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400. 피리술사 (미야베 미유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지만 시대극은 영 읽기 불편해서, 이름도 복잡하고 이런저런 역사 관련어들이 헷갈리는데다 거북했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옛이야기" 풍의 짧은 글을 읽고 싶어서 손에 들었다. 시시한 귀신 이야기 쯤으로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흔한 '괴담'을 책으로 묶어내도 찾아 읽는 독자들이 생기는 이유는, 사건과 문장을,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심정을 호흡을 조절해 내가며 풀어놓는 미야베 미유키의 힘이다. (그게 바로 '요재지이' 와 이 책의 큰 차이점이다)
원한이 남아서 사람을 씹어 삼킨다, 는 피리술사 이야기는 공포스럽지만, 한강의 괴물처럼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다. 얼굴을 빌려주는 사내 이야기는 어떤가. 꿈마다 친구 집을 찾아가 술래잡기를 하는 꼬마, 그리고 아이의 수명을 지켜내는 어머니의 마음. 이상하게 귀신이며 혼령, 등 으스스한 존재들이 어깨 뒤로 다가올 듯도 했지만, 책을 덮고나면 마음은 따뜻해진다. 그러니 청자로 나선 당찬 아가씨 오치카도 위안을 얻겠지. 말하고 버리고, 듣고 버린다. 그런데 나는 읽고 버린다, 와는 조금 다른 독서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