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이란 새삼 무엇인가. 고고학과 문헌학, 말을 바꾸면 과학과 또다른 과학이 마주쳐 해석학의 공간을 낳는 장소가 아닐 것인가. 숨쉬고 있다는 것은 이를 가리키는 것.  문제는 여기에도 국민국가주의가 얼마만큼 스며들고 있는가에 있다. 이 비석을 둘러싸고 한중일 학자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에 놓인 것은 국민국가주의였다. 한갓 근대의 소산인 이 사상을 고대로 소급해 간 것이었다. 그렇다면 중국도 일본도 한국도 저 고약한 국민국가주의를 벗어날 길은 없을까. 맨눈으로 고구려를 볼 수 없을까.그 맨눈으로 "아, 고구려"라 할 수 없을까. 종족의 문제를 통째로 국민국가주의 쪽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광개토대왕비는 때때로 숨이 막힐 뻔도 했으리라. 저 장군총의 아스팔트길, 채석장을 방불 케하는 도굴 현장, 총살 직전에 있는 도굴꾼들도 그러한 현상이리라. 아, 이 위대하고 굉장한 국민국자주의여.

김윤식, [샹그리라를 찾아서], 2003. 12. 1, 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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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래. 도.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 켄트 케이스 

= 삶에 희망을 주는 열 가지 진리 =

1. 사람들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람들을 사랑하라.

2. 당신이 착한 일을 하면 사람들은 다른 속셈이 있을거라고 의심할 것이다. 그래도 착한 일을 하라.

3. 당신이 성공하게 되면 가짜 친구와 진짜 적들이 생길 것이다. 그래도 성공하라.

4. 오늘 당신이 착한 일을 해도 내일이면 사람들은 잊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착한 일을 하라.

5. 정직하고 솔직하면 공격당하기 쉽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게 살아라.

6. 사리사욕에 눈 먼 소인배들이 큰 뜻을 품은 훌륭한 사람들을 해칠 수도 있다. 그래도 크게 생각하라.

7. 몇 년 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도 탑을 쌓아라.

8.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덤빌 수도 있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라.

9.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헌신해도 칭찬을 듣기는 커녕 경을 칠 수도 있다. 그래도 헌신하라.

10. 사람들은 약자에게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결국에는 힘 있는 사람 편에 선다. 그래도 소수의 약자를 위해 분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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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지나치게 나이에 관심을 둔다.
나이를 자기의 깊은 잠재의식에 새기고,
그로 말미암아 나이보다 더 들어보이는 얼굴빛을 띤다.

생각하는 것,
마음 내키는 것,
바라고 싶은 것 등이
최면술적인 암시가 되어
자기 자신의 용모에 그대로 새겨진다.

상념은 일종의 씨앗이며,
생각할 때마다 우리들은
그 생각하는 내용의 씨앗을 심으려고 한다.

얼마 후 그 씨앗은
움트고 성장한 다음 열매를 맺는다.

젊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젊음은 육체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
'어느새 이런 나이가 되었네......'라고 생각해서는 더욱더 안 된다.

앞날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서
발랄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다.

인간은 영혼이다.
영혼은 시간 이전의 것이므로
본시부터 늙지 않는다.

육체는 영혼이 일으키는 상념에 의하여 진동되어
그 조직을 젊게 하기도 하고 늙게도 한다.

 

[글샘]님 서재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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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온한 교사인가?

- 최근 청소년들의 사회적 발언과 우리 사회의 문화지체 현상에 대하여



안준철선생님(순천 효산고)




   10대 청소년들의 성장과 방황을 그린 영화 ‘그로잉 업(Growing Up)’을 본 것은 기억조차 까마득한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영화 속의 십대 주인공과 같은 또래였든지, 그 시기를 조금 비껴간 대학시절이었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튼 그 무렵의 내 눈에 비친 영화 ‘그로잉 업’은 한 마디로 무지하게 야한 영화였다.

   얼마 후 나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연히 ‘그로잉 업’의 몇 장면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야한 영화를 안방에서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기보다는 조금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한 영화평론가가 그 영화를 십대들의 에너지가 넘치는 ‘건강한 영화’라고 소개한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뇌인지 가슴에서인지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났다. ‘충격과 이해’, 바로 그것이었다. 내 눈에는 야하고 불건전해 보이는 영화를 건강한 영화라고 소개한 영화평론가의 말이 먼저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와 동시에 나의 무지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건강하다’는 말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싹튼 것이었다.

   최근 입시문제를 둘러싼 청소년들의 촛불집회가 열리면서 학생들의 두발규제에 관한 문제도 하나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두발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학생들과 청소년단체 관계자들이 교육부총리 집무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머리 에 떠오른 것은 ‘건강하다’라는 단어였다. ‘하라는 공부는 않고 머리나 길게 해달라는 아이들’이 건강하다니, 나는 혹시 불온한 교사일까?

   고백하자면, 나는 친하게 지내는 동료교사라도 청소년들의 인권에 관한 문제로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불온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가령, 학교 간부 학생들이 교문에서 학생들의 가방을 뒤진다든지, 수업시간에 교실에 들어와 호주머니를 뒤지며 생활검열을 하는 것을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얘기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서먹해지고 만다. 경우에 따라서는 안색을 바꾸는 교사들도 있다.

   ‘모든 문화는 불온한 면이 있다’고 말한 시인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하다. 오늘날의 민주국가, 즉 모든 공화국은 당시의 사회통념이나 이념적 잣대로 잰다면 인간의 불온한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사실 아닌가. 문화의 이런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친한 동료교사라고 해도 대화의 장벽이 생기고 만다.

   속내를 털어놓자면, 학교의 수직적인 명령체계와 비민주적인 관행에는 불끈하여 반발하면서도 학생들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에는 철저히 모르쇠하든지, 아니면 괘씸죄로 다스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닌 교사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인 셈이다.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은 왜 거리에 청소년들이 보이지 않는지 의아해한다고 한다. 그 시간 대다수 학생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밤늦도록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욱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리의 과도한 교육열이 그들 눈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의 성적(性的)호기심이 불건전하고 위태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자연스러운 것이듯이.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 희망자 조사를 할 때 나는 학생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당연하기도 하거니와 아이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너무도 싫기 때문이다.
   “너 왜 멍하니 있는 거야.”
   “저 아무것도 안했는데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냐고. 네가 원해서 학교에 남은 거잖아.”
   “아닌데요. 선생님이 강제로 남으라고 해서 남은 건데요.”

   자기 삶을 살고 있지 않는 듯한 이런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우리 교육의 위기가 동기의 위기요, 자발성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런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남에게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요, 나라의 백년대계가 심히 염려스러운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청소년이 주인이다’라고 외치는 그들의 당당하고 건강한 목소리가. 그들에게 꽃다발이라도 한 아름 안겨주고 싶은 나는 정녕 불온한 교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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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6-1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준철 선생님이 전혀 불온해 보이지 않는 나도 혹 불온한 교사? ^^
 

"좋지 뭐. 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건데. 아주 간단해. 우선 몸이 없으면 머리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인간은 머리만으로 존재하지 않아. 몸을 자랑할 수 있는 너는 모든 가능성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는 거야. 응, 바보같이 당연한 말만 하고 말았네."  47쪽

 

사람들은 나를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혼자서 자기 아버지와 아들을 돌보고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사람들은 나를 불쌍히 여겼던 거다. 초등학교에서는 모자 가정의 모임이라는 곳에 들어갈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임의 아이들이 그리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부재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완벽한 가족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제삼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그리고 그것만 한탄하면서 평생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아버지에 대해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다. 사실 부모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언젠가는 이 세상과 이별하고 떠나야 한다. 부모 없는 아이는 불행하게 되어 있다는 고정관념은 사람의 생각을 묶어버리는 인습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와이드 쇼처럼 무책임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일을 하면 아버지도 없이 자랐는데 대단하다고 하고, 나쁜 일을 하면 역시 어버지가 없으니까 그렇지라고 한다.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건 하나의 사실이지 정의가 아니다.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는 것이 모든 판단의 기초가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사실에 ㅇ표를 하거나 x표를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에 옳고 그름을 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건 단지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108~109쪽

 

"도키다, 세상에는 너 말고도 쓸데없는 간섭 때문에 나쁜 놈이나 좋은 놈이 되는 사람이 많아. 선생도 그럴지 모를지. 인간 전부가 그런 사고방식의 피해자일지도 몰라. 그걸 어떻게 할 수는 없어."

"그렇지만 나는 절대로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을 거예요."

"그건 몰라. 그때가 돼보지 않으면.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 인간이 인간을 무책임한 입장에서 재단하는 건 안 돼. 그것만 알고 있어도 훨씬 나은 셈이지."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또 무엇이 나의 앞길을 가로 막을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사토 선생의 생활지도 때문에 기가 죽어 있을 수는 없은 것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 가치 기준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 기준에 세상의 정의를 끌어들이는 일 따위는 결코 하지 않을 거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모든 것에 ㅇ표를 치자. 우선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그런 다음 천천히 x표를 선택해가는 거다.' 122~1234쪽

 

 떠들썩하던 교실은 오쿠무라가 들어서자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고 이야기에 빠져있던 히데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그 사실을 눈치 챈 히데미가 어색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으려는데 오쿠무라가 불러세웠다. "뭐가 그리 재미잇어, 엉! 너 요즘 교실 분위기에도 익숙해져서 제법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지."

"그렇지 않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히데미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시 머뭇머뭇 했지만, 이윽고 고개를 들어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카마와 나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게 아주 잘된 일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 그게 자랑거리라고,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니?"

오쿠무라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자랑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없는 것은 아주 좋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뭘 잘못하면 금방 그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아른 곳을 건드리니까. 미야다와 삼각자로 결투를 벌이다가 뾰족한 끄트머리에 손이 찔렸습니다. 아주 아팠습니다. 바로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또 개똥 같은 논리로군. 넌더리나는 놈. 오쿠무라는 그 다음 말을 재촉했다.

"같은 겁니다.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것아고 말이에요. 선생님, 삼각형의 세 각을 합하면 180도가 되잖아요. 일직선이 되는 거지요. 고통의 각을 세개 모으면 그것도 일직선이 됩니다. 여섯 개를 모으면 360도가 되는 겁니다. 동그랗게요. 더이상 아프게 하는 뾰족한 각을 없습니다. 나와 아카마는 이미 한개의 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는 빨리 일직선이나 동그라미가 될 수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지구도 둘글잖아요."

오쿠무라는 히데미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헛기침만 하고 있었다.

"이제 됐어. 네가 말하려는 게 뭔지 알겠어.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자리에 앉아."

"쓸데없는 말이 아니라구요! 내게는 큰 문제예요."

"알았다. 알았어.

히데미는얼굴을 붉히면서 외쳤다.

"선생님! 내 말을 무시하는 겁니까?"

그 순간 아카마 히로코가 책상에 엎드려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오쿠무라는 당황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누가 아카마와 도키다가 아버지가 없다고 놀리기라도 했어?"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뽀족한 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걸 각도기로 잴 수는 없지만, 언젠가 일직선이나 동그라미가 되어 없어진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히데미는 콧물을 훌쩍였다. 교실은 조용히 가라앉았고, 히로코의 울음소리만 울려퍼지고 있었다. 오쿠무라는 멍하니 서 있었다. 대체 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단 말인가. 정작 구원을 받아야 할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 ... 이래서는 공부가 안 된다. 너희들, 뭘 하고 싶어? 이번 국어 시간을 여러분에게 줄 테니, 뭘 할래?"

 순간,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아카마 히로코도 눈물로 젖은 얼굴을 훔쳤다.

모두 이 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일에 익숙해 있지 않은 아이들은 구체적으로 뭘 할지 결정하는 데 무척 애를 먹고 있었다.

"다마가와 강변에 가서 놀까? 날씨도 좋은데."

초조해진 오쿠무라의 입에서 나온 제안에 모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물론 히데미도 너무 기뻤다.

"길을 걸을 때 두 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 우측통행. 열에서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알았으면 준비해."

264쪽~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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