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작 보다는 표지작 <선로 나라의 앨리스>가 더 좋았다. 그다음으로 좋았던 건 서점 이야기 <책과 수수께끼의 나날>인데 장마철 습기에 책들은 얼마나 망가질까 소설 속 서점과 현실의 책 배송 걱정이 커진다. 전체적으로 기대보다는 착하고 순한 맛의 식은 라면이라 기분전환에는 많이 아쉽다. 뽀송해지지 않아. 


<저택의 하룻밤>은 요즘 보고 있는 <악귀> 드라마와 겹치는 소재가 있어서 살짝, 그러니까 살짝 긴장할 뻔 했으나 귀여운 이야기였고 <괴수의 꿈>은 어쩐지 교과서 느낌이 났다. 란포의 명탐정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묵혀두었던 란포 책으로 자연스레 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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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7-17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 얼마나 습한지 책장에 꽂힌 책들도 보호해야 할 정도에요. 창가 가까이 꽂힌 책들은 쭈글해지고 있음... ㅠㅠ

유부만두 2023-07-17 15:47   좋아요 1 | URL
네 습기가 무서워요. 제습기 돌리고 있지만 불안하고요.

이야기 안 서점에 호우경보 난 저녁에 우산들고 젖은 옷으로 책장들 사이를 오가는 남자가 나와요. 우와.. 이 사람 정체는 안 궁금하고 그냥 내보내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이런(그런) 날씨에 서점을 왜 열어놔요?!?!

독서괭 2023-07-17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패러디인가요? ㅋㅋ 표지가 넘 예쁘네요!

유부만두 2023-07-17 15:50   좋아요 0 | URL
네! 책제목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패러디 팬픽이고요, 그림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요. 제목과 표지에 홀려서 읽었습니다. (저 쉬운 독자에요;;)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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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Foster 원제로 위탁 가정이나 위탁 아동인데, 표지의 쓸쓸한 아이 뒷 모습에 더해 영화로 나온 제목은 Quiet Girl이래서 얇고 조신한 양장본을 열기 전부터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100여쪽 쯤 되는 소설의 일곱 쪽을 읽고 내 마음을 이 맡겨진 소녀와 저자 클레어 키건에게 맡겨버렸다.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엄마가 출산을 즈음해 셋째 딸인 주인공 아이를 (초등 입학 전의 나이로 짐작되는데 소설 내내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저자가 알았던, 혹은 저자 자신이었던, 아니면 나 어릴 적 그 아이였을 수도 있다. 집에선 편안한 내 자리가 없고 따스함을 낯선 곳의 낯선 사람들에게서 접하고 당혹해 하는 아이) 먼 친척집에 맡긴다. 마침 여름이고 그 친척집엔 '이젠' 아이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모든 상황과 풍경은 아이의 시점에서 묘사된다. 아무도 아이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말없이 조용한 아이는 (아빤 아이가 '많이 먹는다'며 농담 반 핀잔 반 낯선 친척들 앞에서 말한다) 듣고 보고 생각하며 혼자 속으로만 상황을 이해한다. 아이는 아빠가 모는 차를 타고 "아빠가 45 카드 게임에서 빨간 암소를 잃었던 실레일리 마을을" 통과해 "이름이 불리지 않는 개"를 키우는 그 집에 도착한다. 아빠는 "서빙 포크 대신 자기 포크로" 음식을 덜어 먹고 식사 후 서둘러 떠난다. 


아이의 긴장감이 너무나 커서 책장 너머로 느껴질 지경이다. 그래도 너무 건조한 다음 비가 많이 온 그 여름 동안 아이는 매일 집에서 우편함까지 달리기를 하고, 아주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며 그곳 풍경에 천천히 익숙해진다. 아빠는 한번도 잡아주지 않던 손을 친척 아저씨와 잡고 들판을 걷는다. (아, 여기서 긴장하는 독자들 많으실 겁니다. 안심하세요. 이 아저씨 정상인입니다) 마릴라 아주머니처럼 부지런하고 깔끔한 아주머니는 아이의 실수를 못본 체 하고 상냥하게 아이를 배려한다. 아저씨는 "아, 애는 원래 오냐오냐하는 거지"라며 우리의 매슈 아저씨처럼 허허 웃는다. 아 그러니까 더 맴이 아릿아릿 아프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네 사정을 더 알게 된 그날, 아이는 바닷가 산책에서 저 멀리 둘이었던 불빛이 세 개가 되어 빛나는 걸 본다. 집에서 편지가 왔다. 엄마는 아이를 낳았고 이제 학교 가야할 시간이 다가온다. 아저씨에게 여름 동안 글읽기를 배운 아이는 읍내에서 산 책과 옷가지들을 가방에 챙긴다. 그리고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왔다. 그리고... 


늙은 독자는 울고 말았잖아요. 담담하게 조용하게, 하지만 강하게 마음을 강타한 소설. 클레어 키건, 당신 이름을 기억해 두기로 합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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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7-12 09: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대회에 참가하느라 전에 쓴 글을 다시 올립니다. (책 다시 또 읽고 또 울었...)

은오 2023-07-13 0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을 울린 소설이라니...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유부만두 2023-07-17 07:40   좋아요 0 | URL
은오님껜 어쩔지 궁금해요. ^^
 

15년전, 총망받던 젊은 물리학자였던 제이슨이 여자 친구와의 가정적인 삶을 택하면서 가지 않은 길, 그 길이 열었던 우주가 있다. 여러 선택의 갈림길에서 가지 않은 길은 무수한 가능성과 더 많은 우주에 각각 다른 제이슨들의 인생을 만들었다. 지금의 제이슨은 때때로 다른 인생을 생각만 해본다. 그러다 그 상상을 행동으로 옮긴 제이슨2에게 뒷통수를 맞고 지금의 생을 빼앗긴다. 


남편 제이슨이 어쩐지 달라졌다고 느끼는 부인 다니엘라. 남편은 어쩐지 더 우아하고, 더 뜨겁고, 새벽까지 아이패드로 넷플릭스를 보지도 않는다. 아이에게도 더 살갑게 군다. 이이가 어디 아픈가, 아니면 바람을 피우나? 의심해 보는 다니엘라.


튕겨나간 본체(?) 제이슨은 여러 멀티버스를 헤매며 원래의 우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려 애쓴다. 30일 동안. 하지만 돌아온다 해도 제이슨2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며, 가족들에게 이 황당한 '슈레딩거의 고양이' 이론과 실제를 어떻게 설명하며, 자신이 진짜 자신임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하지만 제이슨2도 제이슨은 제이슨인데?


이 소설이 알려주는 멀티버스 여행하는 법.

1. 상자 안으로 들어가 

2. '특별한 합성 약물 주사'를 맞고서 80여 분을 기다린 다음 

3. '열렬한 갈망'을 하며 (즉, 온 우주가 내 소망을 들어주기를 바라며) 문을 연다. 


그 곳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다른 멀티버스이다. 어쩌면 연구소가 아닌 주차장 지하, 공터, 숲속에서 문을 열 수도 있다. 그곳에는 다른 나, 제이슨이 있거나 때론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 여러 다른 인생을 연달아 경험하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와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떠오른다. 하지만 여긴 돌, 은 안나와. 그럭저럭 예상대로의 전개에 좀 식상할만 하면 새로운 방향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보다는 즐겁게 읽었다.  


하지만. 관짝 같은 상자에 들어가 주사를 맞고, 한시간 넘게 찌릿함을 느끼며 기다렸다 '열렬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새 세상을, 전과 다른 나와 환경을 마주한다는 건 ... 아무래도 마약 중독자 이야기로 읽혀서 어, 이 사람은 결국 미쳤던 거고, 나중엔 처자식에게 까지 마수를 뻗는구나 생각했다. 제이슨이 지나치는 여러 우주에는 전염병에 봉쇄된 죽음의 도시, 핵전쟁으로 눈처럼 회색 재가 흩날리는 도시도 나온다. 그리고 엄청난 과학 발전의 도시나 녹음이 우거진 환경친화적 도시도 있다. 우리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 세상은 달라진다. 더해서 약이 필요하고요? 


덥다. 상자와 요술의 문, 도라에몽의 어디로든의 문을 상상해 본다. 저 문을 열어 시원한 바닷가가 나온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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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6-26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즈메처럼 문단속을 철저히 해야겠군요?
근데 문을 열었는데 멋진 바다가 똭!!!
그건 넘나 멋지겠어요^^

유부만두 2023-07-01 09:40   좋아요 1 | URL
그쵸? 그런 상상을 자주 해요.
부산 가고 싶은데 역까지 이동 한시간, 기차로 세 시간을 생각하면 더더욱요.

psyche 2023-07-01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용을 읽다보니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거 같아서 찾아보니 Dark Matter구나. 끝이 궁금해서 정신없이 읽긴 했었는데 나는 좀 별로였던 기억이. 잘 모르지만 이거 과학적으로 말이 되나? 앞 뒤가 맞나? 싶은 부분이 꽤 있었던 듯. 딱 영화로 만들 책 (특히 가족이 최고라는 헐리웃 식의 결말)이구나 싶었던 기억이. 딴 거 보다 문장이 엄청 짧고 단어로 줄을 바꾼 부분이 많아서 엄청 거슬렸었는데 번역에서는 어떻게 했나 모르겠네.

유부만두 2023-07-01 09:45   좋아요 0 | URL
아... 언니는 이미 읽으셨구나.
그쵸, 이거 말이 되냐? 싶어요. 하긴 양자역학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면서요?
번역본은 문장이 거슬리는 건 없었는데 이 제이슨이라는 인물이 너무 이상한거에요. 15년간 연구만 했다는데 이전 연인에 그토록 집착할 만큼 그 연구 인생에선 새 애인을 못 만들었나? 싶고요. 연구소에도 여자들이 있는데요. 그만큼 인성이 개쓰레기구나 싶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여러 ‘가능성‘에는 짜증이 확 올라오면서 결국 약물 주사로 환경을 바꾸는 거니까 이거 이거 마약 남용 이야기네 싶었어요.
얼마전 읽은 (비행기 시차로 생긴 도플갱어 이야기) ˝아노말리˝보다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http://bookple.aladin.co.kr/~r/feed/1508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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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고대 로마편인데, 읽다보니 로마인들과 피츠제럴드의 공통된 졸부 감성, 친구들만 읽는 책의 의미(예전엔 모르는 독자가 생긴다는 건 부정적 의미였다), 책 써서는 돈 못 번다는 고금의 진리, 채링크로스 84번지와 서점 이야기 더해서 돈키호테 속에 숨긴 마르크스와 금서 이야기로 흘러간다. 정신 없이 읽다보면 다시 로마. 영원의 책 맞다. 


고대 로마의 부는 노예 무역이 받쳐주었다. 노예는 돈으로 바뀌었고 여러 업무를 맡았다. 그리고 로마에서 읽기는 낭독이었다. 독자의 몸과 목소리를 저자의 생각/글에 내어주는 행위라 주로 노예가 맡은 일이었다. 이 책에선 '비역'이라는 표현까지 썼는데, 로마의 웅변가 키케로도 노예가 필사한 책을 노예가 낭독하게 시켜서 듣고, 노예가 서가 정리를 잘 해낸 걸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노예가 책을 훔치려다 걸려 도망갔다고 모냥 빠지게 타지방 총독으로 나가있는 친구에게 노예 잡아달라는 청탁 편지까지 썼다. 이렇게 로마의 노예가 글을 알고 읽을 필요가 있던 것과 반대로 미국의 노예들은 글을 알면 처음엔 손가락, 그다음엔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시대와 장소를 건너 뛰며 저자는 익숙하거나 낯선 인류사의 많은 책들과 영화를 언급한다. 그리고 나는 검색+장바구니로 호응한다. 


금서 이야기엔 루슈디, 오비디우스 이야기도 나오는데 (엇그제 루슈디가 The Freedom to Publish award at the British Awards를 받았다. 피습으로 한 눈을 잃은 그는 안경의 한 쪽이 검은데 그는 쿨하게 땡큐! 라고 줌 영상으로 수상 소감을 말했다.) 소아성애가 만연했던 로마에서 오비디우스는 35세 이상의 여인에 대한 호감과 진짜 사랑의 기술을 써내서, 권력자의 말을 듣지 않고 그의 눈 밖에 났으니 귀양길에 올라야 했다. 불타오르는 책과 그 책들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화산이 터지는데 책 두루마리 챙기려는 사람 있었고요, 그 숯더미를 첨단기술로 투사, 읽어내는 사람도 있다고요. 그리고 책에서 지워지고 배척당한 여성들도 있다. 웅변의 시대에 침묵을 강요당한 여성에 대한 고민도 이 책에서는 다룬다. 유피테르에게 혀를 뽑힌 님프 타키타를 숭배하는 유행이 있었다는데 이러한 혀 코르셋 문화가 의미하는 건 노골적이다. 저자는 한계가 없이 펼쳐지는 파피루스 갈대 속 그 모든 목소리와 이야기를 상기시키려 애쓴다. 그 진심이 느껴진다. 스페인어 하나 배우고 갑니다. junco 훈코 갈대.  


책의 서문엔 고대의 책 사냥꾼들이 책을 사냥하러, 빼앗으러 말을 달린다. 그들은 책을 읽거나 그 내용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값나가는 갈대 두루마리를 최대한 모아들여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쌓는다. 수미쌍관으로 이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이들은 1930년대 미국의 여성 기마 사서들이다. 

https://blog.aladin.co.kr/yubumandoo/11458500

오지에 사는 국민들의 교육을 위해 매주 말을 타고 사서들이 무거운 책을 대출해준다. 이들은 책의 내용, 그 안에 담긴 영원의 이야기, 그 아름다움을 최대한 나누려는 사람들이다. 


"같은 이야기를 공유할 때우리는 더 이상 낯선 사람이 아니다." 저자의 말이면서 또 내 말이라고 막 우기면서 나 이제 저자 바예호 선생이랑 아는사이가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여러분도 이제 낯선 사람 아닐겁니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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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5-18 0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 할 말이 많아지지 않습니까!

유부만두 2023-05-18 10:19   좋아요 2 | URL
그렇지요!!! 가슴이 웅장해지고 말입니다!

깐도리 2023-05-1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