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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재 하늘 1
권정생 지음 / 지식산업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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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독서 모임에서 읽은 권정생 선생님의 <한티재 하늘>. 20여년 전 돌아가신 외할매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버린 엄마의 ˝나 살아 생전 마지막이지 안겠냐.˝는 말에 설득되어 온 가족이 군위 외삼촌 댁에 다녀왔다. 수동이 할매 만큼이나 기구한 삶을 살다 가신 우리 외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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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박건웅 지음, 님 웨일즈 외 원작 / 동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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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때, <아리랑> 독후감을 제출하라는 과제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이 책은 구하기 어려워 서점이란 서점은 다 뒤지고 다녔다. 결국 구입에 실패하고 시립도서실에서 빌려본 이 책은...힘들었다. 번역이 부드럽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박건웅! 그라면 김산의 삶은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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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3 2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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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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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름이 묻어나고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 4월에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며 돋아나는 새싹과 같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키워준 책을 읽었었다. ‘공지영’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형수와 자살시도를 세 번이나 한 여인이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넉넉한 방학 시간을 이용해 책을 다시 펼쳤다. 처음 읽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사소한 말들에 다 뜻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문장 하나하나가 자세히 들어와 마음을 울렸다.

 

1.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행복이 있다.

  유정이 윤수를 만나러 갈 때 옥색옷의 가격을 듣고 별로 비싸지도 않은데 그것을 입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빈부격차를 그 한 장면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돈의 양과 행복의 양이 비례하지는 않는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하고 가족의 외면 속에서 3번이나 자살시도를 한 유정이나 어머니는 집나가고 구타하던 아버지는 자살, 그렇게 동생과 함께 고아원, 소년원등을 전전하다 결국 동생마저 잃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다가 누명까지 쓴 뒤 사형수가 된 윤수, 둘 다 불행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다행이게도 그가 적은 블루노트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제가 살인자로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제 육체적 생명은 더 연장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제 영혼은 언제까지나 구더기 들끓는 시궁창을 헤매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그가 인생의 마지막 시간만큼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정 역시 그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더 이상 자살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사형수이다. 그리고 죽기 전에 행복을 느끼며 죽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비록 불행한 생을 보냈지만 죽기 전 행복을 알 수 있었던 윤수는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다. 문득 나는 이들에 비하면 매우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흔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아닐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바쁜 일상에 쫓겨 행복을 느낄 시간이 부족하다. 또한, 불행을 느껴보지 못했기에 자신의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유정의 엄마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설거지 한번 하지 않으며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행복은 상대적이다. 즉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좀 더 이 행복을 소중하고 생각하고 아낄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겠다. 모니카 수녀님과 김신부님 같은 사람들은 이 행복을 일깨워주시는 분들이다. 앞으로 우리사회에 이런 분들이 더 많아져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며 따뜻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

  유정의 셋째 올케 서영자씨는 자신의 집에 훔치러온 도둑들을 달래고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핀다. 언뜻 위선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위선자가 꼭 나쁘지는 않다. 모니카 수녀님의 말처럼 위선자는 어느 정도 선에 대해 알고 있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늘 시도하니까 말이다. 나는 위선자가 되는 걸 두려워했다. 그래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봉사활동을 한 적이 없다. 누군가에게 조그만 것을 베푸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위선자보다도 위악을 떠는 사람보다도 수녀님이 가장 싫은 사람은 세상에 아무 기준이 없는 사람이었다. 바로 나였다. 위선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피한 결과 그저 흘러가는 데로 흐르고 방관하는 중심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착한 것은 바보 같은 것이고 남 때문에 울고 자기 잘못 때문에 가슴 아픈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의 따뜻함을 미처 느끼지 못한 것이다. 줏대 없이 이기적으로 눈치 보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불행한 삶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당장 바뀌는 것은 없다. 좀 더 아픔을 느껴야 진실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단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생명의 소중함이다. 나의 생명, 전 인류의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겠다. 윤수의 죽음이 준 깨달음이다.

 

3.시각의 변화-죄수들의 집, 구치소

  앞서 말했듯이 책을 읽으며 세상을 보는 시각을 키웠다. ‘구치소’라고 하면 무서운 곳, 나쁜 사람들이 있는 곳, 가까이 가선 안 되는 곳, 세상과 격리된 어둠의 공간 그리고 불행의 집합소라는 생각이 들면서 두려움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그러나 그곳은 집이었다. 죄수들이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구치소라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윤수와 같이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 자신도 모자라 자식까지 구타하는 남편을 죽인 여인들, 굶주려 도둑질을 한 사람들, 어릴 때 순간의 잘못으로 나쁜 길에 빠져 그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결국 살인까지 저질러버린 사람들, 피해의식 등으로 무자비로 사람을 죽인 사람 등 이루 말 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연을 가진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구치소. 그곳은 나에게 있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나의 잘못된 시각하나를 고칠 수 있었다.

 

4.돌아온 탕자-용서의 미덕

  사형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특히 죽어 마땅하다고 판단되는 똑같은 인간을 죽이는데 하나는 살인이 되고, 하나는 집행이 되고, 하나는 살인자가 되어 그 죄 값으로 죽고 하나는 승진하는 거 그게 정의인가? 라고 묻는 유정의 물음이 메아리가 되어 내 마음에 머물렀다. 모든 것을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신도 아닌 감정을 가진 인간이 과연 다른 인간을 심판 하는 게 옳은 일인가? 모순이다. 물론 나는 피해자가 아닌 사형수만을 봤기에 사형제를 불만스럽게 바라보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여 살인자가 되고 또 그 살인자를 국가가 죽인다. 그럼 국가는 살인 국이 되는 것인가? 사형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용서’ 이것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윤수의 면회 장소에 돌아온 탕자라는 그림이 있다. 한 아들이 아버지한테서 자기 몫의 재산을 미리 받아 가지고 먼 객지로 떠나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다 없앤다. 그 후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가 용서해준다. 그림의 의미를 알고 걸어놓은 것이라면 국가도 그들이 서로를 용서하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아님 국가가 그들을 용서해 준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살해된 가정부의 어머니, 그리고 윤수처럼 모든 것을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도 용서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사형제도보다 우리 사회를 좀 더 풍부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5. 행복한 삶의 조건 세 가지

  물론 진정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용서만이 아니라 좀 더 필요하다. 사랑과 관심이다. 집행보다 예방이라는 단어가 더 중요하다. 어른들은 그것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 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실천하지 않는다. 백주 대낮에 다른 아이들을 때리는 아이를 꾸짖지 않는 어른들, 자신의 아이가 살인을 했는데도 무덤덤하게 여기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아이의 엄마, 그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방치하는 국가. 공장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생기며 공동체적인 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단절된 모습으로 가고 있다. 집집마다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독거노인이 죽은 지 한 달 만에 발견되는 무관심한 현 사회가 서로에게 사랑과 관심을 가지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용서, 사랑, 관심, 생명의 소중함 이 모든 것을 깨닫는 시점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시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2년 뒤 쯤에는 나도 사회에 한 발자국 딛게 될 것이다. 모순투성이인 사회가 무섭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지금 느끼고 있는 행복을 유지하고 아끼며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윤수와 유정이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내가 행복에 대해 잊어버릴 때 마다 그것을 잊지 않게 나의 곁에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 민정이의 여름방학 숙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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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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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세상을 보는 따뜻하고 아프고 화나고 억울하고 답답한 심사가 그대로 느껴진다. 자신과 또 남을 위해 이렇게 자주 울고 울게되는 사람.. 또한 자신을 감추지 않고 이렇게 고스란히 드러내보이는 '용기'를 지닌 사람은 작가라해도 드물던데...

해서 그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그가 감동받았다는 아래의 책들도 시간이 닿는다면 읽어보기로 한다. 물론 공선옥이 쓴 다른 글들도....

 

[無序錄]-이태준

"무서록의 산문들에는 가난하지만 아니 가난해야만 지닐 수 있는 어떤 품위가 배어 있다. 내가 지닌 것 없지만 결코 비루하지 않다는 의미로서의 품위 말이다."

"선생의 산문집은 읽고 있어도 위안이 되고 옆구리에 끼고만 있어도 흙탕물로 솟구쳐 오르던 심사가 은근히 가라앉는다"

 

[퐁경의 상처]-김훈

"상처를 통해서만 풍경을 볼 수밖에 없다"

 

[침묵의 뿌리]-조세희 사진 산문집

작가가, 예술가가 해야 할 일 중에는 풍경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기록하는 일도 포함된다. 어떻게? 한없이 정직하게. 자기가 사는 시대에, 그 시대의 상처에 한없이 정직했던 작가의 작품을 보면 눈물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롯한 조세희의 많은 작품들은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없이 정직하게 자신과 자신이 사는 시대를 응시하게 하는 힘이 있다.

 

[나의 주장]-서준식

나는 그것을 까맣게 몰랐다. 그들은 늘 저쪽에 있는, 유황불에 던져넣어도 상관없는 간첩일 뿐이므로 그같은 이들이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고 사랑도 미움도 욕심도 호기심도 있는 연약한 한 사람의 인간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간첩은 인간이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인간이어서는 안되는 간첩들이 있는 한, 피묻은 손을 감춘 이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죄 때문에 나는 그의 책 [나의 주장]을 읽으며 아니 '그의 절규'를 들으며 그가 감옥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을, 넘쳐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죄인은 그리하여 죄인을 고문하는 형리들이 아니라, 형리들에 속았던 이들이기도 한 것이니.

 

[역사 앞에서]-김성칠

"말로나 글로나 수다를 떨지 말 일."

"겸손하고 너그러우며 제 잘한 일을 입 밖에 내거나 붓끝에 올리지 말 일."

"쓰기보다 읽기에, 읽기보다 생각하기에."

 

[교육일기] - 이오덕

 

[백석 시 전집] - 백석

옛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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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9-1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공선옥이 쓴 글 읽다 보면 왠지 시원해 지고, 같이 눈물 찔끔거려지거든요. 즐건 주말 보내세요~~~

해콩 2005-09-1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끔 목덜미가 서늘해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슬퍼지기도 하고.. 좋은 소설 소개해주세요~
 
아름다운 집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9
손석춘 지음 / 들녘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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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토 모임에서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추천했던 건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손석춘이라는 작가가 그렇게 녹녹한 사람은 아니지만, 감상적인 책 제목은 심정적으로 그저 사회문제를 도외시 하지 않은 가정소설 정도이겠거니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함께한 시간 내내 나를 괴롭혔다.

내가 볼 때, 주인공은 그저 순수한 휴머니스트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발붙이고 사는 사회에 자신을 완벽하게 뿌리 내릴 수 없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행복한, 그런 무균질 사회가 아니라면 그는 어떤 이념이나 제도 아래의 사회에서도 완벽하게 적응하며 살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늘 이상을 쫓아 꿈을 꾸며 자신을 세상에 맞추어 가지 못하고, 세상을 늘 자신의 꿈에 맞추기 위해 발버둥치는!

[아리랑]에서 김산이 말했듯 '자살' 역시 인간이 가진 당연하고 아름다운 권리 중의 하나라고 볼 때(이 말에 동의한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자살은 세가지 정도가 있다. 전태일, 스콧니어링, 그리고 야누쉬 코르착. 이들은 모두 실제 인물이지만 [아름다운 집]을 짓고자 했던 이진선도 여기 포함시킬 수 있겠다. 자신이 가진 최소한의 (혹은 최대한의) 이상을 위해 마지막 하나까지 내놓는 양심, 이건 사람을 늘 중심에 두는 휴머니스트가 아니라면, 계산할 줄 모르고 타협할 줄 모르는 순수한 영혼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높은 역사학도나, 대한민국 1%도 안되는 사회주의자라면 모를까 솔직히 일기 형식의 이 소설은 지리하다. 그러나 그 지리함을 상쇄해 줄 감동이 분명히 있다. 그러니 끈기 있게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이진선의 두번째 유고 [아직 오지 않은 동지에게]를 행여 미리 읽어버리거나 빼먹고 읽지 않거나 한다면 감동적이라는 나의 말에 항의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2005. 5. 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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