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니체 사도> 77쪽에서.
니체의 도덕철학은 그 전부가 남들을 폄훼하고자 하는 욕구의 극복에 관한 것이고
니체는 자기칭송할 자유의 분출과 함께 나르시시즘의 시대를 열었고... 이런 얘기를 하다가
에머슨과 니체를 비교한다. 니체가 개인주의의 트렌드 디자이너로 거둔 대성공, 이 대성공의
무엇이 독특한가를 알고 싶다면 (이것도 개인주의이긴 하지만 니체의 것과는 조금 달랐던) 에머슨의
트렌드 디자인을 볼 수 있겠다면서. 슬로터다이크는 <냉소적 이성비판>이 집에 있고 그것 두 페이지쯤 읽으면서
한 대목에서 현실웃음 터졌던 것같은 기억이 있다. 철학자들이 불어올리는 허세, 비누방울 콕콕 터뜨리는 사람? 그런
무엇이 있었던 것같은데 <니체 사도> 이 책에서도 그 비슷한 면모가 있다. 니체라는 "브랜드". 니체라는 "트렌드 디자이너" 이런 말들을 (조금의 아이러니 없이) 쓰는 것에서도. <냉소적 이성비판>에선 성공적인 무엇이었나 몰라도 이 책에선 아님. 으으. 시시한 얘길 어찌나 복잡한 구문으로 하고 있는지.
어쨌든 에머슨과 니체를 비교하는 한 대목:
니체와 비교할 때 에머슨에게, 심리-정치적 우위만이 아니라 시간적 우위도 있다.
에머슨의 반-순응주의는, 저항을 겪긴 하겠지만 민주주의 덕분에 결국엔 늘 균형을 유지할
대중의 양가적 나르시시즘으로 발전할 무엇이었다면, 니체의 자유 정신엔 성공에 굶주린 패배자들의 운동에
채택될 아주 큰 위험이 있었다.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파시즘은 정치적으로 말하면 "갑자기 에너지를 충전한 패배자들의 반란"일 따름이다. 이들이 어떤 예외의 시간 동안, 승리자로 보이기 위해 규칙을 바꾼다. 패배자들이 니체 브랜드를 택했고, 이건 승리자의 브랜드라는 약속이 거기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니체가 패배자들의 영웅이 되었다는) 이 끔찍한 에피소드는 지속될 수 없었고 지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브랜드의 전선에서 에머슨의 프로젝트가 니체의 프로젝트에 맞서 승리했다. 오늘 우리 대부분이 반-순응주의자이지 자유정신이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가 흔히 갖는 생각과 감정들은 "미국산"이지 "실스 마리아산"이 아니다.
마지막 문장이 묻게 함. 그런가?
우리의 평범한 생각과 감정들이 "made in the USA"이지 "made in Sils-Maria"가 아닌가?
슬로터다이크의 우리는 가장 먼저 독일인들이겠으니, 독일에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들은 미국산이다" 그러면 별생각없이 다들 끄덕이려나? 그런가 하면 니체를 해석하면서, 그 해석을 통해 우리의 감정과 생각이 진정 "실스 마리아산"이 되게끔 (그에게 먼저 그런 일이 일어났고) 애쓰신 바슐라르를 생각했다. 니체주의, 니체주의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이보다 더 명확하고 강력한 진술, 옹호는 없겠지. 그렇다고 알아만 볼 뿐 실행은 못하더라도. 그래도, 애쓰심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그리스인들에게 비극 시대의 철학>. 니체의 초기작. 이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책들의 운명[fatum libellorum]이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서 헤라클레이토스를 뺏아가고, 엠페도클레스의 아름다운 시편을 읽지 못하게 하고, 고대 사람들에겐 플라톤과 동급으로, 아니 독창성으로 보면 그보다 탁월하다 여겨졌던 데모크리투스의 글을 볼 기회를 앗아가고, 대신에 스토아 학파와 에피큐로스 학파를, 키케로를 남겨준 게 이 운명일지 모른다. 고대 그리스 정신이 낳았던 가장 탁월한 표현을 우린 잃었지만, 이 운명이 의아할 필요는 없다. 스코투스 에리게나와 파스칼에게 일어났던 일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바로 이 계몽된 시대에,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폐지로 팔려야 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이런 사건을 관장하는 특별한 힘을 갖고 싶다면, 괴테와 함께 아래의 말을 되뇌면 된다.
"세상이 비열하고 천하다고 불평하지 말라. 네가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라도, 세상 어디든 비열하고 천한 것이 다스리고 있다." 진정, 비열하고 천한 것이 진실보다 힘이 세다. 인류가 좋은 책을 생산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대담하고 자유롭게 진실을 외치는 책. 철학과 철학자의 영웅주의를 노래하는 책은 극히 드물게만 씌어진다. 그런데 우연 중에서도 가장 하찮은 우연이, 말하자면 인간의 변덕이나 미신에 빠진 정신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 혹은 반감, 쥐나버린 손가락, 또는 책 파먹는 좀벌레나 예상에 없던 폭우 등의 우연이, 하나의 책이 한 세기 이상 읽힐 것인지 아니면 재가 되어 스러질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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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정신의 탁월한 표현을 잃은 것이
인간들의 우매함 때문인 것처럼, 그 다음 이어지는 문장들을 보면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될만큼 드물지 않나? 불운("예상에 없던 폭우" 같은)에 의해 유실되는 경우가 거의 다지, 탁월했으나 그 탁월함을 알아본 인간들이 없어서 사라지고 만... 그런 저자, 작품은 없지 않나? 있나? 있을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점도 사실 "인류에 대한 믿음의 회복"이 가능한 얼마 안되는 점들 중 하나 아닐까 했다.
뛰어난 작품은 반드시 알려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