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만 보아도 '아 이건 누구 작품이다'라고 알아챌 수 있는 작가가 몇 명 있습니다. 이 그림책의 작가 심스 태백도 그런 작가 중의 한 사람이죠. 이번 그림책은 마더 구스와 같은 너서리 리듬을 그림책으로 만들었는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놀이라도 하듯이 책을 읽을 수 있답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많은 노래가 별다른 의미가 없듯이 '잭이 지은 집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노래도 별다른 의미가 없이 여러명의 주인공이 순차적으로 등장해 유쾌한 소동을 벌이지요.

심스 태백은 칼데콧 상을 받은 <요셉의 낡은 오버코트가...> 에서 보여준 독특한 그림을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특히, 이 그림책은 심스 태백의 장난스러운 개성이 페이지마다 펼쳐집니다. 이 그림책은 그림을 그린 심스 태백만큼이나 번역자와 디자이너의 노고가 돋보입니다. 이 책의 경우 그림과 글의 경우가 모호하거든요. 글자 역시 그래픽적인 효과가 충실하기 때문에 본문의 텍스트를 어떤 글씨체로 옮겨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을 겁니다. 또, 본문 번역은 어떻구요. 원래 이런 전래적인 민요는 자국의 민속색을 강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타국 사람들은 그 리듬과 분위기를 잘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이 책의 경우 재미있는 우리말 리듬으로 노래의 흥겹고 유쾌한 분위기를 잘 살려내,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서도 즐겁게 볼 수 있는 그림책으로 되살려냈습니다. 특히 꼼꼼히 볼 것을 권하는 그림책입니다. 책 뒷면에 빼곡하게 씌여진 글씨도 놓치지 말고 보세요. 배꼽이 빠집니다.

케네스 C. 데이비스는 'Don't Know Much About'  시리즈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역사, 지리에 이어 이번에는 우주에 대한 상식을 실었는데요, 이전에 나온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지리 이야기>를 읽으셨다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금방 감이 올 것입니다. 케네스 데이비스는 무엇보다 유치하지 않게 지식을 풀어 설명합니다. 어린이책이 시시해지기 시작한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과 중학교 학생의 눈높이에 딱 맞는 책이고요, 한국어판의 경우 책의 분위기와 잘맞는 만화식 삽화를 넣어서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식의 책은 참 소개하는 것이 힘들지요. 어떻게 재미있게 상식을 가르쳐주는지를 보여주기 힘드니까요. <울퉁하고 불퉁한 우주 이야기>는 적당히 재미있으면서도 학습적인 면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책읽기가 버겁고 우주에 대해 잘 모르거나, 재미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아이들이 보기에 딱 좋은 책이지요. 케네스 데이비스가 아이들에게 흥미를 이끌어내는 방법은 주변을 공략하면서 핵심을 찌르는 어법입니다. 처음부터 스트레이트하게 지식을 가르쳐주면 누구든 지루함을 느낄 것입니다. 과학에 사명감을 가진 아이가 아니고서야 말입니다. 이 책은 먼저 아이들엑 눈이 반짝 뜨일 것 같은 사실을 알려줍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최초로 별을 관찰한 사람은 누구일까?' 별은 어떤 것이고 관측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면 다들 눈꺼풀이 무겁겠지만 이런 단편적인 퀴즈 상식은 궁금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애둘러 가르쳐주면서 천문관측의 역사를 다 파악하게 하지요.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은 1993년입니다. 꽤 오래되었지요. 거의 10년 전에 이 정도 수준의 백과사전이 나왔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이야깁니다. 그때 10권으로 나왔다가 품절되었고, 이번에 개정판을 냈습니다. 10권 중에서 4권밖에 나오지 않은 점이 너무 아쉽네요. <살아있는 우주>, <재미있는 미술 여행>, <나무와 숲>, <물, 샘에서 큰 바다까지> 가 이번에 나온 책입니다. 이 백과사전은 일단 책을 낸 곳이 너무도 유명한 갈리마르입니다. 이미 책을 낸 출판사 이름만으로도 어느 정도 믿음이 가지요. 그리고 가격은 비싸지만 그만큼 책안은 독특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습니다.

책은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은 읽고, 실습하고, 생각하고, 만지고 놀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자료를 찾는 것으로만 이용하던 백과사전에서 탈피해, 능동적으로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온갖 장치가 책 속에 가득합니다. 회전판, 팝업, 스티커 붙이기, 뜯어 붙이기와 같이 책 자체를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요. 직접 만져보고 대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책을 꾸몄습니다. 제가 특히 놀란 것은 나무의 표면처럼 인쇄한 두꺼운 페이지였습니다. 올록볼록하게 인쇄가 되어 있어서 직접 만지면서 나무의 촉감을 느낄 수 있지요. 또, 파피루스를 알려주는 페이지에는 진짜 파피루스가 책에 붙어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차례 활용해도 책 자체게 훼손되지 않도록 특수제본된 스프링북이고요. 거의 모든 페이지를 UV 코팅을 했습니다. 정말 그림과 사진이 선명하면서도 눈이 부시지 않더라구요. 거기다 우리나라에 관련된 내용을 따로 삽입해서 활용도를 더 높혔답니다. 초등학교 중학년들에게 여러가지 체험을 경험하고 여러 분야에 흥미를 가지도록 하는데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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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도 적절하고, 내용도 굉장히 유쾌합니다. 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온 책은 특이하게도 삽화가 적습니다. 사실 요즘 어린이 책에는 삽화가 너무 과잉인 경우가 많지요. 삽화가 많이 들어간 책이 고급스럽긴 하지만 문자라는 추상적 개념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초등학교 중학년이나 고학년 아이의 경우 독서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독서흐름을 깨고 문자를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죠. 같은 시리즈의 책들도 그러했지만, 이번 책은 삽화가 특히 마음에 듭니다. 자기 존재를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든든하게 제 할일을 한다고 할까요? 이 책은 장난꾸러기 4명의 시골 아이들이 가짜 고래 벽화를 그리면서 벌어지는 마을의 소동을 담았습니다. 아이들이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꼬투리를 잡자면 아이들의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햄릿, 돈키호테, 제갈공명, 화가... 가 이 아이들의 별명인데 요즘 아이들이 과연 자기 친구들에게 햄릿이나 돈키호테 같은 별명을 붙일까요? 사실, 햄릿이나 돈키호테가 누군지는 알까요? 이런 별명이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방해하지 않을가 조금 걱정이 됩니다.

그림책에 대한 글을 쓰다보면 아무래도 그림에 대해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밖에는 하지 못합니다. 색상이 어떻다, 데생이 어떻다 느낌이 어떻다와 같은 일종의 인상주의 비평에 머물게 되지요. 저 역시, 그림에 대해서는 일단 개념이나 어휘에서 막히게 되지요. 이 책은 그림을 전공하고 그림을 그려온 화가의 입장에서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한 책입니다. 읽으면서, 아 그래 이 그림은 이렇게 평하는구나, 이 그림이 왜 좋은지를 설명하지 못해 안타깝고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해지더군요. 물론 이야기가 전문적이라 쉽게 읽히진 않지만, 그림책을 좋아하는 분, 그림책의 그림에 대해 좀더 전문적인 지식을 얻고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국내에 출간된 책 뿐만 아니라 아직 출판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 출간될 일이 요원할 것 같은 해외의 멋진 그림책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답니다. 다만, 국내 그림책에 대한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읽어보시고 판단을 내리세요.

아. 너무도 사랑스러워요. 각 콩들의 얼마나 오밀조밀하게 귀여운지 그림을 보는 순간 이야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까만 크레파스>를 그린 작가가 그린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3권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월말에 같은 시리즈의 책이 또 나온다고 해서 엄청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유아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갈등을 참 유쾌하게 해소시켜주거든요. 이 <누에콩과 콩알 친구들>의 중심 줄거리는 항상 자기 침대가 최고라고 뻐기던 누에콩이 자기보다 더 좋은 침대를 가진 강낭콩 형제들과 대결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 대결은 대결이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뭉쳐서 위기를 넘기지요. 아이들에게 서로를 인정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합니다. 침대(사실 콩깍지입니다)의 우열을 가리는 대결에서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는 그 결론으로 넘가는 과정이 저는 참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제가 어린이가 아닌데도 말이지요.) 이런 교훈적인 요소가 강하게 들어있지만 책 자체는 무척 재미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나카야 미와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도책만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있을까요. 저도 어렸을 때 지리과부도를 펴놓고 각 나라의 수도를 외우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첫 세계여행>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호야와 곰곰이의 세계지도여행>보다는 쉬운 책으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아직 글씨책 읽기가 버거운 초등학교 저학년이 읽기에 참 좋습니다. 이 책이 특이한 점은 기름종이(트레이싱 페이퍼)를 사용해서 지리적인 부분은 트레이싱 페이퍼에, 식생이나 문화유적과 같은 것은 아래에 있는 종이에 인쇄한 점입니다. 3가지로 활용이 가능한 구성이죠. 먼저 기름종이에 그려진 국경선과 국가 이름을 보고, 기름종이를 넘기면 해당 대륙의 중요한 부분이 그림으로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는 사막이나 강, 호수의 위치, 그리고 각 지역에 사는 특이한 동물과 식물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지요. 그리고 기름종이에 겹쳐서 보면 그 두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답니다.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사회.문화적인 부분을 잘 정리했고, 옛날과 오늘날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선'을 견지하려는 노력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이 책에서는 북아메리카 대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23개의 나라가 있어요. 그 가운데 미국과 캐나다는 아주 잘살지만, 그 밖에 나라는 대부분 가난해요.". 북아메리카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간결하면서도 쉬운 설명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책은 혼자 읽어도 좋지만 엄마와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습니다. 엄마가 알고 있는 지리나 역사, 문화 상식을 이야기할 수 있고, 아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제3세계의 문제, 기아와 가난의 문제, 부의 편중 문제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야말로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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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기획된 책을 읽다보면 우리 어린이책은 기획(이른바 논픽션) 부분에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쓸만한 작가가 부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초등학교 전학년을 대상으로 한 학습그림책으로 서양 역사 천년을 간략하게 정리한 책입니다. 우리 기획책들이 아이들에게 어떠한 사실을 외우도록 강요한다면, 이 책의 경우 아이들에게 어떠한 학습적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천년에 역사에 대한 호기심의 씨앗을 잔뜩 뿌려주는 구성입니다. 책의 주인공은 아이들입니다. 백년의 단위로 구분한 것이 좀 작위적이긴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이렇게 딱딱 떨어지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 시대의 풍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도 훌륭합니다. 아무리 역사를 싫어하는 아이라도 이 정도의 책이라면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요? 전문적이고 상세한 역사는 아니지만 각 시대의 특징을 파악하고 역사에 흥미를 돋구기에는 그만인 책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한국동화를 읽어본 분은 아시겠지만 여성동화작가가 그렇게 많은데도 여자 아이의 이야기는 무척 드뭅니다. 대부분 이야기의 주인공은 남자이고, 여자아이는 무척이나 전형적인 캐릭터(왈가닥이나 얌전이 혹은 모범생, 새침이)로 등장할 뿐이지요. 외국 책이긴 해도, 이 소피 시리즈는 참 마음에 드는 여자 아이가 등장합니다. 무조건 착하지도 않고, 무조건 못되지도 않은.. 독특한 아이의 일상이 짧은 에피소드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권이 3권인데요. 갈 수록 분량은 약간 늘어나는 느낌입니다. 주인공이 초등학교 1학년 정도고 문장도 무척 쉬운 편이라 그림책에서 읽기책으로 넘어가는 아이들이 보기에 좋습니다. 다루고 있는 내용도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겪는 평범한 일들이니까요. 이 작품을 쓴 딕 킹 스미스의 다른 작품들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여우잡이 암탉 삼총사>나 <도도새는 살아있다>도 무척 유쾌한 작품이지요.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 청소년 문학상은 아동문학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상당히 많은 부문에 상을 주는 종합문학상이랍니다. 그림책에서 중.고등학생을 위한 논픽션까지 방대한 부분을 아우르지요. 테드 반 리스하우트의 <형제>는 일반 소설로 보아도 되는데, 특히 사춘기 남자 아이의 성장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청소년 소설로 분류됩니다. 이 작품은 동생의 죽음에서 시작합니다. 형제라는 것은 생각보다 소닭보듯 지내기가 쉽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바쁘게 사는 세상에서 내 동생이 혹은 내 형이 무슨 고민을 하고 사는지를 일일이 물어보고 생각하고 살기란 쉽지 않지요. 이 기묘한 형제는 동생이 죽은 후에 일기장을 통해 소통을 시도한답니다. 이 형제의 고민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바로 '남자'를 좋아한다는 고민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죽음, 동성애, 성장, 가족... 무척 무거운 주제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그 무게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읽고나서야 참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고단한 것이었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자녀교육서를 읽다보면 질린다고 할까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 동어반복적인 이야기가 책들마다 수북하지요. 솔직히 자녀 교육서 한 10권 정도만 읽으면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 뻔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이 책 <아이들과 함께 단순하게 살기>는 그 중에서도 요즘 삶에 설득력을 갖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제목은 '단순한 삶'이지만 이 책은 상업문화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미디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까 하는 고민을 하는 책입니다. 사실, 많은 자녀교육서들은 '나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부모가 자녀양육에 모든 책임을 진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는 경우가 많지요. 아이가 폭력적인 성향과 학습장애, 정서장애를 가지는 것은 부모가 제대로 그 아이를 키우지 못했다는 '암묵적인 비난'까지 느껴지는 책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테두리를 벗어납니다. 무엇보다 광고나 영화 속의 이미지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얼마나 미디어에 의해 '상처'받고 있는지 정확한 연구 결과와 데이터를 토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볼 때 참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이상한 물건에 열광하기도 하지요. 그 심리에 근저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나면 참 이 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할지 참담한 마음까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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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동화작가가 굳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동화는 자기 아이에게 읽히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자기 안의 어린이를 위해 쓰는 글이라는 것이 그녀의 요점. 나는 그 글을 읽는 순간 이 <내 친구 비차>가 생각났다. 내가 초등학교 때에도 읽었던 비차. 무려 나이가 반세기다. 이번에 새롭게 개정판이 나왔다. 달라진 점은 러시아어를 전공한 사람이 번역을 했고, 이전의 오류를 바로잡았다는 것.

지금의 러시아가 소련이라고 불리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동화다. 하지만 이야기는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먹힌다. 그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이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아이들은 공부보다는 놀이를 좋아한다. 방학 동안 실컷 놀고 개학을 걱정하며, 제일 싫어하는 수학 숙제는 맨 뒤에 하는 비차. 어차피 해도 모르니까 숙제는 베끼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비차. 그런 비차가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로 거듭난다. 스토리만 보자면 굉장히 교훈적이고 설교적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생활에 밀착해 아이들의 동일시할 수 있는 아이 비차가 있다. 50년 동안 이 동화가 사랑받은 이유는 아마도 이 작가가 자기 안의 아이를 위해 글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14마리 시리즈로 유명한 이와무라 카즈오의 장편동화. 그림만 잘 그리는 줄 알았더니 글솜씨도 훌륭하다. 나는 그동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현실을 언어로 빚어내는 것은 잘 못할거야하는 근거없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읽고는 그림을 잘그리는 사람이 동화까지 이렇게 잘 쓴다말이야. 세상은 참 공평치 않다고 궁시렁거렸다.

모두 8권으로 구성된 동화로, 뾰족이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무당벌레 친구와 함께 뾰족산을 오르는 모험을 담았다. 나이 든 할아버지가 매일 밤 손자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구조로 한 장이 무척 짧다. 바람과 구름, 뾰족쥐와 물방게, 나무들이 태어났다는 뾰족산을 찾아가는 여정은 야단스럽지 않다. 초록톤의 표지그림처럼 한없이 차분하게 '성장'과 '만남'의 의미를 반추하게 하는 작품이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다만, 일본과 제책방식의 차이 때문에 그림 순서가 반대로 보이는 부분(2권에서 줄무늬뱀이 서로를 먹는 부분)이 조금 거슬렸다. 글과 그림이 나무랄데 없는 모처럼 만난 좋은 작품이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는데 청소년에서 어른까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아직 소프트한 가족 소설이다. 어머니의 자살로 고아가 된 삼남매가 그때까지 있는지도 모르는 이복형제를 찾아가 함께 살게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초콜릿에 탐닉하는 판사, 남편에게 매맞고 하는 여자, 지독한 독점욕으로 애인을 괴롭히는 동성애자와 같은 주변인물은 오히려 얌전한 수준이다.

남자 친구(애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진정제나 수면제를 탄 커피를 마시게 하는 이복형, 피는 한방울 안섞인 이복누나, 주방세제를 마시고 자살한 어머니, 집을 나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고아가 된 삼남매의 유일한 가족이다. 그런데 이들 다섯 명이 가족공동체로 거듭나는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아와 병자와 동성애자라는 주변인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지만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너무도 평범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복형 바르와 백혈병에 걸린 시메옹이라는 캐릭터가 참 흥미롭다.

내용보다 섬세한 세밀화풍의 그림이 압도적으로 멋있다. 굴토끼와 멧토기의 아기 토끼 기르기가 내용이다. 보통 그림동화의 틀을 깨고 글보다 그림이 주가 디고 있다. 텍스트 면에도 섬세하게 그림이 들어가 있으며 때로 그림이 글 중간에 끼어들기도 한다. 갑자기 개미들이 두 페이지의 글 숲을 가로지르며 지나가기도 하고, 아기 토끼들이 뛰기를 배우는 장면을 묘사한 '깡중깡충 뛰며 뒷다리로 힘껏 내닫기 시작했어요'에서는 깡총거리는 멧토끼들이 행간 사이로 뛰어 들어온다. 다양한 포즈의 토끼들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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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클린 윌슨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닉 샤랫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편식과 올바른 식습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그림책은 참 많지요. 예를 들면, <난 토마토 절대 안먹어!>, <뱃속 마을 꼭꼭이>, <왜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할까요> 같은 책들이요. 이 그림책들이 하나같이 아이들에게 싫어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설득했다면 이 책은 조금 다름니다. 아이의 엄마는 어떻게 꼬셔서도 콩을 먹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애는 요지부동입니다. 별의별 말로도 콩 앞에서 고개를 가로젓는 아이. 그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가 방울양배추를 다 먹으면 나도 콩을 다 먹을게요." ㅎㅎㅎ 그렇죠. 사람에겐 누구나 먹기 싫은 음식이 한가지 정도는 있기 마련이죠. 골고루 먹이는 것이 엄마의 희망이자 꿈이긴 하지만, 싫어하는 음식 한 가지 정도는 안먹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엄마들은 이 책을 읽히고 나서도 어쩌면 '그래도...' 라고 말할지 모르겠어요.

이 책은 일종의 수상작품집입니다. 프랑스의 어린이.청소년 문예지인 '주 부퀸'에서 여는 문학콩쿨인데, 대회방식이 참 재미있습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낙, 미셸 트루니에 외에도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타르 벤 젤룬 등 쟁쟁한 문인들이 출제자이자 심사위원입니다. 이 쟁쟁한 작가분들이 앞부분을 쓰면 참가자가 뒷부분을 쓰는 형식으로 진행되지요. 이런 식으로 감상을 쓰긴 참 그렇지만 너무 흥미진진합니다. 무엇보다 기성작가의 글빨에 아이들의 글이 전혀 밀리지 않습니다. 틀에 갇혀있지 않아서 그런지 아이들의 상상력과 이야기 구성은 참 신선하고 매력적입니다. 엉뚱한 결론들도 많이 있지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건축 이야기의 한 권으로 아래에서 소개할 <땅속 세상>과 함께 출간되었습니다. 이로써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건축 이야기 시리즈가 여섯권으로 완간되었네요. 매번 읽을 때마다 정교한 그림과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짚어주는 글에 감탄하고 맙니다. 사실 어린이가 읽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건축에 관심이 많은 어른들이 읽기에 딱 좋습니다. 다리, 터널, 댐, 돔, 초고층빌딩 등 각 건물들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지극히 건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들어가는 글에서부터 배를 잡고 웃었네요. 데이비드 맥컬레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영화 제작자들이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또 웅대한 의지와 애끓는 마음, 환희와 같은 인간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동안 내 마음 속에는 암나사와 수나사에 대한 호기심이 커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왜 저런 모양이 아니고 이런 모양일까? 어째서 콘크리트나 돌 대신 강철을 썼을까? 왜 이것을 저쪽에 놓지 않고 이쪽에 놓았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면서 내 관심은 자연히 기본 설계 과정으로 옮아갔다." 읽기에 절대 만만한 책이 아닙니다. 하지만 꼼꼼하게 한층한층 올라가는 거대한 건출물에서 논리와 상상력을 한 번에 맛보는 즐거움이 있지요. 진득하게 읽기 좋은 책입니다. 저는 언젠가 이 책을 옆에 끼고 실제 건물을 보러가는 여행을 하고 싶더군요.

그리고 <땅속 세상>. 책 표지에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도로공사 때 파헤친 땅 밑을 보면 수많은 관이 땅 밑에 파묻혀 있습니다. 상.하수도관, 케이블, 터널.. 그뿐만이 아니라 땅 밑에는 건물을 떠받치는 벽이나 기둥도 묻혀있지요. 땅속에 묻혀있는 시설들은 현대 도시를 떠받치는 거대한 지지대입니다. 이것들이 조용히 자기들의 일을 별탈없이 해내어 사람들은 무심히 그리고 아무일 없이 길 위를 지나갈 뿐이지요. 이 책은 두 길이 교차하는 지역의 땅속을 파헤칩니다. 좁은 사거리에 묻혀있는 것들을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랄 겁니다. 이렇게 복잡한 것들이 서로 체계를 이루어 모든 일을 수행하는 것들이요.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그림책을 정교한 시계 속을 보는 것 같습니다. 복잡한 톱니바귀와 나사가 척척 맞물리면서 다음 시간을 알리는 시계의 속같은 그림이라고 할까요? 이 책 역시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다 읽고나면 정말 현장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진짜 지식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흐아.. 그런데 왜 저는 주먹구구식으로 파헤쳤다 묻었다를 반복하는 우리네 공사가 생각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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