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책 이야기 올리기가 쉬운 게 아니었구나;;;

10월의 두 번째 금요일 오후 6시, 전시회가 시작되었다. 소각식은 11월 1일 오후 6시로 예정되어 있었고, 나는 11월 4일에퇴실 절차를 밟아야 했다. - P272

로버트가 찾아낸 수집품으로 가득한 서재가 떠올랐다. 거기서리나가 즐겨 착용했다는 소품들을 본 적도 있었다. 샘이 하나하나 짚어가며 사연을 소개해준 적도 있었다.
"리나의 것을 자꾸 물어오는 로버트가 발트만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발트만은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에 갇힌 사람이야. 출구를 스스로 봉해버린 사람. 애초에 리나의 냄새라고 하는 것이그 사진 속 여자의 것이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이었을 수도 있지. - P290

어떤 사람들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고치면서매일을 살아나간다. 발트만이 그런 인물이었다. 이미 지나온 삶에 대해 뒤늦게 꿈꾸는 것이 무모한 일일까. 이미 흘러온 시간은 바꿀 수 없는 것이므로 영 가망 없는 일일까. - P292

"진실이요? 잘 보관하지 못해 부패해버린다면 다 의미 없는이야기죠. 때로는 알맹이가 아니라 껍데기가 중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로버트 재단의 액자 틀이 있으면 그 안에 있는건 모두 믿고 싶은 얘기가 되지요. 그게 썩지 않는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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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1-04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어려운걸 하고 계신 만두님....

유부만두 2023-11-04 21:45   좋아요 2 | URL
으쌰!
 

벌써 11월! 뭘 했기에, 매일 평소처럼 부지런히 지냈는데 벌써 11월이라니. 시간이 나 몰래 부지런히 전진하고 있었나보다. 원망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골라 들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니, 그럼 모든 일월년도 계산과 수치들은 가식적인 장치란 말인가? 시간은 가만히 있는건가? 그런데 왜 나만 시간에 쫓기고 추월당하는 느낌이 드는가. 


첫머리부터 아름다운 문장이 독자를 홀리고 있다. 


"가만히 멈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시간이다. 친숙하고 은밀하다. 시간이라는 도둑은 우리를 끌고 간다. 1초, 1분, 1시간, 1년의 쏜살같은 흐름이 우리를 삶 속으로 밀어넣었다가 나중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 끌고 간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것처럼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산다. 우리 존재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뭐야, 시간은 흐르잖아. 그런데... 실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공간마다 시간의 흐름은 다르고 열이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하듯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질서에서 엔트로피로 향한다고 한다. 그 안에 우리가 살고 있다. (여기까진 오케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이 멈추고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도 멈춘다고 했다. 시간은 변화의 척도이며 움직임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턴은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아무리 사물이 멈추고 변화가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절대적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삼번 타자 아인슈타인은 이 둘의 논리를 나름대로 (25세에 그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정리하여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다. 상재적인 시공간과 절대적인 시공간 개념 너머에 각자의 시간과 각자의 공간이 존재한다. "중력의 근원이며, 뉴턴의 공간과 시간을 형성하고 이 세상의 나머지 부분이 그려지는 직물"인 "중력장field"가 존재하는 것이다. 시공간은 탄력이 있고 휘어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시간이 사물과 상관없이 유유히 흐른다는 추측은 틀렸다!!!! 고 저자는 말한다. 


어렵지만 따라가고 있습니다. 1부의 5장 제목은 무려 <시간의 양자>. 양자역학이 나온다. 두둥. 


난 시간이 너무 빨리 가고 무상해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과학자의 이야기에 위로를 받고 싶었는데. 그래서 제목보고 덥석 읽기 시작했는데. (나의 상대적) 시간은 흐르지만 책장은 흐르듯 넘어가지 않아서 뭔가 속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도 책은 꽤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데 어쩐지 다 내 잘못이야 기분마저 든다. 양자중력학(이라는 아직은 마이너한 분야)에선 시간이! 물 흐르듯 흐르는 게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입자처럼 양자화된다고 한다. 


"양자중력을 연구하는 물리학은 이 극단적이지만 너무 아름다운 풍경, 즉 시간이 없는 세상을 파악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시공간도 "파동처럼 흔들리며 다양한 형태로 '중첩'될 수 있다"고. 아 어렵다. 어쨌거나 "지금"(지금, 이란 건 없다고 저자는 설명해줬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한국에 사는 나의 지금, 롸잇 나우)은 11월 3일 저녁 9시 02분. 1부 다 읽었다. 좀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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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11-02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흐르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쥬르륵… 예전에 Suede의 Everything will flow라는 노래를 좋아했었는데 이제 나야 그만 흘러라…

유부만두 2023-11-03 07:59   좋아요 1 | URL
쥬르륵… 시간이 물처럼 흐르든 말든, 양자화 되어 알알이 흩어지든 말든, 난 매일 매일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요. 비가 오려나? 무릎이 시큰거립니다.

유부만두 2023-11-03 08:03   좋아요 1 | URL
Suede 노래 틀어 놨어요. 2011년 앨범인데 더 옛날 곡 분위기네요. 끈적~
 

어제 밤 늦게 완독했다. (책의 앞 부분 감상문-> [알라딘서재]불타는 작품 1 (aladin.co.kr))

알라딘 책 설명, 특히 카드 뉴스 형식의 소개 그림에는 스포일러가 넘친다. 피하시는 게 낫고요.


책의 후반부. 주인공 안이지 작가가 통역 과정의 오류와 오해로 얼결에 결정한 주제 "오늘의 개"는 우습기도 잔인해 보이기도 한다. 어쨌거나 주제가 정해지면서 소설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이전까지는 짜증의 빌드업이랄까, 설정의 도미노 찬찬히 놓기 였다면 이젠 초반부의 여러 요소들이 재등장 해서 오류와 오해를 설명하고 심화시킨다. 안이지 작가뿐 아니라 윤고은 작가의 소설 설계 과정이 설명되는 것 같다. 이 와중에 완벽하고 근엄하며 오만하기까지 한 "로버트"가 헛점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재단의 엉성한 금, 갤러리 뒷문의 틈, 새어나가는 비밀, 거짓말 아니 애초에 믿기지 않았던 설정들. 헛, 로버트가 *을 싼다. 


작품 제작에 집중할수록 주인공은 자신의 작품이 불타게 된다는 약속을 피할 궁리를 하게 된다. 불타야 작품의 의미가 있으니 불타지 않으면 안되는데 불타면 작품은 남지 않는다는 도돌이표 문제에 골몰하는 주인공. 그런데 로버트는 어디 갔어? 


깐깐하게 구는 재단측 사람들이나 이익을 취하려는 주변 사람들, 전설을 만들어 즐기려는 사람들 모두가 얼키고 설키는 이야기다. 이미 해외에 소설 판권이 많이 팔렸다고 들었는데 주인공이 한국인이고 배달 서비스 앱 이야기가 나오는 것 말고는 미국 소설 느낌이 많이 난다. 윤고은 작가가 자신감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마음에 든다. 겁을 먹지 않고 일단 전진! 윤고은과 안이지의 공통점. 상식과 관례가 삐걱거리는 틈새에서 여럿이 (아니면 나만?) 바보가 되다가 막판에 대난장판 쇼가 벌어진다. 그야말로 불타는 작품 그 자체다. 


초반 설정이 많고 억지스러운데다 주인공이 받는 압박과 짜증에 독서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냥 느긋하게 난장쇼를 즐기자, 라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나도 그랬어야 했음) 여러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유머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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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1-01 14: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 태그 보고 깜짝 놀랐어요 40일째 매일 글쓰기 하시는 중이라니!

유부만두 2023-11-02 07:59   좋아요 1 | URL
목록이나 밑줄긋기, 책사진으로 대신하기도 했어요;;

건수하 2023-11-02 08:10   좋아요 0 | URL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 100일 채우시면 연말에 뿌듯하실 것 같아요~

유부만두 2023-11-02 08:15   좋아요 1 | URL
계속 해 보겠습니다! (feat. 황정은)
 

이번 달 최고의 선택은 <소네치카, 스페이드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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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31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네치카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0-31 23:54   좋아요 0 | URL
우리집 양반이 세컨드를 두는 설정은 반대입니다. ㅋ
 

사흘째 붙잡고 있다. 아니, 오늘은 펼치지도 않았다. 오늘이 말일인줄 알고 이번 달 독서 목록이나 정리해야지 생각했는데 시월의 마지막날은 내일이다. 


표지에 미술 작품이 불탄다고 보여주는 것 같은데 제목만 듣고는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생각했다. 불타지만 불타지 않는 작품. 지난 번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새 소설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두둥. 


미술가 안이지는 미국의 유명한 로버트 재단으로 부터 예술가 레지던시 (4개월) 후원을 받게 된다. 한국에선 안 풀리는 상황에서 음식 (도보) 딜리버리를 하면서 우울하던 차여서 어딘가, 뭔가, 찜찜한 느낌이지만, 이거 사기는 아니겠지, 하면서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로버트 재단에서 4달 동안 숙박과 작품 제작에 관한 모든 지원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작품들로 전시회 까지 하는 것이 계약 조건이다. 그리고 그 중 한 작품은 전시에서 불태워야 하는데 그 "불타는 작품"은 재단의 주인인 "로버트"가 선택한다. 현대 미술에서 이런 식의 작품 파괴가 이루어 지기도 하지만 주인공 안이지의 심정은 안 easy하다.(소설에도 나오는 말 장난) 


지금 소설의 절반을 읽은 상태인데 이 이야기는 빌드-업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처음엔 로버트 재단이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그 사연이 꽤 여러 단계로 정리되어 나온다. 특히 로버트가 얼마나 특별한 미술적 "안목"을 지녔는지 칭송이 자자해서 그 지점에선 의문 품지 말라고 주인공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단단하게 이른다. 다음 빌드 업은 안이지의 선택 아닌 선택, 로버트 재단 레지던시 프로그램 행이다. 이 여정이 소설의 1/3까지 이어지도록 긴데 여러 사건 사고가 얽혀있다. 뭔가가 계속 엇갈리고 어긋나고 오해와 의심은 쌓인다. 여름의 이상 고온과 산불에 독자인 나의 마음까지도 짜증에 불탈것만 같다. 여러 악재들과 산불, 간섭, 오만한 태도, 거짓말 같은 멀티플 통역, 이런 연극에 참여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에 주인공은 갈등한다. 도망갈까. 주인공 안이지는 미국의 "허허벌판" 한가운데 호화 외딴 성 로버트 재단에 초대 혹은 감금되어 있으며 무언가를, 의미를, 이야기를, 그것도 불타버릴 어떤 것을 만들라는 독촉을 받는다. (드라큘라도 비슷한 설정에서 시작하지 않나?) 읽는 나도 갑갑하고 조급하다. 빡빡하게 굴며 독자를 쪼아오는 소설이 재미가 없는건 아닌데 또 아주 재밌지도 않다. 애매함.


내일은 다 읽겠지. 조금 더 강한 압박으로 쌓고 그다음엔 화르륵 불타는 결말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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