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바라보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

- 조정권


풀밭에 떨어지면
풀들과 친해지는 물방울같이
그대와 나는 친해졌나니
머언 산 바라보며
우리는 노오란 저녁해를 서로 나누어 가졌나니

오늘 먼 산 바라보며
내가 찾아가는 곳은 그대의 무덤
빈 하늘 가득히 비가 몰려와
눈알을 매웁게 하나니

  이 영화를 세 번 봤다. 처음 볼 때는 잭(제이크 질렌홀 분)과 에니스(히스 레저 분)의 관계가 불편했고 두 남자간의 감정이 낯설었다. 두 번째 볼 때는 브로크백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두 ‘남자’가 아니라 두 ‘인간’의 사랑이 보였다. 히스 레저의 비보를 전해 듣고 세 번째로 보게 된 브로크백 마운틴은 위의 시처럼 빈 여백 가득히 아픔이 몰려와 눈알을 매웁게 했다.

 60년대, 8월의 브로크백 마운틴. 양떼 방목장에서 함께 일하게 된 잭과 에니스는 차츰 마음을 터놓는 우정을 넘어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다정하고 활달한 잭에 비해 속을 잘 내비치지 않고 과묵한 에니스. 각기 다른 성품의 두 사람은 짧은 여름 동안의 애틋한 추억과 미묘한 감정을 뒤로 한 채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평범한 일상을 구가하던 두 사람. 4년 만에 잭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엽서가 도착하고 에니스는 잭을 보자마자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남을 느낀다. 그러나 단 둘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픈 잭에 비해 에니스는 이미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이후로 잭은 일 년에 한두 번, 14시간씩 트럭을 몰고 에니스에게 달려오지만, 두 사람의 만남을 묵묵히 받아주는 곳은 브로크백 마운틴뿐이다.

 길고긴 기다림 끝에 잭은 지쳐가고 에니스도 그로 인해 힘들어 하지만 두 사람의 뚜렷하고 진실한 감정에 비해 앞날은 불투명하고 가파르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에니스에게 ‘수취인 사망’이라는 엽서가 반송되어 오고 에니스는 잭의 갑작스럽고 비참한 죽음을 전해 듣는다. 유해의 반이 묻혀 있다는 고향집을 방문한 에니스. 잭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방의 옷장 구석에서 두 사람이 브로크백에서 헤어지던 날, 마지막으로 입고 있었던 피 묻은 셔츠 두 장을 발견한다.

 영화 초반에 내 셔츠가 없어졌다는 에니스의 말에 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나도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이었다. 덕분에 끝나갈 즈음 옷장 구석에서 찾은 셔츠 두 장은 그 슬픔을 배가시켰다. 검게 말라버린 혈흔은 20년이란 긴 세월동안 에니스와 브로크백을 그리워하던 잭의 아픔을 보여주는 듯 했다. 에니스는 그토록 다감하고 섬세했던 잭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 "Jack, I swear."라고 말한다. 떠나기 싫다고, 떠나지 말라고 할 수 없기에 혼자 주먹으로 벽을 때리며 오열하던 에니스다웠다.

 영화는 뜨거운 고백 대신 침묵을 고수하며, 시정의 소란함을 여백으로 처리한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서 잭과 에니스는 누구의 시선에도 신경 쓸 필요 없이 마음껏 교감하고 사랑한다. 하늘과 가까운 브로크백은 그들의 사랑을 받아주지만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 그들의 사랑은 비난당한다. 뜨거운 열정과 사무치는 그리움은 인간 대 인간이 아닌 남자 대 여자일 때, 관습이라는 기준에 의해 노멀함으로 인정받는다. 사람들은 사랑의 불가해함을 알면서도 불평등함에 대해서는 잊고 산다. 숨어 있는 소수의 진실에 대해서는 무심해지기 마련이고 그것이 브로크백 아래의 현실이다.

 고인이 된 히스 레저는 곧 에니스였을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기쁨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슬픔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듯 오랫동안 약물에 의지해왔다는 그는 아마도 남몰래 웃거나 울고 있었나 보다. 다음달 2월 22일은 이은주의 기일이고 히스 레저는 지난 1월 22일에 죽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배우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이 참 안타깝고 쓸쓸하다. 내향적이고 섬세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은 화려한 배우로 스크린에 설 때 마음을 다칠 일도 잦은가 보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히스 레저의 죽음으로 사랑의 이면을 넘어 생의 이면까지 담게 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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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25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 읽었을 때 그냥 단순히 약간은 노골적인 동성애를 처음 만나고 흡...했다가 마지막 옷장에서 발견되는 포개져 걸려 있는 셔츠 두벌의 묘사를 읽으면서 아..했었어요..

깐따삐야 2008-01-25 22:06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메피님 페이퍼를 읽고 이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저도 불편한 동성애 영화, 그 이상을 생각하기 힘들었는데 세 번을 보고나니 그제서야 아... 합니다.^^

Mephistopheles 2008-01-25 22:40   좋아요 0 | URL
단편이 모여 있는 에나 프루의 책도 좋았어요..읽어보셨나요??

깐따삐야 2008-01-25 22:47   좋아요 0 | URL
아뇨? 브로크백 마운틴도 책으론 아직 못 읽었어요...

Mephistopheles 2008-01-26 00:49   좋아요 0 | URL
브로크백 마운틴...이 제가 말한 에나 프루의 단편집 묶음 제일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편이거든요. 책은 황량하고 거칠거칠하지만 좋았다는..^^

깐따삐야 2008-01-26 00:5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읽어보고파요!
표현이 잼나요. 황량하고 거칠거칠하지만 좋다...ㅋㅋ

순오기 2008-01-25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못 봤는데 깐따님의 후기로 촉촉히 젖어듭니다.
언제 빌려다 봐야겠어요.

깐따삐야 2008-01-25 22:08   좋아요 0 | URL
'동성애' 중심으로 보지 마시구 '꽃미남' 중심으로 보시면 더 즐거우실 거에요. 저도 처음에 그랬거든요.^^

2008-01-26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6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01-26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님의 영화 리뷰 너무 좋아요. 이 영화 보기 직전에 엄청 화나는 일이 있었어요. 근데 영화보다가 다 잊을만큼 푹 빠졌었죠. 작가의 동명소설 책에 대한 리뷰로 하이드님의 리뷰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지금은 리뷰를 다 지우셔서 제목을 확인할 길이 없네요. 아마도 제 기억에 '외로움도 침범할 수 없는 고단함'... 이었을 거예요. 저도 나중에 소설 읽어볼 생각이에요. ^^

깐따삐야 2008-01-26 01:32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처음엔 좀 멍했구요. 두 번째 볼 때부터 좋았던 것 같아요.^^
메피님도 권해 주시고, 마노아님도 좋다 하시니 책을 꼬옥 읽어봐야겠네요!

turnleft 2008-01-26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스 레저의 죽음에 가슴이 촉촉해진 분들이 많으시군요.
리뷰 멋지게 잘 쓰셨어요. 저는 영화 보고 그저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 것도 쓰지 못했답니다.

깐따삐야 2008-01-26 23:56   좋아요 0 | URL
히스 레저의 사망 소식을 모르고 있었는데 메피님 페이퍼를 읽고 알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떠올렸고 다시 보게 됐죠. 침묵과 여백이 많은 영화라서 보고나서 먹먹해지는 기분, 알 것 같아요.^^

라로 2008-01-26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이 오늘 캠프에서 돌아왔어요,,,
남편과 한마디 말도 나누지 못하다가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어요,,,각자 아이들을 옆에 끼고
주문을 한뒤 마주보는데
남편의 첫마디,,,"알지? 죽었데,,,"
제가 그랬어요,,,"아직도 안믿어져,,,"

브로크백 마운틴,,,제겐 예사롭지 않은 영화였어요,,,책은 더 그러했구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깐따삐야 2008-01-26 23:57   좋아요 0 | URL
제 또래인데 참 안타깝죠...
그나저나 배우의 죽음에 관심을 갖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나비님네 부부의 모습이 역시 부럽습니당.^^;
 



  이 영화가 개봉되었던 때가 2002년이었다. 1999. 2000. 2001. 2002... 헤아려보니 복학해서 3학년을 다니고 있었던 시기였다. 학내 영화 동아리에서 해마다 지하 대강의실이나 잔디밭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서 무료로 영화를 보여주곤 했었는데 그 기회를 통해 봤던 영화가 일본 영화, 'Shall we dance?', 그리고 '뷰티풀 마인드'였다.

 'Shall we dance?'는 휴학 전, 친하게 붙어 다녔던 친구의 제안으로 캄캄한 대강의실에 나란히 앉아 함께 보았던 영화였다. 예나 지금이나 주변 사람 챙기는 데 영 서툴고 무심하다보니 이젠 서로 연락하기도 멋쩍어진 사이가 되었지만, (하나도 틀리지 않고) 내가 조금 더 많이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내가 그녀보다 많이 어렸다는 자각과 함께 그녀는 내 곁에 없었다. 우리가 공유했던 비밀과 나눠가졌던 추억에 비하면 너무나도 싱겁고 아무렇지도 않게, 별로 길지도 않은 세월은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코믹한 부분이 많은 영화였고 홀홀거리던 웃음소리도 여전히 기억하는데, 그새 2008년하고도 1월이란다.

 2002년도. 영화를 거의 중간까지 봤을 때 스크린 화면이 꺼지면서 죄송하지만 돌아가셔야 할 것 같다는 안내가 있었고, 이후로 한참 동안 영화를 보았다고도 보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상태로 지내왔었다. 못다본 뒷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고 한 가지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리얼한 뷰티풀 마인드를 실감하고도 싶어 이 해묵은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사실 한 두 가지 눈에 띌만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내가 혹시 천재는 아닐까, 라는 환상 또는 망상을 갖게 되지 않을까. 물론 좀 크면 대개는 그러다 말곤 한다. 나는 교사가 되고 난 다음보다 유치하고 멋모르던 학생 시절에 훨씬 더 거만하고 폐쇄적이었으니까.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어찌나 게걸스럽고, 둥글둥글하며, 포기도 쉬워졌는지!

 현실 속에서는 지나치리만큼 직설적이고 남들이 잘 모르는 것을 발견했을 때 희열을 느끼는 견고한 영역이 있는 반면, 상상 속에서는 개인적이거나 사소한 일을 넘어서 뭔가 비밀스럽고 중대한 임무를 맡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를 꿈꾸는 존 내쉬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가진 망상은 'real fantasy to be alive'정도로 여기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생존하기 위해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 생존하기 위해 미래에 집착하는 사람, 뭐든 지나치면 병적이다, 라는 말로 사람 주변에 테두리를 치기도 하지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일상을 구가하는 사람은 우리 모두가 세대를 건너서 기억해낼만한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못하고 가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까지 저당 잡힐 정도로 뭔가에 집착하고 있다면, 인간은 스스로 가진 정신력을 초월하여 무언가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세월 앞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초라한 육신을 타고났지만 인간의 정신만큼은 언제나 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같다.

 너무 느슨하게 살고 있는 것 같고 하루를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이 무료하고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많은 시기다. 그 동안 묶어두었던 A4 크기의 서류를 활활 태워버리고 밀집모자를 눌러쓰고 커피가 맛있는 동네에 가서 거짓 웃음 짓지 않으며 거만하고, 자폐적으로, 하지만 화기애애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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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1-24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1 : 이 영화장면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대학시절 존 내쉬가 술집에서 미녀를 놓고 데이트에 대한 상관관계를 정의 하면서 기막힌 수학이론을 만드는 장면이였어요..ㅋㅋ
태그2 : 러셀 크로우는 3:10 유투마와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만나 볼 수 있답니다. 똘끼는 있어도 연기만큼은 뭐 대단하죠..(검색해보니 취미가...정신적으로 불안한 소 보살피기랍니다.)
태그3 : 제니퍼 코넬리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녀의 미모가 가장 빛을 발휘한 영화는 "원스어폰어타임인아메리카"라고 생각됩니다. 그나마 최근에 본 그녀의 영화가 "모래와 안개의 집"이였는데 내용은 비극인데 배역은 참 좋았어요.

깐따삐야 2008-01-24 03:04   좋아요 0 | URL
1. ㅋㅋ 맞아요. 러셀 크로우 표정이 떠올라요!
2. 취미가 참 독특하네요. 꽃등심만 찾는 저보다는 휴머니스트네요.
3. Once upon a time in America는 지난번 백문백답에서도 밝혔지만 어리고 아름다운 제니퍼 코넬리를 볼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정말 그 자체로 멋진 영화죠. 시인 기형도가 그 영화를 아주 좋아했단 말을 듣고 되게 반가웠는데 메피님도 기억하시니 더더 반갑구만요. 제니퍼 코넬리는 귀티 나게 예쁘고, 정제된 연기를 해요. 참 좋아요.^^

Mephistopheles 2008-01-24 03:06   좋아요 0 | URL
그녀의 남편도 꽤 분위기 있는 배우랍죠.
"윔블던" 남자 주인공..기사 윌리암에서 사기꾼 시인..

깐따삐야 2008-01-24 03: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배우가 바로 뷰티풀 마인드에서 존 내쉬의 망상 속 친구로 등장했던 '폴 베타니'잖아요.
아마 이 영화 속에서 서로 눈이 반짝, 맞았나 보아요. 쿡쿡.^^

라로 2008-01-24 04:12   좋아요 0 | URL
다빈치코드에서도 나왔었죠!!!ㅎㅎ
그가 지금 준비중인 차기작이 다 급호감이라죠~.ㅎㅎ
특히 완전 제목때문에,,,ㅎㅎ
암튼
러셀크로에서 제니퍼얘기하다가 남편야그로 급전환~.ㅎㅎ
근데 전 러셀크로 비호감이라서 그의 연기는 인정하지만
암튼 그래요~,,,얼굴 보는거도 굉장히 거북해해서리
영화에 몰입이 첨엔 안된다니까요!!ㅜ

Mephistopheles 2008-01-24 09:23   좋아요 0 | URL
러셀 크로우가 감우성의 10%만 닮았어도...

깐따삐야 2008-01-24 16:07   좋아요 0 | URL
나비님- 러셀 크로우 얼굴 보는 게 거북하세요? ㅋㅋ 무대뽀처럼 생겨서 그런가. 하긴 나비님 남편분은 말씀 들어보면 되게 섬세하고 점잖으신 것 같아요. 러셀 크로우와는 전혀 상반되는 타입이랄까. :)

메피님- 저는 그래도 조형기 아저씨가 좋아요. 꽃등심 사주실 게 분명한 메피님은 더 좋구요. 홍홍.^^

미미달 2008-01-2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뷰티풀마인드보고 너무 똑똑해서도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ㅎㅎ

깐따삐야 2008-01-24 16:08   좋아요 0 | URL
미미달님의 댓글은 항상 저의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아요. ㅋㅋ

순오기 2008-01-24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뷰티블 마인드에서 난, 그 아내에 감동받았는데도 여전히 현모(?)악처!
저렇게 수학을 잘 하는 인간들의 뇌구조는 뭐가 다를까...궁금했던 영화.^^

깐따삐야 2008-01-24 16:19   좋아요 0 | URL
저희 오빠도 이 영화를 보고나서 제니퍼 코넬리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 제니퍼 코넬리가 누군지도 모르는 올케랑 결혼했다는. 인생은 참 아이러니해요.^^
저도 수학 잘하는 사람들 보면 신기할 따름이에요.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때려주고 싶어요. ㅋㅋ

프레이야 2008-01-2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적-존내쉬'로 나온 애드 해리스 역할이 뚜둥 ~~

깐따삐야 2008-01-24 16:41   좋아요 0 | URL
오! 애드 해리스의 차분한 칼있쑤마도 역시 대단하지요.^^

다락방 2008-01-2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니퍼 코넬리는 그 얼굴과 몸매 때문에 [로켓티어],[백마타고 휘파람불고] 막 이런 영화에만 나왔었는데(그래도 로켓티어는 무쟈게 재밌었어요) 이제 뭔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 제가 다 뿌듯했어요. 러셀 크로우는 그 뭣이냐, [LA컨피덴셜]에서만 좋았어요, 전.

[뷰티플 마인드]는 보고나서 약간 실망요. 전 그의 망상이 사실이길 바랐거든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는것이 사실은 진실이기를 말이죠.

아, 제니퍼 코넬리를 잊을 수 없는 아주 강한 영화가 생각났어요. [페노미나]. 그 영화에서 그녀는 곤충과 교감을 나누죠.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의 굉장히 인상깊은 영화였어요!!

깐따삐야 2008-01-25 09:36   좋아요 0 | URL
저는 러셀 크로우 좋아요. 어디서 막 야유성이 들리는 듯. ㅋㅋ
그래요. 식스센스의 브루스 윌리스마냥 딱하더군요.

페노미나! 다락방님이 상기시켜 주시네요. 오래전에 주말의 명화로 봤었는데 말이죠.^^

 



 지상에서 영원으로 中

 친구를 먼저 보낸 프루잇(몽고메리 클리프트 분)이 눈물을 흘리며 나팔을 분다.

 울면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내 안의 절규가 멜로디를 타고 노래로 화하는, 슬픔의 카타르시스에 대해.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극찬한 바 있는 미국 배우, 게리 쿠퍼.

 190이 넘는 늘씬한 키에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맑은 눈빛은 참 압권이더라마는, "A Farewell to Arms"의 그는 상대 배우인 헬렌 헤이스의 강렬한 아우라에 비해 다소 느슨했달까.

 고전 미남들은 군더더기가 없어 보인다. 겉멋도, 변명도, 꼼수도 없는 외양과 연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so authe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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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17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군더더기가 없어 보인다. 겉멋도, 변명도, 꼼수도 없는 외양..."
당신은 참 쓸만한 보기 드문 좋은 여성이라는 느낌이 드는 아까운 분!
부디 행복하시길. 제가 조금만 더, 십년 안쪽으로만 님보다 늙었어도...

깐따삐야 2008-01-17 03:28   좋아요 0 | URL
어이쿠나. 분명 과찬이신데 신새벽부터 기분은 참 좋습니다.^^;
뉘신지는 모르겠으나 고로코롬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해용.

전호인 2008-01-1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리쿠퍼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오금을 지리게 합니다. ㅎㅎ

깐따삐야 2008-01-17 13:19   좋아요 0 | URL
정말 멋지죠? 바라만 보아도 절로 흐뭇해지는 미모에염.^^

Mephistopheles 2008-01-17 23:59   좋아요 0 | URL
순간 떠오른 단어.."요실금"

깐따삐야 2008-01-18 01:48   좋아요 0 | URL
전호인님 연세가 벌써 그렇게 되셨나요? 글쿠낭.

비로그인 2008-01-17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 미남들의 공통점은 (물론, 다 그렇지 않겠지만) 현대 미남들에게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교양과 품위가 있죠.

깐따삐야 2008-01-17 13: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요즘 배우들은 고전 미남 배우들의 기품을 결코 따라올 수 없어요!


웽스북스 2008-01-17 13:24   좋아요 0 | URL
감우성은 따라와요 (막이런다 -_- ㅋㅋ)

깐따삐야 2008-01-17 13:29   좋아요 0 | URL
감우성은 지적이고, 수수하고, 담백해서 물리지(?)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래두 난 조형기 아저씨가 더 좋은 건 왜 그럴까요. -_-

웽스북스 2008-01-17 23:31   좋아요 0 | URL
조형기라니 깐따삐야님도 취향 만만치 않아욥!

Mephistopheles 2008-01-17 23:58   좋아요 0 | URL
혹시 영어발음에 홀딱 빠진 건 아닐까요?
써쳐필링 컴인온어게인 나우덴원더린더에브리띵아이덴

깐따삐야 2008-01-18 01:50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이젠 멋있는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이 좋은가 봐요.^^ 난 형기 아저씨랑 순대국밥 먹으며 짜증나는 사람들 뒷담화를 하고파요. 가끔씩.

메피님- ㅋㅋㅋㅋ 아우, 막 떠올라요. 떠올라.

Mephistopheles 2008-01-17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젊은이의 양지가 더 멋집니다...물론 저 영화에서도 멋져보이긴 하지만..
게리쿠퍼의 경우..."하이 눈"을 봐야 해요...그 영화에서 그레이스 켈리와 정말 끝내줬었죠..^^

깐따삐야 2008-01-17 13:26   좋아요 0 | URL
이궁~ 메피님 때문에 아카데미 컬렉션 박스를 하나 더 주문해야 할 것 같아요. 그때 얘기 들은 후로 '젊은이의 양지' 보고파서 싱숭생숭 합니당.
그레이스 켈리라면 모나코 왕비가 되었다는! 오... 게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라니 정말 눈부실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8-01-17 14:05   좋아요 0 | URL
별장에서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었다던 그 '그레이스 켈리'
어째서 왕비들은(외국인이었다가 결혼으로 귀화 된) 모두 교통사고로
죽어버릴까요? (웃음)

깐따삐야 2008-01-17 14:12   좋아요 0 | URL
그런 우연의 일치들이 있었군요! 왜 그럴까나. 또 마구 호기심이 생기넹.
웬디수사관한테 조사 좀 해보라구 해야겠네요.

비로그인 2008-01-17 17:12   좋아요 0 | URL
글쎄, 우연일까요. (웃음)

Mephistopheles 2008-01-17 23:59   좋아요 0 | URL
항간의 소문에는 그녀들의 "미"가 세월에 묻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하더군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깐따삐야 2008-01-18 01:51   좋아요 0 | URL
오... 너무 낭만적이다.☆

무스탕 2008-01-1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젊은이들이 저런 고전 미남을 보고 느끼하다고 할지 몰라도 멋진건 사실이에요!!
전 그레고리 펙도 좋아요 ☆.☆

깐따삐야 2008-01-17 14:13   좋아요 0 | URL
가볍고 느끼한 건 요즘 젊은 것들이 더 하죠.
저도 그레고리 펙 좋아하는데! ☆.♡
 


  바람을 쐬고 돌아왔습니다. 가장 춥다는 날짜에 맞추어. 아리도록 볼을 할퀴고 지나가는 겨울바람을 맞고 싶었습니다. 계절 한 가운데에 서 있다보면 나는 아주 작은 존재이면서, 나보다 훨씬 큰 무언가가, 나를 품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훈훈한 방안에서 키보드 위의 열기만을 느끼다가 밖으로 나가보니, 계절은 겨울을 피워내는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그 열기를 따라 더 멀리 떠나지 않은 것이 아쉬웠어요.

 돌아와서 영화 '행복'을 보았습니다. 겨울이 오면 자연스레 허진호 감독의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까만 생머리의 심은하, 빨간 머플러의 이영애가 흰 눈을 배경으로, 백설공주의 선명한 이미지처럼 상상 속의 시야를 사로잡습니다. 영화 행복에는 얼음장 밑을 흐르는 깨끗한 냇물처럼, 투명한 살갗 밑으로 실핏줄이 다 비쳐 보일 정도로 청초한 임수정이 보였습니다. 아담하고 갸냘픈 그녀는 언뜻, 소녀의 실루엣을 하고 있지만 눈빛과 언어 만큼은 사랑을 알고, 아픔을 아는 숙녀의 그것이었습니다.

 한줌 안개처럼 맑고 차분한 은희씨(임수정 분)는 철없는 건달 영수씨(황정민 분)를 기적처럼 살려내더니만 그가 잠든 사이, 신작로를 내달립니다. 40% 밖엔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연약한 폐를 가진 그녀는, 애써 살려놓고 나니 이젠 네가 지겹다는 영수씨를 위해 달리고 또 달립니다. 숨이 차올라 죽기 위해서. 그로부터 떠나주기 위해서. 둥지에서 미끄러진 작은 새처럼 창백하게 파닥이는 그녀의 숨소리를 들으며 아주 오랜만에 조금 울었습니다. 개봉 날짜에 맞추어 영화관을 찾지 않았던 것이 참 다행스러웠어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보단 아예 커피를 엎지르는 편이 나으니까요.

 이타적인 은희씨와 이기적인 영수씨는 서로 다른 타인이면서, 하나 되는 연인이고, 야누스적인 우리 삶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죽음을 항시 목전에 두고도 아파 보이지도, 두려워 보이지도 않는, 상냥하고 친절한 은희씨. 간이 뒤집어지고 나서야 세속놀음의 허무함을 알아버린 철딱서니 명수씨. 8년이란 긴 시간 동안 반쪽짜리 폐와 함께 해온 은희씨는 고통과 죽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데에 익숙합니다. 반면에 희희낙락하던 삶에 갑자기 쳐들어온 간경변이란 병 앞에서 건강했던 명수씨는 어쩔 줄을 모릅니다.

 은희씨는 영수씨가 좋아서 필요하고, 영수씨는 은희씨가 필요해서 좋아합니다. 먼저 상처받는 쪽은 전자고, 나중에 후회하는 쪽은 후자입니다. 상대를 위해 먼저 떠나주는 쪽은 전자고, 누추한 반성과 함께 나중에 돌아오는 쪽은 후자입니다. 은희씨와 영수씨도 이 구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식어가는 손으로 돌아온 그의 손을 잡아줍니다. 누구를 향해서도 쉽사리 어리석다, 바보 같다, 지나쳤다고 비난하지 못하는 건 우리 내면에 은희와 영수라는 두 얼굴이 공존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당신이 정말 좋다고 고백하는 은희씨에게 영수씨는 신기하다는 듯 말합니다. "그런 게 있긴 있구나. 정말..."

 '그런 것'과 마주했을 때, 그것이 비록 개미지옥일지라도, 행복한 함정처럼 빠져드는 건 생과 사를 초월한 본능 같은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 이렇게 묻습니다. 어차피 고통이고 두려움일진대 삶과 죽음 가운데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대답은 무엇이 될까요. 사랑을 택하겠습니다. 그것이 인간 아닐까요. "뽀뽀를 하고 있는데도 왜 뽀뽀가 하고싶지..." 은희씨의 귀여운 대사 속에서 반짝, 하고 빛나는 행복을 봅니다. 비록 찰나의 희망일지라도, 길고 지루한 삶과, 삶 이후의 죽음 가운데서 꺼질듯 타오르는 그것은, 남아있는 40%의 목숨을 바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겁니다.

 영수씨를 향한 은희씨의 마음처럼, 내 40%의 숨결로 상대에게 60%의 생명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면, 그렇듯 나:너 = 4:6이란 비율로 사랑한다면, 어느새 5:5 따위가 중요해지지 않는 상생(相生)의 경지에 다다르지 않을까요. 하지만 사랑이 어려운 것은, 내 안에 영수씨와 은희씨가 6:4의 비율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그게 사람이겠지요. 그냥 사람. 미안함을 알고 고마움을 알면서도, 결국 편안함을 따라가게 되어 있는 평범한 사람. 결국 그를 향한 비난 대신, 나 자신을 비롯한 인간 전반에게 동정을 보내게 됩니다. 오열하는 영수씨의 어깨를 안아주고 싶었던 건 아마도 나 자신을 향한 포옹이겠지요.

'외출'했던 허진호가 '행복'하게 돌아와서 반갑습니다. 잠깐의 실망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이렇듯, 더욱 반가우니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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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6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6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게다예요 2008-01-1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진호의 <외출>에 실망하셨나봐요? 저도 얼마전에 <행복> 봤는데, 전 차라리 <외출>이 더 좋더라고요. <행복>은 허진호식 '느림의 미학'의 완결판 같았어요. 이제는 조금 바꿔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살짝 들더라고요.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허진호스러움이 아직까진 싫진 않은 것도 사실이고요.

깐따삐야 2008-01-16 12:13   좋아요 0 | URL
배용준과 손예진의 조합이 왠지 별로였어요. 처음부터 두 사람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영화 속에서도 영 어색했어요. 반면에 황정민과 임수정은 처음엔 그림이 안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니 탁월한 연기력 때문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잘 녹아들었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저는 허진호식 멜로가 좋고 앞으로도 줄곧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하더라도 계속 좋아할 의향도 있답니다.^^


순오기 2008-01-16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출~~~ㅠㅠ 행복~~~~~^^ 허진호감독도 깐따님도 멋진 외출과 행복으로 돌아온 걸 환영합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풀어내는 솜씨는 정말 맛이 다르네요~~~ 감동이야요! 꾸벅^^

깐따삐야 2008-01-17 00:04   좋아요 0 | URL
저도 순오기님을 환영합니다. 꾸벅.^^
이 영화 좋았어요. 임수정에게 기대를 많이 하게 됩니다.

라로 2008-01-16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박아녜요???깐따님은???ㅎㅎㅎ
농담이구요,,,,음 갑자기 차분해지셨다,,,,ㅎㅎ
님의 리뷰에 78%동의하면서 제가 봤던 행복이 생각나네요.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했어요.
참 신기했어요, 그래서.
깐따님 없으니까(물론 저도 자주 못왔지만)
지니없는 알라딘이야요,,,뭔말이래???ㅎㅎ

저 이제 영화보러가요.
저녁도 하기 싫어서 사먹구 들어오려구요.
이렇게 늦게 나가는 이유는 아이들이 오늘 해야할걸 다 하지 않아서
이제야 나가게 됐어요...저 좀 지독한 엄마 맞긴 한가봐요...ㅎㅎ
암튼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 가지고 올께요.
N군녀석 영화는 보고싶지 않지만 팝콘 먹고 싶어서 간데요,,,ㅎㅎ
이만 총총

깐따삐야 2008-01-17 00:07   좋아요 0 | URL
외박? 갑자기 차분? -_-
지니 없는 알라딘에서 급 뿌듯! ㅋㅋ

영화 보고 외식하는데 지독하다니요. 우리 엄만 할 거 다 해놔도 구박하시던데요. 나비님네 가족은 오늘 저녁, 행복한 시간 보내셨겠죠? 팝콘도 맛나게 먹구요.^^

치니 2008-01-1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외출>도 <행복>도 기대만큼 차오르진 못했었는데...
이 리뷰를 읽으니, 아 이렇게 보아주면 좋았을 것을, 이란 생각이 드네요. ^-^

깐따삐야 2008-01-17 14:08   좋아요 0 | URL
제 리뷰는 제가 읽어봐도 '꿈보다 해몽'인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8-01-1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해지는 '해몽'이에요. 참 좋습니다.^^

깐따삐야 2008-01-18 01:59   좋아요 0 | URL
혜경님의 참하신 리뷰도 좋아요. 저는 쓰다보면 글의 향방을 가늠키가 어려운데 혜경님은 깔끔하고 단정하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
 


기회가 닿으면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는 도시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달에 예매를 했었다.
웅장한 스케일과 노래와 연기 실력이 수준급인 배우들 덕분에 2시간 40분이라는 긴 공연 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외면서도 아쉬웠던 점.
제목은 명성황후인데 명성황후 보다도 내시나 궁녀 등, 주변의 낭인들의 연기와 활약이 더욱 돋보인다는 것.
명성황후는 당시로서는 깨나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황후였지만 극 중에서는 총명하긴 한데 타이틀에 걸맞는 매력과 카리스마는 엿보이지 않았더랬다. 

내가 주목했던 인물은 민비를 사모했던 훈련대장, 홍계훈 장군.
청아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가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는 장군의 역할에 적합, 공연이 끝나고 환호와 박수를 많이 받았다.
(반면에 너무 허무하게 죽은 게 옥의 티였다. 칼솜씨는 시원찮은데 죽는 모습만 비장했달까. 드라마 '대조영'의 걸사비우나 흑수돌이 싸우는 장면을 좀 봐야 돼!)
며느리와 대척하는 흥선대원군의 연기는 매우 좋았다.
그가 고수했던 쇄국정책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고집스런 외양과 목소리로 감탄을 자아냈다.
대원군과 민비가 대립하는 장면을 좀더 긴장감 있게 부각시켰으면 하는 아쉬움.

대형 턴테이블을 이용한 무대로 역동감 있는 연출을 한 점은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의상들이 약간 허술하다 싶었고(인물의 특색을 살리지 못하고 획일화된 느낌),
일장기가 올라가며 일본의 야욕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박수 치는 관객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연기야 좋았다지만 박수 칠 장면이 따로 있지. (관객 중엔 외국인도 있을텐데 대략 민망...)
하지만 홍계훈 장군을 주축으로 한 무예 훈련 장면은 매우 멋있었고 특히 굿 장면은 소름 돋을 정도로 전율이 일었다.
작년에 중국에서 보았던 송성쇼와 비교했을 때,
동작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일사분란함에 있어서는 송성쇼에 못 미치지지만 보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섬세한 멋이 있었다.  

만만한 가격은 아닌데 돈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비운의 왕비라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간간히 위트와 유머를 잘 살려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으나,
제목을 명성황후로 했다면 명성황후를 뚜렷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단 생각이 든다.
클라이막스가 되어야 할 여우 사냥, 황후 시해 장면도 너무 싱거웠다.
너무 단칼에, 한 마디 말도 없이 허무하게 죽어버려서(그것도 옆으로 쓰러지는 것도 아니고 발라당 엎어져서) 실제로 그런 모습으로 죽었는지도 모르지만 좀 어이가 없었다는.
명성황후는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그 누구보다도 집중적으로 주목을 끌었고 마지막에도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공연이 끝나고도 나의 불만은 가시지 않았더랬다.
명성황후 역을 맡았던 이태원이란 배우는 목소리도 아름답고 노래도 정말 잘하는데 연기에 대해선 솔직히 갸우뚱이다.
출중한 가창력으로 부족한 연기력을 메우고 있다는 느낌은 나만 받은 걸까.
 
그래도 기회가 닿는다면 한번쯤 볼만한 뮤지컬이다.
비록 명성에 못 미치는 명성황후였지만 충만한 오감의 유희로 밥을 덜 먹어도 하루 종일 배부른 느낌. 나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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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16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 죽는 장면을 오버스럽게 비장하게 그리는 것도 좀 우습긴 하겠지만,
기대하던 장면이 맥없이 끝나버리면 좀 허무하긴 하죠 ^-^

예체능에 집중하는 주말을 보내셨나봐요
나 심심했어요! ^^

깐따삐야 2008-01-16 13:18   좋아요 0 | URL
발라당 엎어져서 죽는 건 보시기에 좀 그렇더라구요.^^;

나는 이따금 '딴짓'이라는 배터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웬디양님 생각도 했어요! ^^


순오기 2008-01-16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성황후는 못 봤지만, 이문열의 '여우사냥'은 봤지요.ㅠㅠ
뮤지컬은 제겐 여전히 꿈의 무대입니다. 한 5년에 한번이나 보려나~~

깐따삐야 2008-01-17 00:09   좋아요 0 | URL
저는 이문열의 '여우사냥'을 못 봤네요.
저두 아주 큰맘 먹고 본 뮤지컬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