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리부트 - 자라지 않은 아재

[ ] 어용시민의 탄생;포스트트루스 시대의 반지성주의 - 실제 일어난 일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으로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팩트는 열띤 인정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수사일 뿐이다. 139-140

[ ] 사실을 가장한 감정과 신념이 지배하는 정치, 반권위주의가 아니라 하나의 권위를 거부하기 위해 또다른 권위에 기대는 습속, 김어준을 비롯해 대항 미디어로 평가되는 <나는꼼수다> 등의 팟캐스트들은 ‘포스트오소리티‘의 대표적인 얼굴이다. 151

[ ] 그 중심에서 한 시대를 이끌고 있었던 구루 김어준은 ‘무학의 통찰‘을 수시로 외쳤다....<나꼼수>가 반지성주의 및 음모론과 만나 일으켰던 시너지, 그 시너지의 효과,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지금 그들이 도달해 있는 위치는 비판적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음모론은 ‘당신이 모르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라는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이는 실제적인 근거가 빈약하고 일련의 환상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나르시시즘적이다. 그런데 이 나르시시즘은 ‘나는 언제나 소수이면서 또한 소수자의 위치를 점한다. 그러므로 나는 정의롭고 옳다‘라는 자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피해자 서사와 만난 나르시시즘 안에서 ‘어용시민‘이 탄생한다. 152-153

[ ] 이들의 활동은 단수한 비지니스가 아니라 진심의 비지니스, 신념의 비지니스인 것이다. 난감함은 여기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154/ 프레임 전쟁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전쟁의 핵심은 프레임만 있을 뿐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내용이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 결국 프레임만 남는다는 것은 포스트트루스의 정의 그 자체다. 155/진보와 어용과 지식인이 한자리에 설 수 있는 놀라운 광경은 반동적 반지성주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156

[ ] 괴물이라는 말로 느껴야 했던 죄책감과 수치심은, 다시 문재인이 집권했을 때, 그들은 이 복잡한 감정을 사유를 결여한 자긍심으로 뭉쳐냈다. 158/ 수치심을 모르는 이율배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161

볕뉘

0. 선악의 서사가 잃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지 않은가? 정치에만 기댄다는 어리석음은 어찌할 것인가? 비평이 필요한 지점이 여기가 아닐까? 당신은 어디쯤 서 있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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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누스 푸디카

[ ] 녹 - 이파리로 가득한 숲속에서/나무는 얼굴이 어디일까 생각한다// 바람의 힘으로 사랑에서 떨어질 수 있다면//이파리들은/나무가 쥐고 있는 작은 칼/ 한 시절 사랑하다 지는 연인// 누군가 보자기가 되어/ 담을 수 없는 것을 담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일/ 떨어지기 위해 물방울이 시작하는 일// 두세해 전 얼었던 마음이/비로소 녹고//어디선가 ‘남쪽‘이라는 꽃이 필 것도 같은

[ ] 그의 시에서 인식의 주체는 이성이나 관념이 아니라, 기관과 감각이다. 귀가, 머리가 하지 못했던 일을 한다. 눈이, 볼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을 본다. 손이, 잡을 수 없거나 만질 수 없다고 여겨졌던 것을 커다란 획을 그으며 거머쥔다. 141

[ ] 박연준의 시는 이렇게 오로지 몸을 경우해서 당도할 모종의 상태, 가령 아물지 않은 채 존재하는 것, 잔존하는 끔찍한 것들이나 현존하지만 돌보지 않은 슬픔, 자주 울컥하거나, 간혹 울컥하게 만드는 순간과 순간의 정념들, 다소 식어버리거나 잠시 고조되거나 조금 뻗어나가거나 이내 흩어져버리는, 그러니까 움직이는 감정과 그 감정이 길을 낸 몸과 몸이 길을 내며 남겨놓은 정신-몸의 흔적들을 기록해낸다. 141

[ ] 시인은 스며드는 존재와 다르지 않다.....그래서 형체가 없는 저 어두운 것, 아픈 것, 깊이 파인 것과 그러한 곳에 고여 있는 정념을 불러내는 존재가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다. 143

[ ] 박연준 시의 뛰어남은 시간이나 공간, 존재 등을 액체라는 유동성의 산물로 전환해내는 능력에서 자주 빚어진다. 145

[ ] ˝앓고 난 후 뒤늦게 대가리를 밀고 도착하는 감정˝은 그러니까 ‘실패하는 사랑‘이 아니라 ‘실패하는 실연‘을 말하는 데 바쳐진다. ˝버려도 돌아오는 나의 귀신들은/끝내 살아남은 것들˝(빈잔)은 사랑과의 관계에서는 차라리 역설이라고 해도 좋겠다. 152

[ ] 허기는, 에로티시즘의 에너지이자, ‘실연의 실패‘로 가득한 현실의 빈 잔, 현실의 구멍, 현실의 죽음이기도 할 것이다. 155

[ ] 외향적인 시선보다는 내면에서 차올라온 목소리가 한결 도드라지고, 하나의 중심으로 가지런히 수렴되는 이미지보다는 외부에서 걸어와 내면에서 폭발하면서 일시에 굳건한 자아와 통념을 붕괴시키며, 그 폐허의 자리에서 자신의 체럼과 감각을 독특한 시적 경험으로, 의미를 특수하게 조절하는 말의 찬란한 행렬과 낱말의 변주로 풀어낸다. 158

[ ] 몸이 쓴다. 기억이 쓴다. 감각이 쓴다. 몸-기억-감각이 고유한 시적 에끄리뛰르가 되어, 개인이라는 섬에서 탈출하여 또다른 타자의 섬에 발을 내딛고, 거기서 주관성의 주재자가 되어, 다시 살아나갈 힘을 얻는다.

0. 박연준 시집을 몇 권 사두고, 이 시집은 급히 취기를 담고 보았다. 말미 조재룡비평가의 글이라 주저하지 않고 보게 되었다.

1. 다시 만남이 예비되어 꼼꼼하게 보게 되지 않는 것이 실수일까? 그러면 어떻겠는가. 시와 비평이 잘 어우러져 좋다. 또 다른 시집을 꼼꼼이 볼 참이다.

2. 읽기가 서로 겹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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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레비나스 / 타인의 얼굴

1.

[ ] 아듀 - 신에게 맡긴다 233 데리다는 ˝아듀˝가 한정된 우리의 삶과 생각을 그 테두리를 넘어서는 무한으로, 잉여의 의미로 데려가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235

[ ] 레비나스의 타자 개념은 동일자와 대비되는 것이다. 그래서 레비나스의 타자는 곧 무한과 연결된다. 요컨대, 레비나스에게 무한은 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 테두리 너머를, 우리의 지배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타자는 우리의 지배 범위를 넘어서는 자이고, 그런 의미에서 무한한 자인 것이다. 236

[ 3 ] 레비나스는 죽음 자체나 죽음 저편을 주체적으로 탐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종류의 문제를 기각한다. 죽음 다음의 사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관심을 가져봐야 소용이 없다......레비나스의 출발점은 삶의 향유이고 반응이다. 삶이란 반응하고 응답하는 것이다. 그 삶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타자의 죽음이고 거기서 오는 의미이다.....응답-없음이란 타자의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습이다. 타자는 이런 무-응답의 상태를 피하기 위해 우리에게 호소한다. 우리는 그런 타자에게 응답해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238 죽음의 위협에 어쩔 수 없이 노출되어 있는 타자에게 내가 응답해야 함을, 내가 응답하지 않을 수 없음을 강하게 일깨우는 표현 239

[ ] 데리다가 초점으로 삼는 주제들을 보면 분명히 약자나 핍박받는 자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룬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반권력적이고 반지배적인 해체적 보편성을 내세운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레비나스는 이보다 더하다고 할 수 잇다. 지배 너머의 지평을, 정치 너머의 윤리를 앞세우니까요. 여기에 비해 데리다는 정치의 차원을 중요하게 다룬다. 레비나스 철학에서 정치는 윤리를 통해 극복해야 할 영역으로 취급된다. 또는 정의 문제와 관련해 부수적으로 다루어질 뿐이다. 242

[ 4 ] 제삼자의 출현은 양자관계가 아닌 삼자관계가, 따라서 비교와 계산의 관계가 성립함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치의 성립을 뜻한다....사실 삼자성이란 이렇게 대면관계가 보편적으로 확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한다. 244 이상 아듀 레비나스

2.

[ ] 5장 책임과 대속적 주체: 존재와 다르게 또는 존재 사건 저편에: 현재 우리가 처한 삶의 상황에서 ˝내가 누구에게, 무엇에 책임이 있으며 어떤 상호 작용의 공동체 안에서 내가 내 자신인가?를 고려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처한 상황과 대상, 일, 공동체, 도덕적 주체가 중요하다. 165 나의 책임과 존재 모험: 세계에 대한 의존성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의 독립성, 나의 자유를 확보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나는 오직 내 안에서 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169

[ ] 존재 유지 노력과 타인과의 관계: 히틀러와 독일 국가사회주의의 만행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타인을 제거하고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존재 경향의 확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레비나스는 본다. 170 전쟁은 존재 속에 지속하고자 하는 경향의 연장이라고 보고 있다. 171 계약에 의한 평화는 타인에 대한 존경이나 도덕법칙에 대한 순종에 근거하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공포에 근거하고 있다. ...개인간의 평화이든 정치적 질서에 의한 평화이든 평화를 이성적인 계산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보는 입장을 레비나스는 전형적인 서구적 평화의 핵심으로 생각한다....다양한 것, 많은 것들을 그보다 상위 단계에 있는 일 또는 일자에 환원할 때 평화가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 그리스 사상이 평화문제에 접근하는 기본 모형이었다. 173 레비나스는 자기 중심적인 사회 모형에 근거한 정치는 ‘윤리가 결여된 정치‘라고 단언한다....자아 중심적 사회 모형은 ‘사회 주변부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자리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개개인이 확보할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타인에 대해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면 힘없는 자, 가지지 못한 자, 신체적으로 능력을 잃은 자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175 영원한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인간과 세계, 나와 타인, 진리와 정의, 자유와 책임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176

[ 2 ] 타인의 얼굴: 나의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 삶을 타인에 대해 책임지며 타인과 함께 타인을 위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 가능성을 레비나스는 나의 존재 유지, 나의 내면성에서 찾지 않고 나의 바깥, 나의 존재와는 전혀 다른 차원, 다시 말해 나와 타인 사이에 일어나는 ‘윤리적 사건‘을 통해 찾아낸다.176 타인은 한마디로 유일하며 독특하다. 177 ˝맥락 없는 의미화요˝ ˝전체성의 깨뜨림˝이다. 타인은 단적으로 나에게 ˝낯선 이˝이다. 177 사물을 벗겨냄으로, 지평 안에서, 어떤 맥락 안에서, 일정한 형식을 갖춘 가운데 드러난다. 하지만 그 자체로, 스스로 자신을 보여주는 의미, 어떤 무엇과의 지시 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 스스로 지시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의미, 자기 자신 외에 어떤 다른 것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의미, 자기 자신 외에 어떤 다른 것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의미, 자기 자신에 의존하면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의미, 나의 주도권과 나의 권력과는 완전히 독립해 있는 의미, 어떠한 형식에도, 어떠한 맥락에도, 어떠한 ˝의미부여˝에도 앞선 ‘지평‘없는 의미를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에서 찾는다. 178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에게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 우리의 세계 안에서는 어떠한 지시체도 찾을 수 없는 ‘외재적 존재의 현시‘를 레비나스는 한마디로 ‘얼굴‘이라고 부른다. 179 언제나 ‘처음 온 사람‘이다. 179 얼굴의 시선과 마주칠 때 나는 회피할 수 없는 얼굴을 경험한다. 시선은 나를 ‘놀라게‘ 하며 나에게 ‘상처‘를 준다. 180 나는 이 ‘계시‘에 직면해서 그것을 수용하는 자로, 순종하는 자로 설 뿐 스스로 기획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나의 기대와 예측을 벗어난 가르침을 주는 스승과 주인으로 타인은 나에게 말 건네 옴을 통해 다가온다....그것은 ˝너는 살인하지 말지어다˝라는 명령이다. 181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이다. ..그 자체의 존재는 세계 안에서 하나의 비참이다.˝...비천함에 처한 타인이 나에게 간청으로 호소해올 대, 그 호소로 인해 나의 자유가 문제시될 때, 이때 비로소 윤리적 관계가 등장한다. 181 ˝윤리는 자유가 자기를 정당화하는 대신 스스로 자신이 자의적이며 폭력적임을 느낄 때 시작한다.˝...레비나스는 타인이 나를 정죄하고 사로잡음을 ˝끝까지‘ ‘따라와‘ 괴롭힌다는 뜻으로 ‘핍박‘이라고 부른다....응답을 요구하는 타인의 부름에 내가 ‘응답할 때,‘ 나를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 세울 때 나는 비로소 ‘응답하는 자‘로서 ‘책임적 존재‘ 또는 윤리적 주체로 탄생한다. 182 ˝여기 내가 있습니다˝는 레비나스에 따르면 모든 객관적인 서술에 앞서, 내용과 정보를 지닌 어떤 소통이라도 그 이전에 전제하는 ‘첫 언어‘이다. 183 저는 뒤에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이것이 언어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다. 184

[ ] ‘타인에 의한, 타인에 대한 책임‘과 대속의 의미: 윤리적 불면...‘타인에 의한, 타인에 대한 책임‘이라 이름 짓는다.....타인은 나에게 문자 그대로 ˝혼을 불어넣어주며˝ 나에게 ˝영을 집어넣어˝준다. 타인은 나의 호흡이며, 나의 혼이며 나의 영이다...타자가 내 안에 ‘혼을 불어넣음‘은 타자가 내 몸으로 육화되어 타인의 고통을 위해 나를 내어줄 수 있도록 노출시킨다. 185 대속은 타자에 의해 책임적 존재로 지정받은 내가 타자를 ‘위한‘ 책임적 존재로 세워지는 모습이다...대속은 문자 그대로 ‘자리 바꿔 세움 받음‘이다. 186

[ ] 대속적 책임의 실현과 비움의 주체: 응답, 환대 또는 책임은 ‘줌‘이고 ‘자신을 희생함‘이다. ˝주는 것, 즉 타자를 위한 존재란 자신의 입에서 빵을 꺼내어 자기는 굶주리면서 타인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이다.˝ 189 나의 집과 나의 소유, 나의 지식을 타인을 섬기는 수단으로 사용하라는 것이 타인의 얼굴이 나에게 호소하는 윤리적 요구이다. 궁핍 가운데 있는 이웃을 그저 공감이나 연민으로, 나의 소유를 내어놓지 않고 빈손으로 대하는 것은 공허하다. 191

[ ] 제삼자와 책임: 정의와 국가 제도 : 정치의 드라마....지속적 혁명..틀의 파괴가 필요하다. ..체제와 영역 바깥에서 체제의 경직성을 경고하고 인간 개개인의 인격의 독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정치와 윤리의 결합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레비나스는 보고 있다. 195 개인의 양심만이 이성 자체의 올바른 기능에서 유래한 폭력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자아만이 위계질서와 행정 체제의 순작동으로 생긴 타인의 ‘숨은 눈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공무원) 196

[1 ] 응답으로서의 윤리학: ˝윤리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윤리적일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물음은 윤리는 언제나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윤리에서 ‘존재‘를 강조한다고 해도 행위와 무관한 존재는 윤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 행위는 언제나 행위를 실행하는 행위자의 행위이다. 197 응답자로서의 인간 198 니버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고 묻지 않고 ˝현재는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것은 곧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나에게 반응을 요구하고 사회적 연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설 것인가하는 것이 니버 윤리학의 관심임을 말해준다. 199 이상 레비나스의 철학 타인의 얼굴 5장에서

볕뉘

0.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그의 저작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숙하는 이의 글이나 해설들을 살펴본다. 가벼운 뉘앙스의 차이가 해석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 사실을 유념하고 있다. 베르그손의 시간, 직관의 의미가 받아들여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처럼, 개념을 한 몫에 깨닫게 해주는 언어가 없다. 아니 우리의 상식들이 그 단어의 다른 의미에 갇혀있어 벗어나기가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조심스럽다. 그래서 더 서성인다. 책들 사이 편린들을 들추어보고 있다. 여기저기.

1. 다음에 읽어줄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책앓는 이가 되어버린 자의 슬픔을 책친구와 나누어본다. 굳이 슬픔이라고 하지말고 기쁨은 없는가하고 말머리를 돌려보자고 했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죽을 때쯤 겪는 왜 사는가의 질문지를 일찍 받아 괴롭기도 하다. 그 답답증의 출구를 모색해보기로 했다.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요즘 그런 질문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극히 희소하다. 거의 없다. 그러니 안으로의 나를 채우는 것에도 무심하며, 밖으로 향해 있는 나의 상황과 넓은 정황에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손에 잡히는 것밖에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그래 미처 해주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책 앓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러 농도가 차곡차곡 진해져 가는 것이라고, 어떠한 용도로 쓰일지는 모르지만, 목적이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만남처럼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해두자고 ...일단은...

2. 밑줄이 많이 처 둔 부분은 그 만큼 낯이 설다는 것 같다. 옮겨 적으며 어제 육근종암에 걸려 다리를 절단한 청년의 삶을 끝까지 본 어제 상황이 생각났다. 아파 너무 아파 아픔을 끝내고 싶은 것, 아픔과 싸울 여력이 없어져 스러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그 맛을 본 청년의 고통이 어른거렸다. 거기에서 시작하는 그의 삶. 얼마나 많은 슬픔이 다가설까..그래서 그 질긴 아픔과 비교해낼 것이겠지. 그저 마음씀이라는 것밖에 할 수 없음.

3. 얼마나 깊이 얼마나 다르게 얼마나 멀리 레비나스를 읽을지 모르겠다. 서성이다가 그를 읽는 것이겠지. 읽다가 슬프다가 힘을내다가 하는 것이겠지. 괴로움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이겠지...두 손에 쥔 것을 놓겠지...그리고 아마 다른 것을 잡게 되겠지. 책을 읽는 것은, 책을 앓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위안 받을 친구가 있으면 됐지. 그냥 가보는 것이라고....위험한 독서란 이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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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라시-어둠은 한번도 잡히지 않았다 후라시를 켤 때마다 보란 듯이 불빛 그 바깥에 가 있었네...동그라미 안에만 비가 내리고 나는 간신히 외치기 시작했어 비 내리는 밤이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의 슬픔이 젊기 때문이다.....동그라미 안으로 쓰윽 들어온 손이 내 턱을 추켜올렸을 때 내 얼굴은 이미 깨져 있었다

[ ] 가을과 슬픔과 새 - 슬픔이 새였다는 사실을 바람이 알려주고 가면, 가을새들은 모두 죽었다. ....낙엽이 새였다....날아오르는 것과 떨어져내리는 것이 꼭 같은 모습으로 보여서, 슬픔에도 빨간 페인트가 튀는데....단풍의 빛깔은 태양 속으로 빨려든다, 태양에 환풍기를 달아놓은 것처럼...나의 몸이 어둠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함께 그래서 박쥐들이 검구나, 슬픔과 몸이 하나일 수 있다는 것

[ ] 목소리가 사라진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 - 서로 목소리를 뭉쳐 던지며 차가워, 아파도 좋겠다 목소리를 굴려 사람을 만들면, 그는 따뜻할까 차가울까....

[ ] 모래시계 -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 멀리서부터 모래를 털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모래로 부서지는 이름을 보았다. ....누군가의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잤던 잠을 또 잤다....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 ] 그리고 날들 - 미안하다, 마음이 돌아오지 않아 나갈 수가 없다.....나의 입과 나의 목과 나의 배....라고 중얼거리며 미안하다, 나는 밥을 먹는다

[ ] 우리 모두의 마술 - 그런 풍경은 보이지 않는 풍경을 보여주는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유리창은 계란 칸처럼 꼭 한알씩 태양을 담았다가 해가 지면 가로등 아래 깨뜨린다.....깨진 유리 속이면 사람은 한명으로도 군중을 만든다. 인간은 끝나지 않는다.

[ ] 절반만 말해진 거짓 - 나는 네 몸이 아프다 네가 내 몸을 앓듯이 그러니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위로가 있어서....모든 예언은 절반만 말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 나머지를 실현하기 위하여 삶이 아프다는 것 이제 놀라지 않는다

[ ] 숨겨둔 말 - 비가 새는 지붕이 있다면, 물은 마모된 돌일지도 모른다. 그 돌에게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다...어느날 하구에서 빗방울 하나 주워들었다. 아무도 내 발자국 소리를 꺼내가지 않았다.

[ ] 지나가나, 지나가지 않는 - 이 시간이면 모든 그림자들이 뚜벅뚜벅 동쪽으로 걸어가 한꺼번에 떨어져 죽습니다...목소리는 어떻구요. 투명한 나뭇잎처럼 바스라져 흩날리는 목소리에게도 내세가 있을까? 아, 메아리라면,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겠지요.

[ ] 취이몽 - 세계의 뚫린 구멍이 내 생각은 아닐까?....우리가 갖지 못한 것은 날개이고 새가 갖지 못한 것은 날고 싶음입니다....생각처럼, 생각처럼....칼끝에서 돌 하나 붉은 심장으로 타오를 때,...어느날, 유리창이 깨지듯 잠이 깨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면, 오래전 날아온 돌멩이가 잡힌다....눈물은 금처럼 번져간다..

[ ] 사랑 - 내리는 비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싶습니다, 써놓은 한사람을 찾고 있다. 모두가 자신이 아니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모인 것일까

[ ] 우리라서 -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만 잘 지낼 수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 또한 우리라서, 아침이면 차창을 스쳐가는 나무들이 단 한번 죽음을 주인으로 모시고 밤처럼 꼭 감은 눈에서 떨어지는 이슬 한방울씩 받아주는 때가 온다.

[ ] 우리 - 우리는 있어서, ˝다시는 별을 쳐다보지 마˝ 그 말로 인해 다시 쳐다보는 밤하늘을 우리의 절망은 죽을 때까지 걷도록 선고받았다. 끝없이 별빛에 찔리며 일그러진 뒤에도 굴러가는 달처럼.

[ ] 송별회 - 어느날, 내 몸속의 잎들이 한꺼번에 지는 날이 있을 겁니다. 내 몸을 찢고 나온 슬픈 식사가 있을 겁니다...내 몸을 뒤춤에 아무렇게나 기워놓은 호주머니로 사용하지는 않겠습니다. 찌그러진 담뱃갑처럼 슬픔 따위를 구겨넣지는 않겠습니다.

[ ] 무서운 슬픔 - 그러나 연잎 뜨고 밤별 숨은 연못에서 갑자기 개구리 울음이 멈추는 이유, 뱀은 모르겠지. 순식간에 그 집 불이 꺼지는 이유

[ ] 카프카의 편지 - 인생은 씌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려고 부재하는 신에 관한 기록처럼 구겨지는 것이다

[ ] 나는 알고 있거든 - 가르쳐주마 나는 목숨을 끓여 슬픔을 정제하는 공장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거든....가르쳐주마 봉투를 찢었을 때 쏟아지던 모래의 내력과 후우 불면 흩어지는 활자들의 기원.....덕분에 나는 닫힌 공장 굴뚝의 긴 어둠을 막대처럼 뽑아 하루를 내리치며 폐광의 잠을 잔다....네 운명이 앞질러 되가져간 슬픔 덕분에 실직당해 몸 밖으로 쫓겨난 꿈 때문에 내가 일상이라는 죽음을 죽기까지 살게 될 테니

[ ] 흐린 방의 지도 - 골목은 간밤의 신열로부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식탁에 흩어놓은 약봉지 같다 내 안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는 대답을 막기 위해 밥을 먹어야 했다....누군가 느낌을 담아가기 위해 사람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아무리 소리쳐도 꿈속까지 들리진 않는데 왜 꿈에서 속삭이면 꿈 밖까지 들릴까? 골목에서는 질문을 멈추게 하는 알약이 팔리지만 여기서 외로움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이상 나를 부르지 않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 ] 옆집 남자 - 사막 가운데서도 선인장은 물속에 잠겨 있다....아침엔 사막으로 물을 가져가다 가시가 돋아난 풀처럼...죽은 자의 심장을 내리치듯. 쾅쾅 안개를 두드리는, 울음은 저기 혹은 여기,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그가 살고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끝이 없어 나는 옆집 남자로 살고 있다.

[ ] 산책자 보고서 - 지붕을 뚫지 못해 빗방울은 대신하여 빗소리를 집 안으로 내려보낸다....나는 비의 느낌으로 숨어 있다....빗방울의 시간은 빗소리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빗소리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나는 끓는 허기일 뿐....하루는 그 간격을 오가는 시간으로 더 먼 곳의 시간들을 지우고 있다.

[ ] 차갑고 어두운 - 태양은 연필 뒤에 꽂힌 지우개 같지만 문지르면 곧잘 호수를 찢어버리지...왜 생각 속은 늘 차갑고 어두운 것일까....호수 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는 돌멩이를 오랫동안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생각....안개 속에서 한걸음씩 사람이 나타나서 내 눈을 찌를 것만 같은데....생각 위에 글자를 쓸 때마다 금방 낙서가 된다

[ ] 자작나무 - 나는 돌 하나를 쥐고 있었다 언젠가 백발 마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을,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이 깨지는 하늘처럼 쏟아지거나 떨어지는 질문이거나...날아가는 돌에서 백발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 ] 하늘에서 흰머리가 내리는군 - 아무리 단단하게 뭉쳐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눈사람을 보면, 울 때마다 눈물이 조금씩 우리를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나는 언제나 뒤에 오는 것을 믿는다. 세상에 눈사람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겨울이 있고 눈사람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봄이 있다면.....

[ ] 아무렇지도 않게 - 창밖에 밤의 수염처럼 비가 드리워져 있는 날이 있다. 어느 미용사가 지붕 위에 앉아 그 수염을 자르는 밤이 있다....그러니까 수염이 점점 짧아져 더는 자를 것이 없을 때 가을이 간다....창문은 아무렇지도 않게 당신을 쳐다보는 날이 있다.

[ ] 더 많거나 다른 - 열한시에 열한시를 만나기로 했다. ....열한시는 대답하지 않았다....비 맞는 햇살과 부서진 노래, 아름다움에 대해

[ ] 흰나비 - 흰나비는 이 세상 것 같지가 않다. 쫓아가는 아이는 꼭 넘어진다.

[ ] 나비 tatoo - 마침내 어떤 꿈도 남지 않은 새벽에 깨어나 만져보면 그대로 부서지는 날개, 가만히 혀를 대보면 맑게 흐른다.....나비의 흰 젖.

[ ] 스위치 - 물이 새는 화장실 스위치를 올리면 물소리가 멈춘다...언젠가 익사자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을 돌. 나는 주머니 속에 돌을 집어넣고 가계부 목록을 쓴다 북국으로 가는 철새 그림자를 위한 항로 보수 공사에 든 비용 스위치를 내린다

볕뉘

0. 어제는 [사랑의 현상학]이란 책의 1장을 읽다 마저 읽지 못하고 잠을 청한다. 새벽에 일어나 마저 읽고, 늦은 아침 쪽잠을 잤다. 꿈을 꾸었다. 요즘 꿈에는 서늘함이 자주 다가선다. 꿈을 기억해내었지만 애써 기억하지 않는다. 보일러 스위치를 올렸다. 타이머 불빛이 비춘다. 온도 표지만 되어 다시 난방 스위치를 올렸다.

1. 생각은 늘 차갑고 어둡다. 한 번쯤은 따뜻해도 좋을 듯싶은데, 이렇게 차갑고 어두움을 내려놓는 글을 읽다. 그러고보면 마음이 참 따스해지기도 한다. 흘릴 눈물을 기를 수 있다니 말이다. 책을 읽다가 생각길을 가다보니 밤의 수염이 많이 자랐다. 아니 콧털도 자랐다. 길을 잃은 먼지가 콧사이로 다녀간 것이다. 그것도 자주. 아침 면도를 했다.

2. 나와 너는 다가서지 못한다. 그 사이에는 유리, 창. 비치는 나. 그 유리를 와장창 깨고 싶다. 그러나 돌같은 마음은 비처럼 내린다. 흐른다. 슬픔은 이 지상을 채우고도 남을 듯이 빗소리는 요란하다. 그렇게 펑펑 우는 사이 눈물을 보탠다.

3. 절망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이 닿지 않는 아주 가까운 등잔밑에서 늘 시작한다. 나의 절망의 틈을 채워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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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 ] 슬픔? 그건 간직 못하지. 내 주머니보다 크거든. 나보다 크거든. 내 세계보다도 크거든./그걸 간직하는 유일한 방법은 분노로 바꿔놓는 것./나는 돌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힘껏 팔을 휘둘렀다. 더는 아무것도 창조할 게 없어서 신은 사라져버렸구나./돌을 던져서는 깰 수 없는 것이 있었네. 맞힐 수 없는 바람이 있었네. 뚜벅뚜벅 걸으며,/차라리 나는 돌이 되고 싶었다./그래서 돌아보았다. 후회로 남는 때가 마침내 가장 반짝이는 법이라고......사랑은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전부 들었다. 시인의 말.

[ ] 내가 쓰러져 꿈꾸기 전에 - 죽음이 인생을 엿보려고 사람에게 사랑을 심어놓았다...아직 내게 남은 재앙이 있다면 오늘 자정이 가기 전에 보내주기를.

[ ] 얼음은 깨지면서 녹는다 - 사라진 시간의 그림자. 죽음, 슬픔, 분노. 어둠속에서는 항상 인간이 깨지고 있다. 이번 생의 시절을 모른 채 서둘러 내게 온 청춘처럼, 그 방 유리창에는 돌멩이가 날아온 흔적이 있다. 거절된 고독이 있다./ ...고독은 해부되지 않는다...눈동자 속 지진으로 뻗어가는 핏줄처럼 지금은 누군가 뭉쳐 던진 달 하나의 밤. 내가 한걸음 나설 때 모두가 움직인다.....희고 거대한 바위가 시간의 협곡 속으로 천천히 굴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 ] 저지르는 비 - 울음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기 위하여 슬픔은 눈물을 흘려보낸다....슬픔은 풍경의 전부를 사용한다.

[ ] 그해 안부 - 그것을 낙엽이라 부를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없는 것이 텅 빈 시간을 찔러, 몸이라는 상처를 남겼다는 것을, 몸이라는 압정에 박혀 영혼이 날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 ] 노랑에서 빨강 - 아무리 살펴도 건너편이 보이지 않아서, 오늘을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방황에 대해서도 살았다고 쳐주는 겁니까?......오늘이기를 멈추지 못하는 오늘에게 자연사라는 말은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날개 없이 날아가는 것들에게만 가능한 일 같습니다. 마음처럼? 이를테면, 사랑과 슬픔과 분노. 그것이 중력이라면, 도대체 내가 던진 돌은 언제 땅에 떨어진단 말입니까? 저 달은 언제 땅에 떨어진단 말입니까?....어딘지 모를 오늘을 날아가다 그만, 사랑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슬픔이 무엇인지 분노가 무엇인지 잊어버리고....비가되어 떨어지는 거라면, 비를 맞고 아플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 속에도 신이 있구나.나는 , 잠겨 있구나.....언젠가 오늘을 건너갈 수 있다면, 나는 생각 속에 몰래 머리를 숨겨놓을 것입니다.

[ ] 이 슬픔에는 규격이 없다 - 한가지 일은 그리워하는 것. 다른 한가지는, 잊는다.

[ ] 그림자 섬 - 낮 동안 낮게 끌려다니던 그림자가 밤이 되자, 나를 커다란 보자리로 싸서 들고 간다.....어둠속에서도 모두가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신비로웠다. 만지지 않는데도 느낌이 남아 있다는 것이, 죽은 후에도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름다웠다...빗방울에도 얼굴이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고, 목소리에도 해변이 있다는 것이 아름다웠다.

[ ] 눈사람 - 구원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원했던 마음을 가져가는 것으로 찾아온다....함께라는 말 속에 늘 혼자 있는 사람과 혼자라는 말을 들고 늘 함께 있는 사람들 중에서 너를 일으켰을 때, 네 눈에 박혀 있던 돌멩이처럼

[ ] 사과 - 외진 냄새로 얼룩지는 저녁에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뺨을 맞았다. 맞을수록 익어간다.

[ ] 내가 계속 나일 때 - 나는 그냥 살았을 뿐이다. 나는 계속 나였다. 내가 끓었을 때 그가 왔다. 그리고 식어가는 시간이었다.

[ ] 더 어두운 색 - 밤새 덮어놓아도 꺼지지 않는 불이 있어서 그 불을 지나온 눈동자 같은 색 밤새 흘려보내도 마르지 않는 물이 있어서 그 물을 건너온 목소리 같은 색.....난로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그는 벽에 일렁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인두로 지졌다....마침내 희미한 집들이 더 어두운 밤을 게워내는데 겨울이 아무리 뜨거워져도 난로는 타지 않는다.

[ ] 귀가사 - 빨갛게 끓고 있는 찌개 속에서 설탕의 맛을 알아채는 것처럼, 그는 정말 자글자글 끓고 있는 내 몸 어딘가에서 슬픔을 읽어내고 있는 것일까?....사랑은 새로운 운동장 건립 공사 같은 것..그렇다면 슬픔은 그 공사에 고용된 인부들 같아서 현장에서 나온 폐기물을 포대에 담아내듯이 슬픔이 나를 내 인생에 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지......어쨌든 오늘 우리가 취했다는 것은 서로를 향해 출렁이고 있다는 뜻이다...부딪치며 몸속에 소용돌이 하나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는 잔에 알코올을 붓고 내 영혼을 녹여 마시는 자는 누구일까?

[ ] 개와 산책하는 비 - 문득 치욕으로부터 잊혀지지 않을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공포감을 느끼면/톡톡 바닥에 떨어진 매미를 발끝으로 건드리며, 죽었나 살았나/조금씩 비가 듣는데, 이제 제가 운 울음 하나 건사하지 못하나

볕뉘

0. 바쁜 한 주였다. 아니 바쁜 중순이라고 할까? 매일 매일 모임을 했으며, 하루하루 책 한권이상은 읽었고, 정신없이 오고가며 이동을 하였다. 그 와중에 이 시집은 물끄러미 나를 고이게 만들었다.

1. 마침 레비나스를 시작해서인지 그 사이 사이로 그 그림자들이 연신 비치는 것이다. 그동안 갇힌 유아론에 대한 확장인지 확증일지 모르는 생각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듯했다. 시인의 시어들이 서로 물려 윤곽이 잡힌다. 그래서 그 자연스러움을 물고 있는 놀라움에 연식 탄복한다. 다시 모임에서도 그랬다. 멤버들은 시종 편차가 없이 시와 시인을 애정했다. 전 시집과 지금 시집의 간극을 놀라와했으며 확장에 대해서도 긍정의 안부를 말했다.

2. 선무당이 아니라 신과 이승을 이어주는 말 벗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그런 무당. 이 시집을 잊지 못하겠다 싶다. 아껴 써둔다. 거꾸로 반틈의 메모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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