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400. 수상한 북클럽 (박현희)

 

오카다 준에 이어 이번엔 한국 현직 선생님의 소설을 읽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무리하는 2월, 학교에서 이런저런 말썽을 일으킨 아이들 넷이 허름한 카페에 모여서 매달 한 권씩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의무를 "벌"로 받는다. 이런 학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고 글까지 쓰신 선생님이 계신 학교 학생들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고, 하지만 의무나 목적을 가진 숙제를 주지는 않는 모임. 그런 모임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믿음. 어느정도 (아니, 많이) 동화같은 설정이지만 이 학생들이 읽어내는 열두 권은 그리 가벼운 책들이 아니다. 각 장의 끝마다 이메일로 학생들에게 전송되는 카페 주인장의 감상지도문은 어른인 나에게도 유익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러니까, "수북형"이라는 벌로 모여든 열 여덟 먹은 학생들이 아니고, (이런 저런 설정과 삽화의 그림체 때문에 살짝 우리의 완득이가 떠오르기는 했지만) 이 책은 단순한 청소년용 소설만도 아닌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열 두권의 책들, 그리고 거기에서 뻗어나가는 여러 이야기들이다. 요즘 책에 대한 책을 많이 읽고는 있는데, 이런 형식의 책도 반가웠다. 비록 그 포장이 지나치게 청소년 계도...라는 냄새가 나고... 급 해피엔딩이라 당황스럽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91/400. 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 (오카다 준)

92/400. 인류를 다시 시작하는 장치 (오카다 준)

93/400.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 (오카다 준)

 

모험은 바로 이 곳, 내가 사는 이 동네 골목, 우리 교실에서 일어난다. 현실의 묘사가 아무런 꾸밈없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어린이들은 환상의 세계에 발을 쑥 들여놓게된다. 냉동칸에서 언 밥을 꺼내 혼자 저녁밥을 챙겨먹는 소년, 술집을 하는 엄마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느라 잠이 모자라 학교에선 꾸벅꾸벅 조는 소녀. 말상대가 없어서 연못 속의 물고기와 수줍은 대화를 나누는 꼬마. 시침 뚝 떼고 자신이 용을 잡는 기사라고 소개하는 사투리 쓰는 남자...  

 

아이들은 갑자기 펼쳐진 현실 속의 환상모험에 당황한다. 처음엔 그 경험을 살짝 부정해보지만, 친구의 손을 잡고 힘을 합쳐 악의 상대를 무찌르고, 신나게 뛰어놀기도 한다. 차라리 현실의 과학이 더 우스꽝스러운 마술처럼 보이기도한다. 그리고 모두들, 안전하게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따뜻한 마음으로 생활을 이어간다. 여전히 소년은 언 밥을 해동시켜 남은 반찬으로 저녁을 먹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용을 무찌른 친구와 함께다. 작가 오카다 준은 38년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고 한다. 생생한 아이들의 대사와 행동 묘사는 그의 교직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5-02-1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 밥을 꺼내 혼자 저녁밥을 챙겨 먹는 부분에서 맘 한 켠이 ㅠㅠ

유부만두 2015-02-18 07:4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야짱은 `어른이 된 것같다`며 달걀프라이 만들 생각도 하지요. 용을~ 은 아주 밋밋하게 덤덤하게 이야기가 쌓이다가 퐉! 하고 터집니다.
미끄럼틀은 한편씩 아껴 아이와 함께 읽었어요...

유부만두 2015-02-18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류~ 책은 나름의미가 있지만 오카다 준의 여느 어린이 학교/동네 모험과는 살짝 달라요

수이 2015-02-18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 밥을 해동시켜 먹는 아이가 나중에 크면 어떤 사람이 될까요? 새삼 궁금해져요. 아 그리고 유부만두님_ 얼굴 공개는 아무래도 창피해서요_ 뒤로 미루겠습니다 ^^;;;

유부만두 2015-02-18 07:56   좋아요 0 | URL
ㅎㅎ 시집들이 야나님이신걸요~ ^^

여기 나온 아이들은 씩씩하고 평범합니다. 책의 끝엔 (용을 ~) 15년 후 성인이 된 소년의 이야기도 나와요.

라로 2015-02-1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는데 벌써 몇억년은 된 것 같아 기억이 안 나네요~~~~ㅋ

유부만두 2015-02-18 18:38   좋아요 0 | URL
전 얼마전 ˝신기한 시간표˝로 처음 오카다 준을 알게됐어요. 모험이 바로 교실과 집안, 동네 놀이터에서 펼쳐진다는 게 새롭게 와닿더라구요. 읽다보면 저도 막 어린시절로 돌아가요. ^^
 

 제2차 대전은 유대인들에게는 물론, 독일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지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곳에 출현한 죽음의 신은 여러 사람들의 영혼을 거두어들인다.

 

책을 태우고, 책을 훔치고, 책을 읽고, 책을....쓰는 리젤.

몇 년전에 읽었던 책이라 뒷 줄거리는 잊었는데. 공습 후 찾아온 아침, 폐허 위에 놓인 양부모, 친구의 시신을 보고 어쩔줄 모르는 리젤. 그 애의 모습에 나도 울어버렸;;;;

 

모든 생명체는 자기를 특정짓는 "단어"를 품고 있기에 살아있을 수 있다고, 지하실에 숨어있던 청년 막스가 말했다. 그건 성경에 나오는 '태초의 말씀'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소통의 언어일 수도 있겠지? 예쁜 리젤이 잘 자라서 아흔 살 넘게 행복했다는 에필로그는 훈훈했지만, 그 애의 영혼 속에 깊게 남았을 상처, 친엄마와 이별, 친동생의 죽음, 양부모와 친구의 죽음,...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을 학대하고 책을 불태우던 시절의 기억이 아프다. (아, 물론, 리젤 할머니는 펜트하우스에서 말년을 사셨더라만....) 책도둑,을 책으로 다시 읽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15-02-18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셨군요. 아무래도 책이 훨 낫더라구요~~~~.

유부만두 2015-02-18 18:39   좋아요 0 | URL
당연히 그럴거에요. 책은 워낙 예전에 읽어서 잘 기억이 안났어요. 그런데 맥스가 만들어준 노트에 쓴 글...그 노트 장면을 편집에서 살린 것이 생각나네요. 막내가 조금 더 크면 같이 읽어보려고요.
 

90/400. 빵의 지구사 (윌리엄 루벨)

서문에서 이 책은 빵의 일반 역사라기 보다는 실제 빵 굽는 사람을 위한 역사책이라고 했다. (이 서문은 '빵을 좋아하지 않는' 주영하 선생의 글이다.) 하지만 처음 4장에 걸쳐서 실린 내용은 기존에 나온 빵의 역사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효'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특징이랄까. 저자의 심심한 문체 때문인지 소금도 넣지않고 자연 발효 시킨 사우어도 빵을 씹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책의 마지막 장, "특집"에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서양떡, 빵의 역사가 근래 골목마다 들어선 빠리바케뜨와 뚜레주르 이야기와 함께 실렸다. 이 마지막 장은 책의 감수자 주영하 선생이 썼다.

 

이 책은 애매하고 심심하다. 빵의 역사를 다룬 부분(170여쪽) 에선 무난하고 익숙한 내용인데 책 마무리에 우리나라 사정을 끼워넣어 (20여쪽) 어째 전체 그림을 이그러뜨린 느낌마저 든다. 이어서 잘 익은 빵 겉껍질 색의 종이로 된 부록 부분은 어두워 읽기 힘들지만 작은 글씨로 빵 이름들과 이런 저런 레서피들도 담았다.(40여쪽) 빵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빵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드문 경험이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15-02-1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빵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만두님은 빵보다는 만두를 더 좋아하시기 때문?....ㅎㅎㅎㅎㅎ

유부만두 2015-02-16 16:0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맞네요. 그런데 전 만두도, 빵도, ..왠만한 먹거리들은 다 좋아한다는 게 함정이에요;;;; 이번 책은 너무 평범했어요.. 알라딘 책 설명에 나온게 전부였어요. 사진도 그닥 끌리거나 침흘리게 하지 않았고요. ㅜ ㅜ 슬펐습니다

라로 2015-02-16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읽으셔서 제가 읽고 싶었던 마음을 가라앉혀 주셔서 좋아요~~~^^;;;(뭔말인지~~ㅋ)

유부만두 2015-02-16 16:01   좋아요 0 | URL
아롬님의 기대에 제가 찬물을 끼얹었나요? 위 댓글에도 적었지만, 알라딘 책 소개글에 나온 게 거의 다였어요;;;; 또 마지막 챕터의 우리나라 빵 역사는 좀 생뚱 맞고, 앞장들과 톤도 어긋나더라구요

라로 2015-02-18 00:55   좋아요 0 | URL
찬물 덕분에 책 한 권 내려 놀 수 있어서 좋아요!!!^^
 

89/400. 토요일 (이언 메큐언)

건조한 문장으로 토요일 새벽이 열렸고, 신경외과 의사인 헨리는 무심한듯 새벽하늘을 바라보다 비행기의 불시착을 목격한다. 이 사건이 불길한 시작인듯,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계속되는 문장을 따라갔다. 이미 작가의 손이 내 목을 감아쥐고 있다.

 

토요일 단 하루의 시간이 소설의 전부다. 하지만 그 하루로 수렴된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미래가, 런던의 한 복판에서 중동과 미국 정세로 까지 뻗어나가며 서로 얽혀서 여러 만남과 사건을 이루어낸다. 그 정점에 백스터가 얼굴을 움찍거리며 서 있다. 한 문장을 더 읽어나가기가 힘겨울 지경인데 냉정하고 차분하게 자기 리듬을 지키는 헨리, 아니 이언 메큐언은 악당에게 선처를 구상하는 신경정신외과의 이기도 하고, 독자의 몇 시간을 철저히 장악한 사기꾼이기도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언 메큐언의 소설을 읽는다. 그에게 내 시간을 맡기고 수술실의 헨리의 손 아래에 썰려나가는 두개골을 보고, 기억이 부서진 헨리의 어머니의 수영복을 떠올린다. 유전자 몇 개의 운 나쁜 나열로 자신의 신체와 감정도 조절하지 못하는 백스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헨리의 지나치게 운이 나빴던 혹은 여느 날과 같이 저문 바로 그 토요일은 어떤건가.

 

나의 토요일. 한 블록 건너 상가 앞의 교통사고로 꽉 막힌 찻길을 바라보며  도서관에 다녀왔다. 막내가 커다랗게 틀어놓은 만화 주제가를 들으면서, 손발이 뻣뻣해지도록 긴장되는 상태로 책을 읽었다. 잠시 세탁기를 조정하는 사이, 택배가 왔는지 막내가 문을 열었다.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일렀는데. 순간 가슴이 서늘하게 얼어버린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15-02-1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짝 놀라셨겠어요!! 휴~~~ 그나저나 토요일 그런 책이면 전 패쓰~~~^^;;;;(새가슴~~~ㅠㅠ)

유부만두 2015-02-15 23:25   좋아요 0 | URL
네... 설날이 가까워서 택배가 많이 오니까 아이는 습관처럼 문을 열더라고요. 게다가 토요일, 소설 속 상황 때문에 더 놀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