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조각 창비청소년문학 37
황선미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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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깨어나지 못한 시민이 아니라 이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치 세력에 있다는 생각의 전환은 왜 어려운 것일까. - p. 110  
   

 

 말 그대로 뭔가 찝찝했는데 말이 딸려서 표현하기 힘들었던 요소들을 매우 깔끔하게 정의해준 책이다. 전에 녹색평론의 발행인이신 김종철 님의 강의를 잠깐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분의 말씀도 이 책만큼이나 매우 정확하고 시원스러웠다. 아무래도 정치를 하려면 내 우유부단한 성격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정당화와 냉철함이 필요한 듯 하다.

  일단 이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그나마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는 '현재로서는' 민주주의밖에 없는 현실을 바라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보수보다는 진보하려는 목표를 두고, 이 사회가 진보하려면 진보정치세력의 과감함과 인간성 그리고 냉철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경제만 좋으면 다 해결될 줄 아는 개념없는 시민들'만이 문제가 아니라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내버려둔 대책없는 진보정치세력'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이 책에서 말한대로 나는 "사회집단에 의한 정치적 동원의 불완전성 법칙"을 본 적이 있다. 신인들을 받아주는데 매우 인색하며, 몇몇 몰상식한 인간들이 특정한 집단을 이루어 뜬금없이 우릴 불쌍하게 봐주십사하며 징징대는 사회집단 하나 혹은 둘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초록당을 선택했다. 모든 인간들은 자연 속에서 사니까, 더 범위가 넓지 않을까 하는 희망하에. 사실 초록당의 미래도 그렇게 밝은 것만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단점들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일단 5000명의 임원들을 다 채워 정당이라는 식탁 위에 올라간다면 그 단점들이 어떻게 불거질지 눈에 훤히 보인다. 그러나 당장 눈 앞에 보이는 FTA때문에 핵 발전소 설치가 가려지는 게 명백하니, 누군가는 계속적으로 그 문제를 지적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 목적을 위해 편법과 무력을 휘두르는 권력가, 즉 정치인이어야 한다. 대학을 때려치고 나설 각오는 없는 탓에 얌전히 있지만, 이 책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책들도 신문들도 읽어서 정치와 사회에 대해 좀 더 배울 생각이다. 그렇게 내 육감을 더 날카롭게 다듬은 다음에 똑바로 쳐다볼 것이다. 녹색당에 인재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눈에 두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 그 사람이 나를 포함하여 나태하고 나약하고 여러 이유로 인해 정치인 중 엘리트가 될 자격이 없는 주변 인간들때문에 움츠러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정치학에서는 명백한 답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의 경쟁자라 생각하는 다른 진보당은 우상이 돌아옴으로 인해 페이스를 회복했다. 지식은 충분히 있고 시간은 없다. 에너지를 중요한 곳에 집중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잡소리는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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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열매
마모 지음 / 해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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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거부하면서도 내게 안겼고, 내게 매달리면서도 나를 밀어냈지만, 그런 변덕스런 그녀의 태도에도 불안 따윌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늘 더운 날씨와 축축한 공기와 사방에 우거진 수풀과 부서진 헬기의 잔해가 사실인 것처럼, 그곳에서 그녀가 내 것이고, 내가 그녀 것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 같았기 때문이다. -p. 62  
   

 '비쳐보이는 그녀' 이후로 마모님 작품을 오랜만에 접해본다. 무슨 주제로 쓴 책을 봐도 그녀의 소설은 매끄러운 글솜씨를 뽐내며 여타 인터넷 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물론 이 작가분은 동성만을, 특히 레즈비언들만을 주제로 삼아 글을 쓰는 매우 드문 작가라서 비교할 만한 소설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지만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정호의 성공사례'라는 소설을 쓴 동성소설작가와 똑같이 이 분도 극중극을 주제로 잡아서 글을 썼다. 일단 전자는 게이소설이고 내가 읽었던 소설은 레즈소설이니 아까 말했던 대로 비교할 수가 없지만, 정말 짜고 친게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이다. 두 소설 다 일반소설계에 알려질만큼 히트를 쳤으며, 두 작가가 처음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새삼 그 바닥이 얼마나 좁은지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달까. 누가 누구를 베꼈느니 시비를 잡으려는 게 아니라,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해서이다. 어쩌면 둘 다 미묘하게 동성애 분위기를 풍기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속단은 금물이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줄거리소개를 하겠다. 사회부기자를 꿈꾸는 방송기획자 지원 지현과 풋내기 모델 미영은 헬기의 불시착으로 인해 어느 밀림에서 조난당한다. 좋은글귀에 적힌 것은 지현의 독백. 참고로 지현과 미영은 둘 다 여자이다. 그러나 정글에서 생존의 위협을 겪고 본성에 눈 뜨기 시작한 사람들이 어디 남녀를 가리겠는가. 그 둘은 본능적으로 하나가 되었고 각자의 역할에 순응했다. 그러나 각자의 삶으로 되돌아왔을 때, 그 사랑은 당연히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이 소설에서 딱 하나 아쉬운 점. 이 부분이 너무 간략하다. 현실에서 부닥치는 그들의 한계와 좌절을 좀 더 자세하게 그렸더라면 좋았을텐데. 메스컴의 염문 아닌 염문에 시달리는 지현과 미영이 등장하긴 하지만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다. 역시 이게 로맨스물의 한계인가. 뭐 어쨌든 지현이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인지, 왜 여자들이 두서명씩 꼬이는 건지-_-; 방해자들이 좀 더 독하게 나왔으면 레즈물의 할렘이 달성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 아무튼 여러가지로 내용이 참신해서 흥미있게 보았다. 특히 방해자들 중 한 명인 안상희 정말 위험할 정도로 내 취향!  '슬레이어즈'의 제로스와 '흑집사'의 시엘이 적절히 섞였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한 때 그런 타입에 열광한 적이 있어서(...)

 혹시 중고책방을 가다가 '메마르고 하얀 목조르기개'라는 책을 발견하면 꼭 구입하라고 권하고 싶다. 마모님이 집필하신 책이다. 최근 이 분의 소설이 e-book으로 출간되고 있는 중인데, 이 소설만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 오래된 책이라서 그런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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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잡상인 - 2009 제3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우승미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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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나에게 1000원을 주었어. 네가 갖고 있는 전부를. 너는 항상 네 전부를 던져. 사람들은 그렇게 전부를 던지지 않아. 자신을 위해서 조금은 남겨둔다고.'- p. 206  
   

 처음 스토리 소개서부터 이 책이 매우 끌렸다. 고아가 되어 핏줄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어떤 할머니에게 맡겨지고, 커서 코미디언이 되려는 꿈을 품다가 후배들에게 걷어차여서 지하철 잡상인들의 세계까지 굴러가게 된 남자주인공. 삼중고를 겪는 동생과 함께 살면서 자신이 그린 동화책 그림을 동화작가들에게 팔고 농아봉사활동까지 하면서 살다가, 바이올리니스트의 아이를 덜컥 밴 채로 지하철에서 수치심을 파는 여자주인공. 흑화된 이야기를 좋아하는 본인은 지하철 잡상인들의 힘든 생활을 그대로 담지 않았을까, 그럼 어두운 이야기가 아닐까 두근반세근반 하면서 보았지만, 그렇게 어두운 이야기는 아니다. 차디찬 지하철 벤치에서 입 돌아갈 것을 각오하고 하룻밤을 잔다는 것이 그리 쉬울까. 보통 사람들은 읽을 수 없는 점자로 책을 만들고,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지 않는 동화책 그림을 그리면서 얼마나 여유롭게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책 안의 인물들이나 나레이션이나 전부 심기가 매우 편해 보이는 것을 어찌하랴. 오히려 일부러 길게 늘어놓은 듯한 넉살스런 문체들이 이 책을 펼쳐보는 독자들의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결말도 본인이 싫어하는 묘한 해피엔딩이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쭉 보는 동안 마치 이 글을 쓴 작가와 등장인물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하류인생이지만 웃고 동정하면서 지켜봐주세요.' 본인도 여태까지 동정과 사랑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동정은 위에서 사람을 내려다보는 행위고, 사랑은 밑에서 사람을 올려다보는 행위라고. 이 책에서는 완전히 색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너무 낙천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리는 사랑을 찾기 전에 동정과 공감 등 사소해보이는 감정을 느끼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친 사람을 보면서 따끔함을 느끼고, 우는 사람을 보면서 출렁이는 마음을 느끼는 것도 사랑이다. 애인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사랑하고 내 이웃들도 사랑하듯이. 짧지만 굵직한 교훈을 남겨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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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김사과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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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사당한 채로, 그녀는 가장 높은 탑의 꼭대기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질식된 채로.- p. 88  
   

 처음부터 스토리를 매우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함부로 이 책을 '미나'이야기로 결단지을 수는 없다. 이 책은 친구 수정의 눈으로 미나를 보고 있다. 문제는 이 수정이라는 아이가 폭발적인 열등감과 자기우월감에 동시에 시달리고 있어서 중후반기가 되면 미나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전부 다 미나 탓으로 돌려버린다. 참 무식하고 단순하면서도 편한 사고방식이구나. 결국 미나는 수정의 이기적인 사랑에 의해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하기엔 뭣하지만. 미나의 말대로 요즈음 점점 이런 인물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딱히 우리나라 학교의 경쟁과잉 문제만이 아니라, 사랑 차원에서 말이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거부하지만,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세속적인 인물들이다. 조금 가볍게 해도 될 짐을 기어이 무겁게 만든다. 결국 자기에 대한 동정과 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을 꽉 채워버리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조금도 만족하지 않는다. 가방이 닫혀지지 않으면 화가 잔뜩 치밀어오르고, 결국 발을 들어 있는 힘껏 안에 있는 것들을 눌러버리고 지퍼를 채워버린다. 그 안에 '타인'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왜냐? 수정이는 완벽하니까. 
 미나의 솔직담백한 질타가 왠지 나를 향하는 듯해서 부끄러웠다. 그런데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이 그렇게 좇같지 않을까? P시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도 결국 이런 말을 털어놓을 사람은 수정밖에 없지 않았던가? 분명 주인공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애초 소설에 등장하지도 않고,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다 특별한 척 해서 어른들의 환심을 사려 할 뿐이고, 오빠 민호는 살아남기 위해 침묵을 택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과 놀아주는, 그리고 자신이 놀아주는 유일한 친구 수정에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외침은 마돈나의 노래 속에서 허망하게 묻혀버린다. 내가 가타부타하기엔 좀 부끄럽지만 김사과님의 작품도 미나의 운명과 똑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나라 문학계에 충격을 주려고 했는지 아니면 좀 튀어보려고 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문체가 그랬었는지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 소설은 장르파괴적이다. 그녀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메세지는 명확하지만, 자칫 묘한 분위기와 파괴적인 결말로 인해 모호하게 왜곡될 수도 있다. 일단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네이버책의 리뷰를 봐라. 미나의 외침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는가? 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르파괴도 좋지만, 무언가를 섞으려면 제대로 섞으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그렇다고 김진명씨처럼 메세지만 명확하고 결말은 모호한 그런 답답한 소설을 쓰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그녀의 작가로서의 매력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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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 - 나의 식인 룸메이트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2
이종호 외 9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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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살아있다는 것만이 공포였다. - p. 403  
   

 전반적인 한국공포문학단편선에 인지도를 단숨에 띄운 소설이다. 또한 우리나라 공포문학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소설이기도 하다. 평판도 매우 괜찮은 소설이며, 우리 학교 도서관까지 합쳐서 이 책을 읽으려고 경쟁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소 호러계에서는 엄청난 명성을 얻고 있는 책이다. 참고로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는 분실신고까지 뜬 적이 있다. (소장하려고 보관해뒀거나 팔아치웠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대체 어떤 책인가 싶어서 친구의 도움으로 인천대학교 도서관에서 얻어 읽어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이 아동들의 순수성이 한없이 잔혹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본인의 눈으로 보기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전반적으로 '아동을 포함한' 소시민들이 공포라는 감정에 어떻게 적응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나의 식인 룸메이트>가 가장 재미있었다. 원초적인 공포에 직면했을 때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혹은 얼마나 적응해가는지를 보여준다. B급영화로 제작되어 나오기에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뭐 우리나라의 영화제작수준으로 봐서는 기대를 접어야 하겠지만(...)
 위의 좋은 글귀는 단편선 중에서도 <얼음폭풍>에서 따온 글이다. 물론 이 책에 실린 작가분들 모두 훌륭한 글을 쓰셨지만, 소설의 마무리에 있어서는 이 분이 가장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반전은 없었지만 매우 깔끔했다고 해야 할까. 황희라는 분은 주로 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소설을 많이 쓰는 편이다. 공포소설같지 않으면서도 읽는 사람을 문득 소름끼치게 한다. 공포문학단편선이 계속 쓰여짐으로 인해 한국의 공포소설이 좀 더 많은 발달을 이루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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