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과 상체에 대한 관심.

1.

내몸은 하체가 비교적 고르게 발달한 반면 상체는 왜소할 정도이다. 한 십년 제대로 운동하지 않고, 지내다 보니, 근력마저 의심스러울 정도가 되고. 유연성마저 심히 걱정될 수준이 되었다. 몸관리 절대 부족, 체력이 바닥에 드러나 모임에서도 약한 모습~ . 졸고 또 졸고... .꾸벅.

2.

가벼운 맨손운동이지만, 몸에 대한 목표를 하나 더 보탠다. 팔굽혀펴기 쉬지 않고 100회, 한 이주일 정도 오늘아침은 40회까지 늘었다. 20회를 간신히 하다. 졸리운 시간 15회 3세트, 20회 매일 반복을 하니 효과가 만점이다. 뻐근한 근육통도 줄어들고... ... 강강약, 강약...휴식의 리듬을 몸은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3.

돌이켜보면 몸에 대한 관심이 책읽는 습관과 비슷하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2번이상 본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하다. 최근에 들어서야 바를 정자 3회, 4회가 그어지는 것은 나에겐 경이적인 일이다. 한가지 책 한권을 10번이상 본다는 것은 대단한 정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깊이도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한다. 얕음에 대한 돌이킴으로 독서와 몸을 시험대에 올려본다.  맘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

 

4.

6월말까지 팔굽혀펴기 100회, 재독 5회이상한 책이 나올 수 있을까? 쉬운 책부터 목표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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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멧새가 사무실에 날아들었다. 푸드득 소리에... 창틀에 앉아 노닌다. 인기척에도 별로 연연해 하지 않는 듯.  잠시 후 다가서자. 그리 위협감은 느끼지 않았는지? 날아가려 한다. 유리창으로... 해하는 마음은 없었기에 ..손으로 감싸안을 수 있게 된다.  따듯한 온기~  눈맞춤을 하고...창문밖으로 날려보낸다. 눈빛이 참 온순하다.

2.

어제도 변함없이 저녁약속에 식구들, 지인과 고기를 배부르게 먹고(점심두..) 또 막창먹으러 간다.

지인의 둘째 소식에 반갑기 그지 없다. 얼굴에 희색.....

3.

옮겨놓은 메모를 보고 흔적을 남겨려다 멤돈다. 손끝에서...생각이 멤돈다. 이만.....멈추어 그친다.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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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빌어 책을 보고 있다. 철학의 역사는 그림만 보고 있는데두 시간이 꽤 걸린다. A반 필라소피는 겉보기만큼 재미없다. 비트겐슈타인은 서울 집안 행사와, 5/30일 여의도 한강공원 10키로 경기를 참여하는 중간 짬이나서 지하철에서 오가며 다 훑어보았다.  비교적 삶과 <<논고>>와 <<탐구>>에 대한 평이한 설명때문에 그림이론과 언어게임이론에 대한 윤곽을 보았다는 것이 바쁜 주말 일정 가운데 혜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천재성와 삶의 괴리는 너무 진한 엘리트 의식때문은 아니었을까?  혼자 읽다가 생각이 든다. 

마감기일 넘기지 말고 도서관에 갖다 줘야지? 매번 연체...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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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계] ... 혼자생각!



1.

국가라는 것?

만들어논 시스템 때문에 세상을 제대로 판단하지도 예견하지도 못하는 우둔함을 가졌다. 역동적인 관계나 비전에 대한 수준도 늘 늦거나 쳐지거나 애초 담론을 생산하기에는 글러먹었는지도 모른다. 교육계획이나 삶에 대한 비전의 제시를 바라는 것조차 멍청한 짓이다. 국가가 무얼해주겠는가? 끝물에 생색내기에 불과할 뿐. 국가라는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지 모르겠다. 예측능력과 삶의 변화추이에 대해 준비하거나 기획하는 것이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있을까? 자본주의 와중에 살아남는 법? 국제정세 중에 우리가 지킬 원칙들?
10년뒤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인생은 달라질 것이라구. 정말 달라진다구. 하지만 국가가 해줄 것은 생각보다 없다. 당신의 후미진 생각의 끈이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뿐, 당신께 해답을 주리라 생각조차 말아라.


2.

멀뚱멀뚱한 성격이 싫다.(이제는 그러려니 하구. 나름대로 매력이라고 까지 ~~ㅎㅎ) 잔정이나 잔잔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어쩌면 사치였다고 합리화하기에 익숙했던 것은 아닐까?

세밀하고 사교적이고 애정넘치고, 관심도 깊고 여자로서 시선은 아름답다. 하지만 운전습관만큼, 위에서 보려는 연습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분석적이고 냉랭한 남자들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남녀를 떠나 친밀하고 대등한 관계는 무엇일까? 무수한 계모임이나 조직의 이름이 붙는 단체들과 나와 관계는 어떠한 것일까? 부부사이도, 부모와 자식사이도 그냥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나,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은 조금은 금해야하지 않을까?

‘사랑’이라는 종교는 아편보다 더 무섭다. 끝나면 찾고, 끝나면 찾고 지칠 줄 모르는 신기루를 따라 찾아가는 그 무엇을 아닐까? ‘사랑’이라는 것을 빌미로 모든 것을 합리화하지 말자.

어떤 사람이 좋아서, 어떤 모임이나 단체가 좋아서... 정말 사랑해서 들어왔다고...그런데 변했다고... ... 단체나 모임은 어쩌면 자신의 생각과 ‘사랑’의 투영물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투영물이 되어서는 않된다.

3.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머리 속의 재단을 버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단순화시켜보면 어떨까? 이성이나 냉철함을 모두 버리고 감정이나 감성의 교류라고 전제하면 어떨까? ‘가’님과 ‘나’님은 이런 감성이나 감정의 교류가 얼마나 있었을까? 감성이나 감정의 나이테가 얼마나 있었을까?

대물림은 나의 애정도 모르고, 갖은 냉대만 준 것은 아닌가? ‘사랑’만큼 아픔만 남은 것은 아닌가? 모임이라는 것이 한 때 좋은 추억거리로만 남는 무기물일까? 각자의 유리문을 두고 대물림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파란색으로, 분홍색으로, 초록색으로 칠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렇게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을지도 모른다. 지나친 애착이 되고, 그 때문에 그 영역에서 튀는 빨간색은 문제로 비출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대물림은 언제나 백지로 봐 두면 어떨까? 대물림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거리를 두고 내가 주는 감성만큼, 감정만큼 받을 수 있음. 어느 한 사람을 통해 받을 수 있다면 거기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성별의 차이를 떠나 나이를 떠나 ‘주고-받을’수 있는 그 무엇에서 시작할 수 없는 것일까?

대물림 공간에서 찬이와 윤이와 민, 그리고 아내에게 ‘주고-받을’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집안에서 가족으로 아이들이 아니라 대물림에서 만들 수 있는 나이테는 무엇일까?(주는데 몽매아인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고은’이와 이 삼촌과의 모습은 거듭날 수 있을까?

4.

비오는 날 벌쭘한 마당 혼자생각입니다. 과유불급, 연령성별거리에 상관없이 조금은 떨어져 ‘주고-받기’ 연습. 뭉클하고 애틋한 마음들이 켜켜로 쌓였으면 하는 바램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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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든스의 사적영역, 친밀성의 구조변동이 내내 맘에 남아,

강릉 상가에 다녀오면서 모임의 잘되고 못됨이 내부 인간관계에 연유하는 것이 많음. 그 문제점에 대해 논의가 끊이지 않아 슬쩍, 이 생각을 빌려와본다.

모임내 개인과 개인과 관계, 열정적인 좋아함은 남녀의 문제뿐만이 아니겠으나, 모임이나 사람에 푹 빠져 있음은 상황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런 연유로 얼마 시간이 지나, 사람에 실망하는 경우도 있고 그것인 몇차례 인과관계를 통해 모임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주는 경우가 많다고 하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정에서 그 문제점의 한가운데는 자신이 머리속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과다하게 투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생각을 과다하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선후배, 의존적 경향을 강함은 일상의 주고 받음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경우가 많지 않음이겠다.

모임과 모임의 관계도 이론상의 주장만 있을 뿐, 감정이나 감성상의 주고받음 풍부함은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은 아닐까? 맹목적이지 않고 모임에 대한 이성적 판단은 유보하더라도 끊임없는 주고 받음의 관계를 일상생활의 민주화, 풍부함, 개인간의 풍부함으로 빌려올 수 있을까?

주고 받는 것, 특히 감성의 주고 받음없이 관계를 지속?해온 자신을 되돌아본다. 어쩌면 만난 사람들을 어설프게 그냥 지나치는 것으로 만난지 모르겠다. 단체에 대해도 준 것도 없고 정서상의 교류도 없었던 것은 아닌가? 파리한 회색톤의 냉랭함만 오고가고 했던 것은 아닐까?

어설픈 자신에 대해 돌아본다. 15년된 모임에 대해 한번 되새김해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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