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400. 내가 읽고 만난 파리 (김윤식)

 

김윤식 교수의 문장은 읽을 땐 그 리듬에 그럭저럭 따라 가지만 막상 마침표나 문단 끝에 이르러서는 "뭔 말이지?"하고 당황하게 된다. 이 책도 그랬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추상적 비유와 철학 용어를 끌어온 부분은 그런대로 천천히 따라갔는데, 문단 끝에선 다른 말 다른 주장이 툭, 튀어 나와서, 아, 선생님, 소리가 절로 내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책은 중복되는 문장, 단락이 많아서 (아마 책은 이미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된 저자의 글을 모아서 묶었겠지) 숨을 고를 틈은 있었다.

 

파리는, 저자에겐 문화를 보여주는 곳, 다른 곳에서 온 나그네, 샤걀 과 모리 아리마사를 품었던 곳이고 추상화된 아름다움을 물질로 환원시켜서 가지고 있는 곳 (아, 맞나?) 이다. 책 중반부의 김현 선생에 대한 추억담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파리의 한국인 이옥 교수에 대한 부분은 서문에서 이미 말하고 본문에서 또 여러번 반복한 소개성 글 말고는 모리 아리마사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진다. 그런데도 의도적으로, 아마도 일본인을 내세우기는 불편했을까, 이옥 교수를 언급하는데 그 심정이 그닥 뜨거워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뜨거움은 이옥 교수의 부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초대 법무부 장관 '이인'을 향하고 있다.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도 '국어'로서의 조선어를 가진 우리는 언어상으로는 식민지 상태를 지나지 않았다, 고 까지 비약하는 문단 다음에 바로 이어서 모리 아리마사에대한 찬미를 이어 놓으니 읽는 나도 헤맬 수밖에.) 이 책은 80년대 동경에서 외로운 나그네 심정이었던 저자를 매료시켰던 또 한명의 동양인 나그네, 모리 아리마사에 대한 글이다. 당연히 모리의 도시, 파리에 대한 글이기도 하고. 책의 첫부분은 샤갈 전시회를 통해서 파리와 서울이 얼핏 교차되기도 하고, 다시 그의 젊은 시절 친구 화가의 추상화 그림 이야기가 퐁피두 센터의 스타엘 전시회와 연결된다. 그리고 파리의 또 다른 나그네, 르네 마그리뜨의 파이프를 둘러싸고 김현을 떠올리는데, 이번엔 서울 대신 목포가 파리와 연을 닿는다. 그리고, 드디어, 파리를, 몽파르나스의 이옥 교수의 무덤을 꺼낸 이유 모리 아리마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영원한 사랑 이효석도 함께. ('댄디'하고 '모던'한 이효석이 하얼빈에대한 글을 쓰면서도 안중근이나 나라의 상황을 떠올리지 않는 것은 '심미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어쩐지 이 부분은 읽으면서 밑줄 긋고 시험에 나옴, 하고 쓰고 싶었음 )

 

얼마전 읽은 계간지에서 황석영 작가가 한국 명단편선에서 이효석을 제외한 이유를 그의 '진정성 부족'이라고 했다. 그리고 김윤식 교수의 작가 이광수도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책은 김윤식 교수의 파리, 그의 모리가 살았던 파리를 그리고 있다. 그러니 내가 내 마음 속에 그리는 파리가 없다고 투덜댈 수는 없다. 책이 재미없다고 말할 뿐. 그러면서 뭐 이리 주절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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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00. 목소리가 너무 커 (허은순)

137/400. 만만이 빤쓰 구멍 난 빤스 (허은순)

 

희망찬 님의 추천으로 알게된 병만이 시리즈. 병만이랑 동생 동만, 그리고 키우는 개 만만이 이야기가 열다섯 권으로 나와있다. 그런데 학교에는 병관이 시리즈만 있고 병만이는 없었고, 시립도서관에서는 시리즈 중 몇 권만 찾을 수 있었다. 막내가 고대하던 "밥 먹을 땐 똥 얘기 하지마" 1권 대신 7권과 12권을 대출했다.

 

남자 아이들이 우당탕탕 싸우며 놀며 크는 이야기에 강아지 이야기는 양념이려니 싶었는데, 의외로 이 두 권은 반려견과 함께 살면서 겪는 일들이 중심 소재였다. 만만이가 왜 빤쓰를 입을까, 배변 훈련 문제가 아니라 이제 성견이 되어 생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병만 엄마는 만만이를 시집 보낼 생각도 한다. 목소리 편 역시, 만만이가 짖는 소리 때문에 아파트 이웃의 불평이 있다는 내용. 덩치가 큰 개를 괴물로 여길 수 있지만 이 덩치가 나름 귀염을 떠는 게 더 사랑스럽다.

나머지 내용도 다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데, 부작용이랄까, 막내가 또 조르기 시작했다. 우리도 강아지 키워요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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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400. 모든 영광은 (황순원)

 

자책과 뒤틀림에서 아주 조금 움트는 희망이 보인다. 현실이 시궁창, 아니 지옥인데 작가는 순하고 선한 인간이 되어 독자들을 위한 보호막을 두르고 있다.

 

"저, 선생님, 사람을 죽이는 데는 무기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 손가락 하나면 족하죠."

그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 그 손 둘째손가락 하나를 곧게 펴 보이며, "이 손가락 하나루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가 있습니다. 어느 급소를 찔러서가 아닙니다. 먼발치루 그저 뒤통수를 가리키는 것으루 충분합니다. 충분하다마다요." (126)

 

 

모든 영광은 술에게, 그리고 다시 모든 영광은 지금 새로운 생활을 향해 어두운 계단 위에서 저렇듯 자기 신체의 한 부분을 닦달질하고 있는 저 가엾도록 착한 한 사람의 사내에게. (150)

 

 

135/400. 학 (황순원)

그 보호막은 진짜가 아닌줄 알면서도 현실을 잠깐, 동화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동료가 친구가 서로를 '손가락질' 하던 시대에, 이렇게 포승줄을 풀고, 사람 사냥 대신 학 사냥을 할 수 있을까. 실은 그 학도 진짜 사냥꾼이 오기 전에 풀어 날려보낸 순둥이들인데.

 

오랫만에 다시 읽는 작품인데도 첫 장면은 마치 외우고 있던 것처럼 매우 낯익었다. " 삼팔 접경의 이 북쪽 마을은 드높이 갠 가을 하늘 아래 한껏 고즈넉했다." 아,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아름다운 우정과 인간애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부질없이 금세 사라지는 동화였는데. 덕재는 아마 죽었을꺼야. 성삼이 손에 간 게 아니라면 성삼이도 친구 옆에 쓰러졌을 거고. ..... 묵념.

 

"얘, 우리 학 사냥이나 한번 하구 가자."

성삼이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덕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내 이걸루 올가미를 만들어놀께 너 학을 몰아오너라."

포승줄을 풀어 쥐더니, 어느새 성삼이는 잡풀 새로 기는 걸음을 쳤다.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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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7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133/400. 읽어가겠다 (김탁환) 

김탁환의 소설은 한 권도 제대로 읽어내질 못했는데, 이번 그의 독서록 (이라기엔 개인 감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은 쉽게 완독했다. 스포일링이 장난아니었고 책의 클라이맥스와 결말을 다 알려주기 때문에, 뭐에요? 이러시면 안돼욧! 이라고 하면서, 음, 그 책이 그런 내용이었군, 하면서 주섬주섬 책 장바구니에 채워넣기도 했다. 김탁환을 작가, 로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임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책을 덮으면서 계속 생각나는 단어는 <그미>. 하지만 그가 소개하는 방식은 뭐랄까, 너무 깔끔하고 밍밍하고 ... 김탁환 스러웠다. 내가 왜 '노서아가비'를 읽다 말았는지 기억났다.

 

 

 

 

 

 

 

 

 

 

 

 

그미: 주로 소설에서 '그 녀'를 멋스럽게 이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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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와 함께 읽으려 자리에 앉았더니, 아이는 금세 알아보고 "엄마, 이거 제인에어 여우 2탄이야?" 라고 묻는다. "아니, 그 책 그림 그린 분이 만든 다른 책들이야." 라고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화목한 목요일 오후 광경으로 보정;;;)

 

131/400. 내 동생 버지니아 울프 (코 맥클레어 글, 이사벨 아르스노 그림)

이유 없이 마구 짜증내는 동생 '버지니아'가 '울프/늑대'처럼 느껴지는데, 당황스럽지만 언니야는 그림도 그리면서 동생을 다독거린다는 단순하지만 차분하고 따뜻한 이야기. 이번에도 문학작품이 나오는가 생각했는데, .Woolf 가 아닌 Wolf 라니. 강아지 처럼 귀엽고 작은 아이가 큰 귀와 꼬리를 달고 성질을 부리는 장면은 상상가능하다. 처음엔 어린 여자아이가 나와서 '동생'이 화낸다고 하길래, 아...언니가 생리주간이라 사춘기 짜증이 하늘을 찌르는가보다, 싶었는데 동생이 맞았다. 아이가 짜증낼 때 다독거리는 일은 쉽지않다. 앞뒤 안 맞는 말을, 소리를, 비명과 몸태질을 그저 참고, 버지니아가 원하는 것을 알아 다독거려 주면서 언니야는 버지니아를 다시 사람으로 돌려놓았다. 아, 언니야, 네가 이 아줌마보다 낫구나. 나는 애보다 더 큰 괴물 늑대가 되어버리는데.

 

 

 

 

132/400. 너는 어디로 가니 (맥신 트로티어 글, 이자벨 아르스노 그림)

 

표지의 이 사랑스런 여자아이의 가족은 1920년대에 독일에서 멕시코로 이민을 와서 마을을 이루고 산다. 그들은 매년 봄이면 캐나다의 농장으로 가서 가을 까지 농장일을 하고 겨울이 가까우면 다시 멕시코로 돌아오는, 철새 같은 생활을 한다.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일은 못하지만 오빠, 언니들은 부모님과 함께 모두 농장에서 일을 한다. 독일어 사투리로 의사소통을 하는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에게 캐나다 사람들의 말은 너무 맵거나, 걸죽하고, 빤히 쳐다보는 눈길은 창피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 꼬마의 소원은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한 장소에서 지켜보는 것이라는데, 아, 한숨이 나온다. 따스한 어느 봄날, 초등학교 3학년생 꼬마는 "엄마, 이 아이는 좀 불쌍한데요, 그래도 가족들이 함께 라서 조금은 좋은것도 있겠지요?" 라고 묻는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 버려진 집을 치워 살고, 이불 한 장으로 강아지 처럼, 고양이 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잠을 자는 아이들의 실제 모습은 그림책 처럼 마냥 귀엽지만은 않을텐데. 그림책을 통해서 내 아이가 지금, 이곳 말고 다른 곳의 다른 삶에 대해서 배우며 커갔으면 좋겠다.

 

 

 

땅 속 깊이 뿌리 내린 나무처럼 되면 어떨까?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듯, 여러 계절이 내 곁을 지나는 것을 지켜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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