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의 어려움


젊은 날에는 말이 많았다. 말과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구별되지 않았고 말과 삶을 분간하지 못했다. 말하기의 어려움과 말하기의 위태로움과 말하기의 허망함을 알지 못했다. 말이 되는 말과 말이 되지 않는 말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언어의 외형적 질서에 하자가 없으면 다 말인 줄 알았다. 어쩔 수 없었다. 말하기의 조건들을 일러주는 스승이나 선배도 없었고 가르쳐주었다 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말과 글을 배우는 젊은이에게 말이란 너무나도 유혹적인 것이어서 말하기의 두려움을 함께 배울 여유는 전혀 없었다. 사전에 나와 있는 단어는 모두 끌어다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한 단어가 사전에 나와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끼워 넣고 마을 조립하는 것은 정당한 논리의 적용이라고 믿었고, 그 믿음의 근거를 돌아보지 않았다.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


- 김훈, 『김훈세설-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생각의 나무, 2002.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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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 세 개  -홍세화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나의 할아버지께선 나에게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대부분 잊었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당신께서 중국의 노신을 읽으시고 좀 바꾸어 말씀하신 것인지 아니며 우리 옛이야기에 실제로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얘기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 옛날에 서당 선생이 삼형제를 가르쳤겠다. 어느 날 서당 선생은 삼형제에게 차례대로 장래 희망을 말해보라고 했겠다. 맏형이 말하기를 나는 커서 정승이 되고 싶다고 하니 선생이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그럼 그렇지 하고 칭찬했겠다. 둘째형이 말하기를 나는 커서 장군이 되고 싶다고 했겠다. 이 말에 서당선생은 역시 흡족한 표정을 짓고 그럼 그렇지 사내대장부는 포부가 터야지 했겠다. 막내에게 물으니 잠깐 생각하더니 저는 장래 희망은 그만두고 개똥 세 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했겠다. 표정이 언짢아진 서당선생이 그건 왜? 하고 당연히 물을 수밖에. 막내 말하기를, 나보다도 글읽기를 싫어하는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니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 또 나보다도 겁쟁이인 둘째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니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여기까지 말한 막내가 우물쭈물 하니 서당 선생이 일그러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겠다. 그럼 마지막 한 개는? 하고.


  여기까지 말씀하신 할아버님께선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세화야, 막내가 뭐라고 말했겠니?” 하고.

  나는 어린 나이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거야 서당선생 먹으라고 했겠지요, 뭐.”

  “왜 그러냐?”

  “그거야 맏형과 둘째형의 그 엉터리 같은 말을 듣고 좋아했으니까 그렇지요.”

  “그래. 네 말이 옳다. 얘기는 거기서 끝나지. 그런데 만약 네가 그 막내였다면 그 말을 서당선생에게 할 수 있었겠냐?”

  어렸던 나는 그때 말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할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화야, 네가 앞으로 그 말을 못하게 되면 세 개째의 개똥은 네 차지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나는 커가면서 세 개째의 개똥은 내가 먹어야 한다는 것을 자주 인정해야 했다. 내가 실존의 의미를, 그리고 리스먼의 자기지향을 생각할 때도 이 할아버님의 말씀이 항상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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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10-13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문제는 아니지만 그냥 그 개똥, 남에게 먹이느니 내가 먹을까? 생각하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남에게 개똥 먹이는 일도 장난 아니게 힘들기 때문. 그렇지만 대부분 내가 먹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소심한 나는 아주, 아주~ 조심그럽게 상대방 앞에 슬쩍 밀어놓는다.

개똥 먹는 것 만큼이나 힘든 건 내 말에 책임지는 것! 같이 개똥 먹일 인간 되지 않으려면 나 스스로도 나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눈 딱감고 말하려하는데 사람들은 그저 눈 딱 감고 아무 말도 말아달라고 한다.
침묵은 묵시적인 동의!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실천하지 않는 앎은 앎이 아니다.

그러나 늘~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는 일과
아는 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일은
힘/들/다/
 

 어린왕자  생텍쥐페리

#소행성 B-612

  나는 어린 왕자가 소행성 ‘B-612’에서 왔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소행성은 1909년 터키의 어느 천문학자의 망원경에 단 한 번 잡혔을 뿐이다. 그때 이 천문학자는 국제 천문학회에서 자기가 발견한 별에 대해 거창하게 발표를 했다. 그러나 그가 입은 옷 때문에 누구하나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른들은 항상 이렇다.

  소행성 ‘B-612’를 위해서는 참으로 다행스럽게 터키의 한 독재자가 그의 백성들에게 유럽식으로 옷을 입으라고 명령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고 했다. 그 천문학자는 1920년에 아주 근사한 옷을 입고 발표를 다시 했다. 이번에는 모두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내가 소행성 ‘B-612’에 대해 그 번호까지 분명히 밝히면서 이렇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가장 중요한 것들은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 아이의 목소리는 어떠냐?” 그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는 뭐니? 그 애도 나비를 채집하니?“

  이런 질문들은 절대로 묻는 법이 없다. 대신에 항상 이런 질문들만 한다.

“그 앤 나이가 몇이지? 형제들은 몇이나 되니? 몸무게는 얼마지? 그 애 아버진 월급이 얼마나 되니?”

단지 이런 질문만으로 그 친구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한다.

  만일 여러분들이 어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어른들은 그 집을 상상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주 아름다운 장미 빛 벽돌집을 보았어요. 창문에 제라늄이 있고 지붕 위에 비둘기가 있는…”

  그들에겐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10억 짜리 집을 보았어요.” 그때야 비로소 어른들은 탄성을 지른다. “얼마나 멋진 집일까!”

  그러니 여러분들이 어른들에게 “어린 왕자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그 애가 멋있었고, 그 애가 웃었고, 그 애가 양을 갖고 싶어했다는 것이에요. 누군가가 양을 갖고 싶어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잖아요.”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여러분들을 어린아이로 취급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소행성 ‘B-612’에서 왔어요.‘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곧 알아듣고, 질문 따위를 늘어놓아 여러분들을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 2 -1 여우와 어린왕자  (만남)

  그러나 여우는 하던 이야기로 다시 되돌아갔다.

“내 생활은 너무 단조롭단다.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닭들은 모두 똑같고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난 좀 심심해.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햇빛처럼 환하게 밝아질 거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사람의 발소리를 들으면 나는 땅 속에 숨지만 네 발 소리는 음악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내게 아무런 쓸모가 없어. 그래서 밀밭을 봐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그건 슬픈 일이야! 네 머리카락은 금빛이지? 그래서 네가 나를 길들이면 정말 신날거야. 밀도 금빛이니까 금빛 밀밭을 보면, 네가 생각나게 되겠지. 그래서 나는 밀밭에 스치는 바람소리까지도 사랑하게 될 거구…”

#2-2 여우와 어린왕자 (이별)

“잘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잘 가.” 여우가 작별 인사를 하며 마지막 선물로 비밀을 말해주었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아주 간단해.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잘 기억하기 위해서 어린 왕자가 따라 말했다.

“네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 때문이란다.”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 때문이란다.” 잘 기억하기 위해 역시 어린 왕자는 이 말도 따라했다.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으니까. 너는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단 말이야…”

“너는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어린 왕자는 이 말도 잘 기억하기 위해 따라했다.

#3 약장사와 어린왕자

“안녕하세요.”어린 왕자가 인사를 했다. “안녕.” 장사꾼이 말했다.

그는 갈증을 풀어주는 새로 나온 알약을 파는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한 알씩 먹으면 마시고 싶은 욕망을 영영 느끼지 않게 되는 약이었다.

“왜 그걸 팔아요?”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건 시간을 굉장히 절약하게 해주거든. 전문가들이 계산을 해보았다는데 이 약을 먹으면 1주일에 53분이 절약된다는구나.” 장사꾼이 말했다.

“그 53분으로 뭘 하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만일 그 53분을 내 마음대로 쓰라고 하면, 나는 맑은 물이 솟아오르는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텐데…’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4. 비행사와 어린왕자

어린 왕자는 지쳐서 주저앉았다. 나도 그의 곁에 앉았다. 그러자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별들은 아름다워요.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에…”

“그렇지.” 나는 대답하고 달빛 아래 물결치는 모래 언덕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사막은 아름다워요.” 그가 다시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언제나 사막을 사랑해왔다. 사막에서는 모래언덕 위에 앉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뭔가가 빛나고 있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에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사막의 모래밭이 왜 그렇게 신비롭게 빛나는지 문득 깨달았다. 어렸을 때 나는 낡은 집에서 살았다. 그 집에는 보물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發見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 보물은 우리 집 구석구석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우리 집 가장 깊숙한 곳에 보물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란다.” 내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아저씨가 내 여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기뻐요.”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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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병에 걸렸대. 자폐증이래. 그 정신병은 치료약도 없대. 죽을 때까지 바보 멍충이로 살아야 한다니....." 엄마가 훌쩍이며 말했다.

아버지가 엄마의 말을 꺾었다. "오늘의 세상은 자기만이 완전한 인간이라고 믿기 때문에 개인주의가 팽배해. 그래서 각종 범죄와 탈법이 횡행하는 거야. 이 세상을 순치하는 방법은,  내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줄어들어야 해. 내가 조금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협동이 이루어져. 그게 바로 바람직한 공동체 사회야. 선량하기 때문에 모자라 보이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바람직한 공동체 생활이 이루어져. 모든 일에 자기가 최고하는 착각에 빠진 사람이야말로 골치 아픈 욕망의 덩어리지. 다가오는 세기야말로 인간의 교만이 겸손으로 순치되어야 해. 자연에 귀기울여야 하고 인간이 순박한 심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돼."

읍내 큰 병원에서 테스트를 받고 온 날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집에서 술을 마셨다. 너무 취해 혼잣말로 계속 소리쳤다. 엄마는 울기만 했다. "괜찮아, 시우는 여기서 살면 돼. 아비야, 걱정 마. 시우는 여기서 농사짓고 살테니깐. 잘난 체하는 사람, 똑똑하다고 으스대는 사람 안보고 우리끼리 살면 되잖아."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김원일 [아우라지로 가는 길] 1.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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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9장 자한편  마지막 구절이 맘에 와 닿는다.

唐체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산앵도나무꽃 바람에 팔랑팔랑.

어찌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집이 너무 멀리 떨어져있으니..

공자 말씀하셨다. 간절하지 않음이겠지. 먼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

: 앞 두 구절은 [詩經]의 한 부분이다. 뒷부분은 물론 공자님이 이에 대한 해설을 붙인 것이니 유학자들은 '학문에 대한 사랑, 추구' 등등 판에 박힌 말로 풀이하겠지삼 내가 볼 때 이 시는.. . 으~ 이 연애시의 결정판이다!! 나름대로 풀이를 토대로 의역한 해석.. 쥑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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