30배 길이의 주석을 붙여가며 읽으면 좋을 문장들이겠다고, 내가 기여할 한 줄의 주석으론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게도 되고.
다시 볼 곳이 조금 남긴 했지만
번역 원고 교정을 오늘 끝냈는데
하나 남는 생각이 뭐냐면, 번역에서 가독성보단 충실성.
이게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탁월한 역자라면 둘 다 높은 수준에서 유지할 텐데 탁월한 역자들 제외하고,
조금 어색, 난삽, 장황... 등등 하지만 주의 기울여 읽으면 원문이 전하는 내용을 모두, 정확히 알 수 있는 문장과
매끈하게 읽히지만 실은 원문 내용의 80% 이하가 담긴 문장. 혹은 (조금이라도) 틀리게 담긴 문장. 둘 사이에 선택해야 한다면 언제나 앞쪽을 택해야 하지 않나.
최고 번역가로 꼽혔던 이윤기의 번역도
내용 차원에서 오역이 굉장히 많은데 그 오역들의 특징이, 매끈하게 읽히지만 실은 원문을 전하지 못함(않음).
가독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면, 그게 오히려 오역을 장려하기도 하지 않을까? (이윤기의 경우엔 사정이 좀 복잡하다고
생각하긴 한다. 그런데 어쨌든, 잘 읽히는(우리말같은)..... 의 요구가 강력하면 오히려 졸역(오역)을 장려할 것같다고 나는 생각하긴 하는데, 얼마전 New York Review of Books에서 읽었던 러시아문학 영어번역과 관련한 글을 기억한다면 여기서도 아마도 난 무척 소수.. 쪽이겠단 (전율;;).
대학원 시절 In Treatment 보다가 여러 번 깊은 충격;; (무려) 받았었는데
그 중 하난, 50대 이상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굉장히 길고, 진지하고, 문학적이고, 진짜로 생각하고, 그래서 서로를 진짜로 알게 되고.... (이 외에도 더 생각해보면 여러 특징들이 있을) 대화였다. 폴과 지나가 얘기할 때가 (위의 이미지) 가장 그렇다.
두 사람이 교육수준이 아주 높고 한때 '썸타던' 사이였던 것도 조금은 감안해야겠지만
한국어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한국어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 이런 질문을 고심하며 생각해 봤었음. 이렇게 천천히, 사려깊게, 단어 하나 예외없이 깊은 뜻을 담아, 단어 하나 예외없이 온전히 이해될 것을 기대하며, 말할 수 있는가.
;;;; 그럴 수 없을 것 같고
없는 이유엔, 쉼표는 거의 무조건 (내용을 볼 것도 없이) 지워야 하고
"--으로부터" 역시 문장이 무엇을 말하려던 것인가와 상관없이 "--에서"로 고쳐야 하고
등등의, 번역문이 가져올 낯설음의 차단.. ;;;; 도 작용하지 않느냔 생각을
맥주를 마아------------------------------------악 마시며 해보았습니다. ㅋㅋㅋㅋㅋ; 조금 아주 조금 취한 상태.
낼부텀은 하고 싶엇던 공부하며 서재도 중단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