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OTL]시퍼런 가위와 금속탐지기, 무서운 학교



두발·복장 단속해 토요일마다 단체기합, 휴대전화 색출하려 아이들 몸 뒤지는 선생님… 체벌과 욕설에 짓눌린 학생 인권

▣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인권 OTL-30개의 시선③]

지난 4월19일 오전 10시40분께 경기 일산 ㄷ고 교정. 체육복과 운동화 차림의 학생 300여 명이 운동장에 집합했다. “자, ‘토봉’하는 학생들. 빨리빨리 모여. 지각해서 걸린 놈들이 또 지각이냐. 저기 걸어나오는 학생들. 지금 걸어? 빨리 뛰어.” 마치 군대 유격 조교처럼 빨간 티셔츠를 입고 야구모자를 눌러 쓴 이아무개 교사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토봉’이란 ‘토요 봉사활동’의 줄임말로, 주중에 이름표나 실내화 따위를 안 가져와 걸리거나 두발 단속에 적발된 학생들, 돌아다니며 밥을 먹다 걸린 학생들을 불러모아 2주에 한 번씩 실시하는 사실상의 단체기합이다.




△ 지난 4월19일 경기 일산의 ㄷ고등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토요 봉사활동’이라는 이름의 체벌을 당하고 있다.




오리걸음 뒤에 엎드려뻗친 채 몽둥이로…

걸린 횟수에 따라 분류된 학생들이 곧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다. 운동장에 뿌연 흙먼지가 일었다. 교사 4명이 군데군데 흩어져서 아이들이 제대로 걷는지를 감시했다. 오리걸음을 하다 쉬거나 바닥에 앉거나 일어서는 학생들을 잡아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렸다. 4번 이상 걸린 학생들 무리가 농구대 근처에 도착하자 이 교사는 엎드려뻗쳐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해 시켰다. 엎드려뻗쳐를 하다가 무릎이 흙바닥에 닿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4회 이상 너네 다섯 명 놀고 있어? 체육복 봐라. 흙이 묻어가지고. 당장 이리로 올라와. 전원 교단 위로 전력질주.” 그렇게 뛰어온 학생들은 엎드려뻗친 상태에서 “어떻게 4번 이상 걸려?”라는 타박을 들으며 엉덩이를 맞았다. 한 시간여 동안 기합을 받던 학생들은 “교칙 준수!”를 외치며 앉았다 일어서기를 10번 하는 것을 끝으로 토봉을 마쳤다.
땀을 뻘뻘 흘리며 토봉을 끝낸 박아무개군은 “이건 완전 미친 짓”이라며 숨을 골랐다. ㅇ양은 “걸리면 벌점을 매기면서, 오리걸음까지 시키는 건 이중 처벌 아니냐”며 “제발 우리 이야기를 기사로 좀 써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다른 ㅇ양은 “3학년인데, 토요일마다 이렇게 1시간씩 돌고 나면 그날 오후 2~3시까지는 공부도 제대로 못하겠어요. 너무 비인간적이에요. 살다 보면 한 번쯤 교복 넥타이를 안 가져올 수도 있고, 명찰을 안 가져올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게 무슨 죽을 죄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요”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토봉 장면을 운동장 위 계단에서 지켜보던 김아무개양은 “저는 ‘챕스틱’ 발랐다고 걸린 적도 있어요. 그냥 보습으로 발라주는 건데…. 암튼 별걸 다 잡아요. 선생님들 맘 내키는 대로. 또 어떨 땐 아무리 발라도 안 잡혀요”라고 말했다. 이날 ㄷ고 운동장은 마치 통나무 들기만 뺀 삼청교육대를 보는 듯했다.
학생들의 일상 구석구석까지 감시와 통제가 작동하는 이 학교에선 급기야 금속탐지기까지 등장했다. 최근 일선 학교에선 교사와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곤 하는데, 1교시 수업 시작 전에 일괄적으로 걷어 저녁에 돌려주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제출하지 않다 나중에 적발되면 압수당하기 일쑤다.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고 몸에 감추고 있을까봐 금속탐지기를 동원하기에 이른 것이다. ㄷ고 1학년 박성화(가명)군은 “얼마 전 우리 옆반에서는 휴대전화를 제출했는지 검사하려고 선생님이 금속탐지기를 들고 와 공항 검색대에서 몸을 훑듯이 검색을 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휴대전화 압수에 적응이 돼서인지 모욕감이나 불쾌감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고들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학급 담임 교사는 “금속탐지기를 들고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 몸에 직접 대고 검색하지는 않았다”며 “그즈음 휴대전화를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학생 수가 줄어 교사와 학생 간 불신이 커지는 것 같아 이를 막기 위해 농담처럼 한 일”이라고 말했다.




△ 운동장의 흙먼지가 가라앉은 뒤 만난 학생들은 비인간적 체벌을 멈추게 해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압수’에 적응돼 공항 검색대 지나듯

이 학교에서 금속탐지기는 도난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사용된 적이 있다. 2학년 한 학급의 경우 이번 학기 초에 학생들의 MP3와 전자사전 등이 잇달아 없어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학생부 교사가 금속탐지기를 가져와 학생들 몸을 검사했다고 한다. 이 학급 소속 한 학생의 말이다.
“학생들을 다 일어나게 하고 가방을 검사한 뒤 선생님이 와서 손으로 몸을 만져보면서 검사했어요. 그러고는 금속탐지기를 들고 와서 대보더군요. 결국엔 못 찾았어요. 학생 입장에서는 금속탐지기를 봤다는 게 좀 그래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어요.”
따뜻한 온정이 오가야 할 교사와 학생 사이에 차가운 금속탐지기가 끼어들면서 학생들은 상처를 받았다.
두발과 복장 규제 등으로 학생들의 자유를 억누르거나 적발된 학생들을 지나친 폭력으로 다스리는 일은 ㄷ고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남의 한 평준화 지역 고교 2학년인 박성인(가명)군은 지난해 11월 자퇴서를 썼다. 부모님은 “네가 알아서 하라”며 도장까지 찍어줬다. 하지만 성인이와 상담하던 교장 선생님이 “다음에 보자”며 유야무야하는 동안 부모님이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학교 탈출’은 실패했다. 성인이가 학교를 그만두려는 이유는 강제로 실시되는 야간자율학습을 비롯해 두발과 복장 등을 단속하는 학교의 억압적 현실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입학과 동시에 학교는 이른바 ‘반삭’(반 삭발을 일컫는 은어)을 요구했다. 머리카락 길이가 아무리 길어도 2㎝를 넘지 말라고 했다. “내 머리 모양을 어떻게 할지는 내가 가진 고유의 권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해 머리를 자르지 않고 담임 선생님에게 자퇴 의사를 밝혔다. 선생님의 설득으로 자퇴를 포기하고 일단 기준대로 머리를 잘라보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반삭 요구를 따르긴 싫었다.
성인이의 현재 머리카락 길이는 4㎝. 학기 초에는 다른 친구들이 보는 가운데 교실 옆 복도에서 새 담임 선생님에게 맞았다. 두발과 관련한 학교 규정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선생님이 매로 애용하는 단소로 수십대 맞았는데, 정확히 몇 대인지는 기억할 수 없다. 성인이는 “지금 담임은 뻑하면 손발로 때리는데, 뺨을 때리거나 하체를 발로 마구 차기도 한다”며 “그러고 나서는 조용히 불러서 미안하다고 그런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들어서는 일부 담임 교사들이 가위를 들고 다니며 학생들의 구레나룻을 현장에서 잘랐다고 한다. 성인이는 “선생님들이 학생을 자기 밑의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며 “언제 학교를 그만둘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1인시위 했더니 피켓 던지며 “지랄싸네”

물리적 폭력만 학생들을 괴롭히는 건 아니다. 교사들이 툭하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거나 “악법도 법이다”라며 인권침해적이고 폭력적인 말을 하고, 일부 교사는 ‘××새끼’ ‘병신’ 등의 욕지거리도 예사로 던진다고 학생들은 푸념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뜯어고치려고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도 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이다.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는 학생들의 것이 아니다. 서울 중앙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이하람군은 지난 4월26일 학교 교문 앞에서 두발 자유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던 중 한 교사에게 피켓을 빼앗겼다. “두발 규제는 다수결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 즉각 폐지하라”고 적힌 이군의 피켓은 구겨지고 내동댕이쳐졌다. 이군은 “선생님께 잘못된 것은 바꾸겠다는 얘기를 했더니 ‘지랄싸네’라는 대답이 돌아오더라”라고 말했다.
광우병 집회에 중·고교생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에 뜨끔한 어른들은 또 이를 막기 위해 나섰다. 시도 교육감 회의가 소집되는가 하면, 학생부 교사들은 학생들의 촛불집회 참석을 막기 위해 일과 뒤 서울 여의도와 청계천으로 투입되고 있다. 또 경찰은 ‘문자괴담’의 진원지를 찾겠다며 경기 성남 수내고 등 일부 고등학생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까지 했다.
지난 200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 과정과 학교 안팎에서의 정치활동에서 아동·청소년의 능동적인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법률, 교육부 지침 및 학교 교칙을 개정하고 모든 아동이 결사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충분히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학교 현장에서 이런 품위 있는 권고는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선린인터넷고의 유쾌한 반란



“자율적인 외모, 아이들이 예뻐 보인다”

교복을 입고 하교하는 남학생들은 모두 장발족이다. 뒷머리가 여느 고등학교 남학생 앞머리만큼 길다. 여학생들의 머리 모양도 제각각인데, 살짝 파마를 하거나 가볍게 염색을 한 친구들도 눈에 띈다. 교복을 입긴 했는데, 여학생의 치마와 남학생의 겉옷만 같다. 안에 받쳐 입은 옷은 모두 다르다. 보통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 “얘네들 학생 맞아?”라는 물음이 터져나올 법하다.





최근 서울시내 특성화고교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받는 선린인터넷고등학교의 교문 앞 표정이다. 이 학교는 지난 2004년부터 두발 및 복장 규제를 완화한 데 이어 2년 뒤에는 두발 규제를 아예 폐지했다. 학생과 교사의 요구도 있었고, “자율을 누리되 그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자”는 천광호 당시 교장의 결단도 한몫을 했다는 게 학교 쪽 설명이다. 교칙도 “두발은 자율로 하되, 단정하게”다. 파마나 염색은 금한다고 하고 있지만, 교문 앞에서 본 대로, 실제로는 세게 단속하지 않는다. 채한조 학생부장은 “새학기 들어 5월 초까지 두발 단속에 걸린 학생은 머리를 온통 진한 갈색으로 물들인 여학생 1명뿐이고 복장 단속에 걸린 학생도 교복 대신 체육복을 입거나 슬리퍼를 신고 등교한 학생 대여섯 명뿐”이라고 설명했다.
단속에 걸리더라도 다른 학교처럼 가위나 몽둥이를 들이대는 일은 결코 없다. 조용히 불러서 타이르는 방식으로 ‘해결된다’. 학생들은 이 학교에 체벌용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교사는 없다고 말했다. 2학년 임원빈군은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학생들 머리가 길어 전부 양아치들인 줄 알고 무서웠는데, 알고 보니 머리 길이로 사람 판단하면 안 되겠더라”라며 웃었다.
그럼, 이 학교 학생들은 머리도 길고 옷에 신경쓰느라 공부를 못할까? 결코 아니다. 올해 2월 졸업생 가운데 15명이 미국 주립대에 진학했고, 2명은 일본 대학에 입학했다.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59.8%에 이른다. 전국 실업계 고등학교 가운데 단연 최고 수준이다. 황호규 교장은 “자신의 용모 등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자율을 강조하면서 거기에 따른 문제는 자신이 책임지라고 가르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생활지도가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내신성적 15% 안에 드는 학생들이 입학하고 입학 경쟁률도 3.5 대 1에 이른다는 게 학교 쪽 설명이다. 지난해 9월 부임한 황 교장은 “처음 왔을 땐 학생들의 머리와 복장을 보고 꽤 당황스러웠다”며 “지금은 애들이 예뻐 보인다”고 했다.
학생들은 처음 입학해서는 대개 호기심에 머리를 길게 길러보고 머리에 신경도 많이 쓰지만 대개 한 학기를 못 넘긴다고 했다. 머리 모양 등에 대한 흥미가 금방 사라진다는 것이다. 임군은 “두발 단속을 당할 때 훨씬 더 머리에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 같다”고 했다. 억누를수록 튀어오르려 하고, 놓아두면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이들은 경험으로 깨닫고 있었다. 2학년 배진희양은 “머리를 한번 길러보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고 추천했다.
선린인터넷고의 사례는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나 열심히 하고, 대학 가서 자유를 실컷 누리면 되지 않느냐”는 학생 인권 탄압 논리를 뒤집는 유쾌한 반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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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OTL] 아이들의 끔찍한 SOS



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력은 누구의 죄인가…빈곤으로 인한 오랜 방임, 피해자들이 가해자로


▣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대구=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이덕수(15·가명)·영수(12·가명) 형제는 경기 ㅈ군에서 착실히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성격 차이로 3년 전 가출한 뒤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퀵서비스 배달을 하는 아버지는 아침마다 오토바이로 형제를 학교에 데려다줬다. 하지만 둘은 매번 교문 앞에서 PC방으로 곧장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불량한 중학생 형들을 만나 절도를 배웠다. 손이 작은 영수가 자판기에서 컵이 나오는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돈을 훔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심한 매질을 하기 시작했고 “이러다 내가 아이들을 때려 죽일지도 모르겠다”며 아동학대 신고전화(1577-1391)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대구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방임되는 어린이 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학대와 방임 속에 멍들고 상처 입고 납치되고 죽어간 아이들의 이야기가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숱하게 되풀이돼 왔다(그럼에도 정부가 미동도 않고 있다는 점은 뒤에 지적하기로 하자). 그렇게 ‘당하기만 하는’ 존재였던 방임 아동들이 이젠 ‘가해자’로 등장하고 있다. 덕수·영수 형제처럼 방임의 그늘 속에서 아이들은 범죄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소리없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무려 100여 명의 초등학생이 각종 성폭력 사건에 얽혀 있는 것으로 드러난 대구 ㅈ초등학교 사건은 이런 현상을 보여주는 최악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은 부모 없는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집단적으로 음란 동영상을 접했으며, 어떤 땐 그 규모가 수십 명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꾸려진 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의 한 위원은 “아이들 진술서를 보면, 또래 친구들과 모여 음란 동영상을 보다가 엄마에게 걸렸는데, 엄마가 ‘다시는 보지 말라’고 얘기만 하고 말았다는 내용도 있다”고 전했다. 주위 어른의 무관심과 방임이 아이들에겐 음란물을 접하게 만든 텃밭이었던 셈이다.
지난 4월29일 만난 ㅈ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아이들의 방과후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부는 이혼한 가정도 있지만, 70%가량은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에요. 맞벌이 가정은 저녁 6~7시쯤은 돼야 엄마나 아빠가 퇴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늦기도 하죠. 그런데 아이들은 점심 식사하고 학원 두 곳 다녀와도 시간이 비어요. 4시30분이나 5시쯤이면 학원은 끝나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는 거죠. 그때부터 엄마나 아빠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는 비는 시간이고, 그동안 애들이 뭘 하고 지내는지 어른들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특히 빈곤과 가족해체는 아동을 방임에 빠뜨리는 가장 주요한 환경 요인이다. ㅈ초등학교가 있는 지역은 대구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으로 손꼽힌다. 학교 주변에선 제대로 된 학원이나 공부방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극빈층이 집중된 곳은 아니지만, 어렵사리 생계를 유지하는 서민들이 주로 사는 동네다. 지난 4월30일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연 뒤 기자들에게 “제발 학교나 동네 이름은 밝혀지지 않게 해달라. 보통 성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나 가해자가 이사를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동네 주민은 더 이상 이사갈 곳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4월29일 오후에 찾은 ㅈ초등학교의 풍경은 서울 일반 학교들과 다른 점이 많이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을 앞뒤로 1~3학년이 수업을 마친 데 이어 3시께에는 6학년까지 모두 수업이 끝났지만, 4~5시가 넘도록 학교 안팎에는 아이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거나 가방을 멘 채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교정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끊이지 않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갈 데가 없는 것이다.

눈물의 경고장을 무시한 사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동안 안전사고를 당하거나 성폭행·살인과 같은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돼왔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대책이란 것도 범인 검거에 치중했을 뿐이다. 학교는 성교육과 같은 가치관 교육보다는 입시교육으로 아이들을 내몰았고, 방에 갇힌 아이들은 인터넷에 탐닉해갔다. 결국 아이들은 같은 학교 후배를 상대로 유사 성행위를 강요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상대를 성적으로 괴롭히는 게 얼마나 나쁜 짓인지는 판단하지 못했거나 무시했다. 아이들이 방임의 터널을 지나 결국 가해자의 탈을 쓰고 돌아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자는 가해 초등학생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동안 수많은 사건을 통해 눈물과 죽음으로 보내온 수많은 경고장을 무시한 이 사회와 어른들이라고 본다. 특히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부모와 교사들의 책임은 무시할 수 없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가해 학생도 결국 방임이라는 아동 학대의 피해자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가해 아동이나 피해 아동 모두 집단 성폭력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을 겪게 되면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게 마련인데, 학교와 가정이 이를 미리 감지하고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관심과 보호를 받지 못한 셈이다. 이정화 한국아동심리코치센터 대표는 “성폭력 피해 아동은 갑자기 배나 머리가 아프다며 학교 가기를 거부하거나 불안·초조와 같은 심각한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고, 가해 아동도 방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든지 뭔가 숨기려 하고 교류가 원활치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며 “이들 모두가 방임에 의한 피해자라는 시각을 어른들이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초등학생 모두 만 14살 이하의 형사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법적인 측면에서도 그 책임은 국가로 대변되는 어른들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성폭력 사건이 터진 대구 ㅈ 초등학교 인근 도로. 이 근방은 대구에서도 낙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들에 대한 방임은 일종의 아동학대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10살 미만의 어린이를 1시간 이상 홀로 집에 방치하기만 해도 그 보호자를 처벌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방임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4월30일 내놓은 ‘2007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를 보면, 방임에 의한 아동학대 판정 건수는 2107건으로, 2001년 이후 해마다 늘고 있다. 전체 아동학대 5581건 가운데 방임이 차지하는 비중도 37.7%로 정서학대(10.6%)나 신체학대(8.5%)보다 훨씬 높다. 나이대별로는 초등학생들이 가장 크게 방임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만 7∼12살이 전체 방임의 75.6%를 차지했다. 이보다 어린 경우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중학생 이상의 경우도 대개 학교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아이를 함부로 방치한 어른이 사회적으로 처벌을 받는 일은 드물다. 지난해 아동 방임 혐의로 고소·고발된 34명 가운데 형사처분을 받은 이는 2명(5.9%)에 머무른다. 한국의 사법체계는 여전히 방임을 사회문제가 아닌, 가정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보고서는 “방임된 아동이 어릴수록 성장환경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비기질적 성장 실패 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며 “이는 아동의 건강 및 안전 문제와 직결돼 있는 만큼, 방임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 인프라 턱없이 부족

해답은 어른들의 ‘개과천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방임을 저지르는 이의 열에 아홉은 그 부모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자립지원시설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재호(14·가명)의 경우도 그렇다. 재호네 집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4년 전 아버지의 사업 실패 뒤부터다. 가정 형편이 쪼들리자 부모는 갈라섰다. 일용직 노동자가 된 아버지는 날마다 술을 마셨고 재호는 그 옆에서 안주를 집어먹었다. 경기 ㅇ시의 변두리에 있던 허름한 집에는 온갖 쓰레기가 산더미로 쌓여갔다. 절반은 아버지가 남겨 놓은 술병이었다. 어찌나 많이 쌓였던지 나중에는 인근 고물상이 트럭 한 대 가득 술병을 실어갔다.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 재호는 학교를 빠지는 날이 늘어갔다. 주변의 어른 가운데 어느 누구로부터도 재호는 보호를 받지 못했다. 보다 못한 이웃 주민의 신고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출동했고, 재호와 아버지는 시설에 맡겨졌다.
경기 부천에서 10여 년째 활동하고 있는 강동주 삼산해오름공부방 교사는 “어떤 부모는 아이가 공부방에도 못 가게 막으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등 차라리 없는 게 아이에게 더 낫겠다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바라기아동센터의 최경숙 소장도 “부모가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양육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제하림 청소년회복센터 소장은 “아이들은 늘 어른들을 보고 따라가기 때문에 부모와 교사, 지역사회의 어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언제까지 아이들의 구조 요청을 외면할 것인가. 변창율 대구광역시교육청 부교육감이 4월30일 대책위 회원들과 면담 중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동 방임의 주요 원인이 빈곤의 문제라는 사실에 맞닥뜨리면, 보육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양극화가 심화하고 부모들은 돈벌이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아동 보호를 가정에만 맡길 수는 없게 된 상황이다. 그러나 학교를 마친 뒤 부모가 보살필 수 없는 아이들을 대신 돌봐줄 지역 아동센터나 방과후 학교 등 사회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여성부는 방과후 시간연장형 보육사업을 지원하고 있고, 교육부는 방과후 교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역아동센터와 청소년 공부방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사업을 하는 기관들임에도 늘 제기되는 ‘원활한 네트워크 구축’은 여전히 멀었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조직이기주의 때문이다. 아동학대 보고서도 “지역마다 가용 자원의 편차가 심하고 지역사회 내 협력체계와의 관계도 일방적이거나 임시적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그 이유를 제도·법적 장치가 부족하고 관련 매뉴얼이 없는 탓이라고 밝혔다.

“아이들이 표와 연결 안되서 그런가…”

따라서 날로 심각해지는 아동 문제를 전반적으로 관리할 ‘조직의 일원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을 보살피고 학업을 지원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각종 아동센터와 공부방, 상담소들을 좀더 작은 지역 단위로 쪼개 확충하면서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과감한 투자가 절실하다.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고 어른들의 온전한 관심과 보호 속에 자라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시급한 국정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강동주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동에 관한 문제는 정치권에서 관심을 안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노인복지와 비교를 해봐도, 노인 문제는 정책이 나오면 착착 진행이 잘되죠. 그런데 아동 문제는 흉악 범죄가 나오면 확 끓어올랐다 금방 식어버려요. 아무래도 (노인과 달리) 아이들이 표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들은 이번에 끔찍한 일을 저지름으로써 또 한 번 어른들에게 ‘SOS’를 쳤다. 또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면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다시 자신들의 처지를 사회에 알리게 될까. 무서운 상상이다.



 



미국의 어린이 보호 실태



아이 혼자 두고 술에 취하면 처벌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지난 3월25일 밤 10시52분께, 인기 록밴드 ‘본조비’의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48)는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라구나 비치의 퍼시픽코스트 고속도로를 시원스레 달리고 있었다. 차량의 흔들림을 감지했는지 이내 순찰차가 따라붙었다. 차에서 내린 샘보라의 입에선 술냄새가 풍겼고, 그의 걸음새도 갈지자였다. 그는 음주운전 혐의로 인근 경찰서로 넘겨졌다.
벌금이나 내고 말 사안이었다. 한데, 예기치 않게 사태가 꼬이기 시작했다. 음주운전 당시 샘보라가 몰던 차 안에는 3명의 동승자가 있었다. 성인 여성 1명과 샘보라의 10살 난 딸 에바 등 2명의 어린이가 타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AP통신〉은 4월16일 “라구나 비치 경찰당국은 음주운전에 더해 샘보라를 ‘아동 위해 방지법’(Child Endangerment Act) 위반 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성인이 다음과 같은 행동으로 어린이의 복지를 위태롭게 할 경우 법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된다. (1) 건강상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도, 16살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일을 하도록 내버려뒀을 때 (2) 부모나 보호자, 또는 기타 자신이 보호해야 할 법적 책임을 진 어린이가 범죄를 저지르는 걸 방치했을 때….”
미 앨라배마주가 시행하고 있는 형사법령의 일부다. 법조문 제목은 ‘어린이의 복지를 위태하게 하는 범죄’. 미 50개 주 정부 모두 법조문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이와 같은 어린이 보호 조항을 두고 있다. 직접적인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학대’와 달리 ‘방임’은 “어린이를 위험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에 내버려두는 것”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에선 어린이 ‘방임’을 ‘학대’와 엇비슷한 수준에서 처벌하고 있다.
‘방임’의 심각성은 어린이 보호 책임을 진 어른 대부분이 그 ‘위법성’을 의식하지 못한 채 벌어진다는 데 있다. 이는 학대가 위법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는 데 반해, 방임은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법을 어기게 되는 특수성 때문이다. 미 콜로라도주 테니슨어린이센터(www.childabuse.org)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자료를 보면, ‘방임죄’의 사례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네 살 난 아들을 집에서 혼자 돌보던 아버지가 술을 취하도록 마시면, 아동 방임죄로 기소될 수 있다. 적절한 보호를 해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든 탓이다. 어린이에게 우발적으로 마약이나 총기류, 각종 포르노물을 노출시키거나, 기타 범법 행위와 가정폭력을 목격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처벌 대상이다. …어른들이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장면을 보게 하는 것 자체가 범죄 구성요건이 된다. 당신이 속도위반으로 경찰에 단속됐는데, 동승한 자녀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었다면, 딱지를 떼는 대신 아동 방임죄로 기소될 수 있다.”
법이 엄격하다고 해 아동학대와 방임이 사라지는 건 물론 아니다. 미국에선 하루 평균 4명의 어린이가 학대 또는 방임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미 어린이학대방지협회(PCAA)는 지난해 9월 내놓은 자료에서 어린이 학대와 방임으로 미국 사회가 치러야 하는 직·간접 비용이 한 해 평균 1038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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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OTL] 쓰린 새벽의 아이들



연속기획 ‘인권 OTL-30개의 시선’ 첫 번째 이야기… 일터로 내몰린 이주·탈북 청소년들

▣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인권 OTL-30개의 시선①]






“전 제 자신을 포기했어요. 다음 생애에 태어나면 달라지겠죠.”
슈허(18·가명)는 10살 때 몽골에서 한국에 왔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던 2002년부터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슈허의 부모는 불법 체류 노동자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사정은 점점 나빠졌다. 엄마가 몽골로 돌아간 사이 아빠가 같은 공장 동료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지 몇 달 만의 일이었다. 결국 엄마가 돌아와 장례를 치른 뒤 슈허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뒤 엄마도 단속에 걸려 몽골로 강제 출국됐다. 이후 지금까지 혼자 살며 공장과 건축 현장을 전전하며 일을 하고 있다.

아빠 살해된 뒤 엄마까지 강제 출국

“이대로 일하다가 단속에 걸리면 제 신분을 보장해줄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요. 노력해도 바뀌는 건 없어요.” 아빠가 살해를 당했는데도 불법 체류(미등록) 신분이라 큰 소리 한 번 못 낸 기억은 아직도 가슴을 후빈다. 아이는 그렇게 일찍 포기하는 법을 배워갔다. 세상을 향한 불신도 커져갔다. 대화를 나눌 때도 사람과 눈을 맞추지 않고 말은 일부러 냉소적으로 내뱉는다.
어릴 때부터 키가 컸다는 슈허는 3년 전부터 수염을 기른다. 그러면 나이가 더 많아 보여 일하기가 편해서다. 일하는 곳에서는 늘 ‘26살’이다. 주점, 노래방 등 ‘밤업소’에서도 꽤 많이 일해봤다는 슈허는 그렇게 일해 번 돈 중 20만~40만원씩을 몽골에 있는 엄마에게 보낸다. 슈허는 불안정한 일용직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빵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이주민 지원단체를 통해 직업교육센터를 알아보았지만 ‘불법 체류자’인 그에겐 직업교육의 문마저 닫혀 있었다.
“열심히 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던데요.”
인호(18·가명)도 이제 절망을 본다. 북한에서 6살 때 중국에 넘어가 6년, 다시 한국에 넘어와 6년을 살았다. 중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닐 때는 우등생이었던 그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는 열등생이 됐다. 한국 입국 과정에서 생긴 교육의 공백에 외국어, 외래어가 뒤섞인 교과과정이 겹치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게다가 왕따시키는 아이들과 무시하는 교사를 만나 상황이 나빠졌다. 욱하는 마음에 사고도 쳤고 싸움도 벌였다. 공부가 아니라도 운동으로 성공하자, 마음을 먹고 축구공을 찼다. 초등학교 6학년 축구교실도 다니고 새터민 친구와 어울려 하루에 6시간씩 연습했다. 하지만 유치원 때부터 축구를 배운 한국 아이들의 기술을 당하긴 어려웠다.
갈수록 집안은 어려워졌다. 국경을 넘다가 잡혀서 중국 감옥에 갇힌 누나에게 꼬박꼬박 가족이 돈을 부쳐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버지 건강은 날로 나빠져 일을 계속하기 어려웠고, 동생은 몸까지 불편했다. 차라리 돈을 벌자고 마음을 먹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방과후 음식점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급으로 4천원씩 받아서 한 달에 80만~90만원을 벌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지만 부모도 끝까지 말리진 않았다. 중국집, 김밥집, 피자집, 야식집…. 각종 배달일을 전전하며 2년이 흘렀다.



△ 교육청이 펴낸 <내 이름은 마르갓>은 몽골 소녀 유나가 한국에 와서 경험한 차별과 고립을 그리고 있다. <내 이름은 마르갓>, 오세호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하루에 60~70개 배달을 감당하려면 가게 매장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고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가 허리를 다쳤다. 한두 주 병원에서 쉬다가 또다시 일을 나갔다. ‘전쟁 같은’ 일을 끝내고 눕기만 하면 곯아떨어지는 날들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 학원을 다니던 친구가 가장 부러웠다는 인호는 오늘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오토바이 배달만 2년, 허리 다쳐도 일해

통계(상자기사 참조)로는 잘 잡히지 않아도 현실은 명확하다. 부모를 따라서 한국에 들어온 이주 1.5세대 혹은 2세대 청소년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남쪽으로 온 탈북 청소년들 가운데 학업 대신 노동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이 많다.
새벽 5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저씨들이 드디어 가게 문을 나선다. 재빠르게 흩어져 있는 소주병과 안주 그릇을 치운다. 누가 또 들어올까 간판 불도 꺼버린다. “저 들어갈게요.” 이렇게 마치르(16·가명)의 노동의 새벽은 끝난다. 토요일은 영락없이 이 시간이다. 거리에 나오자 어렴풋이 동이 트려고 한다. “다녀왔습니다.” 엄마는 벌써 출근 준비 중이다. 마치르는 눕자마자 잠에 빠져든다.
몽골 출신인 마치르가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온 지도 벌써 3년째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면서부터다. 친구와 싸움을 했는데 선생님이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해 고민하다 그날부터 학교에 안 갔다. 당시 아빠는 단속에 걸려 몽골로 강제 출국 됐고 엄마만 남아 불법 노동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마치르가 학교에 계속 다니길 바랐지만 곧 포기하고 일자리를 알아봐주었다. 그렇게 14살 때부터 전국의 공장과 우시장, 이삿짐센터 등 9곳의 일자리를 전전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잡았지만 힘든 일에 쉽게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힘들었다는 우시장에서는 한 달, 새벽별 보고 퇴근해야 했던 빵공장에선 세 달을 버텼다. “우시장에선 아침 6시30분부터 돼지머리 털 벗기는 일을 했는데 불법 취업 단속이 심했어요. 빵공장에선 기계에 들어간 재료가 바닥날 때까지 15시간 이상 일을 해야 했고요.” 그래도 또래의 몽골인 동료들이 많았던 대형 물류센터에서는 ‘6개월 근무’ 기록을 세웠다. 마치르가 몽골인 친구를 하나둘 일터로 불러 7명까지 늘었다. 아침 8시부터 쉬지 않고 짐을 날라 번 월급 100만원은 딱 하루 쉬는 일요일에 또래 동료들과 어울리다 보면 곧 동이 났다. 불안한 신분에 미래가 불투명하니 저축의 동기도 적다. 그는 친구 2~3명과 같이 공장을 떠돌다 최근엔 집 근처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저녁 7시에 출근해 모든 손님이 나갈 때까지 서빙을 하고 낮에는 주로 잔다. “술집은 밤에 놀려고 다니는 거지요, 뭐.” 한국말 표현이 서툰 그가 말한 ‘술집에서 일하는 이유’다. 시급 2천원씩 받는 돈은 그나마도 가불을 많이 해 월급은 늘 ‘쥐꼬리’이다.

일하고 돈 못 받기도… “또래 동료가 위안”

일만 하고 돈을 못 받은 기억도 있다. “한국에는 미리 그만둔다고 말 안 하고 그만두면 돈 안 줘도 된다는 법이 있어요?” 마치르가 물었다. 1년 전, 한 공장에서 3개월 정도 일한 뒤 마지막달 월급을 못 받았다.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서울에 와서 친구를 만나 놀다가 ‘그냥’ 쭉 안 갔다. 그래도 마지막달 월급은 받고 싶어서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은 “이럴 땐 한국 법으로는 돈을 안 줘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마치르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별수 없었다.



△ 서울의 한 교회에서 몽골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비로소 한국말을 배우는 아이들도 많다.




빌구릉(17·가명)은 그래도 학교에 다니고 싶어 발버둥을 쳤다. 가까스로 중학교를 마친 뒤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 직접 교육청을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비자가 없어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다 친구 츠러(18·가명)가 일하는 식당에 소개를 받아 들어갔다. 아침 10시부터 12시간을 주방에서 일한다. 아버지와 함께 살려고 14살에 한국에 왔던 츠러는 오자마자 공장과 공사장에서 일을 했다. 이후 중학교에 들어갔으나 2년을 채 못 다녔다. 한국에서 몽골 여성과 재혼한 츠러의 아버지는 새엄마의 자녀가 입국한 뒤부터 츠러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학대를 못 이겨 가출을 하자 아버지는 “몽골에 돌아가 대학에 가도록 해주겠다”는 말로 아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결국 다니던 학교만 그만두게 한 뒤 츠러를 내쫓았다. 옷가지도 챙겨나오지 못한 그는 가까스로 식당일을 구했고 지금 하고 있는 노동이 그에게 ‘전부’다. 쫓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몸이 아파도 쉰단 말 한 번 하지 못한다.
이렇게 학교는 멀고 일터는 가깝다. 이주 1.5세대 또는 2세대들은 이주 1세대인 부모들과 다른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10대에 입국해 5년 이상 한국에 살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한국인’이 된다. 부모는 40년의 인생 중 5년을 한국에 산 것에 불과하지만 아이는 15살의 인생에서 사실상 절반에 가까운, 더구나 민감한 성장의 시기를 이곳에서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아이는 한국말과 물정을 익히며 ‘유능한 한국인’이 되고 부모는 여전히 말이 서툴러 ‘무능한 외국인’에 머물게 된다. 결국 부모는 아이에게 의지하게 되고, 아이는 부모에게 불만을 품는 갈등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돌아갈 이주민’이 아니라 ‘살아갈 한국인’이 된다. 하지만 아직도 미성년인 그들을 부모는 보호해주지 못하고, 한국도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탈북 뒤 처음 꾼 꿈 ‘의대 진학’ 포기

부모가 ‘불법’이어서 학교에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적응하기는 더욱 어렵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은하 교육문화팀장은 “불안한 신분에 한국어로 자신의 상황을 표현도 못하는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을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교육 접근성은 떨어지고 노동 접근성은 높은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 팀장은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는 교육이 안 된 아이들이 결국 사용자에게 다루기 쉬운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에선 초기가 중요하다. 한국에 입국한 뒤 3~6개월만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면 수업에 적응을 하지만, 수준별 한국어 어학과정조차 공교육에 마련돼 있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바이벌 한국어’를 배워서 체류 2~3년이 지나면 한국말에 능숙해지지만 이미 학교 진도에서는 멀찌감치 떨어져버린 뒤다. 더구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10대 초반에 입국하기 때문에 2~3년이 지나면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맞는다. 이렇게 노동 권하는 사회에서 학교는 멀고 노동은 가깝다.



△ 차별은 분노를 키운다. 2007년 프랑스 파리 교외의 이주민 밀집지구에서 이주 청소년들이 ‘봉기’를 일으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사진/연합/ AP PHOTO/ THIBAULT CAMUS)




탈북 청소년도 이주 청소년과 비슷하게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다. 은미(18·가명)는 9살 때 북한 국경을 넘어 5년 동안 중국을 떠돌았다. 중국 고아원에서도 있었고 교회를 통해 소개받은 가정집에 머물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소학교를 2년 정도 다닌 게 전부다. 중간에 북한에 잡혀갔다가 다시 탈출하기도 했다. 2004년, 드디어 입국해 먼저 들어와 있던 아빠를 만났다. 하지만 엄마는 탈북 중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얼마 뒤 아빠는 한국에서 만난 새터민 여성과 재혼해 아이를 낳았다. 은미는 1년 동안 혼자 공부해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학력 간극이 컸던 상황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한 결과였다.
공부를 하다 보니 꿈이 생겼다.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수능시험에 맞춰 공부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돈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꿈을 포기했다. 대신 탈북 과정에서 습득한 중국어 실력을 살리기로 마음먹었다. 집을 떠나 독립했다. 친구와 살며 대학에 갈 때까지 돈을 벌기로 했다. 지금은 편의점 두 곳에서 하루 8시간씩 일한다.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는다. 시급 3500원은 그에게 소중하다. 그 돈을 쪼개 아침에 중국어 학원에 다닌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도 책을 한시도 놓지 않는다. 계산대 옆에는 늘 중국어 교재가 펼쳐져 있다. 힘들다는 말도 뱉어본 적 없이 그저 묵묵히 현실을 헤쳐나간다. “돈을 벌면, 엄마를 찾고 싶습니다.” 그를 지탱하는 힘이다.

“인권 짓밟힌 아이들, 결집한다면 재앙”

이주·탈북 청소년들은 여기, 한국에 살고 있다. 교육보다 노동이 ‘현실’이란 이름으로 이들에게 가깝다. 자꾸만 노동으로 떠밀리며 사회를 향해 냉소를 던지는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접촉해온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은하 팀장은 “교육에서 소외된 채 노동하고 살아가야 한다면 인권이 짓밟힌 아이들이 결집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며 “아이들을 잘 길러낸다면 엄청난 인적 자원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재앙”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아직은 고단한 노동의 새벽을 맞기보다 희망찬 미래의 꿈을 꿀 나이다. 슈허의 자포자기, 인호의 전쟁 같은 일, 마치르가 맞는 지친 새벽, 빌구릉의 좌절된 향학열, 의사가 되고픈 은미의 희미한 꿈.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이제, 선택은 우리 몫이다.





 



‘노동하는 이주아동’ 얼마나 될까


이주아동 8천여 명·새터민 51.8% 어디로?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대부분 미등록(불법체류) 신분인 부모를 따라서 한국으로 온 이주 2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현재로선 뚜렷한 통계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현재 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주 아동 수를 묻자 교육과학기술부는 “행정자치부에 (이주 아동) 전수조사를 할 때 좀 파악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실제 조사에서는 빠졌다”는 답만 돌아왔다.
간접적인 파악은 가능하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 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2007년 12월 말 기준으로 20살 이하 국내 불법 체류 아동·청소년은 9014명이다. 법무부의 2005년 자료에는 불법 체류를 포함한 외국인 중 취학 연령대인 7~18살은 1만7287명으로 나온다. 이 중 외국인 학교 재학생 7800명을 제외하면 약 9500명이 남는다. 이들 중에서 국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1574명에 불과하다.(‘다문화 가정의 자녀교육 실태조사’, 조영달, 2006) 즉, 8천여 명의 학령기 외국인 아동·청소년이 학교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불법체류 신분으로 추정된다.
옛 교육인적자원부 내부 조사자료를 보면, 국내 학교에 재학 중인 불법 체류자 자녀는 2003년 205명에서 2005년엔 148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2003년 조사에서 재학생 205명의 국가별 분포는 몽골이 160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중국 14명, 파키스탄 8명, 방글라데시 7명 순이었다.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몽골인의 특성상 부모가 이주하면 아이도 한국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조사는 지난해부터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해 ‘새터’를 잡은 아이들의 상황은 이주 아동들과 다르고도 같다. 최근 무지개청소년센터가 새터민 청소년 613명을 대상으로 한 현황조사 결과, 이들의 탈북 당시 평균 연령은 13.8살, 북한에서의 평균 학력은 4.99년으로, 중1 수료 수준에 해당한다. 탈북을 혼자 감행하는 비율도 전체의 31.8%에 이른다. 남한에 와서 가족을 만나는 경우가 많지만 19.2%는 혼자 삶을 꾸려간다. 제3국 체류 기간은 평균 29개월로, 13살의 나이에 다른 나라를 전전하며 고생을 하고 오는 셈이다.
힘들게 와서도 51.8%는 학교 밖으로 내몰렸다. 그 아이들의 39.1%가 자동차 정비, 미용실 등의 일터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도 한국에 ‘코리안드림’을 품고 오지만 학교 정착에 어려움을 겪다가 노동으로 내몰리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들


“재혼한 엄마 따라 온 한국, 힘들어요”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저는 한국 사람과 재혼한 어머니와 살기 위해 2003년 한국에 왔습니다. 처음엔 한국말을 몰라 1년 동안 집에만 있었습니다. 이후 중학교 3학년으로 학교에 들어갔지만 한국어를 하나도 몰라 수업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에겐 왕따를 당했고, 선생님들은 저를 포기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니 저를 보고 외국인 노동자라며 놀리더군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몽골 출신 17살)
지난 1월16일에 있었던 ‘미등록 이주아동 합법 체류 촉구 연대’ 기자회견장에서 발표된 사례다. 국제결혼이 늘고 특히 재혼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이주아동들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결혼 가정의 경우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교육 문제 등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재혼가정에 엄마를 따라 들어온 아이들은 언어, 국적 등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재혼한 이주여성을 따라온 자녀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2007년 2월 경기도가족여성개발원이 조사한 자료를 통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여성은 1만8420명(2006년 기준)이다. 국제결혼 건수로 보면 전국의 23.1%(2005년 기준)를 차지한다. 경기 지역 이주여성 81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이 가운데 21.3%가 재혼인 것으로 밝혀졌다. 재혼 가정 중 자녀를 한국에 데려올 의향이 있는 사람이 87.4%에 이른다. 이미 자녀를 데려온 경우도 6명 정도 확인됐다.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경우 국적, 언어, 한국 가정 적응 등 다양한 문제가 겹친다. 하지만 아직 실태 파악도 되지 않아 뾰족한 지원책은 없다. 한 국제결혼알선업체 관계자는 “한국 남자도 재혼이면 자신의 아이 양육을 위해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과 결혼하길 원하기 때문에 재혼인 상대를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 경우 여자에게도 아이가 있다면 결혼 뒤 양육 문제로 남자 쪽 눈치를 보게 된다”고 전했다.
국제결혼 가정 자녀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자료도 있다. “국제결혼 가정 자녀는 10명 중 1명꼴로 초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거나 중퇴했으며, 중학교 미진학 및 중퇴자는 10명 중 2명 정도인 것으로 추측된다.” 2006년 12월에 나온 ‘다문화 가정 교육 지원을 위한 자료개발 연구’ 결과의 일부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국제결혼 가정 자녀의 경우 학습 부진이나 부적응으로 문제가 생기면 이주여성들이 엄청난 자책에 빠진다”며 “사회적으로 뒷받침을 못해 일어나는 일을 엄마가 외국인이라 그렇다는 식으로 주홍글씨를 달아서는 안 된다. 재혼가정의 아이들은 국적, 언어 등 문제가 더 심각한 만큼 특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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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장·미국에 충성…절대적 국민 건강권 내버렸다”
울리히 벡 〈한겨레〉 특별기고
위험 예견, 역동성 창조…새 저항 연대 형성
정책 전반으로 불만 폭발…정부 강경진압만
 
 
한겨레  
 








 

» 울리히 벡/독일 뮌헨대 교수(사회학)
 
세계적인 사회학자 울리히 벡(64)이 <한겨레>에 최근 한국사회의 촛불시위에 대한 특별기고를 보내 왔다. 위르겐 하버마스, 앤서니 기든스 등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인 그는 <위험사회>에서 서구 근대화의 진전과 함께 사회의 일상적 위험이 급증하고, 그 속에서 사회변혁의 동력도 있다고 주장했다. 촛불시위를 비상한 관심 속에 주시해 온 벡은 이 글에서 촛불시위가 한국사회에 내재된 위험과 사회변혁의 동력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위험을 평가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부정적인 측면, 즉 파괴적 에너지를 강조하는 게 첫째다. 둘째는 그 위험이 수반하는 공공성에 주목한다. 위험은 정치적 지형을 급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권력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 한국 동료들과 친구들, 독일 신문 등을 통해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의미 깊은 위기갈등이 불붙듯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의 현 갈등 상황은 내가 쓴 책 <글로벌 위험사회>(Weltrisikogesellschaft)에서 묘사한 체계의 모든 특징을 빼닮았다.

재난이 아니라 재난에 대한 예견이 문제다. 바로 이 예견이 거대한 정치적 역동성을 창조해 내고 있다. 시민사회의 각종 조직과 운동 진영, 일부 대중매체 사이에 새로운 연대가 형성된 것이다. 위기 갈등의 기폭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과 관련 있다. 이 모든 것은 초국가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대부분은 이 현상을 집단 편집증의 발병이라고 여기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은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았다. 이는 그가 아직 유예기간이라는 유리한 입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키려고 물대포와 몽둥이를 동원했다. 1700여 운동가들이 저항운동을 호소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다른 지방도시에서도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시위대의 권력은 그들이 가진 우려의 정당성에서 나온다. 시위대는 소비자와 연대해, 국가기관에 맞서 소비자의 이해를 관철시킨다. 국가기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것이지만, 실상 국가기관은 시장우선주의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충성 때문에 가장 절대적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국민의 건강권을 내버렸다.

이에 걸맞게 시위자들도 쇠고기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통령이 국민의 건강기본권, 식품안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팻말에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문구들이 나타났다. 산발적인 위기갈등은 마침내 정치적·사회적 개혁의 전반적 방향을 놓고 고민하는 국면으로 발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공부문을 절반으로 줄이고, 수도와 의료를 민영화하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재벌과 대기업을 비호한다. 그는 또한 자신의 위신을 세워줄 사업이라 여기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관철시키려고도 했다.

그런데 이런 갈등 안에는 중요한 물음들이 숨어 있다.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글로벌 위험사회 문제에 직면해 실패의 위협을 받고 있는가? 국가는 이런 갈등을 통해 국민이 점점 거세게 요구하는 안전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국가적 책임을 떠맡는 방향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이로써 전통적 좌우 대립이 새로운 양상을 띨 것인가?

시민들이 국가의 간섭과 통제라면 무엇이든 반대하던 미국에서도 문명적 위기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세력들이 정치적 힘을 얻어가고 있다. 한편 또다른 유력한 세력들은 이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든 연대를 통해서든 큰 국가적인 지원 없이 위기와의 싸움에 대비하고자 한다.

마침내 한국은 이 대안들 앞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즉 “시장이 알아서 조정할 것”이라는 이론과 “국가들은 지구적인 위기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이 변해야 한다”는 이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이명박 대통령이 실패한다면 그 원인은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꼭 필요한 능력, 곧 환경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신뢰를 얻어내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울리히 벡/독일 뮌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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