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아렌트와 함께, 아렌트를 넘어서
폭력의 세기 이후 오퍼스 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 / 이후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폭력의 세기>는 흔치 않은 깊이를 지닌 책이다. 적은 분량이지만, 권력과 폭력 같은 정치학의 기본 개념들에 대해 깊이 있고 참신한 논의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반면 이 책의 번역은, 심각한 오역이 문제되는 건 아니지만, 영어의 통사 구조를 그대로 옮긴 게 여실히 드러나는 전형적인 번역투 문장들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매우 불편하다). 아렌트의 논지는 (1)권력과 폭력은 대립적인 개념들이지만, (2)서양 정치학의 한 전통으로부터 양자를 같은 것으로, 또는 적어도 동류의 것으로 파악하는 관점이 생겨났으며, 이는 결국 20세기에 폭력 혁명론의 예찬자들을 낳게 되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아렌트가 보기에 폭력은 본성상 도구적인 것이며, 폭력은 어떤 부당한 압제나 횡포에 맞서 행사되었을 때 정당화될 수 있다. 즉 폭력이 유일하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는 부당하게 실행된 권력에 대해, 다른 어떤 대용물이 아니라 바로 그 권력을 응징하고 바로 잡기 위해 행사된 경우다. 반대로 권력은 [제휴해서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상응](74쪽)하는 것으로 정의되며, 따라서 집단성을 특징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권력의 좀더 중요한 특징은 정당화를 요구하는 폭력과 달리 정당성(legitimacy)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즉 폭력은 사후적인 결과들에 따라 정당화되거나 정당화되지 않지만, 권력은 정치적 공동체의 기원에서 자신의 정당성의 원천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는 예컨대 제헌의 행위와, 쿠데타 또는 반혁명의 행위는 엄격하게 구분됨을 의미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근대 정치, 특히 20세기 정치의 문제점은 권력과 폭력의 이러한 본질적 차이가 망각되고 은폐되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는 16세기 절대주의 권력론 이래 근대 정치철학은 정치를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로 이해하고, 권력 역시 [조직되고 합법화된 폭력]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관점은 정치와 권력에 대한 유일한 관점도 바람직한 관점도 아니며, 오히려 좀더 근원적이고 심오한 이해 방식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형성하는 공적인 참여 행위로 권력을 이해하는 그리스와 로마의 정치적 경험, 그리고 18세기의 미국 혁명의 경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부에 제기되는 폭력혁명론의 위험은 폭력의 도구적 성격을 망각하고 폭력을 목적화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아렌트에 따르면 폭력혁명론의 진정한 위험은 과학기술의 진보와 관료제의 확산에 따라 생겨난 [전쟁과 폭력의 자율화] 경향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이러한 경향을 저지하고 근절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더욱 부추기고 심화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정치와 권력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적어도 문제의 위치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가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아렌트의 매력은 서양의 철학 전통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복잡한 현실 문제들에 대해 명쾌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아렌트의 논의는 혁명적이거나 진보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읽는 이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또한 바로 이 때문에 아렌트의 논의는 보수적인 것은 아닐지 몰라도 지나치게 규범적인 방향으로 경도될 위험이 있다. 예컨대 이런 질문을 해보자. 폭력과 권력이 구분되는 [시점]은 어느 시점인가? [누가] 이 양자를 구분하는가?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헌의 행위와 쿠데타는 [언제], [누구]에 의해 구분되는가?

아렌트는 [과거시제]로 말하고 [적]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라는 인칭을 사용할 권리를 부당전제하고 있다. 이는 아렌트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와 미국혁명이라는 두 가지 위대한 정치적 전통이 지니는 규범적 힘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는 이 두 전통은 [현재의 투쟁의 산물]이었으며, 또 오늘의 투쟁 속에서 [변용]되고 [변혁]될 수밖에 없음을 그가 얼마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20세기 후반이 탈혁명의 시대이며, 문제는 오래된 혁명의 전통을 [복원]하는 데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이 역시 하나의 폭력일 수 있음을. 따라서 경계는 권력과 폭력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권력 자체 내에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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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한길그레이트북스 11
한나 아렌트 지음 / 한길사 / 199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급변하는 사회이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모순의 양상은 그 태동부터 지금까지 그리 변하지 않은 듯 하다.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이후 전 세계를 주름잡는 질서가 되었지만, 한나 아렌트가 이미 오래 전 이 문제를 꿰뚫어보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는 예가 아닐까 싶다.


한 때 그녀는 하이데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현학적이다 못해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한 하이데거의 학풍은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안에 존재하는 하이데거의 색채를 정치적 사유의 영역에 도입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글은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독특하다. 로자 룩셈부르크처럼 유태인이었고 보다 많은 폭력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가 자본주의 사회, 인간이 지닌 폭력이라는 문제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어떤 개입도 허락하지 않는, 시장만을 위한 시장. 그 안에는 인간이 설 곳이 없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노동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신성함은 지니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에 의해 속박 당하는 주객전도의 아픔을 오늘날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회의 존재 기반을 튼튼하게 해주는 다원주의가 부정되던 순간부터 인간은 이 사회의 주체 아닌 객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신성시된 노동은 너무도 과대 포장(?)된 나머지 결국 인간이 주관할 수 없는 영역의 것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말았고, 자본주의는 생산성 향상에 끊임없이 목 말라 한 나머지 무의미한 생산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은 인간적인 면모를 지닐 수 없었다. 그것은 보다 빠른 속도의 생산을 감당해낼 수 있는 기계화된 인간을 요구하였고, 어느 순간 인간은 기기로 대체되어갔다. 그렇게 인간과 노동은 분리되었으며, 이는 인간 실존의 조건인 생명, 세계성, 다원성의 상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생산의 비인간화. 그 안에는 지난 20세기 인류를 떨게 만들었던 전체주의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생산 주체 간의, 더 나아가 모든 인류 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재는 자연적으로 모든 가능성의 부재로 이어졌다. 인간은 더 이상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의 의미를 의문시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요구하기 때문에 하는 단순 행위들의 결합 속에서 인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법을 잊었고, 세상에 저항하는 방법을 잃었다. 무조건적인 추앙, 반대파에 대한 폭력 속에서 단 하나의 질서만이 의심 받지 않는 것으로 절대화될 수 있었고, 이것이 바로 나치즘과 파시즘을 비롯,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독재의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 아닐까?


지금껏 인류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어두운 면모에 너무도 길들여진 나머지 우리에겐 희망이 없음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실제로 힘의 논리에 의해 우리 사회는 운영되고 있으며, 권력을 소유한 자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정의, 그렇지 않은 자의 행위를 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힘마저도 소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악을 탄생시킬 수 있었듯, 선 역시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력을 지닌 존재이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한, 아직 현실화되고 있지 못한 한나 아렌트의 긍정적 태도가 언젠가는 실현될 날이 오지 않을까? 인간이 참된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으며,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지혜를 획득하는 그 날을 기다리기에는 나의 삶이 너무도 짧은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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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아렌트와 새로운 정치철학  - 김석수


“고,중세 시기에는 관조적 삶의 영역을 담당하는 자들이 활동적 삶을 담당하는 자들을 압도함으로써, 농민, 상민,노예, 여성들은 공적인 정치적 담론의 장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반면에 근대 이후는 신흥상업계층, 이른바 시민계급이 시민혁명을 계기로 공적 담론의 영역을 독차지 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자본가 집단이 공적 활동의 영역을 독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오늘의 세계는 인간의 실천적 활동의 세 계기를 이루고 있는 노동,작업,행위중에서 행위 영역이 노동과 작업의 계기에 흡수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알 수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인간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이 조건지어진 존재”라는 사실뿐이다. 그녀는 활동적 삶의 요소를 구성하는 노동, 작업, 행위 및 관조적 삶의 요소를 구성하는 사유,의지,판단이 인간의 삶을 조건짓는 요소라고 본다. 이처럼 아렌트는 인간이 이와 같은 다원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고 있다 .

 

3. 근대이전의 정치는 관조의 노예, 종교의 노예가 되었다면, 근대 이후의 정치는 노동, 경제의 노예가 되었다.

 

7.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신체적 필요를 드러내고, 작업을 통해서 솜씨를 드러낸다면, 행동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낸다

4. 노동은 인간이 자연과 갖는 신진대사로서 그 목적은 생명 그 자체의 재생산이며 그 과정은 부단한 순환운도에 포섭되어 있다.

5. 작업은 자연적 환경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인공적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개별적인 삶의 한시성을 넘어서 지속적인 초월적인 삶을 지향하고 한다. 작업의 목적은 사용에 있다면, 노동의 목적은 소모에 있다. 인간이 제작자인한 그는 모든 것을 도구화하며, 이런 도구화는 모든 사물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즉 내재적이고 독자적인 가치를 상실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제작인은 자신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생산품을 전시하는 교환시장에서 최종적인 회합의 공간으로서 공론 영역을 확보한다.

6.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없이 인간들간에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으로서 다원성이라는 인간적 조건, 다시말해 (보편적) 인간(Man)이 아니라 (복수의)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서 살고 또 세계에 거주한다는 사실에 상응하는 활동이다.

8. 행위는 정치적 조직체를 창설하고 개입하는 한에 있어서, 기억을 위한 조건, 다시 말해 역사를 위한 조건을 창출한다. 그렇지만 이 세가지 활동 중에서 탄생성이라는 인간적 조건에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갖은 것은 행위이다. 게다가 행위는 탁월한 정치적 활동이기에 사멸성이 아니라 탄생성이 형이상학적 사고와 구별되는 정치적 사고의 핵심적 범주가 될 수 있다.

2. 아렌트는 서양의 전통적 사상에서는 활동적 삶이 그 고유한 위치를 지니지 못하고 관조적 삶에 의해서만 의미를 부여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관조적 삶의 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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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작업'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능인으로 만족하고, 평생 정치적 탄생을 해보지 못하고 뭍혀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모리배만 있고 공적영역이 살아숨쉬는 공기가 아니라 가서는 안될 비밀의 방처럼 꼭꼭 숨겨놓은, 마치 비밀스런 길이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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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14돌잔치 풍경

들어가며.

노을마저 한해를 갈무리하며 너머가고 있습니다. 강당이 시끌벅적합니다. 아이들 노는 소리, 덕담글 써서 붙이라는 으떰쇠님 당부… 넉넉한 저녁, 배를 두드릴 정도로 두둑하니 좋은 덕담이 많이 쏟아질 듯하지만, 세모가 세모인지라.. 자못 뒷풀이 10대뉴우스들이 기대됩니다.

14번째 돌잔치 안내글은 대물림 2세 그룹에서 모조리 준비하였더군요. 넘치는 아이디어, 반짝이는 아이디어, 출렁이는 생각들로 넘쳐, 멋지게 장식하였습니다. 눈높이 현수막 – 이것이 바로 아이들의 순진무구 귀여운 발상입니다. (디카 사진 참조… 정말 근사하죠..) 물론 2세 그룹 가운데 주요멤버들이 빠져있다는 소문인데 누군고 하면, 10대…찬이, 탁이,  . 등등 (그런데도 대단하죠. 보시라. 2004. 대물림 소식의 작품을 .. 즐감할 수 밖에 없는…)

15살. 만만치 않네요. 즈문동이들이 벌써 폼들을 재고 있고, 10대들은 서서히 사춘기라 돌출행동을 . 시간은 7시 반을 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엄마들, 아빠들 모두 덕담숙제하느라 끙끙대고 있네요. 덕담글이 만만치 않습니다. 대물림 ‘100’년 설계하는 처자도 있고, 로또 당첨되면 모두 대물림에 기부?하겠다는 뜻으로 로또~ 당첨을 노리는 분도 있고. 이것도 기대할 만 하죠. 기대하시라. 어떤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는지? 아이와 어른의 바람이 얼마나 통하는 것이 있는지? 나이 때문에 아니면 서모서방처럼 술 때문에 얼마나 아무 생각없는지도 주요 감상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관전 포인트는 대물림 2세들의 시선이 어떤지? 대물림이 아이들 삶에 어느정도 깃들어 있는지?


소원과 축하마당 (촛불은 대물림 2세들이 초 하나씩 점화~ 작은 불씨가 이어져…조금씩 이어져~)




가족마다 덕담한마디씩, 그리고 한규옹님의 들꽃 같은 축문과 소지, 축하마당은 알지님의 “아리랑” 단소 연주가 은은하게 이어집니다. 마치 가을 달빛처럼, 아이들 숨결처럼 곱고, 안해 무릎처럼 포근한 연주, 아니 듀엣 연주군요. 주한이와 아빠, 환상의 커플입니다. “백도라지”도 훌륭하게 소화해내군요. 감탄의 박수소리~ 화려한 데뷰 성공!! 그러고보니 대물림?! ( 불끄시구…다음은… … 잠시 짬을 내어..)



아이마당
아이들과 함께 율동, 산만한 가운데 제기차기- 음, 몇몇 아빠들 다소 부실하군요. 초등학생들도 남녀를 불문하고 운동 많이 하셔서 내년도에는 멋진 실력 발휘하시길(아셨죠) 하트 입으로 전달하기 게임도 준비되었구, 좀더 시간나면 윷놀이도 …., 풍물마당도 야심한 시각으로 인해 순연되었군요.



뒷풀이마당
한해를 돌아보며
1월, 2월
안은숙- 진탁이 보러 온가족이 뉴질랜드 여행가서 탁이와 함께 돌아왔다. 가족여행이 좋은 추억이 되었다고 아이들이 이야기 많이한다. 힘들 때 생각이 나서 많은 도움이 된다.
구영 – 허리수술로 어렵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4.15일 생명연에서 삼겹살 파티와 잔디밭 운동회 기억이 새롭다.
3월
범경 – 3.5 폭설, 성애 – 3월 규태가 커서 놀이방 다님
규웅 – 안식년 뒤 첫강의가 몹시 힘들었던 기억.여름 수련회때 연락의 고의적 누락이 있었다는군요. (올해일이 아니라 전년일이라네요. ㅎㅎ)
4월
경섭- 대물림 운영진(3쇠)의 신성동 노가네에서 선출.
7월
진규- 7월 수련회 쟁반노래방시 불마당이 술취해 오버 메가톤급 쟁반으로 규옹님을 내려침(앞으로 그런일은 있어서도 안됨) 그리고 역대 모임 중 술을 제일 많이 마심. 예린이 아빠는 중간에 사라지지 않았으면 함.
9월
옥경 – 9월 세령 첫돌, 신랑 회사 옮김, 과학상점(시민참여연구센터) 가문비, 마당 선임
11월 무주 일성콘도 1박2일, 고은이 외할버지 상
12월 가문비 공공연맹 사무처장 피선 2005.  송구영 학부형될 예정임

을유년의 작은 바람
한 – 마음에 자문이인다. 새해부터 더욱 젊게 살아야겠다.
서 – 고은이 엄마가 자리를 많이 비워 아쉬움이 아니라 좋았다.(?)
이 – 참여율을 높이자 그리고 서로에게 힘이되고 원숙해지자. 올해보다 내년에는 함께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송 – 두영 결혼식이 5월쯤 되지 않을까?




(참석가족, 재영이네, 해민이네, 채린이네, 규태네, 종윤이네, 주한이네, 대현이네, 세령이네인준이네…그리고 열씨미 오고 있는 가족들, 그리고 맘이 오고 있는 식구들…)

한해소망을 담아…………………………………………………………………………………………
어려운 경제속에도 마음만은 풍요롭게
대물림 14번째 생일을 자축합니다. 나중에도 대물림이 이어가길 바랍니다. 11년동안 대물림에서 대물림 생일도 모른채 지냈습니다. 다음부터는 대물림 생일을 알고 지냈으면…(재영)
대물림 ‘100’년(심했나?) 될만큼 오랫동안…!!!! 저기..새로 들어오는 어떤 사람들을 위해 말을 하는데, “욕 사절..” 욕하는 애 있으면 대물림에서 내쫓게 할겁니다. ^_^
“14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아무튼 대물림에 들어오려면.. 양식하나가 있습니다. 착한어린이만..-진솔
이제부턴 학교도 방학이니까 12시 쯤에 갔으면 좋겠다. 재미있는게임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물림사람은 이젠 화목한 가족입니다. –진서
우리 가족 늘 건강하게 나경이는 유치원 생활 잘하고, 종윤이는 씩씩하게 잘 자라기를…2005년 한해도 대물림 식구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경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힘내세요.
한해를 보내며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열심히 보낸 한해입니다. 대물림 식구들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열심히 보낸 한해 내년으로 이어갑시다.
04 일신우일신 05 시신우시신 – 현
우리 대물림 식구들 새해에는 바라시는 모든 소망 전부다 이루워지길 기원합니다.
열네돌 어느덧 장년을 맞이한 한솔대물림이여! 쉬지않고 샘솟는 물처럼 새생명을 키워내는 근원이 되게하소서 –땡초
아빠는 금연, 엄마는 운동, 세령은 건강 – 세령이네
이제 2005년도가 되었으니 모두 힘!내세요.파이팅~ happy 재미있게 지내요! 한솔대물림 짱! 월화수목금토 모두 알차게<주한>
내년에는 로또당첨되게 해주세요. 내 소원은 오직 그것뿐! 아자
한솔대물림 식구 오래도록 복 많이 받으세요. 파이팅! 내소원 공부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 안재완
로또 1등 당첨 必必必-예린네
닭이 날아오르듯 새해 소망이 날개쳐라!
乙酉年 萬事亨通
엄마아빠 사랑해요 –한나경
엄마아빠사랑해요
엄마사랑해요
내년에 이영서, 정승연, 이지현, 임소연 사총사랑 친아게 지내개 해주세요. 그리고 새해복 받으세요. 해윤
엄마 사랑해요 종윤 사랑해요 – 한나경
올해에 대물림 목요모임이 다시 시작되어 가장 행복했습니다. 제가 대물림을 사랑하듯이 규리도 규태도 진성씨도 대물림 사랑에 푹-빠지길 바랍니다. 규리,규태 사랑해요 –제성애
내일 네년이다 세 복마니바르세요 건강하세요 네년내 학교예 잘갈게요 엄마 아빠 말 잘들을게요

…… 자리가 아쉬워 안가네에서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한해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올 한해도 복 많이 받으세요.  기록 玄(한규웅님 고천문이 가슴 뭉클하였는데, 꼬옥 올려주셔요. 소지해서 없다구여. 그럼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겨워내셔~.ㅎㅎ)
 
.... 마지막날까지 상가집에 다녀왔다. 잠시 짬을 내어 뒤풀이는 기록을 못하였지만, 오늘 기록담당이라 개발새발 흔적을 남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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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 일욜날 추운데 일터에 모두 출근하여 뺑이쳤다. 중간 짬짬이 논문 6편 프린터하여 제본하였다.-아렌트 3편, 하버마스 3편 총 6편이다. 잠깐 읽었는데 그때 뿐이다. 보면 볼수록 헛갈리니~

2.

도서관에 마감날이다. 오늘 놓치면 며칠 빌릴 수 없으니, 문화란 무엇인가?는 포기하자~ 도서관 근처에 가니 10여분이 남았다. 불이나케 달려가 반납하구. 홉스봄 책을 빌리려다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세계의 종교이야기, 가톨릭 교회, 세계종교사 입문 세권을 빌어왔다. 

 

 

 

 

 

3.

신용목시집 -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를 감상하고 있다.

"민들레" - 가장 높은 곳에 보푸라기 깃을 단다/오직 사랑은/ 내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가는 일/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 먼지도/솜털도 아니게//그것이 아니면 흩어져버리려고/그것이 아니면 부서져버리려고//누군가 나를 참수한다 해도//모가지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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