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신자유주의가 사회, 문화, 신경체제에 가한 영구적 손상과 인간적 존엄을 짓밟는 노동 착취의 비참함을 직시하자 98

사람들은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일에는 좀처럼 시간을 할애하지 않지만, 말춤이나 광고를 쳐다보는 일에는 순순히 투항한다. 57

미디어비만 – 인터넷 블랙마켓에 전시된 터무니상조회의 작품 ‘미디어 아귀와 천사들‘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인쇄하여 옷을 만들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미디어에 둘러쌓여 비만이 된 인간을 표현하였다. 59

오늘날의 포르노는 타인의 기쁨과 아픔을 나의것으로 느낄 수 있는 감성과 감수성의 무능력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결핍되거나 말소될 수밖에 없는 언어의 빈자리가 외설적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이는 성만이 아니라 음식, 불안한 노동의 회로, 텔레비전 뉴스와 반려동물, 정치인 연설물, 폭력적인 정보환경 모두를 포함한다. 64

게이미피케이션 – 게임이 아닌 것을 게임처럼 생각하고, 재미있는 요소를 부여하여 게임처럼 만드는 것을 말한다./확률형 아이템 때문에 현대 게임은 퇴보하고 있다. 과정의 서사를 확률로 압축하고 결과만을 제공한다. 경쟁의 과정이 주는 재미는 사라지고, 남보다 높은 레벨로 올라서는 권력 구조의 쾌감만 남았다. 속도의 경제, 결과 중심의 세계관이 게임을 파친코로 만들었다.(게임비평가 이경혁)/현대의 비디오 게임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무한 경쟁을 내면화하는 훈육 장치로 비디오 게임이 동원되고 있다. 그 흐름을 ‘게임이 된 전쟁, 전쟁이 된 노동, 노동이 된 게임‘이라는 악순환의 구조로 정리한다.(신현우) 73, 75

신현우는 ㄱㅔ이미피케이션 사회에 대응할 방법으로 게임 ㄱㅣ술에 대한 항구적인 재발명을 통해 자본화된 지각-인지-육체의 변화가 ㅇㅣ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임이라는 ㄱㅣ계에 내재한 전쟁, 자본의 ㄱㅣ술 코드를 재설계해서 사회를 재발명하자는 ㅂㅣ전이다.(미학적 ㄱㅔ임-Paper, Please/Journey/Monument Valley/The Stanley Parable) 77

게임중독자의 문제점은 생활습관이 아니라 게임의 룰을 비판적으로 상대화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를 숭앙하는 체제 순응자와 게임 중독자는 쌍생아처럼 닮았다. 79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동화경향은 무지와 무책임, 무능력을 확산시키고 있다..이는 마치 성직자 도움 없이는 성경을 읽지 못했던 중세의 문맹자들 신세와 비슷하다. 2010년대는 디지털 중세기로 기억될 것이다. 90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디지털 신자유주의의 수익 모델에 철저히 구속되어 있다. 93

오늘날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은 버튼으로 이뤄진 디스플레이 인터페이스일뿐, 유기적 다양체인 기계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버튼 너머의 세계에서 자기 언어로 생각을 적어나가는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것은 버튼 위에 짓눌린 시간을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8

볕뉘.

0. 기술비평이 전무하지 않는가 하는 궁금증이 늘 있어 왔는데, 모처럼 이에 해당하는 알맞은 책이 있어 반가웠다.

1. 적정기술이나 기계비평은 다소 익숙한 편이라 디지털 비평가인 임태훈교수의 글을 읽어보았다. 정보와 접근방법에 있어 깊이를 요하는 부분들이 있어 신선했다. 이 글로 디지털 비평에 대한 여러 책들을 만나보고픈 느낌도 든다.

2. 책방 소개 도서 - 오른쪽은 이영준교수의 독립출판물은 예전에 구입해서 읽었는데 날카롭고 좋았다.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도 새겨보면 좋을 것 같고, 임태훈교수의 책도 관심이 많이 간다. 궁금증이 갈증으로 이어졌으면 싶은데 봄이다. 딱딱하지 않은지 싶다. 대안 게임이라고 하는 2010년판 걸작게임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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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뉘.

0. 산문시인 파리의 우울에 끌려 미술비평가이자 현대시를 연 시인인 보들레르를 읽는다. 34살차이나는 두번째 부인에게서 난 보들레르 6살때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한 아버지를 여위었다. 부친의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고 물쓰듯이 돈을 뿌리고 다녔던 보들레르는 재산을 압류당하다시피하고 매달 조금씩 받아썼다. 그렇다고 그 버릇이 바뀐 것을 아니었다. 삶과 일상을 늘 위태로운 지경으로 모는 그는 그 경계를 늘 글과 작품으로 단련시킨다. 시대의 우울을 고스란히 품고 작품으로 추출해낸다. 그 책 속의 책 가운데 하나가 말라르메였다. 말라르메의 시집. 평생 극히 적은 시를 쓴 그는 작품을 낳기 위해 끊임없이 삶을 채근한다. 그리고 조금씩 읽다가 늘 주시당하던 그 책 글렌굴드 피아노 솔로를 보게된다. 그리고 다시 보들레를를 그 책 안에서 만났다.

1. 예술을 위한 예술. 그 예술에는 예술만이 있던 것이 아니었다. 치열한 삶 아니 괴팍스럽기까지한 원칙과 철칙. 어쩌면 시대가 말하지 못하는 멜랑콜리를 그대로 안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을 지켜주는 것은 사유와 삶, 고독이었다. 능히 즐기는 고독. 밤새워 자신과 작품과 부단히 씨름하는 나날의 연속인 듯싶다. 보들레르는 젊을 때 걸린 성병으로 말년 자주 의식을 잃기도 하고 아팠다. 그 날선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원하는 작품에 대해서는 엄중했다. 그를 읽으면서 이시가와 타쿠보쿠가 겹쳤다. 드나들던 유곽. 빚에 대해 빚처럼 생각하지 않던 삶의 방식. 타쿠보쿠는 시에 자신의 성찰과 내면의 부끄러움을 거침없이 넣었다. 삶의 부끄러움을 넣을 줄 알던 시인. 그것이 그의 단명한 목숨이 아니라 사회적 삶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마흔여섯에 유명을 달리한 보들레르 역시 날선 자학과 귀족주의가 번갈아 감돈다.

2. 음악은 쉽지 않다. 결국 만나는 길이 음악이라고 하지만, 글렌굴드 피아노 연주를 듣거나 읽으면서 기괴하면서 이해할 수 있기도 한 것 같다. 연주자가 연주를 하지 않고 몇달 동안 몇 주 동안 서성거린다. 기껏 연습이라고는 일주일에 한 두번. 될 수 있으면 피아노란 사물과 거리를 둔다. 사물이 아니라 건반의 느낌과 발성상태까지, 그날의 습도까지 감지할 것 같은 연주자. 단 한번인 피아노의 음내림을 기원하는 무당같은 연주자. 시간이 아니라 한음 한음 공간을 만든다는 연주자.

3. 어떻게 하다가 이런 볼 것 같지 않은 책의 숲길로 들어섰는지 모르겠다. 한번 괄호를 다시 한번 치면서 읽고 싶다. 음악 대신에, 유행 대신에...또 다른 무엇. 사유의 갱부들... ...예술가의 낯설고 날선 일상들로 사유의 폭을 찢어버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이번 달은 이 들 사이에서 더 앓게 될 듯 싶다.

..........................................................................................

1.보들레르

2. 말라르메

그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꽃을 보았다면 너는 그저 그런 꽃 한 송이를 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네가 정말로 무심한 상태에서 그 꽃을 보았다면 너는 우주의 한 얼굴을, 지극히 작은 얼굴이지만, 본 것이다. 말라르메에게서 낡고 우연한 관념들을 차례로 부정하고 색조와 선율로 하나된 인상이 되려는 이 시어의 지평선에 순수 관념들이 떠오르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시구를 파들어” 간다는 것은 마음 속에 이 투명한 거울을 마련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한 시인에게서 그의 언어의 고행은 바로 그의 실존의 고행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32

얼음에 갇힌 백조가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노력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명철하게 알면서도 순백의 얼음에 능동적으로 자신을 붙박을 때도 38

책의 개념은 그의 시쓰기 속으로 들어와 내적 비평의 기능을 했으며, 사물과 생각과 말의 관계에 대한 성찰의 틀을 마련했다. 41

말라르메의 [최신유행]이란 8호까지의 잡지는 치밀하고 난해한 말라르메의 시와 반짝이는 작은 장식품으로 가득 차 있으며 아름답고도 무의미한 유행의 세계 간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19세기 이후 현대의 패션 산업이 어떻게 예술화의 길을 밟았으며, 모던파의 예술이 어떻게 현대의 유행에서 영감을 받았는가를 기술하는 가운데 이 잡지를 그 중요한 단계에 위치시키고 있다./”사물이 아니라, 사물에서 산출되는 효과를” 그리려 했던 말라르메의 시법이 다른 방법으로 실현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42

외국어 속에 마법으로 묶여 있는 저 순수 언어를 자기 언어를 통해 풀어내고, 작품 속에 갇혀 있는 저 순수 언어를 작품의 재창조를 통해 해방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번역가의 과제”라는 벤야민의 말이 위안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44

3. 글렌굴드

굴드의 고독은 찢김이 아니고 스스로 아무는 상처였다. 풍요로운 은신처, 모아들이는 장소, 그는 묵상을 했던 것이다. 릴케처럼 그도 “나는 과실 속의 씨처럼 일 속에 있습니다.”fㅏ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21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늘 혼자서 보냈다. 그건 내가 비사교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예술가가 창조자로서 작업하기 위해 머리를 쓰기 바란다면 자아 규제 – 바로 사회로부터 자신을 절단시키는 한 방식 – 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 작품을 산출하고자 하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사회 생활면에서 다소 뒤떨어진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37

연주회는 음악을 현재형으로 만들려고 ㅎㅏ지만, 사실은 청중을 그들이 듣는 것에서 멀어지도록 한다고 굴드는 믿었다. 연주회에서 연주를 할 때, 그는 음반이나 텔레비전 연주와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이 애쓰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ㅅㅏ람들이 가장 생생하고 가장 직접적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스튜디오 안에서 이루어지는 빛나는 아름다움의 탐구의 죽은 그림자라는 듯이. 절단, 동시 녹음, 반복 녹음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 보들레르라면 ‘화장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했으리라. 보다 노골적으로 굴드는 상궤를 벗어난 아름다움, 임상실험, 해부를 원했다. 48

그의 부재는 보다 강렬한 현전이라 할 수 있다. 굴드는 청중을 원했으며, 더 많은 ㅅㅏ람들이 열정적으로 그에게 올 수 있도록 거리를 유지할 줄 알았다. 59
자신의 생각들과 함께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어렵지 않게 침묵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 상대방을 괴롭히지 않고 그의 공격을 살짝 피해 갈 수 있는 능력, 이런 것들이 우정의 본질이 아닌가?/굴드는 사람들과의 의사 소통을 거부했지만, 그가 거부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시대‘라는 명목으로 팔아먹은 이 텅 빈 말, 비의사 소통이었다. 그의 고독은 고독 속에 있는 각자를 만나려는 수단이었다. 굴드는 우리에게 우정을 증명해 주었다. 65

이 예술가의 이같은 별난 행동들을 기인의 전설로 치부해버리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나는 반대로 이 육신의 병, 이 공포가 음악가에게 기계의 작동에 ㄷㅐ한 극도의 예민함과 섬세한 조음감각, 그리고 그의 세련된 연주를 가능케했다고 믿는다. 72

굴드에게 있어 음악은 일종의 ‘아래‘에 대한 사랑이다. 음향은 아래로부터, 피아노에서 오는 것이지, 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손가락은 단지 이 음향을 해방시키기 위해 있다는 생각. 아무리 낮게 내려가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다. 84/음향이 밖에서 전달되어 오지 않고, 마치 악기의 내부로부터 추출되는 것 같다. 85
그는 ‘아름다움‘을 접합과 절단, 합성과 분해, 외과적인 미의 개념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술은 정보를 재생해 내는 도구가 아니고, 예술적 의미에서 정보를 조작하는 도구라고 보았다. 스튜디오는 그에게 피아노와 똑같은 악기였다. 89

그가 무대를 떠난 것은, 연주홀이 음악을 듣기 위한 최적의 장소가 아니라는 확신에서였다. 그곳엔 형상들이 현존하며, 따라서 고독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연주회는 부도덕했다/악마의 간계. “예술가는 위험에 처한 존재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90

굴드는 놀라운 방식으로 시간을 얽히게 하고, 도취 상태에서 기다림을 따라 잡는다/연주회에 대해 굴드가 가장 꺼렸던 점이 어찌 보면 시간성이다. 그는 연주회 시간을 혐오한다고 말했다.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연주자가 움직이는, 방향지어지고 역전 불가능한 시간. 95, 96

더 잘 연주하기 위해 거리를 둘 것. 이것이 굴드의 미학이다./듣기보다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자신의 몸의 지체를 분리시키고, 자신을 몸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음악가의 시도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시도이다. 그렇지만 굴드는 적극적으로 주장했다./굴드의 미학은 발견을 돕는 미학이다. 본능적으로 연주가들은 제거하기보다는 첨가하는데, 그의 미학은 제거하는 편을 택한다. 99, 101

굴드가 남긴 것은 무게가 없는 거대한 것, 느끼기보다는 명명하기 더 어려운 것, 가까이 다가갈수록 잡히지 않는 무엇이다.(미는 우리가 건드릴 수 없는 것, 우리를 그 영향력 속에 가두어두는 것이다.)/아름다움은 견딜 수 없고 냉혹하다. 그것은 무자비하게 우리의 눈길을 후려치고, 귀를 유혹하고, 대기중인 우리의 말들을 낚아챈다. 104, 105

그는 음악을 따고, 들어올리고, 아니면 공중에서 낚아채는 듯했다. 언제나 밖에서, 뒤로 물러서며 끝없이 한계를 넓혀 가는 어떤 공간 속에 있듯이 그는 음악 속에 있었다...친숙해지면 음악이 꺼져 ㅂㅓ리고 만다...무서운 것이 잊혀지고 나면 아름다움은 부재한다./우리의 원래 모습보다 한 발 앞선 곳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다./아주 스타카토적이고 점묘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이 secco식의 연주를 통해 탁월한 밀도와 놀라운 연속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106, 107, 108

굴드는 피아노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본다. “네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지 내가 알려면 너는 아주 분명한 분석적인 ㄱㅐ념을 가지고 내게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더없이 추잡한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피아노는 대답하지 않고 질문한다. “이것이 정말 네가 바라는 것인가?”라고 물으면서 그 너머로 나아가도록 다그친다. 굴드는 피아노의 이같은 점을 좋아했다. 그의 방해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113

굴드는 유채색을 싫어했으며, 화려한 빛깔의 방에서는 일을 할 수도, 분명한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회색과 암청색을 간신히 견뎌낼 수 있을 정도였다./그는 상상의 음질을 원했으며, 존재하지 않는 음을 찾곤 했다. 잃어버린 음이 아니라, 부재하는 음을/”이곳에서 시간은 공간이 된다”는 바그너가 ㅍㅏ르지팔의 기본 미학으로 삼았던 원칙이었다. 굴드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갱도를 파는 광부, 혹은 ㄱㅏ장자리를 둥글게 다듬는 조각가가 생각난다. 울림을 지닌 재료를 가지고 하는 작업. 다시 시작하거나 회복이 불가능한 작업/음악의 촉각적 공간적 개념을 공유한다. 즉 색채가 입체감을 인지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굴드가 음악에서 과육을 제거하기 바라는 것은 색채와 무관한 자체의 구조, 그 골조의 아름다움을 환한 빛 속에서 보기 위해서이다. 122, 123,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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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18

정신의 투쟁 역시 여느 전쟁 못지않게 끔찍하다. 라고 한 랭보의 말이 적확하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게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라는 냉혹한 말의 의미도 간파하게 되었다. 37

그들의 사고를 통찰하는 데 그들 각자의 나이를 아는 게 필수 조건임을 깨달은 건 처음이었다. 51

나의 생각을 언제나 더 크고 새로운 감탄으로 차오르게 하는 두가지가 있다...내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과,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는 도덕률이다..../ 여름밤의 떨리는 미광이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하고 달의 형태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 나는 세상에 대한 경멸과 우정, 영원으로 형성된 고도의 가ㅁ각 속으로 서서히 빠져든다...71

사랑은 지고의 율법이며, 이런 사랑은 연민이다. 76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86

멋진 책을 펼쳐들면, 제대 앞에 선 신부의 부케처럼 책이 내 손가락 사이에서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88

평생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멀리까지 간 사람이 만차였다. 책들에 둘러싸인 나는 책에서 쉴새없이 표정을 구했으나 하늘로부터 단 한 줄의 메시지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책들이 단합해 내게 맞섰는데 말이다. 반면 책을 혐오한 만차는 영원토록 그녀에게 예정된 운명대로 글쓰기에 영감을 불어넣는 여인이 되어 있었고, 심지어 돌로 된 날개를 퍼덕이며 비상했다. 104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적을 두기 마련이다. 128

어린아이가 쓴 듯한 큼직한 글씨가 쓰여 있다. 일론카. 그렇다. 이젠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132

볕뉘.

0. 메모지에 글을 쓴다. 글은 씌여지되 낯설은 느낌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글이 미끄러져 나가는 느낌. 내 글이되 내 글이 아닌 것 같아 무척 낯설다.

1. 책으로 사유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 속의 책들이 대기하고 있지 않을 수 있을까. 글 속에는 만차라는 여성을 등장시킨다. 사랑들이 그 모든 것을 변화시켜 집 한채를 거뜬히 지었다고 쓴다. 돌로 된 날개도 퍼덕이며 비상한다고 말이다. 어느 한 편은 돈오돈수요 또 한편은 돈오점수란 말인가.

2. 보들레르는 여배우였던 혼혈여인을 사랑했다. 지성과는 거리가 먼 그녀는 보들레를를 그리 깊이 아끼지는 않았던 듯 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나 반편불수가 된 그녀를 보들레르는 극진히 보살핀다. 삶을 예술의 자양분으로 썼던 그는 사랑을 믿었던 것인가.

3.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속에는 연민이 있다. 사랑에 다가서는 그 무엇이 있다. 책 속에도 현실에도 있다. 어느 문을 열더라도 그리로 통할 것이다. 삶을 놓치려하지 않는 안간힘들. 안타까움들. 그런 것들을 사랑이라 불러도 될까.

4. 간간이 나오는 짚시의 삶. 몰아서 폐기시키는 삶이 아니라, 자족과 명랑의 삶, 그리고 그 시공간에 대한 그리움은 또 다시 그려져야 할 것. 이름도 묻지 않고 학교도 묻지 않고, 직업도 묻지 않고 만남의 질로만 서로를 평가하는 관계들. 가능하지 않다고 하는 것들을 만들어가는 재미.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나이와 관계없는 양식. 책의 즙을 짜내는 일을 하는 주인공을 통해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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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유유출판사 저작 가운데 우연히 눈길에 들어온 책이다. 단단한 과학공부: 셋째 장 “인간” 편을 읽었다. 스트레스와 인간에 대해 서술해놓았는데, 아무것도 아닌 수긍가는 것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호르몬, 혈액, 뇌, 근육, 당 등등이 자연스럽게 통합되면서 서로 살아있는 앎이 된다. 얕지도 않고 깊지도 않은 평이함의 놀라움이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통찰로 이끄는 재주가 신통방통하시다.

1. 지식은 많지만 통찰이 부족한 시대이다. 알아도 아는 것이 없는 시대이다. 앎은 연결되지 않는다. 앎은 다른 앎들을 끌어안지 못한다. 김명남 과학전문 번역가가 서두에 이야기하듯 쉬운 앎은 없다. 하지만 처음이 수월하다면 어려운 것보다 천배 백배 낫다. 그것을 바탕으로 되돌아보면서 가면 한층 수월하고, 앎에 응집력이 붙을 것이다. 다른 앎에 가지를 뻗으면서...

2.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어깨에 지고, 입에 달고, 마음속에 담고 살아간다. 고혈압, 대사 증후근 등은 모두 스트레스의 장난이라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느끼면 뇌는 여러가지 호르몬을 방출시키는데, 그중 하나에 식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통증을 잊게 하고 기억력을 높이기도 한다. 물론 과도한 스트레스는 반대 효과를 낳는다. 수면은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수면이 부족하면 줄어야 할 호르몬은 줄지 않고 많아야 할 호르몬은 부족해진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 큰 부담이 된다. 어쨌든 스트레스를 완전히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며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인간 편, 소목차 요약내용들

3. 여러 일들 사이, 추위를 핑계로 움직임이 부족했다보다. 짬을 내 걷다보니, 봄꽃도 그리고 싶은 것도, 읽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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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고, 마약하고, 훔치고, 매춘한다. 이때 여가는 보상이 아니라 사실상 도피다./여가로 도피하면 현실세계에서 떨어져 나간다/중독기제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혀실 세계로부터 고립된다. 당연히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없다. 더 이상 사회적 존재가 아니다. 50

흥분은 지겨운 일상에 열정을 불어넣는다/여가흥분은 우리 삶의 균형 장치다./고통이 있기 때문에 여가가 즐겁고, 수고가 있기 때문에 휴식이 달콤하다. 이제 흥분을 즐겨야 한다 53

볕뉘

0. 장시간 노동, 일 관련 책들을 읽다가 시간편집자라는 제목에 이끌렸다. 무엇인가 시간을 맛나게 우려내는 기술들에 대한 솔깃한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 했다. 이왕이면 역사의 맥락을 짚어준다면 하고 말이다.

1. 안타깝게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없었다. 사물의 시간을 밝혀내는 시인들. 시간을 꼼지락거리는 사람들. 애써 고독을 찾아 시간의 결들을 나누어보는 사람들. 짓거나 그리거나 만들거나 새기는 사람들. 멍한 시간들, 공백에 가까운 빈 시간의 틈을 칠해보는 잔기술들. 그 문턱을 넘어본 사람들이 그 문을 드나들 수 있다.

2. 장시간 노동의 그늘은 휴식의 질도 형편이 없다. 늘어지거나 늘어지게 쉬거나, 쉽게 손에 쥐거나 욕망을 채우는 것을 쓰고 버리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사회여 멍때리는 시간을 다오. 기본소득이 아니라도 좋다. 멍때리는 기본시간을 다오. 물론 다 같은 얘기지만, 맛있는 시간을 다오.

3. 시간을 맛보려면 감각을 잘게 나누어야 한다. 그 음과 맛과 멋을 쓰는 것들의 미묘함으로 다가서야 한다. 초침의 재깍거리는 소리 틈으로 비추는 달빛의 공명도 들어야 한다. 단맛 주위로 쓴맛을 묘하게 스며들어 돋보이는 맛을 느껴보기도 해야 한다. 삶의 이력이 배인 목소리의 성체를 감별해내야 한다. 오감 채우는 소리다.

4. 다가서는 시간들. 줄줄이 앞서서 대기하는 책들. 안타깝게도 오늘은 아니에요. 뒤로 가세요. 저만큼... ...사물들에서 시간을 뺏을 줄 아는 사람들이 어쩌면 시간의 달콤함을 빼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아닐까. 신성‘일‘, 이주‘일‘을 비울 수 없는 휴가. 세븐일레븐(7to11). 우리는 너무 가난하다. 맛있는 시간을 먹어본 경험이 부족한 우리의 나날이 가난하다. 시간이 빈한하다. 비난하다.

5. 별하나라고 얕보지 마세요. 읽을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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