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달개비꽃을 으깨 푸른 꽃잎 잉크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던 정지용의 글을 읽었다. 1938년 서대문 밖으로 이사 갔을 때 일이다. 편지에다 그는 서울에도 꾀꼬리 울음을 들을 데가 있노라고 썼다. 편지를 받고 황해도 안악 사는 친구는 축하하는 답장을 보내오고, 전라도 장성 사는 벗은 집구경 하겠다고 우정 그 먼길을 찾아 올라왔다.

  망한 나라에서 왜놈의 백성으로 살 수 없다며 이건승이 조국을 등지고 만주로 망명하여 간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해마다 가을이 되면 들국화를 따서 봉투에 담아 만주로 보낸 사람이 있었다. 국과가 피지 않는 만주 땅에서 그 내음 맡으며 망국의 설움을 달래시라는 뜻이었다.

  꽃잎 잉크로 쓴 희미한 편지를 받고 빙그레 웃었을 벗들의 표정과, 조선 들판의 매운 향기를 머금은 국화 꽃잎을 앞에 두고 주루룩 눈물을 떨구었을 뜻 높은 선비의 주름살 팬 얼굴이 선연히 떠오른다. 아마득한 옛일 같은데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고 했다. 무늬 없는 삶 속에는 기쁨이 깃들지 않는다. 생활의 여유는 물질의 풍요와는 상관없어 보인다. 세상일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사람들은 바빠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자꾸 일을 만든다. 그러는 사이에 마음밭은 나날이 황폐해져서, 마음의 무늬가 빚어내는 잔잔한 감동을 만나볼 수가 없게 되었다. 살갑고 고맙던 그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 정민, [스승의 옥편], <달개비꽃 잉크>, p172~173, 마음산책,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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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들풀 종자 은행-

   신문에 ‘토종 들풀 종자 은행’ 이야기가 실렸다. 고려대 강병화 교수가 17년간 혼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야생 들풀 1백과 4,439종의 씨앗을 모아 세웠다는 이야기다. 한 사람이 장한 뜻을 세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잡초들의 씨앗을 받으려 청춘을 다 바쳤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기사의 끝에 실린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죠.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오호라!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된다.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이냐. 사람도 한 가지다. 제가 꼭 필요한 곳,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하고, 뻗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뭉개면 잡초가 된다. 그가 17년간 산하를 누비며 들풀의 씨를 받는 동안, 마음속에 스쳐 간 깨달음이 이것 하나뿐이었으랴만, 이 하나의 깨달음도 내게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참으로 달고 고마운 말씀이다.

  타고난 아름다운 자질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잡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리를 가리지 못해 뽑히어 버려지는 삶이 너무나 많다. 지금 내 자리는 제자리인가? 잡초는 없다. 자리를 가리지 못해 잡초가 될 뿐이다.

- 정민, [스승의 옥편], <제자리가 아니면 잡초가 된다.>, 168~16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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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8-09-26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식>"우리나라 들풀.들꽃 보러오세요"
뉴시스 | 기사입력 2003.12.18 06:57

대전=뉴시스】 국내 토종 풀과 꽃을 한눈에 볼수있는 "한국 자원식물 생태사진 전시회"가 오는 22일부터 이달말까지 서울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전시장에서 개최된다. 한국과학재단(KOSEF)이 특수연구소재은행으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는 야생초본식물자원종자은행(강병화 고려대교수)은 우리나라 자원식물 748초종의 종자와 560초종의 생태사진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전시회는 야생초본식물자원종자은행을 운영하는 강교수가 20여년간 들과 산을 돌아다니며 식물을 조사 연구하고 채취한 종자와 관련된 생태사진 2300여장이 전시된다. 야생초본식물자원종자은행에서는 현재 110과 1401초종 5958수집종을 확보해 필요한 연구자에게 분양하거나 채종정보를 제공하는 등 식물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주최측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일반인과 학생들에게 자연과 식물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제민기자 jmyeon@newsis.com
 

군대가 있는 한 미주주의 국가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또하나, 국가에는 군사적인 신체가 있습니다. 군사적인 조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군사행동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은 명백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군사행동이라는 것은 폭력을 행사해서 상대방을 자신의 의사에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내 의사에 따르지 않으면 너를 죽이겠다, 라는 것이 군사행동의 기본인 까닭에 그것은 당연히 민주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물론 적에 대해서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구사조직 자체가 반민주적인 것입니다. 군사조직은 기본적으로, 정치용어로 말하면, 독재입니다. 사령관이 있고, 그리고 사령관 밑에 권력의 위계구조가 있어서 명령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갑니다. 정보는 아래로부터 위로 전해지더라도 명령은 전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폭력을 사용하여 병사들의 충성을 확인합니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병사는 즉각 체포됩니다. 상관에 대해서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만으로, 예컨대 상관에게 '바보자식'이라고 했다는 것만으로, 당연히 체포됩니다.

  전시에는, 예컨대 전선으로부터 도주하면 기본적으로 사형입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도망하더라도 죽지 않는다고 한다면 인간은 여간해서 전쟁을 계속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주하는 사람에 대해서 재판을 하고, 사형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엄혹한 전쟁의 상황에서는 훨씬 더 가혹합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이야기로 흔히 들어온 것이지만, 전선에서 10미터쯤 뒤에 장교가 서서 총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전선에서 이탈, 도주하는 자기 나라 병사들을 사살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뒤에 이러한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병사들은 도주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은 여간해서 전쟁을 계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군대조직의 또하나의 특징은 각 병사, 개인의 일상생활의 세밀한 곳까지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24시간 동안의 일정이 있습니다. 저녁이 되어 자유시간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24시간 전부 관리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서랍 속을 정리하는 일이라든가, 복장관리라든가, 모든 게 관리됩니다. 전부 규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트리면 처벌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전체주의 조직인 것입니다. 사상으로부터 일상생활 아침부터 밤까지의 모든 스케줄, 전부가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폭력에 의해서 관리됩니다.

  이러한 군사조직 모델은 다분히 고대 로마로부터 전해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 이외에도 군대조직은 있었지만, 로마공화국, 그리고 로마제국은 극히 합리적인 조직을 완성시켰고, 그 결과 수십년 동안에 지중해 주변 나라들을 모두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대제국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조직력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고대 로마의 비밀이었고, 그 이후 유럽의 군대조직은 늘 그것을 모방해왔습니다. 유럽이 그토로 간단히 많은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던 비밀도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무기보다도 중요한 것은 조직력이었습니다. 완전관리의 조직은 굉장히 강한 조직이 된 것입니다.

  민주주의 라고 일컬어지는 국가는 앞서 말한 정치적 신체 이외에, 이 군사적 신체도 갖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일본은 종전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 군사적 신체가 가장 약한 나라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건강한 젊은 남자라면 누구든 적어도 2년이나 3년간 군대에 들어가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가 많습니다.

  그것은 정부의 일부분입니다. 정부가 이것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군대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라고 일컬어지는 나라 가운데도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역과 전체주의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국가 자체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조직과 전체주의적, 독재적인 조직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데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경우에 따라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계엄령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군대조직의 논리, 군대조직의 지배방식을 사회 전체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물론 노인이나 여성, 아이들을 간단히 병사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계엄령은 그 국가의 군사조지으로서의 신체를 사회 전체로 확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라고 하면서도 그러한 반민주적인 조직, 민주주의 사상과 모순되는 큰 조직을 각 국가는 갖고 있습니다.

  일본의 전후 이데올로기에서는 평화와 민주주의는 거의 같은 것이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평화와 민주주의가 상호관계가 있는 것으로 별로 느껴지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바로 평화라는 사고방식은 유럽에서는 그만큼 정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거꾸로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귀족적인 제도보다도 전쟁에 강하다는 사고방식까지 존재합니다.

  그러나, 지금 말한 문맥 속에서 생각하면, 일본의 전후사상 쪽이 올바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군대조직이 없어지지 않는 한, 국가가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대조직이 강해져서 일반사회에 대한 영향도 강해집니다. 즉, 일상생활이 군사화합니다. 따라서, 전쟁의 가능성, 그리고 군대조직의 존재는 언제나 민주주의 사상과 민주주의 정신의 발목을 잡아끄는 것이 됩니다.

-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러스 러미스, 김종철/이반옮김, 녹색평론사, 2002, 128쪽~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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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프롬Fromm(1900~1980)은 그의 저서 『자기를 찾는 인간(Man for Himself)』에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부모가 갖는 불합리한 권위와 억압에 대한 자식의 자연스런 반응이 반항인데 그러한 반항은 프로이드가 말하는 외디프스 콤플렉스의 본질이다. 프로이드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즉 나이 어린 사내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구 때문에 아버지의 경쟁자가 되면 노이로제의 발생은 이러한 경쟁에서 유래하는 불만에 만족스런 방법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데 있다. 어린이와 부모의 권위 사이의 갈등과 또한 어린이가 이런 갈등을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프로이드는 노이로제의 근원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내 견해로는 이러한 갈등은 원래 성적인 경쟁에서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불합리한 권위라는 억압에 대한 반응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부모의 권위라는 억압은 본래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고유한 현상이다. 사회의 권위와 부모의 권위가 자기의 의지와 자발성 및 독립성을 파괴시키려 하는 한, 어린이는 파괴되기 위하여 태어나는 것은 아니므로, 부모에 의해서 표현되어지는 권위에 맞서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는 단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즉 하나의 자동 인형이 아니라 어엿한 하나의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자유를 획득하려고 싸우는 것이다. …… 불합리한 권위에 대한 싸움에서 어린이가 패배함으로써 남겨진 상흔은 모든 노이로제의 밑바닥에서 발견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흔들은 하나의 증후군을 형성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 사람의 독창성과 자발성을 약화시키거나 마비시키는 것이다. 자아는 약화되어 거짓된 자아가 그것을 대신하게 되며 그러한 속에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의식이 무디어져 타인들의 기대에 대한 총체로서 자아를 경험하는 것으로 바뀌어진다. 즉 자율성은 타율성으로 대체되며 모든 인간 상호간에 생기는 체험은 혼미성을 띠게 되거나 혹은 H.S. 설리번Sullivan의 말을 빌리자면 병렬적 성질을 띠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과의 투쟁에서 패배의 가장 중대한 증상은 죄책감이다. 만일 사람이 권위주의의 그물망을 뚫고 나가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도피하고자 했던 헛된 시도는 죄의 증거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또다시 복종함으로써만 비로소 떳떳한 마음을 회복시킬 수가 있다.”

 

                                                                     - 김용규,『영화관 옆 철학카페』, 이론과 실천, 2002, pp26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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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모두 돼지발정제를 마신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우리도 이미 마신 건지 몰라. 단지 아직 5분이 지나지 않았을 뿐이지. 신정(新正) 때 집에서 혈투가 벌어졌어. 유산이 문제였지. 할아버지가 물려준 임야가...... 졸지에 개발 지역이 되었나봐. 그게 화근이었어. 못 준다, 내놔라. 온갖 욕이 오가고 주먹질이 오갔지. 어머니가...... 싸움을 말리다 쓰러지셨어...... 막내삼촌은 눈을 다치고...... 결국 재판을 할 모양이야. 이해할 수 없는 건 우리나 삼촌이나 다들 먹고 살 만한 집들이란 거야. 실은 남부럽잖은 집들이지...... 난 말리지도 않았어. 다들 미쳤다고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이니까. 그 눈빛들은...... 집접 보지 않고선 설명할 길이 없어..... 없다구. 그런데 세상을 둘러보니 다들 그런 거야.  다들! 다들 돼지발정제를 마신 것처럼 땀을 흘리고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어. 아무래도 놈들이 원하는 건 돈과의 교미가 아닌가 싶어. 이미 마신 이상은...... 그 끝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거지. 어쩌면 우리가 대학을 간 것도 다 그걸 마셨기 때문이야. 지금은 느끼지 못해도 좀더 시간을 흐르면 알게 되겠지. 여하튼 땀이...... 나고 숨소리가 거칠어질테니까. 내가 왜 이러지? 난 결백해...... 하며 똑같은 짓을 하게 될거라구. 분명해. 그래. 분명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걸 먹였어. 우리가 마셔온 물에, 우리가 먹어온 밥에, 우리가 읽는 책에, 우리가 받는 교육에, 우리가 보는 방송에, 우리가 열광하는 야구 경기에, 우리의 부모에게, 이웃에게, 나, 너, 우리, 대한민국에게...... 놈은 차곡차곡 그 약을 타온 거야. 너도 명심해. 그 5분이 지나고 나면, 우리도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지 몰라......

- 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한겨레 신문사, 2002, 181~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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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7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6-05-07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님.. 죄송해요. 이 글... 제가 쓴 게 아니구요.. 저어기..위에 수정한 것처럼.. 이랍니다. 죄송.. 글이 너무 좋아서요. 밑줄 긋기 한다는 게 그만..^^;

2006-05-08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