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 부인(장만옥)과 차우 씨(양조위)는 같은 날 옆집으로 이사 들어오면서 서로의 짐이, 첸 씨의 책과 차우 부인의 구두가 잘못 뒤섞이고 인사를 튼다. 이웃들과 함께 격식 없이 저녁 식사를 하는 사교 생활, 혹은 모임을 꺼리는 첸 부인은 동떨어져 혼자 먹을 국수를 사러 나간다. 출장이 잦은 남편과도 거리가 느껴지는 첸 부인. 그녀의 직장 상사에겐 미스 유라는 애인이 있고 상사의 부인과 애인 사이의 스케쥴 조정도 첸 부인의 일과 중 하나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와 규칙을 의식하는 첸 부인.


그러다 첸 부인은 자신의 남편 첸 씨와 이웃 차우 부인이 불륜 관계라 확신하게 된다. 차우 씨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고 그 둘은 문제를 논의 한다며 만나서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와 침묵을 나눈다. 둘 사이의 긴장감은 터질듯 팽팽하다. 그때 흐르는 음악.  



 

그들이 함께 하며 웃는 경우는 드물고 그들의 '연애'는 껴안거나 침대에서 뒹굴기 보다는 차우 씨의 예전 꿈, 열정인 소설쓰기의 연장이다. 첸 부인이 원고를 읽고 의견을 말하면 차우 씨가 고쳐쓰거나 등장 인물을 더해서 이어 쓴다. 어질러진 음식 그릇, 찻잔, 담배 연기, 맨발. 그들의 감정을 이웃들 모두와 관객들이 잘 알고 있는데 그들만 아닌 척한다. 우린, 달라, 동침하지, 않아, 라는 알량한 고집. 그런다고 연애가 연애 아닌 것이, 그것도 속칭 불륜 아닌 것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당신들 눈빛은 어쩔건데.


소설의 끝이 있듯 이들의 만남도 위기를 몇 번 갖고, 사람들의 의심을 받고, 끝을 준비한다. 끝은 쉽지 않다. 아무리 연습을 한다해도.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몇 년 후, 그 시절이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를 떠올리며 조용하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게 영화는 마무리 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계속 된다. 어쩌면 가장 평범한 외도 혹은 비밀.


예전엔 나보다 나이 든 아줌마 아저씨 들의 불륜 영화로, 붉고 어두운 장면들로만 알았는데 날렵하고 화사한 치파오 원피스 수십 벌의 장만옥과 기름 발라 넘긴 머리에 피부 팽팽한 양조위는, 삼십대 후반의 한창 때 그야말로 화양연화 꽃 다운 모습이다. 새출발 하기 딱 좋은 나이였어. 1960년대 불안한 홍콩이 배경이었는데 화려한 80년대를 지나 그곳은 이젠 다시 가기 어려운 도시가 되었다.


영화 속 빗소리에 창 밖 빗소리가 섞여 들렸다. 케샤스, 케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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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1-19 1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흐미 좋으네요. 너무 젊으세요, 이 두 분이요^^

유부만두 2020-11-20 09:57   좋아요 1 | URL
장만옥 배우가 맘에 들었어요. 남주보다 살짝 키가 큰데 그 조합이 좋았어요.
좁은 공간에서 서로 스치듯 지나가는 것, 둘 사이의 긴장감, 시선.
줄거리는 평범하고 시간 배치는 불친절한데 두 배우의 힘이 대단해요.
젊어요, 두 배우가. 너무 예쁜 시절 영화라 울컥한 마음도 들었어요.
전 이 두 사람보다 한참 더 늙어버렸고 ...하아....

하나 2020-11-20 0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다고 연애가 연애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 그러니까요 ^^ 마지막에 양조위가 사원 가서 벽에 고백하고 풀로 턱 막아버릴 때 너무 아름다운 답답함 느껴버렸어요 ㅋㅋㅋ

유부만두 2020-11-20 09:59   좋아요 1 | URL
네, 그 아름다운 답답증이 이 영화의 주제인지도 모르겠어요.
비밀과 침묵, 그리고 따로따로인 두 사람.

이 영화를 예전에 봤다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서 또 비 오는 초겨울에 만나서 즐길 수 있었어요. 나이들고 보니 연애도 기운 있는 젊을 때나 하는 거에요;;;;

하나 2020-11-20 11:3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저 거기 나오는 놈이랑 진짜 비슷한 사람한테 하도 시달려가지고 퀴사스.. 만 나오면 경기해요 ㅋㅋㅋㅋㅋ 뭘 다음에 만나.. 그냥 만나.. 저는 너무 어릴 때 이런 영화 좋아해서 망한 듯 ㅋㅋㅋㅋ 저도 어떻게 불륜까지 하는지 체력이 대단하다고 늘 생각하는 사람;;;

유부만두 2020-11-22 03:55   좋아요 1 | URL
정말 호된 경험을 하셨군요. ^^

라로 2020-11-20 1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적어도 세 번은 본 것은 같은데,,, 유부만두 님의 글을 읽으니까 또 보고 싶다!

유부만두 2020-11-22 03:33   좋아요 1 | URL
가을에 잘 어울리는 영화에요. 특히 가을비 오는 밤에요.

북극곰 2020-11-27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영화. 두 주인공의 카리스마에 분위기에 숨 막히는 영화. 화양연화라는 제목까지 완벽하다고 생각해요.
잘 지내시죠? -.-; 불쑥... ㅎㅎㅎ

유부만두 2020-11-27 19:11   좋아요 0 | URL
네, 오랜만에 인사 건네주셔서 감사해요, 북극곰님.
전 거의 집에 갇혀지내요. 이젠 집 밖의 세상을 다 잊었어요. 뭐 그렇습니다.

화양연화는 제목과 배우가 모든걸 다 아우르는 영화였어요. 음악도 멋지고요.
쓸쓸하지만 또 그게 과거를 돌아보는 맛 아닐까 싶어요.
 

아이가 있는 상복의 여인이 되어버린 스칼렛. 애틀란타의 시댁에 시누 멜라니와 함께 남부군 후원 행사에 나섰다. 조신해야 하는데 흥겨운 행사 음악에 발이 절로 움직인다. 다시 맞닥뜨린 레트 버틀러. 그에겐 속마음, 남부 사람들의 웃기는 애국심과 자부심에 대한 멸시가 들켜버린다. 하지만 어떠랴, 춤만 출 수 있다면! 검은 상복이지만 날렵하게 스텝을 밟았고 추문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에게 곧 타라로 끌려가야만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벼르고 별렀던 것과 달리 그날 밤 레트 버틀러와 어깨동무하고 신나서 노래까지 부르며 불콰한 얼굴로 돌아오셨.... 아, 이거 우리나라 주말 드라마 같고요. 


이 책이 이번 달 하순에 오디오 북으로 나온다고요?! 오모나!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5978


샘플 미리 듣기에선 문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낭독하고 대사 부분은 드라마 같이 '연기'하고 있다. 과장하지는 않지만 읽는 책과 듣는 책의 경험은 조금 다를 것 같다. 하지만 나도 핸드폰 액정으로 가볍게 읽는중이라 어느 정도 변형된 방식의 독서를 하고 있는 셈이다. 더 빨리, 더 쉽게, 무게 빼고 스칼렛과 멜라니, 짐승 같은 레트 버틀러를 만나고 있다. 아슬아슬 스칼렛과 레트 버틀러의 춤추는 장면은 라노벨이 따로 없다. 


그나저나 스칼렛 고작 열일곱에 애 딸린 과부여. ㅜ ㅜ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955330.html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멜라니 역의 올리비아 하빌랜드가 올해 7월 별세했다. 향년 104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와 책에 대한 @2nd_rate 님의 트윗타래를 종이책으로 묶는 종이책 펀딩 프로젝트도 진행중이다. 이미 500% 달성. 영화를 중심으로 스칼렛과 멜라니의 '특별한 시스터후드', 마냥 조신한 여인 같았던 멜라니의 정치적 활약을 관찰한다. 


https://www.tumblbug.com/312f1bc4-4216-4c91-a6d6-b7d1d5fff0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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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에서 나를 보호해줄 우산이 노란색이라면 소망이나 희망일까, 아니면 우울일까. 

우울이 나를 감싸는 보호막이 되기도 하는건가. 















속어,유행어 등을 검색하는 Urban Dictionary 사이트에서는 

우산은 '보호'를 의미하고 노란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은 미래의 남편이나 부인, 연인 등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 어쩐지 꿈해몽 사이트 문장 같다;;; 

 

TOP DEFINITION
The person who holds the yellow umbrella is the future love of your life (future husband/wife lover, girlfriend/boyfriend etc)

__

덧: 책과 저자 약력 설명을 읽다보면 으잉? 스러운 점을 만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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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13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는 등교를 하다 말다 내 일상(이랄 것도 없는 매일)은 발이 묶인 느낌이다. 창밖의 단풍이 지난주엔 예뻤는데 오늘은 가지만 남았다. 나는 매일 게으르고 바쁘면서 한가하다. 책의 문장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스칼렛의 외모에 대한 묘사는 계속 바뀐다. 아름답고 매혹적이라는 묘사가 많은데 스칼렛이 작정하고 애슐리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고, 꿩대신 닭, 챨스의 청혼에 답을 해버린 날이라 더욱 그렇다. 


파티에서 만난 낯설고 무례한 레트 버틀러. 그에게 약점을 잡혀버린 스칼렛. 챨스와 애슐리에 대한 묘사가 우습지만 절묘하다. 하지만 곧 휘몰아친 전쟁 속에서 스칼렛은 순식간에 유부녀-미망인-애 딸린 미망인 으로 신분이 바뀐다. 예전보다 더 좁아진 활동 범위 안에서 우울은 그녀를 집어삼킨다. 


남편의 친척댁, 보기 싫은 멜라니의 초대로 애틀란타로 간다. 그곳은 전쟁이 몰고온 활기로 가득 찬 젊은 도시라 뭔가를 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신분과 가문을 중시하는 딱딱한 조지아, 폐쇄적인 남부지만 새로운 생명을 뿜어내는 곳. 어쩌면 스칼렛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이 소설의 조지아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 따위는 무시하고 대지주 가문들 끼리의 무사태평만 노래하는 19세기 구한말 분위기와도 비슷하다. 백인 빈민층에 대한 멸시와 (인종차별은 깔고 있으면서) 북부 양키에 대한 적대감이 뚜렷하게 보인다. 마치 미대선의 민주당 공화당의 대결처럼. 링컨은 공화당이었다지만. 


영화 <스윗 홈 앨러배마>의 남부는 정겹고 투박하며 솔직한 흙과 함께 사는 고향의 모습이다. 대비되는 뉴욕 '양키'들은 겉치례와 계산 속의 거짓말, 무엇보다 얄미운 말투로 드러난다. 여전히 식민시대의 대저택엔 하녀복을 입은 흑인여인이 손님을 맞이하고 마을 축제는 남북전쟁을 재현하는 코스튬 플레이다. 들판에 화약 연기를 올리고 대포와 총포를 앞세워 달리고 쓰러져 시체를 연기하는 이들은 '남부 정신'을 외치며 결속을 다진다. 천방지축, 당돌한 남부의 아가씨는 7년만에 고향에 돌아와서 마음을 확인하며 자신의 가식을, 북부 억양과 양키 겉모습을 벗어버린다. 스칼렛과는 아주 다르지만 닮은 여인. 


그런 남부가, 조지아가 이번엔 바이든에게 표를 주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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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11-15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아 다시 봤다는!

유부만두 2020-11-15 07:3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놀랐어요.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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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1-04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직관적으로 잘 표현했네요. 책 제목이랑 번갈아보다가 감탄했어요!

유부만두 2020-11-07 07:54   좋아요 1 | URL
정렬된 집단 속 단 하나! 의 중요성이 정말 잘 보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